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태 너클볼
- 제작년도
- 2009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을 휩쓴 일련의 반정부 시위들은 마침내 독재 정치를 몰아내며 성공적인 혁명으로 자리매김했다. 2011년, 이웃 나라들이 쟁취한 ‘아랍의 봄’을 지켜본 시리아의 10대 소년들은 알 아사드 대통령을 겨냥한 낙서를 학교 벽에 남겼다. 당국에 체포된 이들은 가혹한 고문으로 신체가 심하게 훼손된 채 사망한다. 이 사건은 시리아 민중들의 반정부 시위의 단초가 되며, 나아가 반군과 정부군, 그리고 IS 간의 잔인한 살육 전쟁인 시리아 내전으로 비화되었다. 이로 인한 사망자 수는 현재까지 25만 명을 넘어섰다. 이브게니 아피네예브스키 감독은 다큐멘터리 < 시리아의 비가 >(2017)를 통해 시리안 반군과 난민의 시점에서 연대기 순으로 이 사건을 숨 가쁘게 따라가며 묵묵히 정공법으로 담아낸다. 영화는 시리아를 무사히 탈출해 살아남은 활동가들과 반군 소속 군인들, 아이들 등의 인터뷰를 통해 정부와 IS가 자행한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행위들을 재구성한다. 그리고 그 인터뷰이의 목소리는 어느새 관련 사건들을 촬영한 투박하고 거친, 그만큼 더 끔찍한 영상들 위로 흘러나온다. 감독이 밝히고 있듯이, 영화 속에 쓰인 모든 영상들은 시리아 활동가와 시민들이 카메라와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직접 찍은 것들이다. 시리아 내전의 일거수일투족은 그들에 의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 영상들은 관련자들의 증언을 꼼꼼히 뒷받침하며 고통스러운 울림을 배가시킨다. 한편, 감독은 서구 열강들이 얽혀있는 내전의 복잡한 정치적 내막이나 이해관계, 그 합리적 해법에 대한 접근은 하지 않는다. 다만 묵직하게 쉼 없이 그 잔혹성을 까발릴 뿐이다. 더 심도 깊은 논쟁에 뛰어들 필요도 없이, 평범한 인간들을 저 생지옥으로 몰아넣은 것만으로도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영화 속 대립 구도는 ‘반군’ 대 ‘정부군/IS’라기보다는 ‘인간의 고통’ 대 ‘그 고통에 대한 무감각’이다. 눈 앞에 펼쳐지는 고문과 전쟁, 살인의 잔혹한 날 것 그대로의 이미지들을 직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TV 뉴스와 신문 지상에서 짤막한 외신들로 접했던 그 사건들이 생생한 이미지로 되살아 날 때, 그 동일한 사건들은 전혀 다른 온도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그것은 격렬한 몸의 반응을 이끌어 낸다. 당신은 특정 장면에서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지그시 감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다 나중에는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몸이 경직되어 꼼짝 못 하고 그 광경들을 낱낱이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당신은 한동안 전율에 휩싸이거나 미열에 시달릴 수도 있다. 일단은, 이 영화를 마지막까지 참고 본 자신을 대견해 하자. 이처럼 영화는 포탄이 쏟아지는 시리아 한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것은 ‘유니세프 난민 기구’가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슬픈 눈망울의 시리아 아이들을 모델로 쓰며 후원금을 요구하는 방식과 다른 층위에 놓인다. 영화는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의 관대한 자비심으로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래서 그토록 견디기 힘든 죽음을 둘러싼 외설적인 이미지들을 나열하며 우리를 그 내전의 참상 속으로 최대한 몰고 간다. 그 고문의 공포를, 포탄의 공포를, 죽음의 공포를, 그리하여 타인의 고통을 생생히 느껴보라고 말한다. 그 이후, 이제 그것은 더 이상 머나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이와 같은 전쟁의 실재는 우리를 불편한 윤리적 고민으로 이끈다. 그것은 참혹하지만 미학적으로 다듬어진 전쟁 영화와는 다르다. 카메라의 정교한 조작과 사실적인 특수효과로 빚어진 전쟁의 이미지는 우리로 하여금 그 미학 속으로 도피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나 날 것 그대로의 전쟁 이미지에는 차마 숨을 곳이 없다. 영화의 마지막, 난민이 된 아이들은 밝은 표정으로 관객을 향해 당당히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를 끝까지 버티고 봤다면, 당신에게 그들은 더 이상 한낱 동정의 도상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수히 넘나들었던 그들을 감히 어떻게 우리 따위가 동정하겠는가. 우리가 느꼈던 그 전율과 미열을 기억하자. 그것은 동정을 넘어 연대를 위한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레즈비언인 감독 ‘ 이영 ’은 1945년생의 ‘바지씨’인 ‘이묵’을 만나기 위해 여수로 내려간다.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바지씨는 동성 연인 관계에서 남성의 역할을 맡는 여성을 지칭하는 은어였다. 사실 이묵은 스스로를 남자로 인식해왔다. 감독은 그런 그의 소소한 일상을 촬영하고 과거의 삶에 대해 묻는다. 한편, 그의 이웃은 남성스러운 외모를 지닌 이방인 감독의 성별을 궁금해한다. 이묵은 곤란해 하는 그녀를 두둔하기 위해 애쓴다. 당황하는 감독의 모습에는 그대로 그의 젊은 시절이 투영된다. 감독은 그를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함께 식사 준비를 하고 집안일을 하며, 흡사 다정한 부녀의 모습을 연출한다. 감독은 이묵을 태운 리어카를 조심스레 끌거나 그의 눈가를 꼼꼼히 닦아주기도 한다. 그들은 피가 아닌 억압받는 소수자성을 공유하며 유사 가족을 형성한다. 감독은 서울로 온다. 이제 인물 다큐멘터리는 급히 방향을 선회해, 조직화된 반동성애 운동 진영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탐사 보도의 형태를 띤다. 감독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일련의 인권조례들을 좌절시킨 보수 기독교인들의 공세를 꼼꼼히 기록하지만 녹록지 않다. 이제 이묵을 대하던 친밀한 손길은 촬영을 방해하는 불특정 인물들을 밀어내거나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기 위한 거친 손짓으로 변한다. 아울러 감독은 ‘세월호 사고’와 같은 동시대의 굵직한 사건을 조망한다. 보수 집회에서 세월호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며 유가족들을 비난했던 인물이, 뒤돌아서서는 퀴어 퍼레이드를 반대하기 위한 명목으로 지금은 세월호 추모 기간이라는 근거를 드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인다. 성 소수자 혐오를 선동하는 집단의 비이성적이고 광기 어린 목소리의 모순성은 한국 사회의 공시적 맥락 속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혐오 세력들은 상대방에게 빈번히, “니들은 애미, 애비도 없냐”고 소리친다. 그들은 왜 각자의 신념에 따라 충돌하는 공론장에서 사적인 가족을 환기시키는가. 그들이 부모를 상기시키면서 우선시하는 것은 사랑과 배려가 아니라 복종을 강요하는 절대적 위계이다. 감독은 이에 대답하듯, 다시 이묵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 모든 혐오의 시선들을 버티고 살아낸 그가 곧 내 어머니이자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들처럼 서로의 말 못 할 아픔을 알아채고 보듬는 자들로 이뤄진 관계야말로 가족의 원형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영화는 이묵의 이야기로 문을 열고 닫는 구조이며, 그 사이를 동성애 인권운동 진영과 반동성애 진영 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채우고 있다. (물론 그사이에 일본의 레즈비언 커플인 ‘논’과 ‘텐’의 달달한 사랑을 잠시 보여주기도 한다. 어쩌면 이것은 이묵이 들려주는 과거 연애담의 재연과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혐오 선동 세력들이 폭언을 하는 장면들은 분노 어리고 때로는 수치스러운 감정을 한껏 고양시킨다. 견디기 버거워질 때쯤, 영화는 다시 이묵의 삶으로 돌아간다. 이묵이 담담하게 읊조리는 회고담은 목청껏 뱉어내는 혐오 발언을 감싸 안는다. 그 분노와 수치를 수없이 감내하며 오늘에 이르러 마침내 차분하게 일상을 영위하는, 그리하여 세상을 통달한 듯 현자의 따뜻한 미소를 짓는 그를 통해 우리는 위로를 받는다. 이내 격앙된 감정들은 사그라진다. 앞서, 그는 여성과 동거를 할 때마다 이웃들의 수근거림을 감수해야만 했다고 말한다. 그러난 결국에는 그 이웃들도 그들의 선함에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을 집으로 초대하곤 했다. 이것은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지닌 이들을 일깨우는, 오래 묵은, 그러나 언제나 유효한 일화로 빛을 발한다. 그러나 감독은 잔인하게도(!) 다시 동성애 반대 진영의 외침에 귀 기울인다. 그들은 어김없이 퀴어 퍼레이드를 훼방 놓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암전된 화면 위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지만 그들이 북을 두드리며 외치는 소리들은 그치지 않는다. 아마도 감독은 관객들이 이묵이 건네는 위로에 안주하기를 원치 않는 듯하다. 저 밖에 여전히 혐오 세력들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있으며, 고로 이묵이 진정 바라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