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도시
- 감독
- 김양득
- 제작년도
- 1984
- 출연
- 이미숙, 임성민, 김추련, 명희, 박원숙, 윤준희, 홍윤정, 유명순, 남수정, 곽건, 양형희, 나갑성, 홍성현, 김불이, 고정일
영화는 두 소년, 소녀의 대화로 시작한다. “완두의 큰 것과 작은 것을 교배시키면 키가 큰 놈만 나온다고”, “그러니까 영수 너가 이다음에 커서 결혼을 하면 너희 아버지처럼 난장이가 아니라 큰아이를 낳을 수 있단 말이지?” 소년 명수의 아버지는 사람들이 ‘난쟁이’라고 놀리는 ‘왜소증 장애인’이다. 아버지가 놀림당할 때, 그의 아이들은 나도 ‘난쟁이’가 되거나, 난쟁이’를 낳게 되는 게 아닌지 두려워한다. 그런 명수에게 어딘가에서 본 ‘멘델의 유전법칙’은 나름대로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명수는 소녀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동네 사람들의 직업인 염전노동자가 되지 않겠다 약속한다. 명수( 안성기 )는 다행히 키 큰 청년으로 성장하고, ‘염전노동자가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성인이 된 그는 하고 싶었던 공부도 못했고, 변변한 직업도 없는 신세다. 그럼에도 그를 둘러싼 가족만큼은 단단하다. 이들은 가족만을 생각하는 엄마( 전양자 )의 헌신과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아버지( 김불이 )에 대한 존중으로 함께 살고 있다. 엄마는 “그래도 우리 가족이 모여 살 집 한 채가 있다는 게 어디냐”고 말한다. 어느 날, 그 집 한 채마저 사라질 위기가 닥친다. 위기는 난데없는 굉음으로 먼저 찾아온다. ‘탁 탁 탁 탁!!!’ 판자를 붙여 만든 대문에 누군가가 망치질을 하고 있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가족의 표정에는 문을 부수고 들어오려는 좀비를 마주한 것 같은 공포가 서려 있다. 망치질을 끝낸 사람이 말한다. “번호판을 잘 지키십시요. 번호판이 없으면 보상을 못 받게 됩니다.” 가족은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엄마는 마음을 다잡고 아들을 먼저 안심시키려 한다. “놀랄 거 없다. 언젠가는 우리에게 꼭 찾아올 것들 중 하나니까, 이제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로구나.” 유명한 소설을 영화화하는 감독은 모두가 원작의 무게에 짓눌릴 것이다.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하 <난쏘공>)을 연출한 이원세 감독은 조세희의 동명 원작과 공간을 달리하면서 그 무게로부터 벗어난다. 원작의 낙원구 행복동 46번지는 한강을 지척에 둔 달동네이지만, 영화의 배경은 쇠퇴한 염전마을이다. 촬영장소는 지금은 시화공단이 된 과거 군자염전 마을이고, 실제 그곳을 다니던 수인선 협궤열차도 중요한 공간으로 나온다. 영화의 배경이 원작과 다른 이유가 검열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원세 감독의 마스터클래스에 따르면 처음부터 염전마을을 생각했다고 한다. 이원세 감독 자신이 실제 군자염전마을에서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경험을 토대로 그는 김수용 감독의 1968년 작 <수전지대>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으며 자신이 연출한 < 엄마 없는 하늘 아래 > (1978) 속 아버지를 염전 노동자로 설정하기도 했다. 공간이 바뀌면서 영화는 감독이 가장 잘 아는 곳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었다. 영화 속의 염전은 상황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전국을 돌며 서커스 공연을 다녔던 김불이가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만날 때의 염전은 풍요롭게 빛난다. 하지만 명수가 옆집에서 함께 자란 명희( 전영선 )와 염전 밭 사이를 걸으며 불안한 미래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는 사방이 축축한 절망의 공간이다. 그 때문에 인물들이 갇힌 공간이 원작보다 더 고립되어 보이기도 한다. 김불이와 명수가 한강에서 작은 나무배를 타고 나가 대화를 나누는 원작의 장면도 영화에서는 바닷가로 바뀌었는데, 이 상황은 멀리 보이는 노을 덕분에 더 애틋하다. “난 너희 어머니를 위해 먼저 달나라에 가서 릴리푸트 마을을 건설할 셈이야.” 이원세 감독은 그처럼 다양한 염전의 표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침이면 일터로 나갔다가 밤이면 수인선 협궤열차를 타고 돌아오는 가족의 모습 또한 그의 기억에서 나온 장면일 가능성이 크다. 덕분에 영화 <난쏘공>은 지금은 사라진 공간에 대한 희귀한 기록이 되기도 했다. 서울 달동네 대한 기록에 비해 군자염전에 대한 기록은 훨씬 더 적을 테니 말이다. 당장 집을 내줘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 가족에게 마땅한 탈출구는 없다. 아파트 입주권을 팔아도 대부분의 돈을 빚 갚는데 써야 하고, 아파트로 들어가려면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명수는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명희의 죽음을 겪고, 유명한 권투선수가 되어 돈을 벌어보려고 했던 동생 영호( 이효정 )는 경기에서 지고 만다. 오빠들이 사랑하는 여동생 영희(금보라)는 가족의 생존을 위한 위험한 모험에 몸을 던진다. 원작에도 나타나는 남루하고 절망적인 이야기들이지만, 이원세 감독은 원작보다 더 강인한 인물들을 그리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가장 두드러진 묘사는 배우 전양자가 연기한 엄마에서 나타난다. 남편을 존중하고 자식들을 소중히 여기는 전형적인 여성상 같지만, 그녀는 이 가족 구성원 가운데 가장 냉철한 캐릭터다. 자식들에게 이제 너희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현실을 일깨우고, 위기가 닥쳤을 때는 당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의연함을 보인다. 이 캐릭터의 가장 강렬한 모습은 철거용역이 집을 철거하는 장면에서 볼 수 있다. 가족들은 이 집에서의 마지막 식사인 걸 아는 듯 고기를 굽는다. 철거용역은 이 집에 사람들이 있는 줄도 모른 채 철거를 시작한다. 가족들은 집이 무너지는 소리에도 계속 고기를 먹는다. 급기야 철거용역은 아들이 식사를 하는 방까지 부숴버린다. 영화는 인물들의 얼굴 뒤로 집이 무너지는 광경을 배치하면서 이들이 다부지게 고기를 씹는 표정을 강조한다. 철거용역은 그제야 사람을 보고 잠시 철거를 멈춘다. 영화는 이때 엄마의 존재를 또 한 번 부각시킨다. 엄마는 남은 고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 철거 단원들에게 한 점씩을 먹인다. 마지막 식사를 배려해준 그들에 대한 최선의 호의. 동시에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다. 절망적인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은 세상에 나온 지 30년이 된 지금도 사랑받는 이야기다. 지난 2017년까지 300쇄가 팔렸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주인공 김불이의 가족이 겪는 고통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 겪고 있을 법한 것이기 때문일 것 같다. 집이 없다는 불안감은 소설이 나온 1975년이나, 영화가 나온 1981년이나 이 글을 쓰고 있는 2018년에나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실제 「난쏘공」은 지난 2006년에도 영화화 시도가 있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영화화에 참여한 프로듀서는 "원작의 시대적 배경인 1970년대를 그대로 반추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라며 “「난쏘공」이라는 뛰어난 작품의 환경과 인물을 빌려 이 시대 가장 낮은 곳에 살고 있는 소시민 가족들의 정신적인 소통과 애정, 사랑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난쏘공」은 1981년의 영화 <난쏘공>이 보여준 것처럼, 공간을 달리해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보호를 받고 있었다. 남아프리카의 어느 원주민들이 일정한 구역 안에서 보호를 받듯이 우리도 이질 집단으로서 보호를 받았다. 나는 우리가 이 구역 안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작의 이 문장에서 지금도 울림을 느낀다면, 동의할 것이다. 2020년을 바라보는 지금의 낙원구 행복동은 어디일까?
본인이 이원세 감독을 처음 만난 때는 1969년 초 가을로 생각된다. 태창흥업에서 ' 문정왕후 ' < 나봉한 감독> ' 마지막 편지 ' < 최훈 감독> '돌아오지 않는 다리' < 고영남 감독>등의 작품을 계속 쓰고 있을 때였다. 이원세 감독이 김수용 감독의 조감독으로 있을 때인데 하루는 태창흥업의 제작상무인 최재호씨가 본인에게 좋은 친구 한 사람을 소개하겠다고 하며 소개해 준 이가 바로 이원세 감독이었다. 큰 키에 건장한 체구, 잘 생긴 얼굴하며, 귀를 덮은 더벅머리, 당시 우리가 좋아하는 사나이 모습이었다. 만난 것은 처음이지만, 김수용 감독이 연출해 크게 성공한 작품 ' 수전지대 '의 시나리오를 쓴 이가 이원세 라는 사실에 금방 그와는 뜻을 같이 하는 동지가 되었다. 작가와 감독 지망생이 만났으니 작품 하나쯤은 만들어 봐야 하지 않겠는가고 의기투합, 경비는 최재호씨가 충당해 줘, 본인과 이원세 감독은 제주도로 급행, 작품 쓰기에 전력을 다 했다. <하니문 · 하우스>라던지 <성산 일출봉>, <외돌개>며 <사자바위>, 우리가 가 보지 않은 제주 구석은 없었다. 제주에 온지 두 달 만에 '꿀맛'이라는 제명의 작품을 완성했다. 신성일 , 문희 가 주연으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촬영을 무사히 끝내고 녹음을 마치자 문공부에 영화 검열을 신청했다. 아니나 다를까 제명 '꿀맛'이 문제가 되었다. 남의 집 아내를 사랑한 불륜이 어째서 '꿀맛'인가? 제명을 바꾸라는 통첩이 떨어졌다. 이원세 감독은 자기의 첫 작품의 제명도 사랑스러웠던지 여러 곳에 '꿀맛' 제명을 쓰게 해 달라고 했지만, 서슬이 퍼렇던 군사정권이었고, 가는 곳마다 정보부 파견관이 있어, 그들의 말이 곧 법이었던 시절이었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제명을 ' 잃어버린 계절 '로 바꾸었다. 이 작품의 스토리는 <주인공 소라는 결혼식을 올리고 시집의 큰 목장에 들어오지만, 남편은 오랜 항해를 위해 집을 비우게 된다. 소라는 시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나, 치미는 뜨거운 열기로 긴 밤 잠 못 이루곤 한다. 이 목장 하인의 아들인 정신 이상자가 몰래 소라의 침실을 가끔 훔쳐 보곤 한다. 천우신조였을까 ? 넓은 목장 안에 꿀 채집 차가 들어온다. 소라 앞에 양봉쟁이 청년이 나타나 반찬도 얻어 가고, 물도 얻어 먹으며, 그만 둘은 사랑에 빠진다. 이런 두 사람의 사랑의 유희를 정신 이상자가 가끔 몰래 훔쳐 봄은 물론이다. 시아버지는 소라의 불륜을 알고 오래도록 고민 하다가 소라를 청년에게 주려고 결심, 청년을 불러 소라를 부탁한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이제는 자유라며 굳게 쓸어 안고 또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이 광경에 질투를 느낀 정신 이상자는 양봉쟁이 청년을 살해하고 만다. 이에 소라도 목장을 떠난다.>는 이야기다. 1971년 8월에 국도극장에서 개봉해 관객 9만여 명이 든 작품이었다. ' 기로 , 72' ' 흑지 , 72' ' 나와 나 , 72' 이 작품은 최무룡 , 하명중 , 우연정 이 주연한 작품인데 스토리는 <대학 중퇴생인 유진이 외삼촌의 부름을 받고 일본에 갔다가 외삼촌이 준 자가용 한대를 가지고 귀국한다. 부산에서부터 가지고 오는 차로 인해 재일 교포로 인정받게 되고, 가짜 교포 행세를 하느라 사기도 치고, 점점 범죄의 포로가 돼 슬프게 살다가 가짜 이름인 <히라오까 유지로>로 죽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원세 감독은 이 작품으로 <청룡 영화제 신인 감독상>을 받는다. ' 방년 18세 , 73' ' 석양에 떠나라 , 73' ' 특별 수사본부 배태옥 사건 , 74'는 신일룡 , 윤소라 , 이대엽 이 주연했으며, <북경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배태옥은 해방이 되자 조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철저한 공산주의 신봉자인 남편 황룡에게 휘말려 남노당 당원으로 조국에 침입해, 경찰에 잡혀 형을 받아 수감생활을 할 때 6. 25사변이 터져 서울의 감옥은 깨어지고, 배태옥은 석방 돼 <서울여성동맹위원장>이 되고, 공산당을 위해서 온갖 악행을 다 부린다. 9. 28 수복이 되자, 월북하지 못한 배태옥은 경찰에 잡혀 사형선고를 받으나, 과거 독립운동을 했다는 공 때문에 20년으로 감형, 20년의 옥살이하고 난 그 인생은 이미 끝나 있더라는> 이야기다. 이 작품이 <아세아 영화제>에 출품돼 윤소라 씨가 <주연 여우상>을 수상한 바 있다. ' 특별 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 , 74' ' 아빠하고 나하고 , 74' ' 만나야할 사람 , 74' ' 빵간에 산다 , 74' ' 인간 단지 , 75' ' 특별 수사본부 외팔이 김종원 , 75' ' 꽃과 뱀 , 75' ' 목마와 숙녀 , 76' ' 광화문통 아이들 , 76' ' 엄마 없는 하늘아래 , 77' ' 악어의 공포 , 77' ' 속 · 엄마 없는 하늘아래 , 77' ' 철새들의 축제 , 78' ' 병아리들의 잔칫날 , 78' ' 전우가 남긴 한마디 , 79' 는 진봉진 , 장혁 , 전영선 이 주연한 <40번 뺏기고, 38번 찾은 158고지의 일화를 그린 작품이다. 적의 천년 요새를 파괴하기 위해서 특공대가 조직되고, 여럿의 특공대가 전사 하면서 적의 천년 요새에 침투, 시한폭탄을 장치하고 살아 남은 대원들만 귀대하는 순간, 적에게 발견돼 적의 추격을 받는다. 이에 늙은 장상사가 나서며 적들을 자기가 막을 테니 모두 떠나라고 외친다. 대원들은 눈물을 뿌리면서 장상사를 버리고 자리를 떠난다>는 이야기다. 이원세 감독은 이 작품으로 80년 <백상대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 땅콩껍질 속의 여자 , 79' ' 돛대도 아니 달고 , 79' ' 태양을 훔친 여자 , 79' '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80' 이 작품은 경희대학교 교수로 있는 소설가 조세희 의 작품을 영화한 것이다. 주연은 안성기 , 신우철 , 장미희 가 했으며, <행복동에 사는 난쟁이 김불이의 가족이 일으키는 부동산 투기의 전말을 그린 영화다>. 이 작품의 우수성을 이제 다시 말해서 무엇하랴! 그러나 할 이야기는 하고 가야할 게 아닌가? 유신 독재시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이미 두 차례나 지나 간 터에 <행복동>처럼 못 사는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고 떠들 때 이 영화가 나왔으니 문제였다. 그러나 대종상 영화제가 며칠 남지 않은 날 <문화공보부>의 영화 담당자가 이원세 감독에게 전화를 했단다. 이번 영화제에 귀하가 연출한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으니 그 날 모두 양복을 입고 나오도록 해 달라는 이야기가 있었단다. 그런데 이원세 감독의 작품이 사회성을 망각했다는 이유로 영화제 시작 두 시간 전에 딴 작품들로 바뀌었다니, 그때의 심정이 오죽 했겠는가? 그때 정말 영화를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나중에 미국에 살면서 이원세 감독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 하늘이 부를 때까지 , 80' ' 매일 죽는 남자 , 80' ' 그대 앞에 다시 서리라 , 80' ' 하와의 행방 , 82' '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 82' ' 3일 낮 3일 밤 , 83' ' 이방인 , 84' ' 그 여름의 마지막 날 , 84' 이 영화는 하재영 , 나영희 , 박근형 이 주연했으며, 스토리는 <대학 지하 서클에서 공산주의 이론으로 자라난 영철은 학교 소요 사태의 주범이 돼 경찰에 쫒기자, 일본으로 밀항, 조총련의 신기화를 만나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간다. 그러나 영철은 북한의 엉터리 선전을 보자 북한 탈출을 시도하나, 성공하지 못하고 북의 손에 희생된다는 이야기다.> 이원세 감독은 <대종상 영화제>에서 이 작품으로<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다. ' 여왕벌 , 85'는 이혜영 , 조용원 , 이주성 주연이었고, 스토리는 <영어회화 선생인 미희는 외국인과의 사랑이 실패로 끝나자 방황하며, 이태원의 <여왕벌>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다. 첫사랑의 남자 경수가 악의 수렁에 빠져 있는 미희를 구출하려고 하지만 미희는 그 말을 듣지 않는다. 한편 동생인 정희가 미국인을 데리고 나타나 언니에게 과시를 하고 있지 않는가? 그 스티브란 사나이는 다름 아닌 미희에게 사랑의 상처를 준 남자며, 그가 하는 일은 여자를 울리는 악한 사나이의 표본이었다. 미희는 동생을 구출하려고 스티브를 유혹해 그를 살해한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또 반미 사상이 깊이 깔려 있다고, 수시로 정보부에서 오라는 호출이 수십 번이었단다. 이때야말로 영화를 그만 두고 평범하게 살겠다고 결심했노라고 이원세 감독은 후일 본인에게 말한 바 있다. 처남의 <미아리 양말 공장>도 망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돈 독촉도 받고, 정보부에서의 태도가 이원세 감독이 조국을 떠난 커다란 원인이었으리라. 본인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국에 이민을 가 뉴욕 Ch. 25 한국 텔레비전 방송국의 보도담당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져 사무실을 꾸미기 위해 <크리스마스 · 트리>를 사려고 <롱아일랜드> 큰 시장엘 나갔다가 먼 발치서 아는 얼굴을 언뜻 보게 되었다. 분명 이원세 감독의 얼굴이었으나 당시 <크리스마스 · 트리>를 팔고 있는 모습만으로는 이원세 감독으로 짐작하기가 몹시 어려웠다. 눈을 여러 번 의심했지만, 그는 틀림없는 이원세 감독이었다. 들리는 소문에는 <미아리>에서 <양말공장>을 하는 처남의 사업이 잘 안돼 이원세 감독이 영화계 여러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처남의 공장을 도와주는 처지라고 하던데 그 공장이 쓰러지고, 이원세 감독은 빌린 돈에 떠밀려 미국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으나, 이원세 감독 이야기를 들으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문화공보부>로부터 11개 부문이나 <노미네이트>됐다가 수상 두 시간 전에 다른 작품으로 바꿔진 일이며, 이태원 <여왕벌>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그린 것이 <반미사상> 때문이 아니었냐고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을 해 대 고국을 떠나 미국에 오게 됐노라고 이야기했고, 그 이유 중에는 가까운 영화계 이웃들에게 돈을 빌려 처남을 도와주고 공장이 망해, 돈을 돌려주지 못한 것도 큰 이유라고 말했다. 오랜 세월 뉴욕에 함께 살면서 가끔 이원세 감독을 만나 그의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부인 배순미 여사와 외아들 승준이도 잘 크고, 공부도 잘하고 있다고 했다. 그후 이원세 감독이 큰 상가에 점포를 연 일이며, 그가 조금씩 좋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살던 어느 날 본인이 이원세 감독, 전우열 감독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영화계를 위해 뭔가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남북 영화제'나 한번 해 보자고 제의했고, 두 사람도 찬성해 뉴욕 제1회 '남북 영화제'를 주동진 님의 주선으로 열게 되었으며, 북에서 엄길선, 홍영희 , 오미란 등 <인민배우> 8명이 참석했고, 우리 남에서도 신성일, 태현실 등 10여명이 참석해 아주 훌륭한 영화제가 되었다. 이원세 감독, 얼마 전 미국에 갔을 때 형이 뉴욕에 안 계신 이유를, 여러 사람이 본인에게 들려 주었지만 이형! 나는 압니다. 몸이 좀 불편해 사람을 만나는데 조금은 부담스런 모습이지만 열심히 그 치료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형! 어서 빨리 그리다 만, 초상화를 완성해야 하지 않습니까? 보고 싶습니다. 그립습니다. 이원세 감독! 이두형 (시나리오 작가) / 2003년 <프로필> 1940년 11월 16일 평양 출생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 국학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1년 < 잃어버린 계절 >로 데뷔 <수상 경력> 1973 청룡상 신인상( 나와 나 ) 1974 아세아영화제 주연여우상( 특별수사본부 배태옥 사건 ) 1981 백상대상 감독상( 전우가 남긴 한마디 ) 1984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 그 여름의 마지막 날 ) <작품 연보> 1972 기로 / 나와나 1973 방년18세 / 석양에 떠나라 / 특별수사본부 배태옥 사건 1974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 / 아빠하고 나하고 / 만나야 할 사람 / 빵간에 산다 1975 인간단지 / 특별수사본부 외팔이 김종원 / 꽃과 뱀 1976 목마와 숙녀 / 광화문통 아이 1977 엄마없는 하늘아래 / 악어의 공포 / 엄마없는 하늘아래(속) / 1978 철새들의 축제 / 엄마없는 하늘아래(병아리들의 잔칫날) 1979 전우가 남긴 한마디 / 땅콩껍질 속의 연가 / 돛대도 아니달고 / 태양을 훔친 여자 1980 매일 죽는 남자 / 하늘이 부를 때까지 / 그대앞에 다시 서리라 1981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82 하와의 행방 /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1983 3일낮 3일밤 1984 이방인 / 그여름의 마지막 날 1985 여왕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