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랑스
- 감독
- 김영현
- 제작년도
- 2016
사진: 창비 박사학위논문 제출 기한이 약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시점, 나는 여전히 명확한 주제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매일 전전긍긍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던 때였다. 남은 시간을 꾸준히 쓰기만 해도 눈사태처럼 쌓여 있는 백지를 채우기에는 준비해둔 것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마음속엔 무언가 가득했다. 그것은 대학원 시절 내내 또는 사회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래로 계속 누적되었던 불만과 환멸, 분노와 냉소 같은 것이었다. 십여 년 동안 대학원의 골방에 묵으며 쌓인 이런 정념이 내가 가진 유일한, 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자원이라고 주문처럼 되뇌면서 대학에 들어온 이래로 보고 겪어온 장면들을 수없이 복기하곤 했다. 나의 대학 시절은 참여정부의 탈권위주의적인 기조와 더불어 월드컵 이후의 희망과 자신감,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 등 변화에 대한 기대와 전망 속에 펼쳐졌다. 사회 전반의 자유주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학생운동 역시 아직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페미니즘, 장애인권, 신자유주의 비판 등 여러 진보적인 담론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유통되었다. 물론 이와 같은 ‘열린 사회’의 환상을 깨는 사건도 많았다. 이라크 파병과 노동자들의 죽음, 대학의 기업화, 한미 FTA 등. 주변에는 한나라당만큼이나 노무현을 싫어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이명박이 당선되던 날의 그 우울함을 기억한다. 숭례문 화재와 명박산성, 용산참사와 쌍용차, 노무현의 죽음, 4대강 사업과 천안함 의혹 등으로 점철된 5년. 그리고 이어서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는 이미 무너진 사회가 물에 잠기는 듯한 절망감이 들었다. 그런 이명박근혜 시대를 기어이 우리 손으로 끝내던 그때 그 광장에서 우리는 얼마나 오랜만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를 품었었는지. 그런데 드넓은 광장에 촛불이 물결처럼 넘실대던 그 ‘스펙터클’ 이후 한국사회는 과연 얼마나 더 좋은 사회가 되었는가? 민주주의를 지켜냈다고 자부하는 이들은 어떤 사회를 만들어냈는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지켜낸 공(功, merit)을 가져간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그들의 자녀는 어떻게 대학에 가고 어떻게 변호사나 의사가 되는가? 그들은 여성 비서에게 무슨 짓을 하는가? 이토록 ‘민주적인’ 사회에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매일 같이 죽어가는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구의역 김군과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은 왜 죽었는가? 왜 동성애는 (심지어 ‘민주’당 대선 후보에 의해서도) 반대되는가? 왜 장애인은 아직도 버스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싸워야 하는가? 과연 한국의 민주주의는 누구의 것이고 누구를 위한 것인가? 민주주의의 ‘민’에 속하는 이들은 누구이고 속하지 못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한국 민주주의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민주주의가 이대로여서는 안 되지 않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을 학문의 언어로 던지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시도를 가능케 한 것은 하나의 은유였다. 역사는 극(劇, drama)이라는 것. 가깝게는 지난 2024년 12월 하룻밤 사이에 계엄 선포와 해제가 휩쓸고 지나갔을 때도 국내외 언론에서는 K-드라마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했지만, 그 이전부터도 한국 현대사에는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질 법한, 그리고 이미 만들어져 관객들로부터 감동을 자아내는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리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영화 같은 역사, 드라마틱한 역사를 겪으며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한국인들이 전 세계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 중 하나가 되지 않았는가. 나는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가 한 편의 드라마라는 이 은유를 단순한 수사로서가 아니라 진지한 발판으로 삼았다. 만일 역사가 극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영화와 드라마가 그러하듯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민주주의라는 극은 좋은 극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도 이런 극을 보며 감동해도 좋은가? 계속해서 이런 드라마를 만들어내며 자랑스러워해도 되는가? (상) <오! 꿈의 나라>, <명성, 그 6일의 기록> 중 / (하) <꽃잎> 중 / © 이은, 푸른영상, ㈜미라신엔터테인먼트 이에 답하기 위해서 나는 먼저 한국 민주주의라는 영화 혹은 드라마가 어떤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살펴봤다. 역사라는 극을 구상하는 작가로서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장면을 기억하고 기대하는지, 그리고 극에 참여하여 연기하는 배우로서 우리가 어떤 장면을 상연해왔는지 살펴봤다. 1980년대를 한국 민주주의의 가까운 기원으로 설정하고, 이 시기에 생산되었거나 이 시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 사진, 소설, 시, 그림, 노래, 수기 등을 되는대로 수집하여 보고 읽고 들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와 5․18기념재단 사진아카이브 를 매일 들락거렸고, 대학 도서관과 국회도서관, 유튜브,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등을 뒤져서 < 오! 꿈의 나라 >(이은, 장동홍, 장윤현, 1989)나 < 꽃잎 >(장선우, 1996), < 명성, 그 6일의 기록 >(김동원, 1997) 등을 보았다. 임철우, 공선옥, 김영현, 공지영, 권여선 등의 소설을 읽었고, 각종 도록과 온라인 갤러리에서 오윤, 신학철, 홍성담, 강요배, 임옥상 등의 민중미술 작품을 찾아서 보았다. 1980년대의 여러 일간지를 교차하여 훑어보고 나무위키까지도 활용하면서 각종 사건을 연도별·월별로 숙지했고, 사건의 장소를 지도와 영상에서 찾아보거나 직접 가보기도 했다. 길을 오갈 때는 꽃다지부터 안치환, 윤선애, 이성지, 그리고 김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온갖 민중가요를 들었다. 인용을 위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2017)나 『소년이 온다』(2014)를 다시 들춰볼 때면 책을 덮지 못하고 계속해서 읽어나가기 일쑤였고 영락없이 눈물을 쏟곤 했다. 낮에는 이제 막 백일이 지난 아이를 돌보며 그 생명력에 감격하다가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에는 광주항쟁 희생자들의 훼손된 주검 사진을 보며 이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작품들을 섭렵하는 일은 연구를 위해 각종 표와 숫자로 이루어진 자료(data) 속에 파묻히는 작업과는 달랐다. 그것은 연구이기 이전에 한국에서 사회학을 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역사적 교양을 뒤늦게 습득하는 과정이기도 했고, 나보다 앞서 세상을 겪으며 살아온 이들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나 역시 보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그로부터 또다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문화적 과정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간혹 주변에서 나의 근황을 물을 때면 나는 소설도 읽고 영화도 본다면서 ‘문화생활’을 하고 있다고 가볍게 답하곤 했지만, 그것은 “세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지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의미의 망(webs of significance)”에 동참한다는, 진지한 의미에서의 문화생활이었다. [1]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 나아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신념처럼 간직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보았거나 기억하는 장면들, 그리고 내가 본 다양한 자료의 페이지마다, 이어지는 다음 장면마다 등장하는 것은 어떤 몸의 이미지였다. 그것은 때로는 곤봉과 개머리판에 맞아 터지고 덜렁거리는 몸, 벌벌 떨며 밀실의 욕조나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몸, 해체되고 허물어진 채 부패해가는 몸이었고, 때로는 뒷사람에 밀려 앞으로 앞으로 넘실대며 나아가는 몸, 주변의 건물을 울림통 삼아 웅장한 구호와 노래를 뿜어내는 인파의 거대한 몸집이었다. 그리고 이런 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이런 몸의 이미지를 보는 나의 몸 역시 차분할 수 없었다. 숨을 고르며 한숨을 내쉬고, 눈물을 흘리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언가 벅차오르기도 했다. 한국 민주주의라는 영화는 온몸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하지만 나는 이런 영화를 계속 이어나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국 민주주의는 너무나도 감동적인 드라마이지만, 이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과연 살만한 것이었는가? 누군가는 말한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김대중, 2009년 1월 7일 일기)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한다. 사진: 네이버 영화 “너 정말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냐? 네가 일기에 그렇게 썼대? 삶은 아름다운 거라고.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해?” - < 박하사탕 >(이창동, 1999) 중 김영호( 설경구 ) 한국 민주주의가 성취되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 몸과 마음에 회복될 수 없는 흔적을 가진 이들이 부지기수이며,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도 허다하다. 누군가는 자신의 목숨을 잃었다. 한국 민주주의는 찬란한 역사였지만, 그 속에서 살아온 이들의 삶 역시 축복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자랑스러워도 이런 민주주의를 계속할 순 없을 것이다. 마냥 자랑스러워하기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물론 무대에서의 죽음을 목격하고서 객석을 박차고 나가 민주주의를 지켜낸 경험을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주역’들에게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대단한 감동을 주는 자랑스러운 영화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영화 < 1987 >(장준환, 2017)에서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져요?” 하고 냉소하던 연희( 김태리 )가 선배 이한열( 강동원 )의 죽음을 보고 회심하여 광장으로 달려나가면서 민주주의라는 극의 국면 역시 결정적으로 전환되었음을 현실에서 경험한 이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민주주의라는 극에 배우로서 참여하지도 않았고, 객석에서 이러한 극을 보며 감격하지도 않았던, 민주주의의 극장 밖에서 살아온 이들도 있다. 민주주의의 주역들이 민주화된 사회를 향유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고된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민주주의란 낯선 것이었고 남의 것이었다. 이들의 동등한 시민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거나 부정하기까지 했던 자들이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의 주인공 아니냐’며 함께 무대로 올라가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자고 호소한다면 극장 밖에선 아마 이런 목소리가 들려올지 모른다. <1987>, <극장전> 중 / 사진: 네이버 영화 , ㈜영화제작전원사 “영화를 정말 잘못 보신 것 같아요. 자긴 이제 재미 봤죠? 그럼 이제 그만, 뚝!” - < 극장전 >(홍상수, 2005) 중 영실( 엄지원 ) 모두의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그런 민주주의를 계속해나갈 수도,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라는 극의 작가이자 배우로서 우리는 죽음-결집의 레퍼토리와 함께 몸과 마음이 쪼개졌다가 커지기를 반복했다. 스펙터클로 점철된 이러한 영화가 주는 극적 쾌감이 대단하긴 하지만 이러한 역사를 우리 삶의 보금자리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덜 자랑스럽고 덜 극적이더라도 모두가 평등하고 평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희망하며 만들어 볼 수는 없을까? 내란과 탄핵을 겪으며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수호의 이력을 다시 한 줄 추가하게 되었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이 최근의 역사를 완전무장 하고서 국회로 쳐들어온 계엄군이나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은 시민들이라는 스펙터클로만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겨울 광장에서 시민들은 소수자와의 연대, 성평등, 노동 있는 민주주의, 평화와 안전, 기억과 애도 등을 외쳤다. [2] 이러한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거기에 힘이 보태진다면, 크고 대단한 장면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모두가 아끼는 삶의 터전이 될 것이다. 다른 민주주의를 향한 변화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 [1] 막스 베버, 「사회과학적 및 사회정책적 인식의 “객관성”」, 『문화과학 및 사회과학의 논리와 방법론』, 김덕영 옮김, 길, 2021, 293쪽; 클리퍼드 기어츠, 『문화의 해석』, 문옥표 옮김, 까치, 1998, 13쪽. [2] 유현미․김이선․김정환․박상은․장진범, 「광장에서 만난 세계: 윤석열 퇴진 집회 시민발언문 분석」, 『경제와 사회』 146. Behind the Book : 저자에게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 한 사람의 질문이 늘어나고 깊어진 끝에 수백 쪽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마침내 책 한 권으로 독자에게 닿은 저자가, 치열하고도 가치 있던 여정을 들려줍니다. 김정환(사회학자) l 문화사회학, 사회이론을 전공 분야로 삼고 있다. 『연구자의 탄생』(2022, 공저),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2020, 공저) 등의 책을 썼으며, 『신자유주의적 상상』(2026, 공역), 『사회론』(2015) 등의 책을 옮겼다. 사회학의 이론과 방법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다양한 문화 현상의 해석을 통해 한국 모더니티의 전개와 변화를 탐구하는 작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영화배우 김석훈 . 요즘 젊은이들이라면 흔히 TV드라마 <홍길동>에 출연, 스타덤에 오른젊은 탤런트 김석훈을 얘기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이들 둘은 아주 다른 남남이다. 이를테면 동명이인. 탤런트 김석훈 은 20대이지만 원로배우 김석훈은 70대이다. 본명 김영현. 호적나이 78세(24년 생)로 되어있으나 본인말로는 잘못된 것으로 74세라는 것. 청주사범 출신으로 서울지방 법원서기로 근무하다가 촬영기사출신인 유재원 감독의 < 잊을 수 없는 사람들 >(1957)로 데뷔했다. 박 암 과 요즘은 활동을 안 하는 하연남 과 함께 주연한 작품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하연남 과 결혼한 신혼남편이었으나 6.25로 우여곡절을 겪다가 하연남이 박 암 과 재 결혼한 후 다시 나타나 박 암을 살해하는 비극적 내용이다. 유재원 감독의 유려한 화면과 빠른 템포, 거기에 적당한 신파조가 물려 대 히트했다. 이제까지의 출연작은 주연이 2백 30여 편. 여기에 조연을 포함하면 2백 50편 정도 된다. 묘하게도 부드러운 이미지의 그가 히트시킨 영화를 보면 거의가 액션이다. 특히 정창화 감독과 김묵 감독 작품이 대부분이다. 58년 금고수리공으로 홍콩에 갔다가 악당들에게 몰려 온갖 고생 끝에 탈출하는 < 망향 >(1958, 정창화) 전창근 감독, 이용민 촬영의 < 수정탑 >(1958). 신상옥 감독의 < 춘희 >(1959) < 지상에서 맺지 못할 사랑 >(1960) < 대지여 말해다오 >(1962, 정창화 ) < 슬픔은 없다 >(1962, 김묵) < 대평원 >(1963, 정창화) < 싸우는 사람들 >(62, 김묵) 등 부지기수이다. 특히, 최관두 씨 제작에 정창화 감독, 김지미 , 황해 와 함께 주연했던 < 햇빛 쏟아지는 벌판 >(1960)은 대 히트했다. 이 여세를 몰아 역시 최관두 씨 제작에 임권택 감독이 데뷔한 < 두만강아 잘 있거라 >(1962)에서 톱스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김씨는 당시 < 햇빛 쏟아지는 벌판 >이나 < 두만강아 잘 있거라 >와 같은 전쟁영화에서는 총격전 장면을 진짜 총으로 실탄을 쏴 죽음을 놓고 영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흔히 경찰사격 특등사수들이 M1소총을 들고 나와 동료들이 있는 부근의 바위나 건물벽 또는 땅에다가 직접 쏴 댔어요. 연기는커녕 혼비백산했었지요." 김석훈 씨는 그러면서도 '잊혀져 가는 것은 아름답지 않느냐' 반문했다. 당시 콤비였던 여배우는 최은희 , 엄앵란 , 김지미 . 남자는 형제처럼 지낸 황해 , 박노식 , 장동휘 를 꼽는다. 그렇다고 김석훈이 액션영화만 한 것은 아니다. < 고개를 넘으며 >( 이용민 ), < 내 사랑 그대에게 >( 하한수 ) < 동심초 >(1958, 신상옥 ) < 사랑의 십자가 >(1959) < 슬픔은 없다 >(1961, 김묵 ) <어디로 갈까>(1960) < 내 마음의 노래 >(1960) 등 멜로도 수두룩하다. 대표작이라면 장일호 감독, 신영균 과 공연한 < 일지매 >다이내믹한 템포와 유려한 화면에 비록 흑백영화라도 높이 평가받았다. 기억하고 싶은 영화는 < 자매의 화원 >(1959, 신상옥) < 독립협회와 청년이승만 >(1959, 신상옥)에서의 서재필 역. < 슬픈 목가 >(1959, 김기영 ) < 로멘스빠빠 >(1960, 신상옥)에서의 선생역할 등. 김석훈 하면 지금도 행적을 잘 알 수 없을 정도로 혼자 떠돌며 식도락을 즐기는 '나홀로'파이다. 전성기 때였으니 어땠으랴, 이 퇴계 영화가 있다면 딱 어울릴만한 지성미와 어진 이미지가 주무기였다. 그러면서도 남성적 마스크를 지녔으니 금상첨화였지 않을까. 흔한 악극단 연극배우 출신도 아니면서 연기에 뛰어 들어 「기린아」취급을 받았다. 데뷔영화 < 잊을 수 없는 사람들 >에 그가 뽑힌 것은 행운중의 행운. 당시 유재원 감독은 신인모집을 해서 다른 사람을 당선시켰는데 우연히 길에서 그를 보고 대뜸 주연으로 픽업, 화제가 됐었다. 그때 받은 개런티는 엄청나서 5∼6년 동안 돈걱정 없이 실컷 썼다고 자랑한다. 김석훈 하면 당시 육체파로 유명했던 김의향 과의 러브스토리가 유명하다. 김씨의 부리부리하고 깔끔한 남성미에 불타는 듯한 마스크와 육감적인 몸매의 김의향은 명콤비였다. 이들 둘은 결국 결혼, 숱한 부러움 속에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2∼3년 두고 후배인 이택권, 강숙희 콤비와 비슷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 영화를 이끌어 나갔다. 그러나 두 커플은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각각 서로 헤어졌지만 당시 영화계에서는 대단한 인물들로 평가받았다. 김석훈 하면 유명한 미식가에 멋쟁이. 당시 명동 사보이 호텔 일식 집에서 회를 먹는 단골이었으며 주량도 정종1병이 다반사였다. 언제나 혼자 다니던 그는 청진동 칠복이네 집에서도 저녁이면 술잔을 혼자 놓고 상념에 젖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당시 자가용은 50년대 말의 윌리스 지프. 60년대와 70년대는 영국산 모리스 세단을 모는 몇 안 되는 멋쟁이였다. 명동에서 식사하고 커피를 마신 후 모리스를 타고 촬영장으로 떠나던 그의 모습은 당연히 '명동신사'그것이었다. 제 17회 대종상에서 < 이순신 >으로 특별상을 받은 게 그의 유일한 수상경력. '옛것은 아름답다'는 말이 있듯이 김석훈도 80년대 들어 뜸하다가 93년 < 비오는 날의 수채화2 >이후 화면에서 모습을 찾을 수 없다. 70년대 영화를 보면 월남전을 로케 했던 이만희 감독의 < 얼룩무늬 사나이 >(1970) < 요화배정자 > < 삼일천하김옥균 >(1972, 신상옥 ) < 이 생명 다하도록 >(1972, 신상옥) < 불꽃 >(1975, 유현목 ) < 짝 >(1976) < 비목 >(1977, 고영남 ) < 세종대왕 >(1978, 최인현 ) < 팔만대장경 >(1978) < 장마 >(1978, 유현목) 등. 80년대 들어서는 < 사람의 아들 >(1980, 유현목) <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1982, 정지영 ) 등이 손꼽을만하다. 김석훈 은 흔히 프랑스 배우 쟝가방의 눈매와 타이론 파워의 몸을 지닌 한국배우로 당시에 평가했었다. 또는 한국의 캐리그랜트라고 불리기도 했다. 해맑은 눈매, 꽉 다문 입매무새, 날렵한 몸맵시, 지성미등이 합쳐져서 그랬으리라. 결국 잰틀맨 뉘앙스가 오늘까지 그를 살게끔 했으리라. 그러나 그렇게 화려하게 시대를 풍미했던 그도 요즘은 조용히 은둔한다. 지긋한 연세 때문인가. 그는 김포공항 넘어 방화동 인근에서 2남1녀를 두고 산다. 부인은 김연식 씨. 큰아들은 컴퓨터 전문가, 둘째 아들은 요즘 한창 영화계에서 뛰는 젊은이, 외동딸은 막 태어난 탤런트이다. 얼마전이다. 그는 후덥한 분위기지만 약속시간이나 매너는 칼같이 지키는 사람., 필자가 교통사정으로 20분 늦었더니 10분 기다리다가 훌쩍 가버려 이틀 후에 다시 만나는 일이 있었다. 만나는 날도 아니나 다를까 회색빛 베레모, 검정코트를 목까지 잠그고 벨트를 꽉 맨 채 떡벌어진 매무새가 여전히 당당해 보였다. 우연히 나도 검정 베레모를 쓰고나와 커피 숍에서 숱한 이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자리를 이동해 간 곳은 광화문 뒷골목, 일본식 목로주점. 이 날 마신 술은 각각 정종대포5잔과 메추리구이와 닭꼬치구이 각각4개. '옛날 젊은 시절 같은 분위기'라며 반가워하던 그는 결국 옆 음식점에서 2차로 소주 2병을 비우고 '내일 지방에 가야한다'며 일어났다. 맥주로 입가심은 절대 사절. '도수가 약한술은 절대 안 마신다'는 신조를 밝혔다. "김형, 요즘 영화는 너무 따분해. 템포는 빠르고 애기꺼리도 있는 것 같은데, 너무 가볍다는 느낌이 들어."... 역시 세월이 가도 노배우는 아직까지 우리영화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고 있었다. 김량삼 (영화감독) / 2002년 <프로필> 본 명 : 김영현 출 생 : 1929년 6월 8일, 경기도 이천 학 력 : 청주사범대학교 졸업 데 뷔 : 1957년 유재원 감독 < 잊을 수 없는 사람들 > 수상경력 : 대종상(17회) 특별상 등 다수 주요작품 : < 춘희 >, < 햇빛 쏟아지는 벌판 >, < 지평선 >, < 의적 일지매 >, < 두만강아 잘 있거라 >, < 열풍 > 등 200여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