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들의 꿈
- 감독
- 송일곤
- 제작년도
- 1996
- 출연
- 안나 스타샥, 파웰 수스키
휴머니즘의 길을 찾아가는 순례의 여정 < 기쁜 우리 젊은 날 >(1987)에서 영민은 짝사랑하던 혜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 인내하며 기다림을 견뎌내야 했다. 그리고 같은 해 연말, 크리스마스이브에 개봉한 < 안녕하세요 하나님 >(1987)에서 (마찬가지로 배우 안성기가 연기한) 청년 병태는 경주의 첨성대를 보기 위한 여행길에 나선다. 전자가 오랜 시간의 흐름을 경유한다면, 후자의 서사는 장소와 공간의 이동을 통해 전개된다. 얼핏 보면 상반된 면을 보이는 이 두 영화는 사실 배창호 (裵昶浩: 1953~)라는 감독의 세계관 안에 하나로 수렴되는 동전의 양면들이다. 사뭇 달라 보이긴 하지만 이 두 영화는 시간을 통해서든, 아니면 공간을 통해서든 일종의 긴 탐색의 여정을 다루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물들은 ‘사랑’이라는 가치에 눈뜨게 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소풍 하루 전날 뇌성마비에 걸려 몸져누운 병태는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 아버지 몰래 집을 나선다. 그에게 있어 경주행은 유년기에 멈춰버린 인생의 시간을 되찾기 위한 꿈의 여정이다. 그러나 장애의 몸에 홀로 여행을 떠나는 건 쉽지 않다. 단순히 서울역을 찾는데도 버스를 잘못 타고 길을 헤매는 그에게 조력자 역할로 시인 한민우, 무임승차한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춘자가 동행으로 붙는다. 인물의 설정은 다르지만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는 감독의 성공작 < 고래사냥 >(1984)의 또 다른 변주에 가깝다. 실연의 고통을 달래고자 무작정 길을 나서 방랑하던 병태는 구체적인 목적지를 얻으며, 거지 왕초 민우는 시인으로 바뀌었지만 병태를 돕는다는 점에서는 같으며, 사창굴에 빠져들어 삶의 험난함을 겪었던 춘자는 홀로 만삭의 몸을 끌고 다니는 미혼모로 바뀌어 있다. 여행은 배창호 감독의 필모그래피 전반을 관통하는 중요한 라이트모티프(Leitmotiv)이다. 배창호 영화에서의 인물들은 여행(또는 방랑)을 나서서 고난과 역경을 거친 뒤 성장 내지 각성을 얻고 돌아오는 신화-동화의 서사적 구조 속에서 작동한다. 여행은 <고래사냥>처럼 성장과 성숙의 과정이거나, < 황진이 >(1986), (일견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연상케 하는) <꿈>(1990)처럼 종교적 깨달음의 추구이기도 하며, 때로는 < 적도의 꽃 >(1983)의 미스터 M(한민우와 더불어 이명세 의 < M >(2007)에서 재활용되는 이름)이 선영의 죽음을 겪고, 한국과 멕시코, 미국으로 계속 이동하는 < 깊고 푸른 밤 >(1984)에서 백호민이 끝내 자신이 추구하던 성공이 허망한 것이었음을 깨닫는 바와 같이 냉혹한 현실 인식 내지 자기 성찰에 직면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종국에 맞는 상황이 다를 뿐이지, 배창호가 만든 일련의 영화들은 가치관에 대한 탐색의 과정을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 <안녕하세요 하나님>은 배창호식 로드 무비 중 가장 낙관적이고 따스한 정감을 지닌 버전이며, 지금에 와서도 눈여겨볼 만 한 보편통시적인 지점을 관통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주인공들은 사회의 정상성 속에 편입되지 못한 채 주변부를 맴도는 방외인(房外人), 시대의 소수자(minor)들이다. 병태는 뇌성마비 장애를 앓고 있고, 춘자는 처음엔 시댁으로 간다고 했지만, 실은 남자에게 속아 이용당한 뒤 홀몸 아닌 몸으로 버려진 미혼모(그녀가 정표로 간직하던 보석은 전당포에서 보통의 유리 조각으로 판명된다.)였으며, 보헤미안 시인 민우는 원래는 교사 출신으로 합창 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 전복사고로 학생들의 죽음을 겪고는 자취를 감춘 불행한 인물이었음이 드러난다. 상흔(傷痕)을 안고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연대. 영화는 이러한 인물들의 사연을 여정이 진행되는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서서히 드러내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극의 흥미를 잃지 않게 하고, 각 인물의 자아 찾기, 인간성 회복과 깨달음의 여정에 동참하도록 유도한다. 여행 중 일행으로서 가족적 연대의식을 형성한 병태 일행은 각자의 소중한 것을 조금씩 희생하면서 서로를 배려하고자 한다. 춘자는 만삭의 몸임에도 자신이 굶는 대신 병태와 민우에게 자장면을 먹이고, 병태는 경주에 가서 그림을 그릴 물감을 전당포에 맡겨 일행을 위한 돈을 마련한다. 이러한 자기희생과 배려의 행위는 일행을 배불리 먹이고자 호텔 레스토랑에서 속임수를 쓰는 민우의 행동에서 정점으로 치닫는다. 무임승차로 역에 붙잡혔던 병태 일행이 서로를 부축하고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의 롱테이크, 시골 학교 교실에서 민우의 풍금 연주에 맞춰 정상적인 몸으로 춘자와 춤을 추는 걸 몽상하는 병태의 환상은 불완전한 소수자들이 서로를 돕고 보듬으며 난관을 헤쳐나가는 영화의 인간미 넘치는 감성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다. 민우의 풍금 연주에 맞춰 정상적인 몸으로 춤을 추는 병태와 춘자 이와 같은 인정(人情)의 베풂은 주인공 일행 사이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병태 일행이 여행 중에 만나고 스쳐 지나는 주변 인물들은 때때로 역무원처럼 박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버스를 잘못한 병태를 챙겨주는 우이동 버스 종점의 기사들과 샌드위치 노점 아저씨, 숙직 중 병태 일행을 맞아 잠자리를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야식으로 감자를 대접해준 학교 선생님, 일행을 받아들이고 대접해준 환갑 잔칫집(<고래사냥>에처럼 스틸컷으로 전환되는 연출은 훗날 이명세의 <M> 에서도 그 영향을 찾을 수 있다.), 병태의 물감을 받고서 선선히 돈을 내준 전당포 주인, 비 내리는 날의 이삿짐 트럭, 병태와 춘자를 돕고자 일어선 시외버스 안의 승객들에 이르기까지, 이방인을 환대할 줄 알며, 그들의 여정을 도와주고 격려해주는 선량함을 품고 등장한다. 소수자에 가해지는 정상적 사회 일반의 차별과 폭력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인 통속적 피해자 서사와는 사뭇 궤적을 달리하는, 당대의 관객에게 대안적 사회상을 영화적 유토피아로써 제시하고자 하는 배창호식 휴머니즘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다. 여행 중 길과 사람의 관계성에 주목하는 배창호식 로드무비의 휴머니즘은 경주를 지척에 두고 춘자가 출산하는 헛간 시퀀스에서 종교적 차원으로까지 비약한다. 이 지점에서 경주로 향하던 병태 일행의 여행은 예수 탄생 직전 요셉과 마리아가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기독교 신화의 순례와 치환된다. 예수를 낳은 성모 마리아처럼 헛간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춘자의 주위에서 병태와 아이들은 (마치 페데리코 펠리니의 < 카비리아의 밤 >(1957) 엔딩에서 줄리에타 마시나를 둘러싼 광대들처럼) 노래하고 행진한다. 화사한 촛불 조명과 필터 처리로 연출된 병태의 환상과 더불어 이 장면은 유영길 촬영감독의 섬세한 조명 처리를 통해 낭만적이고 상징적인 순간으로 그려진다. 실내의 노란 빛은 차츰 문과 나무 벽 틈 사이를 관통해 안으로 비치는 신비로운 푸르스름한 빛으로 대체되며 일순간 신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이른다. 현실적인 상황으로는 차별받기 십상인 미혼모의 아기는 구세주의 탄생과 동일시되며 축복받는 것이다. 이 아기는 병태 일행과 그들을 도와준 사람들 모두의 인정이 한땀 한땀 모여 빚어낸 사회적 사랑의 결실이다. 아이가 구원을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아이가 바로 구원의 산물이자 징표이며, 그것으로 세상은 이미 구원받은 것이다. 신화적 분위기의 춘자의 출산 장면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여행은 서울과 경주라는 출발점과 종착점을 갖는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여행은 실상 실패한 여행이다. 목적지를 향한 여행은 진행되면서 여행자의 신체와 의식, 삶을 변화시키며, 종국에는 목적지가 아닌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토록 선망하던 첨성대에 도착했음에도 (배창호 영화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인 벤치에 앉은 채) 침울해 보이는 병태의 표정은 이러한 여행의 역설을 잘 보여준다. 정작 중요했던 건 첨성대가 아니라 그에 도달하기까지 겪었던 다양한 사건들, 다양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 춘자와 병태는 일행을 떠났던 민우와 다시금 경주에서 재회한다. 지저분한 머리와 수염을 깔끔히 정리하고 다시금 교사로서 풍금을 연주하는 민우의 모습은 “경주에는 왜? 거긴 폐허와 무덤뿐인데”하던 극 초반의 모습과 대비를 이루며 그가 여행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본연의 자아와 인간미를 회복했음을 보여준다. 이때 유아기적 순수성을 은유하던 병태의 노란색 모자는 견학을 온 유치원생들 모자의 노란색과 포개지며 봄날의 개나리꽃과 같은 화사한 분위기를 빚어낸다. 춘자, 병태 그리고 유치원생들 동시대 한국영화계는 열린 영화’의 개념을 주창하며 < 성공시대 >(1988)로 풍자적 리얼리즘의 전위에 섰던 장선우 , < 칠수와 만수 >(1988)로 사회적 리얼리즘을 제시한 박광수 의 등장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배창호 감독은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각에 입각해 특유의 낭만주의로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정립했다. 때론 이러한 감독의 성향은 진보적 평자들의 시선에서는 몽상적이며 현실의 정치적 문제를 다루지 않고 안전한 지점에 안착한다고 비판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또한 오늘날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정서는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어떤 점에서는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순수하며 인정이 넘친다. (또한 별개의 논의를 요구하는 바이지만, 여성 캐릭터를 남성에 의한 구원을 해야 하는 대상적 존재로서 그리는, 배창호 필모그래피 전반에 걸쳐 일관되는 감독의 여성관은 현대의 관점에서는 다소 걸리는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는 돌이켜보면 영화를 바라보는 지금의 시대상이 각박해졌다는 방증인 동시에, 한국영화의 사회적 상상력이 더 이상 유토피아적 사회상, 공동체와의 유기체적 관계성을 그려낼 수 없을 만큼 빈곤해지고 황폐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배창호 영화의 낭만주의는 암울한 시대상을 포장하고 뒤덮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로부터 상처 입은 당대 사람들의 내면적 치유를 갈망하고, 더 나아가 인간적 삶이 가능한 대안의 사회, 대안적 공동체의 잠재적 형태를 제시하고자 했다고 보아야 감독의 본의에 더욱 근접한 해석이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안녕하세요 하나님>은 장애인(병태), 피해자로 내몰린 여성(춘자), 사회적 트라우마를 겪은 지식인(민우)을 주인공으로 함과 아울러, 언제든지 소수자들을 환대할 준비가 되어있는 유쾌한 동료들, ‘도래할 민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30년 넘는 시간의 공백을 뛰어넘어 오늘날의 관객에게 다시 발견되고 재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세월호 사건의 증후를 겪는 한편, 페미니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봉인 당한 채 피해자 서사와 디스토피아에 주박된 오늘날의 한국영화계에 있어,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낭만주의, 유토피아적 비전은 차츰 잊혀가고 죽어가던 어떤 가능성을 일깨울 하나의 계기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2018년 9~10월 VOD 기획전 <길 위에서 답을 찾다: 로드무비> 상영작 -> 바로보기
“내, 실은 눈멀기로 말하면 타고난 놈인데, 그 얘기 한번 들어들 보실라우? 어릴 적 광대 패를 첨보고는 그 장단에 눈이 멀고, 광대 짓 할 때는 어느 광대 놈과 짝 맞춰 노는 게 어찌나 신나던지 그 신명에 눈이 멀고, 한양에 와서는 저잣거리 구경꾼들이 던져주는 엽전에 눈이 멀고, 얼떨결에 궁에 와서는... 그렇게 눈이 멀어서... 볼 걸 못보고, 어느 잡놈이 그놈 마음을 훔쳐 가는 걸 못 보고. 그 마음이 멀어져 가는 걸 못 보고. 이렇게 눈이 멀고 나니 훤하게 보이는데 두 눈을 부릅뜨고도 그걸 못보고... 그건 그렇고! 이렇게 눈이 멀어 아래를 못 보니 그저 허공이네, 그려. 이 맛을 알았으면 진작에 맹인이 될 걸.” 한탄인지 푸념인지 아님 깨우침인지. 장생이 마지막으로 내뱉는 처연하면서도 담담한 이 대사는 영화의 모든 걸 아우르며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절대 권력자인 왕도 마음껏 누리지 못한 자유와 신명으로 세상을 풍자하고 조소하던 광대들의 비극적인 운명과 사랑을 담아낸 이 영화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한민국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2006년 초 < 왕의 남자 >가 < 실미도 >와 < 태극기 휘날리며 >를 넘어 1,230만명이란 초유의 관객동원 신기록을 세웠을 때 모두가 놀랐다. 연출자인 이준익 은 < 황산벌 >이 성공했지만 아직 감독보단 제작자 및 영화수입으로 더 유명했고, 주연배우들인 감우성 , 정진영 , 강성연 은 스타급 흥행배우라고 말하기엔 다소 무게가 떨어졌으며, 이준기 는 완전 신예에 불과했다. 원작인 연극 <이 爾> 역시 2000년 초연 당시 각종 상을 휩쓸며 인기를 누린 작품이었지만, 엄연히 연극의 흥행과 영화의 흥행은 다르기에 이 정도 파괴력을 보일 것이라 예측한 이는 드물었다. 아니 사실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당시 천만 영화는 강우석 과 강제규 란 검증된 흥행사가 만든 딱 두 편에 지나지 않았으니. 연산군의 폭정이 극에 달한 무오사화 즈음을 배경으로 전통적인 소리가 가득한 마당극에, 소학지희가 펼쳐지고, 동성애를 암시하는 장면까지 어느 것 하나 흥행할 요소라고 감히 말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다르게 보면 오히려 그런 부분들이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와 ‘왕남폐인’들을 양산하며 흥행광풍을 불러왔는지 모른다. 가히 <왕의 남자> 신드롬이었다. 7개월 뒤 < 괴물 >에 의해 다시 순위는 바뀌었지만 <왕의 남자>는 < 7번방의 선물 >이 나오기 전까지 가장 적은 제작대비 최고 흥행수익을 올린 영화로 남아 있다. 음악을 맡은 이병우 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괴물>과 < 해운대 >까지 연이어 천만 영화를 터트리며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음악가 중 한명이 되었다. 포크듀오 ‘어떤 날’의 멤버이자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그는 1994년 오스트리아 빈 국립 음악대학을 수석 졸업한 이후 1996년 < 그들만의 세상 >을 필두로 영화음악에 뛰어들었고, 미국 피바디 음악원을 졸업한 이후 2001년 애니메이션 < 마리이야기 >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영화계 행보를 이어나갔다. 2003년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와 < 장화, 홍련 >의 잇단 성공으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호러와 코미디, 가족물과 음악영화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특유의 서정적인 선율과 독보적인 멜로디 감각을 선보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왕의 남자>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사극으로, <스캔들>이 기존의 전통적인 국악 스코어에서 벗어나 바로크 시대의 챔버 사운드를 들고 와 사극에 새로운 시각과 독특하고 세련된 양식미를 부여했다면, <왕의 남자>는 그 챔버 스트링 앙상블을 유지하되 대금이란 전통악기를 전면에 내세워 보다 한국적인 색채와 스타일의 절충을 꾀하고 있다. 대금은 부드럽고 아름답지만 어두운 음색의 저취와 평취, 그리고 선 굵고 장쾌한 음색의 역취에 이르는 세 가지 음역대에서 변화무쌍하면서도 맑고 여무진 소리를 들려주는 악기다. 따라 장생과 공길, 연산이라는 복잡다단한 세 캐릭터의 슬픈 사연을 한데 엮어낸 선율을 연주하기에 더없이 탁월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이병우와 그가 음악을 한 영화들 영화에서 가장 처음 마주치는 오프닝 크레딧의 ‘프롤로그-먼길’은 바로 그 대금의 맑지만 투박한 음색을 확인할 수 있는 큐로, 토속적이면서도 처연한 감성을 담아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암시하고 있다. 메인 테마인 ‘반 허공’이 변주된 곡인데 이는 이후 ‘돌아올 수 없는’, ‘세상 속으로’, ‘행복한 광대들’, ‘꿈꾸는 광대들’과 ‘에필로그?돌아오는 길’ 등으로 영화 내내 이어지며 길목이라 할 수 있는 부분에 위치해 극을 관망하고 정서적인 통일감을 부여한다. 특히나 반복적으로 무겁게 짓누르는 저음의 첼로는 광대들의 목숨을 건 풍자와 연산의 피비린내 나는 황음무도, 처선의 절개와 녹수의 질투를 한데 모아놓은 - 불안하고 비통한 심리의 선율로, 하나같이 비극적인 결말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잔혹한 운명을 상징한다. 이 위에 얹은 아름답고 서글픈 멜로디만이 그들을 위로하고 달래준다. 여러 테마를 사용하기보다 간단하면서도 다양한 변주를 통해 심리적인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그의 스코어들은 명료한 상징과 장치적인 효과를 갖는다. 주된 선율을 생략한 채 조심스런 감정을 드러내는 ‘연정’이나 주제부를 단순화시켜 연산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낸 ‘그림자놀이-봉황은 울지 않는다’, ‘자궁 속으로’ 같은 큐들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밖에 ‘인형놀이’나 ‘반정의 북소리’처럼 간단한 타악 리듬으로만 그 상황의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불길한 조짐의 ‘파적심의 울음소리’나 ‘장생의 외침’과 같이 질주하는 스트링과 파열음의 대금, 강렬한 퍼쿠션을 조성해 서스펜스를 극대화시키기도 한다. 신디 프로그래밍이 가미된 ‘광대 사냥’의 경우는 마치 제리 골드스미스나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를 듣는 듯 정석적이고 장르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연극과 달리 영화는 장생의 시점으로 극을 이끄는데, 이를 위해 이병우는 특별히 극 후반 장생의 테마를 배치했다. 처연하고 구슬픈 대금의 ‘눈먼 장생’이 바로 그 곡이다. 절제되고 담백한 메인 테마 ‘반 허공’과 달리 이 곡은 절절하고 거칠게 한(恨)을 토로하는 아름답고 강렬한 선율을 가졌다. 이 선율이 흐르며 장생은 지난 과거를 반추하며 지금의 심적/육체적 고통을 승화시키고, 이 선율이 흐르며 공길은 연산에게 반 허공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연을 나타내는) 줄 위는 땅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반 허공이라고. 결과적으로 ‘눈먼 장생’과 ‘반 허공’은 대비되면서도 서로 이어진 이란성 쌍둥이와 같은 테마인 셈이다. 이 곡은 이병우가 직접 장생의 심정을 담아 작사한 주제곡 ‘가려진’으로 장재형이 불러 사운드트랙의 맨 첫 트랙에 실렸다. 시종일관 광대놀음의 풍물패 소리와 궁중음악이 깔리지만 그럼에도 이병우의 1분이 채 안 되는 짧은 큐들은 적재적소 빈 여백에 효과적으로 자리 잡아 내러티브와 캐릭터의 감정선에 밀접하게 연계돼 유기적인 호흡을 들려준다. 길이나 분량과는 다른, 밀도의 위력이다. 그간 이병우 영화음악에서 두드러진 건(물론 뛰어난 멜로디와 좋은 편곡의 힘도 무시 못 하지만), 감정과 경이의 순간을 포착한 놀라운 공명감이었다. 그 날카로운 울림이 관객들을 울리고 웃기고 가슴을 아리게 만들며 짙은 여운을 남겼다. 기타 디자이너로 직함을 늘리며 잠깐 동안 영화계에서 멀어진 이병우는 2013년 가을 세 번째 사극 < 관상 >으로 다시 영화음악가에 복귀한다. 이전의 두 사극과는 또 다른 한국적 울림과 아름다운 멜로디로 무장해 관객들의 감성적인 약점을 치밀하게 파고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왕의 남자> 사운드트랙으로 미리 예습을 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사운드트랙은 영상자료원(K-0038)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참고적으로 이선희의 ‘인연’은 <왕의 남자>의 주제곡이 아니다. ‘인연’의 뮤직비디오에 <왕의 남자> 클립이 쓰였을 뿐이다. 따라 사운드트랙에서 그 곡을 찾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Track List 1. 가려진 - 장재형 2. 먼 길 3. 각시탈 4. 돌아올 수 없는 5. 너 거기 있니? 나 여기 있어 6. 세상 속으로 7. 위험한 제의 하나 8. 행복한 광대들 9. 내가 왕이 맞느냐? 10. 위험한 제의 둘 11. 꿈꾸는 광대들 12. 수청 13. 인형 놀이 14. 연정 15. 그림자 놀이 -봉황은 울지 않는다 16. 피적삼의 울음소리 17. 광대사냥 18. 광대의 죽음 19. 어서 쏴 20. 질투 21. 장생의 분노 22. 내가 썼소 23. 애원 24. 장생의 외침 25. 눈먼 장생 26. 자궁 속으로 27. 반정의 북소리 28. 반 허공 29. 돌아오는 길 30. 반 허공 Guitar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