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야, 맛좀볼텨!
- 감독
- 박재동
- 제작년도
- 1998
- 출연
- 안지환, 안장혁, 박영화, 박선영, 김선화
누군가의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소소한 일상의 흔적과 기억이 담긴 사진첩 속에서 그 누군가는 영화 한 편의 주인공이 됩니다. 사진첩의 주인공은 자신만의 독특한 감성으로 재미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죠. 그렇다면 한국영상자료원이 소장한 ‘어느 영화인의 사진첩’에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많은 영화인들이 소중하게 간직했던 그 사진첩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어쩐지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 같은 현장. 물론 그 ‘중요한 일’이란 사진을 보는 순간 단번에 눈치챌 수 있다. 사진 속 장소가 어디인지, 언제 찍은 것인지 모른다손 치더라도, 사진 속의 인물만으로도 이곳은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다. 1993년 7월 12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영화관 단성사 는 이날따라 매우 들뜬 분위기다. 역대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울 것으로 기대되며 연일 만원사례를 기록하고 있는 < 서편제 >(임권택, 1993)가 상영 중이기도 했지만,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유독 특별한 손님이 방문했기 때문이다. 한껏 들뜬 분위기를 가득 안은 단성사를 찾은 특별한 손님은 이 사진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주인공, (당시) 야인/정치인 김대중이었다. 한편 사진에서 김대중의 오른팔을 가볍게 붙잡고 함께 계단을 오르고 있는 이는 영화 <서편제>에서 한국적 아름다움을 필름 위에 새긴, 사진의 원 소장자인 정일성 촬영감독이다. “ 촬영감독 정일성 컬렉션 ”에는 이 사진 외에도, 단성사 휴게실에서 김대중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정일성과 오정해 의 사진도 포함돼 있는데, 이들의 표정에는 거물 인사와 함께 자리한 데서 오는 긴장감이 역력하다. 이즈음의 김대중은 연일 화제의 중심에 있던 참이었다. 그는 1992년 12월 18일에 치러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에게 패배한 후, 정치 은퇴를 선언하고 돌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산하 국제문제연구소의 객원교수로 떠났다. 그 사이에 여러 언론은 그와의 접촉을 수없이 시도했지만, 정계를 떠나 야인으로 돌아간 그는 외부와 거리를 두고 통일문제 연구에 집중했다. 그가 6개월가량의 영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1993년 7월 초, 언론은 또다시 그의 거취에 대한 보도를 연일 이어갔다. 그러던 차에 귀국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이뤄진 그의 <서편제> 관람은 사회의 모든 관심이 집중된 은퇴 정치인의 행보에서 꽤나 튀는, 돌출 이벤트였다. 그가 단성사에서 <서편제>를 관람한 것은 “제작사 측의 초청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1] 제작사 태흥영화사( 이태원 대표)가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일 거취 문제로 주목받고 있는 ‘야인’ 김대중을 초청했고, 김대중 역시 이에 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태흥영화사는 왜 김대중을 단성사에 초청했을까? 김대중은 모든 외부와 거리를 두면서도 왜 태흥영화사의 <서편제> 관람 초청에 응했을까? 제작사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혹시 태흥영화사는 화제 속 인물의 <서편제> 관람이 영화 홍보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던 것일까? 하지만 <서편제>는 이미 1993년 5월, 문화체육부 중개로 청와대 시사회를 개최했고 김영삼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 관계자들의 찬사를 받아 화제가 되었다.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던 종교인, 김수환 추기경이 <서편제>를 보러 단성사를 찾은 일도 있었다. 단성사를 방문한 김수환 추기경과 그를 맞이하는 <서편제> 제작팀(구체일 미상) 다시 말해, 정치계를 비롯해 종교계까지 <서편제>를 관람하면서, 영화의 우수성과 작품성, 화제성은 이미 충분히 입증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1993년 7월 12일의 이벤트는 단순히 영화 홍보를 위한 목적만은 아니지 않았을까? 어쩌면 ‘김대중’ 그 자체가 태흥영화사에 그리고 영화 <서편제>에, 나아가 한국영화계에 특정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영화계와 김대중의 관계 내지는 영화계에서 ‘김대중’이라는 키워드가 가지는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이로부터 약 5년 전, 노태우 정권을 출범시킨 제13대 대통령 선거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87년 12월 16일에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는 1972년 10월 유신 이후의 첫 대통령 직접선거로, 민주화를 향한 국민의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당시 대표적인 민주 인사 김영삼(통일민주당)과 김대중(평화민주당; 이하 평민당) 역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대중은 민주정권 수립을 위해 양김(김영삼, 김대중)의 후보 단일화를 요구했으나 결렬되었고, 이들은 각자 독자 후보로서 대선 레이스를 치렀다. 영화계 내에서도 국내 영화시장 보호 및 창작과 표현의 자유, 영화인 복지 향상 등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 김영삼, 김대중에게 후보 단일화를 요구했지만, [2] 단일화가 결렬되자 평민당 김대중 후보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글을 발표했다. [3] 이에 평민당은 「평화민주당에서- 이 땅의 영화인에게 드리는 글」 [4] 로 영화인의 요구에 호응했다. 여기서 평민당이 제시한 한국영화 발전을 위한 기본 원칙의 골자는 다음과 같았다. 「평민당에서- 이 땅의 영화인에게 드리는 글」, 1987. 12.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영화계 현안문제를 고루 다루는 가운데서도, 여기서 주목해 볼 것은 한국영화 보호 및 육성을 위해 평민당이 가장 먼저 제시한 극장 스크린쿼터 확대안이다. 1986년 12월에 개정되어 1987년 7월부터 시행된 제6차 개정영화법에는 외국인의 국내 영화업 허용 조항이 신설돼, 외국 영화사가 국내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사실 이는 1985년부터 시작된 미국 통상압력의 한 결과로, 이를 토대로 1988년부터 UIP를 시작으로 20세기 폭스, 워너 브라더스(1989년~), 콜럼비아 트라이스타(1990년~), 월트디즈니(1993년~) 등의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국내에 영업 등록을 하고 자사의 영화를 직접 배급(직배)하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영화의 직배는 한국영화계에 위기로 다가왔다. 세계 영화시장에서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할리우드 영화가 국내에 직접 배급되면, 자본력이 상대적으로 영세한 한국영화가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었다. 설 자리가 좁아진 한국영화를 보호해줄 장치는 스크린쿼터 제도뿐이었지만, 이 역시 미국의 레이더망에서 안전할 리는 만무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크린쿼터 일수를 확대하겠다는 평민당의 공약은 생존 위기에 놓인 영화인들의 희망이자 기대와도 같은 것이었다. 다시 사진 속 1993년 7월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1993년의 한국영화계는 스크린쿼터 문제, 나아가 영화 시장 개방 문제로 또다시 분주한 해를 보내는 중이었다. 미국의 압력으로 1988년에 시작된 ‘제2차 한미영화협상’에서 한국 정부는 1989년 1월부터 외국영화 프린트 벌 수 제한을 연차별로 완화해 1994년 1월부터 전면 폐지할 것에 합의했다. 이는 쉽게 말해 외국영화 상영 필름의 극장 공급량을 무제한 허용하는 것으로, 국내 영화시장 개방 확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1994년으로 예고된 영화시장 확대 개방을 목전에 둔 1993년의 영화계는 그해 1월, ‘스크린쿼터 감시단(위원장 정지영)’을 발족하고 전국 극장 상영 실적과 스크린쿼터 위반 실태를 조사, 감시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며 한국영화 보호의 마지막 보루인 스크린쿼터 사수에 매진했다. 이런 맥락에서 1993년 7월 12일, 단성사에서 <서편제>를 관람한 ‘야인’ 김대중은 한국영화 보호 및 육성을 공약으로 내세운 1987년의 ‘대선 후보’ 김대중과 교차한다. 미국 통상압력의 결과로 예고된 외국영화 프린트 벌 수 제한 전면 폐지의 위협에서 스크린쿼터 사수를 외치는 1993년 현재에, 미국 통상압력의 결과로 예고된 할리우드 거대 영화사들의 직배 위협에서 스크린쿼터 확대를 약속했던 1987년 정치인 김대중이 마치 소환되기나 한 듯이. 한국영화 흥행 신기록이 예고된 <서편제>를 야인 또는 정치인 ‘김대중’이 관람한다는 것은 이처럼, 그 자체로 한국영화를 위한 상징적인 이벤트였다. * 단성사에 김대중을 초청한 호스트,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대표는 그해 10월, 문체부의 스크린쿼터 20일 추가 감경 발표에 대응하고자 출범한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시나리오 작가 최금동 , 감독 유현목 , 임권택 , 당시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유동석과 함께 공동위원장으로 추대되었고, 1993년 10월 27일에 예정된 영화의 날 기념행사 취소 및 제작 활동 중단 등의 공동 행동을 전개했다. 한편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김대중은 1997년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해,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와 맞물려 한국 경제는 IMF 금융위기를 맞았고, 갓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에 한미투자협정(BIT) 체결을 제안했다. 그리고 스크린쿼터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 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약칭 비대위)’를 발족하고 본격적인 투쟁에 돌입했는데, 이때 역시 태흥영화사 이태원 대표는 배우 김지미 , 감독 임권택과 함께 비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영화계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은 노무현 정부 시기까지 이어졌으나, 그들의 투쟁으로 지켜온 스크린쿼터 146일은 결국 2006년 7월, 연간 73일로 축소되었다(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 영화시장 개방과 스크린쿼터 컬렉션 ” 참조). *** [1] 《동아일보》, 1993. 7. 13., 5면. [2] 애국영화인 일동, 「 민주화를 갈망하는 애국영화인에게 드리는 글 II 」, 1987. 12. 11., 한국영상자료원, 『영화시장 개방과 스크린쿼터 컬렉션』, 관리번호 DZZ0001349_01. [3] 이 땅의 영화인들, 「 이 땅의 민주화를 열망하는 애국시민에게 드리는 영화인의 글 」, 1987. 12. 14., 한국영상자료원, 『영화시장 개방과 스크린쿼터 컬렉션』, 관리번호 DZZ0001350_01. [4] 한국영상자료원, 『 영화시장 개방과 스크린쿼터 컬렉션 』, 관리번호 DZZ0001351_01.
한국 독립영화는 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에 태동하였다. 서울영화집단과 서울영상집단, 민족영화연구소, 노동자뉴스제작단, 장산곶매와 같은 단체들은 소형영화, 작은영화, 민중영화와 같은 분류의 영화들을 내놓았다. ‘독립영화’라는 명칭이 PD(민중민주)와 NL(민족해방) 사이에서 나름대로 중립적인 용어였기 때문에 무난히 수용되었다는 견해 1) 가 있을 정도로, 초기 한국 독립영화는 반독재 투쟁 및 민주화운동과 결부되어 있었다. 87년 6월 민주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었고, 93년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민주화운동은 일단락되었다. 이후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연이어 들어서며 민주화운동은 완전한 결실을 맺은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면의 그늘 또한 존재한다. 반독재투쟁이 한참이던 시기 촬영된 < 상계동 올림픽 >(1988)의 풍경은 < 그들만의 월드컵 >(2002)에서 다른 방식으로 반복되었다. 제도적 민주화는 이루어졌지만, 한국 사회는 경제, 노동, 인권, 소수자 등의 문제에서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IMF 외환위기 극복, 경제성장, 한류 등으로 되는, 소위 ‘국뽕 서사’의 이면에는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이 놓여 있다. 외환위기 극복 이후의 일상적인 출근길, 희망과 낙관을 품는 사람들의 반대편에 여전히 산재하는 문제들을 주목한 이강현의 < 파산의 기술記述 >(2006)과 같은 작품은 그것을 선구적으로 포착해내고 있다. 사진작가 홍진훤의 첫 다큐멘터리 작업이라 할 수 있는 < 멜팅 아이스크림 >(2021)은 그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최신의 작업 중 하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창고에서 ‘수해필림’이라고 적힌 의문의 필름 뭉치가 발견된다. 당시 현장을 기록하던 사진 집단들을 찾아가 이 필름의 흔적을 따라가며 복원을 시도한다.” 홍진훤의 기존 작업을 잘 모르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시놉시스는 과거의 사진을 복원하고자 하는 열망에 관한, 작가보다는 아키비스트의 지위를 지닌 이의 작업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영화는 수해를 입어 필름 위의 유광제가 녹아내릴 위기에 처한 사진들을 복원하는 한편, 사진을 찍었던 이들이 기억하는 당시에 관한 인터뷰를 담아낸다. 더 나아가, 홍진훤은 ‘미디어 참세상’ 아카이브에 있던 2000년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의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및 이주 노동자 투쟁 현장이 담긴 이미지를 포개어 놓는다. 사진에 담긴 ‘민주화운동’, 2000년대의 투쟁현장, 그리고 인터뷰와 사진 복원이 벌어지는 현재, 이 영화에는 세 개의 시간축이 공존하고 있다. 세 개의 시간축을 몽타주하는 <멜팅 아이스크림>은 “수해필름의 복원”이라는 말이 풍기는 뉘앙스와는 달리 민주화운동의 시간을 기념비적인 것으로 추켜세우지 않는다. 민주화운동 당시 각각 민족사진연구회, 사진통신, 사회사진연구소에서 활동했던 박승화, 서영걸, 이정용의 인터뷰는 민주화운동 시기의 영웅담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A컷’을 얻는 것에 몰두하게 된 자신과 동료들에 대한 성찰과 비판이다.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반독재투쟁이라는 추상적인 말”에 매몰된 민주화운동 속에서 계급과 경제의 문제는 뒤편으로 사라졌고, “반독재는 알지라도 경제는 모르는” 이들에 의해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는 가속화되었다. 민주화운동의 영웅들이 대통령을 지내던 시기의 투쟁들은 맹렬하게 짓밟혔다. <멜팅 아이스크림>이 인용하는 2000년대 초중반의 투쟁 현장 푸티지들은 폭력과 욕설과 절규와 눈물로 가득하다. <멜팅 아이스크림>에서 복원되는 사진은 민주화운동 투사들의 영웅적인 모습이 담긴 A컷들이 아니다. 과거의 기록을 들춰보고 복원하려 할수록, 이미지는 필름에서 지워진다. 이미지가 지워진 필름은 그저 투명할 뿐이다. 영화의 인터뷰이들은 386세대의 민주화운동이 그러한 성질을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시의 기록을 들춰볼수록 그것은 투명한 공백이 된다. 수해로 훼손된 필름은 녹아내린 물감이나 아이스크림처럼 이미지를 뭉개버린다. 비디오 캠코더와 저화질 디지털카메라로 촬영된 2000년대의 투쟁현장 또한 디지털 이미지의 픽셀이 그대로 노출되는 ‘깍두기 현상’으로 가득하다. 열화된 이미지들, 열화된 기록들은 필름에서 이미지가 지워지듯 공백으로 돌아간다. 홍진훤 감독은 촬영감독에게 김대중 대통령의 동상을 “최대한 이상하게”, “녹아내리듯 그리고 추락하듯”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말했다. 2) 과거의 영웅들이 담긴 이미지가 흘러내린 공백엔 신자유주의, 비정규직 차별, 우경화 등이 새겨진다. 2000년대의 투쟁현장이 담긴 푸티지들의 일그러진 영상은 영화 후반부로 향할수록 점점 선명한 이미지들로 채워진다. 이것은 민주화운동 영웅들의 이미지 밑에 잠들어 있던 공백이 무엇으로 채워졌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그 공백은 현재까지도 진행되는, 당시와 같으면서 다른 투쟁을 일으킨다. 공백이었던 계급, 경제, 노동, 소수자의 문제는 2022년에도 여전히 산재해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 공백 위로 행인들의 모습이 담긴 슬로우모션과 다양한 이유로 투쟁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삽입한다. 이 음성은 2021년 하반기 총파업에서의 음성이다. 팬데믹 시기에 물류를 책임진 화물연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던 보건의료노조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공백을 채우는 새로운 투쟁으로 새로운 세계가 기록된다. 새로운 세계에서는 공백 없는 운동이 가능할까?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지만, 촛불혁명을 거쳐온 지금 무언가 반복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지난 5년간 투쟁현장을 기록하고 < 골목의 이야기 >(2016), < 피와 재 >(2016), < 례 >(2018) 등을 만들어온 다큐멘터리스트 권순현의 단편영화 < 농몽 >(2020)은 그러한 인상을 풀어놓는다. 이는 지난한 투쟁의 결과에 대한 반성과 소회라기보단 그 과정에서 느낀 복잡한 감정을 토로하는 것에 가깝다. 권순현은 "‘현장’은 나를 통째로 집어삼켰다"며, "현기증 속에서 나는 그 어떤 사건도 그 어떤 사물의 위치도 제대로 그려낼 수 없었"고, "(지난) 세 편의 다큐멘터리는 모두 망향의 기록이 되었다”고 적고 있다. 3) <농몽>은 이 모든 것을 겪은 이후, 그리고 촛불혁명 이후 감독 스스로가 느낀 공허함에 관한 것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자기연민과 자기비하로 가득하다. 감독은 A, B, C라 명명되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꺼낸다. 함께 투쟁한 사람, 2008년 촛불시위를 제안한 사람, 트라우마를 겪는 노동자. 감독의 내레이션은 세 사람의 말과 그들과 나눴던 대화를 끌어온다. 촛불은 2008년 당시 20대였던 A의 ‘팔뚝질’을 대체하는 사회운동의 장신구일 수도, 더 큰 민주주의 같은 것을 꿈꾸었으나 자초한 논란으로 인해 실패해버린 B의 바람이 담긴 무언가일 수도 있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2016년의 촛불은 평화의 상징이었다는 것이다. 2016년 박근혜 퇴진 시위 당시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선 이들은 이 시위가 무엇보다 '평화'시위일 것을 주장하며 기존의 운동권으로 불리던 이들이 전개하던 투쟁 방식에 반대한다. 그때의 '평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거제도 조선소의 투쟁을 기록하던 감독은 그곳에 위장취업할 것을 제안받지만, 신체검사에서 탈락하고 만다. 하지만 그는 위장취업에 실패한 것에 안도한다. 얼마 뒤 조선소에서 크레인 붕괴사고가 발생하고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는 다시 한번 안도한다. C는 크레인 붕괴사고를 겪었다. 그의 트라우마 앞에서 감독은 안도할 수 없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폭력을 동원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그들의 투쟁에 대한 폭력이 전도된 것임을 망각하는 것이다. 촛불을 들고 평화시위를 주장하며 거리에 나서는 행위는 투쟁하는 이들에 대한 연대임과 동시에 시위현장에서의 폭력을 시야에서 치워버리고자 하는 모순적인 행위다. 투쟁현장을 기록하던 감독이 느끼는 자기모순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농몽>은 투쟁현장과 방식에 대한 불쾌감과 반항, 혐오를 담은 영화가 아니다. 촛불혁명 이후의 회고담 같은 것은 더욱 아니다. 학생운동이 종말을 맞이하고 모든 것이 망해버리거나 끝나버린 것 같은 순간 현장으로 향한, 노동자도 운동가도 아닌 위치에 서있으면서 투쟁현장에 뛰어든 어떤 사람의, 다소 질척이는 자기고백이다. <농몽>이라는 자기고백은, 그 결은 조금 다르지만 <멜팅 아이스크림>이 보여준 공백 이후의 세계와 공명한다. 공백 이후의 세계, 한쪽에서는 승리의 서사를 써내려 가지만 다른 한쪽에선 항구적인 투쟁 속으로 사람들이 내던져지는 세계, 이 세계는 마치 모든 사람의 기력이 소진되길 기다리는 지옥인 것만 같다. 물론 두 영화가 그 지옥에 머물고자 하는 냉소에 파묻힌 작품이라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그러한 냉소를 딛고 일어나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하는 작품은 더더욱 아니다. <멜팅 아이스크림>과 <농몽>은 녹아내린 시대와 소진된 마음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들이며, 이 이야기들이야 말로 그 이후를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 1) Young-a Park, Unexpected aliances: Indiependent Filmmakers, the State, and the Film Industry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4, p.50(이도훈, "이름의 부재와 경험의 빈곤", 「독립영화」, 한국독립영화협회, 제49호, 2020에서 재인용). 2) 홍진훤, "서신교환: 장윤미X홍진훤, 「마테리알」, 7호, 마테리알, 2022, p.48. 3) 권순현, 「2021 독립영화 쇼케이스」, 한국독립영화협회, 2022, p.158~159.
1995년 6월 29일, 서초경찰서 강력 4반 고병천 반장은 삼풍백화점 인근 지하 다방에서 후배를 만나기로 했다. 만남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어디선가 ‘쉭’ 하는 소리가 났고, 소리가 난 곳에서는 백화점 건물이 무너져 그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백화점 건물이 무너졌을 때 회칼이 날아들어 행인의 목에 꽂히는 장면을 묘사하는 고병천은 당시를 전쟁이나 공상과학 영화의 비현실적인 장면에 빗대어 증언하였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 발생하기 1년 전 고병천은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범죄조직 지존파를 검거하였다. 헬레어로 ‘야망’이라는 뜻의 ‘마스칸’이라는 조직 이름을 쓴 청년 갱단에게 마스칸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지존파’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도 고병천이었다. 그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과 지존파 사건을 모두 목격하여 그 두 사건을 평행하게 엮어낸 인물인 셈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 논픽션 다이어리 >(2013)에 인터뷰이로 출연한 고병천은 두 사건의 연관성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피의자들의 목적은 지존파나 삼풍백화점 운영권자들이나 다를 바가 없다. 지존파는 각자 10억을 벌겠다, 백화점 경영자는 1조를 벌겠다고 한 것이다. 한쪽은 형법상의 살인을 통해 생명을 박탈했지만, 한쪽은 업무상과실치상이라는 죄명으로 생명을 박탈했다. 목표도 같고 박탈한 내용도 같지만, 직접적 방법으로 살해를 한 것과 미필적 고의에 의한 방법으로 살해를 한 것으로, 내용상 차이가 없다.” 지존파 청년들이 신속한 재판을 거쳐 이듬해 교수형을 당한 것과 달리 백화점 붕괴를 방조한 사람들은 가벼운 처벌만 받고 책임을 벗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그는 부조리함을 느꼈다. 고병천이 느꼈던 부조리와 <논픽션 다이어리>의 관점은 부분적으로 상통한다. 고병천의 증언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제기한 질문을 상기시킨다. “은행을 터는 사람과 은행을 만든 사람, 누가 더 큰 범죄자입니까?” <논픽션 다이어리>는 군사정권이 종식되고 문민정부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김영삼 정부의 통치정책, 민주화와 경제성장의 뒤안, 신자유주의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하던 시기의 중대한 사회, 정치적 변화를 의제화한 다큐멘터리이다. 이 영화는 ‘악마의 대리인’으로 불린 6명의 청년들이 저지른 범죄를 동정하지 않지만 더 넓은 사회적, 정치적 맥락 안에서 그들의 위치를 찾으려고 한다. 충신의 후손들은 어떻게 잔학한 학살자가 되었나? 지존파의 범죄는 사회적 불평등을 겨냥한 한국 최초의 연쇄 살인사건으로 간주되었고 경제 번영의 시도에 수반되는 자본주의의 영향과 모순을 압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새로운 소비주의(갱단의 일원은 범행 대상으로 압구정, 오렌지족, 야타족을 언급하였다)와 부자에 대한 증오를 보인 지존파의 범죄는 계급적 동기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잘못 조준된 과녁(그들이 살해한 희생자들 중 진짜 부자는 없었다)을 향하였으며, 급속한 경제 성장 과정에서 파생한 어두운 영향을 암시한다. 급성장한 민주주의 거버넌스의 계략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기 위해 <논픽션 다이어리>는 사변적인 심문의 접근법을 취한다. 연출자 정윤석은 사회 변화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한 포괄적인 리서치, 아카이빙 자료의 수집, 자료와 인터뷰의 몽타주 등 내용과 스타일 모두에서 대담한 시도를 보여준다. 미디어가 지존파를 어떻게 악마화했는지에 대한 논평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지존파 사건에 대한 재평가에 기여하기보다는 농촌 살인 집단의 트라우마를 광범위한 국가적 내러티브와 연결하기 위한 장치로 동원된다. 법과 제도에 의한 살인, 개인, 범죄 집단에 의한 살인을 병치하여 심층적인 조사를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 정윤석은 내레이션이 없는 개방형 서사를 설계한다. 뉴스릴과 시사토론 프로그램 영상, 형사와 교도관, 법률가, 관료, 종교인 등과의 인터뷰가 내레이션의 흐름을 형성한다. 서사의 주요 국면들마다 주요 쟁점들이 차례로 전환되면서 정점과 최저점, 침묵의 구두점들을 시적인 방식으로 연결된다. 견고한 논리적 구조를 가지고 금기의 영역에 서식하는 프로세스, 법과 제도, 종교, 윤리적 기준들에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논픽션 다이어리>의 유력한 스타일 전략은 시청각 몽타주이다. 서로 다른 맥락의 사건과 현상, 스토리, 진술, 논평을 잇기 위해 이미지와 사운드는 여러 방향으로 엮인다. 도입부를 장식하는 포토몽타주와 특정되지 않는 인물의 보이스오버, 화면분할 이미지는 이후에 올 충돌 몽타주의 전조를 보여준다. 중반부 한 장면에서 정윤석은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지하 매몰 현장을 무인 카메라로 찍은 뉴스 영상과 백화점 건물의 잔해들이 쓰레기더미처럼 쌓인 난지도의 흑백 사진을 나란히 배열한다. 그 위로는 철골과 시멘트가 어지럽게 널려진 참사 현장을 중계하는 뉴스 진행자의 음성이 깔린다. 음성과 이미지는 시공간적으로 일치하지 않지만 전자는 후자의 논평처럼 조응한다. 참사의 시간을 전후로 나누는 두 이미지는 생생한 현실의 기록이라는 차원 뿐 아니라 학살과 희생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접근방식에 대한 은유로 삽입되었다. 매몰자들을 구조하기 위한 활동이 종료된 뒤 건물의 잔해는 쓰레기 매립지로 옮겨졌지만 유가족들 다수는 시신을 전달받지 못했고 일부 가족들이 뼈와 유해를 찾기 위해 직접 수색에 나서기도 했다. 학살과 희생자들에 대한 조사, 진상규명, 후속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과거는 반복되었고, 현재도 반복된다. 이것은 한국전쟁과 광주민주화운동, 쿠테타의 기억과 포개지는 후반부 서사에 대한 예비적 조치이다. 가장 강력한 시청각 몽타주 신은 위에 서술한 고병천의 진술 뒤에 이어진다. 카메라는 어두운 시골길을 걷고 있다. 간이 조명이 비추는 몇 미터 전방 너머는 완전한 암흑에 휩싸여 있다. 길은 구불구불하다. 그 위로 여러 갈래의 목소리들이 병치된다. 강력범을 조속히 처단할 것을 종용하는 김영삼 전(前) 대통령의 주문을 보도하는 뉴스 진행자의 목소리, 범죄 현상의 안팎을 진단하는 익명의 목소리, 부자에 대한 증오와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한 미안함을 이야기하는 지존파 갱단의 목소리, 끔찍한 범죄자들을 저주하는 시민의 목소리 따위가 사운드 몽타주로 제시된다. 기원이 표시되지 않는 목소리들은 혼란스럽다. 하나의 현상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면서 미래에 대한 전망이 보이지 않는 현재, 현재를 불투명하게 만든 과거를 함축한 시청각 몽타주이다. 순간 죽음과 살인을 모티프로 한 사회정치적 탐사는 학살의 아카이빙이라는 역사적 의제로 전환하게 된다. 언제나처럼 무고한 희생은 반복되며 학살자들은 그들의 책임에 대해 침묵한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