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
- 감독
- 김동현
- 제작년도
- 2005
- 출연
- 김미야, 홍승일, 구성환, 홍기준, 박유밀, 허대욱, 박희철, 손석배, 한웅, 주진모, 이금주, 김청조, 김막내, 이상선, 김성일, 조영덕, 정재훈, 박종권, 문민숙, 배청식, 조정웅, 김영민, 정영일, 류왕주, 황병화, 도영진, 곽종진, 권계현
창작자가 통과한 세상은 독립영화에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되어 왔다. 경험적 근접성에 기인해서일까. 교복 입은 10대의 이야기는 언제나 큰 비중을 차지해 왔다. 가족과 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서사는 유사한 구조와 전개 속에 있곤 하지만, 작은 사회로서 간단치 않은 문제를 품어 왔다. 가출팸을 소재로 한 영화 역시 그의 연장에 있다. 필자의 좁은 삶의 테두리에선 가출팸 청소년을 근접해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한국의 독립영화에서였다. 집인지 수용시설인지 분간할 수 없는 공간, 대개 청소년이지만 더러 어린아이와 어른이 끼기도 한 무리는, 때로는 여관을 전전하고 때로는 공공화장실에 몸을 의탁하며 불안한 주거를 이어갔다. 빼곡하게 쌓여 있는 신발들, 쓰레기더미 같은 방, 한 줄에 대화에도 섞이는 욕설 그리고 위험한 범죄들... 이상한 호칭만이 패밀리를 환기하는 유일한 끈이었다. 어쩌면 모든 것이 이해 불가였지만, 영화 속에서 자주 상황을 접하다 보니 간혹 이들은 안다고 생각했다. 창작자들이 자극적 소재를 너무 쉽게 차용하는 것 아닌가 의심하며 엄격한 시선을 던지기도 했다. 꿈과 환상이라는 영화적 판타지로 우아하게 약자를 감쌌던 < 꿈의 제인 >(2016, 조현훈 )에 이르러선 소재적 절정에 이르렀다 싶었다. 하지만 이환 감독의 장편 데뷔작 < 박화영 >(2017, 이환 )은 내가 안다고 생각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친 주인공 박화영은 가족에게 버림받고 자신의 집을 아지트 삼아 가상 패밀리를 구성한다. 친구들에게 그녀의 집은 가출의 근거지이자 일상적 놀이터이다. 박화영은 그들에게 엄마로 불리지만 사실은 권력의 제일 말단에 있다. 진짜 엄마와 악다구니 전쟁을 벌여 돈을 구하고 밥과 빨래에 청소까지 온몸을 다해 패밀리를 부양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매 맞는 아내가 되어 자식의 흠결을 지킨다. 그룹의 우두머리인 ‘아빠(영재)’는 폭력의 화신으로 현현하고, 친구들은 기생충처럼 박화영을 착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화영)’에겐 예쁜 ‘딸(미정)’이 위안이다. 미정은 영악하게 철저히 그것을 이용한다. 패밀리의 관계는 끔찍하고 공허하다. 무리의 모두가 이를 알고 있다. 박화영만이 그것을 애써 모른 척할 뿐이다. 박화영은 왜 그토록 미워했던 엄마가 필사적으로 되고자 했던가? <박화영>에선 가족을 부정하는 이들은 스스로 가족이 되어 서로를 모멸한다. ‘패밀리’라는 퇴행적 놀이를 통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위악의 근거를 조롱하고 파괴하는 것이다. 탈선한 10대 무리에겐 사실 세상이 온통 적이다. 예외적으로 등장하는 영화 속 어른들은 하나같이 나약하거나, 추악하거나, 비겁하다. 영화는 커다랗게는 무책임한 사회를 그 배경에 두고 있긴 하나, 이를 직접적으로 영화에 끌어들이지 않는다. 특히 이러한 구조를 통해 에둘러 캐릭터를 설명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관객은 인물의 진정성에 대해 질문할 수 있다. 대체 이들은 인물로서 개연성을 갖고 있는가? 밑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 불량한 청년들의 일상이 저다지도 선정적인 필요가 있을까? 대답컨대 <박화영>의 힘은 무리의 인물들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리얼리티에 있다. 그들은 창조된 허구에 인물이면서 엄연하게 세상에 존재하는 자들이다. 난무하는 욕설과 폭력에 눈을 흘기기엔, 설득력 없는 센 장면의 연속이라 몰아가기엔, 진짜 현실이 강력한 알리바이로써 영화 저 너머에 버티고 있다. 그것을 현실의 하나로 인정하냐 마냐가 관객의 선택으로서 이 영화를 판단하는 혹은 이해하는 중요한 지점이자 출발이 될 것이다. <박화영>의 영화적 시간은 미정 대신 곤경을 겪은 화영의 현재를 기준으로 한다.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과거 장면은 4:3의 좁은 화면비율을 택했다. 꽉 막힌 화면 안에서 인물의 난삽한 생활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그 속에는 어떠한 여유도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현재의 화면은 상대적으로 넓고 비어 있다. 단 몇 개의 컷으로 짧게 등장하는 현재의 시간엔 극악한 과거의 무질서를 찾을 수는 없지만, 박화영이 겪는 외로움이 직접적으로 묘사된다. 더불어 여기서 진짜 엄마가 등장하는데, 엄마는 화영에게 돈을 건네고 방을 구해주나, 화영을 단 한 순간도 따뜻하게 품어주지 않는다. 한때 칼부림까지 했던 화영에 대한 넌덜머리 나는 반감으론 보이지 않는다. 엄마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 같다. 현재의 시간에서 등장하는 공간은 인물의 정서를 종종 대변한다. 새롭게 살아갈 텅 빈 방은 화영이 상실감과 고독을, 엄마의 황량한 일터는 생활의 고단함을, 화영과 엄마가 만나는 편의점은 차 한 잔 나눌 여유조차 없는 메마른 관계를 은유한다. 과거의 신이 인물의 퍼포먼스로 극단적인 극을 이어간다면, 현재는 지금 박화영이 처한 상황을 말없이 보여준다. 한편 그녀를 철저하게 이용한 주변인들에게서 잔인한 사회의 우화를 발견한다. 오랜만에 미정과 재회한 후 박화영은 자신의 인생이 미정에겐 그저 불장난에 불과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러나 무슨 연유인지 박화영은 끝까지 각성하지 않는다. 박화영에겐 ‘가족’ 놀이는 벼랑에 놓인 자의 절박한 선택처럼 보인다.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 속에서 그것이 진짜이던 가짜이건 자신이 그리워했던 이상향을 추구하는 것은 그녀에겐 거의 본능에 가까운 무엇처럼 보인다. 그러하기에 박화영은 또다시 실패가 예정되어 있는 퇴행을 반복한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는 더욱더 기이한 슬픔이 동반된다. 다만 이 모든 것을 알고 있기에 그녀의 반복은 어쩌면 새로울 수 있다는 기대 또한 걸어본다.
이 영화는 동유럽 낯선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공항에 도착해 생수를 단숨에 들이켜는 유진( 김새벽 )의 첫 쇼트는 호기심과 긴장이 교차하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반짝인다. 캐리어를 끌고 가는 그녀의 몸짓에서 매혹적인 여행지의 마법을 기대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내 엉뚱한 사건과 상황이 중첩되며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같은 인물 비슷한 대사가 반복되고 시간과 공간이 모호하게 혼재된다. 이야기를 좇는 길목마다 퀴즈를 푸는 만만치 않은 모험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난 캐릭터, 거침없는 대화, 자유로운 연기, 예상치 못한 사건이 빚어내는 젊은 패기와 활력이 영화를 힘있게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폴란드에 도착한 유진은 한국 남성들을 우연히 만나고 고려인에게 행운의 꽃을 선물 받는다. 선배 동철( 조현철 )과 만난 바에서 인상 나쁜 한국인을 다시 만나자, 유진은 언짢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친구 원식(정혁기)을 만나러 우크라이나로 간 동철은 세르게이(박진수)가 벌이는 위험한 사업에 말려든다. 이 과정에서 원식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고 동철은 원식과 함께 도망 중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맞는다. 여기까지가 ‘국경의 왕’ 챕터이다. 이어지는 ‘국경의 왕을 찾아서’ 챕터에 동일 인물이 다시 등장하지만 전혀 다른 설정이다. 구성상 ‘국경의 왕’은 허구이고 ‘국경의 왕을 찾아서’는 실제이다. 거칠게 구분하면 ‘국경의 왕’은 동유럽에서 영화를 찍고자 하는 유진과 동철이 쓰고 있는 허구의 시나리오고, ‘국경의 왕을 찾아서’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를 여행하는 유진과 이곳에 거주하는 동철의 이야기이다. 은경(이유진)을 가운데 두고 만나는 이들은 영화와 미래에 대해 얘기하고 새로운 친구(정혁기, 박진수)를 사귀기도 한다. 후반의 챕터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유진과 동철의 실제 경험과 감정이 어떻게 각자의 시나리오에 반영되었는지 흥미롭게 발견할 수 있다. 우연히 여행지에서 만나 동행한 친구가 범죄 장르물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타인이 겪은 경험과 이야기가 시나리오에 천연덕스럽게 배치된다. 말 못하는 관계의 감정 또한 조심스레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 시나리오고 어디까지가 실제라는 주장은 그리 간단치 않다. 영화의 구분점이 무색하게 이야기가 파편적으로 전개되고,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인물의 장난스런 말과 행동은 앞뒤의 개연성에 의존하지 않고도 충분히 유머러스한 완결성을 가진다. 정교한 내러티브 서사를 포기한 순간 죽은 사람이 다시 일어났다 해도 농담이라 퉁치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감독이 절친한 동료와 실제 여행하며 영화를 찍었다는 제작 배경은 영화 속 작은 퍼즐을 압도한다. 전작 < 라오스 >에 이은 이러한 방식의 영화 만들기는 진짜와 가짜, 허구와 실제에 대한 논의를 본질적으로 확장시킨다. 전작과 비교했을 때 이번 작품 <국경의 왕>은 더욱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의 심상을 탐구하고 있다는 인상을 두드러지게 받게 된다. 영화 속엔 인기 아이템 포켓몬에 열중하며 손쉽게 일확천금을 꿈꾸는 유치한 세대의 표상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론 여행하며 영화와 인생을 고민하는 진지하고 고독한 개인이 존재한다. 마음, 소원, 믿음 등 이성적 세계와 동떨어진 종교적 언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따뜻하며 기이한 정서는 불현듯 등장하는 유령( 임철 )의 존재처럼 영화에 일정한 태도와 방향을 지시하고 있는 것 같다. 왁자하고 떠들썩한 인물 가운데 도시를 여행하는 유진의 걸음이 부지런하다. 카메라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회색의 풍경을 가로지르는 미지의 가능성과 불안을 묘하게 포착한다. 어디로 갈 것인가?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할 것인가? 마음에 평화는 찾을 수 있을는지.
유신에서 신군부 독재로 이어지는 1970~80년대에 대해 ‘한국영화 암흑기’라는 레이블을 붙이는 건 정설처럼 보인다. 사실이었다. 영화는 TV에 밀리고 있었고, ‘반공’과 ‘새마을 운동’을 내세운 국책 영화에 얽매인 영화계는 점점 뒤틀려 갔으며, 사전 심의와 사후 검열 속에서 크리에이티브는 서서히 증발했다. 산업적 토대의 붕괴, 불합리한 제도, 미학적 고갈이 동시에 진행되었던 이 시대는 몇몇 감독들의 개인기로 돌파하기엔 너무 어두웠다. 시스템이 붕괴될 때 가장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무분별한 트렌드 추종이다. 1980년대는 그 정점이었다. 멜로드라마와 문예 영화와 스타 시스템을 토대로 1960년대에 황금기를 구가했던 한국영화는 1970년대에 서서히 무너졌고 1980년대에 난장판이 되었다. 멜로는 여전히 만들어졌지만 예전 같은 힘을 잃었다(진부한 신파의 클리셰에 빠져 있었다). 그 개념은 조금 모호하지만 ‘양질’의 문학 작품을 스크린에 옮겼던 ‘문예 영화’는 더 이상 영화화할 만한 소스를 구할 수 없었다(대신 1970년대부터 최인호나 조해일 같은 새로운 작가가 등장했다). 과거의 스타들은 일거에 물러났지만 그 공백을 채울 만한 스타는 도착하지 않았다( 안성기 가 유일한 희망이었던 시대였다). 1. 한수산 원작의 <거리의 악사>(정지영, 1987) 2. 이문열 원작의 <레테의 연가>(장길수, 1987) 3. 김홍신 원작의 <인간 시장>(김효천, 1983) 4. 미우라 아야코 원작의 <빙점 81>(고영남, 1981) 가장 심각한 건 ‘소스 부족’이었다. 1960년대엔 근대 단편 소설들이 ‘문예 영화’라는 이름으로 애용되었다(여기엔 ‘우수 영화’에 외화 수입 쿼터가 주어지는 현실적 이해관계도 작용했다). 라디오 연속극도 각광 받았고, 때론 일본 영화 시나리오를 그대로 가져온 경우도 있었다. 1970년대는 서서히 재료가 떨어졌고 1980년대에 오면 바닥을 드러낸다. 새로운 광산이 채굴되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의 하이브리드 현상이 나타난다. 심하게 말하면, ‘돈 될 만한’ 건 뭐든지 끌어다 썼던 1980년대였다. 여전히 ‘문학’은 가장 중요한 원천이었다. 1970년대 최인호와 조해일에 이어 1980년대엔 한수산 이외수 이문열 박범신 등이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영화계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1980년대엔 훨씬 더 대중적인 콘셉트가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시장』 시리즈의 김홍신은 대표적이었으며 김성종 유홍종 백시종 김병총 등의 작가들도 가세했다. ‘시대정신’이었던 에로티시즘도 영향을 미쳤다. 외설 시비에 휩싸였던 염재만의 소설 『반노』가 대표적. <빨간 앵두> (박호태, 1982)도 최희숙의 소설이 원작이며, <매춘> (유진선, 1988)은 『매춘: 전국 사창가와 창녀 실태』라는 사회학 서적에서 온 것이었다. 전통의 부활도 있었다. 한동안 맥이 끊어졌던 문예 영화의 흐름은 에로티시즘을 통해 재등장했고 나도향과 김유정이 소환되었다. 일본 소설도 영화화되었다. 미우라 아야코 원작의 <빙점 81>(고영남, 1981)은 큰 흥행을 거두었고 호즈미 타카노부의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이미례, 1984), 하시다 스카코의 <오싱>(이상언, 1985), 나쓰키 시즈코의 <W의 비극>(김수형, 1985형) 그리고 이쿠시마 지로의 <한쪽 날개의 천사>(이성민, 1987) 등이 이어졌다. 1960년대 한국영화가, 당시 문화 교류가 없던 일본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가져가 음성적으로 번안해 영화화했다면 그 원천을 밝혔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모습이다. 미즈키 교코 원작의 만화 『캔디 캔디』도 영화화되었다. 1.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최재성은 최고의 청춘스타가 되었다. 2. <신의 아들>은 최민수의 데뷔작이다. 3. 강철수 원작의 <팔불출> 4. 한희작 원작의 <한희작의 러브러브>. 가장 강력한 소스는 만화였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영화화한 <이장호의 외인구단>(이장호, 1986)이 장안을 뒤흔들기 전, 1980년대 초부터 꾸준한 시도가 있었다. 그 시작은 길창덕 화백의 <순악질 여사>(김수형, 1980)였다. 이야기보다는 ‘순악질 여사’라는 캐릭터를 가져온 면이 강하며, 장미희가 주인공을 맡았다. 이후 1980년대에 약 20편가량의 만화 원작 영화가 등장하는데, 스포츠 신문 연재나 만화 가게나 당시 쏟아지던 만화 주간지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쌓은 터에 흥행성이 꽤 괜찮았다. 이현세를 주로 이야기하지만, 이 시기 만화 원작 영화의 주요 인물은 강철수였다. <팔불출>(고응호, 1980)의 원작자였던 그는 이후 영화 쪽에 큰 관심을 보이며 <사랑의 낙서>(심재석, 1988)엔 아트 디렉터로 참여했고, 1989년엔 <발바리의 추억>으로 직접 메가폰을 잡는다. <가루지기>(1988)의 고우영 감독도 만화가에서 영화감독으로 잠시 업종 전환을 한 케이스인데, 1980년대의 만화는 충무로에 원작뿐만 아니라 인력도 공급한 셈이다. 그리고 <이장호의 외인구단>이다. 당시 프로야구 열풍과 이현세의 만화에 대한 컬트적 반응을 힘입은 이 영화는 영화 제목에 ‘공포’가 들어가선 안 된다는 당시의 심의 규율 때문에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개명해야 했는데, 이것이 액땜이 되었는지 서울에서 약 28만 7,000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빅 히트를 기록한다. ‘까치’ 오혜성 역을 맡았던 최재성은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가 되었으며, 동네 전파사마다 정수라가 부른 주제가 ‘난 너에게’(“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가 흘러나왔다. 프로야구의 인기, 이장호 감독의 흥행력 등 이 영화의 성공 원인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핵심은 이야기였다. 당대 한국영화와 비교해볼 때 이 영화가 지닌 극적 요소는 두 배 정도는 셌다. 강한 승부욕, 목숨을 건 순애보. 팽팽한 긴장 관계, 뼈를 깎는 극기 정신…. 떡볶이로 치면 고추장이 아닌 캡사이신 맛이었고, 그 강렬함에 젊은 관객들은 반응했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일련의 스포츠 원작 영화가 등장하는데, 박봉성의 『신의 아들』, 이현세의 『지옥의 링』, 허영만의 『카멜레온의 시』 등 복싱 소재 만화들이 영화화되었다. 1980년대 ‘복싱’은 여전히 있기 있는 스포츠였고, 여기에 혹독한 트레이닝과 청춘의 고독과 비극적 로맨스가 결합되었다. 안타까운 건 원작을 따라가지 못했던 인기였는데 완성도가 문제였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트렌드는 역시 ‘에로티시즘’이며 스포츠 신문 연재를 통해 성인 만화의 흐름을 이끌었던 한희작과 배금택은 주역이다. <서울 손자병법>(김현명, 1986)이 한희작의 원작이 지닌 지명도에 기대 제목 정도만 가져 왔다면, <한희작의 러브러브>(윤석태 김정진, 1991)은 아예 제목에 작가의 이름을 드러낸다. 당대의 섹시 아이콘인 강리나는 만화 캐릭터를 별 위화감 없이 소화하는데, 이후 배금택 원작의 <변금련>(엄종선, 1991)에서도 캐릭터와의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하지만 만화 원작 영화의 흐름은 1990년대엔 뜸해진다. 이현세가 직접 연출을 맡은 <아마겟돈>(1996)이나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1996) 등 극장용 애니메이션 쪽에서 성과를 냈고, 이현세의 『카론의 새벽』을 옮긴 <테러리스트>(김영빈, 1995)와 허영만 원작의 <비트>(김성수, 1997)가 흥행했지만 1980년대만큼의 양적 성과를 내지 못한다. 다시 그 붐이 일게 된 건 2000년 이후. 여기엔 웹툰의 등장이 큰 역할을 했다. 1. <멋대로 해라>의 혜은이와 김동현. 그들은 이후 부부가 된다. 2. <너무 합니다>의 원작자이자 주인공인 김수희. 3. 박남정 주연의 <새앙쥐 상륙 작전> 4. <담다디>의 이상은과 민규. 최근 한국영화계에서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의 활약이 돋보이긴 하지만, 가요계와 영화계의 크로스오버 현상은 이미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이전 1960년대부터 주제가는 영화 흥행의 중요한 요소였고, 남진이나 나훈아 같은 슈퍼스타들이 은막에 진출하기도 했지만, 1980년대는 남달랐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지만, 이 시기엔 당대의 히트곡 제목을 그대로 딴 영화들이 쏟아졌다.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출연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영화 내용도 노래 가사와 대부분 무관했다. 오로지 노래 제목의 인지도를 이용한 경우들인데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와 ‘비련’, 와일드 캣츠의 ‘마음 약해서’,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 윤시내의 ‘난 모르겠네’와 ‘열애’, 이정희의 ‘참새와 허수아비’, 김현준과 민해경의 ‘내 인생은 나의 것’, 임수정의 ‘연인들의 이야기’,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이선희의 ‘J에게’, 최성수의 ‘풀잎 사랑’ 등 수많은 히트곡들이 그 제목을 충무로에 빌려주었다. 물론 가수가 직접 영화에 출연한 경우들도 있었다. 지난 연재에서 이야기했던 전영록이나 송골매, 김형용 같은 청춘 영화의 스타들은 대표적인 경우. 이외에도 <나를 보러 와요>(이유섭, 1980)의 방미, <슬픈 계절에 만나요>(박남수, 1981)의 백영규, <잊혀진 계절>(이형, 1984)의 이용, <담다디>(김응천, 1989)의 이상은, <울고 싶어라>(배해성, 1989)의 이남이, <앗싸! 호랑나비>(원정수, 1989)의 김흥국 등은 노래의 주인공이 직접 카메라 앞에 서는 경우들이었다. <너무 합니다>(남석훈, 1984)은 김수희의 자전적 이야기로, 그녀는 원작자이자 주연 배우로 참여한다. 노래와 상관없이, 가수 자체의 인기로 영화계에 진출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낌없이 바쳤는데>(박호태, 1980)의 심수봉, <멋대로 해라>(김정현, 1980)의 혜은이(1970년대부터 배우 활동), <그 사랑 한이 되어>(이형표, 1981)의 조용필, <날마다 허물 벗는 꽃뱀>(강대선, 1982)의 이은하, <흑녀>(강대선, 1982)의 인순이, <졸업 여행>(오성환, 1985)의 김범룡, <새앙쥐 상륙 작전>(김정진, 1989)의 박남정 등이다. 연기력을 인정받진 못 했지만, 당시 이 영화들은 그 화제성으로 이슈가 되었다. 당시 가요계와 영화계의 끈끈한 관계는, 가요 쪽의 붐에서 기인했다. 트로트 중심이었던 한국 대중가요는 1980년대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며 대중문화의 중심이 되었고, 아이돌 문화를 형성했다. 이 시기 침체기를 지나던 영화계는 가요계의 호황을 이용하려는 수많은 기획을 시도했고, 그 결과 수많은 ‘가요적 영화’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영화들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그 흐름은 한국영화가 자생력을 서서히 지니기 시작하는 1990년대가 되면 사라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충무로가 수혈받았던 또 하나의 원천이 있었다면 바로 TV의 코미디언과 개그맨이었다. 이전에도 영화와 방송을 겸하는 수많은 희극인들이 있었고 그 전통은 이주일로 이어졌다. 특히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김수형, 1980) <조용히 살고 싶다>(김수형, 1980) <얼굴이 아니라 마음입니다>(이형표, 1983) 등의 ‘유행어 영화’는 작은 트렌드를 이뤄 <웬일이니>(김종성, 1983) <난 이렇게 산다우>(남기남, 1985) 등으로 이어졌다. 이것 역시 대중문화의 인기를 영화로 끌어오려는 기획이었다. 새로운 경향은 개그맨들의 진출이었다. ‘아동용 SF 액션’에 대한 지난 연재에서 언급했듯, 1980년대의 수많은 개그맨은 SF 프랜차이즈의 중심이 되었는데, 그들은 아이들 영화를 벗어나 성인용 영화에도 종종 출연했다. 이외에도 서세원 주병진 김명덕 김형곤 김병조 등 당대의 인기 개그맨들은 대부분 영화계와 만났으며 전유성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비디오 영화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의 이주일. 2. <회장님, 우리 회장님>(엄종선, 1988)은 개그 프로그램을 영화화했다. 3. 주병진과 이미숙이 주연을 맡은 <가슴 깊게 화끈하게>(김수형, 1981) 4. 리메이크 영화인 <미워도 다시 한번 1980 - 1부>(변장호, 1980). 1980년대는 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강렬한 생존 욕구로 인해 숱한 하이브리드 현상이 일어났던, 용광로 같은 시기였다. 대중 문학계든 가요계든 만화계든 희극계든, 노래 제목이든 유행어든,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접목시켰으며 그 중엔 적잖은 성공도 있었고 대부분의 실패가 잇따랐다. 수많은 속편 영화들이 있었고 리메이크도 적잖았으며 애교(?) 섞인 표절도 종종 있었다. 아무튼 살기 위해 모든 것을 했던 시절이었다. 새삼 던져보는 질문. 1980년대는 과연 한국영화의 침체기였나? 표면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면을 살짝 엿보면 이 시대만큼 역동적이었던 시대도 드물다. 장르적으로 매우 다양했고, 영화 이외의 분야와 끊임없이 접점을 만들어갔다(그런 점에서 2000년 이후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생존을 위한 분투. 1980년대는 천박한 상업주의와 여기에 저항하는 힘, 과거의 관습을 지속하려는 의지와 돌연변이 같은 존재들이 뒤엉켜 기묘한 연대기를 써 가던 시대였다. 이 시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이토록 미로처럼 뒤얽힌 상황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