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ing on the Ground
- 감독
- 변금윤
- 제작년도
- 2005
< 꼬방동네 사람들 >은 1982년 5월 개봉하여 1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당해 흥행 4위에 오른 1) , 배창호 감독의 데뷔작이다. 이 영화는 < 바람 불어 좋은 날 >( 이장호 , 1980)에서 시작하여 < 우묵배미의 사랑 >( 장선우 , 1990)에 이르는, 노동자 개념으로 포괄되지 않는 소외계층을 포착한 1980년대 영화의 계보에 놓인다. (2) 그리고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이원세 , 1981), < 어둠의 자식들 >(이장호, 1981)과 함께 1980년대 초 도시 빈민을 다룬 ‘사회물’ 또는 ‘리얼리즘’의 대표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 영화가 제작된 1980년대 초는 시민의 피를 밟고 집권한 신군부 정권이 민심을 달래기 위해 그 동안 규제되어 왔던 컬러TV방송을 허가하고, 스포츠와 문화 육성을 표방하는 등 선심성 정책을 편 시기다. 1970년대에 텔레비전 드라마 시대가 열리면서 불황에 빠진 영화산업은 컬러TV방송으로 인해 한층 더 수심이 깊어졌다. 그럼에도 분명히 1970년대와는 다른 시대의 기운이 저류하고 있었고, 박정희 정권기의 영화 검열 제도가 온존하는 가운데서도 영화계는 돌파구를 모색한다. 이때, 1960년대 중반 이후 이중검열 속에서, 용공 또는 외국에 보이기 부끄럽다는 이유로 금기시되었던 ‘가난’이 적극적으로 재현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76년부터 발이 묶였다가 4년 만에 활동을 재개하게 된 이장호 감독이 <바람 불어 좋은 날>과 <어둠의 자식들>로 그러한 작업을 시작했다. 배창호는 바로 이 두 영화의 조감독이었고, <어둠의 자식들>의 원안자였던 이동철(본명 이철용)이 <꼬방동네 사람들>의 원작자이기도 했다. 1970년대 수기 붐에 이어 1980년대 초에는 도시 빈민의 삶이 그 계층 출신의 생생한 증언으로 서술되는 책이 주목을 받는다. 1980년에 이동철이 구술하고 황석영이 정리하여 출판한 『어둠의 자식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이듬해에는 아예 이동철 작(作)으로 『꼬방동네 사람들』이 출간되는데 또 베스트셀러가 된다. 여세를 몰아 1982년에는 『오과부』가 출간되었고, 이는 < 과부춤 >(이장호, 1983)의 원작이 되었다. 정리하자면 그때까지 들을 수 없었던 목소리에 대중이 귀기울이고, 영화가 그것을 재현하는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당당하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짧은 시대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원작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검은 장갑」을 각색한 것이다. ‘검은 장갑’은 손에 흉터가 있어서 검은 장갑을 끼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명숙이라는 기구한 여자의 이야기다. 원작에서는 어쩌다 보니 ‘두 서방’을 갖게 된 이 여자의 사연을 담담하고 간결하게 서술한다. 영화에서는 원작의 여러 일화 중 이 스토리를 전경화시켜 꼬방동네 사람들의 모습이 후경에 펼쳐지는 가운데 주인공 명숙이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멜로드라마로 장편화했다. 명숙( 김보연 )은 십대에 김주석( 안성기 )이라는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그가 일반적인 회사원인 줄 알고 결혼했는데 알고 보니 소매치기였다. 주석은 소매치기를 하다 체포되어 구속되고 명숙은 임신한 몸으로 그를 기다린다. 그러나 전과자라는 이유로 무고하게 수감되기도 하고,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홧김에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도 하면서 주석의 전과가 느는 동안 명숙은 지쳐간다. 그리고 주석이 감옥에 있을 때 어린 아들을 데리고 떠난다. 그 후 꼬방동네에 자리 잡은 명숙은 강태섭( 김희라 )이라는 건달을 만나 살림을 차리고 반찬가게를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출감 후에 택시운전사가 된 주석이 우연히 명숙을 발견하여 찾아온다. 그는 명숙에게 함께 떠나자고 하고 안 된다면 아들만이라도 달라고 조른다. 태섭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명숙을 가운데 둔 두 남자의 갈등이 격화한다. 결국 태섭이 과거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자수하러 가는 길에 주석을 찾아가 명숙을 부탁하는 것으로 갈등은 봉합된다. 혈연과 가부장 질서에 순응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귀결되는 것은 당시 대중들이 기대하는 무난한 결말이었을 것이며 멜로드라마의 전형적인 해결방식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이러한 결말이 영화에 시종일관 흐르는 민중 신학의 가르침과 맞물리며 도덕성을 확보한다. 태섭에게 살인죄를 부과하여 자수하게 하는 것이나 주석이 아버지로서의 자격을 갖춘 인물로 묘사되는 것은 원작에는 없던 설정이다. 여기에는 이미 각색자의 윤리적 판단이 전제되어 있으며 결말이 예비된다. 명숙은 주석과 재결합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문제가 되는 것은 태섭의 속죄 여부다. 태섭이 끝까지 악인으로 남아 체포되어 간다고 해도 멜로드라마의 결말로서는 안 될 게 없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를 속죄케 하고 공소시효가 이틀 남은 시점에서 자수하게 만든다. 이는 마지막에 길게 삽입되는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병든 자들이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라는 공목사( 송재호 )의 설교에 맞닿는 것이다. 공목사가 설교하는 가운데 술에 절어 살던 ‘길자’( 김형자 )가 개과천선하여 흰옷을 갈아입고 나타나는 것 또한 태섭의 행동과 동궤에 놓인다. 다시 말해 이 영화의 멜로드라마적 비계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빈민 계층을 연민과 계도의 관점에서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조응한다. 한국영화사에서 이러한 낭만적인 도덕성이 눈에 띄게 부상했던 시기는 두 번 있었는데 하나는 1960년대 초였고, 다른 하나는 1980년대 초였다. 전자의 경우 근대적 가부장 질서와 손잡으며 공권력의 강화로 이어졌다면, 후자에서는 민주적 저항운동의 단초가 되었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1980년대 초 그러한 영화들 중에서 가장 따뜻하고 화해로운 이상을 품었던 영화였다. 현재의 관점에서 진부하게 다가올 수도 있는 이상적 가치나 도덕성이 이 영화에서 여전히 빛날 수 있는 것은 소외계층의 활력을 통해 그것을 구현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놓인 인물이 바로 명숙이다. 당시 일반적인 멜로드라마의 주인공과 달리 명숙은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게 주동적으로 행동한다. 그녀는 주석이 소매치기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도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꿋꿋이 그를 기다린다. 그러다 옥바라지가 힘겨워지자 주석을 찾아가 사랑하지만 지쳤다며 떠나겠다고 당당히 말한다. 명숙이 주석에게 이별을 통보한 날 김영동의 ‘조각배’가 깔리는 가운데 아이를 들쳐 업고 황량한 길을 걸어가는 장면은 참으로 절절하다. 그러한 정서를 유발하는 것은 우선 명숙의 신산한 처지에 기인하나, 그것이 보다 핍진한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까닭은 그녀 행동에 배어있는 주체적 배려와 진정성에 있다. 결말부에 이르면 그녀의 이러한 성격이 더욱 오롯하게 드러나며 영화의 압권을 이룬다. 그녀는 아이의 양육권을 주장하는 주석에게 일갈한다. “정말 당신네 남자들 왜 이러는 거예요? 내 아일 가지고 무슨 권리로 당신네 마음대로 하는 거예요?”라고. 그리고 태섭에 의해 남편을 잃고 ‘팔자가 꼬여’ 아비가 다른 네 명의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된 여인에게 명숙은 반찬가게 판 돈을 내어준다. 일견 명숙이 태섭을 대신해 속죄하는 듯하지만 결코 관습적인 속죄양으로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그녀의 행동은 소외계층의 연대이자 여성의 연대로까지 의미화될 만한 결단으로 다가오는데, 이는 이 영화가 당시 다른 영화들과 변별되는 지점이다. 아울러 이 영화에 특별출연한 공옥진 씨의 역할 또한 주목을 요한다. 공옥진 씨의 춤과 노래는 사람을 모이게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줌으로써 공동체의 활력을 추동한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녀는 마을의 소문을 실어 나르고 사건에 결정적인 계기를 만드는 ‘짹짹이 아줌마’를 연기하여 영화 서사에도 활력을 부여한다. 모자라 보이고, 주책없으며, 오지랖 넓어서 갈등을 조장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그녀의 모습은 이 영화가 재현하고자 했던 소외계층의 표상이다. 가난과 빈민이 카메라의 중심에 놓이는 일은 빈민운동이 조직화되는 1987년 이후에는 오히려 점차 사라져 간다. 서울의 판자촌이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들어서고, 성매매 업소들이 폐업되어 주변으로 밀려나면서 상업적 극영화에서는 그러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실제로 빈민의 모습은 아파트가 숲을 이루는 도시에서 은닉되며 대중의 눈에서 멀어져 가기도 했다. 또한 ‘민중의 시대’가 저물고 전 세계적 자본주의화로 치달으면서 대중이 ‘가난’을 보고 싶어 하지 않게 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제 행정적 검열이 아닌 자본의 검열이 도시 빈민의 재현을 배제하게 된다. 이후 그들을 포착하고 문제 삼는 일은 다큐멘터리가 주로 담당해왔다. < 상계동 올림픽 >( 김동원 , 1988)부터 < 공동정범 >( 김일란 · 이혁상 , 2016)에 이르는 역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1) 「통계로 본 올해의 영화가」, 『동아일보』, 1982.12.15.,12면. 2) 이용철, 「꼬방동네 사람들」, 한국영상자료원 편, 『한국영화 100선』, 한국영상자료원, 2015, 138-139면. 3) 「‘꼬방동네 사람들’, 전국서점 현지조사 베스트셀러 1위」, 『경향신문』, 1981.9.24.,12면. >> 꼬방동네 사람들 VOD 보러가기 <<
1980년대 초중반 한국영화계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다. 국가의 학살을 시민의 항쟁으로 맞섰지만 그 결과는 한국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공수부대원들이 자행한 학살의 이미지는 ‘한국전쟁’의 참혹한 현장과 겹쳐지는, 아니 이를 훨씬 능가하는 잔인함으로 기억되었다. 박정희의 18년 체제가 무너진 그 자리, 다시 쿠데타로 들어선 신군부가 바로 그 배후였다. 곧이어 그들은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을 날조해 국민을 우롱했다. 한국의 극우 독재체제는 이렇게 연장되었다. 한국사회의 1980년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좌절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80년대 전반 영화계는 1970년대의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유신 정권이 구축한 통제 정책이 승계되었고, 한국영화는 외화 수입쿼터의 대체물로 취급받았다. 당국은 한국영화 제작편수를 100편 내외로 설정하고, 등록된 20개의 제작사가 각 4편 이상을 의무적으로 채우도록 했다(1981년도 영화시책 기준). 그리고 2편 이상의 ‘우수영화’를 제작할 때마다 또는 대종상에서 최우수·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면 외화 수입쿼터 1편을 부여했다. 1980년부터 1984년까지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91, 87, 97, 91, 81편으로 100편을 넘기지 못했다. 1980년대는 단관 개봉으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영화문화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 시점이다. 1980년 12월부터 방영된 컬러 방송으로 컬러TV가 빠르게 보급되었고, 비디오 매체의 인기가 극장 흥행을 잠식해갔다. 1984년 VTR 보급 대수가 50만 대를 넘었다는 기록에서 볼 수 있듯 1980년대는 ‘안방극장’이 제대로 힘을 받기 시작한 때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그랬듯, 한국의 극장가 역시 대형영화와 저예산영화로 생존책을 모색했다. 전자는 70mm 외화의 리바이벌 상영, 후자는 괴기·무협·코미디 장르였다.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우울했던 시기, 임권택은 가장 잘나가는 감독 중 한 명이었다. 1970년대의 그는, 제작자에게는 우수영화를 안겨주는, 영화진흥공사에는 국책영화를 척척 만들어주는 감독이었다. 여러 영화학자에 의해 한국 ‘분단영화’의 기원으로 평가 받는 < 짝코 > 역시 기획의 외관상으로는 당국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반공영화였다. 이는 1980년 관제 영화제인 19회 대종상에서 우수반공영화상을 받았고, 1981년 20회 대종상에서 반공영화부문 특별상을 재차 받은 것으로 증명된다. 제20회 대종상영화제부터 우수반공영화상을 특별부문으로 변경해, 최우수반공영화상에도 외화 수입쿼터 1편을 부여하기로 했는데, < 짝코 >는 1981년에야 상영되는 바람에 그 첫 수상작이 되었다. 한국영화의 개봉 여부는 관심도 없던 시기였다. 정치사회적 혼란과 한국영화의 불황이 극에 달한 이때, 임권택 감독과 송길한 작가는 왜 <짝코>를 만들려고 했을까. 실제 영화는 어떤 계기로 기획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을까. 직업 감독에서 작가주의 감독으로 1934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임권택 은 어린 시절 부친과 삼촌의 좌익 활동으로 그 역시 고초를 겪었다. 중학교 1학년 때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중3 때 집을 떠나 부산에서 군화 장사를 했다고 한다. 1956년 정창화 감독의 도제로 영화계에 입문, 20대 후반인 1962년 < 두만강아 잘 있거라 >로 감독 데뷔해 주로 사극과 액션, 전쟁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많을 때는 한 해 7~8편을 만드는 직업 감독으로 다작의 시기를 거쳤다. 그가 장르영화의 대가로 완성된 시기일 것이다. 영화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작품은 52번째 연출작 < 잡초 >(1973)다. 이 작품을 계기로 작가적 자의식을 영화에 투영하기 시작했다. 정성일 평론가와 인터뷰하면서 그가 한 말을 옮기면 “< 잡초 >가 내 삶에 애정을 갖기 시작한 영화라면, < 왕십리 >(1976)는 내 살고 있는 땅을 사랑하기 시작한 영화”다. 1970년대 중반 한국영화계는 이장호 , 하길종 등 ‘영상시대’ 감독들이 새로운 한국영화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 시기 “이제부터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구석에 몰린 느낌”을 받았다던 임권택의 회고에서,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이냐라는 뼈아픈 고민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후 그는 < 족보 >(1978), < 짝코 >, < 만다라 >(1981), < 안개마을 >(1982), < 길소뜸 >(1985) 등 작가주의 감독 임권택으로 평가되는 일련의 작품을 내놓기 시작한다. 그의 삶이 반영된 한국적인 주제를 놓고 치열하게 ‘한국’영화를 찾아가던 시기인 것이다. < 서편제 >(1993)의 한국영화 사상 최초의 100만 흥행 성공, < 취화선 >(2002)의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 등으로 세계적인 감독 반열에 올랐다. 2015년 102번째 작품 < 화장 >을 연출했다. ‘반공영화’가 아닌 ‘분단영화’ 작가 송길한 과 임권택 이 < 짝코 >의 영화화를 위해 의기투합하게 된 이유는 바로 시대적 배경과 자기 성찰에 있었다. 그들이 이 영화의 기획에 착수한 때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좌절로 끝나고 신군부가 권력을 찬탈한 시점이다. ‘서울의 봄’의 대학생 시위대들이 그리고 광주의 시민들이 ‘빨갱이’로 둔갑되었다. 임권택에게 1980년은 “혼란기에 빠져든다고 해서 놀라기에는 너무 많은 혼란의 시대를 살아온” 자신을 반추할 수 있었던 때다. 그는 송길한 작가와 기존의 국책 반공영화를 벗어나고자 마음먹고, 좌익 빨치산의 이야기를 통해 좌우 이데올로기의 비극을 정면으로 다루고자 했다. 둘은 한 달 동안 여관방에 틀어박혀, 종군작가 김중희 의 단편소설을 거의 새로운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영화는 전투경찰 송기열( 최윤석 )과 빨치산 부대 대장 짝코( 김희라 )의 30년에 걸친 비극을 세련된 플래시백으로 오가며, 열강의 대리전이었던 한국전쟁이 어떻게 개인들을 파멸시키는지 보여준다. 송기열은 평생을 바쳐 짝코를 추적하지만 결국 둘은 오갈 데 없는 부랑아들이 모이는 갱생원에서 만나게 된다. 이미 노인이 된 둘의 비극은 갱생원에서도 계속된다. 송기열은 무장공비 이력의 죗값을 받게 하기 위해 짝코를 데리고 나가려 하고, 짝코는 수은을 먹여 송기열을 죽이려 한다. 영화 마지막, 결국 송기열은 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짝코와 함께 갱생원을 탈출한다. 하지만 이미 사회는 경찰들조차 무장공비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 임권택은 영화를 통해 송 경사와 짝코가 국가의 꼭두각시였고, 더 나아가 한국전쟁 시기 남한과 북한은 열강들의 장기알에 불과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시나리오와 영화 본편을 대상으로 한 두 번의 검열을 통해 그의 직접적인 발언은 삭제되었다. 바로 다음의 두 장면이다. 6·25 특집 TV 프로그램에서 패널로 출연한 한 미국인 교수가 한국전쟁이 열강들의 국지전 시험장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장면, 그리고 갱생원을 도망 나온 송기열과 짝코를 만난 경찰이 망실공비가 뭐냐고 물어보는 장면으로,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영화에는 검열의 흔적만 남아있다. 전자의 경우 TV에서 6·25 프로그램이 잠깐 나온 후 이를 본 짝코가 송기열에게 “저 사람들 말이 진짜라면 말이시… 나나 거그나 불쌍한 사람들이여”라고 말하는 장면만 남았고, 후자는 “망실공비?”라는 대사는 지워진 채 경찰의 입 모양만 남았다. 이는 “망실공비도 몰라”라며 송기열이 애처롭게 반응하는 대사에서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임권택은 흔적만 남기는 방식으로 검열에 순응했다. 하지만 영화의 본질적 메시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훗날 인터뷰에서 그는 이 대목의 아쉬움을 표했지만, 도리어 지금의 우리는 장르영화 그리고 국책영화로 단련된 그의 내공을 짐작하게 만든다. 앞서 언급한바,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두 해 연속 반공영화상을 휩쓸며 국책 반공영화로서 인정받았다. 개인의 비극을 쫓아가는 정교한 플래시백 영화는 송기열과 짝코의 장장 30년에 걸친 비극적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정교하게 구축된 플래시백을 활용한다. 어쩌면 < 짝코 >는 태생적으로 서구의 영화 문법인 플래시백이 한국영화만의 그것으로 훌륭하게 수용된 첫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김기영 의 < 이어도 >(1977)에서의 플래시백이, < 시민 케인 > (1941)와 < 라쇼몽 >(1950)의 그것에서 출발해 그만의 스타일로 뒤틀어진 것이라면, <짝코>의 플래시백은 고전적 의미에서 관객을 배려하면서도 임권택 이 하려는 이야기, 그리고 메시지와 훌륭하게 조응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크게 8번 정도 플래시백을 사용한다. 송길한과 임권택이 공들여 배치한 플래시백은, 송기열의 입장에서, 짝코의 입장에서, 때로는 송기열이 짝코를 초대해 함께 진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각자의 경험에서 이야기가 반복되며, 플래시백의 대미를 장식한다. 좌우익의 비극적 대립을 상징하는 두 인물의 이야기가 하나로 만나는 순간, 우리는 분단국가라는 현재를 상기해야만 할 것이다. 8번의 플래시백은 꼼꼼히 살펴볼 가치가 충분하다. 송기열은 갱생원에서 짝코를 발견했지만 그를 데리고 탈출할 형편이 아니다. 합숙소에서 연속극을 보던 송기열은 첫 번째 플래시백으로 들어간다. 전투경찰로 활약해 마을에서 인정받고 가정도 행복하던 시기다. 그날 밤 송기열은 짝코의 침상으로 가 두 번째 플래시백으로 이끈다. 송 경사가 짝코를 생포하지만 그를 놓치고 마는, 둘의 공통된 기억이다. 세 번째는 송기열을 죽이기 위해 거울 뒷면에서 수은을 긁어내는 짝코의 것이다. 지리산에서 수은 가루를 먹고 자살하려는 점순( 방희 )을 말린 뒤 송 경사에게 체포되기까지의 이야기다. 네 번째 플래시백은 다시 송기열의 것이다. 짝코의 고향집에서 그를 놓치고 불법 총기 소지로 경찰서에 잡혀갔다가, 지서장이 된 복만을 때리고 감옥까지 다녀온다. 불운은 연달아 닥친다고, 고향에 돌아오니 아들마저 죽었다. 다섯 번째 플래시백은 송기열이 짝코에게 자신을 파면한 상사에게 같이 가자고 말하는 장면에서 들어간다. 네 번째 회상의 앞 이야기로, 아내까지 자살하게 된 송기열의 비극에 짝코를 동참시킨 것이다. 합숙소의 장기자랑 장면, 짝코의 시점에서 여섯 번째 플래시백이 시작된다. 속초에서 그와 화숙( 김정란 )의 도화경이 마치 판소리 소리꾼의 ‘아니리’처럼 펼쳐진다. 이를 듣던 송기열의 시점에서 그가 화숙을 찾아간 뒷이야기가 일곱 번째 회상으로 펼쳐진다. 계속되는 장기자랑, 송기열은 다리가 부러지게 된 사연을 들려준다. 마지막 여덟 번째 플래시백이다. 그는 짝코가 탄 기차를 쫓다가 택시가 전복되어 다리마저 불구가 되었다. 이후 부랑아가 된 송기열은 여인숙에 들어갔다가, 옆방에서 쥐약을 먹고 자살하려는 짝코와 점순을 발견한다. 갱생원의 변소간에서 짝코가 송기열에게 그날 밤 점순의 안부를 물으며, 다시 짝코의 시점에서 여덟 번째 플래시백이 시작된다. 점순을 사창가에서 만나 둘이 자살하기까지의 이야기다. 이처럼 30년을 쫓고 도망친 둘의 이야기가 합쳐지며 영화는 마지막을 향한다. 짝코를 생포한 송 경사 “한국 사람이 아니고는 만들 수 없는 영화”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1」에서 정성일 의 평가처럼, < 짝코 >는 1980년대 이후 임권택 영화의 원형임에 분명하다. 그가 장르영화를 통해 축적한 스타일이 만들려는 주제, 하고 싶은 이야기에 걸맞게 활용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그간 갈고닦은 전쟁 신의 연출은 잠깐 등장해도 존재감과 만만치 않은 의미를 발산한다. 짝코와 임신한 점순이 토벌대의 총탄을 피해 도망가는 장면이 그렇다. 화면에 슬로모션이 걸리면서 등장하는 김영동 의 국악은 그 조합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개인의 비극을 더 넓은 차원으로 환기시키는 데 일조한다. 임권택이 “국악을 체계적으로 끌어안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영화부터다. 영화의 가장 마지막, 송기열과 짝코는 고향에 가기 위해 기차에 올라탄다. 과연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짝코는 숨을 거두고 송기열은 희미하게 웃는다. 사실 이 장면은 결국 그들이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육신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보여준다. 송기열은 아주 짧은 회상으로 아내와 아들과의 단란했던 시절을 떠올릴 뿐이다. 송길한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에는 이 장면이 호남선이 아닌 원주행 기차를 타고 아예 반대로 가는 것으로, 심의 대본에는 부산행 기차를 잘못 타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영화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다는 듯 시나리오의 정보를 배제한다. 점순과 짝코가 도망가는 장면에서 김영동의 국악이 흐른다. 1980년대 전반의 대표 장르 국풍 ’81을 위시로 전두환 군사정권은 섹스·스크린·스포츠로 국민을 우민화하는 ‘3S 정책’을 펼쳤다. 당연히 에로티시즘에 대해서는 검열이 느슨해졌고 기다렸다는 듯 1980년대를 장식하는 에로티시즘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1981년부터 등장한 소극장 그리고 대여용 비디오의 붐이 에로영화의 기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1982년 넉 달 동안의 장기상영으로 31만 관객을 동원한 < 애마부인 >은 1980년대 에로영화의 어떤 상징이 되었다. 성적 스펙터클의 수위는 점차 높아졌고, 에로 장르는 현대 도시를 배경으로 한 것뿐만 아니라 ‘토속에로’라는 별칭을 얻으며 시대극과도 결합했다. 에로영화 일변도의 피로감 때문이었을까. 그 반대편에는 다양한 결의 멜로드라마가 관객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할리우드 화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한국영화 특유의 ‘신파적’ 멜로드라마를 극복한, 어떤 의미에서는 멜로드라마라는 틀을 빌려 사회에 대해 발언하는 영화들이 그것이다. 이때 < 바람 불어 좋은 날 >( 이장호 , 1980)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배창호 가, 당대 관을 사로잡는 세련된 화법의 멜로드라마로 충무로의 성공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 (계속) 이 글은 < 내일 또 내일 >에서 이어진다. 그러므로 혹시 그 글을 놓쳤다면 먼저 읽어주기 바란다. 다시 한 번이라는 반복. 임권택 은 매우 부정확한 방법으로 반복을 반복하고 있다. (같은 말을 서로 다르게 두 번 사용했다는 것을 주목해주기 바란다) 핵심은 그게 전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환원이나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진화적 관점에서 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재현하는 데 실패했다고 여겨질 때, 심지어 어디선가 자기가 다룬 세계와 분리된 무언가가 거기 표현되기를 거부하고 멈추었을 때, 그것을 작동시키기 위해서 다시 한 번 건드리기 시작한다. 이미 나는 이 가정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나는 이 가정을 따분한 작가주의의 지루한 도식 안에서 다시 한 번 종합을 시도하기 위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럴 생각이었다면 (그저 간단하게 말해야 한다면) 성공적인 통과에 매달렸을 것이다. 내 질문은 반대의 자리에 놓여있다. 무엇이 무엇을 더하는가. 혹은 무엇에서 무엇을 덜 하는가. 아니, 이 정반대처럼 보이는 시도가 어떻게 동시에 일어나는가. 그때마다 임권택이 확장하려는 폭은 무엇인가. 이상하게도 거기에는 무언가 깨어난다기보다는 발생한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다음 그것을 육화시키려 하는 대신 어떤 정신적인 이미지라는 기호로 만들기 시작한다. 간단한 비교의 예. 거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쉬지 않고 걸어가고 있는데 < 만다라 >와 < 취화선 >이 보여주는 그 차이의 폭을 떠올려보라. 그런 다음 그 사이에 < 개벽 >을 놓으면 거의 삼항 관계가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약간의 우회. 영화에서 이미지는 단 하나의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매번의 영화, 매번의 시도 안에서 구별되는 순간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기서 무언가 보는 대신 어떻게 출몰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임권택은 영화 안에서 이미지가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건 처음부터 그러했다. < 두만강아 잘 있거라 >의 마지막 장면, 눈 위에서 펼쳐지는 전멸의 이미지에 대해서 나는 이미 길게 썼다. 물론 여기에는 불연속성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선이 가늘게, 종종 희미하게, 때로는 완전히 지워져 가면서, 그러다가 어느 순간 불쑥 나타나면서, 다시 이어진다. 누군가는 이걸 매번의 매듭으로 만들어 연결고리의 개념화를 시도하고 싶을지 모른다. 나는 그런 시도가 항상 실패할 것이라고 그저 무심코 조심스럽게 작은 목소리로 충고할 수밖에 없다. 임권택 영화 안에는 식별 불가능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순환이 맴돌고 있다. 때로는 작고 가끔은 크지만 그게 일종의 블랙홀처럼 건드리는 순간 마치 암흑처럼 여겨지기는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어떤 때는 임권택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놓은 블랙홀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망설이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 나는 < 티켓 >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방 마담 민지숙이 백치가 되어버렸을 때 그것을 느낀다. 그런 다음 이 선은 다시 약간의 진동, 혹은 회전을 만들면서 < 노는계집 창(娼) >에서 이어진다. 나는 언젠가 이 영화의 이상한, 정말 이상한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할 것이다. 물론 영화는 사유를 재현하는 예술이 아니다. 하지만 재현을 매개하는 방법을 놓치면 그 안에서 전개되는 표현의 양태에 대한 범주를 세워볼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걸 우리에게 가르쳐 준 영화는 고다르의 <영화사(들)>이다. 고다르는 영화의 역사 앞에서 악순환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나는 그걸 용기 있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 오염된 자식들 >( 임권택 , 1982) < 어둠의 자식들 >( 이장호 , 1981) 먼저 영화의 주변. < 오염된 자식들 >은 화천공사에서 이장호 의 < 어둠의 자식들 >이 성공을 거둔 다음 마치 연작(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속편)처럼 기획된 영화이다. 이장호는 처음에는 <어둠의 자식들>을 정말 일련의 연작처럼 찍을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빈민 철거촌에서 자란 이철용은 교육도 잘 받지 못했고 게다가 한쪽 다리도 불편한 신체장애였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가난과 말 그대로 ‘투쟁’하면서 진보적인 기독교 교회의 민중 신학을 접하면서 의식화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삶을 알리고자 이동철이라는 필명으로 (약간 자조적으로 자신을 ‘이똥철’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자신의 이웃들을 한사람씩 소개하는 <어둠의 자식들>을 썼고 이 책은 1980년대 사회과학에 피와 살을 나눠준 현장문학 중의 하나가 되었다. 아마도 이 소설은 중남미 트리니다드토바고의 작가 비디아다르 S 네이폴의 (1970년대 내내 ‘창작과 비평’과 ‘세계의 문학’에서 산발적으로 발췌 번역해서 소개해온) 작품 <미겔 스트리트>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 다음 이철용은 13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장호는 < 바람불어 좋은 날 >을 만든 다음 다시 한 번 더 깊이 도시 빈민의 구체적인 삶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다. 그때 소설 <어둠의 자식들>은 이장호에게 도시 빈민들의 뒷골목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이 영화의 조감독을 했던 배창호 는 < 꼬방동네 사람들 >로 첫 영화를 찍었다. 이장호는 <어둠의 자식들>을 만들면서 제목 뒤에 ‘첫 번째 이야기, 카수 영애’라고 붙였다. 물론 이 영화에 가수 지망생이었던 영애의 후일담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장호는 금방 이 이야기에 흥미를 잃었다. <어둠의 자식들> 두 번째 이야기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는 이 인조 카빈총 강도단 이종대와 문도석 사건을 각색한 <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를 만든 다음 다시 한 번 빈민촌 사람들을 다루긴 했지만 형식적인 실험영화에 가까운 < 과부춤 >과 < 바보선언 >에로 이끌렸다. 그리고 재빨리 다시 그 길을 중단하고 대중적인 사극영화 < 어우동 >과 거의 컬트적인 인기를 누린 만화를 영화로 옮긴 < 외인구단 >를 만들었다. 여기서 변덕스러운 목록을 멈추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자. 임권택 이 <오염된 자식들>을 만든 것은 그 사이의 어느 즈음이다. 이 영화는 유익서 의 원작 소설 「비를 타고 오른 망둥이」를 각색했으며 이동철 의 소설이나 이장호의 <어둠의 자식들>과 아무 관계가 없다. 구태여 둘 사이의 교집합을 찾아야 한다면 주연에 안성기 가 출연한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오염된 자식들>의) 병구와 (< 어둠의 자식들>의) 태봉 사이에는 아무 연관이 없다. 그러므로 이 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이 영화사의 기획이었는지 임권택의 제안이었는지 어리둥절하게 보인다. 만일 영화사의 기획이라면 이동철의 소설에서 이장호가 영화로 담지 않은 수많은 다른 에피소드를 다시 각색해서 제작했으면 되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어둠의 자식 2>라는 제목을 달면 되었을 것이다. 그때는 아직 임권택은 영화사에서 기획한 다음 제안하는 영화를 연출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 만다라 >를 찍은 ‘직후’에 만든 (국책) 전쟁영화 < 아벤고 공수군단 >으로 이어지는 목록. (그리고 만일 임권택이 연출을 내켜 하지 않았다면 그때 화천공사에는 많은 감독들이 있었다.) 반대로 임권택 감독은 내 질문을 간단하게 부정하면서 “화천공사 시절 내가 먼저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했던 소설은 <만다라>가 유일”하다고 대답했다. 그런데도 그때에는 누구라도 <오염된 자식들>은 <어둠의 자식들>을 연상할 수밖에 없는 제목이었다. 만일 원작이 필요했다면 왜 <비를 타고 오른 망둥이>라는 제목을 사용하지 않은 것일까. (이 소설은 연재소설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다음 한 권의 소설로 묶였다.) 나는 이상하게 이 제목 앞에서 서성거리게 된다. 임권택은 어떤 때는 제목에 대해서 몹시 소중하게 여기다가 어떤 경우는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를 취한다. 물론 그 제목이 그 작품에 대한 그 자신의 호의와 (직접적으로) 연결 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오염된 자식들’은 어딘가 환경운동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떠올리게 만드는 제목이다. (물론 이 영화는 환경운동과 아무 관계가 없다) 그때 AIDS는 지구 상 어느 사회에서나 공포의 병명이었고 문화정치학의 논쟁적인 담론이었다. (물론 이 영화는 퀴어 시네마가 아니다.) 임권택은 이 영화의 제목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영화를 보기 전에도 그렇지만 보고 난 다음에도 이 제목은 영화로부터 이상할 정도로 멀리 있다. 규화와 진우 병구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자. 여기서는 먼저 이야기 안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의 공통된 모양을 건드려보고 싶다. 단순하게 형태론적으로 다가가서 서사를 양쪽에서 바라보면 < 오염된 자식들 >은 < 내일 또 내일 >을 느슨하게 리메이크한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간단한 복기. (<내일 또 내일>) 규화는 대학을 졸업한 다음 기자생활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큰 회사의 사장 딸인 가희를 만나 어린 시절부터 친구이자 가난한 애인인 미연을 버리고 결혼한 다음 회사의 상무가 된다. 하지만 결국 추락하고 그 집을 떠난다. 간단한 반복. (<오염된 자식들>) 병구는 대학을 졸업한 다음 하숙집에서 만난 약혼녀 형자가 있지만 회사 사장의 제안으로 사장의 딸 명희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결국 추락하고 그 집을 떠난다. 사회적 계급의 상승, 그리고 추락. 돈을 둘러싼 욕망의 경제학. 다음 차이. 규화에게는 지치지 않고 곁에 머물면서 도덕적 의무를 상기시키는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 진우가 있지만 병구에게는 그런 친구가 없다. 나는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규화가 처음부터 진우라는 친구 없이 도덕적 균형을 유지할 수 없는 주인공이었으며 두 인물을 전형적인 대립의 배치로 설정하고 둘 사이의 힘의 관계 안에서 이야기를 진행했다면 <오염된 자식들>의 병구는 규화와 진우를 한 인물 안에 서로 일그러뜨리는 방식을 거쳐 하나로 합쳐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때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둘 사이에서 종합화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로 반대의 힘. 그 둘이 하나가 되면 하나가 다른 하나를 쳐부수거나 혹은 굴복시키거나 아니면 둘 사이에서 위계질서를 세운 다음 공존하는 방식을 취해야만 한다. 이것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지양하거나 혹은 지향하려는 것과는 다른 문제와 만나게 된다. 하나 안에 둘이 있게 될 때 그중 하나는 유령이 되어 어슬렁거리면서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할 것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임권택 은 이걸 염두에 두면서 기형적인 덧셈을 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덧셈은 영화에 관한 담론에서 위험한 도박이다. 나는 여기서 어떤 도식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저 영화에로 건너갈 때, 앞에서 뒤로 나아갈 때, 한 것을 다시 할 때, 그 안에서 대상이 어떻게 형상을 이루어갈까, 를 질문하려들 때, 거기서 무언가를 어쩔 수 없이 느껴볼 때, 나는 그 안에서 발생하는 덧셈이 일으키는 일종의 경련에 대해 피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느껴볼 때마다 (이 단어가 철 지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그걸 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끌어당긴다면) 그 안에서 임권택의 인물들은 실존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스스로 느껴보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여기서 내가 거의 필사적으로 인상에 머무르려 한다는 점을 계산에 포함시켜주기 바란다. 실존과 인상 사이에서 어떤 대화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규화와 가희 그런 다음 변주. 임권택 은 둘을 하나로 섞으면서 마치 카드를 서로 뒤섞듯이 어떤 법칙 없이 하나의 다른 질서로 만들어낸다. 하지만 카드를 섞어서 그 순서가 바뀌었다고 해서 있었던 카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주의할 점. 그때 카드의 순서가 바뀌면 같은 카드가 다른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규화의 친구 진우는 이야기의 진행 안에서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한쪽 다리를 절룩거린다. 보는 내내 그 불편한 걸음이 이야기 안을 맴돌고 있지만 마치 맥거핀처럼 이야기에서나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거의 다른 기능을 하지 않는다. 혹은 임권택 자신조차도 진우가 왜 그런 설정이 되었는지 잊어버린 것처럼 단 한마디도 그에 대해서 언급되지 않는다. < 오염된 자식들 >에서 (한쪽 다리가 불편한) 친구 진우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병구가 결혼하게 될 회사 사장의 딸 명희가 두 다리를 쓰지 못하고 휠체어에 앉아서 그를 맞이한다. 여기서는 < 내일 또 내일 >과 달리 명희가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설정이 이야기의 진행에서 중심으로 옮겨온다. 명희가 두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의 무능력할 뿐만 아니라 어떤 사회적 배경도 갖지 못한 병구가 그녀와 결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임권택의 인물들 사이에서 등장하는 반복적인 신체적 불구. 요점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나는 규화와 진우를 하나로 더한 다음 다시 (이런 표현이 허락된다면) 병구 1과 병구 2로 환원시켰다고 말했다. 그 둘은 종종 숨바꼭질을 벌이고 때로 하나 뒤에 다른 하나가 숨어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진우의 외양은 병구에게 머물지 않고 명희에게로 옮겨간다. 그런데 여기서 그 인물의 성격이 옮겨가지는 않으면서 그 장애라는 한계가 전도된 고정점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카드를 펼쳐보자. <내일 또 내일>에서 맨 먼저 규화와 진우라는 두 친구를 놓아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그 둘 사이에 미연이 있다. 미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진우지만 미연은 규화를 사랑한다. 그런데 (진우와 달리 이미 사회적으로 안정된 직장을 차지한) 규화는 계급 상승을 위해서 (외동딸을 가진 부자 아버지를 경유하여) 가희를 선택한 다음 그녀의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간다. 다음 차례. <오염된 자식들>. 병구가 있다. (달동네 하숙집에 사는) 병구를 (뒷바라지까지 하면서 결혼을 약속한 옆방 이웃의 가난한) 사랑하는 형자가 있지만 (취직을 한 다음) 병구는 계급 상승을 위해서 (외동딸을 가진 부자 아버지를 경유하여) 명희를 선택한 다음 그녀의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간다. 아마도 당신께서는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는 착각을 느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 단지 진우가 괄호 쳐진 것만은 아니다. (<내일 또 내일>) 규화와 가희가 처음 만나는 날 다소 가학적인 섹스를 나누기는 했지만 그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면서 결혼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결혼하자마자 중단된다. 그래서 임권택은 두 사람 사이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단 한 쇼트도 찍지 않는다. 반대로 <오염된 자식들>에서는 병구가 명희와 결혼 다음 거의 이야기 전체를 결혼생활로 진행한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다음 명희는 휠체어에 앉아서 다소 가련하게 병구에게 “사람이 그리웠어요, 당신에게 사랑받고 싶어요”라고 고백한다. 아마 그 말은 (그때까지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결혼한 다음 형자는 그 둘 사이에 끼어들 틈이 없다. 하지만 명희의 부모가 손자를 보기 원하고 병구는 매일 밤 명희와 섹스를 해서 임신을 시켜야 하는 상황에 떨어지면서 서로 다르지만 동일한 지옥 가까이 다가간다. 두 영화 사이의 차이는 이 틈에서 시작한다. 여기까지 오면 약간 까다로운 전환점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왜 거의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두 영화는 서로 합류할 수 없는 것일까. 그때 두 영화에서 가희와 명희의 차이는 단지 신체적인 제한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다. 불가능에 관한 간단한 가설. 가희의 자리에 명희를 가져다 놓고 명희의 자리에 가희를 데려다 놓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규화와 병구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서 서로 상반된 태도를 취할 것이다. 규화는 가희가 이미 여러 남자들을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다른 남자들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오직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정작 자신이 결혼하지 않는 미연이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이다. 그런 다음 규화가 파국을 맞이하는 것은 그들 사이의 게임과 상관없이 완전히 외재적 요인인 시장경제에 의한 자기 토대의 붕괴에 따른 것이다. 반대로 병구는 명희가 다리를 고친 다음 다른 남자를 만날 때, 그런 다음 그 자신을 제외하고 모든 가족이 그를 속이려들 때, 병구 자신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규화처럼)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위해서 눈가림의 게임에 참여했다면 그 상태를 계속해서 연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병구는 그걸 참지 못한다. 물론 영화가 완결된 다음 가정법을 계속해서 밀고 나아가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만일 병구가 그걸 못 본 척하고 오로지 자신의 계급적 안락함을 누리기 위해서 거기 계속해서 자발적으로 눈 감은 척 머문다면, 적어도 그럴 수만 있다면, 병구의 잔인한 승리(를 가장한 패배)는 도덕적으로 몹시 끔찍한 지옥이 될 것이다. 우리는 원래의 영화로 돌아와야 한다. 이 이야기의 순환 구조 자체는 외형적으로 동일하지만 그것이 순환을 그려나가는 궤적의 차이는 기묘해 보인다. 무엇보다 점점 사회적으로 확장되어나가던 원의 궤적이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이번에는 반대로 차이가 그 안으로 파고들어 오면서 신체적으로 육화되어가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가장 이상한 순간과 마주친다. 두 영화가 거의 동일한 배움을 얻는다는 것이다. 마치 그것은 서로 다른 경로를 통과했지만 마침내는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 두 개의 길을 간 것처럼 보이기조차 한다. 나는 이야기의 형태가 동일하기 때문에 동일한 ‘엔딩’을 맞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규화와 병구가 동일한 ‘엔딩’에 도달했다고 해서 서로 다른 경로를 통과한 두 사람이 동일한 배움을 얻는 것은 말 그대로 괴상한 일이다. 이 말뜻은 임권택 이 두 편의 영화에서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같은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 이야기를 소급해서 거슬러 올라간 다음 어느 쪽을 선택해도 마찬가지라는 무시무시한 필연성의 법칙을 보여주는 중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때 배움은 과정의 선택을 통해서 얻게 된 우연한 소득이 아니라 어느 쪽을 선택해도 동일한 목적에 이르게 되는 운동의 감옥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좀 더 중요한 질문. 임권택은 그렇게 해서 거기서 나오는 열쇠를 찾았는가. 나는 질문을 좀 더 밀고 나아가고 싶다. 동어반복 안으로 들어갔을 때 여기서는 두 번이 중요해진다. 두 번째는 하나가 미리 주어졌기 때문에 그 안에서 제한적으로만 활동할 수 있다. 여기서 두 번째는 부정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두 개의 순간이 동시에 찾아오는 긴장으로 가득 찰 것이다. 하나는 기대의 순간이지만 다른 하나는 환멸의 순간이다. 그 둘 중 어느 쪽도 버려서는 안 된다. 하나가 다른 하나와 대화를 나눌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그 둘 어느 쪽도 사라지지 않고 공존하게 될 것이다. 물론 임권택 도 그걸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임권택의 인물들이 그 안에서 구조적으로 활동하는 동시에 실존적으로 변화하는 과정 중에 놓여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때 규화와 병구 사이의 결정적 차이는 단지 그 두 사람의 성격이라는 따분한 설명에 기댄 것이 아니다. 그 둘이 시간 안에서 자기를 수행할 때 임권택은 내용을 탐사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 자신들은 자기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자신이 전체를 구성하는 한 요소라는 사실을 결국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추락해가는 자신의 운명이 구조적 필연성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렇다. 그렇게 쳐다보지 않았던 적이 있던가. 임권택은 그걸 전복시킬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처음에도 그러했고 이후에도 언제나 그러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실존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이기 위해 운명을 부정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도덕과 윤리 사이에 모호하게 선 결정이라는 결론에로 밀고 나아간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했다. 그 자신은 그걸 < 잡초 >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싶다. 지금은 그걸 놓고 대차대조표를 작성할 때가 아니다. 여기서 내가 항상 뛰어넘기 힘겹게 여기는 것은 그 틈새이다. 틈새? 그 사이에는 결핍 혹은 공백이라는 심연이 기다리고 있다. 그 안에서 임권택은 체현의 놀이를 반복한다. 틈새를 메우겠다는 헛된 약속. 물론 거기서 한계까지 밀고 나아가면 기다리는 것은 환상이다. 우리는 이미 < 천년학 >과 < 달빛 길어 올리기 >에서 그걸 보았다. 이때 내가 < 내일 또 내일 >과 < 오염된 자식들 >에서 보려는 것은 어느 순간 대상과 그 거리를 상실해버린 것만 같은 어떤 역설적 자리이다. 어떤 자리? 인물들이 무언가 (다소 따분함을 무릅쓰고 바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저자를 향해 한발 나아갈 때 다시 저자가 인물들을 향해서 한발 들어온 것 같은 그 자리. 여기서 임권택은 이 자리가 이 모든 이야기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마치 처음부터 준비된 이 자리에 가기 위해서 자리 자체가 다가온 것처럼 마련한다. 여기엔 아무리 인물들이 실존적 태도를 취한다 할지라도 비참한 운명의 계획이 어른거린다. 나는 여기서 두 개의 동일한 결론을 앞에 놓고 그 사이에서 이루어진 차이가 그 안에서 가져야 하는 도덕과 윤리 사이의 내기에서 내적인 발전이라고 불러볼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영화 안에서 임권택의 이미지들이 정신적인 기호가 된다면 오로지 이 순간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미지들은 어떻게 새겨지는가, 이미지들은 사건 안에 어떻게 흔적을 남기는가, 그 흔적 안에서 인물들은 무엇을 배우는가, 그런 다음 그것이 모여서 어디로 나아가는가. 그때 선한 것과 악한 것은 어디서 서로 나뉘는가. 여기서 먼저 혹시나 가질지 모르는 오해를 거절해야겠다. 나는 규화와 병구가 동일인물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그들이 거의 유사한 단계를 밟아가다가 갑자기 자신이 허공에 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추락한 다음 기이하게도 동일한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치 임권택 은 인물들을 다룬다기보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다음 사후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 그 둘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사실상 동일한 병명을 가진 증후가 통과하는 과정을 복기하는 것만 같다. 이때 이 두 인물을 둘러싼 흔적들은 놀랄 만큼 서로 닮아있다. 착한 조언자. 그런 다음 실종, 희생하는 여자, 두 명의 여자, 다리를 쓰지 못하는 불구. 부의 페티시즘.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어진다. 동일한 증후를 앓고 있는 사람의 두 번의 꿈. 이때 흔적들은 (우리가 잘 설명할 수 없는 규칙에 따라) 매번 새롭게 자리를 바꾸거나 이동하고 종종 압축된다. 단지 둘 사이에 교집합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요구들이 서로 자리를 바꾸면서 같은 이야기로 두 개의 무대를 만든다. 하지만 무대를 꾸밀 수 있는 형상화의 재료는 이미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두 개의 무대는 사실상 서로 마주 보는 거울처럼 보인다. 둘은 서 있는 위치에 따라서 처음에는 잠시 다르게 보이지만 곧 그들이 활동하기 시작하면 그 둘이 같은 것이라는 것을 누구라도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여기서 반복은 흔적에 의해 자기를 보존하고 관리하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두 개의 이야기는 마치 물구나무를 선 것처럼 마주 보면서 서로에게 빠진 것을 채워 넣기 시작한다. < 내일 또 내일 >과 < 오염된 자식들 >을 마주 보면서 두 개의 무대가 고통의 특권을 포기하는 법이 없다는 무시무시한 사실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여기서는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라 무대가 인물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임권택은 여기서 그 운동의 질량이 그들을 둘러싼 세계라는 결론에로 밀고 나아간다. 물론 그 안에서 두 인물 사이의 심리적인 기제가 동일한 흔적들로 이루어진 무대의 서로 다른 배치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관한 차이와 간격을 설명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규화와 미연 그런 다음 규화와 병구를 서로 좀 더 가까이 데려다 놓아보자. 두 영화는 이상한 방식으로 거의 동일한데 규화와 병구는 자신의 리비도를 해결하기 위해서 애를 쓰면서 시작한다. 규화는 진우에게 거짓말을 한 다음 멀리 지방까지 가서 (규화와 진우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진우가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미연과 섹스를 한다. 병구는 저녁이 다가오는 오후 5시 40분에 하숙집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면서 AFKN 방송을 들으며 영어 공부를 하는 척하다가 (방이 약간 반지하의 위치에 자리해서 아래서 올려다보이는) 유리창 바깥에서 형자가 빨래를 내걸 때 보이는 치마 속을 훔쳐보면서 자위행위를 한다. 둘은 자신의 리비도를 처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다. 이때 두 영화 모두 리비도의 환상의 장막을 찢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규화가 미연과 섹스를 할 때 갑자기 비밀 뒤에서 이들의 사이를 잘 알고 있는 진우의 목소리가 침입하면서(voice_over_narration) 고통스럽게 양쪽으로부터 배신당한 자신의 심정을 고백한다. 이때 찢어진 장막은 반복해서 < 내일 또 내일 >을 구성하는 일종의 막(幕)의 역할을 한다. < 오염된 자식들 >은 같은 척하면서 다르다. 우리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병구가 창문 바깥의 여자를 바라보면서 자위를 할 때 처음에는 그 행위를 대상과 주체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거리가 확보된 상황에서 자아가 만들어낸 환상과의 놀이로 받아들인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이 시선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여자가 돌아서서 창문을 두들기며 병구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하며 말을 걸 때 갑자기 환상과 가졌던 그 거리가 무효가 되면서 생겨난 소통의 거래가 욕망을 욕구에로 물러나게 만들면서 이 자위를 역겹게 만든다. 간단해 보이는 차이. 그러나 일단 시작하자마자 그 둘 사이의 욕망에 이제 돈의 계급적 환원이라고 부를만한 교환가치들이 달라붙으면서 벡터의 포물선을 그으며 점점 서로 멀어지기 시작한다. 규화가 자본의 경제학이라고 부를 전쟁터 안으로 들어간다면 병구는 리비도의 감옥 안으로 들어간다. 물론 둘 다 지옥이다. 하지만 그 둘 사이의 차이는 그 안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충실한 수행이 가져올 단순한 결과보다 크다. 명희로부터 자신의 집안이 얼마나 가난했으며 부모님은 돈을 벌기 위해 어린 남매를 방치하다시피 했고 그런 중에 풀빵이 너무 먹고 싶어서 길을 나섰던 오빠가 트럭에 치여 죽고 자신은 소아마비가 된 사연을 들려주면서 왜 부모님이 그토록 자식을 갖고 싶어 하는지를 설명 들은 다음 병구는 오로지 손자를 낳기 위한 섹스에 몰두해야만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규화가 섹스라는 관계를 통해서 가희와 결혼을 하고 부가 베푸는 자리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을 때만 한다. 그러므로 자기의 성기와 욕망의 관계에 대해서 여전히 주인의 자리에 머무른다. 하지만 병구는 자기 육신의 권리를 포기한 대가로 그 자리에 간다. 두 개의 성기 사이의 지위와 위치의 교환. 섹스는 언제나 아내인 명희의 요구로 시작된다. 여기서 상징적 성기(phallus)의 의미는 사라지고 오로지 생물학적 기능만이 남을 때(penis) 반대로 병구는 자신의 존재자로서의 실존적 의미를 상실하고 아주 작고 초라하고 축축한 기표만 남은 기호로서의 존재로 축소된다. 여기에는 욕망의 그래프가 이미 부서진 다음이다. 그때, 바로 그때, 마치 인형을 위한 것처럼 보이는 (어쩌면 다소 변태적으로 보이는) 보조도구까지 동원하면서 섹스를 위한 음악을 크게 틀어놓을 때, 그래서 보니 M의 ‘금성으로 가는 야간 비행(Night Flight to Venus)’의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우스꽝스러운 (초기) 일렉트로니카 비트가 그에 맞춰 삽입을 반복해야 하는 병구의 성기에게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율동의 명령으로 변할 때 소름 끼치도록 무시무시해진다. 여기서 임권택 은 다소 완만한 경사를 오르내리는 방법을 통해 저쪽에서 이쪽으로 돌아온 다음, 자기의 무대를 만들더니 마침내 여기서 자기의 위치를 바꾼다. 바깥으로부터 안으로, 세계의 법칙으로부터 방 안에서 벌어지는 관계에로, (다소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자본에서 리비도에로, 차라리 제도로부터 몸에로, (반복해서 말하자면) 사회로부터 규방 안으로 파고들어 온다. 어쩌면 그 둘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때부터 임권택은 반복적으로 몸의 관리와 기술에로 자기의 이야기를 변형시키고 무대를 바깥에서 안으로 옮겨놓기 시작했다. 나는 < 오염된 자식들 > 이후의 임권택 영화를 그렇게 다시 써보고 싶어진다. 반지하 다방 안의 다섯 여자들이 몸을 팔아가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이 얼마나 부서져가는 지를 물어본다. (< 티켓 >) 분단이라는 무게 아래서 어린 시절 헤어진 화영을 평생 찾던 동진을 만남의 광장에서 만나 그들이 낳은 아들 석철을 찾아가지만 몸의 기억은 그들 사이에 놓인 시간이라는 차이 안에서 애써 부정된다. (< 길소뜸 >) 조선 시대 사대부의 무자비한 유교 사상이 어떻게 집행되는지를 어린 옥녀의 자궁을 둘러싸고 풀어나간다. (< 씨받이 >) 아다다의 이야기를 <오염된 자식들>의 반대 버전이라고 불러볼 수는 없는 것일까. 선천적으로 말을 못하는 아다다가 돈을 지참하고 시집 간 다음 사랑을 받지만 (돈 많은 회사 사장이 회사 직원에게 소아마비로 불구가 된 딸을 맡기고 사랑을 요구하지만) 이제 돈을 번 시댁은 온갖 구실로 그녀를 쫓아내고 친정집에서도 출가외인이라 돌아오는 것을 거절당하자 결국 저잣거리 남자를 만났다가 물에 빠져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에는 둘 사이에서 어떤 공명감이 떠돈다. (< 아다다 >) 비구니가 되겠다고 나선 순녀는 남자들과 만나는 자기 몸을 통해서 불가의 가르침을 깨우쳐 나간다. (< 아제 아제 바라아제 >) 아버지 유봉과 송화는 끝까지 근친상간의 위험한 거리에 놓여있으며 동호는 배다른 누이를 홀린 듯이 평생에 걸쳐 뒤쫓는다. (< 서편제 > 그리고 < 천년학 >) 사창가에 팔려온 영은은 처음에는 자기를 사러 방에 들어섰지만 그런 다음부터 자기만 바라보는 남자 길룡과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인연으로 그렇게 살아간다. (< 노는계집 창 >) 성춘향과 이몽룡은 몸이 맺어진 다음 조선 시대 신분의 차이에서 벌어지는 고통스러운 시련의 시간을 이겨낸다. (< 춘향뎐 >) 오원 장승업은 조선 팔도를 떠돌며 그림을 그리지만 또 한편으로는 세 여자 사이를 떠돌며 그의 삶 전체를 보낸다. (< 취화선 >) 태웅은 밑바닥에서 시작해 돈을 모으면서 그 과정에서 점점 망가져 가지만 한편으로 혜옥과의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 하류인생 >) 오 상무는 지금 막 세상을 떠난 아내의 장례식에서 내내 마음을 두었던 젊은 여자 추은주의 몸을 바라보며 시간의 막 사이를 오간다. (< 화장 >) 나는 여기서 단지 세 편의 < 장군의 아들 >, 그리고 < 개벽 >, < 태백산맥 >, 그리고 < 축제 >만을 셈에서 제했을 뿐이다. 두 영화가 동일한 배움을 얻는다고 했지만 < 오염된 자식들 >이 훨씬 비참하게 끝난다. 여기서 비판은 완전히 다른 자리에로 모두를 옮겨놓는다. 그런 다음 임권택 은 거의 자기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듯한 결정을 내려버린다. < 내일 또 내일 >에서는 한 가닥 가능성으로 내버려두었던 순환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규화는 사업이 실패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에게는 기회가 남아있고 진우는 (규화가 버린) 미연과 그녀의 딸과 함께 살고 있지만 여전히 친구로서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언제든지 준비가 되면 데리러 오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내일 또 내일>) 그러나 <오염된 자식들>은 이야기를 막다른 골목으로 처넣는다. 병구는 지금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병원에 들른 병구는 말기 간 경화 판정을 받은 환자에게 다가가 자기 증세가 당신과 똑같다고 말하자 아무 설명 없이 “노형, 몇 살이요? 아까운 나이구먼”이라는 대답만 듣는다. 우리는 그 대답이 영화에서 무슨 말을 함축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여기서는 소멸을 목표로 한 것처럼 밀고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때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누리던 대상과의 거리는 사라져가는 중인 셈이다. 이 이야기 전체에서 병구가 제로가 될 때 그 배움은 무엇을 향한 것일까. 여기서 이야기는 좀 더 잔인해진다. 명희는 두 다리를 고쳤고, 그녀의 부모는 병구를 내쫓는 것에 대해서 어떤 미안한 감정도 없다. 병구도 더 이상 여기 남아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녀의 부모에게 보상금을 요구한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한 집에 살 수 없을 것이다. 병구를 제외하고 이 집에서 모든 것은 재빨리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므로 대상인 줄 알았던 명희는 주체의 자리를 되찾고 이제 다시 대상이 된 병구는 대상의 상실이라는 이중의 상실에 내몰리기 시작한다. 이것이 임권택이 새롭게 시도하는 실존적 자각의 자리이다. 이때 병구를 진정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이 집을 떠나는 것을 바라보는 임권택의 시선이다. 병구는 할 수 있는 한 이 집을 천천히 떠난다. 그는 명희가 타던 휠체어를, 한때 그가 밀어주었던 그 휠체어를, 거기 앉아서 자기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고백을 했던 그 휠체어를, 그 집을 향해 미련을 떨치기라도 하듯 밀어낸다. 하지만 병구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는 듯, 아니 어쩌면 너무나 잘 안다는 듯, 할 수 있는 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슬로우 모션으로 미끄러지듯이, 마치 기어가듯이, 멈추기라도 할 듯이,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 데도, 세 개의 쇼트로 나뉘어서, 그렇게 굴러가서 쓰러진다. 그런 다음에도 병구는 금방 이 집을 떠나지 못한다. 그는 문을 열다 말고 다시 돌아본다. 여기에는 어떤 아쉬움의 감정이 묻어난다. 병구는 이 순간에조차 이 집, 이 집이 베풀었던 부의 맛, 그 맛에 길들여진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 못한다. 그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다음 그걸 내다 버렸다. 그래서 거기서 내려오는 법을 알지 못한다. 내 질문은 그걸 알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때 그 사다리를 어디에 숨겨놓았느냐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 문제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차단하는 것만 같은 어떤 단절이 있다. 사라진 절차. 그 안에 담겨있을 비판적인 질문. 왜 그런 일이 벌어져야 하는 것일까. 임권택은 이 문제에 분석적으로 다가가는 것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다. 나는 그것이 그의 예술적인 선택인지, 아니면 문제 자체를 피해서 무언가 영화 저편의 고유한 형식 뒤편에 숨겨놓은 것인지 알 수 없다. 단지 그가 이 세계 자체를 혐오한다는 사실만이 텅 빈 상태로 불균형한 쇼트의 결여 속에 거기에 잔향처럼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 오염된 자식들 >의 거의 추신과도 같은 마지막 장면 전체가 모호하게 느껴진다. 물론 병구가 죽음을 마주했기 때문에 마지막 선택은 성립될 것이다. 그는 자기가 태어난 고아원을 찾아와 원장에게 명희의 부모로부터 받아낸 돈을 전부 희사하고 떠난다. 물론 형자는 왜 병구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고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도 있다. 어쩌면 병구가 형자와 결혼을 했다면 그 자리에 대신 서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구에게는 이제 기회가 없다. 병구는 그저 아무 미련도 없다는 듯이, 마치 도망치기라도 하듯이, 그 고아원을 빠져나온다. 하늘에서는 큰 비가 내릴 것만 같다. 그때 김영동이 애처롭게 부르는 ‘하나이었는데’가 몇 번이고 반복해서 흐른다. “사랑이었는데, 하나이었는데, 사랑이었는데, 하나이었는데...” 여기서 병구의 행위는 물론 어떤 배움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그 행위의 절차는 어떤 미지수처럼 남아서 수수께끼의 형식으로 우리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만일 이것이 병구가 자신이 잃어버린 주체의 자리를 되찾는 과정에서 얻은 실존적 배움이라면 그 안에서 다시 잃게 될 존재자로서의 슬픔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임권택 은 여기서 물러난다. 나는 물러난다, 라고 썼다. 여기서 그 말은 단지 수사학적으로 한 말이 아니라 정말 필요 이상으로 멀리 물러난 롱 쇼트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 마지막 씬에서 임권택은 다가간 다음 순식간에 뒤로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마치 거기에 어떤비밀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그걸 알아버리는 것은 몹시 위험한 것이라도 한 것처럼, 혹은 그걸 건드리는 것은 간섭해서는 안 되는 그 무언가를 훔쳐보기라도 한 것인 것처럼, 할 수 있는 한 멀리 물러난다. 임권택은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물러나기 시작했다. <오염된 자식들>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임권택의 생각의 형식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물론 그 안에는 놀랄 만큼 기묘한 비대칭이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임권택의 영화에서 진리는 내용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 결론을 형식주의의 도식으로 읽는 바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읽었다면 처음부터 이 글을 다시 읽어주기 바란다. 만일 여기까지 당신이 동의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함께 이제부터 좀 더 많은 긍정적인 비판을 수행하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저것을 비판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것이라는 긍정. 여기가 1980년대 ‘이후’ 임권택 영화의 (또 한 번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재빨리 다시 1970년대로 되돌아갈 것이다. 이 흥미진진한 (미학적) 운동의 영화라는 경기장, 그리고 임권택이라는 영화적 제스처. (계속) 1982년 102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화천공사 각본 나한봉 촬영 정일성 조명 차정남 편집 김희수 음악 김영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