과부춤
- 감독
- 이장호
- 제작년도
- 1983
- 출연
- 박원숙, 이보희, 박정자, 박송희, 현석, 권성덕, 김명곤, 서영환, 이희성, 김동수, 김정, 남수정, 정지희, 추석양, 박용팔, 박부양, 김수천
< 사방지 >는 1980년대에 양산되던 사극 에로영화로 분류될 수 있다. <사방지>는 조선 세조시절 『실록』에 기록된 실제 사건을 영화화했다. 『실록』에 따르면 양반가 종인 사방지가 주인집 과부 며느리인 이씨와 놀아난다는 소문이 돌아 조사해보니 그가 음낭과 음경을 갖고 있어 고발당했다고 한다. 이 고발은 세조가 자신의 사위인 정현조를 보내 살피게 할 정도로 큰 스캔들로 발전한다. 그리고 사방지는 여성과 남성의 성적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 어지사지, 즉 간성임이 밝혀진다. 조정은 사방지를 시골로 쫓아내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한다. 권력자들이 관대해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기보다는 그를 기존의 인간 질서를 벗어난 존재, 즉 비-인간으로 봤기 때문에 큰 죄를 내리기 어려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말하자면 인간에게 해당하는 법을 비-인간에게 적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방지는 추방된 곳에서 다른 여성들과 성 스캔들을 일으키고 이씨와도 다시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세조는 이 소식을 듣고 사방지를 관노비로 내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사람은 인류(人類)가 아니다. 마땅히 모든 원예(遠裔)와 떨어지고 나라 안에서 함께 할 수가 없으니 외방 고을의 노비로 영구히 소속시키는 것이 옳다.” 이씨 부인의 아들 역시 관직을 얻지 못하게 하는 등 불이익을 받았지만 그를 인간 범주에서 제외하지는 않는다. 이씨 부인의 행위는 그저 인간의 비도덕성으로 규정된다. 영화 <사방지>는 사방지(이혜영)의 존재를 처음부터 ‘비-인간’의 범주에 놓는다. 영화가 묘사하는 ‘비-인간’은 한편으로는 위계적으로 인간보다 못한 짐승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사방지의 출산 장면이 재현되는 오프닝은 몰아치는 비바람으로 불길한 기운을 강조하고, 영화는 그의 존재를 뱀, 달팽이 같은 짐승들로 직유한다. 사방지의 등장에는 늘 뱀이나 달팽이의 클로즈업 쇼트가 돌발적인 충격으로 삽입된다. 하지만 사방지의 비인간적 면모는 동시에 그가 보통의 인간을 넘어선 비범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걸 증명한다. 인간과 동물, 여성과 남성의 양가적 특징을 다 가진 그는 양성 모두를 홀리는 성적 매력, 세심함과 대담함, 자수와 같은 정교한 기술과 놀라운 체력, 아름다운 외양과 지성 모두를 갖춘 이로 묘사된다. 이소사(방희)와 사방지의 만남은 운명적인 사랑으로 묘사된다. 이소사는 처음부터 사방지의 비범함을 알아챈다. 이소사와 사방지의 만남은 성적 은유로 가득 차 있다. 폭포에서 몸을 씻던 이소사 앞에 똬리를 튼 큰 뱀이 등장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훔쳐보던 사방지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채 나뭇가지로 그 뱀을 들어 무심하게 던져버린다. 이 장면은 낭만적인 구원자로서의 사방지를 강조하는 동시에 그의 남성 성기를 직접적으로 은유한다. 이소사는 뱀을 보고 놀라는데 이는 사방지의 남성성에 대한 매혹과 경탄을 장면화 한다. 이상할 정도로 뱀을 보고도 평정을 유지하는, 동물 근친적인 사방지의 태도는 그의 비인간성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영화는 이소사가 사방지를 사랑하게 된 것이 단지 그의 남성 성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재차 확인하려 한다. 이소사의 사랑을 통해 사방지의 비인간성은 특별함과 비범함이 된다. 즉 인간 이하의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평범함과 비루함, 세속적인 기준을 초과한 인간이다. 그는 ‘대물’로 성적으로 여성들을 만족시켜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여자를 보호하는 낭만적인 구원자이며, 천자문도 읽고 자수에도 뛰어난 다재다능한 능력을 가졌다. 이소사 뿐 아니라 다른 여자와 남자들도 색다른 그에게 매력을 느낀다. 이소사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절에서 밥이나 짓는 애인 줄 알았는데 이런 재주가 있다니. 날마다 너를 새롭게 보는구나.” 물론 이 영화는 에로영화로서도 충실한 기능을 하며 이 대사를 계기로 둘은 동침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계급 불평등과 그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키는 멜로드라마가 되면서 일반적인 에로영화를 넘어선다. 이소사와의 관계가 들통이 나고 양반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이소사는 사방지를 배신한다. 사랑하는 두 여자 사이의 차이는 젠더나 섹슈얼리티보다 계급에서 두드러진다. 무녀 모화는 자신의 남편이 양반가의 씨내리로 사용된 후 살해된 복수를 위해 사방지를 이용한다. 자신을 도구화하려는 모화의 계략과 납치를 비난하던 사방지는 그녀의 사연을 듣고 함께 복수에 참여한다. 흥미로운 점은 둘 모두 자신들에게 직접 가해를 한 개인이나 가문이 아니라 양반이라는 계급 자체에 복수를 한다는 것이다. 모화는 포주 노릇을 하며 양반가 마님들에게 돈을 받고 사방지와의 성적 관계를 제공한다. 그들의 재산을 갈취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성적 규범과 도덕성을 자신들의 우월한 특징으로 내세우는 양반의 계급적 위선을 폭로하기 위함이다. 물론 이 설정은 이소사에 순정을 갖고 있던 사방지가 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맺는 성애적인 씬을 만들기 위함이기도 하다. 하지만 곧 사방지는 자신의 몸을 이용해 복수를 하는 것이 자해 행위임을 깨닫게 된다. 성적 도구가 된 사방지는 그 자체로 비인간화 된다. 모화는 “넌 달팽이의 혼을 타고 나서 음지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그를 통제하려 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달팽이의 클로즈업 몽타주가 끼어든다. 사방지는 그렇게 여러 번에 걸쳐 비인간화된다. 하지만 그의 비인간성은 신체적 특징에 있다기보다는 젠더와 섹슈얼리티, 계급 등에 의해 그를 비인간화하고 그 행위들을 합리화하려는 ‘인간들’에 의해 구성된다. 사방지는 결국 “전 남자도 여자도 아니지만 짐승도 아니에요.”라고 절규한다. 그는 정체성의 혼란, 소속감에의 결여를 겪으며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사방지는 “부처님이 계시다면, 왜 저 같은 저주받은 생명을 만드셨습니까. 남자도 여자도 아닌 병신을 말입니다.”라고 울부짖는다. 이소사와의 재회가 이뤄지지만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끝이 난다. 엔딩씬에서 자신의 남성 성기를 잘라 버리는 사방지의 신체훼손은 특정 성별로의 결정이나 ‘정상성’에의 순응이라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저항이다. 둘 간의 사랑과 갈등은 단순히 가부장제 억압의 결과나 ‘에로 영화’의 성적 대상화된 장치로 설명되기 어렵다. 사방지를 여자로 알면서도 그를 사랑한 이소사의 섹슈얼리티, 사방지와 이소사의 주요 갈등인 계급과 신분, 간성에 대한 다채로운 반응 규범과 질서를 초과한다. 아마도 이러한 묘사가 가능한 것은 에로 영화라는 장르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영화는 이소사의 자살과 사방지의 성기 절단이라는 파격적 비극으로 끝나지만 현대적 관점에서도 단순하게 분류되지 않는 그/녀들의 정체성과 섹슈얼리티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남겨 놓는다.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라고 일컬어지는 프로레슬링은 독특한 형태의 공연 예술이며, 로마의 검투사 대결에 비견할만한 남성성의 신화를 과시하는 이벤트이다. 연행자와 청중이 합의한 사이비 스포츠이자 대중문화의 한 갈래로서 프로레슬링을 통해 전달되는 전언은 ‘남자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확실한 암시를 준다. 영화 < 반칙왕 >(2000)은 이 같은 프로레슬링의 함의 안에 IMF 경제위기가 야기한 여파를 깔아두고 직업인으로서 이중생활을 하며 평범한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소심한 은행원을 소재로 한 이야기이다. < 조용한 가족 >(1998)으로 한국 장르 영화의 지형에 변화를 몰고 온 김지운 감독이 얼마나 창의적인 이야기꾼이었는가를 입증하는 색다른 블랙코미디였다. 주인공 임대호(송강호)는 위기의 남자이다. 일상생활의 굴욕과 권태로부터의 안도와 더 큰 굴욕을 겪을 기회를 동시에 찾는 이 사내는 직장에서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의욕도 없다. 실적을 쌓아서 연명해야 하는 직업적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은행의 부지점장(송영창)은 저조한 실적을 빌미로 그를 괴롭히며, 여자들은 그를 무시하고, 아버지는 그가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엉뚱하고 유치한 이 남자의 성격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반칙왕>의 핵심 서사는 자존감을 가진 어른이 되기 위한 대호의 여정에 동행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현대적이고, 고도로 엄격하며, 궁극적으로 온유한 금융의 세계에 견주었을 때 프로레슬링은 저급하고 극단적인 천박함으로 가득 차 있다. 마스크를 쓰고 레슬링을 하는 대호가 추구하는 남성다움의 시뮬라크르는 내러티브 안에서 양극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으로 그는 은행 고객들의 비위를 맞추는 복종적인 감성의 소유자이나 마스크를 쓰고 링에 올랐을 때에는 약속과 규율을 위반하는 반칙 레슬러이다. 대민 봉사 및 사무 조력에 익숙한 일상의 대호는 자신의 옛 영웅인 울트라 타이거 마스크 가면을 쓰고 반칙왕이 됨으로써 내성적인 패배자에서 폭력적인 무법자로 변신한다. 새로운 페르소나의 가면을 쓴 그가 열광적인 대중들의 반응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그 자신도 알지 못했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다. 평소에는 소심하고 싸움을 기피하는 성격인 반면 반칙왕으로써 대호는 호전적인 싸움의 신이 된다. 헤드락을 걸고,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면서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는 대호의 이중생활은 한 장면에서 엘비스 프레슬리 코스프레를 하며 링 위에 선 모습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반칙왕>의 흥미로운 지점은 이 완벽한 시뮬라르크의 세계에서 프로레슬러들이 배우가 하는 일과 비슷한 과업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는 경쟁의 과정에 본래 정체성으로부터 빠져나와 자신의 이미지를 철저하게 가꾸고 가상의 시나리오에 따라 연기를 해야 한다. 이는 허구의 드라마 안에서 배우가 자신의 캐릭터를 발전시키는 과정에 비견할만하다. 마스크 퍼포먼스가 대호의 성격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묘사하는 김지운의 서술은 흥미롭다. 그의 나약하고 무기력하며 굴욕적인 일상과 비교했을 때 반칙 레슬러로의 변신은 자존심과 자존감을 향상시킨다. 따라서 개인은 현실 안에서의 열성 페르소나보다 영향력이 있는 수행적 페르소나를 선호하게 된다. 이러한 요소는 <반칙왕>의 코미디 코드에서 핵심이 된다. 가면이나 변장이 왜소한 자아를 방어하는 심리적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정립된 심리학의 가설이지만, 일상에서 자신감이 떨어지는 대호는 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마스크를 쓰고 코치의 딸 민영(장진영)과 데이트할 때조차도 마스크의 힘을 빌린다. 이야기의 밑그림을 제공하는 시나리오에서 은행 부지점장은 비열한 수단을 통해 관객에게 두려움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려는 악한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는 노골적으로 규칙을 위반하고, 경기 범위 밖에서 상대를 공격하고, 의도적인 부상을 입히고, 때로는 청중을 위협하기도 한다. 부지점장은 이 모든 악행, 내지는 그 이상의 악행을 저지르는데, 김지운은 이를 ‘공포의 헤드락’으로 묘사하며 악한의 시그니처 동작을 서사의 메타포로 만든다. 그의 독재적인 행동과 타인을 괴롭히는 신체적 억압은 비즈니스에 대한 냉혹한 통찰력. 자유로운 개인에 대한 잔인하고 굴욕적인 처벌을 특징으로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의 반칙은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 대호에 대한 부지점장의 억압적인 처우는 스토리에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는 <반칙왕>이 세기 전환기 한국의 경제위기를 바탕으로 한 우화적인 코미디임을 일깨워준다. 주지하다시피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한 업종 중 하나는 금융 업계이며, 이 환란의 시기 동안 은행 직원들은 실적과 과업에 과도하게 집착했을 뿐 아니라 오래되고 부패한 규칙들을 군말없이 따라야 했다. 현대화로 인해 국가는 새롭고 대안적인 문화적 이상을 환영할 수 있지만 은행과 같은 해묵은 기관은 여전히 검증된 계층적 비즈니스 문화 형태를 고수해 왔다. 이러한 코드 하에서 개인이 경영진의 억압에 저항하기 시작할 만큼 자아가 충분히 발달하면 조직에 역효과를 낳고 따라서 조직의 기능에 해를 끼치게 된다. 부지점장으로 특정된 악한의 성격화는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대호와 부지점장의 갈등 구도를 TV 레슬링 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웅 vs 악당의 구도로 치환한다. 대호는 적어도 승리하기 위해 세상의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적인 약자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반칙왕>의 파괴적 에너지는 반칙의 황제가 가장 위대한 싸움을 위해 링으로 향하는 종결부에서 절정에 오른다. 사각의 진혼곡’으로 이름 붙여진 영화의 마지막 챕터로 진입하기 전, 우리는 어어부밴드가 부르는 노래 ‘사각의 진혼곡’을 듣는다. “저기 왼쪽 구석에 주전자 바라보다, 일그러진 자신을 보네, 샌드백 흔들리고 흩날리는 먼지를, 혀에다 듬뿍 바르네 ... (중략)... 오버 액션 구경꾼 오버 액션 레슬러, 울트라 썬더 파워 붐 그의 이름은 레슬링 스타”로 이어지는 가사는 초라하고 내성적인 한 남자가 울트라 썬더 파워를 뿜어내는 레슬링 스타로 변신하는 과정을 예찬한다.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20분 동안 김지운은 스파게티 웨스턴에 등장할법한 상투적인 음악과 함께 대호와 유비호(김수로)의 긴장된 대결을 연출한다. 상황을 기술하는 쇼트의 기능에 관련하여 이 시퀀스는 다양한 옵션을 구사하는 연출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탈의실과 복도를 가로지르는 화려한 스윕 쇼트, 신체 연기를 통해 슬랩스틱의 터치를 부여한 배우 송강호의 경이적인 육체 액션은 프로레슬링의 운동성을 인상적으로 묘사하면서 대미를 장식한다. 대호는 주먹을 치켜들고 앞으로 돌진하여 오랜 시간 수련한 백 드롭 기술을 시전하면서 링 너머에 사뿐히 착지한다. 이 비장한 순간조차 슬랩스틱을 유지했다면 영화의 진성성이 의심받았을 수 있었지만 여기엔 참된 레슬링 기술이 전시되어 있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레슬링은 증폭된 신체 타격과 현란한 카메라 워크로 감각적 과부하를 제공하지만 여기서는 좀 더 절제되고 위엄 있는 안무를 선호한다. 이 신의 하이라이트는 유비호에 의해 대호가 쓴 가면이 찢기고 두 대결자가 링 바깥으로 굴러떨어져 계획하지 않은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이다. 합을 맞추지 않은 마구잡이 싸움이 끝난 뒤 대호의 얼굴 위로 다시 한번 어어부밴드의 ‘슬픈 대호’가 흐른다. 가는 선율이 고통을 가르고 우울의 가면이 벗겨진 대호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 링 위에서 사력을 다하는 대호의 페르소나는 무참스런 모양으로 벌거벗겨진다. 익살과 페이소스가 가득한 <반칙왕>은 진실된 삶 혹은 자신이 바라는 모습대로 살지 못하는 삶을 전제로 한 만큼 표층과 심층의 합일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원적 열망을 다룬다. 마스크를 쓰는 행위를 통한 자아의 완성에 관한 이야기에서 가면은 그 안에 진짜 얼굴을 감춘 은폐의 도구이지만 숨겨진 야성을 되찾는 데 도움을 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대호는 말끔한 정장을 입고 은행으로 출근하는 길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이제 막 만개한 이중생활에 만족하며,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그의 카타르시스적인 여정은 직업적 세계의 속박을 초월하려는 소시민의 헛된 시도와 규율의 지배로부터 탈주하는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 안에서 울트라 썬더 파워의 가능성을 찾아낸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6.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에로 팬들에게 1990년대 초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1988년 유진선 감독의 < 매춘 >을 정점으로 한국의 에로티시즘 영화는 확실히 하향곡선을 그렸고, 이후 < 애마부인 > < 산딸기 > < 변강쇠 > < 빨간 앵두 > < 뽕 > 등 굵직한 프랜차이즈들이 속편을 쏟아냈지만 태작이 대부분이었다. < 사방지 >(송경식. 1988)나 < 애란 >(이황림. 1989) 등 주목할 작품도 있었지만 대세를 막을 순 없었다. 다행히 하향세의 반대편에 에로 비디오가 급성장하고 있었지만 아직 < 젖소부인 바람났네 >(김인수. 1995) 같은 압도적 작품은 도착하지 않았다. 이 틈새에 등장한 이상한 에로 사극 한 편이 있었다. 1993년 여름에 개봉된 양병간 감독의 <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이하 <무쓰물>)다. 여기서 ‘양병간’이라는 이름이 왠지 익숙하다고 느끼셨다면… 맞다. 8년 전 < 무서운 집 >(2015)이라는 저예산 호러를 내놓은 바로 그 감독이다. <무서운 집>의 거친 페티시즘과 느닷없이 몰아치는 분위기의 정서적 근원이 궁금했던 관객이라면 <무쓰물>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현장의 양병간 감독과 배우 김문희. 양 감독은 1950년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영화계에 들어와 연출부 생활을 했고 1985년에 < 피조개 뭍에 오르다 >로 데뷔했지만 검열로 인해 만족스러운 작품이 되진 못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는 8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작품으로 파격적인 에로 사극이고, 다음 해 미스터리 멜로인 < 태양 속의 남자 >(1994)를 연출했다. 이후 20년 가까운 공백을 딛고 내놓은 저예산 호러 <무서운 집>(2015)은 컬트로 평가 받고 있다.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지만, <무쓰물>은 조선 시대 설화집 『고금소총』에 수록된 ‘귀봉변괴’(鬼棒變怪)가 원작이다. ‘귀신 들린 방망이의 이상야릇한 일’이라는 뜻으로, 도깨비가 던져 준 양물(陽物), 요즘으로 치면 ‘딜도’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何用物耶)라는 주문을 접하면 건장한 남자로 변해 눈 앞에 있는 여성과 성교를 한다는 판타지 스토리다. 감독은 이 매력적인 소재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두 편의 에로 정전을 끌어왔다. 바로 <변강쇠>(엄종선. 1986)와 <뽕>(이두용. 1986)이다. <무쓰물>은 전자의 ‘과장된 성적 표현’과 후자의 ‘마을을 휩쓰는 섹스 스캔들’이라는, 한국 사극 에로의 가장 중요한 장르 관습을 결합한다. 클리셰를 이용한 안전 장치인 셈인데, 흥미로운 건 이 영화가 클리셰를 따르는 방식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는 척하면서 위반하고 뒤집는 태도다. 김문희와 이미지의 캐스팅은 이 영화의 중요한 성공 요인이다. 1960년대 동갑이던 두 배우는 이 영화에서 노련하면서도 섹슈얼한 연기를 해낸다. 이미지는 아쉽게도 2017년 5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주인공은 한 과부(김문희)와 오 과부(이미지)다. 독수공방을 벗어날 수 있게 정인을 점지해 달라고 매일처럼 폭포수 밑에서 정화수 떠놓고 빌던 한 과부는 어느 날 우연히 집 마당에서 양물을 줍는다. 무심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는 혼잣말을 하자, 갑자기 상의를 탈의하고 한쪽 다리는 걷은 건장한 사내(이상일)가 나타나 한 과부에게 달려들고, 마을에 지진이 날 정도로 거대한 스케일의 방사가 치러진다. 나무 막대기에서 11단 변신을 통해 정인으로 변하는 남자 덕에 한 과부의 얼굴엔 화색이 돌고, 이를 수상하게 생각한 오 과부는 그 비밀을 알게 되고, 양물을 훔친 오 과부도 놀라운 경험을 한다. 이후 양물은 마을을 돌아다니게 되고, 결국 여인들과 함께 그 요술 방망이는 관아에 끌려가게 된다. 사또(홍성민)는 양물을 뜨거운 물에 끓이기도 하고 불 속에 넣기도 하지만, 끄떡없다. 결국 단두대를 통해 절단하려는 찰나, 변신이 이뤄지며 등장한 사내는 한 과부를 번쩍 들어 안고 늠름하게 걸어간다. 한 과부가 치성 드리는 장면. 사극에 흔히 등장하는 클리셰지만, 바위와 폭포수가 만들어내는 교묘한 미장센은 분출하는 성욕에 대한 메타포처럼 느껴진다. <무쓰물>은 한국의 극장용 에로 사극 끝물에 등장한 전복적 텍스트다. ‘판타지 에로 사극’이라 부를 수 있는 이 영화는 그 환상성을 토대로, 에로 사극에서 여성에 대한 양대 억압 기제였던 ‘은장도’와 ‘열녀문’ 이데올로기를 뒤집는다. 절개를 지키기 위해 은장도로 자결하겠다며 욕망을 억압하고, 가부장제에 순응한 대가인 열녀문을 하사 받기 위해 역시 욕망을 억압해야 했던 조선 시대 사극. 이 장르가 항상 그 욕망의 경계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해 긴장감을 만들어냈다면 <무쓰물>은 그 제약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억압 같은 게 있었어?”라고 반문하듯,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마을의 아낙네들은 열녀문을 하사 받은 양반댁 마님이든, 여염집의 과부댁이든, 어엿한 남편을 둔 유부녀든, 갑자기 마을에 찾아 든 양물(과 그것이 변한 사내)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며 집단적 욕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영화 초반부 어느 양반집 마님이 외간남자를 취한 후 관계가 끝나자 하인들을 시켜 먼 곳에 내다 버리는 설정이 등장한다. 조선 시대 하류층의 수절 과부가 노총각이나 홀아비를 납치하는 일(이른바 ‘보쌈’)이 있었다곤 하지만, <무쓰물>은 상류층 여성의 원 나잇 스탠드를 과감하게 영화 첫 장면에 배치하며, 이 영화는 유교적 세계관에서 상당 부분 이탈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양물이 변신한 사나이도 흥미롭다. 일반적인 에로 사극의 돌쇠가 산발 스타일의 순수남이라면, <무쓰물>의 사나이는 상투를 틀었고 항상 상의를 탈의한 상태로서 한쪽 바지는 허벅지까지 걷었다. 헝크(hunk, 덩치가 크고 섹시한 남자) 스타일에 결혼한 남자의 징표인 상투가 있는, 변형된 남창(gigolo) 이미지다. 원 나잇 스탠드와 지골로. <무쓰물>은 이러한 요소를 통해 1980년대 에로 사극과 결별한다. 양물은 11단 변신을 거치며 사나이로 변한다. 돌쇠가 아닌, 헝크이자 지골로 이미지를 지녔다. 이 영화에서 또 한 번 놀라게 되는 건 비역질에 대한 묘사다. 양물은 성적 대상의 성별을 가리지 않고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는 주문에 반응하고, 사나이는 눈 앞에 보이는 존재를 무조건 범하는 터미네이터 같은 존재인데 스님이나 사또도 피해가지 못한다. 특히 관아에서 사또와 이방이 비역질을 당하는 대목은 “찢어졌구만!”이라는 고통 섞인 대사와 함께 한국 사극에선 접하기 힘든 설정이다. 종교와 정치에 대한 반역적 메타포라고 확대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성적 표현의 수위 만으로도 <무쓰물>은 선을 넘는다. 여기서 <무쓰물>은 애너크로니즘(anachronism)을 통해 확실하게 탈주한다. 번역하면 ‘시대 착오’ 정도가 될 애너크로니즘은 조선 시대 배경 영화에 고려 시대 의상이 등장하는 정도의 고증 오류 수준이 아닌, 좀 더 파격적인 방식으로 <무쓰물>에 확실한 인장을 남긴다. 마을 전체가 양물의 광풍에 휩싸이자, 음란함을 다스리는 음무제(淫撫祭)가 치러진다. 이 장면에서 일반적 사극이라면 무당의 굿판이 벌어지겠지만, <무쓰물>은 놀랍게도 동네 여인네들이 모여 캉캉 춤 추는 장면을 보여준다. 음무제의 캉캉 춤과 해피 엔딩. 이 영화는 사극 장르를 경쾌하게 해체한다. 감히 말하건대 한국영화에서 이런 파격은 없었고, 이외에도 강인구의 전자 음악(그는 <무서운 집>에서도 음악을 맡았음)이나 길로틴의 등장 등은 <무쓰물>의 장르 해체적 성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사나이가 한 과부를 안고 어디론가 가는 대목은 한국 사극에선 좀처럼 만나기 힘든 해피 엔딩이자 감동의 피날레다. 부디 두 사람,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