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루션
- 감독
- 우석인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김진구, 신범철, 하현진
2002년 | 좋은영화, 영화사 시선 감독: 장규성 | 각본: 손재곤 | 각색: 이원재 이원형 | 제작: 김미희 한지승 안영준 | 기획: 강우석 | 촬영: 김윤수 | 미술: 오상만 강승용 | 음악: 손무현 CAST 무라카미: 김수로 | 황보: 임원희 | 하나코/상미: 김정은 | 갑두: 서태화 2002년은 한국영화가 아마 가장 폭주했던 시기였습니다. 과감하고 극단적인 시도들이 이어졌죠. 흥행 재난을 맞이하긴 하지만 <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 장선우 )이 파격적인 기획이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 복수는 나의 것 >이 나왔던 것도 2002년이었죠. < 죽어도 좋아! >( 박진표 )나 <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 >( 이무영 ) 같은 영화도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장규성 감독의 < 재밌는 영화 >도 ‘2002년스러운’ 영화였습니다. 할리우드에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패러디 영화였는데요, 무려 33편의 한국영화가 코믹하게 인용됩니다. 월드컵 한일 공동 개최를 반대하는 일본 천군파는 기념 공연이 이뤄지는 곳에 폭탄을 설치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 중심엔 한국은 무조건 싫어하는 무라카미가 있죠. 김수로가 역할을 맡았는데요, 단정한 양복에 뿔테안경을 쓴 지적인 모습이었지만… 곧 부채춤을 추는 족두리 한복 차림으로 바뀝니다. <재밌는 영화>는 전주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 날 촬영도 전주에 있는 소리문화의 전당에서 이뤄졌죠. 관객으로 무려 2,000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되어야 하는 신이었는데요, 대규모 군중 역시 전주시의 도움으로 쉽게 모을 수 있었습니다. 부채춤을 추는 공연자들은 전주예고 무용과 학생들이었습니다. 한편 붉은 악마들 옆엔 이 날 사건을 막기 위해 남한의 KP 요원 황보(임원희)가 있습니다. 황보는 일본에서 온 저격수 하나코/상미(김정은)와 러브라인을 형성합니다. <쉬리>(강제규. 1999)의 한석규-김윤진 커플에 대한 패러디죠. 천군파가 무대에 설치한 폭탄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상미는 직접 무대 위로 올라가 폭탄을 손에 들고 소리칩니다. “모두 꼼짝 마!” 이 시기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빴던 배우였던 김정은은 촬영 기간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현장에서 집중력 만큼은 최고였습니다. 남한의 대통령(김인문), 북한의 국방위원장(정진각) 그리고 일본 천황(정재진)이 한 자리에 모여서 공연을 관람하고 있습니다. 2,000명의 엑스트라와 세 대의 카메라가 동원된 대규모 현장이었습니다. 이 영화로 데뷔하는 장규성 감독에겐 다소 버거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확성기를 들고 현장을 지휘하는 모습은 베테랑 감독을 연상시켰습니다. 10년 동안 연출부 생활을 했고, 특히 김상진 감독과 세 작품을 함께 하면서 쌓은 내공 덕분 아닐까 싶습니다. 장규성 감독이 김정은에게 장면 컨셉을 전하고 있습니다. 당시 김정은은 밝고 코믹한 이미지로 사랑 받는 스타였죠. 첫 영화도 역시 코미디 장르로 선택했는데요, “고정된 이미지란 대중이 그 배우에게 가장 보고 싶어하는 이미지”라고 이야기합니다. 공개된 또 하나의 신은 도심 총격 액션 장면이었습니다. <쉬리>에서 가져온 신이죠. 촬영 장소는 역시 전주시의 전격적인 협조로 전주시의회 앞 도로에서 대대적인 교통 통제와 함께 이뤄졌습니다. 버스를 장악한 무라카미가 기관총을 난사합니다. 건너편에선 남한의 KP 요원인 황보와 갑두(서태화)가 대응합니다. 긴장감 넘치는 장면인데… 뭔가 지나치게 진지한 모습이 오히려 웃음을 자아냅니다. 천군파 요원인데요, 앞에 있는 김학규는 199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그룹 ‘노이즈’의 멤버였습니다. 뒤에 있는 사람은… 낯이 익으실 텐데요 배우 임형준입니다. <쉬리>에선 OP 특공대원 역할이었는데요 이번엔 천군파 요원입니다. 총격 신을 위해 특수효과 스태프들이 자동차에 장치를 하고 있습니다. 긴장감 넘치는 현장이었지만, 인근 주민들에겐 좋은 구경거리였습니다. 비가 오는 날씨에도 우산을 쓰고 많은 사람들이 현장 견학(?)을 했습니다. 이 날 장면의 하이라이트는 버스 폭파 신이었습니다. 컷 사인이 나자마자 소방대원들이 달려와 소화 작업을 했습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 큰 규모의 스펙터클을 만들어내고 특수효과가 동원되는 장면이었음에도 장규성 감독의 현장 장악력은 돋보였습니다. 임원희와 서태화와 김수로. 그들은 <재밌는 영화>를 더욱 ‘재밌게’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경쟁적으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2002년 | 태원엔터테인먼트 감독: 정흥순 | 각본: 정흥순 최해철 | 각색: 김영찬 | 제작: 정태원 | 기획: 권영락 유정호 | 촬영: 김윤수 | 미술: 오상만 | 음악: 박정현 CAST 박대서: 정준호 | 장진경: 김정은 | 장인태: 유동근 | 장석태: 성지루 | 장경태: 박상욱 | 장 회장: 박근형 2001년 < 조폭 마누라 >( 조진규 )에서 시작된 2000년대 충무로의 ‘조폭 코미디’ 바람은 < 가문의 영광 >(정흥순. 2002)에서 정점을 맞이합니다. 로맨틱 코미디와 조폭 영화를 결합한 <가문의 영광>은 2012년까지 10년 동안 다섯 편의 시리즈로 이어졌죠. 그 중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건 물론 1편이고, 김정은은 ‘나 항상 그대를’ 장면과 함께 영화계에서도 톱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현장 공개는 촬영이 75퍼센트 정도 진행되었던 7월의 더운 여름날, 양수리의 한 레스토랑에서 이뤄졌습니다. 대서(정준호)와 진경(김정은), 양가의 상견례 장면이었죠. 대서의 아버지( 심양홍 )와 어머니(김해숙), 그리고 진경의 세 오빠와 아버지(박근형)가 처음으로 만나는 신입니다. 깡패 집안이랑 사돈을 맺을 수 없다고 버티던 대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릅니다. 반면 장씨 집안 남자들은, 마치 조직 이권을 둘러싼 협상 테이블에 참석한 건달들처럼, 거친 행동과 말투로 사돈들을 제압하죠. “아버지, 제 칼을 쓰시죠.” 식탁에 놓인 스테이크를 자르려는 쓰리제이 회장이 나이프가 영 시원치 않다고 하자, 세 아들이 재빠르게 각자의 연장을 꺼내 놓습니다. 더구나 샛째 경태(박상욱)는 다리 쪽에 비수처럼 감춰놓은 칼을 꺼내 대서 가족을 충격으로 몰아 넣습니다. 그러자 장 회장은 건네 받은 칼로 웃음을 머금은 채 스테이크를 난도질합니다. 상견례라고 하지만 진경은 마치 결혼식이라도 하는 듯, 웨딩 드레스라고 해도 손색 없을 하얀 드레스를 입고 부케까지 든 채 등장했습니다. 장면 내내 거친 오빠들 사이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것은 내숭일 뿐, 맨손으로 뱀을 잡는 ‘강한’ 여성입니다. 정흥순 감독과 김정은이 연기 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자연스러운 연기에 애드립이 많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에서 김정은은 거의 애드립을 하지 않았습니다. “불필요한 애드립은 아예 안 하니만 못해요. 욕심을 부리다간 낭패를 보게 되죠. 영화의 흐름을 해치는 것은 물론, 편집 과정에서 잘려나가기라도 한다면 연기를 하다 만 것 같은 느낌만 남으니까요. 전 단지 제가 가진 말투로 편안하게 연기했어요. 가끔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해야 할 때가 있었는데, 철저하게 연습하거나 구사하지 않았어요. 캐릭터를 재밌게 살리는 게 관건이었으니까요.” 이 시기 김정은은 TV 연기와 CF 이미지에서 조금씩 영화 쪽으로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영화는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에 제가 잘 하면서 또한 사람들도 좋아할 수 있는 장르를 선택하고 싶었죠. 물론 코미디 장르가 만만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어필 할 수 있는 저의 매력은 코미디 연기였어요. 전 연기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아요. 그래서 캐릭터의 색깔을 갑작스럽게 혹은 억지로 바꾸는 건 위험하고 또 싫어요. 전 욕심도 있고 열정도 있어요. 조심조심, 차근차근 저에게 맞게 바꿔가고 싶을 뿐이에요.” 1990년대 TV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정준호는 < 아나키스트 >( 유영식 , 2000)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쪽에 진출했고 < 두사부일체 >(2001, 윤제균 )과 <가문의 영광>은 그를 흥행 배우로 만듭니다. <가문의 영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배우는 다름 아닌 첫째 장인태 역의 유동근이었습니다. ‘왕' 이미지가 강했던 그는 이 영화에서 대변신을 하죠. 코믹하면서도 느물느물한 바람둥이 인태가 바로 그 역할인데요, 1980년대 이후 충무로를 떠났던 그는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습니다. 현장에선 어떤 배우들보다도 열심히 시나리오를 분석해서, 말없이 면학 분위기를 조성했죠. 정흥순 감독은 액션, 코미디, 로맨스가 버무려진 맛깔스런 영화를 만들겠다는 게 목표였습니다. 현장에선 부드러운 모습으로 배우들의 자연스럽고 편안한 연기를 이끌었는데요, 틈틈이 배우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애드립과 색다른 아이디어를 현장에서 만들어냈습니다. 쓰리제이 가문의 위풍당당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진경은 무엇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네요. 장 회장이 반갑게 악수를 청하자 대서의 아버지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마지못해 손을 잡습니다. 하지만 인륜지대사인 결혼을 천천히 생각해보자는 대서 아버지의 제안에 성질 급한 장 회장의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집니다. “혹시 시방, 우리 딸내미가 맘에 안 드신다. 이런 말씀입니까?” 깡패 서너 명쯤은 문제없다고 큰소리쳤던 대서 아버지, 무안한 헛기침만 할 뿐입니다.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발견되자 석태(성지루)는 웨이터를 부릅니다. “아야, 너 이것이 머시냐.” 죄송하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불쌍한 웨이터는 석태에게 붙잡혀 어딘가로 끌려갑니다. 이때 막내 경태가 한 마디 거듭니다. “아버지, 오늘 여기 서비스가 영 거시기 헌디 확 엎어버릴까요?” 두 동생을 보며 큰형 인태는 흐뭇한 웃음만 짓습니다. 제작자인 정태원 대표가 현장을 찾았습니다. 김정은은 <가문의 영광>에 이어 < 나비 >( 김현성 , 2003)에서도 태원엔터테인먼트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정준호는 < 흑수선 >( 배창호 , 2001)에 이어 <가문의 영광> 그리고 드라마 <아이리스>(2009)까지 정 대표와 함께 했습니다.
1999년 | 씨네2000 감독: 김태용 민규동 | 원안: 김준희 윤성아 윤제균 차영하 하성실 황병조 | 각본: 김태용 민규동 인정옥 | 제작: 이춘연 | 촬영: 김윤수 | 미술: 오상만 이대훈 | 음악: 조성우 CAST 민아: 김규리 (김민선) | 효신: 박예진 | 시은: 이영진 | 지원: 공효진 | 연안: 김재인 | 고형석: 백종학 벌써 이 영화가 나온 지 20년이 되었네요. 1998년 < 여고괴담 >( 박기형 )이 신드롬을 일으킨 후 1년 만에 나온 <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김태용 민규동, 1999)는, 속편이지만 전작과는 크게 다른 느낌의 독립된 작품처럼 여겨졌습니다. 1편만큼 큰 흥행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이 영화는 컬트적인 반응을 얻으며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죠. 독특하게 김태용, 민규동의 공동 연출 시스템으로 제작되기도 했고요. 김태용 감독의 설명처럼 “전편이 힘과 권력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개인의 감성에 대해 이야기”라고 있습니다. 동성 친구와 담임 선생님에 대한 효신의 사랑과 갈등엔 호러보다는 멜로의 요소가 훨씬 많았으니까요. 현장 공개는 10월에 있었습니다. 양수리 종합 촬영소에 지어진 교실 세트였죠. 효신(박예진)이 자살한 후, 아이들은 국어 교사인 고형석(백종학)과 효신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래서 국어 시간에 교과서를 교탁 위에 올려놓고 수업을 거부합니다. 프로듀서 출신인 백종학은 < 강원도의 힘 >( 홍상수 , 1998,에 이어 두 번째로 배우로서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수업을 거부하고 책상에 엎드려 있는 아이들입니다. “자, 여기 집중해봐! 저기, 조용하고 여기 보라니까! 슛 하면 준비하고 액션 하면 연기하는 거다!” 간단한 장면 같지만, 적잖은 조율이 필요했습니다. 백종학과 김태용 감독의 모습입니다. 이 영화는 김태용 민규동, 두 감독의 공동 연출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그 역할 분담에 대해 김태용 감독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는 내가 연기 지도를 하고 규동이가 모니터 앞에 앉아 콘티를 점검하는 식으로 역할이 나뉘어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이래요. 모니터 앞에 먼저 앉는 사람이 콘티를 보는 거죠. 의자가 하나밖에 없으면 늦게 온 사람이 앉을 수가 없으니까 연기 지도를 하게 되고요. 이건 농담 같은 진담이에요.” 효신이 세상을 떠난 후, 시은(이영진)은 효신의 반으로 찾아가 일기장을 찾습니다. 하지만 찾지 못하고,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죠. 시은은 발로 의자를 차고 교실 밖으로 나갑니다. 효신의 책상 위에 놓인 국화입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적 비극’의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시은을 찾기 위해 제작진은 각종 잡지를 보며 적합한 이미지를 지닌 배우나 모델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캐스팅 회의를 위해 한자리에 모인 날, 알고 보니 사람들은 모두 한 사람의 사진을 가져왔는데요, 바로 이영진이었죠. 강렬한 눈빛에 중성적 이미지를 지닌 육상부 시은은 어쩌면 이영진을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였던 셈입니다. 김태용 감독과 민규동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동기로 < 열일곱 >(1997), < 창백한 푸른 점 >(1998) 등의 단편을 함께 연출한 바 있습니다. “나는 무지 게으른데 규동이는 부지런해요. 그런 데서 약간은 상호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김태용) “타이핑 속도가 빠른 내가 시나리오를 정리하고, 남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태용이가 현장 사람들을 통제한다든지 하는 식이죠.”(민규동) “규동이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 흔히 사소하고 미시적이라 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죠. 나는 남들이 관심을 갖는, 거시적이고 큰 것에 관심을 갖는 편이고요.”(김태용) “태용이는 현실에 관심이 많고, 그것을 꾸밈없이 그리려는 경향이 있어요. 나는 어릴 때 서양 동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국적이 없고 환상적인 걸 좋아하고요.”(민규동) “하지만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가려는 점에서는 같죠.”(김태용) 세트장은 촬영 현장이라기보다는 실제 교실에 가까웠던 분위기였습니다. 아마 <여고괴담> 시리즈 다섯 편 중에서 아이들의 생생한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 아닐까 싶고요. 이영진과 민규동 감독의 모습입니다. 민 감독이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메가폰을 잡은 덴 여고생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세상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삶의 어느 시기보다 에너지가 높은 열일곱, 열여덟 나이 또래 아이들에 대해 할 말이 많았어요. 그리고 내 안에 없는 여성성에 대해, 그리고 여성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억압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었고요.” 이 영화를 보신 관객이라면 낯설게 느끼실 만한 장면입니다. 효신은 죽음을 결정하기 전, 교실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면서 그 환영에 시달립니다. 결국 이 대목은 최종 편집본에 들어가지 못하고 삭제되는데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상당히 많은 신이 이렇게 잘려나갔습니다. 그 과정에 대해 민규동 감독은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픈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박예진은 냉소적인 모범생 효신 역을 맡았습니다. PC통신 포럼을 통해 지원한 500여 명 중 오디션을 통해 뽑혔습니다. “사실 ‘여고’에는 관심이 많은데 ‘괴담’이어야 한다는 게 좀 어려웠어요. 전편은 학교라는 공간으로 표현되긴 하지만 사회 전반에 가해지는 폭력성이라는 화두를 갖고 있어요. 살인이 일어나고 그것에 복수하고… 그로 인한 통쾌함이 있는 거죠.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다르게 접근하고 싶었어요. 한 소녀가 갖고 있는 다양한 면을 보여준다고 할까요?”(김태용) “전편은 입시로 스트레스를 받는 1980년대 여고의 상황을 그렸어요. 하지만 1999년의 여고생들은 입시 외적인 문제로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죠. 두 번째 이야기는 그 현실을 그렸고 다음 세기에는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들은 상처와 슬픔을 담으려 노력했어요.”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6mm 디지털 단편을 찍을까 아니면 뭘 할까 고민하던 김태용 감독은 민규동 감독과 함께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제안을 받고 “우리더러 장편영화를 찍으라고?”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기민 프로듀서를 만났고, 전적으로 두 감독에게 맡기겠다는 분위기여서 영화를 찍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촬영이 이뤄진 양수리 종합 촬영소 세트입니다. 학교의 전체적인 모습은 창덕여고에서 촬영했습니다. 효신 역의 박예진입니다. 오디션 전에 보낸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인상적이었고 그 결과 캐스팅이 되었습니다. 연기 경험이 전무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감정 이입이 뛰어난 신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