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이져
- 감독
- 클라이브 바커
- 제작년도
- 1987
- 출연
- 앤드류 로빈슨, 클레어 시긴스, 애쉴리 로렌스, 신 챔프먼, 올리버 스미스, 로버트 하인즈, 안토니 알렌, 레온 다비스, 마이클 캐시디, 프랭크 베이커, 케네스 넬슨
<버닝> 중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해미( 전종서 )는 조금 뜻밖의 말을 한다. 팬터마임으로 눈앞에 없는 귤을 먹던 그는 종수( 유아인 )에게 마임의 원리를 설명한다.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돼.” 이 말은 < 버닝 >(2018)의 초반부에 불쑥 건네지고 나서 영화 전체를 실종과 부재의 미스터리로 물들인다. 해미는 갑작스럽게 사라지지만 종수는 해미가 여기에 없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못한다. 종수에게 남겨지는 이 말이 뜻밖인 이유는 이창동 영화 속 인물들이 갈구하던 질문과 정반대에 있기 때문이다. < 밀양 >(2007)에서의 신애( 전도연 )의 비명. “신이 어디에 있어요?” < 시 >(2010)에서의 미자( 윤정희 )의 외침. “시상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원리를 찾아 헤매던 질문들과 다르게, 해미는 세계를 관통하는 자명한 원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해미의 방에는 있어야 할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껍질 벗겨진 귤이, 함께 사는 고양이가, 마침내 해미 자신마저도 그곳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도 있다. 하루에 한 번 남산타워 전망대 유리에 햇빛이 반사돼서 방 안으로 들어온다. 그곳엔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지만 딱 한 번의 햇빛이 종수의 눈에 보인다. 무언가는 보이지 않고 기억에서 지워진다. 다른 어떤 것은 잊히지 않고 남겨진다. <버닝>이라는 이 거대한 야심의 영화 속 해미의 작은 방이 한국영화 비평을 말하기 위한 실마리일 수 있다면, 비평은 언제나 특정한 좌표 위에 놓인 공간에 거주하는 일이며 그 안에서 잔존하는 것과 지워지는 것들을 오가며 수행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박찬욱 은 정성일 , 허문영 평론가와 나눈 긴 대담에서 < 박쥐 >(박찬욱, 2009)와 <밀양>과 < 마더 >(봉준호, 2009)의 주인공들이 모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는 사건을 겪은 이후로 망각을 선택한다는 공통점을 지적하는 두 평론가의 말에 “이래서 평론가들이 필요한 거구나!”라고 웃으며 반긴다(언급된 영화의 세 연출자는 10여 년의 시간이 지나 <버닝>과 < 기생충 >과 < 헤어질 결심 >으로 다시 한번 망각과 기억을 둘러싼 공통의 우화를 작성한다). 이 일화엔 영화와 비평, 망각과 기억을 둘러싼 근접조우가 발생한다. 하지만 박찬욱의 농담 섞인 감탄과는 반대로 비평은 망각된 것들을 기억하고 흩어진 기억을 서로 연결하는 일이 아니라 망각 자체에 속하는 일이다. 무언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행위다. 최근 영화잡지 《씨네21》은 잡지의 30주년을 기념해 1995년에서 2024년까지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를 대상으로 한국영화/해외영화 10편의 베스트 목록을 발표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허한 목록의 재생산이 아니라 눈앞에 존재하는 영화문화에 과도하게 채워져 있는 목록과 관점을 망각하는 것이다. 영화는 조우가 아니라 사라짐의 체험이고 따라서 비평은 그 사라짐에 관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버닝>은 한국영화의 이미지를, 그리고 한국영화를 둘러싼 비평의 관습을 정조준한다. 태양이라는 선명한 광원 아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팬터마임으로. 태양을 바라본다는 행위는 21세기 한국영화가 설정한 특별한 의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란 태양에 반응하는 신체의 부작용을 포착해 온 영화적 관찰기의 다른 말이다. 이는 <밀양>과 <버닝>에서 우리가 머무는 세계 안으로 간신히 전해지는 미세한 빛을 프레임에 담아낸 이창동만의 화두는 아니다. 도망칠 수 없는 두 뱀파이어를 태양에 불태워버리는 <박쥐>, 햇빛을 바라보며 시큰거리는 눈에 안약을 넣는 남자의 비극(<헤어질 결심>)과 태양의 과도한 빛을 피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남자의 희극(< 어쩔수가없다 >)을 오가며 끊임없이 태양에 반응하는 신체를 불러들이는 박찬욱의 영화들. 봉준호 의 <마더>는 오후의 도로를 통과하는 관광버스 사이로 들어오는 태양광선을 포착해 그 안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어두운 실루엣으로 덮어버린다. 투명한 유리 사이로 쏟아지는 빛, 어찌할 수 없는 열기. <기생충>은 간신히 빛이 들어오는 반지하의 어둠에서 통유리로 태양을 반사하는 거대한 저택으로 이동한 뒤 더 아래에 있는 어둠으로 내려간다. 한국영화의 불길을 통과한 뒤 경력을 중단한 장선우 가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짧은 단편은 이장호의 영화 제목을 빌린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2019>였다. 그는 한국영화 100년을 기쁨으로 회고하는 대신 검열과 금기라는 역사의 태양을 공격하고 야유한다. 태양 아래 있는 21세기 한국영화는 언제나 한 가지 특별한 장소와 결부되어왔다. 번쩍이는 태양의 가시광선을 피해 시선을 숨길 수 있는 어둠 속의 터널이다. 터널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빛을 피해 숨을 수 있지만 그곳을 통과해 나오는 순간 눈에 날카롭게 베인 듯한 상처를 입는다. 터널 속에서 영화는 눈빛을 숨기고 시선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우리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좌표를 망각한다. 2000년대를 여는 첫 번째 한국영화로 이창동의 < 박하사탕 >(1999)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 영화가 새로운 세기 초입에 새겨둔 터널의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한 편의 영화에서 공간과 시간을 이행하는 데는 어둠을 통과해 바깥으로 나가는 과정이 불가피하다. <박하사탕>의 기차는 무심한 기계장치처럼 역방향으로 터널을 통과해 나간다. 거기엔 숨겨진 빛이 있고 우리는 그 빛을 잊어버린다. 태양이 가려졌으므로, 영화는 세계를 정확히 보는 것에 실패한다. <박하사탕>,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중 (사진: ㈜이스트필름, ㈜싸이더스, 디씨어터) 21세기 한국영화 전성기의 정점으로 회고되는 2003년에 ‘한국영화’의 외형과 속성을 상징적으로 각인한 두 편의 영화에서 솟아난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은 너무 깊은 어둠으로 인해 보는 것에 실패하는 터널 이미지다. 봉준호의 < 살인의 추억 >(2003)에선 영화의 마지막에 빈 농수로를 보여준다. 전직 형사 박두만( 송강호 )은 과거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졌던 시골을 찾아 농수로 안을 들여다본다. 그의 눈앞에 있는 텅 빈 공간은 마치 터널처럼 가을의 태양을 가로막는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그가 고개를 숙여 농수로 깊숙한 곳에 놓인 여성의 시체를 쳐다볼 때, 어두운 수로가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근처에 떨어진 유리 조각을 주워 빛을 반사해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저편에 있던 어둠은 우리가 있던 곳을 잠식하고 만다. 그리하여 영화의 결말은 살인 용의자가 어두운 터널 속으로 사라지고, 더 이상 터널을 들여다볼 수 없는, 본다는 것의 실패다. 박두만이 다시 용수로를 찾았을 때, 터널은 어둠으로 닫힌 모든 것이 투명하게 열려 있다. 우리는 그 명확하게 빛나는 어둠 앞에서 무엇도 제대로 볼 수 없다. < 올드보이 >(2003)에서 오늘만 대충 살아간다고 다짐하던 오대수( 최민식 )가 감금된 밀실의 복도는 기나긴 터널처럼 끝없이 이어져 있다. 그곳의 작은 방 한 칸에 갇혀 있던 이 남자가 15년 만에 석방될 때도 그는 조그마한 상자 속에 웅크리고 있다. 실은 풀려나는 시점조차 정확히 통제된 것이므로 제대로 풀려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영원히 시간의 터널 속을 맴돌고 있다. 밀실에 되돌아온 오대수는 장도리를 들고 수많은 적을 넘어서 터널을 통과하지만, 그 어떤 것도 통과한 적이 없다. 이 영화에서 오대수는 시종일관 태양의 빛과 열기를 피하는 검은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있다. 그는 영원히 진실을 마주할 수 없다. 마주하더라도 회피와 망각을 선택하려 든다. 다시 몇 년이 지나고, 한국영화가 직면하고 응답했던 이 치명적인 곤경은 이창동의 <시>(2010)에서 시인의 말을 빌려 울려 퍼진다. “틀렸어요.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사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우리가 지금 한국영화비평에 대해 말할 것들이 남았다면, 여기에 제도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다는 비판이 아니다. 무언가 있어야 하는데 존재하지 않는다는 촉구와 반성 역시 아니다. 그 반대다. 해미의 조언처럼 우리는 여기에 무언가 없다는 것을 잊어버려야 한다. 한국영화가 산업적으로 위기에 처했다는 인식을 잊어버리고, 특별한 위치를 점유하는 영화감독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진단을 잊어야 하며, 새로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분류하는 영화제와 개봉 체계의 시각이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인식을 잊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비평의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전개해야 한다. 이창동과 박찬욱과 봉준호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이 남긴 걸작들로 비루한 목록을 채우는 대신, 변함없는 명사로 자리 잡은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그들이 직면해야 했던 곤경의 장소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그들의 곤경을 들여다보는 질문을 통과하지 않고 그저 걸작으로 남아 있는 영화를 숭배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또 다른 모욕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팬데믹이 초래한 대규모 봉쇄의 기억을 뒤로하고 2020년대의 절반을 지나친 지금 시점에 우리는 한국영화의 ‘장소’가 어디에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터널을 지나친 한국영화의 흔적 뒤편에서 우리는 또 어떤 장소를 발명할 수 있을까? 한국영화 비평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한국영화의 질적 수준 하락에 있지도 한국 작가주의의 위기라는 문제에 있지도 한국영화 산업의 붕괴에 있지도 않다. 손쉽게 영화산업 일부분에 기생해버린 비평이 한국영화가 곤경을 투사하고 탈출구를 모색할 수 있는 특정한 장소를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한밤에 태양을 관측하는 행위에 빗댄 피에르 파울로 파솔리니는 두 가지 종류의 세대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강력한 아버지의 규율과 권력에 맞서 저항하는 세대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도 지시하지 않는 무기력한 아버지를 마주해야 하는 세대다. 90년대 후반에 촉발되어 21세기의 새로운 감수성을 공유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는 단절된 아버지의 강력한 규율에 저항함으로써 그와 연결되려는 절차였다. 지금껏 언급한 한국영화의 ‘걸작’들은 모두 부모가 되는, 혹은 되지 않으려는 방식에 관한 서로 다른 시도들이고 적잖은 이들이 불필요한 결론이라 비판한 바 있던 <기생충>의 에필로그는 그 연대기의 끝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커다란 뒷모습을 렌즈로 삼아 세계를 인식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아들들의 아들은 조그마한 렌즈에 눈을 대고 있는 아버지의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지켜볼 뿐이다. 우리에겐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에겐 ‘한국영화’가 보이지 않는다. <기생충> 중 순환어법처럼 들리지만, 한국영화 비평이 성립하기 위해선, 한국영화를 향한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언젠가 특별한 비평의 감각을 자극했던 《씨네21》의 ‘전영객잔’ 코너가 건드린 것은 ‘긴 호흡의 비평이 있어야 한다’라는 하나 마나 한 저널리즘적 진단이 아니라 ‘한국영화에 어떤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가?’라는 특수하고 역사적인 물음이었다. 그 지면에서 다뤄진 것은 넓은 의미의 비평일뿐만 아니라 임권택 , 이만희 , 김기영 , 배창호 , 강우석 , 임상수 , 박찬욱, 홍상수 , 이창동, 봉준호, 그리고 21세기에 새 영화를 만들어낸 한국영화 감독들의 시간에 대한 특수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짧은 호기심과 문답의 시간이 지나고 비평은 너무나 쉬운 관성에 안착해버렸다. 투박한 비교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지금 영화를 해설하고 의미를 발굴하는 비평은 한국영화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구현하고 싶었으며 무엇에 실패하고 어떤 곤경을 직면하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단지 주어진 업무의 한 부분에서 성실하게 문장을 채우고 완성된 결론을 생산할 뿐이다. 다른 지면에 적었던 이들의 운명을 다시 빌려오자면, “비평이 테러리스트 역할을 자임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고작해야 제작사와 수입사의 홍보문장을 작성하는 대리인이거나 이름 있는 연출자의 의도를 정제된 언어로 세공하는 복화술사거나 제도의 끝자락을 차지하는 것만으로 안심하는 성실한 일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동시대 한국영화에 어떤 곤경의 장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동시대 한국영화 비평이 영화에 드리운 특수한 곤경에 호기심을 기울이지 않고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어쩌면 한국영화를 만들고 있는 이들조차 그들 자신이 처한 곤경에 응답하지 않는 걸까?). 영화는 세계를 보이게 하는 역량이다. 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세계가 카메라 바깥에 있다. 한국영화는 그것들이 동시에 거주하는 장소다. 비평가들이 이미 결정된 한국영화의 외형과 위계와 비평의 문법을 잊어버린 채로 영화와 만나지 않는다면, 한국영화를 향한 질문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영화’는 만들어지고 상영되고 평가받는 모든 영역에서 빈틈없이 완전하게 구성되어 있다. 한국영화의 위기는 그것이 위태롭고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완전하기 때문에 엄습한다. 끝없이 불타오르는 태양을 마주하는 비평이 눈앞에 있는 무언가를 상상하는 대신 없다는 것을 잊어버릴 수 있을까? 지금 한국영화가 이룩한 제도에서 비평은 존재하는 것을 설명하는 역할에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의무는 무언가 부재한 자리를 다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부재를 망각해버리는 것이다. 비평의 역량이 약화되었고, 위대한 작가 감독이 존재하지 않고, 경이로운 영화들이 나오던 한국영화의 전성기가 사라졌다는 자각. 그 사라짐 자체를 망각하는 것이다. 이는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어떤 영화를 대상으로 하든 비평의 첫 문장이 작동하기 위해선, 어떤 한 가지 장면과 생각을 영화의 나머지 전체보다 앞서서 서술할 수 있다는 믿음, 다시 말해 영화의 나머지 전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임의적 믿음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영화는 모든 것을 실행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주 작은 일을 실천할 뿐이라는 고다르의 말처럼 영화비평은 더 이상 많은 것을 유효하게 실천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기능부전 상태에 빠진 영화비평을 다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선 비평이 더 이상 많은 것을 유효하게 실천할 수 없다는 그 부재를 잊어버려야 할 것이다. 김병규(영화평론가) l 2018년 《Filo》 신인평론가에 선정되고 《씨네21》 영화평론상을 수상하며 비평을 쓰기 시작했다. 만든 영화로 단편 < 늦은 산책 >(2023), < 오후 >(2023)가 있다.
영화 너머의 포스트-시네마를 가늠하면서, 여전히 남아있는 영화의 흔적도 제시합니다. ※ 본문에 삽입된 각주를 별도 페이지( 링크 )로 정리했습니다. 위 링크에 연결된 각주 페이지를 본 페이지와 나란히 놓아두고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이 글은 2000년 겨울, 언젠가 영화로 만들기 위해 써두었던 글을 2024년 겨울에 수정한 글이다. 과거, 문자로 남겨진 이 미완성 영화를, 현재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읽고 듣고 보며, 미래의 눈과 귀로 만들어지길 희망하였다. 이 가능성을 하나의 ‘포스트-시네마’ *주1 로 꿈꾸며 이전 글을 다시 손보고 주석을 추가하였다. ‘이 이야기는 밤이 스스로 그 문을 여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라는 문장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면, 어쩌면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본 것 같다는 인상을 줄 것이다. “이 작고 보잘것없는 나라의 강과 산들을 둘러보셨으면 이제 부디 돌아가 주십시오. 그래야 모든 백성이 마음을 놓을 것입니다.” 1866년, 조선을 찾아온 이유를 그에게 물으니, 그는 ‘며칠 후에 있을 월식을 관찰하러 왔을 뿐’이라고 답했다. *주2 1958년, 그 *주3 는 다시 조선을 방문한다. 그는 시대에 취해 있지 않은 유예된 순간들을 좋아했다. 그는 지나가며 마주친 얼굴들, 기적들, 감각들, 구석들을 낯설고도 낯익은 시선으로 새겼다. 낯선 존재를 낯익은 감각으로, 낯익은 존재를 낯선 감각으로- 그는 파편적 순간 속 길 가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취약한 슬픔을 바라보았다. 나의 슬픔과 같은 너의 슬픔이 있는지. 너의 슬픔과 같은 나의 슬픔이 있는지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눈부신 어둠 속에서 월식을 관찰하던 그에게 ‘어떻게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볼 수 있는지’ 묻자, ‘빛나는 해와 그 빛을 반영하는 달이 만들어내는 어둠의 시간을 찾아보라’라는 말을 나에게 남겼다. 그리하여 나는 2019년 겨울, 어둠 속의 월식이 아닌 밝음 속의 일식을 찾아 스리랑카의 동쪽 해안 도시 트링코말리(Trincomalee)로 떠났다. 이 여정은 그의 시선에 대한 나의 답장이다. 그의 편지 *주4 는 ‘인간의 얼굴과 선한 고양이는 태양이며 달’이라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의 편지는 조선이라는 낯선 땅에서 그를 향해 돌아보던 하나의 얼굴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마주친 낯선 궤적을 사라져가는 우리의 언어로 담는다. 우리의 언어는 지진 통신(seismic communication)이다. 그중 영화는 움직이는 빛의 그림자로 태어났다. *주5 하지만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로 인해 영화는 빛을 내장하기 시작했다. 이제 영화는 더 이상 어둠 속에서 섬광을 더듬지 않는다. 그림자 없는 빛으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우리의 시선은 어떻게 희망과 절망을 엮어 어떤 기억을 다시 쓰고 있을까? 우리의 이야기는 밤이 스스로 그 문을 여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도둑맞은 편지 속 이야기다. 트링코말리의 한 작은 마을, 이곳에서 우리는 2004년 12월 26일 *주6 에 일어난 금환일식을 추적한다. 어둠 나라에서 파견된 불개가 이번에는 태양을 삼켜보지만, 너무 뜨거워 다시 뱉어낸다. 일식의 그림자는 15년 후 같은 날 *주7 이곳을 휩쓴 지진 해일을 기억하며 노래 ‘카메라 옵스큐라 Camera Obscura’를 부른다. 해와 달이 나뭇잎을 연주하며 지구에 떨구는 이 노래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카말 알-딘 알-파리시(Kamal al-Din al-Farisi), 이븐 알-하이삼의 『광학의 서』 개정판 Kitab Tanqih al-Manazi (The Revision of Ibn al-Haytham's Optics) 필사본, 1309. “이것은 시각이 작동하는 원리- 수천 년 전 까마귀가 본 것을 중국에서 묵자(墨子) *주8 가 메기가 본 것을 그리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주9 가 두꺼비가 본 것을 아랍에서 이븐 알 하이삼(Ibn al-Haytham) *주10 이 기록하였네” 까마귀는 쉬운 희망과 값싼 절망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노래한다. 메기는 후퇴하여 돌아온 곳을 새로운 곳으로 만들며 다시 나아가기 위해 노래한다. 두꺼비는 동굴 신화 속 그늘 아래 은총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래한다. 게임의 규칙 1. 세 개의 산(山) 정상을 오랫동안 응시하며 바라본다. 2. 눈을 감는다. 겜마 프리시우스(Gemma Frisius), 천문학과 기하학 광선(De radio astronomico et geometrico), 1545. - 그 순간 색이 반전되고, 하늘은 어두워지며, 그림자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주11 어둠이 실종된 밤 - 구석과 구석 사이에서 우리는 귀 기울여 침묵을 끌어안는다. 새로운 것을 능숙하게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관점을 서툴게 취하며- 적정 거리를 찾기 위해 시선의 속도를 끊임없이 바꿔가며- 빛으로 시든 눈을 드러나는 어둠으로 씻는다. 우리는 절망과 희망을 엮고 찰나의 시간 축을 빌어 겹쳐진 실천적 기억 속 마주친 얼굴들, 기적들, 감각들, 구석들을 낯설고도 낯익은 시선으로 새긴다. 낯선 존재를 낯익은 감각으로 낯익은 존재를 낯선 감각으로- 코다(Coda) - 네 개의 벽 안에서 *주12 조용하고 소박한 작은 방, 뚫을 수 없는 그림자, 응답 없는 그림자; 깊은 생각, 슬픈 노래; 뛰는 마음 속 소중한 희망 순간 순간의 고요한 비행; 먼 행복에 대한 움직임 없는 시선 많은 의심과 많은 인내심 여기, 나의 밤, 고독의 밤 우리의 이야기는 밤이 스스로 그 문을 여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도둑맞은 편지 속 이야기다. 덤프리스 지역 역사 박물관 카메라 옵스큐라 광고 홍보물 (사진: Museum Crush ) 스코틀랜드의 작은 마을 덤프리스(Dumfries), 1836년 덤프리스와 맥스웰타운 천문학 협회 (Dumfries and Maxwelltown Astronomical Society)는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건물인 풍차를 개조하여 핼리 혜성(Halley's Comet)을 관측하기 위한 망원경과 카메라 옵스큐라를 설치하였다. *주13 우리는 이 오래된 어둠의 공간 안에서 실종된 밤을 탐색한다. 어두울수록 이미지가 선명하게 보이는 이곳에서 우리는 물구나무를 서고 내부의 바깥쪽과 외부의 안쪽을 바라본다. 우리는 파편적 순간 속 길 가는 사람으로서 취약한 슬픔들을 바라본다. 순간 순간의 고요한 비행 가운데, 나의 슬픔과 같은 너의 슬픔이 있는지. 너의 슬픔과 같은 나의 슬픔이 있는지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우주의 구멍 아닌 구멍 지각할 수 없는 기묘한 천체 - 블랙홀로 만들어진 카메라 옵스큐라 우리는 이곳에서 블랙홀 *주14 의 그림자를 겹쳐가며 그 적정 속도와 거리를 찾는다. 어둠이 더 이상 빛을 증언하지 않는 이 위태로운 시대를 말하지 않고 말하며, 보지 않고 바라본다. 우리는 조용하고 소박한 이 작은 방 에서 우리의 회환을 감광제와 섞고 톱밥을 가득 채워 박제한다. 사건의 지평선 속 기억이 유일한 언어가 되는 이곳에서 우리는 공명하는 순간들을 현상한다. ‘너희가 눈멀었다 하면 죄가 없으려니와, 지금 너희가 본다고 말하므로 너희 죄가 남아 있느니라’ *주15 라는 외침에 조응하며- 우리가 오랫동안 마음 속 깊이 새긴 기억조차 떠도는 섬망의 언어인 것을 기억하며- 광기로부터 반성적 성찰을 건져내 지나간 그림자의 반영을 이어 붙이며 - 언젠가 그는 행복이라 부르던 순간을 화산재로 짠 장막으로 덮으며 말했다. ‘그들이 여기에서 행복을 볼 수 없다면 적어도 어둠을 볼 것’ *주16 이라고- 그리하여 우리는 비균질적인 이미지의 표면 위에 어둠을 함께 밝힌다. 우리의 밤은 이 암흑의 빛 속에서 후퇴한 그림자의 목소리를 말없이 조절한다. 우리의 지각이 후퇴하고 탈선하고 겹쳐질 때 이 어둠 속 구멍 이면에는 어떤 잔상이 있을까? 우리는 이 유예된 그림자에 여전히 같은 감각을 적용할 수 있을까? 이 병렬하고 교차하는 시간은 우리의 취약한 기억을 다시 쓸 수 있을까? 겸허하면서도 눈부신 시선들 사이를 우리는 어떻게 함께 걸어갈 수 있을까? 이 여정의 끝에는 우정이 있다. 나머지는 침묵이다. *주17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경계는 없지만 한계가 있는 끝은 없지만 유한한 - 밤이 스스로 그 문을 연다. 어둠과 침묵 속 다정한 밤 - 그 운동과 정지 사이 현전과 부재 사이 도둑맞은 우리의 편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필자 제공, 2019년 12월 29일 금환일식, 트링코말리 *** 주1. ‘포스트-시네마’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필름 매체 자체의 본성을 탐구하며 기술 장치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선형적으로 살펴보며 이야기할 수 있다. 문화 산업으로 생산된 경제 상품으로서의 가치, 혹은 권력의 정치적 작동 수단으로 도구화된 역사를 추적하는 것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도 가능하겠다. 이 글에서는 ‘포스트-시네마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포스트-시네마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영화의 원형으로 돌아가 다가올 ‘포스트-시네마’의 가능성을 은유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주2. 앙리 쥐베르, 「조선 원정기」,《세계 일주(Le Tour du Monde)》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의 군인 앙리 쥐베르(M.H Zuber)는 사관으로 강화도 원정에 출정하였다. 그는 임무를 수행하며 조선의 정치적 상황과 문화 및 풍습을 소개하는 글과 그림을 남겼고, 그 기록은 1873년 프랑스 여행 전문 주간지 《세계 일주(Le Tour du Monde)》에 「조선 원정기(Une expédition en Corée)」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주3. 프랑스의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인 크리스 마커(Chris Marker)는 1958년 프랑스 대표단으로 북한을 방문하였다. 다음 해 그는 이때 남긴 사진과 글을 엮어 사진집 『한국인(Coréennes)』을 쇠이유(Seuil)출판사를 통해 발간하였다. 한국에는 눈빛 출판사가 1989년 「북녘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이 사진집을 번역 출간하였다. 주4. 크리스 마커는 ‘고양이 G에게 보내는 편지’를 사진집 『한국인(Coréennes)』 마지막에 실었다. 주5. 움직이고 변하는 그림자로서의 영화; 끊임없이 여러 존재를 변증법적으로 비추고 반영하는 영화. 고유한 각자의 이야기 직물을 짜고, 풀고, 다시 짜기를 반복하는 영화. 우리 안의 타자를 위한 빈 공간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영화. 복수의 힘과 규칙이 복합적으로 배치되는 사회적 혼합물로서의 영화. 움직이는 시적 감각과 사유가 다양한 생태계를 이루는 가변적 구성물로서의 영화. 주6. 2004년 12월 26일 인도양에서 진도 9.0 지진에 의해 발생한 쓰나미는 총 12개국에 전례 없는 사상자를 낸 인류 역사상 최악의 쓰나미다. 사망자 숫자만 약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주7. 2019년 12월 26일 오전 8시 10분부터 11시 26분까지 스리랑카에서 금환일식이 관측되었다. 달이 태양의 중심을 완전히 가리지만, 달의 그림자가 태양보다 작아 태양의 가장자리가 원형 빛으로 남는 불의 고리는 9시 38분부터 2분 43분 동안 진행되었다. 이 글에서는 두 사건의 시점을 교차하여 이야기한다. 주8. 기원전 400년경 중국의 철학자 묵자는 빛이 바늘구멍을 통해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면 바깥에 있는 대상의 반전된 이미지가 어두운 방 안에 만들어지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이것은 카메라 옵스큐라의 핀홀 현상(Pinhole effect)을 최초로 기록한 역사로 여겨진다. 주9. 기원전 350년경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식 때 나뭇잎의 겹쳐진 틈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으로 인해 핀홀 현상이 관찰된다고 기록하였다. 주10. 기원후 935년경 태어난 아랍의 물리학자 이븐 알 하이삼은 현대 광학의 아버지이다. 세계 최초로 카메라 옵스큐라를 만들어 일식을 관찰하고, 다양한 실험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11. 『한국인(Coréennes)』의 여섯 번째 장 「아홉 뮤즈」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썼다. 주12.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Modest Mussorgsky)의 연가곡 ‘태양 없이(Song cycle Sunless, 1874)’의 첫 번째 곡 ‘네 개의 벽 안에서(Within Four Walls)’를 인용하였다. 주13. 스코틀랜드 덤프리스 지역 역사 박물관에는 1836년 이래로 지금까지 작동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카메라 옵스큐라가 있다. 처음에는 천문학 협회의 연구용으로 사용되었지만, 1851년부터는 박물관의 카메라 옵스큐라를 모든 사람에게 개방하였다. 주14. 1997년 크리스 마커는 『한국인(Coréennes)』을 재발간할 때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들어간 후기를 추가한다. "알렉산더 메드베드킨(Alexander Medvedkin)에게 헌정한 영화에서 그는 이 강력한 이미지를 사용한다. 인류 역사상 우리와 같은 세대는 없었습니다... 마치 천문학에서의 ‘검은 별들’과 같아요. 제 삶은 이런 블랙홀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운 좋게도 블랙홀 반대편에서 폭탄을 맞을 수 있었던 우리는 블랙홀의 실패의 깊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몰랐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주15. 요한복음 9장 41절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주16. 1983년 크리스 마커의 영화 < 태양 없이 Sans Soleil (Sunless) > 속 문장을 다시 썼다. 주17. 크리스 마커의 ‘고양이 G에게 보내는 편지’ 속 문장을 인용하였다. 임고은(영화감독, 시각예술가) l 영화를 둘러싼 시선의 주체와 객체, 과거와 현재, 진실과 허구의 변증법적인 관계를 엮어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최근에는 야생을 회복하기 위한 시적인 언어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몰두하고 있다.
경성은 식민지 조선의 최대 도시이자, 가장 많은 극장이 ‘밀집’된 곳이었다. 오늘날과 견주어 보면 ‘밀집’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전국적인 극장의 분포 정도를 살펴보면, 식민지 시기 내내 경성은 극장의 도시였다. 1930년대 전쟁이니 불황이니 해도 경성의 영화 인구는 계속 늘었고, 그럴수록 경성과 지방 사이의 격차는 벌어졌다. 부산이나 평양 정도의 도시에는 규모가 있는 영화상설관들이 꽤 있었고 필름의 순환도 제법 빠른 편이었지만, 경성과의 물리적 거리가 일종의 ‘문화 지연’ 감각으로 전환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일본에서 본 영화를 경성에서 다시 보며 ‘지금 여기’에 묘한 회상의 감각을 덮어보는 엘리트 관객의 시간 감각만큼이나, 경성에서 본 영화를 지방 어느 극장에서 다시 보는 영화팬의 속내 또한 복잡했을 것이다. 카프(KAPF)의 직속 극단 ‘신건설(新建設)’ 창단을 주도했던 신고송은 1932년에 이른바 ‘『우리 동무』 배포 사건’으로 검거되었다가 석방된 후 교사인 아내의 근무지였던 김해군 김해읍으로 이주했다. 김해에 살면서 1936년 『조선영화』 창간호에 「항구에서 보는 영화들」을 기고하는데, 이 글은 경성의 지인에게 보내는 서간문 형식을 취했다. 『조선영화』에는 한때 그와 함께 했던 ‘형들’―송영, 나웅, 최일숙, 고경흠 등―이 글을 싣고 있었는데, 그중 나웅이 이 글의 수신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진2. 신고송, 「항구에서 보는 영화들」 중에서 신고송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읍내 극장에 영화나 연극이 ‘올’ 때마다 극장에 갔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극장에서 <암로(강호, 1929)>와 <혼가(김유영, 1929)>, <바다와 싸우는 사람들(양철, 1930)> 등 자신의 과거 어느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영화들을 보았다고 한다. 김유영이 연출하고 임화가 주연했던 영화 <혼가>는 엉뚱하게도 ‘나웅’ 주연의 영화 ‘어두운 거리’라고 광고되기도 했는데, “서울 사는 형들의 생각에는 어느 집 창고에 먼지에 파묻혀 있으리라고 할” 이런 영화들에서 임화의 맵시를 보고, ‘형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자신에게는 위락이 된다고도 적었다. 경성의 영화팬들은 기억도 못할 수년 전의 무성영화가 그가 사는 곳에서는 신작처럼 상영되는 것이다. 김해는 부산에서 가까워 갓 일본에서 들여온 ‘신작’들도 구경할 수 있었는데, 어떤 영화들은 경성의 ‘형들’보다도 신고송이 먼저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발성영화 <벤갈의 창기병(The Lives of a Bengal Lancer, 1935)>을 무성영화 영사기로 상영하는 낙후된 극장 시설은 ‘경향의 시차’를 더욱 뚜렷하게 각인시킨다. 비슷한 무렵, 시인 이상은 평안남도 성천에서의 영화 경험을 기록해 놓았다. 1935년 9월의 어느 저녁, ‘공기는 수정처럼 맑고, 별빛만으로도 누가복음을 읽을 수 있을 듯한’ 평안남도 성천에 요양 차 머무르던 그는 금융조합 주최의 선전활동사진회 구경을 갔다. “마당에 멍석을 펴고 전설 같은 시민들”이 모여든 밤, 자동차 헤드라이트 외에 전등이라곤 본 적 없는 성천 사람들에게 움직이는 영상은 “홍모(紅毛) 오랑캐의 요술”에 비할 것이며, 영화를 보기 위해 학교 마당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축음기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북극 ‘펭귄’ 새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때문이 아니라 축음기 그 자체가 신기해서 모여드는 펭귄처럼, 성천 사람들은 영화의 내용을 알거나 이해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영화 장치 그 자체에 매혹되어 모여든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액션이 화려한 극영화도 아니고, 부산 잔교, 모란봉, 압록강 철교 등 그저 조선의 실경(實景)을 담은 필름의 영사가 끝난 것인데도, 성천 사람들은 마치 서양 명감독의 영화를 접한 듯 우레와 같은 박수를 쏟아냈다. 도회라는 ‘화려한 고향’에서 일상적으로 영화를 경험해온 그에게는 퍽 이질감이 느껴지는 장면이었으리라. 그럼에도 이 상영의 장에서 그 역시 성천의 ‘촌민’들과 더불어 ‘백성’ 혹은 ‘동포’라는 이름의 공동체로 일체화되었던 경험을 짧게 적는다. 사진3. 이상, 「산촌여정 - 성천 기행 중의 몇 절」 중에서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조선에서 경성과 지방, 도시와 농촌 사이의 문화적 격차는 경성을 떠나야 비로소 실감하게 되는 터였다. 영화는 과학 기술이 탄생시킨 복제 미디어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사운드 도입 이후에도 조선에서의 영화 이동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벌, 많아도 겨우 몇 벌의 프린트가 경성에서 지방으로, 도시에서 농촌으로 돌고 도는 식이었다. 더 많은 관객에게 영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순회 영사는 지역에 따른 경험의 차이도 계속 생성해갔다. 일제가 식민지 주민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문화 선전 활동을 구상할 때, 경향 간 문화 경험의 차이는 더욱 문제가 되었다. 문화 기반 시설이 부족한 농산어촌과 공장 및 광산 지대의 주민에게 영사대를 파견하여 집단적으로 영화를 감상하게 하는 이동영사가 전시체제기에 기획되고 치밀한 조직과 기반을 갖고 있지 못했음에도 단시간 내에 수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은, 서울과 지방 혹은 도시와 농촌 사이의 격차가 추동했던 문화 향유에 대한 갈망과도 깊이 관련된다. 이동영사의 관객들은 거의 대부분이 문화적 혜택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던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려면 겨울에도 20~30리 길을 걸어야 상영장에 닿을 수 있었다. 이렇게 기꺼이 먼 길을 걸어 보러 올 만큼 이동영사에 대한 호응이 높았던 것은 선전과 교화 수단으로서 영화를 이용하려는 당국의 의도와 오락과 여가, 문화로서 영화를 경험하는 식민지 주민의 수용 사이에 간극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단사진1. 평양 순회 영사 관련 기사 출처: 《동아일보》 1934년 7월 29일자 2면 (뉴스라이브러리) <자료> ※ 이하 자료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 현대어 표기에 맞게 다시 썼다. 일부 표현은 문맥에 맞게 다듬었다. 1. 신고송, 「항구에서 보는 영화들」, 『조선영화』 제1집(1936년), 118~119쪽. 형! 중앙을 떠난 지도 벌써 오래되니 나의 전문이던 연극에까지도 인연이 멀어진 것 같거든, 하물며 영화와는 더욱 남이 된 것 같소이다. 행(幸)으로 부산에 가까이 있으므로 한 달에 한번이라도 보고 싶은 영화는 보기가 됩니다. 그도 일본영화는 간혹 조선 첫 봉절도 있습니다마는 조선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서양 것들은 다, 형들이 감상하고 난 나머지를 얻어 보는 셈이지요. 형! 그래도 이런 시골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얼굴이 간지러우며 진땀을 흘리면서도 추억의 거리가 되는 재미나는―중앙에 있는 형들은 못 보는―것을 구경합니다. 이 읍에도 명색 극장이 있어 한 달에 한 번은 영화나 연극이 오는데 이러한 한거(閑居)에서 무위의 날을 보내는 나는 우리집 앞 논둑길로 악대가 불고 지나가는 밤이면 꼭 극장에를 가보는 것입니다. 이 덕택으로 서울 사는 형들의 생각에는 어느 집 창고에 먼지에 파묻혀 있으리라고 할 <암로>와 <혼가>와 또는 <바다와 싸우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혼가>가 ‘어두운 거리’로도 되어 나오고 주연이 ‘나웅(羅雄)’이라고도 되어 광고됩니다. 그래 웃으면서 구경 갑니다. 가서 강호(姜湖)의 얼굴을 보고 임화(林和)의 맵시를 보고 형의 얼굴을 보는 것이 나에게 한갓 위락이 됩니다. 강호 군은 <암로> 이야기만 내면 아주 미안해하고 싫어합니다만 근 십년 전의 작품이오, 초기의 첫 작품이 그러하다는 것이 왜 강호의 불명예야 되겠습니까. 형! 이러한 시골 극장에서 얻는 에피소드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한번은 <부라커 대학생>이라는 광고로 영화가 상영되기에 나도 무심히 구경을 갔었지요. 그랬더니 ‘부라커’는 정히 저 ‘프라-그’이고 영화는 그 유명한 <프라하의 대학생[Der Student von Prag]>이었습니다. 또 한 번은 <벤갈의 창기병[The Lives of a Bengal Lancer, 1935]>이 왔기로 나는 그것을 전에 볼 기회가 없어 못 보았는지라 가보았더니 사일런트 기계로 무성으로 올리겠지요. 영화로서 효과는 전연 없어졌지마는 영화에 의하여 느끼어진 적이 최근에는 없는 나로서는 느껴지는 것이 있습디다. 어떻게 해서 영국이 토민을 학살하고 그들의 부를 축적했는가, 그것이었습니다. 소위 서부활극이라는 것에 있어서도 아메리칸 인디언을 취급하는 데서도 흔히 보는 것이지만 인종적으로 모욕해서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보니 분개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형! 이래도 부산서 형들이 먼저 보기 전에 서양영화를 첫 봉절에 하나 보았습니다. <춤추는 브로드웨이[Broadway Melody of 1936]>, 그 어이 없이 시끄럽고 날뛰는 영화 말입니다. 늙은이 코 고는 것이 ‘상승음계형’, ‘하강음계형’, ‘권태형’ 등등 수십 종의 형으로 유별(類別)하는 재주에는 경탄했습니다만, 양키들의 끝없이 □□[식별 불가]하는 광조난무(狂躁亂舞)는 아메리카 문화를 경조화(輕燥化)하는 것이 발성영화의 죄일는지요, ‘엘레지 오브 아메리카’의 죄일는지요. <톱 햇[Top Hat, 1935]>, <오페라 해트[Mr. Deeds Goes To Town, 1936]>, <함대를 뒤쫓아서[Follow the Fleet, 1936]> 등등 끝없이 재즈문화는 재즈화해가고 ‘폭스 트로트’는 ‘룸바’에 가지로 증후는 악화해 가는 모양입니다. 아메리카의 영화가 내용적으로 저열해지건, 불란서에서 <마주르카>니 <에키파-쥬>니 우수하다고 하는 영화들이 뒤이어 소개되건, 조선영화의 소조(蕭條)한 비발전(非發展)에는 경탄을 마지않습니다. 그 원인은 허다하겠지요마는 한심한 일입니다. 이곳 극장에서 발성영화 <××전>을 구경했습니다마는 그러한 거액의 돈으로 그것밖에는 만들지 못한 원인은 기술의 부족으로 보아야 옳겠지요. 기술이 있는 이들이 그냥 썩어져 있건마는 기회는 항상 그것을 찾아보지 못하고 그렇지 않은 데서만 방황하니 기회 그놈이 무심타고 하겠습니다. 일본영화가 장족의 발전을 하고 있고 중국의 영화도 최근 훌륭한 것들이 나온다고 하니 어이 남의 일만 같다고 하겠습니까. 이제는 아마 조선영화도 기업적으로 채산이 되는 듯하니 대중의 저속한 취미에만 영합하려는 통속화의 경향을 집어치우고 예술적 양심을 움직여 대중의 영화에 대한 감상안을 높여가야 영화문화의 진전이 있지 않겠나요. 외국영화 더욱이 불국(佛國) 영화를 보면 모든 것에 있어서 화면에 넘치는 여유작작한 것을 얻을 수 있는데 조선영화에 있어서는 시나리오 그것에 그러하고 연기에 그러하고 감독에 그러하여 모두가 여유가 없으니, 이것은 기술의 탈일까요. 저들의 생활에는 여유가 있고 우리의 생활에는 궁박(窮迫) 그것이 모든 것에 반영되어 그럴까요. 형! 지금 나의 경우에는 이것으로 영화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형의 건강을 빌고 마지않습니다. 2. 이상, 「산촌여정 - 성천 기행 중의 몇 절 (완)」, 《매일신보》, 1935년 10월 10일 및 11일 자, 조간 1면, 부분 발췌 이 마당[학교 마당]에서 오늘 밤에 금융조합 선전활동사진회가 열립니다. 활동사진? 세기의 총아—온갖 예술 위에 군림하는 ‘넘버’ 제8예술의 승리. 그 고답적이고도 탕아적인 매력을 무엇에다 비하겠습니까.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활동사진에 대하여 한낱 동화적인 꿈을 가진 채 있습니다. 그림이 움직일 수 있는 이것은 참 홍모(紅毛) 오랑캐의 요술을 배워가지고 온 것 같으면서도 같지 않은 동포의 부러운 재간입니다. [...] 밤이 되었습니다. 초열흘 가까운 달이 초저녁이 조금 지나면 나옵니다. 마당에 멍석을 펴고 전설 같은 시민이 모여듭니다. 축음기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북극 ‘펭귄’ 새들이나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짧고도 기다란 인생을 적어 내려갈 편전지(便箋紙)—‘스크린’이 박모(薄暮) 속에서 ‘바이오그래피’의 예비 표정입니다. 내가 있는 건너편 객줏집에 든 도회풍 여인도 왔나봅니다. 사투리의 합음(合音)이 마당 안에서 들립니다. 시작입니다. 부산 잔교가 나타납니다. 평양 목단봉입니다. 압록강 철교가 역사적으로 돌아갑니다. 박수와 갈채—태서(泰西)의 명감독이 바야흐로 안색이 없습니다. 십분 휴게시간에 조합 이사의 통역부(通譯附)의 연설이 있었습니다. 달은 구름 속에 있습니다. 금연—이라는 느낌입니다. 연설하는 이사 얼굴에 전등의 ‘스포트’도 비쳤습니다. 산천초목이 다 경동할 일입니다. 전등—이곳 촌민들은 XX행 자동차 ‘헤드라이트’ 외에 전등을 본 일이 없습니다. 그 눈이 부시게 밝은 광선 속에서 창백한 이사는 강단(降壇)하였습니다. 우매한 백성들은 이 이사의 웅변에 한 사람도 박수치지 않았습니다—물론 나도 그 우매한 백성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