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를 아십니까
- 감독
- 정경수, 황원, 조일수, 김세원
- 제작년도
- 1986
1984년도에 완성된 이두용 감독의 가족 드라마 < 장남 >은 1970년대에 개성 있는 저예산 액션영화로 유명해졌지만 예술성으로는 큰 평가를 받지 못했던 감독이 1980년대에 만들어냈던 문제작의 연속들 가운데 놓이는 작품이다. 제목에서 파악되듯이, 80년대 경제성장의 열차를 타고 급격하게 변모된 도시 생활상을 배경으로 집안의 무게를 짊어진 장남과 부모세대의 갈등을 그린 건전한 가족 드라마로 내심 판단해버리고 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장남>은 이러한 우를 범해서는 안 될 문제작 중의 문제작이다. <장남>은 < 최후의 증인 >(1980), <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1983), < 뽕 >(1985)과 같이 이두용의 영화작가로서의 자의식을 담은 작품이며, 2000년대 이후 재발견되고 있는 이두용의 작가성 연구에 있어 반드시 가치 평가되어야 할 영화다. 이두용 감독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영화화된 <장남>은 1980년대 초중반 급격한 도시화율과 함께 각종 분리와 분화로 인해 도시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시대를 배경으로 놓는다. 강남 아파트 단지 개발로 인해 중산층 모두가 아파트 생활자를 꿈꾸던 때, 농어촌 정책 부재로 삶의 터전을 떠나버려야 했던 수많은 고향 이탈자들이 서울로 몰려들며 서울은 더욱 복잡해지고, 더욱 거대해지고, 더욱 속도가 빨라지며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국민들의 비판 의식을 차단하기 위해 고안된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으로 인해 < 애마부인 > 류의 에로영화가 최고 흥행 장르가 되었던 것과 동시에, 도시 중산층의 민주화 지향은 <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 류의 사회비판 멜로를 찾고 있었다. 억압과 유화의 위로부터의 문화정책과 맞서 아래로부터는 저항의 문화가 확산되어 가고 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한국영화에 곧잘 투영되었다. <장남>은 그 경향성을 반영한다. 고향 마을이 수몰지구로 선정되어 농사를 짓고 살아가던 노부모( 김일해 , 황정순 분)가 갑작스럽게 서울로 상경하게 되면서 이야기의 갈등 구조가 형성된다. 장남( 신성일 분)은 컴퓨터 회사의 유능한 기술개발자이며 교사인 아내( 태현실 분) 덕택에 해외 유학도 다녀오고 서울 사대문 안에 이층 양옥집도 소유하고 있는 자수성가한 현대인이 표본이다. 그에 비해 두 남동생과 두 누이들의 생활은 많이 처진다. 머리 좋은 장남에게 가족의 모든 지원을 쏟아 부었다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뻔한 전사들을 영화는 과감히 생략하고 부모가 상경한 현재 일어나는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장남과 여러모로 대조적인 차남( 김희라 분)은 자신의 콤플렉스 때문에 걸핏하면 아내를 때리고, 첫째 형의 지원 덕에 대학을 마치고 사회생활 중인 막내아들(김성수 분)은 착하지만 집안 내분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 일이 바쁜데다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부모를 홀대하는 듯한 장남이 못마땅한 누나( 문정숙 분), 그리고 가난한 처지에도 자식 욕심이 많은 여동생이 있다. 그 누구도 부모와 함께 지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익숙하지 않은 도시 생활 속에서 힘겨워 하는 노부모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장남은 부모 형제가 함께 살기 위해 오래전에 계획했던 집짓기를 실행에 옮긴다. 그러나 행복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 터. 집짓기에 매진 중인 상황에서 어머니가 지병으로 임종하고, 불행은 겹쳐 제주도 지사로 파견나간 장남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죽은 어머니를 담은 관이 고층 아파트 곤돌라를 타고 흔들리며 아래로 내려오고 있던 순간이다. 장남은 죽어서 철사 줄을 타고 내려오는 비극만은 막아달라던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전형적인 가족 갈등을 다루지만 <장남>은 플롯 전개나 캐릭터 표현에서 전형성을 탈피한다. 액션과 미스터리로 단련된 감독의 장기는 이 평범해 보이는 가족 드라마를 보다 묵직한 사회 드라마로 만든다. 그로테스크한 무드 속에 쉽게 예측되지 않는 복잡한 캐릭터들의 향연을 지켜보는 재미가 풍성한데, 전형적으로 전개되는 듯한 서사 과정에 놓인 개별 캐릭터들의 사사로운 단편들은 이두용 영화다운 어두움과 메시지의 성공적 결합의 한 요소들로 기능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가족들의 수많은 요구 때문에 지친 장남이 요정 여성과 맺는 부적절한 관계 묘사, 늙은 부모의 눈에 비친 어지러운 도시 생활상을 묘사하는 촬영 기법과 사운드 운용, 너무 늦은 도착 때문에 좌절하는 아들의 비통함을 표현하는 편집 기법 등은 한 장면 한 장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가족 간 갈등을 유발하는 악역인 것 같은 첫째 며느리의 난데없는 분노 표출은 보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하지만,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게끔 서사는 개연성을 가지고 전개되며 이로 인해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축한다. 자식들이 나빠서 부모를 죽음으로 몬 게 아니다. 이들은 모두 최선을 다했으나 욕망과 생활이 어지럽게 얽힌 치열한 도시 생활에 여유가 없다. 자신의 삶의 터전으로부터 쫓겨난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들의 도시적 삶에 적응할 힘이 없다. 애정과 혈연으로 감내하기에는 두 세대의 문화와 인식 차가 크고, 이 모든 것을 봉합한 채 함께 모여 살고자 했던 장남의 꿈은 헛된 꿈일 뿐이다. 완성하지 못한 온가족만의 대저택, 아들의 품에서 마지막을 고하고자 했던 어머니의 실현되지 못한 희망은 현대인의 상실감에 대한 은유다. 울리기보다는 차갑고 냉정한 현실에 멍해지게 하는 영화는 각자 가슴 속에 뼈아픈 메시지를 품고 다시 일어서게 한다. <장남> VOD 보러가기 KMDb VOD YouTube VOD (복원본)
이두용 감독의 <뽕>은 1980년대 ‘토속적 에로티시즘’의 대표작으로 각인된 영화다. 이 영화는 당대 흥행에 크게 성공한 것은 물론 국내외 영화제에서도 여러 상을 탔음에도 불구하고, 비평에서는 ‘오락적 흥미 본위의 성애물’로 분류되며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후 <뽕2>(1988), <뽕3>(1992), <1996 뽕>으로 이어지면서 ‘뽕’이라는 말이 지닌 원초적 어감이 강화되어 ‘성애 영화’로서의 이미지가 고착되었고, <변강쇠>(1986) 시리즈와 함께 계보를 형성하는 희극적 에로티시즘 영화의 대명사가 되었다. <뽕>은 왜 진지한 비평의 대상이 되지 못했나 그러나 따지고 보면 <뽕>은 나도향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문예영화다. 게다가 이두용 감독은 <피막>(1980)으로 1981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특별감독상을 수상하고, <물레야 물레야>(1983)로 1983년 칸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입선한 ‘국제적인’ 감독이었다. 또한 주연배우 이미숙은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4)로 여우주연상을 휩쓸고, <고래사냥>으로 흥행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여배우였으며, 각색자 윤삼육은 특히 사극 장르에서 재능을 발휘한 당대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였다. 요컨대 이 영화는 좋은 원작을 저본으로 삼아 당대 최고의 영화 인력들이 모여 만든 야심작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진지한 비평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토속적 에로티시즘 영화의 계보는 1960년대 <산불>(김수용, 1967)이나 <내시>(신상옥, 1968) 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그것이 1970년대에 제대로 발로되지 못하며 도착성으로 저류하다가 1980년대 3S정책과 컬러TV 보급의 영향, 그리고 ‘국풍(國風)’의 흐름 속에서 전근대(적) 사회 여인의 수난을 알리바이로 삼는 성애영화로 발현되기에 이른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를 비롯해 <물레야 물레야> <자녀목> <땡볕> <어우동> <씨받이> 등이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제작된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은 한결같이 비극으로 점철되며 비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에 대한 비판의 자세를 취했고 나름대로 진지한 시선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에 비해 <뽕>은 웃음을 주조로 삼으며 뚜렷한 주제의식을 표출하지 않는다는 점에 차이가 있었다. 한국영화사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 장르는 예술로 평가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웃음은 ‘단순한 오락’이고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가벼운 해소’로 인식되며 코미디 영화는 언제나 ‘예술’의 범주에서 쉽게 제외되곤 했다. <뽕>이 문예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통속적 성애물’로 자리매김한 것은 그러한 인식에 연유하는 바 크다. 그리고 이 지점이 다른 영화들에 비해 <뽕>이 가볍게 취급되거나 본격적인 분석의 대상이 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결속되기 힘들었던 두 요소의 병치 그러나 ‘웃음’이야말로 <뽕>에서 공존하기 힘든 불균질한 요소를 결속하는 아교이자 영화에 활력을 제공하는 원천으로 기능하며 이 영화가 성취하는 신선함의 중추를 담당한다. <뽕>은 웃음을 기반으로 이전 영화에서 결속되기 힘들었던 두 요소, 즉 ‘화냥녀 아내 안협집’과 ‘독립운동가 남편 삼보’를 병치해 의외의 효과를 창출한다. 원작에서 삼보는 그저 “땅딸보 오리궁둥이 투전꾼”으로, 삼돌에 의해 마당에 패대기쳐지고 그 화풀이를 아내에게 하는 못난 인물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삼보를 도인의 품격을 풍기는 정체불명의 룸펜으로 만든다. 삼보는 무심한 듯 사내답고, 초연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비애에 젖어 있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그가 나타날 때마다 뒤따르는 일본 헌병은 그가 일제강점기 요주의 인물임을 암시한다. 이러한 암시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확증에 가까워지고, 이에 따라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에로티시즘보다는 안협집이 처한 현실적 맥락, 즉 남자가 제 구실을 못하는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여자의 상황이 부각되는 방향으로 서서히 전환된다. 이에 대해 개봉 당시에는 “분망한 섹스 행각과 시대상이 상치”되고, “뜨거운 장면 뒤에 각박한 생활을 연결시킴으로써 섹스 장면을 포장”하고 있으며, 이는 “사실성이나 예술성과는 처음부터 거리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생활인이자, 팜므파탈이자, 억척스러운 그러나 프랑스혁명 직전 귀족사회의 ‘위험한 관계’를 19세기 조선사회의 ‘스캔들’로 가져왔을 때 의외의 결과가 빚어지며 조선사회를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지평이 열렸듯이, 이 영화도 웃음을 수반하는 성애놀이로 식민지 시대를 투과시킴으로써 ‘엄숙한 독립운동의 시대’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조망을 가능케 한다. 존경받아야 하는 독립운동가는 아내의 성매매로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는 ‘못난 남편’이 되고, 남자가 제 구실을 못하는 시대에 정조를 파는 일은 비단 비천한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독립운동’의 의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초반에 삼보를 뒤따르는 헌병이 등장하자 삼돌(이대근)이 나서서 정중하게 인사하는 장면이 있다. 삼돌은 안협집이 한사코 마다하는 사내로 끝에 가서 삼보에게 안협집의 행실을 고해바치는 비루한 인물이다. 이러한 삼돌의 패배는 초반 장면에서부터 암시되는 셈이며, 이는 삼보의 행동이 지니는 명분에 대한 공인, 그리고 그에 따라 안협집의 행동에도 정당성이 부여되는 연관 고리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러한 명분과 정당성을 강화하는 것은 삼보의 존재감과 안협집의 매력이다. 삼보는 영화의 맨 앞과 맨 뒤에 등장해 방랑시인과 같은 카리스마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삼보의 등장은 전체 구조에서 수미상관을 이루며 영화의 몸통을 이루는 안협집의 행동에 강한 존재감을 드리우고 동시에 그것을 감싸 안는 역할을 한다. 한편 안협집은 특유의 당당함으로 영화 전체를 주도한다. 한국문학사에서도 안협집은 두드러지는 여성 인물이다. <뽕>과 동시대에 나온 단편소설에는 ‘복녀’(<감자>), ‘계집’(<물레방아>), ‘아내’(<소낙비>) 등의 이름으로 무능한 남편과 돈 때문에 성매매를 하는 아내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들은 상대가 누구냐에 관계없이 돈에 매달리는 데 비해 안협집은 “정조가 헤프기로 유명한 만치 또 매몰스럽기도 유명하여 한번 맘에 들지 않는 것은 죽어도 막무가내여서 만 냥 금을 주어도 거들떠보지 아니하고”, “맘에 드는 서방질은 부정한 일이 아니요, 죄가 아니요, 모욕이 아니나 마음에 없는 놈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 당하는 것은 무서운 모욕”으로 생각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안협집이 영화에서는 잇속과 셈속에 밝은 생활인이자, 계층과 연령에 상관없이 마음만 먹으면 남성을 좌지우지하는 팜므파탈이자, 자신의 매력을 질시하는 동네 아낙들의 횡포에 맞서는 억척스러운 여성으로 거듭난다. 햇발 아래 던져놓은 여성의 생명력 이 독보적인 캐릭터가 시대와 만나면서 흥미로운 충돌과 균열을 드러내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삼보는 안협집의 행실을 폭로한 삼돌을 곤죽으로 만들고 나서 아내를 때리며 뽕밭에 몇 번 갔느냐고 다그친다. 이에 안협집은 ‘딱 한 번’이라고 대답한다. 이는 웃지 않을 수 없는 정황을 연출하며 ‘무게 있는 남편’, 혹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권위에 가려져 있던 삼보의 ‘인간적 면모’를 드러낸다. 그리고 안협집의 개성과 생명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준다. 마지막에 남편이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안협집의 뒷모습은 비극적 수난 여성의 정조를 풍기기는 하나, “뽕을 따야 님도 따지”라는 말을 남기고 유유히 사라지는 삼보의 뒷모습 위로 흐르는 타령의 활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협집의 생명력이 변함없이 지속될 것임을 암시한다. 이로써 이 영화는 민족, 독립과 같은 엄숙한 영역에 대해 다시 생각케 하는 동시에 음화와 같은 밀실의 상상력으로만 저류했던 성적 욕망을 여성의 생명력과 중첩시켜 햇발 아래 던져놓는다. 이분법의 균열과 교란, 그리고 역사의 엄숙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냉전체제의 종식 이후 그것도 2000년대 들어서야 ‘퓨전’ 혹은 ‘혼성’의 이름으로 본격화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영화에서 불균질한 요소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지점은 이질성의 모순과 충돌이 빚어내는 포스트모던적 의외성의 선취라 할 만하다.
배창호 감독은 잘나가던 시절, 그러니까 1980년대에 ‘한국의 스티븐 스필버그’로 불렸다. 당시의 배창호라면 < 꼬방동네 사람들 >(1982) < 적도의 꽃 >(1983) <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1984) 등 사회성 짙은 영화의 감독이었는데 < 이티 >(1982) < 레이더스 >(1981) 등 오락 장르 영화를 만들던 스티븐 스필버그 와 같은 부류로 묶이다니, 이 무슨 꼬방동네 이티 같은 발상인가 말이다. 사연이 있다. 때는 1984년, 북미 개봉 2년 뒤에 한국에서 공개된 < 이티 >는 전국에 이티 열풍을 불러오며 청소년 관객을 열광시켰다. 그리고 그해, 배창호 감독은 < 고래사냥 >으로 한국영화 전체 흥행 1위의 기록을 세우며 흥행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바로 ‘흥행’이라는 키워드가 배창호 감독을 한국의 스티븐 스필버그로 명명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마케팅업자의 단순한 발상이었지만, 당대의 한국 영화 팬들은 <고래사냥>을 <이티>만큼 재밌게 보았다. 내가 < 고래사냥 >을 본 건 극장이 아니라 몇 년 후 TV를 통해서였다. 아마도 국민학교, 엇! 이렇게 연식이… 음, 초등학교 5, 6학년 때인 걸로 기억한다. 힘 약한 우리의 주인공들이 거구의 깡패와 벌이는 추격전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 이티 >에서 이티를 고향 별로 보내려고 마을 아이들이 정부 소속 요원들을 피해 접선 장소로 가는 이야기만큼이나 흥미로웠다고 쓰고 보니 나 역시 단순하네… 아무튼, 영화의 내용인즉, 소심한 병태( 김수철 )는 거지꼴의 민우( 안성기 )에게 끌려 창녀촌에 갔다가 말을 하지 못하는 춘자( 이미숙 )를 만난다. 춘자에게 한눈에 반한 병태는 엄마를 보고 싶다는 그녀의 바램을 이뤄주기로 한다. 병태는 민우의 도움으로 춘자를 창녀촌에서 구출하는 데 성공하지만, 깡패들( 이대근 이 이 무리의 두목을 연기했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걸핏하면 시각장애인 행세에, 시도 때도 없이 각설이 타령을 불러대는 민우의 매력에 빠져, 지금도 아름다우시지만, < 고래사냥 > 출연 당시에는 더 아름다우셨던 춘자 역의 이미숙 의 미모에 눈길을 뺏겨, <고래사냥>을 보고 있으면서도 불만이었던 하나는 “난 고래를 잡아 올 거예요” 병태의 뜬금없는 대사였다. 사실은 병태 얘가 한몫 잡으려고 춘자 핑계로 우도에 가서 민우의 도움을 받아 고래를 생포하나 보다, 어린 마음에 생각했더랬다. 근데 웬걸, 잡으라는 고래는 안 잡고 춘자를 무사히 집으로 데려다준 후 민우가 병태에게 하는 말, “병태 너는 춘자의 마음속에 예쁜 고래로 남아 있을 거야” 그럼 병태가 사람으로 환생한 고래였던 거야? 깊은 충격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초등학생의 순진한(?) 상상력은 실제 고래가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한 반발로 < 고래사냥 >을 그냥 재밌었던 영화로만 기억에 남겼다. 2008년 5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렸던 배창호 감독의 특별전을 기념해 한때 기자로 재직했던 영화지에서 20페이지 대특집을 마련한 적이 있다. 그때 배창호 감독은 “영화가 치료이자 위로가 된다고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주고 싶은 위안은 당신 안에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진정한 힘이 있다는 것, 자연치유력이 있다는 것, 일깨우는 사랑이 있다는 것이고, 이를 영화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은 거야. 그게 지금까지 내가 영화에 담아낸 것들이지” 이게 배창호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때 < 고래사냥 >은 그의 필모그래프에서 가장 부합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고래사냥>의 ‘고래’는 갖기 힘들지만, 손에 넣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어떤 가치의 상징이다. 이 영화가 만들어졌던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가 그랬다. <고래사냥>의 민우는 병태가 좋아하는 여자와 짝을 맺어주기 위해 대학교를 찾는다. 그때 민우를 보고 어느 교수가 아는 체를 하지만, 민우는 앞을 못 보는 척하며 자기 정체를 부정한다. 민주주의가 유린당하고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하던 전두환 정권 당시에 많은 이들, 특히 젊은이들이 느꼈을 절망감이 민우와 병태에게 투영되어 있다. 민우는 그런 시대의 검은 공기에 좌절하여 속세로부터 거리를 둔 인물처럼 보인다. 고래를 잡을 거라며 입버릇처럼 말하는 병태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그 어느 사람보다 크게 느껴진다. 춘자 역시 꽤 상징적인 인물처럼 보이는 건 말을 하지 못하는 설정 때문이다. 이는 마치 억압적인 정권 아래에서 할 말을 하지 못하는 민중의 상징으로 보이는데 민우가 부러 시각 장애인 행세를 하는 맥락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들은 서울을 떠나 찬 바람이 쌩쌩거리는 길을 걷고 또 걸어 따뜻한 남쪽 우도로 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손에 넣고 싶지만, 당장에 손에 넣을 방법이 없어, 어디로 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계속해서 가야만 하는 운명. 병태를 연기한 김수철 은 이 영화에 출연하던 당시 아버지의 심한 반대로 음악을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5개월 동안 촬영진과 함께하며 영화음악도 담당했던 김수철은 명곡 <나도야 간다>를 완성했다. ‘나도야 간다 나도야 간다/ 젊은 나이를 눈물로 보낼 수 있나/ 나도야 간다 나도야 간다/ 님 찾아 꿈 찾아 나도야 간다’ < 고래사냥 >을 오랜만에 보며 돌이켜 생각해 보니 한국의 현대사 자체가 고래를 사냥해온 역사라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 직선제의 고래를 잡았다가 놓쳤던 아픔이 있고, 검열의 그물에 갇혀 허우적거리던 표현의 자유라는 고래를 구출한 경험도 했고, 전(前)대통령과 그 비선에 고래를 빼앗겨 다시 찾아 오기 위해 광장에 모였던 기억도 불과 얼마 전이었다. 배창호 감독은 <고래사냥>을 비롯해 자신의 영화에 대해 이런 얘기를 했다. “인간이라는 것이 어디 안주할 수 없다는 것, 참 존재, 가치를 찾을 때까지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런 삶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로드무비도 몇 편 했고.” 그렇다, 병태와 춘자와 민우의 <고래사냥>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