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ff
- 감독
- 김성훈
- 제작년도
- 2001
- 출연
- 정연주, 김상석, 플레셔, 이데니아, 새디언, 보소007, 김진후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중 (사진: “ jinu montage ”, 유튜브) 본 원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에 기반해 작성됐으며,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안내드립니다. * 이 글은 2024년 12월에서 2025년 12월까지의 한 무명 영화평론가의 도전기다. 다 쓰고 보니 비평에 관한 고차원적인 통찰은 없는 것 같다. 그걸 논하려면 실력적으로 좀 더 여물어야 한다. 그전에 평론가로서 생존해야만 했다. 이 글은 그 과정에서 만난 영화들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걸어온 길은 나를 다른 관점으로 좋게 보아온 이들의 눈을 통해서 [1] 만들어졌다.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Intro 바퀴가 되던가 바퀴에 깔리던가 난 다른 차선에 세우고 깜빡이 켜놔 - 이센스, <쉬게> “보안정책에 의해 차단 되었습니다.” 2026년 상반기에 잠시 일하는 곳에서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기로 한 영화를 예매 취소하려고 로그인하니 떡하니 보였던 문구다. 차단, 배제, 초대받지 못함 등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차단은 상당히 신선했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갑자기 일을 하게 돼서, 평소에 가던 평일 오후 2시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주로 하는 언론배급 시사회는 당분간 못 가게 됐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영상자료원이나 서울아트시네마에 가기가 아직은 엄두가 나질 않는다. 퇴근 후 노트북으로 영화를 파편적으로 보거나 주말을 이용해 밀린 숙제처럼 영화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그것이 결코 나쁜 일은 아니라고 여긴다. 내가 취소하려고 했던 영화는 로베르 브레송의 < 아마도 악마가 >(1977)였다. 손에 넣으려고 하면 언제나 그랬듯이 도망간다. 영화와 잠시 멀어졌지만, 근무지에서 사람들을 대하며 오히려 영화적인 순간을 최근 체험했다. 아무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데 꼭 그러면 만난다. 하나는 친했던 옛 친구를 오랜만에 마주쳤다.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신세라 친구와 담배 하나를 같이 필 수 없었다. 아쉽게 손 인사만 하고 그를 떠나보냈다. 잠시 마주친 그 순간이 어쩌면 그 친구와의 마지막이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이상했다. 다른 하나는 답답해서 사무실을 나와 찬 공기를 마시는데 두 명의 영화배우가 지나갔다. 작년 《씨네21》 ‘프런트 라인’에 합류해 처음 쓴 비평이 두 배우가 나온 영화였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잘 움직였던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도로에 멈춰 선다. 그는 차 안에서 담배 하나를 피며 생각을 고쳐먹는다. 지금이 나에게 그런 시기 같다. 하는 일이 끝날 무렵, 시네필들이 안 좋아하지만 나는 애정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 오디세이 >(2026)가 아마도 용산 아이맥스관에서 시사회를 열 것이다. 놀란이 매달리는 ‘귀환’이라는 화두처럼 나는 다시 영화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시사회 인원수 제한에 컷 당하지 않고 무사히 입성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비평, 안녕하십니까? 글쎄 전혀 안녕하지 못하다. KMDb의 “비평, 안녕하십니까” 코너에 나는 언제 써보나? 영자원에 자주 가는 건 소용없다. 이들의 눈에 띄려면 어디서 놀아야 할까? 쟨 뭔데 50주년 리스트를 썼지? 왜 난… 이런저런 불만 섞인 질문들이 쏟아졌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점점 마음이 꼬여갔다. 늘 위기인 비평과 < 기생충 >(봉준호, 2019)으로 정점을 찍고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직격탄을 맞은 후 급격하게 추락 중인 한국영화보다 내가 더 걱정이었다. 그곳에 기생하는 존재라 숙주가 위기일 때 가장 먼저 떠날(능동) 혹은 떨어져 나갈(수동) 이들은 누구일까? 래퍼 이센스의 <A-G-E>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와중에 버는 놈들이 타짜지.” 그런 타짜들이 부럽다. 나도 타짜가 되어 전국을 누비며 한몫 챙기는 영화평론가를 꿈꿨지만, 지금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다. 타짜가 되기엔 애매한 재능 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악마의 저주일까? 이런 상황에서 영화와 비평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내겐 사치다. 위기라고 상정하고 파국이 된 그곳을 사유하는 것은 어찌 보면 안전거리가 확보된 이들에게 허락된 고상한 일은 아닌지 생각도 해본다. 그러기엔 내 눈앞에 놓인 현실이 비루하기 짝이 없다. 간단하게 말해서 일이 없는데 누가 누굴 걱정하겠는가. 영화 시장이라는 곳에서 나는 스스로를 내보이곤 있지만 매칭이 잘 이뤄지지 않는 매력적이지 않은 매물인 것이다. 비평가 자체가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다. 대(大) 인플루언서 시대에선 더욱이 말이다. 등단 이후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갔는데) 콩고물이 떨어지길 기대했던 것이 오산이다. 요즘은 등단 없이 혹은 등단 제도에 콧방귀를 뀌며 등장한 평론가들이 오히려 내가 원했던 그 자리에 더 빨리 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를 써준 분들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완성형 시네필로 등단한 케이스가 아니다 보니, 지금도 나를 쓴다는 것은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그 불안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선 시네필-평론가들이 학창 시절부터 영화에 쏟아부었던 시간만큼 나 역시 영화에 투자해야 한다. 적게 잡아도 10~15년. 하지만 세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잡지는 싸움의 장소라기보다는 매칭 애플리케이션이 되었다. 크림처럼 실패한 비평가이자, 실패한 산문가는 오늘날에 잡지에서 그렇게 환대받는 작가는 아닐 것이다. 크림은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엄숙한 비평 스타일에서 탈피, 구어적이고 생생한 언어로 비평을 썼지만, 그의 지위는 어중간한 평론가로 머물며, 독자에게 호응받지 못했다.” 강덕구 평론가가 한예종 웹진에 기고한 “ 잡지의 전성기에 관한 영원한 수다 ”란 글의 한 부분이다. 날카로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실패한 평론가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의 눈에는 신기한 행보로 비칠 수도 있다. 근데 그 누군가는 어디에 있을까? 아예 안 되진 않는다. 뭔가 되기는 한다. 그게 저주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내가 원하는 타이밍이 아닌 뒤늦게, A를 바라면 B나 C를. 확실한 건 직행 티켓은 없다는 것! 우회를 거듭하며 돌고 돌아 영화라는 왕국에 잠시 머물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감질나게 맛만 보고 말이다. 2024년이 시작하고 《씨네21》에서 주는 리뷰만 쓰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았다. 나이는 차고 ‘젊은’ 시네필-평론가들이 새롭게 씬을 장악하는 상황에서 나는 시작도 안 한 것 같은데 끝난 느낌을 받았다. 리부트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뭔가를 도모할 동료도 없었다. 그저 혼자서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것만이 내게 남은 선택지였다. 또다시 등단을 시도해야만 했고, 단편이 아닌 장편을 만들어야만 했다. 도착 지점은 다름 아닌 영화제. 여태 안 불러줬는데 내년이라고 다를까… 이런 허무함이 나를 뒤엎을 무렵, 안 불러주면 ‘내가 직접 간다’라는 밑도 끝도 없는 오기가 작동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뭐라도 만들어서 도전해 보고 그러고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그래야 후회가 덜 남을 것 같았다. 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영화제에서 일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그 정도야 나도 안다. 그 천운이 내게 안 떨어지는 걸 어떡하겠나. 뭔 수를 써서라도 그 근처라도 가는 수밖에. 내가 찾은 틈새는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비평공모전. 부산영평 출신 평론가들이 부산국제영화제 크리틱b상 심사위원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이 우회로. 물론 그해 공모전 주제였던 아키 카우리스마키를 좋아해서 쓴 것은 맞지만 앞서 설명한 저 욕망이 없었다면 글은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2025년. 김칫국을 드럼통째로 마시고 있었는데 연락은 없었다. 갑자기 《씨네21》의 김성훈 기자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왔다. -이번에 부산 내려가시죠? -안 불러줘서 못 가요. -(다 함께) 하하하 30주년 기념으로 씨네21상이 신설되면서 심사위원으로 선정됐다는 반가운 섭외 전화였다. 왜 뽑혔는지 나름 예상은 했지만, 핵심은 작년에 부산영평에서 등단했다는 것. 글을 안 썼으면 열리지 않았을 문이다. 우회에 우회. 그렇게 부산에 내려가서 12편의 영화를 보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1. <아코디언 도어>: 월경(越境)의 이미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비전’ 부문의 한국독립영화 12편 중 씨네21상은 손경수 감독의 < 아코디언 도어 >(2025)에게 돌아갔다. 위에서 하이라이트한 부분은 모두 이 영화의 대사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우선 영화를 다시 볼 수 있게 스크리너를 친히 내준 손경수 감독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영화제 심사 때 쓴 “CINEMA”라 적힌 노트를 다시 꺼내 봤다. 그때 미처 보지 못한 것을 영화를 다시 보며 발견했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아코디언 도어>에 왜 끌렸을까를 생각해 봤다. 작가(Writer’s Block) 한예종 전문사에 입학하면서부터 글 쓰는 캐릭터에 나도 모르는 새 빠졌던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의 < 버닝 >(2018)의 종수를 시작으로 이지은 감독의 < 비밀의 언덕 >(2022)의 명은이, 그 누구도 기회를 주지 않을 때 GV 모더레이터 데뷔를 시켜준 천재 김홍기 감독의 < 익스트림 페스티벌 >(2022)의 래오, 홍상수 감독의 <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2025)의 시인 동화 그리고 <아코디언 도어>의 지수까지. 영화평론가가 다양한 활동을 한다지만 기본이 되는 것이 결국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와 비평이 내 삶에서 멀어지려고 할 때, 작가의 형상이 아른거리는 영화를 마주하면 더 눈길이 갔다. 캐릭터들의 고민이 그 시기의 나의 고민과 공명한 것도 한몫한다. 초기엔 뭘 써야 할지(<버닝>), 얼마나 솔직해야 하는지(<비밀의 언덕>)를 고민했다. 그러다 최근엔 좀 더 현실적인 고민에 접어들었다. 글을 안 쓰고 있는 나의 게으름(<익스트림 페스티벌>)과 나이는 먹어가는데 평론가로서 자리를 못 잡고 있는 현실(<그 자연>)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런 나의 초라한 상황과 상반되게 영화제는 너무나 화려했다. 그곳에서 본 <아코디언 도어>의 한 문장이 내 가슴을 후벼팠는지 노트에 많이 적혀있었다. “어차피 평범해질 운명이었다.” <아코디언 도어>에 대한 작품 비평은 이 영화의 개봉을 고대하며 뒤로 미루고 싶다. 대신에 이 영화의 전환점에서 보여주는 놀라운 수직의 움직임을 말하고 싶다. 타임라인 상 가운데에 해당하는 지점에서 영화는 하늘 높이 풍선을 띄운다. 소제목에도 썼듯이 <아코디언 도어>는 경계를 넘는 이미지로 넘실대는 영화다. 크게는 지구와 우주,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 도달하는 이 영화는 그 사이에 낀 ‘재능’이란 녀석을 주목한다. 물에서 뭍으로 사진: " 아코디언 도어 ", 부산국제영화제 / ⓒ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과학 괴짜 종윤이가 우주 풍선을 쏘아 올린다. 성층권 33km까지 도달한 풍선, 그곳에서 내려다본 지구. 한계에 다다랐을 때 풍선은 터지고 지구로 추락한다. 지구에선 지수( 문우진 )가 강 아래로 추락하고 있다. 물에 빠진 건 이때뿐인데 <아코디언 도어>가 그리는 세계는 마치 수면 아래의 세계 같다. 영화 내내 간간이 들리는 파도 소리와 귀가 먹먹한 사운드 효과는 물의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영화를 다시 감상하며 지수가 마치 물고기처럼 느껴졌다. 영화 속 인물들이 처한 상태 역시 물과 관련됐다. 예를 들면 무언가에 심취(心醉)한, 몰입(沒入)한, 사랑에 빠진(fall in) 등등. 이는 모두 물과 관련된 혹은 연상되는 표현들이다. 그러한 물의 세계와 작별을 고하고 뭍으로 넘어온 지수는 대전환을 맞이한다. 정확한 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유튜브에서 보고 적어둔 글귀가 있다. “물고기가 육지로 올라오는 것은 인간이 산소통 없이 달에 간 정도의 놀라운 기적.” 물에서 건져진 이후로 지수는 키가 자라고 털이 나기 시작한다. 일종의 진화라고도 볼 수 있는 육체적 성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능만 믿고 까불었던 지수는 새롭게 다가오는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다. 모종의 사건이 벌어지고 지수는 빵을 만드는 마이스터고에 진학한다. 글 쓰는 것과는 상관없는 곳에서 지수는 무탈하게 지낸다. 그리고 글을 조심스럽게 다시 쓰기 시작한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거리감이었다. 매몰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글의 내용이 내레이션으로 나오고 여러 장면이 몽타주된다. 몇몇 장면에서 감독 본인이 지수의 어른 역으로 등장한다. 그가 출연한 사실 또한 영화를 다시 보며 엔딩크레딧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잠시 나오는 그의 뒷모습에서 자신의 첫 장편영화를 만들기까지의 부침(浮沈)의 시간이 느껴졌다. <아코디언 도어>는 감독 자신을 영화에 각인시킨 에세이적인 면모를 지닌 흥미로운 픽션이다. 영화제에서 볼 때는 몰랐지만 해가 바뀌고 지수와 엇비슷한 상황에 놓여 영화와 잠시 멀어진 상태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니 묘했다. <아코디언 도어>는 내게 미래의 한 조각을 미리 보여준 셈이었다. 물 안에서 지수가 봤던 익사한 남자는 최악의 경우 나의 자화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시 아찔했다. 내시현상(內視現象) - 내 눈에만 보이는 벌레 사진: " 아코디언 도어 ", 부산국제영화제 / ⓒ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재능이란 기생충을 CG로 선보이는 방식보다 지수의 시점 숏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놀라웠다. 영화제 때는 발견조차 못했던 장면이다. 그 장면은 지수가 잠에서 깰 때 등장한다. 무언가가 내 눈에만 보이는 내시현상, 의학 용어로 비문증(飛蚊症)으로 볼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기생충이 지수의 신체 내부에 있는 실체인지 아니면 환영인지는 알 수 없다. 둘 중 어느 쪽으로도 환원시키고 싶지 않다. 그 두 개의 영역이 중첩된 숏이라 말하고 싶다. 기생충이 지수의 눈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낼 때의 조건이 흥미롭다. 무매개적인 조건이 아니라 빛과 커튼이 필요하다. 잠에서 깬 지수가 빛을 머금은 커튼을 바라볼 때 기생충의 모습이 잠시 등장한다. 영화의 영사 원리가 떠오르기도 한 장면이다. 하지만 스크린을 통해서 다 같이 볼 수 있는 영화와 달리 기생충은 지수 눈에만 보인다. 기생충이 몸에서 빠져나간 이후에 지수의 시점 숏이 같은 조건에서 다시 등장한다. 더 이상 지수에게 기생충이 떠다니는 불투명한 필터는 없다. 맨눈이 된다는 것의 두려움. 지수는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 아물지 않은 어떤 상처가 이제 눈에 들어오는 것일까? 영화의 마지막에도 지수의 시점 숏이 나온다. 이 영화의 엔딩은 여전히 내게 미궁으로 남아있다. 지수의 흐느낌, 멈춰버린 그의 몸, 시끄러운 기계음. 밀폐된 공간 속에서 시청각적으로 구성된 이 감각적인 엔딩은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장에 비평의 언어로 재단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내가 몽타주하고 싶은 것은 현재 지수의 멈춘 뒷모습과 그가 다시 쓰기 시작한 글에서 표현했던 미래의 자신의 뒷모습이다. <아코디언 도어>는 두 뒷모습 사이의 간극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2.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수인(囚人)의 이미지 두 뒷모습은 현실과 픽션의 간극처럼도 보인다. 현실은 잠시 멈춰있지만, 미래에는 좀 더 자유로워지길 바라며 써 내려간 희망의 픽션. 나 역시 현실의 고민을 픽션에 투영해 바라본 적이 있다. 그 영화는 기사 한 줄 없이 주목도 못 받았지만 그래도 영화제에 흔적은 남긴 지옥의 영화 <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2025)이다. 이것은 희망의 픽션은 아니다. 무언가를 내려놓지를 못하는 나를 산 정상에 올려다 놓고 장대비를 맞게 한다. 절벽 끝으로 몰아붙이는 느낌으로 말이다. 계속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하산할 것인지. 질 들뢰즈가 말하는 ‘사유’가 영화의 끝에서 시작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내리는 비라는 사건은 “사유하도록 강제하는 것과의 우발적인 마주침” [2] 이다. 원래 엔딩은 “CINEMA”라 적힌 노트를 봉수대에 넣고 태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왠지 뻔해 보였다. 찬물을 끼얹고 싶었다. 그래서 빗소리를 붙여봤다. 썩 마음에 들었다. 기껏 노력해서 무언가를 했는데 말짱 도루묵이 되는 느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영화제에 가기 위해 200자 원고지 50매 이상을 썼다. 이번엔 장편 분량의 에세이 영화를 만들었다. 어떤 평론가가 이럴까 싶지만, 방법이 그것뿐이니 어쩔 수 없었다. 감독이 되고자 하는 열망은 없다. 평론가로서 나를 알리기 위해 만들었을 뿐이다. 그게 과연 통했을까? 프랑수아 트뤼포의 명언이라고 잘못 알려진 ‘시네필 3법칙’을 등단한 이후에 몸소 실천했다. 같은 영화를 두 번 보고, 영화 비평을 쓰고, 직접 영화를 만들기.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영화와 좀 더 멀어진 것 같다.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중 (사진: “ jinu montage ”, 유튜브) 부산 무사이극장에서 당연히 만들면서도 알았고, 실제도 다 만들고 나서는 더욱 더 난감했다. 이걸 받아 줄 만한 영화제가 있을까? 어느 영화제에 붙여놔도 안 어울렸지만 그냥 일단 다 출품해 봤다. 그래도 받아 줄 만한 곳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였다. 당연히 떨어졌다. 그것에 낙담한 적은 없다. 떨어질 만한 영화기 때문이다. 서울독립영화제 빼곤 남은 카드가 없었다. 연락이 없는 걸 보니 떨어진 것 같았다. 때마침 부산의 김영광 평론가가 운영하는 1인 시네클럽 ‘시네마 언노운’에서 상영작 공모가 시작했고, 인스타그램에서 홍보 게시물을 보자마자 바로 보냈다. 그렇게 다시 부산에 가게 됐다. 부산국제영화제 일정이 끝나고 바로 다음 주 화요일인 9월 30일에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이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하게 된 것이다. 부산 무사이극장에서 진행된 상영회에서 김영광 평론가는 3시간에 육박하는 GV를 진행했다. 그는 ‘뉴웨이브’가 올 것 같냐고 물었다. 그것은 초청된 모든 감독에게 물어본 공통 질문이었다. 그때는 이걸 왜 물어보나 싶었다. 최근에서야 알았다. 그는 3월 7일에 열리는 ‘뉴웨이브 전초전’이란 대규모 행사를 그때 이미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당시 나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당분간 뉴웨이브는 안 올 것 같다. 지금은 기획자를 원하는 것 같다. 저런 거(<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만들지 말고, 영화를 틀어야 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시네마토그래프의 ‘이윤영’ 씨가 지금 스타다. 비평계에선 ‘김병규’ 평론가가 스타고 그 이후엔 없다. 등단하고 나서야 안 것이지만 이미 학창 시절부터 시네필이고 파워블로거고 그 집단을 끌고 들어왔다는 점, 다시 말해 인터넷 인간들을 우군으로 끌고 왔기에 리더다. 밑도 끝도 없이 온 나의 경우는 지지기반이 아예 없는 거고… 지역 기반이 있거나 혹은 업계 사람들을 많이 알아서 일을 따가고 잘 나가도, 그처럼 아이콘은 될 수가 없다. 래퍼 더 콰이엇의 명언이 이곳에도 적용된다. “스타는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고 사람들과 시대가 원해서 나타나는 것에 더 가깝다. 근데 스타가 안 나온다는 것은 그걸 안 원한다는 거예요. 이 시대가… 근데 때가 되면 나타날 겁니다.” 비평이라면 그것을 소비하는 블로그, 커뮤니티, SNS 사용자를 끌고 와야 하는 것인데, 다음은 어떤 매체일까? 비평을 담을 수 있는 마지노선이 블로그가 아니었을까. 혼자서는 버겁다. 잘난 사람들도 뭉치는 판이다. 아이돌 그룹처럼 모여서 팀으로 활동한다. 소리그림, 키니마 등등. 현장에선 얼추 비슷하게 말했던 것 같고 상영 이후에 정리한 말들이다. 평론가의 역할이 좀 더 확대되고 있었다. 나 역시 상영 기획을 해야 하나, 영화를 수입/배급해야 하나 별별 생각이 들었다. 평론가의 다음 단계가 있다면 그것은 감독이 아니라 프로그래머나 수입/배급업자가 아닐까? 활황인 관객 프로그래머와 시네클럽들. 프로그래밍의 외주화. 영화제와 영화관은 이들과 손을 잡고 ‘멋(hip)’을 뽐내고 있는 중이다. 이를 통해 기획, 상영, 비평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융합형 인재가 양성되고 있었다. 새로운 종의 출현인 것이다. (새로운 것은 아닐 수 있다. 잠복기를 거쳐 다시 부상한지도 모르겠다. [3] ) 나는 단종된 이전 모델의 길을 걷고 있는 퇴화하는 평론가의 종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어쨌든 그러한 압력은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어떤 영화를 어떻게 쓸 건지보다는 어떻게 상영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생존에 유리해졌다. 글도 잘 못 쓰는데 시장에선 그런 사람들을 더 반기니 말이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선 이러한 시류를 반영이라도 하듯 ‘클럽 시네마’란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소리그림과 키니마가 그 첫번째 주인공으로 참여해 시네토크를 했다. 여태 이 글을 읽었거나 혹은 영화제를 간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나는 해당 영화제에 영화로도, 평론가로도 초대받아 일해 본 적이 아쉽게도 없다. 작가로서의 평론가만 지나치게 고수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점검하게 됐다. 과감하게 집어던지고 건너편으로 가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비평은 일종의 패시브 스킬이 된 것은 아닐까? 세상은 바뀌고 있는데 나는 그 스킬을 익히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렇게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은 영화를 보러온 동지들(김영광, 강원우 평론가, 마산영화구락부의 김준희)과 화명역 근처에서 새벽까지 소주 먹고 대단원의 마무리가 되는 줄 알았다. 마지막 남은 한 발이 먹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공식 발표 하루 전날 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에서 전화가 왔다. 페스티벌 초이스 장편 쇼케이스 부문에 선정됐다는 전화였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시네마테크KOFA 기획전 “영화로 영화쓰기” 중 섹션 “오진우 단편선”(상영작 중략) 그전에 7월 15일에 “오진우 단편선”이란 제목으로 그간 만든 영상들을 틀 기회가 있었다. 다른 평론가들이 상영 기획으로 저변을 확대하며 예비 프로그래머로 성장할 때, 나는 영상을 만들어왔다. “ 영화로 영화쓰기 ”라는 프로그램 안에서 내 영상들이 가장 이질적이었다. 다른 상영작들과 어울릴 수 없는, 그래서 단독으로 꾸려졌을 것이다. 특색이 있다지만 일종의 갈라파고스. 나도 다른 창작자들과 교류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럴 수는 없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결국 도마 위의 생선이 되겠다는 것이다. 평론가와 프로그래머는 칼을 들고 도마 위의 영화라는 생선을 바라본다. 일종의 게이트 키퍼로서 영화를 선별한다. 나도 그렇게 남의 영화를 바라보고 싶었는데 스스로 생선이 되었다. 비평의 세계에서 영화 창작의 세계로. <아코디언 도어>의 지수처럼 나 또한 물고기 같았다. 지수는 변화한 환경에 적응했다. 나는 이것이 진화인지 아니면 퇴화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후자에 마음이 쏠린다. 애초에 내가 평론가로서 잘 풀렸다면 영화까지 만들었을까? 아닐 것 같다.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타입의 영화를 만든 것은 분명하다. 계속해서 비평의 끈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비평을 놓아버리고 건너편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미련하게…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KMDb에 이렇게 글을 쓰기 전에 웹진 아카이뷰에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또한 우회. 그 글 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비디오 에세이와 에세이 영화는 내게 고치지 못한 습관 혹은 만성적인 질환처럼 남게 됐다. 이 증상으로서의 시네마 를 발견해 준 담당 프로그래머에게 모든 영광을 돌린다. 향후 미래에 다시 누군가가 이 분야를 디깅했을 때 재발견되어 한국 영화비평사의 B-Side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언제가 될지 모를 그날까지, 설령 그날이 안 와도 영화로 가는 길을 계속 걷는 수밖에 없다.” “오진우 단편선”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나를 최초로 발견한 은인 황민진 프로그래머님의 제안 덕분에 성사된 일이다. 좀 더 강단 있고 잘나가고 예술적인 평론가였다면 행사의 흥행을 위해서 고사를 했을 텐데, 아쉽게도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보통 일이 들어오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다. “네, 가능합니다.” 황민진 프로그래머가 쓴 노트를 살펴보자.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 비디오 에세이,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뮤직비디오를 아우르는 오진우 감독/평론가의 작업은 단일한 규정으로는 묶이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동시에 저 모든 걸 안 하고 있기도 하다. 정확히는 못한다. 저 장르로 나아가 아예 감독이 돼서 뭘 만들 줄을 모른다. 자본화되지 않는 기술력인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감독을 꿈꾼 것도 아니고, 영화과 출신도 아니고, 제작 워크숍을 경험한 적도 없다. 평론가로서 다급해져서 만든 성과일 뿐이다. 내 영상은 그간 본 것들의 총합이다. 다양한 것들을 가져와서 믹스하는 것이다. 황민진 프로그래머가 분석한 나의 작업의 특성은 유운성 평론가가 정의한 ‘에세이 영화’의 형식과 공명한다. 유운성 평론가는 에세이 영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에세이란 고전적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부정하는 대안적 형식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포괄하고 자신의 특수한 사례들로 만드는 보편적 형식이다.” [4] 에세이에 관한 수많은 정의가 있지만 실제로 에세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와닿는 정의가 바로 저 문장이다. < 영상자료원 가는 길 >(2022)과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이 저 정의에 부합하는지는 모르겠다. “오진우 단편선”을 본 몇 안 되는 관객 중 유운성 평론가님이 계셨고 유일무이하게 리뷰를 남겨주셨다. 글의 일부분을 옮겨 보자면 다음과 같다. (상) <영상자료원 가는 길> / (하) <Hong Sang-soo: Gravity and Grace> 사진: “ jinu montage ”, 유튜브 / “ MUBI ”, 유튜브 “(…) 최근작인 <홍상수: 중력과 은총>(2025)은 비평적 몽상의 발걸음이 홍상수 영화를 일렁이게 하는 은밀한 저류와 짜릿하게 만나면서 그것을 드러내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다만, 이전 작업들에서 두드러졌던 ‘캐릭터로서의 비평가’는 여기서 훨씬 은근한 형상으로, 수줍은 자취로만 감지된다.” 바로 직전 작업인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에서 ‘캐릭터로서의 비평가’를 전면에 내세워서 반작용이 있었던 걸까? 하긴 이 영화에서도 내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이 영화 또한 직접 보러 와주신 유운성 평론가님은 다음 작품에서는 본인이 직접 출연해 보라고 조언해 주셨다. 나는 숨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사라지고 싶었던 것일까. 어디로부터?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영상자료원 가는 길>과 마찬가지로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도 영화제 맛을 본 작품이다. 여기에 <Hong Sang-soo: Gravity and Grace>라는 비디오 에세이는 해외 영화제에서 상영 후 MUBI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됐다. 나름 괄목할 만한 성과임에도 불구하고 아시다시피 기사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은 부산을 찍고 서울에 입성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 내가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서울독립영화제의 자랑인 ‘독립영화 매칭 프로젝트: 넥스트링크’란 프로그램이 있다. 보통의 영화들은 개봉이 목표다. 서독제의 넥스트링크는 배급사와의 미팅을 주선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2025년 서울독립영화제 장편 상영작 중 배급사 미정인 작품이 이 프로그램의 자격 조건이다.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이 조건을 갖췄으나 (양심적으로) 개봉이나 배급사를 둘 정도의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이 영화가 내가 바라는 다음 스텝을 위한 땔감이 되길 희망했다. 마침 그런 장면이 이미 영화 안에 있기도 했다. 이 영화를 통해 얻은 것은 감독의 자리. 내가 바라고 원했던 자리는 평론가의 자리인 모더레이터가 앉은 저 자리. 장편 분량의 영화를 만들고 고작 바라는 게 그것이냐고 묻는다면, 당장은 그렇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하지만 여기서 일단 마무리가 됐다. 이 영화를 통해서 영화제 측에 나를 처음으로 알렸다. 그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나를 말이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 달리 영화만 틀고 끝날 수도 있다. 개막식 때로 시간을 돌려보자. 개막작 < 무관한 당신들에게 >(2025)를 기획한 문주화 평론가님을 보면서 깨달았다. “아! 일은 저렇게 보는 거다.” 지난 1년간 내가 걸었던 길이 구태(舊態)라고 느껴졌다. 그녀는 최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 발탁됐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나는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관객석으로 그리고 엉뚱한 사무실로 점점 영화와 멀어졌다. Outro 이것이 나의 지난 1년 간의 이야기다. 손경수 감독이 쓴 <아코디언 도어>의 연출 의도가 떠오른다. “잘해서가 아니라 좋아해서 계속할 수 있다는 단순한 답은 계절처럼 한 템포 늦게 찾아왔다.” 비록 잘한 적도 없지만 좋아해서 계속할 수 있다는 단순한 답은 아직 내게 도착하지 않았다. 올해는 어떻게 될까? 그 사이 계절은 겨울에서 봄이 됐다. 영화에 대한 사랑보단 돈… 거짓말이라도 돈 말고 영화를 사랑한다고 외쳤어야 했다. 모든 것이 내가 자초한 일이기에 별다른 변명도 할 수 없다. 많은 분의 도움으로 영상자료원 로그인 차단은 해제되었다. 차단 해제 이후 영상자료원에서 처음 본 영화는 오구리 코헤이의 < 진흙강 >(1981)이었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명작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끝으로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진흙강>은 인물들 간의 거리감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우동집 아들 노부오는 창문을 통해 강 건너편에 정박한 배 한 척을 본다. 그것은 그에게 신기한 매혹의 세계였고, 잔혹한 진실의 세계였다. 비가 퍼붓는 날 다리 위에서 노부오는 배에 사는 키이치를 만나 친구가 된다. 배에는 두 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하나는 남매의 방으로, 다른 하나는 어머니의 방으로. 배는 벽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됐지만,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 세계였다. 들어도 못 들은 척 고통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세계 속에서 남매는 살아간다. 두 장면이 떠오른다. 하나는 식사 장면이다. 키이치와 그의 누이 긴코는 우동집에 초대를 받아 밥 한 끼를 맛있게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때 긴코가 즐겁게 노는 동생을 쳐다보는 장면이 있다. 그녀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잠시 누린 이 행복이 내 것 같지 않은 느낌. 다른 하나는 마지막 장면이다. 진실을 목격한 노부오는 남매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다음 날 배가 떠나기 시작한다. 노부오는 강을 따라 배를 뒤쫓기 시작한다. 그는 연신 친구 키이치를 불러보지만, 배는 무심하게 아무 말 없이 떠난다. <진흙강> 중 / 사진: <진흙강> 중 (“ Doro no kawa ”, IMDb) * 지난 여름과 겨울에 제 영화를 보러 와주신 관객분들, 감독님들, 평론가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영화제 이후 자신의 영화를 내어준 < 관찰자의 일지 >(2025)의 임정환 감독님과 < 겨울날들 >(2025)의 최승우 감독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글을 쓰지 않고, 영화를 만들지 않았으면 볼 수 없었던 길이기에 그저 꿈만 같다. “영원히 꿈을 꾸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5] 이제 꿈에서 깰 시간. *** [1] 배우 권해효의 멘트를 문장에 맞게 변형해서 사용했다.( 링크 ) [2] 질 들뢰즈, 김상환 옮김, 『차이와 반복』, 민음사, 2004, 313쪽. [3] 한국영상자료원의 “1990s 시네마테크의 필름들”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세대가 다른 시네필들이 만났다. 비슷한 연장선상에서 읽히는 “영화서클”은 지금 활황인 시네클럽의 부상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전 세대의 시네클럽은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추적하는 고고학적인 방식의 프로그램 같다. [4] 유운성 평론가는 장 뤽 고다르가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 인디아 >(1959)에 대해 남긴 짧은 글로부터 ‘에세이’라는 형식을 다음과 같이 도출한다.(유운성, 『유령과 파수꾼들』, 미디어버스, 2018, 310쪽.) [5] <관찰자의 일지>에 나오는 대사다. 영문 자막이 흥미롭다. “… Dreams can’t last forever … is the theme.” 비평, 안녕하십니까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오진우(영화평론가) l 2020년 《씨네21》 영화평론상으로 데뷔했다. 이후 2021년 한국독립영화협회, 2024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비평공모전에서도 수상한 바 있다. 에세이 영화 <영상자료원 가는 길>(2022),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2025)과 비디오 에세이 <Hong Sang-soo: Gravity and Grace>(2025)를 만들었다.
올 여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된 ‘해외 영화학자 초청 대중 특강’의 내용을 강연자의 시점에서 정리합니다. 영화와의 첫 만남과 학계 입문 과정에 얽힌 소소한 에피소드부터, 세계 속 한국영화의 위치, 최근 몰두하고 있는 연구 주제에 대한 학술적 분석까지. 한국영화를 향한 해외 영화학자 6인의 개성과 열정으로 꽉 채워졌던 2시간을 KOFA가 직접 기록한 특강노트 로 만나보세요. 정혜승 교수 는 영화와 미디어를 인종이나 정체성 등의 개념과 관련지어 연구해왔다. 미국과 동아시아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경험되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한편, 영화사 고문헌을 탐독해 한국영화 검열사를 연구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Cinema under National Reconstruction: State Censorship and South Korea’s Cold War Culture(2024), Movie Minorities: Transnational Rights Advocacy and South Korean Cinema(2021, 공동 집필), Hollywood Diplomacy: Film Regulation, Foreign Relations, and East Asian Representations(2020), Movie Migrations: Transnational Genre Flows and South Korean Cinema(2015, 공동 집필) 등이 있다. 하와이대학교 마노아캠퍼스 미국학과와 오클랜드 대학교 영어·영화학과에서 강의한 후, 현재는 콜로라도 주립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할리우드 키드에서, 실증적 영화연구자로 영화학자의 길에 들어서기 전, 그 시작을 만들어준 계기를 꼽자면 어린 시절 접했던 할리우드 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께서 < 애정이 꽃피는 나무 >(에드워드 드미트릭, 1957)를 보고 감탄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미군정 시기부터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몸소 경험한 세대는 이 시대에 대량으로 수입된 할리우드 영화에 매료되곤 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군사 정부 시절에 유년기를 보낸 나도 < 헐리우드키드의 생애 >(정지영, 1994)의 내용이 자서전에 가깝다고 느낄 만큼, 20세기를 통과한 한국인들이 영화에 처음 눈을 뜨는 데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 요인 중 하나로 할리우드를 빼놓을 수 없다. 나는 특히 미국 현실과는 동떨어진 판타지적 서사를 지닌 작품들(거의 엠지엠 스튜디오MGM Studios가 제작했다)에 눈길이 갔는데, 인물과 세계관(또는 서사)이 비현실적으로 설정된 콘텐츠를 즐기며 내가 처한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욕망을 작품에 투사했던 것 같다. 언뜻 보면, 현재 미국의 사회적 소수자들이 한국의 아이돌을 보고 정서적으로 위안을 얻으며 K팝 팬으로 거듭나는 과정과 유사한 흐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좌) 유년기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할리우드 영화 / (우) 한국영화 검열사에 관한 저서 Cinema under National Reconstruction (2024) 본래 나는 미국에서 활동하며 영화와 사회문화 이론을 중심으로 한국영화를 연구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영화의 역사적 측면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이론보다는 ‘ 실증적 ’ 방법론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고, 필름 아카이브에 대한 연구자들의 의존도 도 당연히 높았다. 여러 아카이브를 방문해 대량의 자료를 조사하고 그 결과물을 비교하는, 미국 영화연구의 이 주된 경향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박사 과정 재학 시절부터 들어왔다. 이후 학계에 입문하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2021년 풀브라이트 연구원으로서 한국을 찾아 1960~80년대 한국영화 검열사 연구를 시작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자원)이 공개한 검열서류 컬렉션 속 방대한 1차 자료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으며, 연구 결과는 저서 Cinema under National Reconstruction(2024)에 정리해 곧 출간할 예정이다. 한편, 이때는 < 오징어 게임 >(황동혁, 2021)이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시기기도 했다. 한국 콘텐츠의 전례 없는 흥행에 세계가 놀랐고, 마침 CNN이 인터뷰를 요청해왔기에 여기에 응하기 위해서 이 작품에 대한 연구까지 병행했다. 그래서 검열사와 OTT라는, 교집합이 전혀 존재하지 않을 듯한 두 주제를 동시에 들여다보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카이브의 힘과 한국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상호작용하면서 영화연구의 새로운 방향성을 발견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한국영화와 콘텐츠의 세계화, 그리고 넷플릭스 내가 미국에 처음 도착했던 1997년만 해도, 미국 현지에 알려져 있던 한국영화는 비디오 가게 ‘킴스비디오’에 소장된 <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배용균, 1989)과 < 삼공일 삼공이(301, 302) >(박철수, 1995)가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홍상수 등 몇몇 예술영화 감독들의 이름이 해외에 알려졌고, 한국형 블록버스터 속 스펙터클 역시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2010년대 자사의 스트리밍 및 DVD 대여 서비스 대상 작품에 한국영화 약 200여 편을 포함시키면서(물론 지금은 넷플릭스가 제작에 참여한 오리지널 콘텐츠가 주를 이루지만) 인지도는 더욱 높아졌고,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 범위는 2016년에 아시아 문화권을 포함한 전 세계로 갑작스럽게 확장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극장 보호를 위한 통상의 홀드백 기간을 두지 않고 봉준호 감독의 < 옥자 >(2017)를 이례적으로 동시 스트리밍한 플랫폼으로도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공개된 < 킹덤 >(김성훈, 2018)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가입자 수까지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세계 OTT 시장에서 한국형 시리즈물의 두각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고, 이 기세는 <오징어 게임>을 비롯해 그 이후에 공개된 여러 작품을 통해서 국내 오리지널 시리즈가 넷플릭스의 주력 콘텐츠로 자리매김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특정 지역의 문화와 정서에 맞는 콘텐츠를 기획해 글로컬리티를 선보임으로써 흥행을 꾀한다. 또한 더 많은 지역으로 빠르게 배급하기 위해 콘텐츠의 IP를 자사가 전적으로 보유하는 방식으로 오리지널 시리즈를 기획하곤 한다. 이렇게 제작된 국내 오리지널 시리즈로서 해외, 특히 미국에서 성공한 콘텐츠들은 대체로 액션 위주의 자극적인 구성이나 기괴한 분위기로 미국인들의 취향을 겨냥하고 있다고 본다. 이뿐만 아니라 넷플릭스는 한류 스타를 내세워 아시아 팬들을 사로잡는 시리즈들(주로 멜로드라마 장르에 치중한다)에도 투자하는데, TV 드라마를 기획하는 국내 콘텐츠 대기업과 공동으로 제작한 후 전 세계 배급을 위한 권리를 획득하며 아시아 시장에서의 수익 창출을 꾀한다. 이러한 전략을 바탕으로 제작된 국내 콘텐츠들이 해외에서 불러일으킨 반응들 몇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미국의 지인 한 명이 내게 <갯마을 차차차>(2021)에 대한 감상을 여러 번 전해준 적이 있다. 그는 삶의 어두운 면을 다루면서도 작품 속 갈등이나 미스터리를 차분하고 완곡하게 풀어나가는 한국 드라마만의 서사 전개 방식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또한 인물들의 성격을 인위적으로 설정하지 않고 극의 흐름과 복합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사실적으로 탄탄하게 구성한 점 역시 놀랍다고 말해주었다. 작품 속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서사에 몰입하도록 하는, 한국 콘텐츠의 흡인력이 효과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좌) 아시아 콘텐츠 시장을 겨냥해 넷플릭스와 국내 콘텐츠 대기업이 공동 제작한 드라마 (우)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 관해 미국의 지인이 직접 전해온 감상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내 콘텐츠 산업에 침투한 넷플릭스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넷플릭스는 자사의 유명 오리지널 시리즈를 통해 한국의 창작자들과 기업들까지 관심을 받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고 주장하지만,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기존의 작업을 모두 OTT 시리즈의 형식에 끼워 맞추는 양상이 과연 긍정적일지에 대한 의문도 존재하는 것이다. 연구자로서 이렇게 양가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현상이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확정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국내 창작자들과 기업, 그리고 전 세계 OTT 플랫폼 간의 상호작용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국 콘텐츠가 어떻게 발전해나갈지는 현 시점에서 진단하기보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분석해나가야 할 과제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영화 검열사 연구와 아카이브의 중요성 이제부터는 강의 서두에 언급했던, 필름 아카이브의 소장자료를 참고해 실증적으로 연구한 주제 ‘ 1960~80년대 국내 영화검열사 ’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역사를 간략히 짚고 가자면, 국내 영화검열은 미군정 시기인 1946년, 군정법령 제115호 가 공포되면서 주무 부처가 영화의 상영허가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허가를 담당하는 부처의 명칭(공보부, 문교부, 문공부 등)은 자주 변경되었지만 1996년에 사전심의가 위헌 판결을 받기 전까지 이 법은 계속 시행되었다. 영자원이 공개한 검열 관련 소장자료는 대부분 1960~80년대에 상영허가를 담당한 부처에서 작성된 행정서류들이었고, 한국에 온 나는 이 자료들을 토대로 관련 주제를 연구했다. 연구를 소개하기 전, 우리가 검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바를 먼저 공유해보자. 어느 사회에서든 ‘검열’은 대부분 독재나 반자유를 암시하는 부정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나는 영화나 문학이론에서 이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검열에 접근하는 경향을 살펴봤는데, 푸코의 담론 일부를 인용해 이를 설명해보고 싶다. *주1 푸코는 ‘권력(power)’이 정복이나 지배의 도구가 아니라 사회 도처의 여러 주체들 사이에 다양한 모습으로 편재되어있는 관계의 일부라고 말한다. 다수가 욕망하거나 획득하고 타도해야 할 실체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 간의 관계 속에서 유동적으로 형성된 무정형의 네트워크라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에는 ‘저항’이 수반되는데, 나는 여기서 말하는 저항 역시 권력과 절대적으로 대립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권력과 상호작용하거나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 또는 움직임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국내 영화검열 역시 검열자가 피검열자를 억압하려는 시도로만 인식되기보다, 두 주체가 활발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영화 창작과 배급의 생산성을 더하는 요소로 읽힐 가능성도 있음을 제안하고 싶다. 국내 영화검열, 특히 박정희 집권 당시 영화검열의 주된 목적 중 하나는 영화가 시장에 효과적으로 진출하도록 돕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할리우드의 자체 검열이 목표로 하고 있는 바와 유사하다. 영화를 개봉시켜 더 넓은 시장으로 배급하기 위해 제작자는, 그 안에 담긴 표현과 내용이 다양한 관객에 의해 무리 없이 수용될 수 있게 하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특정 인종, 지역, 젠더 등에 대한 혐오 섞인 시선을 반영하거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작품은 윤리적 논란에 휩싸일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더 많은 관객에 의해 향유될 기회 또한 잃게 된다. 산업 육성이 최대 목표였던 박정희 정부에서, 개봉한 영화가 시장에서 공유되지도 못하면서 관련 산업의 활성화까지 저해하는 사태는 반기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영화 감상이 세계화된 오늘날, 텍스트는 창작자에게 종속되지 않고 전 세계의 감상자들에게 열려 있다. 이들을 구성하는 여러 집단을 존중하고 시장 내 더 많은 관객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좋은 의미’의 검열(good censorship)의 필요성이 더욱 두드러지는 때이다. 피에르 부르디외 역시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창작자는 시장의 구조를 고려해 무언가를 ‘완곡하게’ 표현하고, 이를 수용할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해 이후에는 스스로 자체 검열을 진행한다고 논의한다. *주2 이처럼 산업과 더불어 사회적 소수자를 보호하는 검열의 경우 올바른 방향으로의 창작을 활성화할 수도 있다고 본다. 1983년 이래, 미국영화협회(Motion Picture Association of America)는 마가렛 헤릭 도서관(Margaret Herrick Library)을 통해 2만여 점의 자체 검열 관련 서류들을 공개했는데, 이 자료들을 연구한 몇몇 학자들 역시, 자체 검열이 영화로 하여금 젠더와 폭력, 인종, 국적 등의 주제에 좀 더 세심하게 접근하도록 하며 미국 영화산업에 생산성을 더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한국영화 검열서류의 디지털 스캔본을 대량으로 공개한 영자원 한국영화 검열의 역사에도 이러한 측면이 나타날까? 영자원에서 1960~80년대 영화검열 당국(공보부, 문공부 등)이 작성한 행정서류들의 디지털 스캔본을 공개하면서 이에 관한 연구가 가능해졌다. 현재까지도 507편의 작품에 대한 서류가 온라인으로 게시되어있어 어디서든 확인할 수 있고, 영자원 내 영상도서관 멀티미디어석을 이용하면 온라인으로 노출되어있지 않은 4,000여 편에 달하는 작품에 관한 서류 스캔본을 열람할 수 있다. 국가가 직접 작성했던 방대한 규모의 행정서류를 공개하는 공공 필름 아카이브는 국내에서 이곳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이전까지 구술사나 신문기사 등의 2차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국내 검열사 연구자들이, 실존하는 1차 자료를 근거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영화는 물론 국내 문화예술 행정의 역사가 궁금한 연구자들이라면 이 검열서류 컬렉션 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검열자외 피검열자의 관계, 그리고 <오발탄> 저서 Hollywood Diplomacy (2020)에 적었듯이, 중국의 영사(미국인)가 1933년 현지 영화계를 주제로 미국영화협회에 쓴 한 서신에서, 당시 중국의 영화들이 ‘ 승화(uplift) ’라는 기제를 영화에 어떻게 적용하는지가 나타난다. 영사에 따르면, 당국은 국가나 자국민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영화의 개봉을 검열로 통제했고, 대중에게 삶에 대한 낙천적인 의지를 주입하고 자국 문화에 성실히 적응하도록 하는 ‘승화’적 요소의 배치를 장려했다. 이 ‘승화’라는 개념은 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이념과도 일맥상통한다. 당시 박정희는 이승만 집권기 동안 사회 전반에 번져버린 부패를, 전방위적인 개발을 통해 근면하게 척결해나가겠다는 정치적 목표를 내세웠다. 국민들의 ‘문화’ 역시 이를 바탕으로 형성되어야 한다고 보았는데, 그러지 못할 경우 나타나는 패배주의, 즉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어떠한 노력도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단정하는 나약한 관념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가 집권하던 시기에 이런 패배주의나 비관주의, 허무, 우울 등의 개념은 그야말로 ‘문화적인 적’으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영화 속에서도 고된 여정을 지나 마침내 그 위기를 극복하는 인물형을 보여주면서 ‘승화’의 순기능을 강조해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맥락을 참고해서 < 오발탄 >(유현목, 1961)의 검열 과정을 이해해보자.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가 집권하면서 불순영화가 재검열되고 상영중지 처분이 내려졌다. 이때 상영이 중지된 국내 영화가 <오발탄>인데, 중지 처분의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극중 한 노파가 “가자!”라고 외치는 장면이 월북을 암시했고, 반공 기조가 심한 박정희 정권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점을 자주 거론한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서류를 보면 조금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당시 내무부 치안국이 검열 당국인 문교부에게, <오발탄>이 “공산주의자들에게 유리한 선전 자료”라는 내용으로 심의를 의뢰한다며 보낸 공문을 보면, 작성일이 쿠데타 발생 전인 1961년 4월 19일이다. 1960년대 초, 문화 정책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중앙정보부가 영화검열에 관여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위 서신에서 보듯이 이러한 타 부처의 간섭은 치안국 등이 검열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5·16 군사정변 이전부터 나타났다. 이어서 5월 28일에, 치안국은 문교부에게 <오발탄>을 둘러싼 여론을 홍보한다는 취지로 다시 공문을 보낸다. 이들이 문서에 적어둔 “부분적인 인상”에서, “기타 제대 군인, 실직자, 박봉 생활을 하는 소시민 빈민층의 절망만을 나열하여 결론적으로 아무런 해결의 암시도 없이 비참하게 끝을 맺는 점 등”이라는 표현이 두드러진다. 영화가 시대적 고난이 야기한 상황만을 강조해 승화의 의지를 불러일으키기는커녕 비관주의로 일관했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후 7월 20일 재검열을 거친 <오발탄>에 대해서는 결국 국내 상영 보류라는 결정이 내려진다. 중앙정보부 소속의 검열자가 작성한 의견서에도 “현 국가 재건 도상에 상반되는 내용”이라는 검열 이유가 적혀있어, 동 시기 건설적 미래에 대한 낙관적 희망을 가로막는다는 견해가 재검열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좌) 국산 영화 "오발탄" 심의 의뢰의 건(1961. 4. 19. / 발신: 치안국장, 수신: 문교부 문화국장), 그리고 한국영화 "오발탄"에 대한 여론 홍보(1961. 5. 28. / 발신: 치안국장, 수신: 문교부 문화국장) (우) 검열 의견서 (종합 재검열 분)(1962. 2. 6.) 검열이 검열자와 피검열자 간의 쌍방향적이고 미시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진행된 흔적도 엿볼 수 있다. 1963년, 제작자 김성춘 은 문제가 된 대사를 수정하고 혁명공약 일부를 마지막 크레딧에 명기했으며, 해당 작품은 본래 정부의 이념을 지지하려는 의도로 제작(주제의식이 ‘승화’임을 설득)되었기에 상영중지를 재고해달라는 진정서를 공보부에게 보냈다. 그러던 중 같은 해에,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영화학과 교수 리차드 맥캔(Richard Dyer McCann)이 국립영화제작소에 기술고문직을 수행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리고 그가 <오발탄>이 베니스영화제에까지 출품될 만한 수작이라고 평가하자, 영화계에는 작품 상영중지 해제를 요구하는 여론이 확산되었다. (좌) <오발탄> 제작자 김성춘이 중앙정보부장에게 보낸 진정서 (우) 리차드 맥캔 교수가 당시 공보부 공보국장 이성철에게 보낸 서신 이에 공보부는 대사와 화면 일부를 수정하는 조건으로 한 차례 상영보류 해제를 통고했지만 얼마 안가 시기상 상영이 적절치 못하다는 이유로 금세 결정을 번복했다. 그러자 김성춘은 본 작품이 제7회 샌프란시스코영화제로부터 출품 제의를 받았고 미국 엠지엠스튜디오도 수입 의사를 밝혀왔다며 재상영 허가를 다시 한 번 요청했고, 공보부는 다시 정식으로 상영보류 해제를 결정한다. 당시 공보부가 김성춘의 진정서 내용을 바탕으로 작품에 대한 리차드 맥캔의 평가와 해외 수출의 필요성을 적시해 중앙정보부와 내무부 모두에 공문을 배포한 것으로 보아, 검열 당국인 공보부가 작품의 수출과 홍보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제작자의 협력자로도 기능했던 것으로 추측한다. 더군다나 외환위기가 심각했던 이 시기에 <오발탄>의 해외 수출 제의는 외화 보유액을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서 정부 차원에서도 반갑게 다가왔을 것이다. 국산영화 “오발탄”에 대한 상영허가 보류해제 통고(1963. 8. 23. / 발신: 공보부, 수신: 중앙정보부 제5국장) 샛길 위에서 찾는 또 다른 목적지: 검열과 영화연구 한국영화 검열의 역사를 연구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미국에서는 국가나 민간 소유 아카이브에 대량으로 소장되어있는 각종 자료를 참고하곤 했지만, 내가 검열사 연구를 시작한 당시 아쉽게도 영자원을 제외한 국내 유관기관에 관련 1차 자료가 보존된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신문기사, 구술사, 시나리오 등 주제와 직결되지 않은 자료들을 참고하면서 연구의 근거를 색다른 결의 자료들로 보충하기도 했다. 제약으로 여겼던 환경에서, 조금 다른 경로이더라도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최선을 다함으로써 의외의 창작성을 발견한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연구 과정에서 얻게 된 이 깨달음이 검열의 일면과도 맞닿아있음을 느낀다. 여러분 역시 ‘제한’된 환경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주변에 숨겨진 다른 선택지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효능감을 느껴보길 바란다. * 질문과 답변 * (질문1) 서두에서 말씀하셨듯이 할리우드 키드이셨던 어린 시절을 지나 지금은 해외 영화학자의 길을 걷고 계신다. 영화팬이자 연구자로서 현 시점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셨을 때 소회 가 어떠실지 궁금하다. (답변1) 최근 ‘한국문학과 영화 속의 여성’이라는 주제로 열린 학회에 갔다가 임순례 감독님께서 전해주신 말씀을 들었다. 본인도 OTT와 드라마 콘텐츠 진출을 앞둔 상황에서, 한국‘영화’의 위기는 어느 때보다 심각함을 강조하셨다. 임 감독님께서도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하셨고 국내 영화문화의 발흥기에 시네필의 일원으로 활동하신 바 있다. 영화에 각별한 애정이 있으신 그 역시,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는 영화라는 매체의 위기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전해주신 것이다. 나 또한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했지만 지금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테두리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동시대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연구한다면 OTT 등의 뉴미디어는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현재 미국 콘텐츠 산업 내 주요 기업들도, 영화와 드라마, 기타 뉴미디어 콘텐츠들을 수평적으로 통합해 기획 및 제작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영화를 별도로 분리해 고유한 예술성을 되새기려는 움직임이 유용할지에 대해서는 사실 조금 회의적이다. 넷플릭스가 IP를 보유하고 있는 국내 오리지널 시리즈 영화 제작이 좌절된 <오징어 게임>은 오히려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로 공개되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이제는 영화도 동시대 뉴미디어 매체를 이용해 전 세계에서 감상할 수 있는 콘텐츠 중 하나로서, 특정 작품만의 브랜드를 확립하고 지속적으로 부가 가치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한국의 경우 이러한 변화가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발생하면서 콘텐츠 제작을 위해 미국 자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보이는 것이 우려되기는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20세기 국내 관객에게는 할리우드가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발전을 거듭한 우리나라 콘텐츠가 이제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여기에 계신 분들을 포함해, 앞으로 더 많은 젊은 세대가 이 기세를 이어받아 한국영화와 콘텐츠가 지닌 역량을 널리 알렸으면 한다. (질문2) 선생님께서 추구하시는 1차 자료 기반의 실증적 연구는 아카이브가 있기에 가능했던 것인지, 아니면 실증적 연구가 먼저 이뤄졌기에 아카이브가 비로소 유지되고 활성화될 수 있었던 것인지가 궁금하다. 선생님의 개인적인 의견을 듣고 싶다.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김홍준) (답변2) 실험영화 위주의 영상자료를 보존하는 뉴욕의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Anthology Film Archive)에 가보면, 말씀하신 일기나 편지 등의 사소한 기록들이 무척이나 많이 소장되어있다. 국내에서도 영자원 외에, 이렇게 넓은 스펙트럼으로 방대한 자료를 관리하는 사설 아카이브가 더 많이 설립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규모로 축적된 서류들을 분류하고 보존할 수 있는 인력 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아직 여기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는 점이 안타깝다. 최근 문화예술 정책의 예산과 역량은 거의 한류 콘텐츠의 해외 홍보에만 집중되어있는데, 이중의 일부만이라도 문헌 보존에 투자되어 한국영화사 연구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질문2에 대한 코멘트) 40년 전 미국에서 유학했던 경험을 돌이켜보면, 대학 도서관에 소장된 영화 관련 도서들의 주제가 아주 실증적이었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같은 시기에 이론 위주의 영화 도서가 많이 읽혔던 국내와 달리, 미국에서는 무성영화 시대의 배우나 시나리오 작가의 회고록 등 어떻게 보면 매우 사소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소재를 바탕으로 영화에 대한 논의를 이어간 것 같다. 오늘 전해주신 말씀을 참고하면, 이런 소재들이 연구되고 세상 밖으로 나와 이야기될 수 있었던 데는 아카이브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카이브가 소장하고 있는 다채로운 1차 자료들을 토대로 작지만 새로운 영화학적 주제를 발굴 하고, 이와 연관된 다른 자료들도 살펴보면서 경험적인 연구를 진척한 후에야 이론이 성립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자원도 각기 다른 잠재력을 지닌 영상자료들의 소재를 빠르게 파악하고 수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자료의 원 소장자들(기증자 등)이 본인이 보유한 자료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다소 안타깝다. 예를 들어, 필름이나 동영상, 포스터 등은 영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면서 ‘수집될 만한’ 가치를 지닌 자료로 인식되지만, 영화연구 세미나 도중 작성된 발제 자료, 영화인들이 주고받은 편지들의 중요성은 그에 비해 평가 절하되기 쉽다. 당장 눈에 띄지는 않더라도 영화사의 어느 한 순간을 간직한 채 향후 영화 연구자들의 자양분이 되어줄 1차 자료들은 형태와 관계없이 모두 소중하다 는 인식이 보다 많이 공유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김홍준) 김신재 배우가 박남옥 감독에게 보낸 성탄 카드(1989. 12. 6.)_이경주 기증 (편집자 삽입) *** 주1. 미셸 푸코(Michel Paul Foucault), The History of Sexuality: An Introduction , Vintage, 1990. 주2.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Language and Symbolic Power , Blackwell Publishers, 1992.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한국 영화평론가가 '한국'영화를 대하는 법) 이 원고를 청탁받은 날, 나는 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열리는 대담에 참여했다. “ 1990s 시네마테크의 필름들 ” 기획전의 일환으로 진행된 “1990s 시네필 대담 part 2”라는 제목의 대담이었다. 하길종 의 < 화분 >(1972)의 상영 뒤, 1990년대 사설 시네마테크를 운영했던 시네필과 1990년대생 영화평론가 사이의 대화를 만들고자 했다. 준비해 간 질문 중 하나를 옮겨보자. “이번 기획전 상영작을 보고 있자면 90년대 비디오테크에서 상영된 영화들이 지금은 영화사의 ‘정전’으로 다뤄지는 영화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타르코스프키, 고다르, 파스빈더, 앙겔로풀로스 뿐 아니라 데이비드 린치나 그리너웨이, 오시마 나기사처럼 당시엔 일정 부분 ‘컬트’로서 소화되던 감독과 영화들도 지금의 관점에서는 영화역사의 만신전에 오른 이름들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오늘 대담과 붙여서 상영된 하길종의 <화분>은 하나의 예외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중략) 이번 기획전에 <화분>이 포함된 것은 90년대 시네필들이 단순히 영화 교과서에 수록된 정전들을 직접 감상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영화를 (재)발굴 혹은 (재)발견하려 시도했음을 드러내는 것만 같습니다.” 기획전의 라인업을 보며 느꼈던 의문 중 하나를 옮긴 질문이라 할 수도 있겠다.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타르코프스키, 고다르, 파스빈더 등의 이름과 함께 하길종을 배열하는 것은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상영작이 꼭 <화분>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저 자리에 < 바보들의 행진 >(하길종, 1975)을 놓았더라도, 이만희 의 < 휴일 >(1968)이나 김기영 의 < 하녀 >(1960)을 놓았더라도 어딘가 어색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한국어로 글을 쓰며 한국어로 말하고 한국영화를 상대하는 한국의 영화평론가로서, 한국영화는 어딘가 이상한 존재처럼 다가온다. 한국영화라는 이름 뒤에 무엇이 따라붙든 간에 그것을 어색하지 않게 납득하는 것은 아마 이뤄지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한국영화란 무엇일까? 한국에서 만들어진 영화? 한국인이 만든 영화? 한국 자본이 투입된 영화? <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2023)에서 노라(그레타 리)는 남편에게 해성( 유태오 )을 설명하며 “Korean”이라는 단어를 아홉 번 사용한다. 그의 대사 속 한국인은 “평범한 직업과 평범한 삶을 사는 어른이 여전히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고, 한국계(Korea) 친구와는 다른 한국인(Korean) 친구인 한국인-한국인(Korean-Korean)이다. 이 대사에서 느껴지는 뭔지 모를 반발감 혹은 어색함이 한국영화를 대하는 나, 동료 평론가들, 그리고 온라인상의 무수한 글로써 존재하는 시네필들이 한국영화에 대해 갖는 어떤 공통감일지도 모른다. <패스트 라이브즈> 중 대담으로부터 일주일 뒤 한국영상자료원의 ‘ 한국영화 100선 ’ 발표가 있었다. ‘영화를 보는 사람’ 171명과 ‘영화를 만드는 사람’ 69명이 참여한 이 리스트를 통해 한국영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순위가 공개된 10편의 영화 중 절반이 21세기 영화이며, 봉준호 , 박찬욱 , 이창동 이라는 세 명의 이름뿐인 이 리스트를 두고 한국영화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리스트에 오른 100편의 영화를 전부 본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 또한 10편의 영화 를 적어서 보냈지만, 그 영화들이 한국영화에서의 ‘한국’을 구성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영화들은 한국의 파편들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며, 한국영화라는 전체는 그 파편들의 집합을 통해 구성될 수밖에 없다. 케이팝을 필두로 무분별하게 난발되고 있는 접두사 “K-”가 결국 그 모든 파편의 집합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영화평론가의 일상과 비평에 관한 생각을 터놓는 지면에서 갑자기 왜 한국영화 이야기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국의 시네필들이 한국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나의 자기반성이기도 하다. 단지 영화제에서 한국영화를 후순위로 미뤄두고, 극장에 걸리는 한국영화들을 해외 영화들만큼 열심히 챙겨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국영화에서 한국이 무엇으로 구성되고 재현되는지, 그것은 항상 이야기 바깥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 함연선 마테리알 편집인의 “ 비천한 영화를 위하여, 그중에서도 한국영화 ” 발표 녹취록을 보고 있자면, 그리고 그 위에 2024년 버전의 ‘한국영화 100선’을 겹쳐 놓는다면, 한국영화는 마치 과거에 존재했다가 사라진 뒤 봉준호와 박찬욱에 의해 부활한 것만 같다. 그리고 무수한 ‘비천한’ 영화들이 누락되어 사라진다. 나는 이 ‘비천한’ 영화들, 함연선의 발표에서 등장한 <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곽재용, 2004)와 < 달마야 놀자 >(박철관, 2001)를 포함한 일련의 조폭 코미디를 포함해, < 마파도 >(추창민, 2005), < 중천 >(조동오, 2006), < 고사: 피의 중간고사 >(창, 2008)처럼 지금은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을 영화들이 나의 ‘비천한’ 한국영화의 리스트를 채우고 있다. 이 영화들이 얼마나 비천하고 구리며 지루하건 간에, 이 영화들은 한국을 담아내는 것으로서 보였다. 한국영화라는 하나의 장르 속에서, 한국은 영화적 장소로 기능할 수 있었다. 그것이 설령 불쾌함을 자아내는 것일지라도. 지금의 한국영화들은 그것의 반대로 향하고 있다. 작년과 올해 개봉한 영화들을 떠올려 보자. < 밀수 >(류승완, 2023)는 극 중 등장하는 지도상 군산을 배경으로 삼고 있음이 명백함에도 ‘군천’이라는 가상의 지명을 사용한다. 소재만 바뀐 같은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 모가디슈 >(류승완, 2021), < 교섭 >(임순례, 2020), < 비공식작전 >(김성훈, 2022)은 한국의 바깥에서 한국을 찾아내려는 기묘한 시도를 선보인다. 이들 영화에서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레바논이라는 각기 다른 중동 국가는 한국에서 폐기된 것처럼 느껴지는 ‘야만성’을 간직한 곳으로서, 한국과 대비되는 야만의 땅으로서 묘사될 뿐이다. 아예 지구 바깥으로 향하는 < 더 문 >(김용화, 2023)이나 국가 자체의 구분이 무의미한 미래를 그리는 < 정이 >(연상호, 2022)와 같은 영화들은 한국이라는 장소에 영화가 묶여있고 싶지 않다는 의지 표명에 가까워보인다. <중천>, <모가디슈> 중 <경마장 가는 길>, <괴물> 중 ‘한국영화 100선’의 리스트를 작성하며, 나는 두 편의 영화에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덧붙였다. “한국영화가 한국을 찍는 방법,” "충무로가 한국을 영화적 장소로 대했던 마지막 순간." 전자는 장선우 의 < 경마장 가는 길 >(1991)이고, 후자는 봉준호의 < 괴물 >(2006)이다. <경마장 가는 길>을 보며 우리는 90년대 서울의 풍경을, 붉은 십자가로 가득한 야경과 무너지기 이전의 삼풍백화점과 사람으로 가득해 “산책이 노동이 된” 길거리를 목격할 수 있다. <괴물>을 보며 여의도 한강공원의 풍경을, 합동분향소와 한강의 매점을, 일상의 풍경이 순식간에 장르적 장소로 변화하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다. 한국영화의 장소가 해외 로케이션으로, 그린스크린으로 옮겨감에 따라 사라진 풍경들, 길을 걷고 뛰는 사람들. 물론 지금의 영화들에 그런 풍경이 사라졌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 여름날 >(오정석, 2019)의 거제도, < 아워 미드나잇 >(임정은, 2021)의 서울, < 아워 바디 >(한가람, 2018)의 한강공원, < 썬더버드 >(이재원, 2021)의 정선과 같은, 여전히 사람들이 걷고 대화하며 싸우고 도망치고 뒤따를 수 있는 영화적 풍경으로서의 한국은 여전히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충무로가 그것을 잊어버렸다는 인상을 반복해서 주고 있을 뿐이다. 물론 한국에서 활동하는 영화평론가이기에 한국영화에 관해 말해야 한다는 의무가 존재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셔널 시네마의 기획을 재차 가져와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 살아가며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공간을 담아내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이 있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는 다른 예시일지도 모르지만, 엄태화 의 < 콘크리트 유토피아 >(2023)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장르적 틀 안에서 서울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데 일정 부분 성공한다. 이것은 마치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2020)나 “호라이즌 제로 던”(2017)과 같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게임에서 시애틀이나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과도 유사하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지진 이전의 서울을 아주 짧게만 보여준다. KBS의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모던 코리아> 제작진이 참여한, 한국 아파트의 역사를 짧게 보여주는 푸티지 영상은 아파트로 뒤덮인 서울의 풍경으로 이어진다. 이윽고 저 멀리서부터 마치 밭이 갈리듯 땅이 뒤집히기 시작한다. ‘도큐먼트’로서의 아파트 이미지와 CGI로 그려진 아파트 숲의 연결은, 비록 그것이 완전한 폐허를 그려낼 뿐인 그린스크린 촬영의 결과물일지라도 연속성을 지닌다. 아주 짧게만 등장하는, 민성( 박서준 )이 대지진을 목격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그곳은 지하철 3호선 금호역과 약수역 사이의 도로로, 실제 도로의 건물들을 스캐닝하여 제작되었으며, 저 멀리서 장충체육관의 건물이 날아오는 것을 볼 수도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중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그려내는 세상은 모두 세트와 그린스크린 촬영을 통해 제작되었으며 로케이션 촬영이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따라서 이 영화를 두고 ‘영화의 다큐멘터리적 기능’을 이야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 영화는 <경마장 가는 길>이 그러한 것처럼 1990년대 초 종로의 길거리와 서초동의 모습을 담아내지도, <괴물>이 그러한 것처럼 2000년대 중반의 한강공원을 담아내지도 않는다. 다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실제의 지리적 공간을 끌어와 장르적 장소로 재가공한다. 물이 말라버린 한강 바닥에 넘어져 있는 동호대교, 금호동의 황궁아파트에서 한강을 건너 마주한 압구정의 백화점, 아파트에서 도망친 민성과 명화( 박보영 )의 뒤로 보이는 구 서울역과 그들이 도착한 명동성당. 물론 이 이미지들은 (서울역 정도를 제외하면) 명시적인 이미지로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그 공간들을 익히 알고 있으며 서울의 지리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그 공간들이 드러날 뿐이다. 당장 비슷한 (그리고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고 처음엔 알려졌었던) < 황야 >(허명행, 2023)를 떠올려보면,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작동하는 지리학이 보다 구체적임을 감지할 수 있다. 나아가 지난 몇 년 간 재개발 이슈가 존재해온 금호동의 맥락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황궁아파트의 생김새 자체가 익숙한 이미지로서 다가오기도 한다. 지난 60년 동안 아파트는 한국영화의 중요한 장소였다. *주1 아파트는 성공의 트로피이자 욕망의 대상이었으며, 중산층 거주 형태의 기본형이자 일상의 장소였고, 종종 비밀스럽고 두려운 사건들이 발생하는 장르적 장소였다. 영화 속 아파트의 모습, 아파트가 그려지는 방식을 상상하는 것은 한 편의 영화가 그려내는 시대상을 압축적으로 묘사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포스트-아파트-아포칼립스라 부를 수 있을법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오래된 아파트와 신축 아파트가 바로 옆에 붙어 공존하는 서울의 특수성을, 실제의 지리학 위에 펼쳐냄으로써 ‘한국’이라는 맥락을 획득한다. 나는 이 영화가 대단한 걸작이거나 수작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가 아파트로 상징되는 한국의 부동산 자본주의를 너무 단순하게만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다만 < 해운대 >(윤제균, 2009)나 < 곤지암 >(정범식, 2018)에서 실제의 지역을 분리해 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콘크리트 유토피아> 또한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다. 가상의 지명을 내세우고선 실제의 지도 위를 가리킨다거나 한국의 바깥에서 한국성이라는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영화들과 달리, 어쨌거나 한국을 영화적 토양으로 삼아보려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흥미로울 뿐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비춘 아파트 그러니까 이 글은, 결국 한국영화가 뭔지 여전히 모르겠는데도 ‘한국의 영화평론가’라는 이름표로 활동하고 있는 누군가가 스스로에게 재차 질문하는 글이다. “K-”라는 접두사가 붙은 일련의 영화들 속에서,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이름 아래 한국을 벗어나고자 하는 영화들 사이에서, 이 비천한 영화들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한국을 발견할 수 있을까? *** 주1. 『아카이브 프리즘』 vol. 13, 한 국영상자료원, 60~82쪽. 박동수(영화평론가) l 보고 듣고 읽고 쓰는 일을 반복하는 사람. 2021년 독립영화비평상 당선.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회원.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공저)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