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3
- 감독
- 김미연
- 제작년도
- 2015
- 출연
- 강필선, 손가람
1980년대 한국영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영화는 무엇일까?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코리안 뉴 웨이브’를 중심에 둔다면 그 시작인 < 바람 불어 좋은 날 >(1980. 이장호)일 것이고, 작가주의 예술 영화라면 <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1989. 배용균)이 떠오를 것이다. 대중적 상업영화의 규범으로는 배창호의 < 고래사냥 >(1984)과 < 깊고 푸른 밤 >(1985)이 있을 것이며, < 길소뜸 >(1986. 임권택)이 보여준 리얼리즘의 시선도 빼놓을 수 없다. <애마부인>(1982년)부터 등장한 시그니처 포즈 하지만 영향력으로 본다면 단연 < 애마부인 >(1982. 정인엽)이다. 이 영화 이후 충무로는 ‘에로티시즘’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고, 이어지는 ‘애마 프랜차이즈’는 1980년대는 물론 현재까지도 한국영화의 ‘에로 패러다임’을 규정한다. <애마부인>은 이전까지 한국영화가 애써 눈 감아 온 ‘여자의 욕망’에 대해 적나라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방향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거나, 그 표현이 미학적이거나, 그 서사가 논리적으로 수긍할 만하다는 건 아니다. <애마부인>은 거대한 시작이었고 수많은 에로 영화들은 이 영화를 모방하거나 변주했다. ‘애마’라는 캐릭터가 30년 넘게 그려온 연대기는 한국영화의 웬만한 에로틱 아이템은 모두 품고 있었고, 그 흐름은 이후 < 젖소부인 바람났네 >(1995. 김인수)로 만개한 에로 비디오 시장과도 직결된다. 1대 애마 안소영. <애마부인>은 애마의 뒷모습으로 시작한다. 이때 애마는 고개를 돌려 관객을 응시한다. 애마의 각성. 이 테마는 30년 넘게 지속되어 온 ‘애마 프랜차이즈’의 핵심이다. 1982년은 분기점이었다. 이 해 안소영 과 임동진 이 부부/연인으로 등장하는 두 편의 영화가 개봉된다. <애마부인>과 < 산딸기 >(1982. 김수형)였다.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에로틱 멜로드라마와 일제 강점기를 다룬 토속 영화. 만약 <산딸기>가 더 인기를 끌었다면, 1980년대 에로 트렌드는 후자 쪽으로 기울었을 것이지만, 결과는 전자의 압도적 승리였고 이후 ‘애마의 세계’가 열린다. 1979년 박정희의 죽음 이후 신군부 쿠데타와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을 겪은 남한 사회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여전한 공포 정치였지만, 그 표면은 훨씬 화려해졌다. 섹스와 스포츠와 스크린을 동원한 이른바 ‘3S 정책’의 시대였고, 통금 해제와 함께 ‘심야 상영’이라는 게 가능해졌으며, 그 첫 수혜자는 바로 <애마부인>이었다. 그 해 한국영화(당시엔 ‘방화’라고 불렀던) 흥행 1위였던 <애마부인>은,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극장 유리창이 깨질 정도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던 화제작이었다. 감독은 정인엽 . 1960년대에 데뷔해 반공 영화부터 청소년 영화까지 이런저런 장르를 섭렵하다가 호스티스 영화 < 꽃순이를 아시나요 >(1979)로 빅 히트를 기록한 정인엽 감독은 1970년대 말 미국으로 연수를 떠난다. 이때 아트하우스에서 접한 유럽과 미국의 에로티시즘 영화들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귀국 후 당대 베스트셀러였던 조수비의 『애마부인』(1981)을 영화화한 것이다. <애마부인>은 달랐다. 여성이 가부장제로부터 벗어나 자유 연애를 추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여성의 육체를 눈요깃감으로 전시한다는 점에서 꽤나 모순적인 영화였지만, 당대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1980년대식 욕망을 읽었다. 혼자 아파트에 살며,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고, 패셔너블하면서, 나이트 클럽이나 바에서 즐기는 여자. 여기엔 1960년대 멜로드라마의 모성에 대한 강박이나, 1970년대 호스티스 영화가 지닌 비극적 운명의 흔적은 없었다. 유명무실한 가부장제(애마의 남편은 감옥에 있다), 육아의 의무에서 해방된 솔로의 삶(시댁에서 아이를 빼앗아갔다), 경제적 풍족함(애마에겐 생계에 대한 고민이 없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육체적 매력(남자뿐만 아니라 동성 친구도 눈독 들인다)…. 애마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였으며, 한편으론 남한 사회에서 남성 중심의 일부일처제가 붕괴중임을 몸으로 선언하는 인물이었다. <애마부인> 시리즈에서 ‘애마’는 ‘말’과 함께 ‘자동차’를 의미한다. 호스티스 영화가 가난 때문에 몸을 팔아야 했던 여성들의 사연이라면, <애마부인>의 애마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 오너 드라이버인 그녀는 직접 차를 몰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 사진은 <애마부인 6>. 모델인 애마(다희아)는 자동차 CF를 찍고 있는데, 이 영화엔 현대자동차가 공식 협찬을 했다. 산업적으로도 <애마부인>은 전인미답의 경지로 들어갔다. 이른바 ‘애마 프랜차이즈’는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강한 생명력을 지닌 시리즈일 것이다. 1982년에 첫 선을 보인 후 최근 < 애마부인 2016 >(2016. 김미연)까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20대 초반의 관객이 어느덧 환갑에 가까워질 때까지, 애마의 역사는 세대를 가로질러 이어졌다. 연방영화에서 제작한 ‘정전’은 1996년까지 13편으로 이어지지만, 정전보다 많은 ‘외전’이 있었다. 극장용 영화에서 시작한 프랜차이즈는 비디오 시장과 모바일 시장을 거쳐 IPTV 시장까지 이어졌으니, <애마부인>과 그 후예들은 한국의 영상 콘텐츠에 대한 산 증인인 셈이다. 그리고 애마 시리즈는 스타 시스템에 정면 도전했다. 배우와 장르의 인기에 힘입어 시리즈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프랜차이즈 자체의 동력을 통해 ‘O대 애마’라는 식으로 편마다 신인(급) 여배우를 등장시켰고 그들을 스타덤에 올렸다. 1대 애마 안소영, 2대 애마 오수비, 3대 애마 김부선. <애마부인> 시리즈의 초창기를 장식한 강렬한 섹슈얼 카리스마 배우들. 흔히들 <애마부인> 1편만 보고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본 양 이야기하지만, 정인엽 감독이 연출한 1~3편을 모두 본 후에야 이 시리즈의 진수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애마부인>과 < 애마부인 2 >(1984. 정인엽)는, 배우는 안소영에서 오수비 로 바뀌지만, 마치 하나의 작품처럼 이어지는 스토리라인을 지닌다. 1편의 마지막에서 애마는 젊은 애인과 남편 사이에서 결국 남편을 선택하고, 그들의 가정은 회복된다. 하지만 남편은 변한 게 없다. 여전히 일에 바쁘다는 이유로 밤 늦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남편을 위해 단장했던 애마가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지우면서 영화는 끝난다. 2편의 시작 역시 애마(오수비)가 화장을 지우는 장면이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1편을 통해 애마는 각성했고, 2편의 그녀는 이미 이혼했으며 외국 항공사에서 일하는 커리어 우먼이고 근사한 애인 성현( 신일룡 )이 있다. 1편이 애마가 불행한 이유로 ‘바쁜 남편으로 인한 외로움’을 제시한다면, 2편에선 단 한 줄의 대사로 그것은 모두 허울이며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걸 보여준다. “우린 함께 도달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 애마부인 3 >(1985. 정인엽)에 오면 더욱 명확하게 진단한다. 의사( 진봉진 )는 말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대다수의 부인들은 남편이 무력하다는 이유로,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애마부인>의 엔딩(상단).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애마는 화장을 지운다. <엠마누엘>(1974. 쥐스트 자켕)의 엔딩(하단). 엠마누엘(실비아 크리스텔)은 짙게 화장을 한다. 과거의 모습을 지우고 새롭게 변신한 모습이다. <애마부인 2>의 첫 장면에서 화장을 지우던 애마의 모습은 1편의 엔딩과 연결된다. 하지만 <애마부인 2>의 엔딩에서 활짝 웃는 애마는 헤어스타일을 단발로 바꾸고 빨간 립스틱을 바른 모습이다. 남편, 애인, 연하남 등 ‘남자’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자존심을 죽이고 잠자리를 요구할 때마다 당신은 무참하게 날 거부했어요,”(애마) “난 당신이 그런 여자인 줄 몰랐어.”(남편) 이런 식의 대사로 변죽만 울렸던 게 <애마부인>이라면, <애마부인 2>는 한국영화에서 최초로 부부 사이의 ‘섹스’에 대해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며 애마는 “난 이제 누구와도 사랑할 수 있어요”라며 선언한다. 그리고 3편에 오면 애마( 김부선 )는 남편을 집에 남겨두고 떠나 버린다. 종종 사람들이 <애마부인> 시리즈를 유부녀의 일탈과 불륜에 대한 이야기 정도로 여기는데, 이 시리즈는 시종일관 ‘부부 관계’에 대해 고찰한다(10년 후에 나온 < 결혼 이야기 >(1992. 김의석)는 <애마부인>에 로맨틱 코미디를 결합한 업그레이드다). 그런 점에서 <애마부인>은 20년 가까이 독재와 유신 체제로 억눌렸던 한국 사회가 폭발했던 1980년대의 ‘욕망의 사회학’이자 ‘부부의 심리학’이었다. <애마부인> 시리즈를 이야기할 때 애마 못지 않게 인상적인 캐릭터는 에리카이다. 1편과 2편에서 김애경 역할을 맡은(목소리는 박정자 의 더빙) 에리카는 “애마야, 제발 그 봉건적 사상 좀 버려. 사랑해주지 않는 그런 남자와는 같이 살 필요가 없는 거야”라고 말하는 계몽적 멘트를 날리면서, 한편으론 “네 몸은 언제 봐도 정말 예뻐”라며 섹슈얼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애마부인> 시리즈는 당시로선 과감하게 호모섹슈얼리티에 대해 가감 없이 표현했고, 이것은 억눌린 부부 관계의 반대편에서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으로 제시된다. ‘이국적 이름을 지닌 동성 친구’ 캐릭터는 3편의 세실리( 박원숙 )을 거쳐 < 파리 애마 >(1986. 정인엽)와 <애마부인> 4편과 5편엔 다시 에리카로 이어지고, 7편에선 루비아( 박혜란 )가 등장한다. 이후에도 이 시리즈엔 항상 예술계나 화류계에 종사하는, 개방적인 여성들이 등장해 애마의 곁에 머문다. 애마에겐 항상 자유로운 삶을 사는, 영어 이름으로 불리는 솔로 친구가 있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1편과 2편의 에리카(김애경), 3편의 세실리(박원숙), <파리 애마>의 에리카(민복기), 4편의 에리카(윤지원), 5편의 에리카(전혜성), 7편의 루비아(박혜란). <애마부인>에서 애마와 에리카의 얼굴을 교차해 보여주는 신. 에리카는 말한다. “애마야, 네 몸은 언제 봐도 정말 예뻐.” 두 여성의 에로틱한 관계는 8편 이후 두드러지며, 이전엔 ‘노골적 암시’ 수준이었다면 매우 직접적인 베드 신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남자가 점점 싫어져. 남자보다 여자가 더 좋아”라는 애마의 대사가 드러내듯, 10편은 퀴어 영화에 가까운 양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장 인상적인 섹스 신은 9편일 듯하다. 애마( 진주희 )는 여행 중 우연희 강희( 강선영 )라는 포토그래퍼를 만나 그녀의 모델이 되고 사랑을 나누는데, 그 베드 신은 아마도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격렬한 수위일 듯. 이때 강희는 말한다. “나는 구속 당하는 건 질색이다. 그런 날, 사람들은 레즈비언이라 비웃더군.” 호모섹슈얼리티는 <애마부인> 시리즈의 중요한 테마였다. (상단 좌측부터 지그재그로) <애마부인 7>의 애마(강승미)와 루비아. <애마부인 10>의 애마(오노아)와 영주(유미희). <애마부인 9>의 애마와 강희. 한편 정인엽 감독은 <파리 애마>의 유혜리와 ‘엠마누엘’ 실비아 크리스텔과 함께 <성애의 침묵>(1992)를 찍는다. 이 영화는 <애마부인>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다. <애마부인> 시리즈는 수많은 클리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유명한 건 말 타는 장면일 것이다. 애마의 충족되지 못하는 욕망은 말을 통해, 말을 어루만지는 행동과, 말을 타는 쾌감과, 말 위에서 느끼는 속도감 등을 통해 해소되는데, 종종 이 신은 판타지로 제시되며 일종의 마스터베이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전통은 최근작인 <애마부인 2016>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남편과 트러블이 있는 은혜(류현아)는 친구 유리( 백세리 )의 권유로 승마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세계로 접어든다. ‘말’로 상징되는 자연은, 도시에서 해소되지 못하는 욕구의 해방구이기도 한데, <애마부인> 시리즈는 바닷가나 숲 속 같은 공간을 종종 섹스의 공간으로 설정하며, 여기서 말은 어떤 매개체가 된다. 한편 이 시리즈엔 ‘도시 VS 자연’처럼 수많은 이항 대립이 존재하며, 이것은 영화 전체를 구성하는 어떤 공식이 된다. ‘결혼 VS 불륜’ ‘남편 VS 애인’ ‘애마 VS 에리카’ ‘이성애 VS 동성애’ ‘현실 VS 판타지’…. 여기서 애마는 그 경계에서 고뇌한다. 이외에도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홀로 엑스터시를 느끼거나(이때 애마는 종종 안대를 한다), 고독이 몸부림 칠 때 침대나 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 등도 시리즈에서 반복되는 ‘시그니처 포즈’들. 이 모든 것이 애마의 내면적 갈망을 표현한다. 훔쳐보기 신도 마찬가지다. 애마는 카페나 술집 같은 곳에 자주 가고, 그곳에서 우연히 낯선 커플의 애정 행각을 목격한다. 그 모습에 격정을 느낀 애마는 몸을 비틀며 스스로를 느끼는데, 이때 그런 애마의 모습을 역시 훔쳐보는 음험한 남성의 시선이 있다. 그 남자는 애마에게 접근해 섹스를 요구하고, 애마는 뿌리친다. 이런 구도는 종종 스토킹이나 강간의 모티프와 결합되어 <애마부인> 후기 시리즈에 자주 등장한다. 흥행력이 떨어지던 시기 자극적 요소로 관객을 끌려는 시도일 수도 있지만, 그 시기 창궐하던 에로 비디오의 성폭력적 요소를 받아들인 면도 있다. (계속) <애마부인>. 전설의 장면. 말이라는 상징적 존재와 무의식. 그리고 판타지. <애마부인 2>. 욕조에서 목욕을 하던 애마는 말의 판타지에 빠지고, 그 안에서 젊은 남자와 섹스를 한다. 현실로 돌아왔을 땐 침대에 마치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다. <애마부인>에서 애마는 바에서 어느 커플을 엿본다. 이때 그녀를 바라보는 낯선 남자가 있다. 격렬한 키스를 나누는 커플. 애마는 다리를 비틀며 은밀한 마스터베이션에 빠진다. 엿보기와 마스터베이션의 결합은 <애마부인> 시리즈에서 여러 번 반복된 공식이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애마부인> <애마부인 2> <애마부인 3> <애마부인 9>의 애마들. 그들이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는 모습은 이 시리즈의 시그니처 숏이다.
<애마부인>, 에로영화 시대의 개막 <애마부인>(정인엽, 1982)은 한국영화사에서 이른바 ‘에로영화’ 2) 붐을 일으킨 영화다. 이에 대해 1980년대 3S 정책과 검열의 완화가 그 배경이 되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물론 신군부의 전반적인 문화정책이 에로영화 제작 붐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군부가 검열을 완화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신군부는 박정희 정권의 검열 시스템을 답습하였고 검열 원칙에서 변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애마부인>이 상징하는 변화는 1980년대의 사회 전반의 변화― 민주화의 요구와 자본주의의 발달에 수반된 통금해제와 유흥문화의 확산, 컬러TV와 홈비디오의 보급 등―를 계기로 1960년대 말 이후 억압되었던 욕망이 터져 나온 것이라고 봄이 보다 적절하다. 다시 말해 신군부의 정책에 의해 에로영화 붐이 일어났다기보다는 사회 전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자유화의 물결을 신군부가 더 이상 막을 수는 없었고, 그 흐름 중 하나가 에로영화였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한국영화계에서의 에로영화 붐은 세계적인 성 자유화의 조류와 함께 1960년대 말에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1970년대 내내 강고한 검열에 의해 억압되었다. 그러면서도 성을 표현하려는 노력은 계속 경주되었고 외설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서구 섹스영화에 관한 정보가 해외토픽으로 소개되며 이러한 흐름이 거스를 수 없는 것임을 에둘러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그러한 정보부터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예컨대 1980년에는 <칼리귤라 Caligula>(1979)가 영국에서 말썽이 되고 있다는 기사 3) 가, 1981년에는 그리스가 영화 검열을 폐지했다는 기사 4) 가 보도되었다. 이러한 흐름에 부응하며 한국에서도 억압되었던 욕망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애마부인>이 개봉하기 전 해인 1981년에는 ‘에로티시즘 영화’라는 문구를 전면에 걸고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정진우, 1980)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정진우, 1981)가 개봉하여 크게 흥행했다. 그 뒤를 이어 1982년 2월에 <애마부인>이 개봉하여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같은 해에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 The Postman Always Ring Twice>(1981)와 <보디히트 Body Heat>(1981)가 수입되어 관객동원 1위와 3위를 기록함으로써 5) 그야말로 1982년은 에로영화의 해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으로 볼 때 신군부의 3S 정책 중 적어도 영화[Screen] 부문은 처음부터 치밀하게 의도된 전략이 있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더 이상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민주화·자유화의 국면에서 집권한 신군부는 사회비판보다는 성적인 표현에 관대한 것이 낫다는 선택적 판단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애마부인> 이후 에로영화가 양산되자 검열이 1970년대 후반 기준으로 다시 강화되었던 것은 검열의 본질, 나아가 정권의 본질이 변하지 않았음을 드러내었다. [그림 1] <애마부인>(정인엽, 1982)의 포스터. 한글로 쓴 제목 위에 ‘愛麻夫人’이라는 한자표기가 보인다. 이는 검열 과정에서 외설스럽다는 이유로 변경이 강제된 제목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위에 나신으로 말을 타고 있는 애마(愛馬)의 모습이 보이고 있어서 아이러니하다. [그림 2] 염해리[김부선]가 주연을 맡은 <애마부인3>(정인엽, 1985)의 포스터. 역대 ‘애마’를 누가 맡느냐는 큰 관심사였다. 원조 애마인 안소영을 비롯해 오수비, 김부선 등이 ‘애마’ 역으로 데뷔했다. [그림 3] <애마부인>은 13탄까지 제작되며 한국영화사에서 에로영화를 대표하는 시리즈로 자리 잡았다. <애마부인13>(김성수, 1966)은 비디오영화로 제작되어 정식 시리즈에 넣지 않기도 한다. <파리애마>(정인엽, 1988)와 <짚시애마>(이석기, 1990), 그리고 최근에 나온 <애마부인2016>(김미연, 2016)까지 포함하면 <애마부인> 시리즈는 16편에 이른다. 보수와 외설, 그리고 검열의 친연성 1970년대에는 강력한 검열로 인해 ‘외설’에 해당하는 신체부위의 노출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통제와 불황의 늪에서 성적인 표현은 영화계가 그나마 해볼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이기도 했다. 이에 영화계는 예술을 내세우며 외설을 추구하였는데, 한편으로 그것은 표현의 자유를 확대한다는 명분을 지니기도 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성적인 표현이 스크린에서 이루어지기는 점점 더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그것을 모면해 보려는 영화계의 안간힘 속에서 성적인 표현은 도착적 환영의 영역이 되어갔다. 그 왜곡된 이미지가 스크린에 재현되는 것이 1980년대였고, 그 대표작이 바로 <애마부인>이었다. <애마부인>은 표면적으로는 강력한 가부장제의 윤리를 역설하면서 이면에서는 욕정을 참지 못하는 여주인공을 통해 외설을 보여주는 모순적인 영화다. 이 영화는 남편의 배신과 귀환, 그리고 그에 따른 애마의 일탈과 귀환으로 이루어져 있다. 애마는 남편의 배신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일탈하지만, 결국 남편에게 돌아옴으로써 아내로서의 자리를 지킨다. 이 영화에서 애마는 매우 도덕적이고 정숙한 아내이자 좋은 어머니이기도 하다. 이러한 애마에 대해 적대적인 시어머니나 시누이와 달리 시아버지(김진규)는 애마를 이해하고 아낀다. 그럼으로써 그는 애마로 하여금 가부장제의 이념에 충실하게 만드는 가부장 이데올로기의 수호자이기도 하다. 결국 애마는 시아버지의 뜻에 따라 가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와 같은 보수적 주제 아래에서 애마가 보여주는 성적 행동은 철저히 대상화되어 있다. 이 영화에서 애마의 성충동을 묘사할 때 주로 쓰이는 것은 클로즈업이다. 이 영화에서는 과도할 정도로 익스트림 클로즈업이 사용되고 있으며, 대부분 그것은 혀가 살짝 드러날 만큼 반쯤 벌어진 입술과 몽롱한 눈을 중심으로 애마의 얼굴에 집중된다. 여기에 더해지는 것이 애마의 몸을 더듬는 듯한 패닝, 그리고 말을 탈 때 말의 둔부와 맞닿는 애마의 둔부와 다리 등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 등이다. 프레임으로 절단된 여성의 육체를 성적 도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1970년대 검열이 보여준 페티시즘적 시선과 유비된다. 여기에 전제되어 있는 관점, 즉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은 이 영화에서 애마의 모든 행동에서 성충동을 연상시키는 것에서도 발견된다. 애마는 혼자 자면서도 몸의 선이 드러나는 슬립이나 슬리브리스 네글리제를 걸친다. 심지어 시골 친정에 내려가 밭 매고 똥지게를 지면서도 밤에는 흰색 네글리제를 입는다. 그녀는 침을 맞으면서도 붉은 카펫 위에 엎드려 알몸으로 입술을 반쯤 벌린 채 성충동에 사로잡히고, 아침에 개울에서 세수를 할 때에도 다리를 벌린 채 둔부의 곡선이 한껏 드러나는 포즈로 얼굴과 목선을 쓰다듬는다. 남편을 면회하는 창 앞에서는 손가락을 잔뜩 벌려 침대를 움켜잡듯 하고는 입김을 불어넣으며 “헤어지자는 얘기는 진심이 아니 었져? 당신도 날 사랑하고 있져? ”라고 입술이 닫히지 않는 형태로 서술어미를 발음한다. 그리고 이러한 애마를 보여주는 방식은 엿보기이다. 카메라는 애마의 성욕에 사로잡힌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제시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상상을 관음하게 만든다. 또한 그녀의 밀실에 잠입하여 사생활을 엿보는 긴장과 쾌감을 준다. 이는 에로티시즘 영화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에서는 유난히 애마의 일정한 신체 부위와 성욕이 강조되며 애마는 관객의 성충동을 만족시키기 위해 엿보는 대상으로 최적화 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녀의 옷차림도 그 아래에 언뜻언뜻 비치는 알몸에의 엿보기를 충동한다. 마지막에 그녀가 동엽을 만나러 가는 장면에서는 그것이 폭발적인 형태로 표출된다. 애마는 성충동에 못 이겨 흰색 네글리제 바람으로 동엽에게 달려가는데, 마침 폭우가 쏟아지고 그녀의 네글리제는 비에 젖고 나뭇가지에 찢어지며 몸을 부분적으로 노출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치마 속을 들여다보는 각도로 그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클로즈업하여 번갈아 보여준다. <애마부인>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당시에 음성적으로 유통되었던 <엠마누엘 Emmanuelle>(쥐스트 재캥, 1974)을 연상시킨다. 유한마담의 설정, 말을 타는 여자, 친구와의 동성애 관계, 여주인공의 상상을 통한 외설적 장면 제시, 몽환적인 영상 처리, 그리고 주인공이 화장대 앞에 앉은 모습으로 끝나는 장면의 유사성 등이 모두 그러한 예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러한 장면을 재현하는 방식은 <엠마누엘>에 비해 훨씬 타자화되어 있으며, 매우 분열적이다. 표면적으로는 가부장적 윤리에 충실한 현모양처를 표방하면서 이면에서는 타자의 성욕에 의해 대상화되는 것이다. 그 결과 <애마부인>은 낮에는 현모양처, 밤에는 창녀의 표상을 지니는 ‘성욕이 강한 도시 주부’를 관객의 성충동을 자극하는 ‘정숙한 창녀’ 6) 캐릭터로 조형한 소프트 포르노그래피가 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맥락이 결여된 도착성과 일견 그것에 어울리지 않는 보수적 주제가 1970년대 검열의 시선과 명분에 유비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요컨대 <애마부인>은 1970년대 검열에서 금지함으로써 오히려 부추겼던 외설적 상상력을 드러내는, 1970년대를 거치며 정향된 음화의 결정판이었다. <애마부인> 검열의 경과 앞서 말했듯이 1970년대 검열의 원칙은 1980년대에 들어서도 여전했다. 그러니 <애마부인>의 검열과정이 순탄할 수는 없었다. 우선 1980년대에도 1970년대와 마찬가지로 영화는 사전검열을 받아야 했다. 다시 말해 영화사는 영화를 제작하기 전에 신고를 해야 했고 영화의 시나리오를 검열 받아야 했다는 것이다. <애마부인>의 검열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시나리오였다. 검열 당국은 대본검토 단계에서 ‘전면 재검토’하라고 제작사에 시정통보를 내린다.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영화 제목이 내용과 무관하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작품의 전개에 있어서 외설, 퇴폐성이 짙어 성도덕이나 가정윤리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근거로 36개의 장면이 성적 표현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그림 4] 「극영화 <애마부인> 제작신고에 대한 회신」(발신: 문화공보부 장관, 수신: 연방영화(주) 최춘지), 문화공보부, 1981.10.15. 그러자 제작사는 통보받은 지 엿새 만에 다음과 같은 신구대조표를 첨부하여 문제가 된 장면들을 모두 수정하겠다는 각서와 함께 제작신고서를 다시 제출한다. [그림 5] 「극영화 <애마부인> 제작신고」(발신: 연방영화(주) 최춘지, 수신: 문과공보부장관), 연방 제79호, 1981.10.21. [신구대비표] 제작사가 예술성을 내세우며 수정을 거부하지 않고 검열당국의 지적에 따라 순순히 시정하겠다고 한 태도가 좋게 보여서인지, 제작사와 검열 당국 간의 물밑 교섭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검열문서로 확인할 수 없다. 아무튼 제작사의 자진 개작 이후 <애마부인>은 비교적 부드러운 ‘유의사항’을 통보받는 선에서 제작신고가 수리되었다. 유의사항의 내용은 “제명을 변경하고 신체 과도 노출 및 정사 장면을 순화 또는 삭제하는 한편, 외설스러운 작품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예술적으로 승화된 작품을 제작”하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제명은 반드시 한자로 표기토록” 하라는 제한사항이 덧붙여져 있다. 이는 ‘애마(愛馬)’가 외설스럽다고 하여 한자 표기를 ‘愛麻’로 수정했으니, 그것을 반드시 표시하라는 것이었다. [그림 6] 「극영화 <애마부인> 제작신고에 대한 유의사항 통보」(발신: 문화공보부장관, 수신: 연방영화(주) 최춘지), 문화공보부 예일 1724-19796, 1981.11.7. 이에 제작사에서는 ‘제명 변경 신청’을 하여 승인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제목과 내용이 부합해야 한다는 검열 당국에 명령에 맞추어 주인공의 이름은 ‘오수비’에서 ‘이애마’로 바뀌었다. [그림 7] 「극영화 제명 변경 승인」, 문화공보부 1724-20627, 1981.11.27. <애마부인>이 시나리오 검열 과정을 통과하여 제작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글래머 안소영 전라(全裸) 출연 영화”로 화제가 되었고, 필름 검열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이 영화의 전례 없는 과감한 노출은 신군부 정권의 검열 수위를 가늠해보는 층샛돌이 된 셈이었다. 우리나라 여배우중 가장 가슴이 크고 육감적이라는 안소영이 주연이며 탤런트 임동진이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하고 하명중, 하재영도 공연하고 있어 캐스트로도 중량급이다. 네거티브 몽타주 수법 등 특수촬영기법(이석기)을 도입, ‘상당히 끈적끈적한 화면’으로 평가된 이 영화는 아직 검열 전이어서 엄격한 이 과정에서 얼마만한 관용(?)을 얻을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7) 그런데 <애마부인>은 필름 검열 단계를 큰 제재 없이 통과한다. 예고편은 말 위의 다리 노출 장면과 말 위의 애마 모습이 나오는 화면 2개 처만 삭제하는 조건으로, 본편은 “신체 과도 노출 및 정사장면 3개 처”만 단축하는 조건으로, ‘연소자관람불가’ 등급을 받으며 검열에 합격한 것이다. 이에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안소영을 알몸으로 말에 태워 달리게 한 장면”이나 “환상적인 남자와의 관계를 마라톤 달리기 식으로 처리한 대담한 장면” 8) 은 완전히 삭제되지는 않은 채 연(軟)초점화나 단축된 형태로 공개될 수 있었다. [그림 8] 「<애마부인> 영화예고편 검열 합격증」, 문화공보부 제6053C1-123호, 1982.1.16. [그림 9] 「영화검열 합격증」, 문화공보부 6060C1-6호, 1982.1.28. <애마부인>은 개봉하자마자 “TV, 영화에서의 여성해방 기류” 9) 를 상징하고, “탈선한 유부녀를 긍정적 시각으로 묘사한” 10) 파격적인 영화로 소개되며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11) 게다가 통금이 해제되고 심야극장이 운영되면서 심야영화관의 ‘미드나잇스페셜’ 첫 프로로 선정되었다. 12) <애마부인>으로 촉발된 “관능영상(官能映像)의 세찬 바람!!” 13) 은 ‘성인용 에로물 제작붐’으로 이어진다. 14) <애마부인>을 통해 증명된 검열의 완화가 불황에 허덕이던 한국영화 시장에 불을 지핀 셈이었다. 같은 해에 개봉한 <반노>는 제작신고서에 아예 ‘완전성인영화’로 분류되어 검열을 통과하기도 했다. 마침 비디오영화 시장이 활성화되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도 한 몫을 했다. 이후 이러한 흐름은 ‘-부인 시리즈’로 이어지며 홈비디오 시장에서 인기를 누리게 된다. 1980년대 검열의 원칙은 1970년대에서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이제 검열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매체 환경이 조성되고 있었고, 행정적 검열보다 강력한 자본의 검열이 그 힘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1. 이 글은 박유희, 「검열이라는 포르노그래피」, 한국영상자료원 편, 『한국영화역사 속 검열제도』, 한국영상자료원, 2016.12, 190-201쪽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2. ‘에로(티시즘) 영화’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되는 것도 1969년경부터 주로 섹스영화의 미학을 논급하면서부터였다. 이후 이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1981년으로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에 대해 “원시적인 자연세계를 통해 인간의 본능과 욕정을 그린 농도 짙은 에로티시즘 영화”(「<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동아일보』, 1981.3.16.12면.)라고 부르면서부터이다. 그리고 1982년에 <애마부인>이 나오면서 급격하게 사용 빈도수가 높아졌다. <애마부인> 이후 ‘에로영화’는 한동안 19금 섹스영화를 가리키는 장르 명칭으로 받아들여진다. 3. “로마時代 섹스 映畫 英 검열통과로 말썽”, 《동아일보》, 1980.09.27.3면. 4. “希 映畫 검열 폐지”, 《경향신문》, 1981.10.31.4면. 5. 《동아일보》, 1982.06.22.12면; 《동아일보》, 1982.12.15.12면. 6. 캐스린 노버그는 포르노그래피에 등장하는 여성인물을 크게 정숙한 창녀, 희생자적 창녀, 자유사상의 창녀로 분류한다. 캐스린 노버그, 「자유사상의 창녀: 마르고에서 쥘리에트까지 프랑스 포르노그라피 속의 매춘」, 린 헌트 편, 조한욱 옮김, 『포르노그래피의 발명: 외설성과 현대성의 기원 1500~1800』, 상지사, 1996, 275-308쪽 참조. 7. “글래머 안소영 全裸 출연 영화 <애마부인> 檢閱과정”, 《경향신문》, 1982.01.16.12면. 8. “글래머 안소영 全裸 출연 영화 <애마부인> 檢閱과정”, 《경향신문》, 1982.01.16.12면; “안소영 육감적 演技 자랑/ 첫 主演 ‘愛馬부인’이 ‘愛麻부인’으로/ 풍만한 가슴에 정사신 대담/ 半裸로 안장 없는 말 타기도”, 《동아일보》, 1982.02.04.12면; “지금 애마부인이 몸 전체로 숨가쁘게 달려온다”, 《동아일보》, 1982.02.01.7면. 9. 《동아일보》, 1982.01.16.11면. 10. 《동아일보》, 1982.01.16.11면. 11. “1회부터 전회매진열풍”, 《매일경제》, 1982.02.24.14면. 12. “심야에도 영화 상영한다”, 《매일경제》, 1982.03.19.9면; “영화가 심야극장 첫선 <애마부인> 자정관객 만원”, 《동아일보》, 1982.03.29.12면. 13. 《동아일보》, 1982.02.04.6면. 14. “성인용 에로물 제작붐”, 《동아일보》, 1982.02.04.12면; “벗기는 映畫가 主流/ 下半期 邦畫 製作 30篇”, 《동아일보》, 1982.09.06.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