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EANIFEST]05 김소연, 창지원, 전슬기, 최정, 배향기
- 제작년도
- 2010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2015년 최초의 지역 독립영화전용관이 개관하다 2015년 2월 11일 개관한 대구 오오극장은 대구 지역 최초, 그리고 유일의 독립영화 전용관이다. 2012년 12월, 대구민예총이 주최한 ‘자급자족 자립예술 세미나: 대구의 결핍’ 모임을 기점으로 독립영화 전용관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2013년 11월 대구독립영화전용관 설립추진모임을 1차로 실시했으나 예산 확보 등의 어려움으로 실패, 2014년 10월 2차 설립추진모임을 통해 본격적인 개관 준비에 들어갔다. 주체는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대구민예총, 미디어핀다 3개 조직이다. 추진단체가 예산을 일부 분담하고, 개인 차입, 일반 시민 모금, 좌석 판매 등을 통해 설립 예산을 마련했다. 2015년 7월, 대구경북영화영상협동조합으로 조직을 전환하는 첫 설립 총회를 갖고(발기인 5명, 조합원 13명), 8월에 설립 신고를 마쳤다. 개관 6개월 차인 2015년 8월 첫 관객 프로그래머 모집을 실시해 ‘커뮤니티시네마’, ‘모두의 영화관’을 가치로 하는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만의 고유한 프로그래밍이 시작되었다. 영리추구보다는 문화적 다양성과 그 저변을 확대하는 공공 영화관의 성격을 지향하는 오오극장은 대구경북영화영상협동조합원들이 직접 운영하는 극장이라는 점에서 극장의 연혁을 조합의 활동과 나란히 살펴보아야 하는 곳이다. 2016년부터 < 수성못 >(유지영), < 나만 없는 집 >(김현정), < 혜영 >(김용삼), < 맥북이면 다 되지요 >(장병기) 등 대구독립영화를 만든 젊은 감독들의 활약이 두드러짐에 따라, 지역영화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단체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조합원들은 최초 설립 목적에 걸맞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서의 조직 전환 필요성을 느끼고 2017년 2월 28일 서성희 이사장 취임 이후 협동조합 변경 신고를 마쳤다. (2018년 11월 14일, 문화체육관광부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으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영화 상영 및 배급, 영상미디어센터 운영 및 미디어교육의 실시, 관련 커뮤니티 공간 및 갤러리 운영 등을 목적으로 하는 조합 방침에 따라 오오극장의 공간은 대구영화학교, 관객 프로그래머들이 주도하는 커뮤니티 시네마 등을 위한 장소로도 운영되고 있다. 소박하고 정겨운 커뮤니티 시네마 통유리로 된 극장 입구 대구 중앙로역을 지나 국채보상로 길에 접어들면 노란색의 큼지막한 숫자 ‘55’가 쓰인 건물이 보인다. 오오극장에 들어서면 “33다방은 11시에 커피로 열어요. 55극장은 23시에 영화로 닫아요”라는 문구가 관객을 반긴다. 1개층, 1개관으로 꾸려진 오오극장은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로 지역 극장의 묘미를 전한다. 외관이 통유리로 돼 있어 카페 공간, 로비 등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입구 왼편에는 삼삼다방, 입구 정면에서 가장 안쪽에는 상영관이 위치해 있다. 상영관 좌석 수는 총 55석으로, 좌석수에 맞춰 극장 이름을 딴 경우다. 작은 좌석 수에도 불구, 앞줄 4개 좌석은 휠체어 좌석으로 마련했다. 휠체어 이동의 편의를 위해 극장 입구부터 상영관까지 문턱을 최대한 낮췄으며 화장실의 문 역시 미닫이로 설치했다. 코로나19 팬데믹 휴관 직전까지 상영관 입구 왼편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DVD 시청각실을 운영(2석), 오오극장 멤버십에 가입한 회원에 한해 극장 로비 서가의 DVD를 감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로비 공간의 DVD는 시민 기증, 대구영상미디어센터의 자료들을 합한 것으로 역시 오오극장 회원이라면 2주 간 대여가 가능하다. 매년 진행하는 <대구 독립영화 연말 정산>과 <오오극장 관객 프로그래머 영화제>가 오오극장이 지속적으로 운영해오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2월 20일 휴관에 돌입해 4월 30일에 영업을 재개한 오오극장은 2022년 5월 현재, 운영난 타개와 시설 보수 등을 위해 상영관 리모델링 또는 이전 여부를 검토 중이다. 상영관 입구 로비 전경(좌측이 매표대 겸 카페 매대, 우측이 DVD 전시대 대구 문화의 중심지에 위치한 극장 오오극장이 자리한 곳은 대구광역시 중구 성내2동 경상감영 일원으로 중구의 중심부인 반월당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경부선인 대구역, 도시철도로는 1호선 대구역, 2호선 반월당역, 3호선 달성공원역을 통해 접근이 용이하며 대구광역시 중심부의 주요 도로인 중앙대로, 서성로, 국채보상로, 북성로에 둘러싸인 형태이다. 국채보상로 길을 걷다 보면 노란색의 큼지막한 숫자 ‘55’가 쓰인 건물이 보인다. 대로변에서 오오극장을 등지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성내 2동에 자리한 110년 역사의 종로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담벼락을 따라 북성 문화마을길이 조성되어 있다. 대구 읍성의 옛 모습과 근대역사의 흔적을 살린 이 곳에는 대구에서 활동한 화가 이인성, 지휘자 박태준, 동학을 창도한 종교창시자 최제우를 소개하는 팻말들을 줄지어 서 있다. 종로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반경 500m 이내에 오오극장, 무궁화백화점, 북성로 공구골목 등이 위치한 모양새다. 오오극장 바로 뒤편에 자리한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대구 근대역사관 등도 중구의 주요 문화시설이며, 무궁화백화점과 중앙상가를 비롯한 대구 주요 상권과도 닿아있다. 오오극장과 약 100m 거리에 위치한 롯데시네마 프리미엄 만경관은 1922년 개관해 2018년 폐관한 대구 향토 극장 만경관이 롯데시네마와 제휴를 맺고 최신 영화관으로 탈바꿈한 시설이다. 과거 만경관, 한일극장 등과 함께 형성된 영화관 거리에 위치한 오오극장의 입지는 대구 문화가 발전한 중심지에 자리해 역사적 가치가 높다. 오오극장 주변 북성 문화마을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41919)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537, 1층 2. 설립일: 2015년 2월 11일 3. 대표자: 서성희 4. 규모: 230.00m² / 상영관 크기(가로 7.60m, 세로 9.00m, 높이 3.75m) / 스크린 크기(가로 5.50m, 세로 2.30m) 5. 극장 구성: 1관, 55석 (51석+휠체어석 4석) 6. 운영시간: 10:00 ~ 22:00 (시간표에 따라 유동적) 7. 입장료: 일반 8,000원 경로, 청소년, 장애인, 멤버십 7,000원 8. 조직 구성: 사무국 (사무국장, 사무국원), 프로그래머, 홍보팀장, 재무팀장(5인) 9. 공간 구성 - 상영관 1개관 - 삼삼다방: 커피 및 음료 판매, 20석 - 갤러리 삼삼다방: 전시공간, 카페 벽면을 갤러리로 활용 지역 예술인의 작품 상시 전시 - 장애인 시설 구비: 휠체어석 4석, 휠체어 진입로 및 통로, 장애인 화장실 인터뷰: 한종해 사무국장 한종해 사무국장 김소미 _오오극장은 대구 최초, 그리고 유일의 독립영화 전용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영화관을 열기까지 어떤 배경이 있었나요. 한종해 _대구 지역에 기반한 독립영화인과 시민들이 뜻을 모아 개관한 것이 2015년 2월 11일이에요. 대구의 예술인, 영화 운동 단체들이 모여 포럼을 가졌는데 독립영화 전용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다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죠. 대구의 여러 가지 영화적인 흐름을 이끌고 성장시켜갈 수 있는 거점이 되기를 바라며 2년 반 정도 준비 끝에 2015년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의 인디스페이스를 청사진으로 생각하며 준비했어요. 어떻게 보면 인디스페이스와 같이 독립영화전용관들이 정부 지원사업을 통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운영에 성공하는 사례를 믿고 시작한 것인데, 박근혜 정부 들어 독립영화전용관 운영 지원 사업이 원활하게 이러우지지 않아 개관 직후 굉장히 힘든 시기를 3년 정도 보냈습니다. 김소미 _55석 좌석의 이름을 따서 오오극장이란 작명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좌석수를 55석으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한종해 _시민 모금을 받긴 했지만 자금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던 게 사실입니다. 상영관 안 좌석도 서울의 다른 극장을 통해 지원받은 것이고요. 그렇다 보니 원하는 수량만큼 좌석을 확보하기는 어려웠어요. 상영관을 만들만한 층고 높은 건물을 찾다가 현재 위치에 자리를 잡았는데, 최대한 많은 좌석을 넣는다고 했을 때 딱 55석이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오랜 회의를 거쳐 극장 이름을 55개 좌석 수에 맞춰 '오오극장'이라고 부르자는 의견이 가장 환영받았습니다. 오오극장 상영관 내부 김소미 _사무국장님은 대구 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의 사무국장이기도 하신데요. 오오극장의 조직 체계는 어떤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지요. 한종해 _크게는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의 조직 체계 내에서 오오극장이 하나의 사업장 역할을 하고 있지요. 조합의 사무국장인 제가 오오극장의 사무국장도 맡고 있고요. 그 외에 사무국원, 프로그래머와 홍보팀장, 그리고 재무팀장 각 1인으로 이루어진 조직입니다. 현재 총 5명이에요. 원래는 저와 김창완 프로그래머, 노혜진 홍보팀장, 이아름 재무팀장까지 4명이서 운영했는데 최근 여러 사업을 구상하고 실행하기 위해 사무국원을 충원했습니다. 김소미 _대로변 1층에 극장이 자리 잡고 있어 로비에 있는 삼삼카페를 따로 찾는 손님들도 있을 것 같네요. 극장 개관 당시부터 카페 운영을 계획하셨나요? 한종해 _워낙 작은 극장이라 극장만으로는 수입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극장 설립 추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 카페 운영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름도 오오극장과 운을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았지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삼삼오오 같이 찾는 극장으로 의미를 부여해보면 좋겠더라고요. 김소미 _1개층, 1개관으로 아담하고 소박한 공간입니다. 공간적으로 어떤 특징이 있다고 보시나요? 한종해 _멀티플렉스와는 다르게 로비 공간이 좀 더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지요. 팬데믹 이전에는 감독님들, 그리고 지역 영화인들이 회의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친밀도가 우리 오오극장의 장점인데 코로나19를 겪으며 관객의 발길이 줄어들어 그저 아쉬울 뿐입니다. 김소미 _극장의 세부 요소를 소개해주신다면요. 한종해 _작지만 내실이 있어요. 다른 건 몰라도 장애인 시설은 필요하다는 목표가 애초부터 확고했습니다. 지원 사업을 통해 화장실, 진입로 등에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도록 공사를 했어요. 어쩌면 당연한 거지만, 그럼에도 없는 극장들이 많아서 오오극장 개관 초기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꼈지요. 또 오오극장을 찾는 시민, 각종 단체들로부터 중고 DVD와 책 등을 기증받아 로비 서가에 진열해두었는데요. 비치된 DVD에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세요. 지금은 팬데믹 이후 폐쇄한 상태지만, 원래 상영관 옆에 따로 작은 간이 시청각실을 운영하기도 했죠. 중형 텔레비전 하나와 좌석 두 개가 있는 방인데, 미리 신청해 서가의 DVD를 볼 수 있도록 운영했습니다. 로비 입구 DVD 전시 코너 김소미 _극장 운영 외에도 로컬시네마의 증진을 위해 오오극장 운영진들이 힘 쏟는 사업이 있을까요. 한종해 _대구시로부터 대구영상미디어센터의 운영을 위탁받았습니다. 오오극장 설립 초창기부터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산업적 측면에서 대구 로컬시네마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었어요. 우선 일거리가 주어져 감독이나 스태프들이 계속 발굴이 되어야 하고, 대구에서 찍은 영화로 성과를 거둬 전국적인 감독이 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지요. 그러려면 후배 양성이 필요합니다. 대구는 대학 영화학과가 단 한 곳도 없어요. 공식적인 영화 교육 채널이 없는 도시여서 바로 그 부분을 메울 수 있는 교육 기관과 미디어센터의 존재에 현재 많은 영화인들이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대구영화학교를 비롯한 관련 사업을 준비 중인 이유입니다. 또 독립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대구 지역 영화를 체계적으로 배급할 배급 기관과 체계의 필요성도 절실히 느끼고 있더라고요. 조합 차원에서 배급팀을 운영할 수 있을지, 우리의 역할도 새로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소미 _중앙로역을 지나 극장까지 걸어오면서 동네가 주는 고즈넉한 인상에 반했습니다. 오오극장의 위치에 있어 지리적으로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한종해 _중구는 그야말로 대구 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동네를 돌아보면 조선시대 말부터 구한말 일제강점기, 그리고 산업화 시대의 유산들이 모두 모여있고, 그건 극장의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예요. 오오극장이 위치한 곳을 중심으로 반경 1km 내에 대구 영화의 역사가 모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쉬운 것은 개발 과정에서 과거 영화관의 흔적들이 많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에요. 이런 부분에 애착을 느끼고 있는 터라, 대구시 관계자, 문화예술 운동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대구 영화의 거리를 조성하고 싶다는 생각을 알리고 있어요. 보존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낍니다. 김소미 _코로나19 펜데믹으로 휴관 이후 경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오오극장을 지키고 계십니까. 한종해 _영리추구를 위한 극장이 아닌 만큼 독립영화 전용관의 중요성을 굳건히 믿으며 버팁니다. 누구나 제일 처음 영화를 찍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만들게 되는 것이 독립영화일 수밖에 없잖습니까. 독립영화들이 지원을 통해서 풍성한 양분을 얻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영화도 성장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오극장은 물론, 독립영화 전용관이 전국 각지에 더 세분화되어 존재하길 바라고, 극장이 지역 영화 운동의 구심점이 되길 바랍니다. 인터뷰: 김창완 프로그래머 김창완 프로그래머 김소미 _오오극장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창완 _대구 지역 최초로 만들어진 독립영화 전용관이고, 올해 7년 차를 맞이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한국 독립영화 개봉작을 주로 상영하고, 대구 지역의 로컬시네마 상영을 위해서도 힘쓰고 있습니다. 김소미 _극장 이름, 카페명에 이어 이제는 극장 마스코트로 자리잡은 길고양이의 이름도 범상치 않네요. 어떻게 '오우삼'과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김창완 _창문 밖에서 울던 고양이였어요. 직원들이 음식을 주면 들어와서 먹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여기 머물며 계속 살게 되었죠. 처음엔 오오극장, 삼삼카페의 이름을 따서 오삼이라고 하다가 오우삼 감독의 이름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김소미 _오오극장 주변은 동성로 번화가에 비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역사가 유구한 곳입니다. 김창완 _동성로 일대에 형성된 대구 최대의 중심가와 가까우면서도 살짝 비껴나 있다고 볼 수 있죠. 근대 역사의 자취가 남아있는 골목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요. 지금의 롯데시네마가 들어선 자리는 원래 만경관이라는 오래된 극장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에 지어졌죠. 현재 CGV대구한일점이 된 한일극장도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김소미 _대구 지역 유일의 독립영화 전용관으로서 프로그래머님의 고민과 책임감도 상당할 듯 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프로그래밍을 하시나요. 김창완 _막상 시기별로 한국 독립영화 개봉작이 그리 많지 않아서 제 취향을 발휘할 여력은 적었던 듯 해요. 절대적 편수 자체를 적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상영할 만한 영화의 숫자는 대체로 정해져 있는 식이었거든요. 기획전을 꾸릴 땐 시기적으로 중요한 영화들이 무엇일지 고민하고요. 제 개인적으로는 여성 영화들이 강세를 띠면서 프로그래밍을 하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고집을 부릴 때가 있었다면 ‘어떤 영화를 틀겠다’ 보다는 ‘이런 영화는 절대 안 틀겠다’ 쪽에 적용되지 않았나 싶네요. 오오극장 영사실과 작업중인 김창완 프로그래머 김소미 _오오극장 개관 기념 특별전, '대구독립영화 연말정산' 기획전을 매년 열고 관객들도 호응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 정기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있을까요. 김창완 _관객 프로그램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매달 1번 상영하고, 1년에 한번씩은 꼭 관객 프로그래머들이 선정한 영화들로 영화제를 엽니다. 다른 극장과는 다른 오오극장의 차별점이라고 생각해요. 관객 기자단은 있지만, 저희처럼 관객 프로그래머가 직접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영화제를 만들게끔 유도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저희는 이것이야말로 커뮤니티시네마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관객 프로그래머 영화제 중 <내 배우 영업전>은 제게도 의미있는 기억이에요.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배우들일지라도 주목할 만한 커리어를 가졌다면 초청해서 관객과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김소미 _극장을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있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김창완 _저희가 '오오극장의 5대 사건'이라 부르는 일들이 있어요.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 나쁜 나라 >(김진열, 2015)가 개봉했을 때 어떤 관객이 55석 전체 티켓을 구매해서 관객들에게 나눔하는 이벤트를 연 적이 있습니다. 오오극장이 전국 최초였고, 이 일을 기점으로 여러 극장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나쁜 나라> 이벤트가 일어났지요. 오오극장은 김태리 배우가 신인 시절 출연했던 독립영화 < 문영 >(김소연, 2017)의 확장판을 가장 먼저 상영한 곳이기도 해요. 새벽부터 줄을 선 김태리 배우의 팬분들로 인해 4회차 상영이 모두 매진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문제적 호러 < 무서운 집 >(양병간, 2015)도 지역 극장 중 최초로 상영했어요. 컬트 영화가 나온다면 앞으로도 적극 상영하려 해요. 컬트 영화는 특히 관객들의 반응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남달리 좋습니다. 1층 로비 유리창에 적힌 관객들의 메모들 김소미 _지난 7년간 직접 경험한 오오극장만의 공간적, 문화적 미덕은 무엇이었나요. 김창완 _솔직히 말해 오오극장은 이른바 '스펙'이 좋지는 않은 극장이에요. 가능한 더 좋은 환경에서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은데 프로그래머로서 미안함도 큽니다. 그럼에도 오오극장만의 장점이 있다면, 만만하고 귀여운, 문턱이 낮은 극장이라는 점이 아닐까요? 일반 극장과 마이크로시네마 사이에 위치한 극장이라고 생각해요. 관객과의 대화로 극장을 찾은 감독, 영화인들이 종종 'GV 행사 중 가장 마음이 편했던 곳이 오오극장'이라고 말씀해주기도 하세요. 무대에 선 영화인과 관객 사이의 밀착성이 남다르기 때문에 다른 극장에선 잘 못했던 이야기도 여기 와선 하게 된다는 거지요. 언제든 문이 열려 있고,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직접 틀거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극장이라는 것도 오오극장만의 색깔 중 하나이고요. 김소미 _오오극장의 미래에 관해 어떤 고민을 갖고 계신가요. 김창완 _개관 후 7년이 지나 재정비할 시점이 왔다고 봐요. 장비들도 교체가 필요한 시점이고요. 리모델링을 할 것이냐, 이사를 갈 것이냐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할 때가 다가온 것 같아요. 그러니 재원 마련이 더욱 절실한 시점입니다. 필자: 김소미(씨네21) 사진촬영: 백종헌 인터뷰 일자: 2022년 5월 13일
2021년 10월 15일 정연씨에게, 정연씨, 한국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얼마 전 물으셨지요. 평소 그랬듯 무슨 대답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한편으로는 설명하기 싫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싫은 까닭을 설명하려면 밝힐 일이 너무 많아 말로는 도저히 정리할 수 없었던 탓입니다. 그래서 글로 대답을 드리려 하지만, 이것도 매우 어중간한 대답으로 그칠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싫음과 그 여파가 한국 영화와 제 사이를 가로막고 있고, 이 주제의 중대성이 제 기억과 이해력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1) 그렇습니다, 정연씨. 제가 지금 정연씨에게 쓰고 있는 건 편지입니다. 공교롭게도 정연씨에게 처음 편지를 쓴 날이 2015년 10월 15일이더군요. 기억하시나요? 정확히 7년 만에 다시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7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이 변해 그전과 지금을 같은 세계라고 할 수 없을 정도지만 솔직히 말하면 변하지 않은 것들도 많습니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연씨는 그동안 아기를 낳고 일산으로 이사 갔으며 네 권의 책을 내고 한편의 시나리오를 쓰고 백스물두번의 토크 사회를 봤으며 담배를 끊고 살이 쪘지만 여전히 브릿팝을 듣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LP판으로 브릿팝을 듣는다는 사실이겠지요. 정연씨가 휴대용 턴테이블을 문보영 시인에게 선물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슨 연유로 정연씨는 그렇게 아름다운 선물을 받은 걸까요. 문보영씨의 인상적인 에세이 <일기 시대>에는 MBTI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보영씨의 성격 유형은 INFP로 ‘열정적인 중재자’였는데 어느 날 INFJ ‘선의의 옹호자’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정연씨는 INTP ‘논리적인 사색가’이지요. 두 유형은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주기 때문에 잘 맞다고 합니다. 특히 비즈니스 파트너로 찰떡궁합이라는군요(참고로 저는 MBTI를 한번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너무 오만해서일까요, 너무 겁쟁이라서일까요. 어쩌면 이 둘은 같은 거 아닐까요). 아무튼, 정연씨는 턴테이블이 아까우니 LP를 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시험 삼아 LP를 샀다지요.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수십년 간 들어온 브릿팝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제프 베조스는 정연씨가 주문한 New Order의 네 장의 LP판 중 두 장을 찌그러지고 우그러진 상태로 배송했지요. 그럼에도 당신의 못말리는 구매욕은 사그러들지 않았습니다.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발매한 자비스 코커와 칠리 곤잘레스의 “ROOM29”를 주문했으니까요. “ROOM29”는 선셋대로의 전설적인 호텔 샤또 마몽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앨범이라고 하더군요. 자비스 코커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레코드는 영화가 인간 존재에 끼친 영향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그 지점에 완전 푹 빠져 있어요. 2) 자비스와 칠리가 2017년에 런던 바비컨 센터에서 공연을 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정연씨, 상우씨와 바비컨 센터를 걷던 2019년의 어느 가을 날이 생각납니다. 두 사람은 점심 대신 칠리 페퍼 아이스크림을 먹었지요. “ROO29”에도 이런 제목의 곡이 있네요. “Ice Cream as Main Course.” 우연의 일치일까요? 이 모든 것이 예견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 전체가 말이지요. 사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보겠습니다. 좋아하는 음악: 브릿팝(25년째) 좋아하는 뮤지션: 뉴오더(25년째) 기록 시스템: 미니컴포넌트 -> CD플레이어 -> 아이팟 -> 스포티파이 -> 턴테이블 본질은 그대론데 실존만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턴테이블로까지 브릿팝을 듣는 정연씨가 조금 지긋지긋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사람들이 영화를 향유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하는 시즌제 드라마가 저에게는 루이 푀이야드 같은 감독의 연속영화(serial film)를 연상시키기도 하니까요. 참고로 정종화 연구원은 연속영화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편 극영화가 정착되기 이전인 1910년대 초반부터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제작되고 유행했다. 주로 활극적인 내용을 2권(롤) 1편으로 구성하고 그 편의 마지막에 위기일발의 장면(cliffhanger)을 넣어, 최종편이 끝나는 12, 13주부터 24, 25주 동안 관객들이 매주 영화관을 다니도록 만드는 형태다.” 3) 어쩐지 욕하면서도 < 오징어게임 > 다음화를 클릭하는 제 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설명입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많은 것이 다르겠지만요. 하지만 정말 다를까요? 뭐가, 얼마나? 우리 몸의 모든 세포가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뀌는데 걸리는 시간은 1년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동일한 신체를 유지하고 있는 건 시스템의 동적평형 때문이지요. 일본의 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는 이렇게 말합니다.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에 항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스템의 내구성과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스템 자체를 흐름에 맡기는 것이다. 변화란 어쩌면 이런 것 아닐까요. 질서는 유지되기 위해 끊임없이 파괴되지 않으면 안 된다. 4) 여기 질서/파괴와 관련된 또 하나의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편지를 주고받았던 2015년 10월, 저는 고다르가 남가주 대학에서 토론 중 한 말을 인용하며 편지의 끝을 맺었습니다. 2015년 10월 31일이 보낸 편지였지요. 그리고 7년이 지난 2021년 10월 30일, 정연씨와 저는 강릉영화제에서 “한국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사람들”을 주제로 토크를 할 예정이지요. 정연씨가 보내온 대본 초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더군요. 지돈: 그러나 사람들은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오지 않나요? 정연: 그런 점을 바꾸고 싶다. 나는 사람들이 다른 영화들을 보러 올 때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우리 에세이-필름을 보러 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바뀌어야한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무대를 가로지르며) 그것은 단지 영화를 만드는 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지돈: 관객을 바꾸려고 한다는 말이에요?! 정연: (관객을 바라보며) 세계를 바꾸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 5) 저는 정연씨의 이 대본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과거에 우리가 나눈 원고-편지에 대한 단순한 패러디인지 진의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저희에게는 몇 가지 논쟁점이 더 있지요. 정연씨는 최근 홍상수의 영화에 빠졌고 21세기 한국영화는 홍상수다 , 라고 주장하는 꿈을 종종 꾸기도 합니다. 저로 말할 거 같으면,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홍상수(또는 김기덕)이며 그를 생각할 때면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해집니다. 제가 한국 영화로 진입한 첫번째 입구였던 봉준호와 박찬욱이 지금까지 든든한 이정표가 되었다면 아마 저는 길을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자리를 보며 길을 찾을 수 있는 시대의 사람이 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어떤 별은 너무 환하게 불타 쳐다 볼 수 없을 정도고 어떤 별은 블랙홀에 흡수됐으며 어떤 별은 낙하해서 코앞을 스쳐지나기도 합니다. 길을 알려주기는커녕 우리의 행성을 박살내려는 양 말입니다. 바로 그것이 홍상수고 그러므로 저와 정연씨가 10월 말에 강릉에 가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강릉이 어떤 장소인지 기억하시나요? < 강원도의 힘 >이 20세기 영화라는 이유로 우리의 에세이 필름에서 제외하려는 생각은 하지 마시길. < 밤의 해변에서 혼자 >에도 강릉이 나오니까요. 저는 정연씨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스트리밍 사이트에 있는 모든 홍상수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에서 송선미 분이 김민희 분에게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을 설명하네요. “꼭 읽을 책을 사. 그래서 그 책을 깊이 만나. 정말 싸우듯이 그렇게 만나야 돼, 책하고.” 알겠죠, 정연씨? 꼭 읽을 책을 사세요. 샀던 책은 그만 사시구요. 2021년 10월 24일 정연씨에게 어제 정연씨와 리들리 스콧의 신작 < 라스트 듀얼 > GV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은 쓸쓸하기만 했습니다. 가을이라서 그런 걸까요? 지나치게 일찍 찾아온 추위 때문에 온몸이 떨려서 그런 걸까요? 저는 오늘 검색을 통해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좋은 작품에 비해 GV는 좀 아쉽더군요. 오른쪽에 계신 작가님이 이야기를 벌여놓으면 왼쪽에 계신 평론가님이 수습하고 정리하는 진행이 다소 매끄럽지 않아 그렇지 전 꽤 유익하고 좋았습니다!! - 네영카 및 익스트림 무비 자유게시판에서 발췌 보시다시피 정연씨가 또 한번 저를 구원했습니다. 정연씨가 아니었다면 GV는 수렁에 빠졌을 게 분명합니다. 저희가 처음했던 GV 기억하시나요? 빔 벤더스의 영화 < 에브리띵 윌 비 파인 >이었죠. 저희의 GV는 어느 네티즌에 의해 “올해 최악의 GV”로 선정되었습니다. 이후 더 이상의 GV 섭외는 없었죠(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영화 관계자 분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저희는 운좋게 GV 계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정연씨는 과거의 오욕을 극복하고 이동진-되기를 달성한 것처럼 보입니다. 흔들림 없는 눈빛과 감미로운 목소리, 아담 드라이버의 잘생김 연기와 리들리 스콧의 의사-페미니즘에 대한 시의적절한 논평… 거리두기로 인해 구 아이맥스 관이었던 용산 CGV 4관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접한 정연씨의 모습은 새로운 평론가의 탄생을 보는 듯했다고, 어느 관객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또 한번 놀라운 우연의 일치가 있습니다. 2015년 10월을 가로질렀던 저희의 편지에 리들리 스콧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오늘과 같은 날인 10월 24일, 제가 정연씨에게 보내는 편지에 말입니다. 저는 < 마션 >을 보고 난 뒤 이렇게 씁니다. <마션>을 보니 리들리 스콧은 하수라는 저의 심증이 확증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는 쓸개 빠진 곰처럼 굴더군요. 꼬리를 흔드는 곰이란! 과거란 대체 무엇인가요. 정연씨. GV에서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제 마음 속에 울리는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일어난 일은 언제나 지금도 일어납니다. 그 일치가 너무 놀라워서 손에 쥔 상상 속의 펜을 바닥에 떨어뜨릴 지경입니다. 아무래도 편지 따위를 쓰지 말았어야 했나 봅니다. 자기 자신한테서 벗어나질 못하니 말입니다. 사실 저는 편지를 혐오합니다. 과거의 편지에서도 내내 투덜대더군요. 편지는 21세기 최대의 가식이다, 편지를 쓰느니 돼지를 잡겠다…(이건 앨프레드 테니슨의 말입니다). 그러나 가끔 편지가 위대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유령작가 리 이스라엘의 예를 들겠습니다. 그녀는 1967년 캐서린 헵번과 스펜서 트레이시를 다룬 에스콰이어지 기사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비타협적이고 시니컬한 브룩클린 출신 유대계 레즈비언이었던 리 이스라엘은 이후 탈룰라 뱅크헤드와 도로시 킬갈렌 같은 여성들의 전기를 쓰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됩니다. 그러나 운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녀가 작업한 화장품 업계의 대부 에스티 로더의 책이 처참한 평가를 받게 되거든요. 그녀는 이후 긴 슬럼프와 가난, 정신적인 궁핍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런 리 이스라엘을 구한 건 편지였습니다. 1990년대 까지만해도 유명인들의 편지는 비싼 값에 거래되는 고서적 같은 물품이었습니다. 뉴욕의 서점들은 낡은 서랍에서 나온 편지를 구매하고 수집가들에게 되팔았지요. 리 이스라엘은 편지를 위조하기 시작했습니다. 빛바랜 종이와 오래된 타자기를 사용해 작가나 코미디언, 배우의 문체를 흉내낸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의 끝에 어설프게 위조한 서명만 하면 작업 끝! 아무도 그녀의 위조 편지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뿐이었죠. “도로시 파커는 역시 너무 유머러스해! 그녀의 성격이 편지에 묻어나네요.” 그러나 결국 리 이스라엘의 사기 행각은 FBI에게 적발됩니다. 리 이스라엘은 죽는 날까지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서전을 썼고 그 이야기는 영화화가 되었지요. 자서전과 영화 모두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생생히 울립니다. 편지는 내 최고 걸작이고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리 이스라엘의 편지 쓰기를 로지 브라이도티의 “변신: 되기”의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저는 리 이스라엘이 도로시 파커나 헤밍웨이, 노엘 카워드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편지가 되었지요. 이른바 편지-되기. 그리고 그녀의 편지는 수신자에게 배달되지 않습니다. 편지 속의 수신자는 처음부터 위조된, 가짜 수신자일 뿐이지요. 진짜 수신자는 익명의 군중이며 이 편지는 시작부터 오배의 가능성 위에서 쓰였습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존재론적, 우편적>에서 썼지요. “’유령’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모든 시니피앙에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확률적 오배가능성, 오배될 가능성(약속)과 오배되었을지 모르는 가능성의 조합에 다름아니다.” 6) 리 이스라엘이 고스트라이터였다는 사실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요? 제가 한국영화와 아무런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에세이 필름과도 관련이 없구요. 그러나 저는 여기서 아주 간명한 하나의 방법을 배웁니다. 우리가 한국 영화의 얼굴과 언어와 불화하면서도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면, “나”를 대체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에는 로지 브라이도티를 인용할 차례입니다. 되기들은 외부의 다른 타자들과 끊임없이 마주치면서, 주체를 그 자신의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비통일적 실재로서의 유목 주체는 자기 추진적인 동시에 이질적으로 정의되거나 외부를 향한다. 모든 되기는 소수자로, 다시 말해 그들은 필연적으로 그리고 필수적으로 고전적인 이원론의 ‘타자들’ 방향으로 움직인다. 즉, 그 과정에서 이 타자들을 대체하고 재영토화하지만 항상 일시적인 기준으로만 그렇게 한다. 7) 김홍준의 < 나의 한국 영화 >를 보라고 했던 제 말을 기억하시나요? 임재철 평론가는 폴 발레리가 “비평이 대상에 대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 인식한 사람이라고 말했지요. 우리의 에세이 필름은 더 나아가야 합니다. 나와 자기 자신 너머로, 포스트-미Post-Me, 포스트-(내)얼굴… 임재철 평론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떠오르네요. “금정연은 영화 감독을 해야돼. 근데 마스크를 써. 얼굴을 가려. 너무 착해보이잖아.” 부디 무사히 강릉에서 뵙길 바라며. *** 1) <작가의 편지>(마이클 버드, 올랜도 버드, 황종민 옮길, 예술문화, 2021) 2) "How a mythical Hollywood hotel inspired Jarvis Cocker's and Chilly Gonzales' project about the magic of cinema", <Loud and Quiet> 3) " 연속영화와 연쇄극, 극영화의 등장 ", 정종화, KMDb 4) <생물과 무생물 사이>(후쿠오카 신이치, 김소연 옮김, 은행나무, 2008) 5) <고다르 X 고다르>(데이비드 스테릿 엮음, 박시찬 옮김, 이모션북스, 2010) 6) <존재론적 우편적>(아즈마 히로키,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2015) 7) <변신: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로지 브라이도티, 김은주 옮김, 꿈꾼문고, 2020)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20대 때 아르바이트를 했던 카페의 매니저는 < 타짜 >의 모든 대사를 외우고 있었다. 디자이너로 일하다 카페 창업의 꿈을 품고 매니저가 된 지 1년, 쥐콩만한 월급을 받으며 하루 12시간씩 일했고 마감 후에는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고 컵라면을 먹었다. 나도 종종 그와 함께 했다. 그는 스니커즈 수집이 취미였고 옷을 잘 입었으며 한번도 험한 말을 하거나 알바생을 괴롭히지 않았다. 그가 험한 말을 할 때는 오로지 <타짜>의 대사를 따라 할 때 뿐이었다.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잘난 놈 제끼고 못난 놈 보내고.. 안경잽이같이 배신하는 새끼들 다 죽였다... 고니야? 담배하나 찔러봐라. 한창 유럽산 예술 영화에 빠져 있던 나에게 <타짜>는 그저 그런 영화였다. 영화계는 < 범죄의 재구성 >이 개봉했을 때 이미 천만감독이 될 최동훈의 잠재력을 알아봤지만 나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고 간혹 <리피피> 같은 영화가 레퍼런스로 언급되면 줄스 다신의 영화를 찾아봐야겠군! 하고 중얼거리며 서치를 했다. 그러다 줄스 다신이 훗날 그리스의 문화부 장관이 되는 배우 멜리나 메르쿠리와 결혼했다는 사실과 그녀가 그리스의 파시스트들과 싸운 용기 있는 배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결국 줄스 다신과 멜리나 메르쿠리가 함께한 영화 < 일요일은 참으세요 >에 이르게 되는 이상한 경로를 밟을 뿐이었다. 매니저가 <타짜>에서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는 “호구”로 간혹 예림이! 예림이! 내가 잘못했어 내가 나쁜놈이야 같은 대사를 중얼거리기도 했다. 나는 “호구” 캐릭터에 대한 그의 애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20대 내내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만나본 최고의 매니저였고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로 남아있지만(그가 어디선가 이 글을 읽기를) 당시에는 왜 이렇게 <타짜>를 좋아할까?? 뭐가 그리 좋지?? 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웬걸, <타짜>는 개봉 당시의 히트를 넘어 21세기 한국 영화의 새로운 고전으로 등극했고 수많은 밈을 낳았으며 거의 모든 캐릭터가 재생산됐다. 그러니까 금정연이 박무석이 어쩌고 저쩌고 했을 때 나는 매니저가 떠올랐고 2008년 즈음 편의점에서 캔맥주와 컵라면을 먹던 시절이 떠오른 것이다. 비록 우리는 망원동의 카페 테라스에 앉아 아메리카노와 휘낭시에를 먹고 있지만 말이다(솔직히 말하면 나는 박무석이 누군지 몰랐다. 아마 박무석을 아느냐 알지 못하냐에 따라 한국 영화-문화에 대한 친숙도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를 K-man지수K-man factor라고 부르자. 당신이 만약 박무석을 알고 박무석이 부른 노래 제목까지 안다면 당신은…). 그렇죠, 지돈씨. 금정연은 이주 전 일산으로 이사했고 훨씬 쾌적한 환경에서 육아와 집필을 하게 되었다며, 결국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시네마의 실행Exercise”라고 했다. 크리스티앙 메츠는 말했죠. 나의 목표는 시네마의 실행이 폭넓은 인류학적 형상들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통과하는,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일련의 경로들을 지적하는 것이다. 오….. 메츠의 이론적 논의에서는 시네마 장치의 정신분석학적 구성이 중요하지만, 우리는 그 부분은 우선 제쳐두기로 했다(어쩌면 영원히 제쳐둘지도…). 우리가 만들 오버디터미네이션 에세이 필름overdetermination essay film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 사람들>에서 중요한 건 “인류학적 형상들”이라는 말이며 우리의 목적은 21세기 한국 영화가 포착하고 실행되어 루핑 작용을 일으킨 계기들을 탐색하여 상상적 테크닉으로서의 인류학 장치인 한국 영화를 수행하는 거라고, 금정연은 말했다. 뭐라고요? 이제부터 저를 K정연이라고 불러주세요. 금정연은 Keum정연이고, 그러니까 K정연… 나는 정연 K.가 맞는 거 아닌가 잠깐 생각했지만 나름 생각이 있겠지.. YS나 DJ처럼 JY로 불러 달라고 하지 않는 게 어디냐고 생각했다. 동시에 20대 중반 일했던 (또 다른) 카페의 사장이 나를 JD라고 불렀던 게 떠올랐고 최근에 지인과 나눴던 대화도 떠올랐다. 지인은 봉준호의 이름이 준호라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냐고 말했다. 친구들은 준호라고 부르겠지? 아니, 친구들도 봉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근데 그게 중요해? 이게 무슨 대화야? 우리는 잠시 의문에 빠졌지만 지인은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이번 씨네21에서 뽑은 2010년에서 2020년 영화 베스트10에서 통합 1위를 먹은 영화가 < 기생충 >이야. 그 사실을 기억해. 음……(무슨 상관?) 하지만 호칭은 언제나 중요한 문제다. 특히 영화의 이름에 관한 문제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왜 영화를 무비라고 했다가 시네마라고 했다가 픽쳐라고 했다가 필름이라고 하는가. 하물며 지금은 필름으로 찍지도 않는데! 넷플릭스의 토크 프로그램 <사인펠드와 함께 커피 드라이브>에서 사인펠드와 윌 패럴은 이 문제에 대해 간단히 정의 내린다. (<커피 드라이브>는 억만장자 코미디언인 사인펠드가 고급 클래식카를 타고 명사들을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으로 버락 오바마도 출연했다. 심지어 재임 중에. 세계에는 제정신이 아닌 지도자가 너무 많다: 미국의 지도자 오바마 왈). 사인펠드 : 이 단어들이 얼마나 가식적인지 순위를 매겨봐요. ‘필름’, ‘픽쳐’, ‘무비’ 패럴 : 가장 가식적인 단어는 픽쳐예요. It’s a wonderful Picture. 사인펠드 : 아주 의식적으로 멋있는 척 하는 것 같아요. 패럴 : 두 번째는 필름이요. 무비가 확실히 덜 가식적이에요. 사인펠드 : 무비, 필름, 픽쳐에 나오는 사람들은 왜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할까요? 패럴 : 몰라요… 그래도 저는 영화가 너무 좋아요…. 존 포드는 자신의 영화를 절대 film이나 movie라고 하지 않았어요. K정연이 말했다. 항상 picture라고 했지요.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사람들이 cinema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K정연이 콩고물 휘낭시에를 한입 잘라먹으며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네마를 해야합니다. 비록 제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10 중에 <스탭 브라더스>가 있지만 말이에요. * 참고. 윌 패럴이 주인공을 맡은 <스탭 브라더스>는 이혼 가정의 두 백인 극우파 망나니가 중산층 속물 좌파로 개종하는 과정을 그린 유사 가족 로맨스로 지금은 주류 좌파 감독으로 변신한 아담 맥케이가 연출했다. 혹시 영화가 궁금한 사람은 보지 마시길… 시네마를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일반적으로 시네마는 극장과 영화 산업 전반을 모두 아우르는 용어로 정의된다. 가끔 무비와 차별되는 예술 영화를 지칭하는 어휘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시네마는 그게 아니었고 특히 21세기 한국 영화로 시네마를 수행한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전후 일본에서 활동한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인 하시모토 시노부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복안의 영상> 시작을 일본 최초의 영화주제가 “도쿄행진곡”(1929)으로 시작한다. 시네마를 보시겠습니까, 차를 마시겠습니까. 차라리 오다큐선을 타고 도망가시겠습니까. 변해 가는 신주쿠… <도쿄행진곡>은 기쿠치 간의 장편 소설을 미조구치 겐지가 감독한 것으로(기쿠치 간은 아쿠타가와 상과 나오키 상을 제정한 사람이다), 주제곡의 가사는 프랑스 유학파 출신 상징 시인 사이조 야소가 작사했다. 시네마가 나오는 구절의 가사는 원래 “장발의 마르크스 보이 / 오늘도 붉은 사랑을 안고”였으나 검열을 두려워한 레코드 회사의 요청으로 바꿨다고 한다. 마르크스를 시네마가 대체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약하자면) 시네마는 단순히 영화 한 편이 아니라 삶의 문제다. 시네마를 하는 것, 시네마를 하지 않는 것 모두 생활을 새롭게 조직한다. 정연씨가 < 나랏말싸미 > 대본을 쓴 것처럼요? K정연의 표정이 잠깐 어두워졌다. 지돈씨, 지돈씨는 그 영화 안 봤잖아요. 어떻게 안 볼 수가 있죠? 내가 그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은 건 사실이다. 정연씨에게 여러 번 얘기했지만 마음이 아파 볼 수가 없었다. 왜 마음이 아프냐고? 그건 <나랏말싸미> 네이버 평점을 확인하면 알 수 있다… 아무튼 나는 얼마 전 왓챠로 <나랏말싸미>를 봤고 정연씨에게 당당히 얘기할 수 있었다. <나랏말싸미>는… 한국 영화입니다. 조선 시대가 배경이지만 노래하는 장면도 있고 목욕 장면도 있고. K정연은 잊고 있었다는 듯 중얼거렸다. 송강호가 말하죠.. 아픕니다. 아파요… 그 씬 쓰면서 아저씨들이 참 좋아했는데… 우리는 성산초등학교에서 망원 유수지에 이르는 골목을 산책하며 한국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의 곤혹스러움에 대해 대화했고 - K정연은 익명의 트윗을 인용했다 “모든 씨네필은 자국 영화를 싫어한다, 미국의 씨네필만 빼고” – 제3세계의 씨네필들은 결국 자국 영화를 발견할 유무형의 의무 또는 압박을 느낀다, 문학이나 미술이 그렇듯 로컬의 역사와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으면 세계 시장에서 먹힐 수 없기 때문에, 또는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거나 기반이 사라진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다, 따위의 이야기를 나눴다. 산책이 마지막에 이르렀을즈음, 우리는 우연히 ㅁㅈ출판사의 편집자 h와 마주쳤다. 종종 소식을 주고받는 분으로 감동을 주는 책의 편집자이자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거리에 서서 출간될 책들과 – 알렉산더 클루게, 스베틀라나 보임,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등등 두근거리는 이름들이 언급됐고 – 사소한 근황을 주고받았다. 두 분은 요즘 뭐하세요? 영상자료원에서 연재를 시작했어요. 아, 그러고보니.. 편집자 h가 말했다. 영화평론가 임재철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순간 K정연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말씀을? 편집자 h에 따르면 최근 임재철 선생님은 서교동과 망원동 일대에 출몰하며 지식을 전파 중이었고 K정연도 잠시나마 숙주가 된 적이 있었다. 나도 한번에 불과하지만 임선생님이 주관한 영화 상영회에서 K정연과 함께 장 피에르 고랭의 <Routine Pleasures>를 봤다. 영화가 끝나고 임선생님은 고랭과 아녜스 바르다, 자크 드미에 대한 차마 여기 적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임 선생님이 언젠가 정연씨를 만난 다음 날 저한테 전화를 걸어 정연씨 얘기를 했어요. 편집자 h가 말했다. 같이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금정연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어쩌면 금정연이 자기 후계자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던가…아닌가… 편집자 h와 헤어지고 난 뒤 나는 K정연에게 물었다. 정연씨 대체 임재철 쌤과 무슨 얘기를 나눈 거예요? K정연이 말했다. 지돈씨.. 그건… (다음회에 어쩌면 계속…) *참고도서 『복안의 영상』(하시모토 시노부, 강태웅 옮김, 소화, 2012) 『존 포드』(태그 갤러거, 안건형, 신범식 옮김, 이모션북스, 2018) 『영화에 관한 질문들』(스티븐 히스, 김소연 옮김, 울력, 2003)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