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희
- 감독
- 신새벽, 김소정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신혜경, 김재록, 최우근, 홍석연, 서석규, 김미숙, 김영희
복장전환(cross-dressing) 영화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1960년대에 정점을 찍는다. 복장전환 영화는 당대 성별성의 역동적 변화에 대한 신경증적 반응이자 퀴어적 놀이터로 작동했다. 이들 영화는 크게 남장여자와 여장남자 컨셉으로 나눌 수 있는데, 대체로 전자는 진지한 사극에서, 후자는 그보다는 가벼운 코미디에서 발전한다. < 별 >(1961)과 < 십오야(의 복수) >(1969) 그리고 보다 최근에는 < 미인도 >(2008)와 < 도리화가 >(2015)처럼 남장여자 사극은 가부장제 비판과 남성동성애의 서브코드를 수반한다. 과거를 시대배경으로 하는 사극의 특성상 강력한 가부장제 체제에서 여성의 사회적 활동과 역할은 극도로 제약되고 여성 주인공은 남장을 하고 남성동성사회에 침투할 설득력을 얻는다. 특히 1960년대 남장여자 사극의 주인공은 남성성의 과시와 영웅적 모험을 스펙터클화하기 위해 무사로 성장하는 서사가 두드러졌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십오야(의 복수)>가 대표적이다. 적대적인 두 가문에서 동시에 태어난 남녀 아이가, 남아선호를 이유로 뒤바뀌고 여자아이는 상대방 가문의 아들로 키워져 복수의 칼을 간다. 이 과정에서 뒤바뀐 두 남녀는 사랑을 느끼지만, 남장여자인 매화(남정임)가 마지막에 남자의 부모가 자신의 친부모라는 비밀을 알고 나서도 살해를 감행하자 각자의 길을 떠난다. 성별뿐만 아니라 복수의 대상까지 전환된 상태에서 남아있는 감정을 해소하지 않은 채 끝나는 결말은 두 주인공과 관객 모두를 혼란과 당혹 속에 빠트린다. 매화는 그녀가 남자가 아닐 거라는 다른 남성들의 끊임없는 의심 속에서도 그리고 근친살해라는 도덕적 문제에도 끝내 남자의 자리를 고집한다. 마치 그녀의 목표는 사랑하는 남자도, 가문의 복수도 아닌 남성성의 획득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매화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남장을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에게 특히 로맨스의 대상인 거목(남진)에게, 그가 진짜 남자인지를 의심받으며 패싱에 자주 실패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매화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그녀의 당황하는 표정과 여성스러운 외모를 스펙터클화한다. 즉 매화는 이성애 로맨스 대상으로서 그녀의 여성성을 해칠 정도로 남장이 충분치 않다. 여기서 타인의 의심스러운 시선에 남장이 벗겨지는 순간의 취약함의 노출과 여성성이 교묘하게 결합된다. 그녀의 남장은 지워지지 않는 강력하고 진정한 여성성을 강조하는 데 이용된다. 이렇게 대부분의 남장여자 사극이 ‘남성동성애’라는 방해물을 ‘극복’하고 최종적으로는 진정한 이성애적 결합을 목표로 달려가긴 하지만, 시각적으로 남성동성애적 환상이 순간적으로 무대화된다는 면에서 그리고 <십오야>처럼 자신의 남성성을 고집하는 서사처럼 퀴어적 실천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지정성별이 남성인 주인공이 여장하는 영화는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코미디 장르가 주를 이루며, 여성으로 패싱될 때 전환된 욕망, 관계, 직업유지 등을 생활밀착형 에피소드로 상세하게 묘사한다. 남자들이 여장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직업이나 생계다. < 남자는 안 팔려 >, < 내 것이 더 좋아 >, < 남자와 기생 >, < 신입사원 얄개 >, < 치마 입은 남자 >의 주인공은 모두 남자로서 직업을 찾거나 거주지를 찾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해 여장을 한다. 이 영화들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뤄지던 1960년대 도시는 여자들이 살기에 더 좋은 장소라고 주장한다. 영화에서도 묘사되다시피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여성 일자리가 증가했지만 주로 제조공장, 식모, 비서, 판매원, 공연, 미용, 버스 안내양, 성판매 등의 특정 직업에 국한되었다. 노동조건이 좋지 않아서 남성이 꺼리는 직업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직업에서는 남성이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여장남자 영화의 남자 주인공들은 자신이 취직을 못 하는 것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고, 도시의 젊은 여성을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침입자로 묘사한다. 산업 시스템이 변하고 도시의 구성이 달라질 때, 성 역할도 변할 수밖에 없다. 도시화가 촉진되면서 전통적 남성 주체성은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여장남자 코미디는 남성들이 자신의 남성성이 비난받는 이유를 여성에게서 찾을 수 있는 서사를 제공해 주는 동시에 근대 도시에 더 적합한 유연하고 '여성적인' 새로운 남성성을 연습할 수 있는 쿠션이 되어 준다. 변화에 대한 부적응 그 자체와 적응을 위한 고투로 인해 발생하는 고단함은 기존 규범에서 벗어난 신체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발생시킨다. 한편 여장남자 코미디는 근대화된 도시에서 여성의 노동시장의 진입에 대한 남성들의 두려움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그것을 조정하고 협상하려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영화들은 여장남자 주인공의 좌충우돌 해프닝을 통해 여성의 직업 세계에서 일어나는 갖은 차별과 혐오를 폭로하고, ‘여성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또한 < 여자가 더 좋아 >나 < 남자는 절개 여자는 배짱 >, < 내 것이 더 좋아 >, < 남자와 기생 >, < 치마 입은 남자 >처럼 여장남자들은 이미 주류 남성들과는 이질적인 ‘여성적인’ 남성이다. 그들은 다른 남성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자신을 스펙터클화 하는 신체적 퍼포먼스에 능하며, 요리와 뜨개질을 좋아하고, 성적으로 여성에게 위협적이지 않고 잘 어울린다. 여장한 이후에는 실제로 ‘독특한’ ‘본 적 없는’ ‘다른 여자와는 다른’ 여자로 남자의 인기를 독차지 한다. 여장남자에 대한 다른 남자들의 성적 접근은 대부분 성폭력에 해당하지만 말이다. <내 것이 더 좋아>(이형표, 1969)는 앞서 말한 주제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퀴어적 관계를 가시화하는 영화다. 고향을 떠나 상경한 성춘(서영춘)은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난 봉수(구봉서)의 집에 얹혀살면서 그의 아내 노릇을 한다. 봉수는 헤어진 전 아내의 체구가 성춘과 비슷하다며 이미 내재해 있는 그의 여성성을 발견한다. 우리는 봉수의 전 ‘아내’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시스젠더인지 트랜스젠더인지, 혹은 크로스드레서인지 알 수 없다. 낯선 성춘을 거리낌 없이 집으로 데려오는 봉수의 태도나, 체격이 비슷했음을 강조하는 것을 봤을 때 봉수의 전 파트너 역시 ‘남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성춘은 주인집에 들키지 않기 위해 완벽한 ‘아내’ 역할을 하려 노력한다. 그러던 중 봉수는 그들의 집 건너편에 레즈비언 커플인 강자(이금희)와 분임(고은아)이 살고 있다고 알려준다. 성춘은 남성적인 ‘바지씨’ 강자와 여성적인 ‘치마씨’ 분임을 관찰하며 ‘아내’ 역할을 수행한다. 봉수와 성춘에게 이 레즈비언 커플은 전통적 성역할을 모범적으로 제시해주는 좋은 예이다. 이 영화는 오프닝부터 여성성은 ‘구성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눈, 입술, 코의 클로즈업은 주류 카메라가 여성성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시골에서 올라온 성춘의 무지를 드러내기 위해 삽입한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서울에 올라와 쇼윈도우 너머에 있는 마네킹을 처음 본 성춘은 ‘고운 여자가 갇혀 있다’고 착각한다. 여성성이라 것이 프레임, 즉 무대에서 수행되는 것이라는 것을 성춘의 순진함을 이용해 형식화한다. 또한 봉수와 성춘이 함께 데이트를 나간 장면에서 둘은 영화관을 지나가는데 간판에 구봉서와 서영춘이 주연한 ‘내 것이 더 좋아’라는 제목의 영화가 걸려 있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프레임 속의 프레임, 영화 속의 영화를 통해 젠더, 특히 여성성이 수행적이고 구성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만든다. 이중 가장 중요한 프레임은 바로 강자와 분임이 사는 집의 창문이다. 봉수는 성춘이 다른 아내들과 달리 애교가 없다고 타박하고 성춘은 건너편 창문을 통해 분임의 얼굴표정, 제스처, 분임이 강자에게 하는 ‘애교’를 모방하고 학습한다. 성춘은 분임이 강자에게 회사에 잘 다녀오라고 키스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출근하는 봉수에게 키스를 해준다. 성춘과 분임이 동일하게 가수를 꿈꾸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퍼포먼스가 강조되는 가수라는 꿈은 분임의 여성성도 자연스러운 것이라기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을 수행하고 노력한 결과라는 것을 드러낸다. 성춘이 옆집 창문에서 보이는 분임의 제스처와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고 따라할 때, 창틀로 프레이밍된 그리고 무대화된 여성성의 수행은 정확히 이중적으로 영화적인 것이 된다. 창문은 젠더의 표정을 드러내는 ‘얼굴’이 된다. 분임을 보는 성춘과 성춘을 보는 관객. ‘여성적인 남자’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성을 학습하고 장착하는 과정은 충분히 퀴어적이다. 하지만 다른 복장전환 영화들처럼 이 영화도 성춘의 여장을 벗겨내고 이성애 관계로 짝을 교정하면서 퀴어적 실천과 욕망을 봉합하려 한다. 결말에서 성춘은 분임과, 봉수는 강자와 새롭게 맺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 새로운 짝짓기는 이성애적 결합이나 ‘규범적 정상성’으로 보기에 매우 의심스럽다. 커플 스와핑이라는 실천과 이성애적 교정을 통해 오히려 동성애적 함의가 더 짙어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분임은 성춘을 여자로 알면서 좋아하게 되었다. 또한 성춘은 부부란 모름지기 아들 딸 낳고 살아야 한다며 ‘정상성’을 강조하고 공원에서 분임에게 해코지 하는 남자들을 물리치며 자신의 ‘규범적 남성성’을 과시한다. 하지만 분임을 괴롭힌 남자들은 성춘이 돈을 주고 산 사람들이다. 이 장면은 남성성 역시 수행되고 구성됨을 강조할 뿐이다. 한편 봉수와 강자는 더 이상 고분고분하지 않은 ‘아내들’ 욕을 하며 친해지게 된다. 봉수는 수염 많은 집사람보다 피부도 부드러운 강자가 더 마음에 든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강자도 성춘처럼 봉수와 이어지기 위해 치마를 입고 귀걸이를 하며 자신의 여성성을 찾으려 하지만 이 역시 여장을 한 부치처럼 보일 뿐이다. 결국 강자는 봉수의 집에서, 성춘은 분임의 집에서 함께 산다. 마지막에 영화는 두 집의 창문을 번갈아 보여주며 끝난다. 표면적으로 보기에 규범적 정상성을 되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의 창문을 통해 여전히 서로를 모사하고 구성하며 초월해 나가는 방식으로 젠더(적 관계)가 구성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동일하게 남성성을 수행하는 봉수와 강자, 여성성을 수행하는 성춘과 분임은 어느 커플보다도 더 동성애적이다.
이 사회의 불균형을 이장하다 “장남도 없이 (어떻게) 무덤을 파냐!” 큰아버지( 유순웅 )의 불호령에 아버지 묘 이장을 하러 고향 마을에 막 도착한 네 자매들은 연락이 되지 않은 남동생을 찾아 다시 발길을 돌린다. 그들이 찾아야 하는 장남, 그 이름이 하필 ‘승락’이다. 혜영( 장리우 ), 금옥( 이선희 ), 금희( 공민정 ), 혜연( 윤금선아 ). 승락의 위로 줄줄이 누나들이 모두 왔는데도, 승락의 승낙 없이는 이장이 불가능한 사회. 승락이 아니라 혜연이 사정상 못 왔다면 이장은 진행되었을, 이곳은 뿌리 깊은 가부장제로 여전히 갈등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딸 넷에 막내아들. 이 집은 말 그대로 아들 낳으려 계속 출산을 했을, 오남매는 구성 자체가 딱 가부장제 가족이다. 이쯤 되면 막내딸 이름이 ‘다음 아이는 아들을 얻겠다’는 염원을 담아 딸 이름은 희생되는 ‘후남’ ‘차남’ ‘필남’이 아닌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걸까. 어쨌든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등 온갖 방법을 다해 찾아낸 승락이 화면에 등장하는 건 영화가 시작된 지 44분 36초 만의 일이다. 전체 러닝타임 94분 중 거의 절반이 지나서야, 카메라는 노트북 앞에 앉은 승락의 뒤통수를 필두로 그의 손가락을 훑어 간신히 그 얼굴을 드러낸다. 그것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이 모든 상황에 잔뜩 열 받은 첫째 혜영이 승락이 있는 반지하 창문에 돌을 던지면서다. 여자친구 윤화( 송희준 )의 임신에 책임회피 중인 승락은 여러모로 비난받을 여지가 충분하지만, 그럼에도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는 발언권을 가진 중요 인물로 치부된다. 그러니까 그게 남성이 집안의 통솔권을 가지는 이 사회의 가부장제! 사실 큰아버지가 승낙을 데려올 것을 ‘명령’한 건 재개발로 이장을 하게 된 지금, 자신 동생의 묘를 매장 대신 화장하려 하는 조카 딸들의 결정을 번복하기 위해서다. 그는 같은 남자인 장남 만은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 믿으며, 또 그런 이유로 장남인 승락에게 더 큰 권위를 부여해 주려 한다. 가령 이미 죽은 오남매의 아버지는 혜영의 말대로 ‘그 인간 죽어서까지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존재감을 드러내며, 문제를 회피하기 급급한 승락은 ‘우리가 (언제까지) 걔 엄마야?’라는 누나 금희의 독설을 받는 대상이다. 영화는 가부장제 아래 집안의 권위를 부여받은 남자들의 치부를 거침없이 드러내는데, 그래서 이 영화의 남자들은 한편으로는 귀엽거나 사랑스럽게 그려지기도 하지만, 겉으로 볼 때 무섭거나(큰아버지), 비겁하거나(승락), 말 안 듣거나(혜영의 아들 동민) 지질(금희의 남친) 해서 여자들을 자주 괴롭힌다. 물론 아버지 묘의 이장 문제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기존 사회 질서에 부합해 흘러가지 않는다.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틀 안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지만, 남매는 변화하는 현재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물들이며, 그래서 지금 심하게 이 사회와 부대끼는 중이다. <이장>의 여성인 네 자매는 그래서 마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균형을 찾아가려는 이 사회 여성들의 표본을 보는 것 같다. 첫째 혜영은 싱글맘이라는 상황으로 인사 가산점이 깎여 육아휴직 이후 퇴사를 권고받았으며, 둘째 금옥은 남편의 외도를 알고도 떳떳하게 판을 뒤집지 못하는 평범한 주부다. 두 언니의 ‘실패한’ 결혼 생활에도 셋째 금희는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철없는 남친에 갑갑한 채로 N포 세대의 곤궁은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청춘이다. 여성 인권을 외치는 막내 혜연은 학내에 자신이 애써 붙여놓은 대자보 위에 ‘너도 결국 한남의 씨에 불과한 종족이다’라는 테러성 반응에 맞서야 한다.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 단절되어 우울증을 겪는 < 82년생 김지영 >(2019)의 ‘김지영’이 이들의 사촌자매 쯤이라고 해도 어울릴 것 같다. 결국 육아휴직, 남편의 외도, 결혼 문제, 페미니즘 등 대한민국 여성이 겪는 고충의 총합이 이 자매 안에 다 보인다. 정승오 감독은 이장을 하러 오랜만에 모인 남매를 혜영의 미니밴에 탑승시킨다. ‘이장 후 받게 될 500만 원을 누가 갖게 될 것인가’의 문제가 시종 묘한 긴장감을 형성하며 남매간에 그동안 쌓여 있던 갈등을 점화시킨다. 티격태격 가족 로드무비의 원조 격인 < 미스 리틀 선샤인 >(2006)의 ‘미니밴 버전’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네 자매와 혜영의 아들인 초등학생 동민( 강민준 ), 승낙의 전 여자친구 희준도 한 차에 타고 내리고 해서, 차 안은 시종 구성원이 바뀌고 복닥복닥 거린다. 시동이 걸리고 출발을 한 이상 도로 안에서 쉬이 내리는 건 불가능하고, 앉아있는 자리에 따라 맞붙는 ‘말싸움’ ‘몸싸움’의 조합도 새롭게 재편된다. ‘제한된 상황’ ‘다양한 인물’들이 이렇게 새로운 조합으로 영화의 액션과 리듬, 코믹과 드라마를 만드는 재미들이 모여 <이장>의 미니밴을 굴러가게 만든다. <이장>의 이 오밀조밀 갈등이 폭발하는 공간 구성은 사실 정승오 감독의 주특기다. 전작인 단편 <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 >(2016)은 <이장>의 프리퀄 격인데, 입원한 엄마의 병문안을 간 딸들이 모두 엄마의 침대 위에 올라가 옹기종기 모여 앉은 씬은 가족의 갈등과 화해를 그리는 탁월한 장면 연출이다. 이같은 구성이 독립영화계의 ‘어벤저스급’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가 제대로 빛을 발하는 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 자신 역시 가부장제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 청년 세대를 거친 남성으로서 정승오는 <이장>의 가족들이, 더 나아가 이 사회가 기울어진 관습과 제도에서 벗어나 모두가 동등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이 역시 새벽녘 오남매가 함께 걸터앉은 좁은 툇마루 씬에 말갛고 기분 좋은 장면으로 연출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승낙의 전 여자친구가 승낙의 사과에 보인 일격은 영화를 보는 이들을 위해 남겨둔다. 각자의 가족 깊숙이 공기처럼 스며든 가부장제 사회는 이제 변화하고 있다. 그 관습의 이장을 제안해 주는 영화 <이장>의 질문이 반갑다.
대중가요와 영화, 쌍끌이 부흥기의 음악영화 한형모 감독의 <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1966)는 제목과 감독, 제작연도만으로도 많은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 세 가지가 주목할 만한 중요 키워드인 셈이다. 첫 키워드는 워커힐이다. 1963년에 개장한 호텔인 워커힐은, 주한미군을 비롯한 외국인을 위한 호텔로 만들어진 시설로 1973년에 선경(현 SK)이 인수하기 전까지 국제관광공사 소유였다. 미8군 사령관 월턴 H. 워커(Walton H. Walker)의 이름을 딴 것이나,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조선호텔·반도호텔 등과 달리 대중교통으로는 접근이 쉽지 않은 광나루 언덕에 지어진 것, 1968년 카지노장까지 개장한 것 등도 워커힐이 지닌 이런 성격 때문이다. 당연히 워커힐에는 극장식당이 갖추어져 있고 주한미군 등 외국인의 취향을 고려한 쇼로 채워졌다. 워커힐의 쇼는 당시로는 세련된 고급의 쇼인 동시에 다소 높은 수위의 노출도 가능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에서 한국의 관객이라면 ‘호텔’이 아니라 ‘쇼 공연장’에서 만나자는 의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즉 작품의 제목에서 워커힐 쇼를 보여주는 영화라는 사인을 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많은 쇼 장면을 보여주는데, 비단 워커힐 쇼만이 아니라 다양한 호텔 쇼와 방송국 쇼 프로그램까지 망라한다. 노출된 여자무용수의 허리의 꿈틀거리는 동작을 클로즈업한 오프닝 화면이 불러일으킨 호기심에 비하자면 쇼의 관능성 수준은 시원찮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이 정도가 ‘19금’ 등급이었다. 둘째 키워드는 한형모 감독이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이 작품과 이듬해의 < 엘레지의 여왕 >으로 끝이 난다. 1950년대 후반 < 자유부인 >과 < 청춘쌍곡선 > 등으로 당대에 보기 드문 세련된 촬영과 편집으로 전후 상업영화의 부흥을 이끌었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서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보이지 못했던 한형모 감독으로서는, 두 편의 음악영화로 마지막 피치를 올린 셈이다. 그는 줄곧 음악영화에 관심을 보이고 꾸준한 시도를 해온 사람이었고, 음악영화가 요구되는 때에 그가 불려 나온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자유부인>에서 가수 백설희의 노래와 댄스홀의 라틴댄스 쇼 장면을 화려하게 보여준 그는, <청춘쌍곡선>(1958), < 나 혼자만이 >(1958)에서는 좀 더 음악과 춤의 비중을 높이거나 뮤지컬적인 장면을 시도했다. 그러니 아무리 1960년대 후반이라 해도 노래와 춤을 영화에 버무려 넣는 기법에서 그는 확실히 많은 노하우를 지닌 독보적인 감독임에 틀림이 없었다. 셋째 키워드는 1966년이라는 시기이다. 영화사에서 1960년대가 보기 드문 전성기였음은 두루 아는 사실인데, 대중가요사에서도 역시 전성기였다. 한 해가 다르게 양적으로 팽창해가는 한국영화계는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온갖 장르를 시도하게 됐고 음악영화 역시 그중 하나였다. 대중가요사로 보자면, 1960년대 초에 한 번도 선두 장르의 자리를 내놓지 않았던 트로트의 기세가 꺾이고 ‘양풍’ 가요인 스탠더드팝이 가요계의 선두를 차지한 후, 1960년대 중후반으로 넘어오면서는 이미자 열풍과 작곡가 이봉조 시대의 개막, 록그룹 키보이스 등장 등 다양한 경향이 함께 솟아오르는 시기가 이때였다. 이듬해인 1967년에는 남진, 문주란, 배호, 정훈희 등 폭발적이라 할 만큼 여러 신인 가수가 두각을 나타내는데, 1966년은 그 직전의 상승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가요를 활용한 음악영화의 출현은 어찌 보면 필연적이다. 대중가요를 청각만이 아니라 시각까지 만족시키며 즐기고 싶은 관객들의 요구란 늘 있다. TV가 대중적이지 않았던 당시에, 대형 컬러 화면으로 다양한 종류의 쇼를 구경한다는 것은 꽤나 매력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이 시기부터 < 청춘대학 >( 김응천 , 1966), < 엘레지의 여왕 >(1967), < 폭풍의 사나이 >( 박종호 , 1968), < 이 강산 낙화유수 >( 조길현 , 1969) 등 음악영화가 쏟아져나왔고 이 흐름은 1970년대까지 이어진다. 어찌 보면 인기 가수의 노래 장면을 틈틈이 배치한 국책영화 < 팔도강산 >( 배석인 , 1967), 영화로 만든 한국대중가요사라 할 만한 < 가요반세기 >( 김광수 , 1968) 등도 이런 흐름 속에 놓여있다. 그러니 <워커힐에서 만납시다>는 무엇보다도 틈틈이 화려한 대중가요 쇼를 보여주는 것이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시골 사람의 어리바리 서울 구경, 전쟁 통에 헤어진 가족의 극적인 만남 같은 극영화의 기본 얼개는 매우 상투적이며 부실하다. 심지어 한형모 감독이 무려 10년 전에 시도한 <청춘쌍곡선>의 뮤지컬적 장면조차 이 영화에는 없다. 대사를 대신하는 노래는 전무하며 모든 노래는 가수들의 쇼 장면으로만 소화되고 있다. 사건은 그저 쇼 장면을 연결해주는 느슨한 끈 정도에 불과하다. 대신 대중가요 쇼의 배치는 공들여 다채롭게 배치된 티가 역력하다. 트로트부터 스탠더드팝, 경음악까지 두루 능란하게 다루는 작곡가 박춘석이 음악을 맡았으니 음악의 질도 나쁘지 않다. 당시 최고의 사회자인 후라이보이 곽규석이 여러 장면에서 쇼의 진행자로 등장하고,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들이 총출동했다.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자니부라더스의 <방앗간집 둘째 딸> 등 박춘석의 작품뿐 아니라, 1960년대 초중반을 휘어잡은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 현미의 <밤안개>, 그 외 이금희와 위키리 등의 외국 곡도 두루 배치되어 있다. 여기에 익살스러운 복장의 윤항기가 <울리불리>를 부르는 키보이스 연주 장면까지 넣어 당시 아주 젊고 새로운 록 음악까지 선사한다. 이렇게 다양한 음악과 쇼를 보여주기 위해, 위해 ‘부르스’ 추는 호텔 나이트클럽과 공연의 중심인 시민회관 쇼, 회전무대를 갖춘 화려한 워커힐 쇼, KBS TV의 쇼 스튜디오, 젊은이들이 소울풀한 몸짓으로 춤추는 명동의 뮤직홀까지, 어리바리한 두 시골 사람이 돌아다니도록 만들었다. 주인공인 신인가수 남보라(남정임 분)가 부르는 주제가 격인 노래는, 트로트와 스탠더드팝의 중간쯤 되는 <파란 이별의 글씨>(전우 작사, 박춘석 작곡, 성태미 노래로 영화에서는 립싱크로 처리되었다)를 배치해 안정감과 대중성을 모두 충족시켰다. 거의 모든 쇼 장면에는 무용이 들어있어, 당시 쇼의 무대미술과 연출, 백댄스의 경향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충분히 의미를 발한다. >>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고화질(HD) VOD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