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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권오철, 조혜승
- 제작년도
- 2021
“가족이란 합승 택시에 타고 있는 손님 같은 거야!” < 삼등과장 >의 엔딩에 나오는 김승호 의 명대사다. 가족에 대한 개똥철학을 밝히는 한 가장의 진심과 온정이 담겨 있다. 부부를 ‘운전수와 차장’의 관계에 비유하기도 한다.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가족멜로드라마를 꼽으라고 하면 으레 신상옥 감독의 < 로맨스빠빠 >(1960)나 < 로맨스그레이 >(1963)를 떠올리기 쉽다. ‘로맨스’라는 제목을 붙인 이 영화들은 1960년대 초에 대중적으로 인기를 모았던 ‘김승호 영화’이자 ‘코믹 홈드라마’였다. 하지만 이 시기에 ‘국민 아버지’ 김승호는 이봉래 감독의 영화에도 중산층의 가장으로 등장했다. <로맨스빠빠>에서 보험회사의 직원으로 등장한 김승호는 <삼등과장>에서 삼천리운수 주식회사의 동부영엽소 소장으로 나온다. 여섯 식구의 가장인 구준택(김승호)은 집에서는 나름 큰소리를 치지만, 막상 회사에 가면 한없이 작아지는 샐러리맨이다. 송 전무( 김희갑 )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을 회사에 첫 출근한 딸에게 들키고 나서, “가장으로서의 위신이 서질 않는다”고 고백할 정도로 쑥스러워한다. 여기서도 김승호는 넉넉지 않은 형편으로 어려움을 겪지만 늘 자식 걱정뿐인 60년대 아버지상을 대변한다. < 삼등과장 >의 전반부는 부성애를 내세운 ‘아버지 가족멜로드라마’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침 시간에 나누는 가족들의 코믹한 대화나 대식구가 모두 모여서 행복하게 식사하는 것은 60년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웃음꽃이 피어나는 간단한 에피소드는 화목한 가족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방식이지만, 언제 봐도 해피 바이러스가 퍼질 만큼 즐겁다. 동시에 회사에서 일어나는 각종 해프닝을 다루고 있기에 나름 ‘직장 드라마’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아버지인 동시에 직장인(사회적 위치)인 중년 남성의 비애가 여기서 솟아난다. 또한 후반부에 펼쳐지는 딸 영희와 구 과장의 부하 직원 권오철의 사랑놀이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밀당’이 듬뿍 들어간 로맨틱 코미디이다. 오늘날 ‘막장드라마’라의 요소인 불륜, 해프닝도 웃음을 주는 가벼운 요소로 작용한다. 영화적으로는 복합적인 장르와 다양한 요소로 반찬을 만들어서 가족멜로드라마는 밥상 위에 푸짐하게 올려놓은 모양새다. 그저 편하게 가족멜로드라마의 정석을 즐길 수도 있지만, < 삼등과장 >의 재미를 소소하게 더하기 위해서 영화 속에 포착된 근대화의 흔적을 찾아볼 것을 권하고 싶다. 예를 들면 아침부터 침대 위에서 미용 체조를 하느라 분주한 영희( 도금봉 )가 할머니( 복혜숙 )에게 ‘스마트’ 해지기 위해서 체조한다고 하자, 할머니는 어이없게도 ‘포마드’ 해져서 좋은 신랑감을 구하라고 응답하며 도와준다. 할머니는 ‘스마트’를 ‘요새 신식말’이라고 칭한다. 또 봉건적 할아버지라는 표현이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구식/신식’에 대해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듯 사용되는 단어나 표현을 보면 충분히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영어식 표현이 깨알 같은 웃음을 준다. 그건 언어뿐만이 아니다. 구준택과 딸 영희가 근무하는 회사에서는 옥상 공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60년대 초반 한국영화에서 옥상 공간을 촬영 무대로 활용한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집이나 동네 골목길이 수평적인 영상으로 나오지만, 고층 건물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비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적인 장면은 그닥 많이 포착되지 않는다. 이런 장면을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회사의 옥상과 비교해 보면 더욱 흥미롭다. <삼등과장>에는 두 번 옥상이 나온다. 한번은 구준택이 딸 영희에게 회사에서 일어난 일을 집에는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다. 또 한번은 영희가 ‘엉터리 방송국 후라이 박사’라고 놀리는 오철과 다투다가 그만 핸드백을 떨어뜨리고 만다. 이봉래 감독이 다시 김승호를 기용해 만든 < 월급쟁이 >(1962)에서는 만년 박 계장으로 등장한 김승호가 옥상에서 ‘very fine~’을 엉뚱하게 발음하면서 몰래 영어공부를 한다. 그는 고단한 인생살이를 “영어 발음이 안 되는 내 혓바닥 같다”고 서글프게 표현한다. 특히 김승호가 출근할 때 잠깐 등장하는 서울의 광경은 일상에 깃든 ‘근대화’를 슬쩍 표출한다. < 삼등과장 >보다는 < 월급쟁이 >에 그런 장면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아직 대도시로 태어나기 전 ‘민낯의 서울’과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물론 50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너무 생소하고 낯설거나 투박한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60년대 영화를 보는 즐거움 중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개인적으로 이런 장면을 선호하는 것은 단순히 옛것(복고)이나 촌스러운 것에 대한 그리움 때문은 아니다. 빠르게 변해가는 일상이나 도시 속의 인간을 보면,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삶의 체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