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 커틀릿
- 감독
- 김도영
- 제작년도
- 2008
2022년 현재 시점에서 < 82년생 김지영 >에 대해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을까? <82년생 김지영>은 조남주 작가의 소설로 2016년 민음사에서 처음 출간되어 온라인과 오프라인, 대중과 지식인 담론을 가리지 않고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국내에선 2년 만에 100만부 판매를 돌파했으며 10개 언어권에 번역되어 3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2018년 출간 이후 20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며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2019년에는 영화로 제작되어 관객 수 367만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더 나아가 <82년생 김지영>은 수적인 측면에서뿐 아니라 2015년 이후 이뤄진 페미니즘의 대중화와 매체 환경변화의 측면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그런 면에서 <82년생 김지영>은 소설이나 영화 어느 하나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텍스트 분석하는 방식을 본격적으로 거부하며, 어떻게 하나의 작품 혹은 텍스트가 분리되지 않고 여러 경계를 넘나들며 매체(개)적 역할을 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게 한다. 이 글 역시 어떤 텍스트를 하나의 현상, 심지어는 매체(개)로 보고 비평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과정 중에 나왔다. <82년생 김지영>은 영화와 소설 모두 진부함과 새로움이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어 있는 양식을 취한다. 우선 소설의 작법을 보자. <82년생 김지영>은 디지털 시대의 대중적 페미니즘이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을 부추긴다. 이 소설은 관심(attention) 받은 정보를 수집하고 가공해 한국사회의 평균값 혹은 대표값을 재현하려 한다. 중산층 가족에서 태어나 대학교육을 받고 사무직으로 직장을 다니다가 결혼하고 육아를 하며 전업주부가 된 30대의 여성이 주인공이다. 이 소설이 수집한 주목의 정보는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한 뉴스 기사나 그 기사들에서 인용된 통계자료다. 소설은 종종 유엔과 한국정부의 통계 및 정책 보고서, 법과 제도의 변화를 각주로 달아 숫자와 공문서에 근거해 객관성과 대표성을 획득하려 한다. 여아낙태가 급증하던 1980년대를 대표하는 ‘82년생’과 그 당시 가장 흔한 여아의 이름인 ‘김지영’, 스토킹과 성희롱, 집안의 남아선호, 직장 성차별과 경력단절, 독박육아와 여성혐오 등의 뉴스가 주인공의 연대기 안으로 들어와 에피소드를 구성한다. 그러한 정보를 모아 만들어진 주인공 김지영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재확인시키는 익숙함으로 버무려진 개성 없는 캐릭터이다. 김지영은 기존의 익숙한 세계와 대립하며 자기 고유의 세계를 고집스럽게 구축해 나가려는 근대문학의 주인공과 완전히 정반대에 있다. 어떤 면에선 김지영은 마치 1인칭 슈팅게임의 블랭크 캐릭터처럼 텅 빈 인물이다. 일본과 미국 번역본 표지에 그려진 이목구비가 비어있는 여자는 내용과 형식 모두를 지칭하며, 빙의는 그러한 양식을 극대화하기 위한 설정이 된다. 또한 한국사회의 오래된 그리고 겉으로는 많이 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전한 성차별, 즉 여성들의 ‘몫 없음’을 은유하기도 한다. 김지영이라는 텅 빈 기호는 독자들을 기다리고 초대하며 누구든 그 자리에 들어가 볼 수 있게 한다. 독자들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사가 진행되며 인물의 심리에 점진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김지영의 자리에 자신을 대입해 몰입한다. 주목 받은 정보를 모은 인물의 구성과 거리감 없는 몰입은 새로운 수용양식이다. 이것은 회귀, 빙의(특정 서사의 주인공이 되는 빙의), 환생이 주요 장르가 된 웹소설의 경향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독자들은 회귀, 빙의, 환생의 설정 속에서 정보를 독점할 수 있기에, 비판적이고 메타적인 동시에 ‘안전’하게 상황을 통제한다. 이것이 <82년생 김지영>의 진부한 새로움이다. 정보수집을 통한 평균값을 말하기에 집단을 대표하고 비어있기에 열려있는 구조는 가능한 다수가 이 텍스트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한편 김지영의 육아우울증 증상인 ‘빙의’는 페미니스트 고전단편 샬롯 퍼킨스 길먼의 <노란벽지>처럼 가부장제 억압으로 정신적인 병증을 갖게 되는 서구 근대여성문학의 전통에 닿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울증, 히스테리, 광기는 가부장제가 여성들을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기 위해 창조한 병인 한편, 여성들의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증은 남성중심적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억압의 고통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지영은 그녀의 문학적 선조와 달리 정신병을 자신의 내면상태를 발화하는 수단이나 은유로 사용하지 않는다. 웹소설의 빙의처럼 그것은 안전하게 고통과 피해를 이야기하기 위한 설정이며, 외할머니, 친정어머니, 선배 언니로 빙의된 김지영은 매우 이성적이고 조리 있게 의견을 피력한다. 흐트러짐 없는 빙의된 몸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제 억압의 역사적 정보가 축적된 아카이브 혹은 플랫폼’이 된다. 빙의의 사용은 세대와 개별적 차이를 넘어 여성이라는 자리의 동질성을 만들어 내고 공감을 얻어 낸다. 이처럼 <82년생 김지영>은 주목을 받은 정보로 쓰인 몫과 자리의 이야기이고 열려 있는 이야기들은 다시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논쟁거리가 되고 소설은 다시 텍스트를 넘어 참여의 플랫폼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 판매부수와 롯데컬처웍스의 투자로 정유미와 공유 같은 스타가 주인공인 상업영화로의 제작 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주목이 주목을 부르고 매체 간의 문화산업을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 책이 주목 정보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넘나들며 매개, 재매개, 하이퍼매개를 순환하는 매개물이 된다. <82년생 김지영>은 자기 집단 내에서는 동질성과 공감을 강화하지만 점화된 논쟁의 선을 따라 여러 매체와 플랫폼을 넘나들며 우리 사회 내의 인식적 기준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82년생 김지영>은 수잔 리 스타가 그리스머와 함께 개념화한 경계물(boundary object)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경계물(Susan Leigh Star & James Griesemer, 1989)은 서로 다른 과학자 집단들이 협업을 할 때 그 의미를 공유하는 대상(object)이다. 이 대상은 공동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한편 각기 다른 집단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이용된다. 경계물이 되기 위해서는 해석적 유연성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실험 속에서 정보의 수집과 검증이 가능한 공동의 인프라를 통해 합의 없이도 협력이 가능해야 한다. 경계물은 각자의 집단의 특정성에 맞게 적응하도록 유연하지만 동시에 각기 다른 집단들을 거쳐도 경계물의 정체성은 유지될 정도로 단단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계물을 공유하는 각 집단들은 자신만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 앞뒤로 오고 가며 조정할 수 있다. 그것은 상이한 두 집단을 서로 맞닿게 하는(interface) 경계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계물로서의 <82년생 김지영>은 적대와 혐오로 가득 찬 전선이 그어지며 오염된 과잉정보로 사실검증이 어려운 온라인의 특성 상 협의가 불가능한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즉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개념이 집단에 따라 어떻게 완전히 달라지는지 드러낸다. 페미니스트를 남혐주의자로 왜곡되게 주장하는 온라인 안티 페미니스트들은 <82년생 김지영>의 독서여부로 페미니스트 감별을 시도하기도 했다. 특히 소셜 미디어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여성) 유명인이나 예술창작자를 검색해 그들을 공격할 뿐만 아니라 경력에 피해가 가도록 압력을 넣기도 한다.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과 다수의 여성들에게는 한국 사회에서 누구나 공감할 만한 온건하게 쓰인 성차별 보고서에 가깝지만, 안티페미니스트들에게는 왜곡된 가짜 뉴스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여성의 고통을 전시하며 남성을 ‘차별’하는 과격한 페미니즘 사상을 전파하는 대표적 선전물이다. 동일한 책은 상이한 집단들에 의해 ‘페미니즘’이라는 사상 혹은 실천을 다르게 이해하게 하는 매개물이 되는 동시에,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이 본래의 의미나 역사와는 상관없이 대중적으로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처음 경계물을 개념화했던 당시와 달리 스타는 2010년에 쓴 논문 「이것은 경계물이 아니다: 개념의 기원에 대한 성찰」에서 경계물을 공유하는 두 집단 사이에 협의가 힘들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 발생하는 간극 발생의 원인과 공유되는 표준 및 인프라, 즉 구조와 네트워크를 보다 적극적으로 성찰하고 경계물을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로 확장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육아로 경력단절 된 여성 연극배우의 오디션 과정을 다룬 단편 < 자유연기 >(2018)로 주목 받은 신인 김도영 감독이 연출하고 정유미와 공유가 주연한 <82년생 김지영>은 내용적으로는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수용과 형식의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다. 김지영이 상담 받는 정신과 의사의 보고서 형식으로 쓰인 소설과 달리 영화는 의사의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고 그의 역할을 축소시킨다. 소설에서 남자 정신과 의사는 김지영에 대한 묘사의 객관성을 담보하는 동시에 에필로그에서 한국사회의 성차별에 분노하던 언사와는 달리 자기 병원의 임신한 간호사를 차별하는 위선을 드러내며 전체 형식의 틀을 잡는 역할을 하지만, 영화에서는 여자 의사로 성별이 바뀌며 김지영과 남편 정대현의 고통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역할로 축소된다. 이러한 변화는 영화가 소설과 매체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텍스트로만 드러나기에 빈 기호로 작동할 수 있었던 소설의 인물들과 달리, 영화는 구체적인 배우의 얼굴이 전면적으로 스펙터클화 된다. 특히 정유미와 공유라는 스타들의 얼굴은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지영을 연기한 배우 정유미의 우울한 얼굴의 잦은 클로즈업은 내면성과 주관성을 표현하는 창구가 된다. 또한 소설에서 정신과 의사나 남편 같은 제 3자에 의해 관찰되고 기술되던 빙의나 과거 성차별/성폭력의 사건들은 영화에서 종종 지영의 주관적 시점으로 처리된다. 과거 성차별/성폭력의 사건들은 영화에서 지영의 플래시백으로 처리되고 빙의의 순간은 미세하게 흔들리는 카메라와 함께 주관적인 트라우마처럼 느닷없이 다가온다. 시청각적 구체화와 주관성의 물질화는 추상적인 구조보다 개체를 앞서 내세우며 이때 묘사된 개인의 경험은 더 쉽게 수용된다. 상업영화라는 제작조건과 멜로드라마라는 장르적 특징들이 소설이 의도했던 ‘진부한 새로움’ 즉 그 자리에의 몰입효과를 약화시키고 전통적인 심리적 동일시를 강화시켜 더 대중적으로 수용가능하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덜 논쟁적일 수 있다. 심지어 영화는 지영이 프리랜서 작가로 성공해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가족과 개인의 갈등을 잠재울 것이라는 꽉 닫힌 해피엔딩을 선사한다. 이러한 결말은 조남주 작가와 김도영 감독의 실제 상황을 참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잉여로 남아있는 불안한 순간들이 있다. 그 하나는 가족들이 모인 다인 쇼트를 촬영할 때 제 자리를 못 잡고 주춤주춤 구석으로 물러나 앉아있는 카메라이다. 구석에 숨어있는 것 같은 카메라는 접근 불가능하고 말하지 못한 것이 남아있는 느낌을 준다. 두 번째 순간은 엔딩이다. 갈등이 모두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엔딩에서 지영은 오프닝처럼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노을 지는 시간에 베란다에 나와 있다. 노을빛을 받고 있는 지영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카메라와 지나치게 인공적인 노을빛은 마치 < 트루먼 쇼 >의 세트장 같은 느낌을 준다. 지영은 여전히 고립되어 있고 영화의 해피엔딩은 임시적일 수밖에 없다. 소설은 재현/대표(representation)를 함에 있어 개성, 독자성, 구체성을 제거해 대푯값을 만들어 그 자리에의 몰입을 시도한다. 이 방식은 주인공이 대표하는 집단 내부의 동질성과 각 집단들 간의 차이를 확연하게 드러내도록 부추기고 논쟁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설명되지 않거나 잉여로 남아있는 것들은 거의 없다. 텍스트와 컨텍스트, 가상과 현실, 매체들, 장르들의 경계를 넘어서고 그 범주들을 무화하는 오늘날의 문화수용자들의 요구에 들어맞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경계들을 넘나들며 비판과 성찰을 야기하기 위해서는 정보에 대한 선명성과 양식적 안전함이 필요하다. 영화는 오히려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고전적인 심리적 동일시를 추구한다. 소설이 ‘진부한 새로움’을 추구한다면, 영화는 ‘진부함의 반복’이다. 멜로드라마라는 고전 장르의 충실한 반복은 여전히 말해지지 못한 것들,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의 잉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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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or Less - <모어>(2021), 2022.12.09. 20. 이름을 지우고 살아남기 - <안나-감독판>(2022), 2023.01.09. 21. 우리에겐 따뜻한 국물과 유머가 필요하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2023.02.07. 22. 아직 끝나지 않은 - <미망인>(1955), 2023.03.10.
10년 전 마음 맞는 친구들과 센트럴파크를 설립했을 당시, 홍성윤 대표는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 수 있을까?’라고 자문했다. 1년 정도 해보면 감을 잡을 거라 예상했지만 막상 1년이 지나자 2년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설렘과 걱정, 기대와 의심을 고루 품으며 해를 넘기다 보니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0대 중반의 영화학도가 배급사 대표로 성장하는 동안, 센트럴파크 역시 수많은 작품을 만나며 개성과 깊이를 더해갔다. 이번 센트럴파크 10주년 기획전 “오늘이 어제와 마주하는 법”에서 선보이는 10편의 영화에는 공통적으로 무언가를 찾아가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떠나간 이의 발자취를 좇으며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가 하면, 우연한 계기로 인해 한동안 잊고 지낸 장면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에 따른 결과는 제각각이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최선을 다한다. 안부를 전하고, 응원을 건네고, 도망치다가도 결국 다시 돌아가서 대면하기를 선택한다. 어쩌면 이는 센트럴파크와 홍성윤 대표가 통과해온 10년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어제와 마주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영화에는 지나간 시간을 격려하는 마음과 더불어, 다가올 시간을 향한 환영 또한 담겨 있다. 홍성윤 대표는 여전히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는 법을 궁리한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 좋아하고 싶어서, 앞으로도 더 많은 영화가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다. 축하한다. 기획전 준비하면서 감회가 새로웠겠다. 언제 이렇게 됐지 싶다. 탈출할 타이밍을 놓쳤다고 해야 하나. (웃음) 시작할 당시에는 단편영화 배급사도 적었을 뿐더러 새로 뛰어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10년을 버티다 보니 함께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센트럴파크 설립 이후 다른 배급사도 여럿 등장했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 셈이고 나 역시 든든한 동료를 얻었다고 느낀다. 단편영화의 경우에는 권리를 침해당하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도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제 같이 의논하고 힘을 모을 사람이 늘어나서 다행이다. 센트럴파크 홈페이지 소개에 “가장 젊고 열정적인 한국의 독립영화배급사 중 하나”라고 썼더라. 10년을 보내는 동안 젊음과 열정에 관해 곱씹는 순간이 있었을 거 같은데. 6년 전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필름마켓에 처음 나가면서 썼던 문구다. 이제 마냥 젊다고만은 할 수 없을 거 같다. 다만 얼마나 경력을 쌓고 인지도가 올라가든 초심을 잃고 싶지는 않다. 우리가 대규모 자본력을 갖춰서 창작자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입장도 아닌데, 꼰대는 되지는 말아야지. 초심을 지키며 계속해서 친근한 배급사로 남고 싶다. 결국 센트럴파크가 말하는 젊음과 열정은 영화를 대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1년에 단편영화 900편 정도를 본다. 늘 기대하는 마음으로 집중해서 보려고 애쓰지만, 사람이다 보니 무뎌지는 순간도 있다. 200편쯤 보고 나면 지칠 때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그때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가 딱 나타난다. 그럼 다시 200편을 볼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 피로감이나 아쉬움은 없나. 단편을 학생영화라든지 장편을 위한 발판쯤으로 축소하는 시선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말한 것처럼 독립된 창작물로서 매력과 강점을 드러내는 단편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창작자의 문제라기보다는 창구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개봉 기회조차 없는 단편으로서는 영화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관객 이전에 영화제로부터 선택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아무래도 영화제는 그해 이슈로 떠오른 사회 문제와 현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을 높은 확률로 선정하다 보니, 창작자 역시 비슷한 주제를 쫓아가는 듯하다. 그럼에도 자기 세계를 드러내는 참신한 영화는 꾸준히 나온다. 이런 작품이 관객과 만나도록 돕고 싶다. 기획전 프로그래밍 과정은 어땠나. 10주년을 기념할 수 있는 작품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기억이라는 주제가 나왔다. 시기적으로도 적절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과거를 떠올리는 순간도 많았으니까. 영화를 통해 지난 시간과 장면을 한 번쯤 회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12번째 보조사제>(장재현, 2014) <몸값>(이충현, 2015) <자유연기>(김도영, 2018) 등 소위 말하는 ‘간판’ 작품 대신, 비교적 생소하면서도 주제에 어울리는 작품들로 알차게 꾸렸다. 소개 겸 자랑을 해본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남는 영화들이다. <아지랑이>(박지윤, 2014)는 정서로 밀어붙이는 힘이 대단하고 촬영도 무척 훌륭하다. 풀샷을 그토록 잘 잡아낸 단편도 드물다. <글리제>(정누리, 2018)는 오래된 전설을 다루는 SF영화다. 엔딩을 마주할 때 굉장히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글리제>의 유이든, <복숭아>(심수경, 2018)의 문혜인, <미나>(박우건, 2018)의 심달기처럼 영화에 자신만의 색을 칠하는 배우들도 만나볼 수 있다. <보강촬영>(임현희, 2018)과 <졸업>(한태희, 2017)은 영화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영화가 기억이라는 행위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거 같다. 영화는 결국 시간예술이니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의 테마 중 하나가 시간여행이기도 하고, 모든 영화는 기본적으로 시간여행적 요소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과거로 돌아갈 수도 있고 미래를 보여줄 수도 있는 게 영화의 매력인 거 같다. 두 작품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말하면서도 끝내 보편적인 감정으로 설득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단순히 감독 본인의 이야기를 했다기보다는 다각도로 고민을 거쳤다는 게 느껴진다. 어제와 마주하는 오늘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내일과 닿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영화인으로서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숫기가 없는 편이라 먼저 다가가기를 어려워하는데, 영화를 통해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영화는 내게 일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나를 외부와 연결해주는 끈이다. 그러다 보니 곁에 있던 사람이 떠날 때 참 힘들더라. 센트럴파크를 시작할 무렵에 만났던 단편영화 일을 하시던 분들도 하나둘씩 흩어졌고, 감독님들 역시 단편이 잘 되면 장편으로 옮겨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새로운 만남 자체는 즐겁지만, 때로는 동료가 성장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없다는 사실이 힘에 부치기도 한다. 그래서 센트럴파크를 좀 더 튼튼히, 오래 지속하고 싶다. 10년 동안 단편을 배급해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는다. 어쨌든 10년째 회사가 굴러가고 있으니 아주 비관적인 상황은 아니다. (웃음) 머무르기가 쉽지 않은 이곳에서 변함없이 존재하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면, 그렇게 영화를 꿈꾸는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센트럴파크 10주년 기념전: 오늘이 어제와 마주 하는 법] * 상영 링크: https://www.kmdb.or.kr/vod/plan/575 * 예고편 : https://youtu.be/RDrnGR2ihoo * 상영 기간: 2020.10.12.(월)~10.26(월) * 센트럴파크 홈페이지: http://centralparkfilms.co.kr/
<우리집> ‘여성이라는 이유로’ 서울메트로의 공개채용 과정에서 최고 점수를 받고도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수험생 최고은(가명)의 기사에 혈압이 올랐다. 취업 성차별 이야기의 불평등은 과연 언제쯤 정상화 될까. 이 이야기에 몇 해 전 만난, 스웨덴 영화계 양성평등 실천을 위해 헌신해 온 스웨덴영화기관(SFI)의 CEO 안나 세르네르의 말이 떠올랐다. 스웨덴 영화계의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만들어 가는 안나가 들려 준 이야기 중 하나는 남성 비율이 월등이 높은 오케스트라 단원을 뽑을 때 심사위원의 눈을 가리고 심사하자, 여성 남성의 비율이 50대 50이었다고 한다. 그간 많은 분야에서 당락이 ‘실력이 아닌 성별’로 좌지우지 되었다는 걸 점검해 봐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한국영화계도 이 문제에 잔뜩 민감해져야 할 시기다. 비슷한 이야기를 한국 영화계에서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최근 영화 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체감 상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학교를 대표하는 작품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남성을 의도적으로 밀어주고 있다는 의구심이 제기되었다는 낯뜨거운 이야기도 들려왔다. 물론 의미있는 변화도 많다. 올해 100주년을 맞은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이장호, 장미희)에서는 100주년 기념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의 성비를, 남녀 50:50의 조건으로 못 박고 갔다. 아니나 다를까, 모집 과정에서 연출 경력이 있는 여성감독의 수가 남성에 비해 부족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선발의 기회가 적은 수의 여성에게 부당하게 돌아간 것일까. 다양성과 평등을 제재 없이도 확보하기까지는 이런 ‘의도적인’ 조건의 개입, 쿼터의 도입이 당분간 필요하다고 본다. <메기> 올해 한국영화계는 여성감독의 진입이라는 측면에서는 유의미한 해다. 2003년을 < 살인의 추억 >( 봉준호 )과 < 올드보이 >( 박찬욱 ), < 장화, 홍련 >( 김지운 ) 등 색깔도 장르도 다른 감독들이 각축전을 벌이던 그때를 한국영화의 뉴웨이브, 르네상스기라고 부른다면, 2019년은 ‘여성감독의 뉴웨이브’라는 말로 설명해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윤가은 감독이 < 우리들 >에 이어 차기작 < 우리집 >을 발표해 ‘윤가은 동네유니버스’의 세계관을 확장해 보여주어 관객의 호응을 얻었으며, 김보라 감독의 < 벌새 >가 수상행진을 이어오고 있고, 독립 장편 극영화에서 지난 2008년 < 똥파리 >( 양익준 )가 세운 흥행 기록 12만을 넘은 13만 관객을 얼마 전 돌파했다는 것. 이옥섭 이라는 펑키하고 재기발랄하면서도 세련된 연출력을 가진 작가의 등장을 확인하는 기회이자,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을 폭력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묘사하는 장편 < 메기 >가 극장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 한가람 감독이 < 아워 바디 >를 통해 여성의 욕망을 기괴해 보이고, 손가락질 당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욕망을 과감히 스크린을 통해 전개해 나갔다는 것, 그리고 무수한 범죄액션 장르물에서 피해자로 ‘스쳐지나가고 말았던’ 여성들의 상처를 유은정 감독이 < 밤의 문이 열린다 >는 판타지 형식으로 어루만져 주었다는 점 또한 이 사회의 절반인 여성에게 감각하게 살아온 우리를 자극하는 강한 촉매제가 되어 주었다. 이처럼 여성감독의 약진을 발견할 수 있는 올해의 시작은 개봉시기로 볼 때 안주영 감독의 < 보희와 녹양 >이었는데, 엄마의 연애를 두고 혼란에 빠져들고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며 성장해 나가는 소년의 성장사의 기술 과정이 얼마나 무해했는지를 돌아본다면, 그래서 극장에서 과도한 폭력이나, 여성을 향한 비뚤어진 묘사로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도 할 말을 하는 영화가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즐거운 기회였다. 확실히 올해는 여성감독의 작품을 꼽자고 해서 꼽았다기보다, 좋은 작품을 손꼽고 보니 그 작품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나 역시 여성 감독의 좋은 작품을 극장에서 저널리스트이자, 관객의 위치에서 꾸준히 ‘수확’하는 풍요를 맛보고 있는데, 아마도 이 성과는 이들이 만들어 곧 도래할 ‘여성 창작자 빅뱅’의 시기의 서막에 불과해 보인다는 점에서 내년이 올해보다 흥미진진하고, 또 그 다음해 역시 더 흥미진진해 보인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최다 수상작 2편은 윤단비 감독의 < 남매의 여름밤 >, 김초희 감독의 < 찬실이는 복도 많지 >로 둘 모두 여성 연출자로, 이런 기대를 이미 현실화 하고 있다. <아워 바디> 물론 ‘남성감독의 영화’라는 말이 따로 언급되어 오지 않은 사회, 남성감독 연출의 영화는 ‘영화’라 명명되는 에서 이들 모두의 각기 다른 색깔의 영화를 모두 ‘여성영화’의 카테고리로 명칭 하는 건, 나 역시 분류법에 우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워 바디>를 여성영화의 카테고리로 분류하는데 대해 한가람 감독이 “얼마나 여자들이 나오는 영화가 없었으면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이렇게 집중을 하나 싶더라.”는 말을 한 건 그런 ‘부당한’ 시선에 대한 지적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의도적으로 명시화 해주어야 하고 호명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금껏 여성이 스크린 안에서 피해와 억압 받고, 과소평가 받았던 건 결국 여성을 정당하게 바라보고 기술해 줄 평등한 ‘눈’이 턱없이 부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영화계에 여성 캐릭터가 개발되지 않고 도외시 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해 줄 더 많은 창작자를 기다리고 있으며, 나 역시 ‘숨은’ 그들을 조명할 것을 다짐한다. 다행히 이 문제에 관해서 신경을 곤두세울 ‘꺼리’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없이 전투적이 되는 시기다. 대표적으로 여성이 겪어 온 이 사회의 부당함에 대해 말하는 김도영 감독의 < 82년생 김지영 >(2019)이 ‘편향된 시선’이라는 이유로, 일부 네티즌들에게 개봉도 전부터 공격을 당해 왔다. 영화 보기 전 낮은 평점과 시사 후 높은 평점을 비교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고, SNS에서는 이 작품의 부제를 ‘전쟁의 서막’이라고 명명하며, 우리를 갈라놓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더 공고해 질 위기에 처해있다. 개봉 첫날 1위로 관객의 호응이 시작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 호응이 유의미한 수치로 집계된다면, 여성에 의한, 여성의 시선을 담은, 소외된 여성을 위한 영화가 만들어지는 흐름을 더는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한쪽의 성이 아닌, 다양한 성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 사회이자, 영화 역시 그 다양한 사회의 형태와 결을 담는데 게으르지도, 주저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