꿍따리 유랑단
- 감독
- 김영진
- 제작년도
- 2011
- 출연
- 강원래, 최재식, 조성진, 나용희, 오세준, 김지혜, 김희화, 이승혜, 최진국, 정규철, 이윤선, 김민지, 이제빈, 클론댄스 학생들
경기도로 이사한 후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한번 서울 밖으로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서울 서대문구에서 태어났고, 마포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독립한 후에는 줄곧 은평구에 살았다. 부산 금정구 금정경찰서에서 보낸 군생활을 제외하면 서울의 서북 3구, 그 안에서도 반경 10키로미터가 넘지 않는 좁은 장소에서 평생을 산 셈이다. 개굴개굴. 그런 내게 사람들의 말은 토머스 울프와 이문열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두 작가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그들 모두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는 제목의 소설을 썼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 경기도에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울로 돌아가고 싶기는커녕 오히려 꼭 서울에 살아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지만 그건 내가 (갈 곳 없는) 프리랜서이고, 이사를 통해 아내의 출퇴근길은 (조금이나마) 편해졌으며, 아내와 나 모두 문화생활(정확히 말하면 외출)을 즐기지 않는 성격이고, 아이의 학군이나 사교육 같은 걸 신경 쓸 필요가 (아직은) 없는 데다가, 가족 중에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녀야 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그렇지만 전보다 적은 주거비용으로 삶의 질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높아졌고, 그것이 우리에게 무척 중요한 변화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게 요즘 제가 부동산에 꽂힌 이유에요. -그래서 이제 부동산 투자라도 하실 건가요. -아직은요. 대신 아내와 함께 일요일마다 ‘구해줘! 홈즈’를 챙겨보고 있어요. -그게 뭐지? 드라마에요? [셜록] 같은? -이사를 계획 중인 시청자가 사연을 보내면 연예인들이 대신 예산과 조건에 맞는 집을 보러 다니는 예능이에요. 열심히 보고 공부해서 부동산 전문가로 거듭나려고요. 지돈 씨도 나중에 이사 생각 있으면 말해요, 제가 잘 해드릴게요. -…그건 마치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출발! 비디오 여행’을 꼭 챙겨본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지돈 씨, 저는 ‘출발! 비디오 여행’ 같은 건 보지 않아요.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JD를 바라보았다.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접은 후로는요. 조셉 맨키위즈의 영화 <유령과 뮈어 부인>과 마그리트 뒤라스와 도미니크 노게즈의 대담집 [말의 색채]는 모두 부동산 이야기에서 출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루시 뮈어는 독립을 선언한다.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1년 전에 죽은 남편까지 들먹이며 만류하지만 뮈어 부인의 의지를 꺾진 못한다. 부동산을 찾은 루시는 수상할 정도로 저렴한 바닷가 저택을 발견하고, 중개업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임대 계약을 맺는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성격 더러운 전 주인의 유령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뒤라스는 대뜸 자신을 매혹시켜 < 나탈리 그랑제 >를 만들게 한 집에 대한 이야기로 대담을 연다. 생애 처음 소유한 집. 정원에 창고까지 딸린 집은 당시 그녀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매우 비쌌지만,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겨우 살 수 있었다고. 그러면서 대수롭지 않게 덧붙인다. "내 책을 각색한 영화들이 너무 좋지 않아서 내가 직접 해도 그 정도는 만들 수 있거나 그보다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1) 두 가지 교훈이 있다. 하나. 싸고 좋은 매물은 없고 집과 사람, 사람과 유령 사이에도 궁합은 있다. 둘. 혹시라도 문필 활동으로 생계를 꾸릴 생각이라면 최소한 프랑스에서는 태어났어야 한다, 그것도 백 년쯤 전에, 되도록이면 마르그리트 뒤라스로… 한국에도 부동산을 다룬 작품은 많지만 부동산 이야기로 시작하는 작품은 많지 않다. 일단 떠오르는 건 이윤기 감독의 2008년 영화 < 멋진 하루 >다. 검은 화면 위로 오프닝 크레딧이 흐르면, 두 사람의 대화가 들린다. -마석? 그게 어디야? -춘천 가는 길 어디라나 뭐라나? 아무튼 뭐 사자마자 두 배쯤 올랐대. 지금은 한 평당 70이라던데. -그럼 얼마나 번 건데? 걔는? -40에 샀다니까 30에 100해서… 삼 천? 그쯤 되겠네 -삼 천? (사이) 삼 천… -한 방에. 봐 봐, 얘 몇 주째 안 보이잖아. 전화도 잘 안 받아. 나는 구글에 '마석 땅값'을 검색한다. 가장 처음에 나오는 2019년 6월의 기사("'드디어 호재 터졌다!' 남양주 마석역 일대 땅값 후끈")에 따르면 GTX 건설과 지하철 6호선 연장 계획이 동시에 발표되면서 마석역 인근 당 평당 평균 가격은 2017년 250만원, 2018년 350만원이었던 것이 2019년에는 450만원으로 치솟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2020년과 2021년에는…? (알기 싫음) 담배를 나눠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이 향하는 곳은 스크린 경마장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부동산과 경마, 그리고 1년 전 350만원을 빌리고 잠적한 남자(하정우)에게 빚을 받아내기 위해 경마장을 찾은 여자(전도연)에서 시작하는 영화인 셈이다. 과연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촉발된 전세계적인 경제위기의 한복판에 개봉한 영화답다고 할까. 돈이 없다며 느물느물하게 잡아 떼던 남자는 돈을 받기 전까지는 가지 않겠다는 여자에게 오늘 안으로 어떻게든 해결하겠다고 큰소리친다. 어떻게? 다른 여자들의 돈을 빌려서… 남자를 믿을 수 없는 여자는 남자와 동행하기로 하고, 카메라는 그런 둘을 따라간다. 옛 연인에게 돈을 갚기 위해 다른 여자들에게 돈을 빌려야 하는데도 어째선지 무사태평하기만 한 남자와 옛 연인에게 빌려준 돈을 받는데 어쩐지 본인이 직접 운전까지하며 돈을 꾸러 다니는 것만 같은 기분에 자꾸 울컥하는 여자의 하루. 그런데 나는 왜 여기서 영화의 줄거리를 꼬치꼬치 늘어놓고 있는 걸까? 서평가로 활동하던 시절의 버릇이 아직도 남아 있는 모양이다. 분량을 채우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영화가 캐릭터 무비라는 것,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에서도 대책없이 낙관적이고 유연한 성격의 남자와 안 그래도 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이유없이 예민하고 불안한 성격의 여자가 티격태격 하면서도 그들에게 주어진 미션을 완료하고 헤어져 다시 각자의 길을 걸어가지만 함께 했던 짧은 시간의 영향으로 그들 모두 그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거라는 여운을 남기는 종류의 영화라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변화하는 사람은 여자 한 명뿐이라고 해야겠지만.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을 남녀로 바꾼 다음 긴 이야기를 단 하루로 압축한 것 같은 이야기, '한국남자 조병운(하정우)' 같은 느낌으로… 영화가 중간을 지날 무렵, 경마장을 나설 때부터 남자가 들고 있던 커다란 가방의 비밀이 밝혀진다. 남자는 돈이 없어 전세금을 빼고 가방 하나에 살림을 넣은 채 친구 집을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그렇다면 이 영화를 사업이 망하고 이혼까지 한 속편한 무주택자와 파혼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해 언제 길바닥으로 나앉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하위 중산층의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단지 그렇게 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한 마디로,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런 종류의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고, 혹은 내겐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한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고, 어쩌면 이 문제는 인생보다 큰지도 몰라. 나는 머리도 식힐겸 <멋진 하루>가 담고 있는 2008년 서울의 이곳저곳 -- 개발 이전의 용산과 잠수교와 종로 뒷골목과 이태원 언덕길과 서소문 아파트와 연희동 사러가마트 등 -- 을 직접 둘러보면서 시간 속에 잠시 존재했던 어떤 것을 영원에 가깝게 붙잡아 고정시키는 이미지의 유령적인 성격에 대해 생각하며 그것이 우리의 에세이필름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찬찬히 고민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서울을 향하는 9701번 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익숙한 얼굴을 마주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 (편집자 주: 다음은 K정연이 JD에게 보낸 메일을 전재한 것이다. 시나리오를 위한 준비작업 중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K정연이 원고를 완성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비록 불완전한 메모의 형식이나마 독자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JD의 동의를 받아 여기에 올린다. 전체적인 내용이나 분위기 모두 본 원고와는 동떨어져 있어 구태여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미리 밝힌다.) 서평을 쓰지 않는 서평가 K정연은 마감공포증 때문에 지금까지 그가 추구해오던 약간의 재치 있는 문필 활동을 그만두고 정지돈과 함게 한국 영화에 대한 에세이 필름을 만들기로 한다. 어느 날 그는 9701번 버스를 타고 서오릉을 지나던 중 같은 버스에 타고 있던 영화 평론가 유운성을 우연히 마주친다. 구산역에서 내리는 유운성을 따라 충동적으로 버스에서 내리는 K정연. 구산동 도서관 마을에서 봉산의 이름없는 묘지로, 맘스터치에서 불광천으로 향하는 유운성의 행보를 쫓는 그의 머릿속에 어떤 목소리가 들린다. "희망 없이 말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편이 낫다. 희망 없이 수다를 떠는 데서도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냉소주의자의 태도다. 다만, 희망을 낙관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낙관이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둘러싼 요인들로 미루어볼 때 얼마간 바람직한 미래가 가능하다고 진단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주식시장이 낙관적이라거나 부동산 시장이 안정화도리 것이라고 전망하는 경제 전문가의 발언 따위를 떠올려보라. 희망은 여건에 비추어 미래를 낙관하는 일이 아니라 전적으로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가능성의 조건 자체를 응시하는 일이다. 희망은 낙관이라고 하는 타협을 용인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긍정하는 일이다. 주식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전망을 내놓기보다는 그것들을 없애버리자고 요구하는 것이 희망이다…" 2) 창백해진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K정연.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문자 메시지 보낸다. -JD, 당신은 시네마가 인생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나요? 쏘옥, 문자가 발송되는 소리와 함께 K정연 쓰러지면 손에서 미끌어지는 핸드폰. 띵 하는 메시지 수신음과 함께 JD의 문자가 액정에 표시된다. -JD: ??? 시간 흐르면 비 내리는 밤의 불광천. 헤드랜턴을 쓴 JD가 수풀 사이를 뒤지고 있다. 아! 탄성을 지르는 JD. 정신을 잃은 채 반쯤 개천에 잠긴 K정연의 모습이 보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담요를 뒤집어 쓰고 코코아를 마시던 K정연이 대답한다. -유운성 선생님을 만났어요. -유운성쌤 이요? 유운성 쌤은 어디 갔는데요? -모르겠어요. 천변의 벤치에 앉더니, 저 멀리 레인보우 브릿지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있잖아요, 과거의 문 같은 거. 움직이지도 앉고 한참을 앉아 있더군요. 저는 가야했어요. 마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마감을 생각하자마자 갑자기 어지러워지더니 모든 게 깜깜해졌어요. 이렇게 말하는 지금도… 병원 진료실. 의사가 K정연에게 말한다.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마감공포증입니다. -선생님, 담당 편집자에게 제가 입원을 해야 해서 원고를 마감할 수 없다고 전화 한통만 해주시겠어요? 어딘지 알 수 없는 공간에서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K정연.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멍청이가 된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멍청이가 된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멍청이가 된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멍청이가 된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멍청이가 된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멍청이가 된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그런데 놀지도 않고 일도 안 한다면? 빠르게 교차 편집 되는 장면들. 다양한 시간, 다양한 날씨 아래 거리에 있는 K정연. 불안한듯 고개를 돌리면 시선 끝에 걸리는 빨간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남성의 흐릿한 모습. 유운성이다. 쫓아가보지만 매번 잡히지 않고 사라지는 유운성. 절규하는 K정연. 캄캄한 공간. 푸른 조명이 켜지면 수백 수천 개로 보이는 K정연의 모습. 거울 방이다. 잠시 후 붉은 조명과 함께 거울 속 K정연의 모습이 유운성의 뒷모습으로 바뀐다. 다시 장면 바뀌면 다양한 시대, 다양한 공장을 나서는 퇴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 그런데 모두 유운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중 한 명의 유운성을 뒤쫓는 K정연. 정확한 시대도 장소도 알 수 없는 구불구불한 골목을 따라가다 마침내 유운성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데 성공한다! 벽을 보고 선 유운성에게 다가가는 K정연.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데 유운성의 셔츠를 쥐는데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유운성. K정연이 쥐었던 손을 펴면 손바닥 위에 놓여 있는 USB. -루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 K정연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JD. 서럽게 우는 K정연에게 묻는다. -무서운 꿈을 꾸었나요. -아니요. -슬픈 꿈을 꾸었나요. -아니요. -그럼… -하룬 해도 파로키 하지 않는 꿈이었습니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JD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K정연. -지돈 씨, 저는 제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가끔은, 실은 자주, 너무 지겹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요. -세상에는 두 부류의 평론가가 있습니다. 진과 성. 진 쪽의 평론가에는 이동진과 김영진이 있고, 성 쪽의 평론가에는 정성일과 유운성이 있는 식으로요. -그건 성명학인가요. -분류학이라고 해두죠. -하지만 저는 진도 아니고 성도 아닌 걸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자리도 있는 법이죠. 이를테면, 진과 성의 사이 같은 곳이. -?? -진과 성의 사이에 있는 정. 그게 바로 정연씨의 자리랍니다. 자, 저를 따라해보세요. 진! 정! 성! -진 정 성…? -바로 그겁니다! 진정성!!! K정연이 JD에게 손을 내민다. 손바닥 위에 놓인 USB. 겉면에는 "cinema, 2004"라는 글씨가 흐릿하게 보인다. -이건…? -꿈 속에서… 제게… -2004년이라면, 라브 디아즈의 < 필리핀 가족의 진화 >일까요? -글쎄요… -리산드로 알론소의 < 죽은 사람들 >일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구로사와 기요시의 < 도플갱어 >? 그건 2003년이지. 그럼 < 밝은미래 >? 아냐 그건 2002년이고. 아니면 홍상수의 <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보면 알겠죠. 조심스럽게 노트북에 USB를 꼽는 K정연. 곧바로 자동재생으로 영화가 재생된다. 주인공이 불분명한 예식장안 풍경 예식이 끝난 듯 신부의 부케를 받으려 한쪽으로 몰려서는 여자들 신부가 등뒤로 부케를 던지고 날아오르는 부케를 향해 손을 뻗는 여자들 부케가 첫 번째 손을 튕겨서 다음 손을 거쳐서 통통 튕겨나가고 이 손 저 손을 차례로 튕겨나가다가 허공을 뱅그르르 돌던 부케가 왠 막대사탕을 들고 있는 손안으로 쏙- 들어간다. 카메라 빠지면 겨드랑이에 목발을 끼고선 이빨이 빠진 여자 아이가 방긋하고 웃는다. 여자아이 손에 들린 부케를 놀란 눈으로 보는 여자들. 그 위로 타이틀. “어린신부” 3) 1) 마르그리트 뒤라스.도미니크 노게즈, [말의 색채], 유지나 옮김, 미메시스, 2006 2) 유운성, '시네마, 역량과 유령 사이에서', [씨네21] 1300호 3) 필름메이커스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어린 신부> 시나리오에서 인용했다. https://www.filmmakers.co.kr/koreanScreenplays/54717 *** 그 외에도 히치콕의 < 현기증 > 뤽 베송의 < 루시 > 하룬 파로키의 <110년 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황인찬의 시 '무화과숲' 중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등을 참고하고 인용했음을 밝힌다.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 포드 v 페라리 >의 도입부, 차를 몰고 가는 캐롤 셸비. 그는 심장에 이상이 생겨 은퇴한 카레이서다. 화면에 그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7000 RPM 어딘가엔 그런 지점이 있어. 모든 게 희미해지는 지점. 차는 무게를 잃고 그대로 사라지지. 남은 건 시공을 가로지르는 몸뿐. 7000 RPM. 바로 거기서 만나는 거야. 그 순간은 질문 하나를 던지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넌 누구인가?” 캐롤의 내레이션은 후반에 다시 나온다. 캐롤이 스카우트해 르망 대회에서 끝내주는 레이스를 벌이고 돌아온 켄 마일스가 시승차를 테스트하고 있을 때다. 켄이 운전을 하고 있는데 캐롤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남은 건 시공을 가로지르는 몸뿐... 가장 중요한 질문. 넌 누구인가?’ 켄이 모는 시승차의 브레이크는 작동하지 않고 그대로 달려간 끝에 폭발한다. 캐롤과 그의 스탭들이 사고 장소로 달려가지만 이미 늦었다. 켄 마일스는 그렇게 영화에서 단숨에 퇴장한다. ‘넌 누구인가?’란 질문에 답할 여유도 없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더이상 차를 몰 수 없는 레이서 캐롤 셸비는 이미 한 번 죽은 것이다. 영화의 끝에서 켄 마일스는 물리적으로 진짜로 죽는다.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은 ‘죽는 존재’라는 것이다. 캐롤 셸비와 켄 마일스는 죽음과 삶의 경계가 백짓장처럼 얇은 카레이싱의 경험을 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속도의 한계 끝에 다다르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어떤 도에 관해 이심전심 서로 통하는 친구들이다. <포드 v 페라리>는 카레이싱이라는 스포츠에서 전문가주의에의 헌신이 가닿을 수 있는 어떤 도의 경지를 보여준다. 캐롤 셸비와 켄 마일스는 알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것, 그리고 굳이 설명해줄 필요도 없는 것, 그렇지만 이 심원한 도의 깨달음의 끝도 다른 모든 사람들의 종말과 같이 단순하다. 그저 죽는다는 것뿐이다. 은퇴해서 스포츠카를 디자인해 파는 사업으로 성공한 캐롤 셸비에게 실적부진에 시달리는 자동차 회사 포드의 중역 아이아코카가 찾아와 솔깃한 제안을 한다. 포드의 신형 개발차로 르망 레이스에 참가하자는 프로젝트다. 캐롤은 레이서 파트너로 켄 마일스를 스카우트한다. 여전히 현역이지만 비사회적인 성격으로 인해 후원사를 구하지 못하고 근근이 레이싱 대회에 나가면서 적자투성이 카센터를 운영하며 호구하는 켄은 캐롤과 함께 레이싱 훈련에 돌입한 후에도 포드사의 마케팅 임원들과 갈등을 빚는다. 캐롤과 켄에게 그들이 만들고 타는 차는 그것 자체로 존재하는 의미이며 다른 어떤 교환가치도 갖지 않는 것이지만 포드 회사의 임원들에게 차는 셀링 포인트가 집약된 도구이자 기호이다. 캐롤과 켄은 최고 수준으로 설계된 차로 한계를 돌파하는 레이싱에 매달리지만 포드의 임원들은 레이싱에 동원된 차를 통해 새롭고 매력적인 삶의 표상을 대중에게 팔고 싶어할 뿐이다. 표면적으로 이 영화는 마케팅 목적으로 르망 대회를 이용하는 포드 사 임원들의 관료주의와 캐롤과 켄의 전문가주의가 부딪치는 대립과 갈등을 부각시킨다. 그 저류에 흐르는 것은 도구화된 삶을 지향하고 강요하는 자본주의의 이념과 거기에 순응하는 가운데서도 끝내 저항하지 않을 수 없는 개인들의 도구화되지 않는 삶에 대한 열망이다. 역설이지만 삶에 대한 자각은 너덜거리는 차의 부속에 대한 자각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켄 마일스는 레이싱 연습을 하던 어느 날 자기 훈련을 지켜보던 아들 헨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빨리 달리면 차의 속도는 올라가지만 나머진 모두 느려져. 요렇게 보는 게 아니라 이렇게 보는 거야. 그럼 다 보여... 차에겐 다정해야 해. 아래서 신음하는 그 녀석을 딱하게 느껴야 돼. 기계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면서 버텨주길 바라려면 한계가 어디인지 알고 있어야 해. 저길 봐. 저기 퍼펙트 랩이 있어. 실수도 없고 모든 기어 변속과 코너 공략이 완벽한 랩. 대부분은 존재도 모르지만 분명히 존재해.” 기계문명의 총아인 자동차를 다루면서 그걸 살아있는 생명처럼 여기고 다정하게 대하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소모되는 그걸 딱하게 여기면서 모든 기능 조절이 완벽한 ‘퍼펙트랩’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켄 마일스는 그 자신 역시 그가 다루는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마모될 때까지 스스로를 혹사하면서 죽음/폐기의 경계로 다가가는 존재이다. 최고 시속을 오래 버텨내는 최고의 자동차는 그 대가로 짧게 존재하고 대체되지만 인간은 대체될 수 없다. 새 것으로 대체될 수 있는 자동차 기계의 부속품들과 새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인간존재의 유한성을 같은 열에 놓고 대하는 켄과 마일스는 결국 여러 겹으로 꼬인 삶의 모순을 받아들여 견딜 수밖에 없는 비극적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동차를 그들의 분신으로 여기고 대하지만 그걸 팔거나 타서 마모시키고 그들을 고용한 포드사는 그들을 도구로 이용해 하찮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롤과 켄은 그들의 운명에 장쾌하게 대들고 즐긴다. <포드 v 페라리>가 자동차 레이싱을 소재로 한 여타 영화들과 다른 우월한 개성을 갖는 것은 속도의 쾌감에 화면의 리듬을 종속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레이싱의 경쟁상태를 묘사하면서도 초점은 레이서와 차의 혼연일치 상태, 나아가야 할 때와 늦춰야할 때를 의식하는 레이서의 마음으로 관객을 안내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반복되는, 켄이 마지막 스퍼트를 올려야할 때 캐롤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 ‘아직 아냐...아직 아냐...지금이야’라고 외는 주문과 그에 조응하는 켄의 운전은 속도와 경주에 주목해 즐기는 이 장르의 관성을 깨트린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애초 약속과 달리 켄 마일스를 르망 레이스 팀에서 제외하려는 포드 2세 회장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그를 레이싱카에 태운 캐롤은 전속력으로 차를 모는데 회장은 난생 처음 경험하는 가공할 속도에 공포를 느끼고 눈물을 질질 짠다. “난 몰랐어. 우리 아버지가 살아서 이걸 보셨어야 했는데. 이걸 느껴보셨어야지.” 보통 사람들에게 극한의 스피드는 눈으로 즐기는 것이지 몸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다. <포드 v 페라리>에서 포드 2세 회장을 비롯해 삶과 비즈니스의 철학에 관해 장광설을 펴는 인간들은 결정적 순간에 겁에 질려 눈물을 흘리는 비루한 존재임을 감추거나 쉽게 망각해버린다. 포드사가 애초 인수하려 했던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의 회장 페라리는 자기 회사를 인수하려는 포드 경영진의 제안을 일축하면서 “포드 2세는 포드 1세가 아니다.”라고 인수 제안 책임자 아이아코카에게 쏘아붙인다. 르망 레이싱 경기장 현장에서도 포드 2세 회장은 개막식 행사 참석 후 곧바로 현장을 떠난다. 포드 마케팅 수장의 잔꾀로 포드 차가 나란히 결승지점에 골인하는 희대의 이벤트가 일어난 후에 1등을 달렸던 켄 마일스는 자기 보다 뒤에서 출발했던 같은 회사 동료 레이서에게 우승을 도둑맞는다. 망연자실한 켄 마일스에게 관중석에서 경의를 표하는 유일한 이는 페라리 회장이다. 황당하고 미안해서 어쩔줄 모르는 캐롤에게 마침내 사태를 파악한 켄은 말한다. “차를 팔아야 한다 이건가?” 그리고는 시상을 하는 포드 2세 회장과 중역 일행을 본다. 그는 이어 말한다. “차를 파는 게 저 사람들 일이니까. 네가 약속했던 건 레이스였어. 우승이 아니야. 끝내주는 레이스였어. 끝내주는 차야. 빠르지. 더 빠를 수 있었어. 7리터 엔진은 좋지만 차대는 지금보다 가벼워야 해. 접합 알루미늄이 어떨까 싶은데. 더 갈아엎어야겠지만 효과 좋을 거야. 한 100kg 줄일 걸. 그럼 여기서 뭐하고 있어? 샤워하고 차도 좀 마시고. 샌드위치나 하나 먹고 가자. 내년에 전부 다 박살내버리자고.” 적재적소로 대사를 아끼면서 과시적이지 않은 스타일로 드라마를 운반하고 미국 작가주의 영화의 무궁한 소재인 전문가주의의 내밀한 본질을 장쾌한 시각적 묘사로 그려낸 <포드 v 페라리>는 다른 한편으로 할리우드의 위선적인 프로파간다와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을 시스템의 도구화를 거부하는 두 주인공 장인을 통해 은밀히 수행하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독 제임스 맨골드는 부담 없이 영화를 보게 하면서도 곱씹을 것이 많은 이미지와 대사의 절제된 인장을 통해 장르영화의 작가주의가 여전히 가능한 미국영화의 위대함을 역설한다. 흥미롭게도 영화의 끝 장면에는 시스템의 도구일 수밖에 없는 개인들의 운명을 긍정하는 재치있는 언급이 나온다. 켄 마일스가 죽은 후 차 세일즈 비즈니스에 심드렁한 채 시간을 죽이던 캐롤 셸비는 켄 마일스의 집을 찾았다가 그의 아들 헨리를 집 앞에서 만난다. 안부 인사를 전하다가 캐롤은 켄이 쓰던 렌치를 헨리에게 건네주며 말한다. “공구는 쓸모 있지. 이걸로 뭘 만들거나 고치기도 하거든.” 그는 말을 잇지 못한다. “네 아빠는...” 헨리가 말을 이어받는다. “아저씨 친구였죠.” “그래. 친구였지.” 인간이든 공구이든, 각자의 쓰임대로 뭘 고치거나 만들면서 존재할 이유를 얻는다. 그리고 친구가 된다.
미성숙한 작가의식 < 수절 >(1973)은 하길종 자신의 말과 글에 의해 한동안 신비화된 작품이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UCLA 대학원 동문이었으며 졸업 작품으로 MGM에서 주는 주요한 상을 받았고 귀국해서는 한국사회의 폭압성을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풍의 전위적인 스타일로 형상화환 데뷔작 < 화분 >(1972)으로 비평적 스캔들을 일으켰던 하길종은 당시의 충무로를 활동사진적 의식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전근대적 장터와 같은 곳으로 비유했으며 자신을 그 불모지에 처한 순교자 내지는 희생자로 여겼다. 대학원 동문 코폴라는 <대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본인은 영화예술의 폐허 한국에서 검열과 낙후된 시스템의 이중고 속에서 고통받는, 미완의 영화작가일 수밖에 없는 운명의 순교자로 여겼다. 이 나르시시즘은 그의 예리한 평문이 지닌 설득력 덕분에 한동안 별다른 이의 없이 받아들여졌는데 그 예시가 되는 작품 중 하나가 <수절>이었다. “<화분>을 연출한 후 써낸 나의 시나리오는 매번 제작자의 거부반응을 받거나 칼자루를 든 관(官)에서 항시 보이코트를 받아왔다. 최대한도로 현실과 타협해서 만든 <수절>은 ‘저항적이다’ ‘반사회적이다’는 이유로 20분이 커트 당했고 극장에서는 알맹이가 빠진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졌다.” 사지가 잘려나갔다는 고통을 하길종 스스로 느꼈다는 <수절>의 검열 수난사는 그의 말대로 검열에 다치지 않은 온전한 상태로 공개됐다면 다른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는 함의를 남긴다. 1970년대의 엄혹한 유신정권 시대의 검열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지금 남아 있는 필름 <수절>에서 하길종의 영화작가로서의 재능은 그의 자의식에 비해 별로 드러나는 게 없다. 그보다는 한국영화의 부족한 물적 시스템을 아랑곳하지 않고 현실에 비해 이상만 높았던 야심가의 무모한 시도가 참혹하게 실패한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수절>의 배경은 한사군 시대. 행복한 삶을 살던 유는 아내 길과 딸 영을 남겨두고 전쟁터로 떠난다. 유는 적군의 포로가 된다. 10년 만에 돌아온 유는 아내와 딸을 만나지만 그들이 귀신임을 알게 되고 사건의 전모를 전해 듣는다. 유의 귀환을 믿었던 아내와 딸은 빈곤과 전염병, 가뭄을 이겨내지만 도읍의 실력자인 장군에게 모녀가 함께 윤간, 살해당한다. 마지막 시퀀스는 유와 장군의 결투. 폭정에 대한 저항이라는 알레고리는 쉽게 드러나지만 장면의 컨티뉴어티 조차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쇼트의 연결은 조악하다. <수절>의 전반적인 문제는 아무리 검열과 열악한 제작환경의 이중고를 겪었다고 하더라도 1970년대의 다른 한국영화에 비해서도 완연히 처지는 구성감각이다. 쇼트와 쇼트가 붙는다는 느낌이 없이 쇼트 하나에 잔뜩 힘을 주지만 그 다음 쇼트와의 배열에는 무능한, 검열에서 잘린 탓이라고 하기엔 장면들내의 리듬이 아예 성립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다. 초반에 유가 귀신이 된 아내와 딸을 만나는 장면을 비롯해 이 영화에는 미조구치 겐지의 < 우게츠 이야기 >의 영향이 희미하게 어른거리지만 이걸 인용, 참조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것이 수평적 비교가 아예 불가능한 수준에 머물기 때문이다. 한때 하길종의 동료였던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홍파 는 이에 관해 영화진흥공사에서 발간한 <영화>지에 실은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매섭게 지적했다. “하길종이 ‘활동사진’論을 약간 늦춘 것은 그 자신이 두 번째 연출한 <수절> 이후쯤이라고 생각되는데, 그것은 그 작품이 그가 그렇게 매도해 마지않았던 ‘활동사진’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결과의 양심이었음에 분명했다. 그는 비로소 한국영화 풍토를 익혔으며 진정한 추태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제작 실태의 과정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그는 천천히 고독해 갔다. 그는 많은 사람들과 만났지만 더욱 고독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그를 어느 제작자도 찾지 않았다. 괴팍하고 열기찬 그는 제작자들이 원하는 고분고분한 성격도 아니었다. 그는 서라벌예대, 서울예술전문교의 학생들에게 영화 열정을 심어주려 애쓰기도 했다.” 그 이후의 하길종의 삶은 우리가 아는 바 그대로다. 그는 지속적으로 매서운 필봉을 휘둘렀으며 (감독으로서만큼이나 비평가로서 하길종이 한국영화사에 기여한 공로는 크다) 한국영화시스템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그 자신의 영화적 호흡을 가늠하게 하는 준수한 영화를 만들었다. < 바보들의 행진 >과 < 속 별들의 고향 >, < 병태와 영자 >는 동시대의 한국영화계를 내려다보는 오만 없이 수평적으로 영화인들과 소통하면서 해낸 상대적으로 성공한 그의 작업결과물이다. <수절>까지의 그는 병사들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돌격을 명하는 전쟁터의 무모한 장군과 같았다. <수절>에는 그런 지휘자의 돌격 구호에 따라 배우들이 느꼈을 엄청난 물리적 고통이 화면을 통해서도 느껴지는 장면들이 많다. 구원에의 전망이 사라진 고대 세계를 묘사하면서 하길종은 당대의 한국사회를 비유하려 했다. 그것이 너무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만큼이나 폭정, 억압, 가난, 전염병에 시달리는 <수절>의 화면 속 인물들의 고통도 생생하다. >> 수절 고화질 VOD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