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청소년 축제- 제 17회 세계 잼버리
- 감독
- 김영일
- 제작년도
- 1991
이종기 는 감독으로 데뷔한 1963년에 무려 다섯 편의 영화를 찍었다. 덕혜옹주 전기영화인 < 백년한 >, 제목만 봐도 내용을 알 수 있는 < 광야의 왕자 대 징기스칸 >과 < 율곡과 그 어머니 >, 멜로드라마인 < 대전발 영시오십분 > 그리고 추리물인 < 범인은 너다 >. 요새 기준으로 보면 거의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성취지만 당시 영화 제작 속도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이상한 정도는 아니다. 이들 중 필름이 남아 있는 작품이 단 한 편도 없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지만 역시 이상한 일은 아니다. (KMDb에 따르면 이종기의 감독작 중 지금 필름이 남아 있는 것은 단 한 편, 1969년에 찍은 < 이별의 모정 >뿐이다.) 나는 종종 단 한 편의 영화도 필름으로 남기지 못한 수많은 60년대 감독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 대다수는 어차피 필름이 있어도 잊혔겠지만. 이야기는 점점 애잔해진다. 이제부터 그가 각본까지 쓴 추리물 < 범인은 너다 >를 소개할 텐데 솔직히 시나리오를 읽어도 이 작품을 굳이 영화로 볼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소개하는 이유는 지금은 대부분 멸종한 과거 이야기꾼 습관들이 신기할 정도로 많이 남아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포스터 포스터를 보고 내용을 추리해보자. 영화가 다루는 건 소녀유괴사건이고 주인공은 은퇴를 앞둔 노형사인 모양이다. < 범인은 너다 >라는 제목을 쓴다면 이건 추리물이고 그 ‘범인’은 영화 내내 범인이 아닌 척 굴면서 주변을 맴돌며 음모를 꾸미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야 형사가 악당을 가리키며 “범인은 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으니까. 신기하게도 감독 이종기 는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옛날 한국 장르 영화가 현대 관객들에게 종종 이상하게 보이는 이유는 대부분 당연함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우리가 맨 처음 만나게 되는 인물은 금성전업이라는 회사에 다닌다는 신시우라는 청년이다. 그는 지나가는 차를 세우고 교통사고를 당한 윤옥이라는 병원으로 데려간다. 다음 장면에서 우리는 그가 주인공인 노형사 신철호 주임의 아들이고 금성전업 사장의 딸인 수미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 칼럼을 쓰느라 옛날 영화 시나리오를 뒤지면서 눈치챈 것이 하나 있는데, 60년대 영화에는 유달리 자기보다 높은 계급의 여자와 결혼을 앞둔 남자들이 많이 나온다. 거의 요새 연속극의 신데렐라 수준이다. 단지 여기서 연애 과정은 수상쩍을 정도로 제거되어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이들은 이미 약혼한 상태이다. 두 사람이 만난 이유도 여자의 아빠인 보스가 남자주인공을 좋게 보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고, 데릴사위 이야기도 은근히 많이 나온다. 이런 영화에서 남자주인공에게 결혼은 로맨스의 결과가 아니라 신분상승의 과정이다. 60년대에 주인공이었던 이들이 세월이 흐르면 연속극 악당이 되는데, 나에겐 이게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보인다. 이종기 는 신철호 주임의 집안 장면을 통해 신철호의 직업이 경찰이고 자식들에게 엄격한 아버지라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대사를 넣는다. 영숙: 아유 기분 나뻐! 나 오늘 아버지 땜에 학교에서 애들하구 싸웠어! 철호: 공부는 안하구 미친년처럼 뭣하러 싸워! 영숙: 아버지의 그 날카로운 눈초리 때문이죠, 뭐! 김부인: 너도 내년이면 대학에 갈 애가 뭔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철호: 고등학교 이상은 안돼! 부엌일이나 하다가 시집이나 가! 영숙: 가래두 안가요. 쨔브의 딸이 대학에 가서 뭘해요? 철호: 뭐 쨔브? 영숙아 너 그 말 어디서 배웠니? 영숙: 학교애들이 쨔브의 딸이라고 놀리니까 배웠죠! 가족의 화목한 대화는 집에 걸려온 전화로 중단된다. 철호는 르발 다방 사건으로 불리는 유괴사건을 수사 중인데 그만 유괴된 아이가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수사본부의 형사들은 호들갑 떤 언론을 비난하지만 그래도 주인공인 철호는 최종책임이 경찰에게 있다는 걸 안다. 경찰서에서 철호는 막 접수된 ‘악질운전수’ 사건의 증인이 그의 아들 시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어지는 경찰서 장면과 회사 장면에서 시우가 얼마나 반듯하고 잘 났고 운도 좋은 청년인지 알려주는 대사들을 끝도 없이 들어야 한다. 두 번째 유괴사건이 일어난다. 다들 예상했겠지만 이번에 유괴된 사람은 곧 철호의 사돈이 될 윤 사장의 딸 수영이다. 그러니까 시우의 약혼녀 수미의 동생인 것이다. 유괴범의 협박편지가 날아들고(“돈이 필요해서 댁의 수영이는 내가 맡아 있오. 경찰에 알리면 수영이가 어떻게 된다는 건 알아서 처리하시오.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진 조용하게 기다리시요.”) 당연히 가족은 경찰에 알린다. 아이의 안전보다 철호를 개입시킨다는 스토리의 논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형사가 사돈 집안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이니 좀 맥이 풀리긴 해도 이 뒤의 수사 묘사는 군더더기 없고 진행도 빠른 편이다. 윤 사장이 김남규라는 직원을 최근에 해고했고 르발 다방 사건의 협박 편지와 이번 편지의 필체가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한 경찰은 르발 다방 주인에게 김남규의 사진을 보여주고 그의 본명이 김영일이며 자주 온 단골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하지만 체포하고 보니 그는 알리바이가 있고 그의 죄라고는 위조증권을 팔려 했다는 것밖에 없다. 이때 철호에게 협박전화가 걸려온다. “당신이 명수사관이라고는 하지만 이번 유괴사건의 수사는 중단하시오. 당신의 아들도 하나의 범죄자요. 이상 더 수사를 계속하면 나는 당신의 아들의 죄상을 폭로하겠오!” 여기서 나는 협박범을 연기하며 “당신의 아들도 하나의 범죄자요” 같은 대사를 읊어야 했던 당시 성우의 고충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분명 시우에게 뭔가 있기는 하다. 유괴사건과 아무 상관도 없는 교통사고 이야기로 영화를 시작한 것도 그렇고, 그 뒤에도 교통사고 피해자 윤옥 주변을 얼쩡거리는 걸 보면. 철호는 아들에게 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수사는 진행된다. 전화추적을 통해 공중전화로 윤 사장에게 협박을 한 서대문 꽃제비 용이라는 남자가 잡힌다. 그는 자기가 심부름만 했을 뿐이고 주범은 박영기라는 남자라고 자백한다. 하지만 영기는 아이와 함께 사라졌고 이번엔 시우에게 아버지의 수사를 중단시키라는 쪽지가 날아든다. 여기까지가 현대 관객들이 일반적인 유괴사건 영화의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종기가 < 범인은 너다 >를 쓰면서 진짜 ‘내용’이라고 생각했던 건 다음에 나온다. 알고 봤더니, 뺑소니를 치고 달아난 ‘악질운전수’는 시우 자신이었다. 협박 편지에 겁먹고 죄의식에 시달린 시우는 수미와 일단 파혼을 하고 사고로 한쪽 팔을 못 쓰게 된 윤옥과 결혼하려 한다. 윤옥에겐 이미 김군이라는 약혼자가 있는데도! 철호는 자수하라고 권유하지만 시우의 대답은 대충 이런 것들이다. “아버지는 위선자예요. 자기 독단의 정의감 때문에 우리들의 행복을 이렇게 짓밟아도 괜찮아요?” “아버지는 자식이야 어떻게 되건 말건 비겁할 정도로 자기만 정당한 위치에 서실려구 해요. 순간의 앗차 실수로 한 평생을 한 여성에게 바치겠다는 눈물의 호소는 들리지도 않으세요?” 그럼 자기가 차로 당신을 치어서 미안하니 결혼해달라고 우기는 남자를 보는 윤옥의 입장은 생각이나 해봤니? 여러분은 여기서부터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이 계속 이어질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천만에. 갈등은 여기서 끝이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면 이미 시우는 아빠에게 떠밀려 자수를 했고 아빠는 사표를 제출했다. 하지만 과장에 따르면 사표는 상부에서 ‘보이코트’당했고, 철호에 따르면 자백을 들은 윤옥과 윤옥의 오빠 윤식은 다 용서했단다. (“자식놈을 감옥에 보내면 자기들 두 남매가 당국에 호소하겠다나요.”) 감동한 과장은 철호에게 말한다. “그게 다 신주임이 착한 탓이오. 이번 신주임 부자지간의 아름다운 얘기는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줬다고 나는 자부하고 싶소.” 아무래도 이 양반은 ‘아름다운’이라는 단어를 나와 다른 의미로 쓰나 보다. 자백한 뒤에도 시우는 윤옥과 결혼하겠다는 망상을 버리지 못한다. 약혼자가 있다고 분명 밝혔는데도 심지어 이제 사랑하게 되었다고 애걸복걸한다. 이 정도면 스토커 수준이고 수미 입장에선 결혼 전에 약혼자가 이런 남자인 걸 알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라 하겠는데, 이 영화의 세계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심지어 꽃까지 들고 윤옥의 병실에 찾아와 “두 분의 애정이 진실하다면 저도 후원을 애끼지 않겠어요” 따위의 소리나 하고 있다. 동생이 살인범에게 유괴되어 목숨이 위태롭다는 건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지? 하여간 윤옥이 계속 거절하자 이 모든 소동은 없었던 일이 되고 모든 게 마무리된다. 아, 참. 유괴사건. 알고 봤더니 박영기는 시우의 중학교 동창이었고 우연히 교통사고를 목격해서 협박용으로 쓴 것이다. 여기서부터가 클라이맥스여야 할 텐데 각본상에서는 영 허술하다. 약속장소에 나온 영기는 수미에게서 10만 원 받고 수영을 돌려준다. 하지만 이미 경찰이 포위하고 있어서 그는 곧 체포된다. 자신의 협박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 그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는 것 따위는 생각해 본 적도 없나 보다. 물론 작가 이종기는 시우 일이 마무리되었으니 범인을 체포하고 아이를 구출하는 건 그냥 형식적인 결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겠지. 인물 관계도
이탈리아 서부극을 ‘마카로니 웨스턴’ 혹은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부르는 작명법을 따르자면, 우리나라에도 이른바 ‘김치 무협’이라 명명할만한 독특한 장르가 있었다. 한국을 중국처럼 꾸미고 복장도 중국식으로 입은 채 버젓이 소림사까지 등장시켜 ‘무림’이 어쩌고 ‘중원’이 어쩌고 했던 일련의 무술영화들이다. 만주 웨스턴의 활황에 이어 이두용 의 태권액션영화들마저 그 명맥이 끊긴 1980년대 초반, 그러니까 이소룡과 성룡의 등장 이후 모두 넋이 나간 채 명절마다 성룡 영화만 기다리며 한국액션영화의 독창성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그 시기에 김영일 , 왕룡 , 정진화 같은 몇몇 액션배우들이 대부분 전북 고창에서 촬영한 일련의 ‘짝퉁 무술영화’들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 소림사 주방장 >(1981)같은 영화들은 당시 10만 관객을 동원하며 상당한 흥행성적을 기록했지만 언론의 평가는 가혹했다. 무국적성에 대한 비판이었다. < 소림사 주방장 >의 흥행 이후 ‘저질 무술영화들이 판친다’는 요지의 1982년 무렵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중국 전통의 고증도 무시한 채 마구 치고 박거나 엉뚱한 에피소드로 웃기는 무국적 단세포식 날림”이라며 “가끔 수입되는 중국, 홍콩영화들을 흉내 내거나 마치 그들의 영화인 것처럼 관객을 현혹시키자는 어설픈 속셈도 작용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전혀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러면서 “이따금 한국영화를 수입하기 위해 내한하는 홍콩영화인들마저 이들 영화를 보고 ‘무대가 한국이냐 중국이냐’를 물어온다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당시 액션영화에 열광하던 젊은 관객들의 기호와 별개로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익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중심에 바로 정진화 가 있었다. 1956년생인 정진화 는 < 돌아온 외다리 >(1974) 등 이두용 사단의 영화에서 단역으로 시작해, 김선경 감독의 < 특명 >(1976)을 비롯 역시 김선경 감독이 연출하고 왕호와 황태수(본명 황정리 ) 등 선배 액션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던 < 흑룡강 >(1976), < 밀명객 >(1976) 등에 출연했다. < 복권 >(1980), < 소림사 주방장 >(1981), < 무림걸식도사 >(1982) 등에 늘 함께 출연했던, 그러니까 늘 정진화를 괴롭히는 익숙한 악당으로 출연했던 김영일 이 < 소권괴초 >(1979) 등 홍콩으로 건너가 무술영화에 출연한 거의 마지막 세대 배우였다면, 정진화는 이런 짝퉁 무술영화에 출연한 거의 유일한 토종 배우였다. 홍콩 무술영화들을 연구하고 모방은 하되 순수 국내파였다고나 할까. < 무림악인전 >(1980)으로 김정용 감독과 만난 뒤 배치기를 필살기로 하는 코믹무술영화 <복권>(1980)의 주인공을 맡으며 일약 당대 한국 무술영화의 스타로 떠오른다. 성룡에게 로웨이가 있었다면 정진화 에게 김정용 이 있었다고 할 만큼, 그는 김정용 감독의 일련의 무술영화들에서 주인공을 도맡았다. 그의 남다른 점은 왕호 , 거룡 , 왕룡 등의 선배들이 이소룡의 아우라를 좇는 사람들이었다면 < 복권 >을 필두로 장발을 한 채 성룡식 코믹 액션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남달랐다. 사실 그가 구사한 대부분의 코믹한 동작들은 성룡의 < 사형도수 >(1978)와 < 취권 >(1978)에서 유래한다. 위 두 영화에서 코주부 스승으로 출연한 원소전 캐릭터 역시 그대로 가져왔을 정도다. 아무튼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이듬해에는 성룡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장발의 정진화를 모방한 하우성 주연, 김선경 감독의 < 산동 물장수 >(1982)라는 영화도 나왔다. < 소림사 주방장 >은 이후 < 소림사 용팔이 >(1982), < 소림사 주천귀동 >(1982), < 소림사 왕서방 >(1982) 등 무려 10여 편이 넘는 아류작을 낳을 정도로 빅 히트를 기록했다. 당시 정진화 의 출연작들은 ‘아마존’같은 해외사이트에 마치 홍콩영화인 것처럼 출시돼 있다. ‘Elton Chong’이라는 영어이름으로 등록된 그를 보고 한국인 배우 정진화로 연결 짓는 해외 액션마니아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의 작품들 중 수작에 속하는 < 무림 걸식도사 >(1982)는 < Invincible Obsessed Fighter >, < 돌아온 소림사 주방장 >(1982)은 < Magnificent Natural Fist >, < 홍도경 >(1985)은 < Dragon Against Vampire >라는 제목으로 출시돼 있다. 이후 김정용 감독과의 파트너십은 계속되어 < 람보 >나 < 인디아나 존스 > 시리즈의 아류작이라 할 수 있는 < 아라한 >(1986)은 당대 무국적적인 한국 액션영화의 황혼기라 할 수 있으며, < 팔도 쌍나팔 >(1987)은 현대물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두용 감독의 < 돌아이 >(1985)가 당시 충무로의 양지의 액션영화였다면 그 반대 지점의 영화가 바로 <팔도 쌍나팔>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1990년이 되기 이전 이른바 ‘개인기’를 지닌 액션배우들은 정진화를 끝으로 자취를 감추고 만다. 이후 충무로를 떠난 그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으며 가장 최근에는 TV드라마 <무인시대>(2003)에 출연하기도 했다. / 글: 주성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