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바랜 광주
- 감독
- 김일안
- 제작년도
- 2004
대부분 영화팬들은 이용민 을 60년대 한국 호러영화의 대표작인 < 살인마 >의 감독으로 기억할 텐데, 그는 이 작품 이외에도 < 악의 꽃 > < 목 없는 미녀 > < 공포의 이중인간 >과 같은 구미 당기는 제목의 영화들을 많이 만들었다. 김일안 이 원안을 쓴 < 무덤에서 나온 신랑 >은 63년 작인데, 포스터와 캐스팅만 봐도 알겠지만 코미디 비중이 높은 편이다. 시작하자마자 타이틀롤이 나온다. 혁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무덤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다. 길가에 쓰러진 그는 지나가던 택시에 올라타고 부상을 당했다며 집으로 데려달라고 한다. 집에 도착한 그는 돈을 주겠다며 기사에게 따라오라고 하지만 겁에 질린 기사는 달아나고 만다. 이 정도면 혁이 정말 귀신이긴 한 건가 의심하게 될 수밖에 없는데, 귀신 맞나 보다. 그러니까 귀신이 택시 타고 집에 찾아오는 영화다. 택시에 탄 귀신 이야기는 역사가 꽤 긴 편이니 이는 호러가 될 수도 있고 코미디가 될 수도 있다. < 살인마 >의 도입부를 생각해보면 둘 다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 날은 당연히 혁의 제삿날로, 그의 친구 맹갑과 삼룡이 제상 앞에 앉아 있다. 혁은 자기가 귀신과 결혼해서 신혼 첫날에 이 꼴이 되었으니 오대산 백년골이란 곳에 가서 원수도 갚고 저승길에 갈 때 꼭 필요하니 거기 있는 자기 양복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맹갑과 삼룡이 가는 백년골이란 곳은 ‘삼칠 기도를 드리면 병 가진 사람이 완쾌해서 백 년을 산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 좋은 곳인 거 같은데 그곳까지 가는 길은 호러 경험의 연속이다. 무시무시한 할머니가 나타나기도 하고 선경이란 여자가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다가 달걀귀신과 만나기도 한다. 단지 시나리오에 그냥 ‘달걀귀신’이라고 나와 있는 것이 진짜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선경이란 여자가 목욕하는 걸 훔쳐봤는데 선경이 갑자기 달걀귀신이 되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훔쳐보고 있는 맹갑 앞에 갑자기 달걀귀신이 나타났단 말인가. 계속 읽다 보면 후자인 것 같지만. 둘은 탈박노인이 살고 있는 폐옥에 도착한다. 그들은 자기가 왜 여기에 왔는지 이야기하고 노인은 원수를 갚을 생각이냐고 묻는다. 그냥 사연을 듣고 원혼을 위로할 생각이라고 하자 노인은 그들에게 방을 내어준다. 단지 조건이 있다. 이 마을에서는 사람이 죽어도 다시 살아날까 봐 한 달 스무날 동안은 장사를 지내지 않는데, 마침 한 달 스무날이 된 시체가 들어 있는 관이 두 개 있으니 두 사람이 차례대로 다녀와 못을 박으라는 것이다. 삼룡은 허겁지겁 임무를 완수하지만 겁에 질린 맹갑은 온갖 소동을 연출한다. 임무를 마친 둘은 오월이라는 여자가 약사대전에 들어가는 걸 목격한다. 몰래 훔쳐보니 오월과 탈박노인은 고양이에게 약을 먹여 독살하고 있다. 이 묘사를 보면 걱정이 된다. 당시 충무로 사람들이 고양이를 얼마나 험악하게 다루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 살인마 >에도 수상쩍은 장면이 하나 있다. 엿보다 들킨 둘은 화살을 쏘며 쫓아오는 탈박노인을 피해 달아나지만 결국 잡히고 만다. 이제 그들은 억지로 마을에 머물며 삼칠기도를 드려야 한다. 노인은 계속 약초를 기르며 무슨 실험을 계속하는 거 같은데, 아무래도 아까 잠시 등장한 선경이라는 여자가 그 노인의 딸이고, 노인은 딸의 치료법을 찾고 있는 듯하다. 삼룡은 선경이 혁의 신부라고 확신하고 어떻게 된 거냐고 따지지만 선경은 오히려 결혼해달라며 삼룡을 유혹한다. 그러는 동안 맹갑은 오월이와 엮인다. 그 뒤로 사람인지 귀신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들과 벌이는 소동들이 이어진다. 이 장면들을 보다 꼼꼼하게 묘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유감스럽게도 내가 갖고 있는 시나리오의 지문은 빈약하기 짝이 없으며 몇몇 장면들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아마 내가 이렇게 탈락시킨 장면들이 진짜로 괜찮았을 가능성이 높다. 결말에 가서야 진상이 밝혀진다. 알고 봤더니 선경은 몽유병 환자였고 탈박노인은 지금까지 그 병을 치료하려고 연구 중이었다. 혁은 선경이 몽유병에 걸려 떠도는 선경을 보고 놀라 죽었던 것이고. 다행히도 선경은 치료가 되었고 삼룡은 선경의, 맹갑은 오월이의 짝이 된다. 합동결혼식을 올리겠다며 호들갑 떠는 결말은 발랄하기 그지없는데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저승에 입고 갈 양복을 가져오길 기다리고 있는 혁의 귀신을 기억하는 것 같지 않아 조금은 걱정이 된다.
#1 자식 키우기 한 남자가 비스듬히 누워 포르노를 보고 있다. 엄마는 과일을 깎아 아들에게 가져온다. 포르노에 열중인 아들은 먹기 싫다는 제스쳐를 취한다. 그래도 하나 먹어보라는 엄마는 포크로 과일을 찍어 아들의 입에 가져간다. 귀찮다는데 왜 그러냐며 과일을 집어 던지는 아들. 엄마는 섭섭하다. #2 부쩍 커버린 아이 아들은 게이다. 남자친구와의 오럴섹스에 열중인 아들의 방을 훔치는 엄마. 행위에 열중인 아들과 친구에게 다리를 들어보라고 하지만 그들에게 엄마는 안중에도 없다. 열심히 닦고 방을 나가자 본격적인 섹스가 시작된다. #3 두 어른 엄마는 자해를 했다. 상의를 모두 벗어 가슴이 그대로 드러난 엄마의 상체에는 칼로 그은 큰 상처가 있다. 울고 있는 엄마에게 아들은 화를 낸다. #4 어린 엄마, 늙은 자식 자해로 인해 자리에 누운 엄마에게 아들은 과일을 깎아 준다. 이제야 기분이 좋아진 엄마. 자신만 먹기 미안했는지 아들에게 과일을 권한다. 그러자 아들은 화를 내며 과일을 집어 던진다. 위의 장면들 1997년 제4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며 알려진 <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의 내용은 상기에 적시한 그대로다. 달리 이 영화의 내용을 전달할 방법이 없어 저렇게 썼다. 이 영화는 아들이 포르노를 보고 남자친구(영화의 주인공은 물론 남자다)와 오럴섹스를 하는 환경 속에 ‘엄마’를 끼워 넣는다. 아들의 기이한 행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범한 엄마가 하듯 과일을 먹이려 하고, 방을 훔치는 엄마의 행동이 충돌을 일으켜 ‘대체 이게 뭐냐’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극단적인 상상. 혹은 갈 데까지 간 짓궂음. 이미지도 이러한데, 대사는 물론이거니와 앰비언스(환경음)까지 모두 삭제한 채 음악만이 흐르고 있어 관객에게 ‘이래도 견딜 수 있을까?’라고 묻는 것 같다. 극한까지 몰아가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굉장히 파격적인, 단편 영화가 가질 수 있는 힘을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연출자인 김정구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서 모성의 맹목성 중 한 단면을 단순 무지하게 증폭시켜 스케치해 보기로 하였다. 그것을 위해 모성의 반대말이라고 생각되는 포르노와 폭력의 이미지를 대비시키기로 했다. 나의 저급한 상상은 모성과 포르노를 한 공간에 몰아넣고, 어쩌면 그것이 서로 어울릴 수도 있으리라는 망상에까지 이르렀다.”라고 밝혔다. 모성과 포르노라는 단어가 한 문장에 있는 것도 어색하지만, 그것이 잘 어울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이 과격한 몽상가는 이 영화로 세간에 두각을 나타낸 ‘지하창작집단 파적’의 소속이었다. 김정구를 필두로 윤영호 , 이진우 , 김일안 , 김유하 , 조성제 등의 창작자가 속해있던 이 집단은 협업을 통해 다양한 영화를 만들었다. 서로서로가 어떨 땐 연출로, 어떨 땐 스태프 혹은 배우로 참여하며 < 삼승할망 >(윤영호 감독), < GOD >(이진우 감독), < 피로 물든 세계지도 >(김유하 감독) 등 20여 편이 넘는 왕성한 창작열을 보였던 그들은 ‘파적’. 즉 ‘적막을 깨트린다’는 뜻에 걸맞게 신, 섹스, 낙태 등 금기로 치부되었던 소재를 자유롭게 다뤘다. 다른 이야기지만, 김정구 감독이 ‘장난으로’ 쓴 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우연히 장선우 감독의 눈에 띄어 ‘한국 영화 사상 최악의 재앙’이라 불리는 어떤 영화를 출현토록 하는 씨앗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하창작집단 파적 <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 이후에도 김정구 감독은 < 샴, 하드로맨스 >라는 작품으로 근친상간과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는 남녀의 애절한 사랑의 기묘한 교차점을 선보였고, < 사자성어 >의 에피소드를 맡아 마치 인사하듯이 섹스가 대단치 않은 일인 농담 같은 세상을 그리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파적의 멤버들과 함께 만든 옴니버스 < 좀비처럼 걸어봐 >는 그간의 작업을 정리라도 하는 듯 ‘파적필름’이라는 회사까지 차려 제작된 작품이었다. 파적의 주요 멤버인 김설우 , 윤영호 , 김정구 , 김유하 (이 김유하 감독이 <말죽거리 잔혹사>를 연출한 유하 감독이라는 말이 있는데 확실한 자료를 찾지 못해 언급은 하지 않는다.) 네 명이 각자 하나씩 에피소드를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다. 그들은 이 영화 속에서 광기, 집착, 식인, 죽음 등 그간 탐구해왔던 소재들을 풀어내고 있다. 현재까지 김정구 감독의 마지막 연출작은 OCN에서 제작한 스릴러 드라마 < COMA >의 <붉을 홍> 에피소드이다. (다른 멤버인 이진우 감독은 현재 활발한 활동 중이다.) 지난번에 소개한 <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 >도 그랬지만, 1990년대 말부터 2000년 초는 한국 독립영화계의 억눌린 상상력이 폭발하는 때였다. 당시 영화 산업의 자본주의적 잠재력에 시선이 쏠리고 이에 발맞춰 재능있는 감독들이 하나둘 모습을 나타내며 한국 영화에 희망적 기운이 만발하던 때였다. 각 지자체는 너도나도 영화제를 기획하기 바빴고 뜨고 지는 감독들도 굉장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영화를 제작하던 ‘지하창작집단 파적’은 현재 활동은 멈춰있지만(해산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확실한 자료가 없어 멈춰있다고 썼다.) 금기에 도전하는 파격적인 영상 연출에 대해 한 번쯤은 이야기하고 싶었다. 요즘 상업, 독립 영화를 합친 영화판을 기웃거리고 있으면 왠지, 다시는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그리운 기분이 든다. 요새는 모든 것이 계획되고 과정으로서만 가치를 인정받는 느낌이다. 모험가는 다시 나타날 것인가? 이미지로의 탐험은 이미 끝났는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임근아 ... 엄마 조성제 ... 아들 김일안 ... 아들의 애인 감독: 김정구 각본: 김정구 제작사: 지하창작 집단 '파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