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 감독
- 권칠인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추자현, 정찬, 한수연, 김흥수, 거정, 김보영, 이연규, 정영기, 박성택, 박영웅, 최안도, 정기섭, 최훈, 하유미, 손민구, 강의경, 서유리, 김민석, 김민희, 홍리경, 최효진, 양승천, 형성석, 최용관, 장석현, 장항준, 우명제, 유대현
2003년 | KM컬쳐 감독, 각본: 김용화 | 제작: 박무승 | 촬영: 박현철 | 미술: 박일현 | 음악: 방준석 김덕윤 CAST 오상우: 이정재 | 오봉구: 이범수 | 정 반장: 이문식 | 허기태: 류승수 | 은하: 김준희 지금은 < 신과 함께 > 시리즈로 두 편의 ‘천만 영화’를 거느리게 된 김용화 감독의 시작은 16년 전의 < 오! 브라더스 >였습니다. 몇 번 말씀 드린 적이 있었지만, 2003년은 한국영화의 ‘은혜 받은 해’였죠. 신인급 감독들이 다양한 장르에서 상업적 성공과 함께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한국영화의 다양성과 실험성이 정점에 올랐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오! 브라더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추석 시즌 개봉된 이 영화는 < 불어라 봄바람 > < 조폭 마누라 2 > 그리고 <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 >와 < 분노의 질주 2 > 등을 꺾고, 31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최종 승자가 되었죠. 이 영화의 현장 공개는 두 번에 걸쳐 이뤄졌습니다. 첫 번째는 2003년 5월, 오상우(이정재)가 배다른 형제인 오봉구(이범수)를 찾으러 간 장면이었죠. 봉구는 어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12살인, 조로증 환자입니다. 장소는 남양주에 있는 서종초등학교. 형을 따라 학교를 떠나야 하는 봉구의 모습이 조금은 슬퍼 보입니다. 1994년 < 젊은 남자 >( 배창호 )로 영화에 데뷔한 이정재는 10년차를 맞이해 <오! 브라더스>에 출연했고, 이 영화는 그때까지 그의 최고 흥행작이 됩니다. 이때 시작된 김용화 감독과의 인연은 <신과 함께> 시리즈로 이어졌고요. 이정재는 상우라는 캐릭터가 “사랑을 믿지 않는 남자”라고 말하는데요, 봉구를 통해 변하게 됩니다. “상우가 지닌 상처를 봉구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런 동질감을 느끼게 되면서 마음이 바뀌게 되고요.” 2003년 이범수는 < 싱글즈 >( 권칠인 )와 <오! 브라더스>가 모두 좋은 반응을 얻으며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오! 브라더스>는 힘든 영화였습니다. “부담이 컸어요. 아무리 시나리오가 뛰어나고 감독의 연출력이 좋아도, 내가 어린아이처럼 보이지 않으면 이 영화는 무의미했으니까요.” 그래서 초등학교 수업에 참여하고 같이 뛰어놀며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했다고 하네요. 한편 이범수는 김용화 감독의 중앙대학교 영화과 2년 선배로, 현장에서 맏형 역할을 했습니다. 김용화 감독에게 <오! 브라더스>의 시작은, 역시 두 형제의 이야기인 단편 < 자반 고등어 >(2002)였습니다. 김용화 감독은 상업영화로 진출하게 된다면 이 영화를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때 < 잭 >(프랜시스 코폴라, 1996)을 보게 되면서 ‘조로증’이라는 모티브를 얻었다고 합니다. 두 영화의 차이가 있다면, <잭>은 인권에 대한 메시지가 강하다면 <오! 브라더스>는 형제애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죠. 이정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감독에 따라 다르지만 배우의 연기는 60퍼센트 정도만 보고 나머지는 앵글, 음악, 편집, 효과로 채우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김용화 감독님은 배우의 연기를 80퍼센트까지 보더라고요. 철저히 배우의 감정에 맡기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래서 시사회 앞두고, 제 연기가 어떻게 나왔을지 더 걱정됐어요.” 이날 촬영 분량은 없었지만, 상우의 동료 기태 역을 맡은 류승수가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쉬는 시간 빙과류로 초여름의 더위를 식히고 있는 이범수와 류승수의 모습입니다. <오! 브라더스>의 두 번째 현장 공개는 7월 양수리 종합촬영소에서 이뤄졌습니다. 흥신소 박 사장(박영규)와 상우 그리고 봉구의 신이었습니다. 박 사장은 상우에게 돈 받아오는 일을 시키지만 상우는 싫다고 하죠. 이때 갑자기 봉구가 등장하고, 박 사장은 봉구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합니다. “주먹을 불끈 쥐어 보는 게 어떨까?” ““탁자 위에 발을 올려놓는 건 어때?” 이 장면을 위해 감독과 배우들은 1시간 동안 디테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정재에게 ‘흥신소 직원’이라는 캐릭터는 < 태양은 없다 >( 김성수 , 1999)에 이어 두 번째였죠. 그리고 그때 만났던 이범수와 <오! 브라더스>에서도 만났고요. 두 편 모두 이범수가 단발머리로 등장했다는 점도 재밌는 공통점이네요. 달라진 게 있다면 <태양은 없다>의 홍기가 가볍기만 한 ‘압구정 날라리’였다면, 상우는 절박한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 치는 ‘현실적 캐릭터’라는 점입니다. 김용화 감독은 이 신의 촬영을 마친 후에도 뭔가 부족함을 느꼈는지 다시 찍겠다고 욕심을 냈습니다. 영화에선 평범해 보이는 장면이지만, 결코 쉽게 찍은 장면은 아니었던 거죠. <오! 브라더스>는 김용화 감독의 중요한 테마인 ‘가족’이 시작되는 영화입니다. 장애를 지닌 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도 여전히 살아 있는 ‘김용화 영화’의 요소이고요.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2003년 | 싸이더스 감독: 봉준호 | 원작: 김광림 | 각본: 봉준호, 심성보 | 제작: 차승재 | 촬영: 김형구 | 프로덕션 디자이너: 류성희 | 음악: 타로 이와시로 CAST 박두만: 송강호 | 서태윤: 김상경 | 조용구: 김뢰하 | 신 반장: 송재호 | 구 반장: 변희봉 | 권귀옥: 고서희 | 박현규: 박해일 2000년 이후 한국영화에서 가장 빛났던 해는 언제일까요? 개인적으로는 2003년을 꼽고 싶습니다. 1999년 < 쉬리 >( 강제규 ) 이후 이른바 ‘르네상스’ 시기를 맞이한 한국영화는 2003년에 놀라운 다양성을 갖추게 됩니다. 일단 2003년에 나온 한국영화 주요작 리스트를 살펴보겠습니다. < 동갑내기 과외하기 >( 김경형 ) < 싱글즈 >( 권칠인 ) < 바람난 가족 >( 임상수 ) < 선생 김봉두 >( 장규성 )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 이재용 ) < 실미도 >( 강우석 ) < 오! 브라더스 >( 김용화 ) < 올드보이 >( 박찬욱 ) < 장화, 홍련 >( 김지운 ) < 지구를 지켜라! >( 장준환 ) < 클래식 >( 곽재용 ) < 황산벌 >( 이준익 )… 코미디, 로맨스, 호러, 스릴러, 드라마, 사극, 멜로 등 거의 모든 장르가 흥행작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 살인의 추억 >이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 현장 공개는 2002년 10월에 있었습니다. 해남 땅끝 마을이었는데요, 영화에선 30초 조금 넘게 나오는 단 두 컷을 위해 수십 명의 제작진이 그 먼 곳까지 간 거였죠. 취재진이 아침 일찍 광화문에서 모여서 현장까지 가는 데 5시간 가까이 걸렸던 걸로 기억 납니다. <살인의 추억>은 촬영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뒤졌는데요, 그 중 ‘끝판왕’이 바로 땅끝 마을 촬영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장 취재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한 후에 서울에 도착했을 땐 자정이 넘었던걸로 기억납니다. 먼 길을 가긴 했지만, 공개된 장면은 간단합니다. 서태윤(김상경)은 갈대밭에 사체가 있을 거로 예측합니다. 서류는 거짓말을 안 하니까요. 그래서 대규모 수색을 벌이지만, 박두만(송강호)과 조용구(김뢰하)는 길 한 켠에 차를 세우고 실뜨기나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서태윤과 박두만의 극명한 대조를 보여주는 장면이죠. 간단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슈퍼크레인을 사용한 이 장면의 촬영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컷을 끊지 않고 하나의 테이크 안에 그 모든 상황을 담아야 했기 때문이죠. 감독들에게 여러 스타일이 있지만, 현장에서 봉준호 감독은 마치 친절한 선생님 같았습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조목조목 설명합니다. 범죄영화에 대한 그의 관심은 아마도 데뷔작인 < 플란다스의 개 >(2000)부터 시작됐을 텐데요, <살인의 추억>에 대해선 “1980년대를 재현하되 기억에 의존한 묘사가 되기를, 그래서 현재와의 거리감은 더 증폭되기를 원한다.”고 밝혔습니다. 현장의 든든한 베테랑, 김형구 촬영감독과 이강산 조명기사입니다. 두 분의 파트너십은 김성수 감독의 영화에서 빛을 발했는데요. 단편 < 비명도시 >(1993)부터 시작해 < 비트 >(1997) < 태양은 없다 >(2000) < 무사 >(2001) < 영어완전정복 >(2003)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 괴물 >도 두 장인의 콜라보였고요. < 아름다운 시절 >( 이광모 , 1998) < 박하사탕 >( 이창동 , 2000) < 봄날은 간다 >( 허진호 , 2001) < 역도산 >( 송해성 , 2004) 등도 김형구-이강산의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강산 조명기사는 2006년 52세의 젊은 나이에, <괴물>을 유작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살인의 추억> 현장엔 외국인 스태프가 있었습니다. 조명부의 무라치 히데키 씨는 <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허진호)를 보고 한국영화에 매료되었고, 30대 중반의 나이에 <살인의 추억> 현장까지 이르렀습니다. 실뜨기는 원래 시나리오엔 없었던 부분인데, 촬영 당일 아침 봉준호 감독이 설정했습니다. 그래서 배우들은 틈나는 대로 실뜨기를 연습했는데요, 여기엔 김상경도 가세해 선배 김뢰하에게 실뜨기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날 김형구 촬영감독은 거의 온종일 크레인 위에 있어야 했습니다. 유려한 카메라로 갈대밭을 훑어 내려가는 컨셉트 때문이었죠. 한편 키 큰 갈대밭 때문에 슬레이트 치는 게 쉽지 않았는데요, 갈대밭 높이 때문에 전경으로 등장하는 엑스트라도 175cm가 넘는 사람들로만 동원해야 했습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살인의 추억>엔 당시의 물건들이 꼼꼼하게 등장합니다. 경찰차는 대우 맵시 차종입니다. 그리고 전경 버스 내부의 모습입니다. 새삼 놀라운 건, <살인의 추억>은 김상경의 ‘겨우’ 두 번째 영화라는 점이죠. 첫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 생활의 발견 >(2002)이었는데요, <살인의 추억>을 추천해준 사람이 바로 홍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김상경에게 봉준호 감독 한번 만나 보라며 “<살인의 추억>이 네 두 번째 영화로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영화에선 송강호가 선배 형사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김뢰하가 선배입니다. 한편 이날 촬영 때 김뢰하는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는데요, 실뜨기 장면을 잘 보시면 조용구 형사가 사탕을 먹고 있는 걸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당시 계속 당을 섭취해야 했던 김뢰하의 몸 상태 때문에 만들어낸 영화적 설정이었다고 하네요. 늦가을은 꽤 일찍 해가 떨어지는 계절입니다. 아직 촬영 분량이 남았는데, 서서히 석양이 지고 있습니다. 갈대밭 쪽에서 뭔가 찾았다는 고함 소리와 호루라기 소리가 들립니다. 실뜨기를 하던 두 사람은 일어서서 그쪽을 바라봅니다. 또 한 명의 희생자, 독고현순의 발견입니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gore : 1. 뿔로 들이받다 2. (특히 폭행당한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피, 선혈 (네이버 어학사전) 호러 영화엔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중에서도 한 축을 축축하게 담당하고 있는 것이 신체변형, 피, 보통 인체 안에 들어있어야 할 것들의 (본의 아닌) 외출을 다룬 것들이다. 이들은 하나의 장르라기보다, 슬래셔, 스플래터, 좀비물, 오컬트 등의 다양한 장르에서 그 표현 수위가 정도를 넘어서는 일종의 현상이며. 이 현상들은 보통 ‘고어’라는 말의 테두리 안에 정리되곤 한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이 분야만 선호하는 마니아들이 생각보다 튼실한 층을 형성하는 편이고, 이런 장르를 패러디해 먹고사는 ‘트로마(TROMA)’같은 레이블이 존재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한국 사정은 다르다. 오래전부터 영화 필름 자르기를 냉면집 면 자르는 정도로 생각하고 아주 편안하게 편집 및 삭제를 해온 덕에, 국내에 개봉된 이쪽 장르의 영화는 거의 전무하고 비디오로 출시가 된다 해도 장르의 맛을 느낄 수 있는 핵심 고명들은 다 심의위원 본인들만 맛본 채 거세되어 출시되곤 했다. 그들에게 감독의 의도나 팬들의 성원은 삼돌이 빤쓰 갈아입는 소리에 다름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예술 수준’과 ‘국민 정서’를 수호하는 수호신들답게 한낱 영화 따위의 운명은 창조주의 의도와 너무 쉽게 달라지곤 했던 것이다. 무시무시한 신체변형, 금기, 악취미 등을 다룬 지옥 같은 비주얼로 유명한 많은 영화들이 고향에서 머나먼 한국 땅에 와서 당치도 않은 코미디로 둔갑하는 꼴은 흔하디흔한 일이었다. (작고하신 루치오 풀치 영감님이 한국에 출시된 본인의 영화를 봤다면 ‘쟘-비’ 가 되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셨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그 어떤 장르보다 금기가 바로 핵심이 되는 호러 장르팬 들은 음지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고자’를 유행어로 밀고 있는 평론가, 방송인 THE ‘사마천’ 허지웅 씨가 운영했던 ‘호러타임즈’가 유명했고 PC통신의 여러 동호회들이 적은 회원 수 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필자는 나우누리의 ‘고블린’의 회원이었다.) 그러다 문득, 좁고 평화롭던 호러 커뮤니티가 (전보다는) 주목을 받게 되니, 세기말의 기운을 타고 흘러온 ‘엽기 열풍’ 탓이었다. 컬트니 키치니 평생 만날 일 없던 말들에 사람들은 큰 호기심을 가졌고, 그땐 호러 영화 커뮤니티에서 주최하는 상영회에도 새로 유입되는 관람객이 심심찮게 있었다. (최근에는 홍대 인근의 카페를 빌려 비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시네마 지옥’이라는 상영회가 아주 몹쓸 영화들을 틀며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오프닝 타이틀 그런 와중에 소문이 하나 돌기 시작했다. 사지절단류 호러의 기원전이자 고어라는 말이 부서진 마네킹으로 풀이되는 살육의 불모지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난도질 영화가 등장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게 < 씨어터 > 였다. < 싱글즈 >로 유명한 권칠인 감독이 기획하고 지금은 뭘 하는지 도통 알 길이 없는 박재범 감독이 연출한 < 씨어터 >는 아주 단순명쾌한 영화다. 영화 < 스크림 >의 특별 상영이 있던 밤, 나름대로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캐릭터를 가지고 극장에 모여든다. 깡패, 창녀, 고딩 커플, 벤처 기업 청년 CEO 등... 이렇게 쓰면 많은 것 같지만 그래 봐야 13명이다. 하여간 이 13명이 극장주의 살육게임에 캐릭터가 되어 하나하나 잔혹하게 살해된다는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죽게 될 면면의 인물들 이야기라고 할 것도 없는 설정이다. 이건 그냥 람베르토 바바의 < 데몬스 >에서 가져온 것이다. 감독은 이야기를 길게 풀 생각 없이, 논리나 현실에 단절된 상황을 설정하고 시원하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준비를 하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잔혹함에 굶주려 있는 관객들을(혹은 자신을) 위해 마구 달려줘도 좋을 텐데 그러지도 못한다. 이 영화는 박재범 감독이 사비를 털어 만든 초저예산 영화기 때문이다. 하여, 살해 장면은 맛있는 것을 아껴먹듯이 야금야금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빈 부분을 감독이 긴박감 있는 추격씬과 러브스토리 그리고 끝내주는 반전으로 채워주면 좋았겠지만 그는 개그대잔치를 선택했다. 돈이 안 들기 때문이었을 게다. 물론 공포와 웃음은 그 무엇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었지만, 관객 중 가장 험악한 인상을 가진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알고 보니 보람 재활원에서 탈출한 정신지체 장애인이라 영구 흉내를 내며 응애응애 해버리면 나도 슬프고 배우도 슬프고 장애인 인권도 슬픈... 그런 일이지만, 어쨌든 이 영화엔 쌍팔년대 유머가 넘실댄다. (만약 당신의 기억 속에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막 떠온 회를 깡패와 업소 여성이 극장 로비에서 쭈그려 앉아 맛있게 먹는 장면이 있다면, 100% < 씨어터 >를 본 것이다.) 극장 로비에서 회 먹기(좌측) /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정신지체 장애인이라는 것이 드러난 후 구구단을 필사적으로 외는 장면(우측) 그렇다고 살해 장면까지 어처구니없다는 얘긴 아니다. 영화에는 다양한 살해방법이 보인다. 깨진 형광등으로 입에 박아넣기, 동상 손가락에 눈 쑤셔 넣기, 죽은 척하는 소녀 발목 썰기(이에 이은 목 톱질!). 내장 꺼내 줄넘기하기 등등 아껴먹는다고는 하지만 적지 않은 수의 노골적인 살해 시퀀스가 영화를 수놓고 있다. 그 강도는 2000년 이전, 이후에 나온 모든 공포 영화를 통틀어도 대적할 영화가 없을 정도다. 한국 공포 영화는 언제나 ‘한’의 정서였다. 귀신이 나오거나, 아니면 한이 맺힌 인간이 괴물화 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 씨어터 >는 한국 공포영화사의 밖에 덩그러니 혼자 떨어져 나온 것처럼 그렇게 존재했다. 당시 ‘이상한 것’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증폭되면서 많은 (당시의) ‘이상한 영화’들이 주목을 받았다. <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 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 >나 <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 같은 영화들이 제작되고 혹은 개봉하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준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씨어터>는 가장 막가는 시도였다. 그 증거로 이 영화는 개봉도 못 했다. 감독은 애초에 개봉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처럼 찍고, 한국 최초(일 것으로 생각된다)의 인터넷 개봉을 시도한다. 현재는 사라진 도메인인 www.theater2000.co.kr 이라는 웹 사이트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이 외의 공식적인 상영은 2000년 제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있었을 뿐이다. 이후 암암리에 호러 영화 동호회에서 상영이 되었고, 2001년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잔혹한 장면들. 그러나 이 글에서 묘사된 많은 장면들은 비디오판에 아예 없거나 편집되어 있다.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비디오판 < 씨어터 >를 다시 보았다. 예상했던 바지만, 영화가 집중했던 부분은 모두다 날아가 버린 채, 썰렁한 개그만이 남아있었다. 개그연구가가 아니라면 굳이 이 영화를 ‘비디오’로 다시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찾아본 바에 의하면, 무려 ‘20분’. ‘20분’이 잘려나갔다. 20분이면 하나의 생명이 잉태될 수 있는 시간이며 어쩌면 사랑에 빠질 수도 있는 시간이고 그것이 어떤 ‘이야기’라면 아예 다른 것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씨어터>는 한국 영화사에 ‘한국 고어 영화의 시작’, 이른 이정표로서 우뚝 서 있고 싶었지만, 오히려 그 스스로 더 잔혹한 것은 한국의 영화 제작환경, 그리고 영화를 개똥만도 못하게 보고 있던 당시 검열기관의 무지함과 잔혹성을 보여주는 ‘현실 고어’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되었다. 이후 박재범 감독이 <씨어터 2.0>을 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 관람했고 1편에 비해 영 못 미친다는 평만 볼 수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조지 A.로메로는 <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으로 ‘좀비’를 탄생시키며 그 안에 매카시즘을 비유했고, 다리오 아르젠토는 < 서스피리아 >등을 통해 ‘공포’가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을 증명해 냈으며 루치오 풀치는 다양한 잔혹 영화를 통해 사지절단류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쾌감의 영역을 튼실하게 구축해냈다. 우리는 과거서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한국에서 공포영화는 안 돼’라는 이야기를 듣고 살았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이, 변변한 공포영화 한 번 나와 본 적이 거의 없다.(아주 가끔 좋은 공포 영화들이 나오고 있기는 하다. 분류가 애매하긴 하지만 < 독 >이나 < 불신지옥 >, < 기담 > 등이 좋은 예이다. 그러나 한국에 이러한 ‘장르’가 있다고 말하기엔 민망한 숫자이다.) 호러영화의 팬으로서, 언제쯤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멋진 스플래터(혹은 슬래셔) 영화를 볼 수 있을까? 피가 튀고 뼈가 보이며 내장이 흩날리는 그런 멋진 광경을 말이다. 유행이 너무 지나서 이제는 기대하지 말아야 할까나. ‘그래도 언젠간’이라는 마음으로, 그런 똘끼를 지닌 박재범의 후예가 나타나길 기대해 마지않는 것이다. 박동빈의 어제와 오늘 P.S : 이 영화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한 사람, ‘마징가’를 연기한 배우는 ‘ 박동빈 ’이다. 아침드라마 <사랑했나봐>에서 입에서 주스를 흘리는 장면으로 유명해진 바로 그 배우다. 세월이 얼마나 무서운지... 또한 미아리에서 근무하는 업소여성으로 등장하는 ‘장경희’씨는 2003년 S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해 개그우먼과 ‘미녀 삼총사’라는 걸그룹(일단 여자 셋이니)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애니메이션 성우에 힘쓰고 있다. 매점 주인으로 나오는 서범석씨는 뮤지컬계에서 한몫하시는 분 같고... 어찌돼도 소식을 들을 수 없는 것은 감독 박재범 뿐이니 답답할 노릇이다. 언젠가는 꼭! < 씨어터 >의 무삭제판이 공개되길 바란다. 박동빈 장경희 노진원 감독 박재범 각본 박재범 개봉극장 www.theater2000.co.kr (온라인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