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주money
- 감독
- 김소미, 김호연
- 제작년도
- 2012
<만다라> 중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스튜디오가 인플루언서들의 극찬을 수집할 수 있다면 누가 영화평론가를 필요로 할까요?” 2023년 7월, 《가디언》에 실린 기사의 도발적 제목은 영화 저널리즘이 직면한 현실을 꼬집는다. 평론가 마누엘라 라직은 < 바비 >(그레타 거윅, 2023)의 런던 시사회 경험을 크게 두 가지 풍경으로 일축했다.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인플루언서들 사이에 합류한 기자에게도 각종 굿즈를 건네주는 안내원. 그리고 이어지는 독려. “긍정적인 느낌을 공유해주세요!” 프리랜서 크리틱인 그는 자기 계정에 무슨 말을 쓰려다 말고 개봉 이틀 전에야 엠바고가 해제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당황했다고 쓴다. 기사는 가뜩이나 영화 매체의 대중문화적 위상이 위기라고 일컬어지는 시대에 이와 같은 문제 제기가 무슨 소용인지 자조하는 모순적 자기검열로 마무리된다. 올해 칸 기자회견장 옆자리에서 통성명한 《인디와이어》 에디터에게 용기 내 이 기사를 본 적 있냐고 물었을 땐 심드렁한 답변이 돌아왔다. “뻔한 소리, 요샌 부정적 평가를 미리 예측해서 특정 비판은 하지 말아 달라는 식의 가이드도 오는데요 뭘.” 비평가를 위한 친절한 가이드라. 선댄스발 코미디 영화 제목 같다고 생각했다. 취재 기자의 실무는 산업적 관점에 자주 노출되고 그래서 홍보, 마케팅 환경에 질식하기도 쉽다. 잡지사의 생리는 작품의 시의성이나 신속한 이슈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데, 어떤 영화는 너무 성급히 말하게 되고 어떤 영화에 대해서는 말할 기회를 놓친다. 다각의 요구와 마감 시한, 닥쳐오는 개봉작들을 포용하는 이 일은 자기 감식안의 모서리를 ‘업계’의 비바람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극장에서 상영관을 확보하는 영화들은 중·저예산의 참신한 기획을 내건 작품들조차 아찔할 정도로 안전해지고 있다. 그러니까 부지런히 맞서지 않고 있다가는 예리해지긴커녕 시시각각 풍화될 가능성이 크다. 행여 영화기자의 호러라는 장르가 생긴다면 명대사는“그래, 그래도 이 정도면 좋은 영화지”일 것이다. 취재의 특권은 비평 앞에서 언제나 양날의 검이다. 그보다 본질적으로는 분열하고 충돌하는 내면의 목소리들이 가끔 시끄럽다. 이 일은 자연스럽게 필름메이커들의 속내와 고충을 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과물로서의 작품 이전에 만드는 과정과 방식을 관찰하는 일도 중요해진다. 걸작이든 범작이든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의 전심전력을 다했(다고 말한)다. 주관적 진실 속에서 창작자의 자부심과 소통하는 저널리스트의 객관성은 늘 자기 의심의 대상이다. 현장 비평을 향한 열의가 때로 거의 어떤 말도 하지 못하겠다는 실의를 동반한다. 매주 지면 안팎에서 줄다리기가 열린다. 감독, 창작자, 제작진의 예술적 비전을 정확히 전달하고 해설하는 중간자의 본분이 한쪽에, 작품 본연의 의도보다 평자의 패러다임이 선명한 창조적 쓰기가 다른 한쪽에서 실랑이하는 형국이다. 잡지계의 악명 높은 평론가 폴린 카엘에 관해 《뉴요커》는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반대자(contrarian)”라고 정의한 바 있다. 카엘의 탁월한 반대는 역설적으로 발굴과 호명으로 이어졌다. 그는 지금은 고전이 된 < 보니 앤 클라이드 >(아더 팬, 1967)를 구해내어 할리우드가 그 명성을 스스로 재창조하도록, 아메리칸 뉴 시네마를 독려한 인물로 기억된다. 걸출한 반대자의 식견, 호전성, 무시무시한 헌신과 성실함을 동경하는 일은 조금도 어렵지가 않다. 문제는 지금 여기에 선 사람의 막막한 과제다. <만다라> 중 법운과 지산 번뇌 앞에서 임권택 감독의 < 만다라 >(1981)를 되짚어본다. 6년의 수행에도 여전히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는 자조 속에서 고뇌하는 승려 법운( 안성기 )은 술 취한 탕아 행색이 더 어울리는 행자 지산( 전무송 )과 스치고 헤어지길 반복한다. 법운은 지산에게서 구도의 가능성을 본다. 그의 야생성은 안쪽에 자리한 단호함과 순수를 동경하게 만든다. 그러나 법운의 갈망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지는 끝내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다. 어느 눈 내리는 겨울날. 신당의 불상 점안식을 도운 뒤 마을 어귀에서 술에 의지하던 지산은 불탑 아래 엎드리며 기도하는 자세 그대로 얼어 죽는다. 지산을 발견한 법운은 그동안 자신이 찾아 헤맸던 깨달음을 하나의 형상으로 발견한 사람처럼 슬피 운다. 혹한의 날씨에 불상 앞에 납작 엎드린 자세로 굳어버린 수행자를 기리는 마지막 의식이 곧 법운의 몫이 된다. 지산의 죽음 이후 법운의 행적에 어떤 망설임도 없어 보이는 것이 신기하다. 그는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처럼 움직인다. 임권택 감독, 송길한 작가, 정일성 촬영감독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통과하며 청년들의 죽음이 들려오는 시절의 수치와 공허를 절감하는 중에 <만다라>를 만들었다. 지금 돌아보기에 <만다라>는 시대를 감당하기 힘든 이들의 흔들림이 걸어갈 수 있는 하나의 길, 우회로를 터 내는 영화다. 말미에 이르러 법운은 승려라기보다 매개자로 변모한 모습이다. 암자에 불을 붙여 다비를 마친 후, 법운은 지산이 잊지 못했던 여인 옥순( 방희 )을 찾아간다. 지산의 유품, 그가 직접 조각한 매우 고통스러운 얼굴을 한 불상을 전하러 간 것이다. 이어서 법운은 오랫동안 외면했던 어머니를 찾아가 더 이상 자신을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담히 전한다. 직접 불붙인 암자의 화마를 잠자코 지켜본 뒤 여관방과 다방을 향한 법운은 혼란을 거두고 세속의 안쪽을 통과한다. 유품을 건네고 어머니(들)에게 (대신) 안부한다. 이 뜻밖의 행로에서 법운은 자기 안에 지산이, 또 다른 죽음들이 들어찬 사람같이 부지런하다. <만다라>의 마지막에는 먼 길을 걸어가는 매개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다시 방향을 뒤집어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움직임이다. 중심에서 바깥으로 그는 멀어진다. 물론 되돌아오기도 할 것이다. 불탑 앞 기도하는 자세의 지산 / 암자에 불을 붙인 법운 속세와 구도의 경계에서 겁먹은 수행자의 클로즈업이 종내에 아득한 롱쇼트로 바뀌어 갈 동안 나는 극장에 앉아서 짐짓 딴생각을 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말을 전하고 의식을 치르는 매개자의 역할이 품을 수 있는 쓸모 같은 것을 궁리했다. 창작자와 관객, 예술과 산업, 비평과 저널리즘 사이에서 각각의 형식과 규격, 정당성 같은 것을 찾고 또 찾는 것이 아니라 영화 매체의 본래적 지향과 그것을 만들고 보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태계에 제각기 충실할 수 있다면. 영화를 만드는 데 바탕이 되고, 이미 만들어진 영화가 관객에게 가는 경로를 터 낼 수 있다면. 한 주에 80페이지가 훌쩍 넘어 과연 어느 성실한 독자가 다 소화하고 있는 것인지 근심하게 되는 지면에 틈새를 더 파내어 보기로 한다. 이상할 정도로 말해지지 않는 영화들 쪽으로 조금 더 움직여보기로 한다. 슬며시 머릿속에 내게 주어진 길 하나를 그려본다. 직업적 특권 아래 남보다 조금 일찍, 그리고 조금 더 많은 영화와 영화 안팎의 사람들이 지나가게 하는 길. 이 길이 안녕하냐고 물어올 때 드리우는 암울한 직업적 자의식을 거둬내고 나면 답은 간명하다. 저널리즘과 비평가를 위한 가이드가 주어지는 현실은 동시대 영화 매체가 처한 메마른 환경부터 극명히 가리킨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중심에서 바깥으로 다시 밖에서 안으로 황무지를 횡단하는 시도의 필요를 믿어볼 때다. 영화 안팎의 안부를 그러모으는 매개자의 눈과 손이 겁을 떨쳐내기를. 말끔히는 어렵더라도 부단히, 부단히. <만다라> 중 김소미(영화기자) l 영화주간지 《 씨네21 》 취재팀장. 책 『불이 켜지기 전에』(2025)를 썼다.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한국영화 황금기 20년의 역사를 함께 하다 셀은 2003년 6월25일 황효균·곽태용 대표가 설립한 특수분장 업체,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이다. 두 대표는 세포의 기본 단위이자 배터리의 최소 에너지 단위를 뜻하는 의미를 담아 회사의 이름을 지었다. 한때 같은 특수분장 회사에 다녔던 동료인 두 대표는 박찬욱 감독의 < 쓰리, 몬스터 > 중 단편 <컷>을 필두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해, 이후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최동훈, 김용화, 나홍진 등 한국영화의 내로라하는 창작자들이 신뢰하는 동료로 자리 잡았다. 분장 및 더미·애니매트로닉스·특수소품·세트팀 등을 운영하는 국내 대표 특수분장 업체 셀의 현재 인원은 총 20명으로 해마다 약 10여개 이상의 작품에 참여해 지금까지 170여 작품에서 활약해왔다. < 친절한 금자씨 > < 도둑들 > < 부산행 > < 신과 함께 > < 기생충 > 등의 주요 미장센을 상상의 영역에서 물리적 실체로 구현해낸 셀의 핵심 가치는 분장과 소품, 애니매트로닉스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위한 테크니컬 아트의 전천후를 담당하는 종합 스튜디오로서의 역량이다. 회화를 전공한 황효균 대표는 분장 및 더미, 공학을 전공한 곽태용 대표는 애니매트로닉스가 전문 분야다. 두 대표의 진두지휘하에 더미 전문가인 이희은 이사, 실장 3인(박영무, 박신영, 이효응), 팀장 2인(이고운, 박소연) 외 12명의 팀원들이 3개 층으로 구성된 메인 작업동에서 협업하고 있다. 황효균 대표는 24년, 곽태용 대표는 22년 경력의 베테랑이며 이희은 이사를 비롯한 실장급 직원들 모두 15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작업동 디자인실에서 작업중인 팀원들 셀 스튜디오는 설립 당시부터 주5일제 근무를 시행, 현재 주 40시간 일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영화 현장에 나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저녁과 휴일을 보장해 직원들이 자기계발을 병행하며 작업에 섬세히 몰두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국내 여타 특수분장 업체와 비교해 직원 수가 많은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부산행>과 <킹덤>을 거쳐 SF 장르에 도전하다 설립 이후 긴 시간 쉼 없이 성장해온 셀은 김지운 감독의 < 달콤한 인생 >에서 총격 신 더미를, < 인류멸망보고서 > 중 <천상의 피조물>에서 로봇 캐릭터를 구현하면서 역량을 한층 강화했다. 카이스트 로봇업체에서 억대로 책정한 로봇을 셀은 그보다 낮은 비용, 양질의 퀄리티로 결국 완성해냈다. 청룡영화상 기술상을 수상한 <부산행>에서 보여준 최초의 K좀비는 < 반도 >를 거쳐 넷플릭스 < 킹덤 >에 이르면 백성 출신 좀비와 양반 출신 좀비, 생사초를 먹고 살아난 왕 좀비 등으로 조선 좀비의 디테일을 새로이 창조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 밖에도 <기생충>의 수석과 털이 살아 있는 복숭아, < 옥자 >의 돼지 옥자, < 엑시트 >의 유해가스, < 암살 >에서 나이 든 염석진의 축 처진 뱃살 등이 모두 셀의 작품이다. 2000년대 초반의 한국영화 르네상스 속에서 본격적인 업력을 쌓았고, 스릴러 강세 속에서 전에 없이 완성도 높은 액션 신의 원천으로 자리했던 셀은 이제 < 승리호 > < 고요의 바다 > < 더 문 > < 정이 > 등을 통해 SF 장르로 새 무대를 개척하고 있다. 셀의 일원들은 할리우드와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는 실력에 자부하고 있다. 중국, 싱가포르, 대만 등 해외의 러브콜을 꾸준히 받고 있으며 2019년 이후 OTT 시리즈 작업 의뢰가 급증해 현재 < 커넥트 > <기생수> 등의 작업을 진행 중이다. OTT 시리즈 < 지옥 >에 쓰인 괴물의 미니어쳐 *CELL의 주요 작업 <쓰리, 몬스터> 중 <컷>의 손가락 <친절한 금자씨>(2005)의 반인반견 백선생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8)의 말 < 도둑들 >(2012)의 마카오 박(김윤석)이 변장한 얼굴 < 늑대소년 >(2012)의 늑대소년 <인류멸망보고서>(2012) 중 <천상의 피조물> 인명 <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의 이병헌(광해) 더미 < 미스터 고 >(2013)의 고릴라 링링 < 암살 >(2015)의 배우 이정재(염석진) 분장 < 부산행 >(2016)의 좀비 < 대호 >(2016)의 호랑이 < 로봇, 소리 >(2016)의 로봇 소리 <옥자>(2017)의 옥자 <기생충>(2019)의 수석과 복숭아 <반도>(2020)의 좀비 시리즈 < 스위트홈 >(2020) 속 괴물 시리즈 <고요의 바다>(2021)의 우주복 <정이>, 시리즈 <커넥트>, <기생수> 등 회의동 2층의 회의실 벽면: 그간 CELL에서 작업한 영화들의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다 체계적인 공간 구성과 동선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셀은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북부에 자리한 덕이로 172번길 4-72에 위치해 있다. 남측에는 고양종합운동장, 북측에는 운정신도시 아파트단지, 동측으로는 3호선 주엽역과 경의중앙선 탄현역에 접근하기 용이하다. 인접한 건물로는 고양예술고등학교가 있다. 2003년 설립한 셀은 인근의 소규모 스튜디오를 이용하다 2020년 전용 건물 준공을 마쳤다. 1320m² 부지에 2개동으로 구성된 990m²의 건물이 현재의 셀 스튜디오다. 셀 스튜디오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주변의 전경은 비닐하우스가 펼쳐진 평화로운 시골의 풍경으로, 그 아래 마당에는 주위의 목가적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거나 피칠갑한 더미들이 햇볕 샤워 중이다. “셀 스튜디오의 앞마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방문객은 자연스럽게 향후 1년 내로 극장가에서 관객을 만날 한국영화의 밑그림을 절로 그려보게 된다”(<씨네21>, 2016년, 셀 스튜디오 특집)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더미가 방문객을 반기는 셀의 마당을 지나면 각각 작업동, 회의동으로 불리는 2개 건물이 연결된 채 마주보고 있다. 셀의 직원들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은 총 3층으로 이루어진 작업동이다. 1층은 크게 기계장비실, 용접실, 자재실로 구분된다. 밀링, 선반, 알곤 용접기, 드릴프레스, 절단기 등 중량감 있는 주요 장비들이 모인 공간이다. 애니매트로닉스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주로 곽태용 대표가 관리한다. 1.5층에는 기계작업실, 3D프린터실, 폴리실, 디자인실, 기계부 채색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물질 없이 깔끔한 작업이 필요한 3D 프린터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고, 채색실은 환풍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작업동 1층 기계 및 애니매트릭스 작업실 전경 2층은 황효균 대표가 관장한다. 보다 정교한 작업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미술작업실, 채색실, 폴리실, 우레탄 성형실, 재료실 등으로 쪼개진 공간에는 온갖 팔레트와 실리콘, 붓, 알코올, 접착제, 리무버, 프라이머 등등이 조합된 특수분장 가방이 펼쳐져 있고 더미 채색, 더미의 머리카락과 눈썹을 심는 작업, 괴생명체 등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3층은 주요 작업물 및 조형에 사용하는 몰드들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한다. 2층 테라스를 따라 회의동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이곳에는 그동안 셀이 수상한 주요 상패를 모아둔 회의실, 라이프 캐스팅실 등이 있다. 1층은 식당과 휴게실로, 3층은 자료실로 사용된다.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로 172번길 4-72 2. 설립일: 2003년 6월 25일 (2015년 7월 17일 법인 전환) 3. 대표자: 곽태용, 황호균 4. 규모: 부지 1320m² / 건물 990m² (2개동) 5. 조직 구성: 총직원 20명(공동대표 2인 포함) 6. 공간 구성 - 작업동 1층 - 기계장비실, 용정실, 자재실, 남자화장실 1.5층 - 기계작업실, 3D 프린터실, 폴리실, 디자인실, 기계부 채색실 2층 - 미술작업실, 채색실, 폴리실, 우레탄 성형실, 재료실 3층 -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 여자화장실 - 회의동 1층 - 식당 및 휴게실 2층 - 회의실, 라이프 캐스팅실, 남녀 화장실 3층 - 자료실 인터뷰: 황효균, 곽태용 대표(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CELL)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황효균(우측), 곽태용(좌측) 대표 김소미 _셀의 설립 배경을 들려주세요. 황효균 _2003년도 새해를 둘이서 시작을 했습니다. 되든 안 되든 한 2년 정도는 하고 싶은 영화를 해보면서, 밥벌이가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한번 도전해보자는 마음이었고요. 셀을 만들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피디님이나 제작실장님이나 조감독님, 이런 분들이 신작 들어갈 때 새로 생겼으니까 일을 한번 맡겨주신 거죠. 김소미 _두 분이 일하신지 총 몇 년이 되신 거지요? 곽태용 _저는 22년차고. 황효균 _저는 24년차이지요. 김소미 _두 분의 첫 인연은 언제 맺어졌나요? 곽태용 _영화 쪽에서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업체에서 일을 배우는 기간이 있었는데 거기서 둘이 처음 만나게 된 거예요. 좀 부족하지만 우리 것 한번 만들어보자 해서 의기투합했던 게 시작이었죠. 초반에 힘든 시기도 있었어요. 둘이서 이것저것 연구하고 재료도 찾아다니다 운 좋게 좋은 감독님들을 만나게 된 거죠. 황효균 _저희 사이를 돌아보게 되는 좋은 시간인 것 같네요. (웃음) 옛날 20년 전 골방에서 시작했어요. 버는 족족 투자해서, 딱 밥 먹을 정도만 남겨놓고 공간을 꾸려갔죠. 저희는 성격도 서로 참 달라요. 저는 좋게 말하면 꼼꼼한 편이고 곽 대표는 통이 커요. 분야도 다른데, 제가 미술과 분장, 더미 쪽이고 곽 대표는 기계 쪽, 로봇, 하드케이스 등을 만듭니다. 김소미 _공식적으로 작업에 착수하게 된 셀의 첫 작품은 무엇인가요? 곽태용 _개별적인 의뢰를 받고 소품이나 특수 제작물을 제작한 경우들이 앞서 있긴 했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 처음 작업하게 된 건 박찬욱 감독님의 <쓰리, 몬스터>죠. 그전에 배고픈 시기도 겪은 터라 사실은 굉장히 열심히 작업했었어요. 남들이 보기엔 ‘어, 저게 뭐지’ 싶은 새로운 효과를 가미하기도 하고요. 그런 점이 박찬욱 감독님께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다음 작품도 박찬욱 감독님과 하게 되고 또 그 작품을 함으로써 김지운 감독님, 봉준호 감독님의 의뢰를 받게 되었죠. 초창기에 <달콤한 인생> 같은 작품도 참 절실히 했던 기억이 나네요. 황효균 _<쓰리, 몬스터>에 저희 역량을 보여줄 요소가 다양하게 많았어요. 손가락을 잘라서 믹서에 갈아버리는 설정이라든가. (웃음) 이후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몸은 개인데 얼굴은 최민식 배우인 반인반수 소품도 있었죠. 박찬욱 감독님 작품엔 항상 저희에게 큰 숙제 같은 것들이 하나씩 있었던 것 같아요. 작업동 3층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에 놓인 인체 일부 모형들 김소미 _셀이라는 이름의 작명 배경도 궁금합니다. 황효균 _멋있는 영어 단어로 이름을 짓고 싶었죠. (웃음) 로봇, 더미, 특수분장 쪽으로 의미 있는 단어가 뭐가 있을까 찾다가 셀이라는 단어가 외자라는 게 특히 좋았어요. 생명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곽태용 _또 배터리의 가장 기본 단위 에너지인 그런 의미도 있거든요. 황효균 _처음에는 회사 설립 후 전화 받을 때 ‘셀입니다’라고 인사하면 ‘요술공주 샐리’ 아니냐는 말도 듣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름 하나 잘 지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네요. 김소미 _두 분이 성격과 전문 분야에 있어서 상호보완적인 시너지를 이루고 계시네요. 곽태용 _이 일 자체가 굉장히 복합적이잖아요. 간단한 특수분장에서 시작해, 분장으로 안 되는 건 더미를 만들고, 또 더미를 만들었는데 그걸 조금 더 활용하고 싶으면 거기다 애니매트로닉스를 적용하고. 결국 이게 다 섞여 있는 것이거든요.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관장할 수 있어야 퀄리티 높은 작업물이 나옵니다. 각각의 세분화된 영역을 한데 모아서 할 수 있다는 점이 저희 회사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김소미 _테크니컬 아트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 스튜디오로서의 비전은 설립 초기에도 명확히 갖고 있던 그림인가요? 황효균 _그렇죠. 예를 들면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이병헌 배우의 더미가 나오는데요. 그냥 가만히 있는 더미가 아니고, 독에 중독된 채로 숨도 쉬고 고통스러울 땐 미간을 살짝 찌푸리거나 건초를 태워서 코에 갖다 대면 연기가 코로 빨려 들어가는 식의 설정들이 있었어요. 감독님이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고요. 그럼 저희는 2층에서는 더미 외형을 만들고 1층에서는 안의 기계 장치를 동시에 만들어요.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상호보완적으로 작업하는 거죠. 지금은 특수분장팀이 많지만 저희는 외주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할 수 있는 팀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가집니다. 김소미 _황효균 대표는 분장과 더미 전문, 곽태용 대표는 기계 및 애니매트로닉스 전문으로 자신만의 특화된 분야를 개척하기까지 두 분 각자의 전공과 최초의 관심 분야느 무엇이었나요. 황효균 _저는 미술, 회화를 전공했는데요. 캔버스에 그리는 게 아닐 뿐 결국 입체 위에 그리는 작업으로서 같다고 느낍니다. 결국 좀비 분장도 배우의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거죠. 어릴 때부터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더미나 괴물 캐릭터를 만든다고 하면 모델링, 채색을 주로 해야 하니까 결국 영화 특수분장 일은 제 전공을 그대로 이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곽태용 _저는 화학공학을 전공하다가 중퇴했어요. 어릴 때부터 뭔가 만들거나 분해해서 작동 원리를 연구해보는 성향이 있었어요. 모형 제작을 취미로 계속하기도 했고요. 그걸 계기로 미니어처 작업을 통해 영화 쪽에 처음 입문했습니다. 영화 애니매트로닉스 분야는 정확한 전공이나 커리큘럼이 있다고 보기가 어려워요. 결국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기계의 원리를 면밀하게 관찰해서 그걸 응용하는 거거든요. 해외 자료들도 많이 보고요.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재료를 직접 만져보고 사무실에서 테스트해보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제가 원해서이기도 하지만 늘 새로운 것들을 연출하길 원하는 감독의 바람을 충족시켜주기 위함이 더 커요. 계속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밖에 없는 일이에요. 작업동 2층 미술작업실 전경 김소미 _지금 시점에서 돌아보았을 때, 셀의 매출 및 작업 규모 혹은 기술 수준에 있어서 확실한 성장의 분기점으로 꼽아볼 작품이 있을까요? 곽태용 _특수분장이라는 게 맨 처음에는 배우의 얼굴에 실제로 상처를 낼 수 없으니까 그것을 분장으로 만들고, 거기서 더 심한 상처가 필요하면 더미로 커버를 하고, 나중에는 그 더미가 기계 장치로 움직이면서 점점 더 극적인 효과를 내는 식으로 계속 간 거잖아요. 저희도 초반부터 그런 모든 기술이 있었던 건 아니니까 처음엔 상처 분장, 인조 피부 이런 작업 위주로 했었죠. 그러다 아무래도 한국영화의 흐름에 영향을 받았죠. 스릴러영화를 하게 되면 더미가 많이 나오니까 한동안 그런 작업 위주로 하게 되었어요. <달콤한 인생>의 경우 총격 신에서 더미가 많이 필요하잖아요. 총에 맞은 손가락이 터져 나간다든가 하는 효과들도 저희로선 의욕을 부추기는 데가 있었죠. 또 <부산행>을 기점으로 좀비물 붐이 일지 않았습니까. 덩달아 관련 작업도 늘어났죠. 또 재밌었던 작품 중에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있는데, 움직이는 말을 제작해서 슈팅카에 실었어요. 실제 달리는 말을 대체해 촬영을 했어요. 저희 작업 이후 사극에서도 많이 활용이 되었죠. 황효균 _운이 좋았죠. 그런 작업을 처음 맡을 수 있었다는 게. 셀이 최초로 시도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전에는 움직이는 말을 만들어서 촬영한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배우들은 항상 낙마에 대한 두려움이 있잖아요. 액션을 소화하면서 말을 탄다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배우가 저희의 움직이는 말 소품을 써보고 괜찮아서 이후에 계속 쓰고 싶다고 하면 보람이 있죠. 또 로봇을 직접 제작해 촬영한 영화인 <인류멸망보고서> 중 <천상의 피조물>, <로봇, 소리>도 중요한 작품이 되겠네요. 게다가 이제는 우주로 나아가지 않습니까. < 외계+인 > 1부 같은 작품을 보면 마블의 < 어벤져스 > 시리즈 못지않게 현실감 있게 나오니까 이제 한계점이 사라진 게 아닐까 싶어요.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를 위해 우주복을 최초로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곽태용 _최근엔 연상호 감독의 <정이>를 작업했고요. 영화 <대홍수>도 SF고 드라마 쪽에서도 우주 배경의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 작업을 많이 하고 있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나왔던 움직이는 말 기계 모형 김소미 _<인류멸망보고서> 중 <천상의 피조물>을 위해 제작한 로봇 소품도 당시로서는 한국에서 직접 로봇을 제작한 경우가 없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황효균 _맞아요. 저 작품을 찍고 7년인가 있다가 개봉을 했거든요. 처음 촬영할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그게 될까’ 하던 때였거든요. 로봇이 합장을 하고 절을 하는 움직임들을 다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제작사가 카이스트의 로봇 공학 분야 전문가들에게 의뢰를 했었는데 그들은 정석대로 접근한 거죠. 이를테면 영화 세트장 바닥은 미끄러워서 작동이 불가능하다, 기간은 1~2년, 비용은 10억~20억원이 든다고 했대요. 제약이 너무 많았던 거죠. 그런데 사실 영화적으로 이해를 할 필요가 있거든요. 카메라가 발 부분을 잡지 않는다면 로봇이 실제로 걷지 않아도 그럴듯한 흉내만 내도 괜찮은 거예요. 어찌 보면 편법에 강한 겁니다. 영화 촬영을 위한 잔머리가 강한 거고, 응용력이 중요하죠. 김소미 _지금의 셀 스튜디오는 언제 완공이 된 건가요. 황효균 _여기 이사 온 지는 이제 2년 정도 되었네요. 곽태용 _원래 있던 곳도 여기 근처죠. 황효균 _처음 시작한 곳은 지금 스튜디오보다 규모가 약 1:3 정도였습니다. 옛날보다 환경이 많이 좋아진 거죠. 곽태용 _예전에는 큰 작업물을 만들면 공간이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안에 있던 걸 다 빼고 다 치우고 하느라 고생했죠. 아예 외부 창고를 단기 임대해서 그쪽으로 장비를 다 옮기기도 했고요. 황효균 _지금 부지는 총 400평이고요. 3층 건물은 약 80평 정도 됩니다. 작업동 3층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 선반의 인체 모형, 인체 일부 김소미 _총 3층으로 이루어진 셀 스튜디오의 주요 작업 공간을 소개해주세요. 곽태용 _일단 1층 애니매트로닉스 작업실 쪽은 무거운 기계와 재료들이 많죠. 밀링 머신. CNC, 드릴, 프레스 등등. 가공 자재들도 기본적으로 쇠파이프 같은 무거운 재료들이니까 아래층에 있는 게 좋겠지요. 그 위에 1.5층이 있는데 프린트, 레이저, 도면 기반의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방을 따로 두었습니다. 1층 기계실은 아무래도 분진이 많이 발생하고 소음이 심해 조금 더 정교한 작업이 필요한 3D 프린팅 작업실을 위쪽으로 분리한 거죠. 황효균 _1층은 을지로 같은 분위기라고 보면 됩니다. (웃음) 공구들, 기계 장비들. 안 다루는 부품이 없고 전기, 배선, 라이팅까지 전부 다 하니까요. 2층으로 올라가면 페인트류, 실리콘, 물감, 분장 재료들이 중심이 되지요. 곽태용 _더미의 머리카락, 눈썹을 섬세하게 심고 채색하는 공간도 따로 구분되어 있어요. 화학 약품을 많이 쓰는 도색 작업 공간엔 냄새가 많이 나고 휘발성 페인트가 많기 때문에 환기 시설이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고요. 황효균 _이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설계 사무소와 논의해서 여러모로 저희 입맛에 맞게 건물을 지은 거지요. 냄새가 나는 방은 환기가 중요하니까 맨 뒤쪽, 오른쪽 구석에 가 있게끔 하고 분진이 많이 나는 폴리실은 따로 두고, 청결 유지가 필요한 채색실은 그 반대편에 거리를 두고 만든다든가 하는 식이죠. 김소미 _개인적으로 가장 애착 가는 공간이 있을까요. 곽태용 _저는 도면실이요. 도면실 겸 취미 활동방이 되었는데요. 개방해놓고 쓰고 있어요. 컴퓨터 옆에 드럼이 세팅되어 있거든요. 퇴근하면 직원들이 거기서 드럼 치고 있어요. 황효균 _곽 대표님은 보통 도면실이 있는 1층과 1.5층에 많이 머무르죠. 저는 아무래도 2층이겠죠. 각자의 공간에서 작업에 충실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같이 모여서 밥을 먹습니다. 도면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곽태용 대표 김소미 _셀의 현재 직원수는 총 몇 명인가요. 한국영화의 주요 작품들에 상당수 참여하고 있는데, 근무 강도를 어떻게 자평하는지 궁금합니다. 황효균 _저희가 지금 다 해서 20명인데 보통의 특수분장팀들과 비교하면 3~4배 정도의 규모라고 해요. 많이 듣는 얘기가 ‘셀은 맡은 작품 수가 많으니 야간작업을 자주 하는 거 아니냐’인데 그렇지가 않아요. 저희는 오후 5시 반 되면 다 퇴근해요. 곽태용 _한 8년, 9년 전부터 주 40시간 근무합니다. 황효균 _창립 초기부터 주5일제로 일했고요. 곽태용 _가끔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 때문에 마감이 늦어지면 밤 9시, 10시까지 야간작업을 할 때도 있는데, 1년에 5번도 안 돼요. 촬영이 걸리지 않는 이상은 각자의 저녁 시간을 갖고, 빨간 날은 그냥 쉬는 걸로 해요. 그래서 인원이 좀 많은가 봐요. 이렇게 일하려면 적어도 3~4명은 더 있어야 되거든요. 그리고 저희는 일용직이랑 계약직을 쓰지 않고 정직원만 고용합니다. 일단 고용안정이 돼야지 자기 실력이 발휘가 되니까요. 이 분야는 적어도 1년에서 2년은 배워야지 실력 발휘를 하는 직업이라서 그러려면 꾸준히 다니면서 할 수가 있어야 하고요. 김소미 _셀 입사를 꿈꾸는 구직자들이 많겠습니다. 지금 젊은 직원들의 성비는 어떻게 되나요. 황효균 _애니매트로닉스 쪽은 남자가 많고요. 미술 파트 쪽은 여자가 많고. 곽태용 _전체로 따지면 여성 직원이 더 많습니다. 입사 희망자들도 여성 비율이 높고요. 황효균 _분장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남자들에게는 아직도 약간의 편견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곽태용 _그런데 사실 기본적으로는 골조도 넣어야 되고 또 되게 무거운 몰드도 돌려서 스킨을 뽑아내야 되고, 작업의 많은 부분이 중노동에 가깝기도 하지요. 반대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못하고 이 일을 희망하는 분들도 제법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성비로만 놓고 보면 포트폴리오 지원자 중 여성들이 월등하게 많습니다. 인체 모형을 작업중인 직원 김소미 _최근의 테크니컬 아트를 위한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면 될까요? 제작 여건 면엥서 가장 크게 변화를 실감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황효균 _옛날에 직원이 3D 프린터란 게 나왔으니 하나 사달라고 해서 구매했더니, 스프라이트라고 하는 긁힌 자국이 그대로 다 보이는 수준이어서 ‘아, 이게 될까’ 싶었죠. 초창기에 300만원 주고 하나 사보자고 하는 걸 일단 시험 삼아 들여서 저희들끼리 열쇠고리 같은 것도 뽑아보고 그랬어요. 그렇게 실험하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음 버전이 나와요. 지금은 3D 포인트 프린트를 스튜디오에 5~6대 정도 놓고 쓰거든요. 만약 처음 나왔을 때 실험해보지 않았으면 아직도 못 쓰고 있을 거예요. 새로운 장비가 나왔다고 하면 우선 투자를 합니다. 최근에는 직원들이 레이저 각인기를 사달라고 해요. 우주복을 예로 들면 그 위에 NASA라고 새길 수 있는 거죠. 원래는 업체에 외주로 맡겨야 했던 작업을 그 기계를 사면 직접 새길 수 있대요. 200만원 정도 하는 것 같아요. 괜찮을까, 지금 고민하고 있어요. (웃음) 또 직접 사서 써 봐야 새로운 실험을 해볼 수 있는 거죠, 물론 그냥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곽태용 _저희는 어떤 기계를 원래 목적 그대로 정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변형시켜서, 그러니까 작업의 목적에 맞추어 변형해서 쓰는 거죠. 시나리오에 담긴 천차만별의 요구를 표현하기 위해선 편법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야지 만들 수 있고요. 박람회가 열리면 가서 구경하고 응용할 거리가 있으면 구매해서 테스트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박물관에 주고요. (웃음) 작업동 1.5층 3D 프린팅 및 스캐닝실 전경 김소미 _셀이 새 자리로 이사한 이후, 코로나19가 영화계를 강타한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어떠신가요? 곽태용 _한국은 팬데믹 기간에도 록다운 없이 영화 촬영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시리즈에는 계속 투자가 이뤄졌고, 그런 수요를 저희도 느꼈죠. 약간 반전이었죠. 황효균 _팬데믹으로 인해 오히려 작년, 재작년 엄청 바빴어요. 시리즈물 작업을 많이 하게 된 거죠. 지금 다시 극장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어서 영화 작업도 많이 들어가고 있는데요, 저희 욕심만큼 다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제 다른 업체들도 많이 생겨났으니 현업에서 계속 뛰긴 하지만 저희 둘만큼은 전보다는 일에 덜 쫓기면서 살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영화라는 게 몰릴 때 몰리고 또 없을 때 없고 하니까, 뭐 잘 조율해가면서 해야죠. 김소미 _아직까지도 '이것만큼은 꼭 해보고 싶다' 싶은 도전 과제가 남아 있으신가요? 곽태용 _ 이 일은 전적으로 과제가 주어지는 일인 거잖아요. 연출자들이 새로운 콘셉트를 갖고 오면 최대한 그걸 구현해보고 싶은 거죠. 어렸을 때 할리우드영화를 보면서 항상 꿈꿔왔던 것은 있어요. 예를 들면 <에이리언>이요. 과거에는 이런 작품 해보고 싶다고 하면 뜬구름 잡는 소리였는데 이제는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할리우드 메이킹 필름을 보면서 동경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반대로 우리의 작업을 레퍼런스 삼는 나라들도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황효균 _한국 콘텐츠의 질이 엄청 높잖아요. 한국영화를 보고 특수분장을 꿈꾸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고요. 제보받은 게 있는데 중국, 싱가포르에서 한국영화 보면서 저희 레퍼런스를 많이 참고한다고 해요. <옥자>에 쓰인 기술은 할리우드에서 그대로 따라 하고 있어요. 해외에 셀이 소개될 때 <부산행>을 했던 회사라고 하면 다 알아봐 주고요. 그런 게 참 뿌듯합니다. 필자: 김소미(씨네21) 사진촬영: 백종헌 인터뷰 일자: 2022년 10월 25일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2015년 최초의 지역 독립영화전용관이 개관하다 2015년 2월 11일 개관한 대구 오오극장은 대구 지역 최초, 그리고 유일의 독립영화 전용관이다. 2012년 12월, 대구민예총이 주최한 ‘자급자족 자립예술 세미나: 대구의 결핍’ 모임을 기점으로 독립영화 전용관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2013년 11월 대구독립영화전용관 설립추진모임을 1차로 실시했으나 예산 확보 등의 어려움으로 실패, 2014년 10월 2차 설립추진모임을 통해 본격적인 개관 준비에 들어갔다. 주체는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대구민예총, 미디어핀다 3개 조직이다. 추진단체가 예산을 일부 분담하고, 개인 차입, 일반 시민 모금, 좌석 판매 등을 통해 설립 예산을 마련했다. 2015년 7월, 대구경북영화영상협동조합으로 조직을 전환하는 첫 설립 총회를 갖고(발기인 5명, 조합원 13명), 8월에 설립 신고를 마쳤다. 개관 6개월 차인 2015년 8월 첫 관객 프로그래머 모집을 실시해 ‘커뮤니티시네마’, ‘모두의 영화관’을 가치로 하는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만의 고유한 프로그래밍이 시작되었다. 영리추구보다는 문화적 다양성과 그 저변을 확대하는 공공 영화관의 성격을 지향하는 오오극장은 대구경북영화영상협동조합원들이 직접 운영하는 극장이라는 점에서 극장의 연혁을 조합의 활동과 나란히 살펴보아야 하는 곳이다. 2016년부터 < 수성못 >(유지영), < 나만 없는 집 >(김현정), < 혜영 >(김용삼), < 맥북이면 다 되지요 >(장병기) 등 대구독립영화를 만든 젊은 감독들의 활약이 두드러짐에 따라, 지역영화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단체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조합원들은 최초 설립 목적에 걸맞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서의 조직 전환 필요성을 느끼고 2017년 2월 28일 서성희 이사장 취임 이후 협동조합 변경 신고를 마쳤다. (2018년 11월 14일, 문화체육관광부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으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영화 상영 및 배급, 영상미디어센터 운영 및 미디어교육의 실시, 관련 커뮤니티 공간 및 갤러리 운영 등을 목적으로 하는 조합 방침에 따라 오오극장의 공간은 대구영화학교, 관객 프로그래머들이 주도하는 커뮤니티 시네마 등을 위한 장소로도 운영되고 있다. 소박하고 정겨운 커뮤니티 시네마 통유리로 된 극장 입구 대구 중앙로역을 지나 국채보상로 길에 접어들면 노란색의 큼지막한 숫자 ‘55’가 쓰인 건물이 보인다. 오오극장에 들어서면 “33다방은 11시에 커피로 열어요. 55극장은 23시에 영화로 닫아요”라는 문구가 관객을 반긴다. 1개층, 1개관으로 꾸려진 오오극장은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로 지역 극장의 묘미를 전한다. 외관이 통유리로 돼 있어 카페 공간, 로비 등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입구 왼편에는 삼삼다방, 입구 정면에서 가장 안쪽에는 상영관이 위치해 있다. 상영관 좌석 수는 총 55석으로, 좌석수에 맞춰 극장 이름을 딴 경우다. 작은 좌석 수에도 불구, 앞줄 4개 좌석은 휠체어 좌석으로 마련했다. 휠체어 이동의 편의를 위해 극장 입구부터 상영관까지 문턱을 최대한 낮췄으며 화장실의 문 역시 미닫이로 설치했다. 코로나19 팬데믹 휴관 직전까지 상영관 입구 왼편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DVD 시청각실을 운영(2석), 오오극장 멤버십에 가입한 회원에 한해 극장 로비 서가의 DVD를 감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로비 공간의 DVD는 시민 기증, 대구영상미디어센터의 자료들을 합한 것으로 역시 오오극장 회원이라면 2주 간 대여가 가능하다. 매년 진행하는 <대구 독립영화 연말 정산>과 <오오극장 관객 프로그래머 영화제>가 오오극장이 지속적으로 운영해오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2월 20일 휴관에 돌입해 4월 30일에 영업을 재개한 오오극장은 2022년 5월 현재, 운영난 타개와 시설 보수 등을 위해 상영관 리모델링 또는 이전 여부를 검토 중이다. 상영관 입구 로비 전경(좌측이 매표대 겸 카페 매대, 우측이 DVD 전시대 대구 문화의 중심지에 위치한 극장 오오극장이 자리한 곳은 대구광역시 중구 성내2동 경상감영 일원으로 중구의 중심부인 반월당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경부선인 대구역, 도시철도로는 1호선 대구역, 2호선 반월당역, 3호선 달성공원역을 통해 접근이 용이하며 대구광역시 중심부의 주요 도로인 중앙대로, 서성로, 국채보상로, 북성로에 둘러싸인 형태이다. 국채보상로 길을 걷다 보면 노란색의 큼지막한 숫자 ‘55’가 쓰인 건물이 보인다. 대로변에서 오오극장을 등지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성내 2동에 자리한 110년 역사의 종로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담벼락을 따라 북성 문화마을길이 조성되어 있다. 대구 읍성의 옛 모습과 근대역사의 흔적을 살린 이 곳에는 대구에서 활동한 화가 이인성, 지휘자 박태준, 동학을 창도한 종교창시자 최제우를 소개하는 팻말들을 줄지어 서 있다. 종로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반경 500m 이내에 오오극장, 무궁화백화점, 북성로 공구골목 등이 위치한 모양새다. 오오극장 바로 뒤편에 자리한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대구 근대역사관 등도 중구의 주요 문화시설이며, 무궁화백화점과 중앙상가를 비롯한 대구 주요 상권과도 닿아있다. 오오극장과 약 100m 거리에 위치한 롯데시네마 프리미엄 만경관은 1922년 개관해 2018년 폐관한 대구 향토 극장 만경관이 롯데시네마와 제휴를 맺고 최신 영화관으로 탈바꿈한 시설이다. 과거 만경관, 한일극장 등과 함께 형성된 영화관 거리에 위치한 오오극장의 입지는 대구 문화가 발전한 중심지에 자리해 역사적 가치가 높다. 오오극장 주변 북성 문화마을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41919)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537, 1층 2. 설립일: 2015년 2월 11일 3. 대표자: 서성희 4. 규모: 230.00m² / 상영관 크기(가로 7.60m, 세로 9.00m, 높이 3.75m) / 스크린 크기(가로 5.50m, 세로 2.30m) 5. 극장 구성: 1관, 55석 (51석+휠체어석 4석) 6. 운영시간: 10:00 ~ 22:00 (시간표에 따라 유동적) 7. 입장료: 일반 8,000원 경로, 청소년, 장애인, 멤버십 7,000원 8. 조직 구성: 사무국 (사무국장, 사무국원), 프로그래머, 홍보팀장, 재무팀장(5인) 9. 공간 구성 - 상영관 1개관 - 삼삼다방: 커피 및 음료 판매, 20석 - 갤러리 삼삼다방: 전시공간, 카페 벽면을 갤러리로 활용 지역 예술인의 작품 상시 전시 - 장애인 시설 구비: 휠체어석 4석, 휠체어 진입로 및 통로, 장애인 화장실 인터뷰: 한종해 사무국장 한종해 사무국장 김소미 _오오극장은 대구 최초, 그리고 유일의 독립영화 전용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영화관을 열기까지 어떤 배경이 있었나요. 한종해 _대구 지역에 기반한 독립영화인과 시민들이 뜻을 모아 개관한 것이 2015년 2월 11일이에요. 대구의 예술인, 영화 운동 단체들이 모여 포럼을 가졌는데 독립영화 전용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다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죠. 대구의 여러 가지 영화적인 흐름을 이끌고 성장시켜갈 수 있는 거점이 되기를 바라며 2년 반 정도 준비 끝에 2015년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의 인디스페이스를 청사진으로 생각하며 준비했어요. 어떻게 보면 인디스페이스와 같이 독립영화전용관들이 정부 지원사업을 통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운영에 성공하는 사례를 믿고 시작한 것인데, 박근혜 정부 들어 독립영화전용관 운영 지원 사업이 원활하게 이러우지지 않아 개관 직후 굉장히 힘든 시기를 3년 정도 보냈습니다. 김소미 _55석 좌석의 이름을 따서 오오극장이란 작명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좌석수를 55석으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한종해 _시민 모금을 받긴 했지만 자금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던 게 사실입니다. 상영관 안 좌석도 서울의 다른 극장을 통해 지원받은 것이고요. 그렇다 보니 원하는 수량만큼 좌석을 확보하기는 어려웠어요. 상영관을 만들만한 층고 높은 건물을 찾다가 현재 위치에 자리를 잡았는데, 최대한 많은 좌석을 넣는다고 했을 때 딱 55석이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오랜 회의를 거쳐 극장 이름을 55개 좌석 수에 맞춰 '오오극장'이라고 부르자는 의견이 가장 환영받았습니다. 오오극장 상영관 내부 김소미 _사무국장님은 대구 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의 사무국장이기도 하신데요. 오오극장의 조직 체계는 어떤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지요. 한종해 _크게는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의 조직 체계 내에서 오오극장이 하나의 사업장 역할을 하고 있지요. 조합의 사무국장인 제가 오오극장의 사무국장도 맡고 있고요. 그 외에 사무국원, 프로그래머와 홍보팀장, 그리고 재무팀장 각 1인으로 이루어진 조직입니다. 현재 총 5명이에요. 원래는 저와 김창완 프로그래머, 노혜진 홍보팀장, 이아름 재무팀장까지 4명이서 운영했는데 최근 여러 사업을 구상하고 실행하기 위해 사무국원을 충원했습니다. 김소미 _대로변 1층에 극장이 자리 잡고 있어 로비에 있는 삼삼카페를 따로 찾는 손님들도 있을 것 같네요. 극장 개관 당시부터 카페 운영을 계획하셨나요? 한종해 _워낙 작은 극장이라 극장만으로는 수입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극장 설립 추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 카페 운영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름도 오오극장과 운을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았지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삼삼오오 같이 찾는 극장으로 의미를 부여해보면 좋겠더라고요. 김소미 _1개층, 1개관으로 아담하고 소박한 공간입니다. 공간적으로 어떤 특징이 있다고 보시나요? 한종해 _멀티플렉스와는 다르게 로비 공간이 좀 더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지요. 팬데믹 이전에는 감독님들, 그리고 지역 영화인들이 회의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친밀도가 우리 오오극장의 장점인데 코로나19를 겪으며 관객의 발길이 줄어들어 그저 아쉬울 뿐입니다. 김소미 _극장의 세부 요소를 소개해주신다면요. 한종해 _작지만 내실이 있어요. 다른 건 몰라도 장애인 시설은 필요하다는 목표가 애초부터 확고했습니다. 지원 사업을 통해 화장실, 진입로 등에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도록 공사를 했어요. 어쩌면 당연한 거지만, 그럼에도 없는 극장들이 많아서 오오극장 개관 초기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꼈지요. 또 오오극장을 찾는 시민, 각종 단체들로부터 중고 DVD와 책 등을 기증받아 로비 서가에 진열해두었는데요. 비치된 DVD에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세요. 지금은 팬데믹 이후 폐쇄한 상태지만, 원래 상영관 옆에 따로 작은 간이 시청각실을 운영하기도 했죠. 중형 텔레비전 하나와 좌석 두 개가 있는 방인데, 미리 신청해 서가의 DVD를 볼 수 있도록 운영했습니다. 로비 입구 DVD 전시 코너 김소미 _극장 운영 외에도 로컬시네마의 증진을 위해 오오극장 운영진들이 힘 쏟는 사업이 있을까요. 한종해 _대구시로부터 대구영상미디어센터의 운영을 위탁받았습니다. 오오극장 설립 초창기부터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산업적 측면에서 대구 로컬시네마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었어요. 우선 일거리가 주어져 감독이나 스태프들이 계속 발굴이 되어야 하고, 대구에서 찍은 영화로 성과를 거둬 전국적인 감독이 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지요. 그러려면 후배 양성이 필요합니다. 대구는 대학 영화학과가 단 한 곳도 없어요. 공식적인 영화 교육 채널이 없는 도시여서 바로 그 부분을 메울 수 있는 교육 기관과 미디어센터의 존재에 현재 많은 영화인들이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대구영화학교를 비롯한 관련 사업을 준비 중인 이유입니다. 또 독립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대구 지역 영화를 체계적으로 배급할 배급 기관과 체계의 필요성도 절실히 느끼고 있더라고요. 조합 차원에서 배급팀을 운영할 수 있을지, 우리의 역할도 새로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소미 _중앙로역을 지나 극장까지 걸어오면서 동네가 주는 고즈넉한 인상에 반했습니다. 오오극장의 위치에 있어 지리적으로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한종해 _중구는 그야말로 대구 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동네를 돌아보면 조선시대 말부터 구한말 일제강점기, 그리고 산업화 시대의 유산들이 모두 모여있고, 그건 극장의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예요. 오오극장이 위치한 곳을 중심으로 반경 1km 내에 대구 영화의 역사가 모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쉬운 것은 개발 과정에서 과거 영화관의 흔적들이 많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에요. 이런 부분에 애착을 느끼고 있는 터라, 대구시 관계자, 문화예술 운동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대구 영화의 거리를 조성하고 싶다는 생각을 알리고 있어요. 보존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낍니다. 김소미 _코로나19 펜데믹으로 휴관 이후 경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오오극장을 지키고 계십니까. 한종해 _영리추구를 위한 극장이 아닌 만큼 독립영화 전용관의 중요성을 굳건히 믿으며 버팁니다. 누구나 제일 처음 영화를 찍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만들게 되는 것이 독립영화일 수밖에 없잖습니까. 독립영화들이 지원을 통해서 풍성한 양분을 얻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영화도 성장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오극장은 물론, 독립영화 전용관이 전국 각지에 더 세분화되어 존재하길 바라고, 극장이 지역 영화 운동의 구심점이 되길 바랍니다. 인터뷰: 김창완 프로그래머 김창완 프로그래머 김소미 _오오극장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창완 _대구 지역 최초로 만들어진 독립영화 전용관이고, 올해 7년 차를 맞이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한국 독립영화 개봉작을 주로 상영하고, 대구 지역의 로컬시네마 상영을 위해서도 힘쓰고 있습니다. 김소미 _극장 이름, 카페명에 이어 이제는 극장 마스코트로 자리잡은 길고양이의 이름도 범상치 않네요. 어떻게 '오우삼'과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김창완 _창문 밖에서 울던 고양이였어요. 직원들이 음식을 주면 들어와서 먹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여기 머물며 계속 살게 되었죠. 처음엔 오오극장, 삼삼카페의 이름을 따서 오삼이라고 하다가 오우삼 감독의 이름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김소미 _오오극장 주변은 동성로 번화가에 비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역사가 유구한 곳입니다. 김창완 _동성로 일대에 형성된 대구 최대의 중심가와 가까우면서도 살짝 비껴나 있다고 볼 수 있죠. 근대 역사의 자취가 남아있는 골목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요. 지금의 롯데시네마가 들어선 자리는 원래 만경관이라는 오래된 극장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에 지어졌죠. 현재 CGV대구한일점이 된 한일극장도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김소미 _대구 지역 유일의 독립영화 전용관으로서 프로그래머님의 고민과 책임감도 상당할 듯 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프로그래밍을 하시나요. 김창완 _막상 시기별로 한국 독립영화 개봉작이 그리 많지 않아서 제 취향을 발휘할 여력은 적었던 듯 해요. 절대적 편수 자체를 적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상영할 만한 영화의 숫자는 대체로 정해져 있는 식이었거든요. 기획전을 꾸릴 땐 시기적으로 중요한 영화들이 무엇일지 고민하고요. 제 개인적으로는 여성 영화들이 강세를 띠면서 프로그래밍을 하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고집을 부릴 때가 있었다면 ‘어떤 영화를 틀겠다’ 보다는 ‘이런 영화는 절대 안 틀겠다’ 쪽에 적용되지 않았나 싶네요. 오오극장 영사실과 작업중인 김창완 프로그래머 김소미 _오오극장 개관 기념 특별전, '대구독립영화 연말정산' 기획전을 매년 열고 관객들도 호응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 정기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있을까요. 김창완 _관객 프로그램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매달 1번 상영하고, 1년에 한번씩은 꼭 관객 프로그래머들이 선정한 영화들로 영화제를 엽니다. 다른 극장과는 다른 오오극장의 차별점이라고 생각해요. 관객 기자단은 있지만, 저희처럼 관객 프로그래머가 직접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영화제를 만들게끔 유도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저희는 이것이야말로 커뮤니티시네마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관객 프로그래머 영화제 중 <내 배우 영업전>은 제게도 의미있는 기억이에요.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배우들일지라도 주목할 만한 커리어를 가졌다면 초청해서 관객과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김소미 _극장을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있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김창완 _저희가 '오오극장의 5대 사건'이라 부르는 일들이 있어요.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 나쁜 나라 >(김진열, 2015)가 개봉했을 때 어떤 관객이 55석 전체 티켓을 구매해서 관객들에게 나눔하는 이벤트를 연 적이 있습니다. 오오극장이 전국 최초였고, 이 일을 기점으로 여러 극장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나쁜 나라> 이벤트가 일어났지요. 오오극장은 김태리 배우가 신인 시절 출연했던 독립영화 < 문영 >(김소연, 2017)의 확장판을 가장 먼저 상영한 곳이기도 해요. 새벽부터 줄을 선 김태리 배우의 팬분들로 인해 4회차 상영이 모두 매진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문제적 호러 < 무서운 집 >(양병간, 2015)도 지역 극장 중 최초로 상영했어요. 컬트 영화가 나온다면 앞으로도 적극 상영하려 해요. 컬트 영화는 특히 관객들의 반응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남달리 좋습니다. 1층 로비 유리창에 적힌 관객들의 메모들 김소미 _지난 7년간 직접 경험한 오오극장만의 공간적, 문화적 미덕은 무엇이었나요. 김창완 _솔직히 말해 오오극장은 이른바 '스펙'이 좋지는 않은 극장이에요. 가능한 더 좋은 환경에서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은데 프로그래머로서 미안함도 큽니다. 그럼에도 오오극장만의 장점이 있다면, 만만하고 귀여운, 문턱이 낮은 극장이라는 점이 아닐까요? 일반 극장과 마이크로시네마 사이에 위치한 극장이라고 생각해요. 관객과의 대화로 극장을 찾은 감독, 영화인들이 종종 'GV 행사 중 가장 마음이 편했던 곳이 오오극장'이라고 말씀해주기도 하세요. 무대에 선 영화인과 관객 사이의 밀착성이 남다르기 때문에 다른 극장에선 잘 못했던 이야기도 여기 와선 하게 된다는 거지요. 언제든 문이 열려 있고,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직접 틀거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극장이라는 것도 오오극장만의 색깔 중 하나이고요. 김소미 _오오극장의 미래에 관해 어떤 고민을 갖고 계신가요. 김창완 _개관 후 7년이 지나 재정비할 시점이 왔다고 봐요. 장비들도 교체가 필요한 시점이고요. 리모델링을 할 것이냐, 이사를 갈 것이냐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할 때가 다가온 것 같아요. 그러니 재원 마련이 더욱 절실한 시점입니다. 필자: 김소미(씨네21) 사진촬영: 백종헌 인터뷰 일자: 2022년 5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