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프린스 1호점
- 감독
- 이윤정
- 제작년도
- 2007
- 출연
- 공유, 윤은혜, 이선균, 채정안, 김창완, 김동욱, 김재욱, 이언, 김영옥, 최일화, 김자옥, 박원숙, 한예인, 이한위
© 파이오니어픽쳐스필름(주) 뻥튀기 제조기가 돌아가는 방에서 한 쌍의 남녀가 섹스한다. “과자 만드는” 자동기계는 계속해서 뻥튀기를 내뿜고, 인물들은 날아오는 뻥튀기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심지어 수북이 쌓인 뻥튀기 위에 누워 관계에 몰두한다.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울 이 기괴한 장면은 김기영 감독의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1978) 전반부에 나온다. ‘죽음에 관한 몇 가지 에피소드’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 일명 ‘뻥튀기 섹스신’은 작품 내적으로 그리 중요한 장면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중요했다. 영화를 열심히 보러 다니며 영화사의 이런저런 사소한 에피소드들(이를테면 훗날 누벨바그로 통칭된 무리 중에서도 자크 리베트의 비평적 안목이 특히 탁월해서 다 함께 신작을 보고 나면 다들 리베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든가 하는 별거 아닌 일화들. 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아니면 클로드 샤브롤이었던가?)을 줍기 좋아했던 시절에, 어디선가 ‘뻥튀기 섹스신’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미친 영화는 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영화를 처음 본 건 KMDb VOD를 통해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근래 이 작품은 4K로 복원되어 블루레이가 출시되었고, 지금은 국내 OTT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로 글을 시작한 건, 이 지면의 제목인 ‘비평, 안녕하십니까’의 기획이 내 오랜 고민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미친 영화를 찾고 싶다는 게 그것이다. 영화글을 쓰다 보니 원고 작성, 관객과의 대화 진행, 심사 참여, 영화제 프로그래머 재직 등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 필요에 따라 예전 영화도 종종 찾아보지만, 일의 특성상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수많은 장, 단편영화를 보는 일이 압도적으로 많다. 출품 공모를 열고 예심을 진행하는 영화제나 기획 프로그램 등의 선정의 변을 살펴보면 출품작이 매년 최다를 갱신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점점 더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심사를 진행하는데도 다양한 선정의 변에서 비슷한 뉘앙스가 읽힐 때가 있다. 영화가 점점 더 잘 만들어지고 있다는 거다. 이야기는 모난 구석이 없고 만듦새도 안정적이다. 혹은 적어도 그런 결과물을 지향한다. 비단 심사 과정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여러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이거나 지난한 과정을 통과해 극장 개봉의 문턱을 넘은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균형의 감각을 가지고 있다. 돈과 시간을 투자해 극장에 가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해야 한다는 압력이 내외부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일까. 이는 물론 쉽게 간과해도 좋을 영역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재능을 발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영화들 틈에서 때로는 작게 읊조리게 된다. “미친 영화가 보고 싶다….” 근래 제작되는 영화들의 경향을 짚으며 비판하는 건 어쩌면 쉬운 일이다. 단편영화를 장편영화의 축소판처럼 생각한다든지, 개인의 내면에서 발굴한 이야기를 보편적인 서사에 안전하게 겹쳐두며 미궁에 빠지는 것을 회피한다든지, 상상된 소시민적 이미지에 기대며 다양한 갈등과 여러 가능성의 문을 닫아버린다든지. 단편영화에서 거대 자본이 들어간 상업영화에 이르기까지, 실망과 안타까움은 늘 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굳이 길게 늘어놓지는 않으려고 한다. “너는 왜 미치지 않았니?”라고 묻는 대신, 미친 영화가 보고 싶다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마음에 대해 좀 더 말하면 좋을 것 같다. © 파이오니어픽쳐스필름(주) 사실 미친 영화가 무엇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미쳤다!”라는 감탄사는 소위 웰메이드 영화를 보고서도 쓸 수 있다. 변태적일 정도로 탐미적이거나 철학적 질문을 깊이 탐구했거나 대사를 잘 썼을 때도 이 감탄사를 마구 남발할 수 있다. 어쩌면 본인의 취향을 건드리는 모든 요소에 우리는 미쳤다며 나름의 찬사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미치다”라는 말은 보통의 것과 다른, 상식에서 벗어난, 일상을 뒤집는 무언가를 묘사하는 단어로, 동사이면서 상태를 설명하는데 주로 쓰인다. 그렇다면 아주 넓은 의미에서, 이미 일반적인 수준에서 굳어진 영화의 관습을 탈피하는 (비)자발적인 선택에 ‘미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될까? 글쎄, 아직 충분하지도, 재밌지도 않다. ‘미친 영화’를 생각하는 마음은 꽤 모순적이다. 구체적인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진 이 개인적인 욕망은 나름대로 그 용례를 정교화하고 싶은 충동과 닿아있다. 페미니즘 문학 비평의 주요한 길을 제시한 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의 저작 『다락방의 미친 여자』(2022)나, 최근 타계한 국내 1세대 여성 사진작가 박영숙의 ‘미친년 프로젝트’처럼 사회, 문화적 함의 속에서 ‘광기’를 재정의하고자 하는 작업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동시에 광기 역시 우리 시대의 굳어진 수식어나 레토릭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보다 세밀한 탐색 없이 광기라는 단어만 쥐고 모험하는 건 이제 무척이나 (안전하기 때문에 더) 위험한 일로 느껴진다. 다른 한편, ‘미친 영화’를 찾고 싶은 마음은 내게 지극히 개인사적인 맥락에서 작동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 장면’을 보고 싶은 마음이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에 대한 감상보다 훨씬 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름의 해답은 미친 영화를 찾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을 다시 찾는 데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너무 감상적이기 때문에 한 가지 더 생각해 보려고 한다. 한때 내게 중요하게 와닿았던 비평적 시선 중 하나는 ‘정치적인 영화’를 정치영화가 아니라 영화 속의 정치적인 것과 함께 생각하자는 거였다. 나는 이 말을 정치라는 것을 (정치인, 정당, 선거 등으로 대표되는) 현실 정치에 가두지 않고 끊임없이 작동하는 역학이자 태도로 사고하면서, ‘영화’를 전방위적으로 둘러싼 각종 갈등과 조건을 응시하는, 작품의 선택을 봐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했다. “존 포드야말로 가장 브레히트적인 감독”이라고 말했다던 장 마리 스트라우브의 일화와 더불어, 내게 이러한 말과 시선들은 ‘분명히 있지만 딱딱한 것은 아닌’ 어떤 기준, 항상 개별 작품들과의 밀접한 교통을 통해서만 감지되는 그 무언가를 찾아내는 작업 방식을 제시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중요했다. 정치적인 것이나 브레히트적인 것, 그리고 ‘미친 것’과 그 효과는 언제나 같은 형식을 통해 성취되지 않는다. 광인의 출현이나 해괴한 장면의 등장만으로 그것이 (내가 찾는) 미친 영화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일단은 이 질문을 책상 위에 올려두는 것으로 마음의 짐을 던 뒤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로 돌아가 보려고 한다. © 파이오니어픽쳐스필름(주) 이 영화는 한국영화사의 괴인처럼 불리는 김기영의 작품 중에서도 파격적인 편에 속한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주인공 영걸( 김정철 )은 웬 여자가 건네는 오렌지 주스를 먹고 죽을 뻔한 위기에 처하지만 목숨을 부지한다. 이후 계속해서 죽음과 삶의 충동 사이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는 그의 앞에, 의지만 있으면 죽지 않을 수 있다고 외치는 책장수가 나타나 해골이 되어서까지 입을 나불거리는 한편, 2000년 전 신라 공명왕 시대에 동굴에 들어가 백골이 된 여성이 환생해 간을 먹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이 여성이 ‘뻥튀기 섹스신’의 주인공이다.) 뼈를 통해 인류학을 연구하는 이 박사( 남궁원 )의 조수가 된 영걸은 이 박사의 딸 경미( 김자옥 )와 기묘한 관계를 맺는 동시에 이 박사에게 배달되는 의문의 해골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에도 연루된다. 사실 이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은 이상하다기보다는 황당한 쪽이다. 신라 시대에 잠들었다가 깨어난 여성은 갑자기 동성동본 사이의 결혼에 대해 걱정하고, 목이 잘린 영걸이 책장수의 전언처럼 눈을 떠 “의지!”를 외치며, 사람은 복면을 뒤집어쓰고는 나비가 된다. 황당무계한 장면들이 계속되는 와중에 그 중심에 죽음이 있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원고를 쓰기 위해 다시 본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는 분명 독특했지만 동시에 처연한 영화이기도 했다.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남자가 현실인지 꿈인지 모르는 일련의 일들을 겪다가 결국에는 죽지 않았으니 “귀찮지만 더 살아줘야겠다”라고 읊조리는 영화라니. 사실 주인공의 죽음이란 한 편의 영화에 드리운 종결의 감각을 형상화하는 가장 직설적인 사건일 것이다. 주인공이 죽으면 대개 영화 역시 끝나야 한다. 혹은 한 편의 영화는 언젠가는 끝나야 한다. 어쩌면 영화란 시작과 동시에 종결을 미루고 지연하다가 결국 끝을 마주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음악이나 연극처럼 시간을 조건으로 삼는 예술이 대개 그러하겠지만.) 그 지연의 방식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꽉 짜인 서사를 통해서, 인물의 사소한 행동을 통해서, 끊임없는 사건들의 도입을 통해서 영화가 끝나는 시간은 저 뒤로 밀려난다.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는 내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별안간 그 모든 것이 영걸의 망상이었던 것처럼 묘사하며 영화를 닫는다. 이 석연치 않은 순환 구조야말로 내게는 모종의 ‘미친 것’이 작동하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미치고 싶지만 미칠 수 없고, 미치지 못해서 미쳐버리는 어떤 무기력의 영화 만들기. 혹시 영화의 ‘미친 것’을 찾는다는 건 일종의 상처를 찾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미친 영화’의 특정한 외양이나 형식을 찾아 헤맬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앓고 있습니까? 아마도 비평이란 그러한 질문과 함께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평, 안녕하십니까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손시내(영화평론가) l 영화웹진 《 REVERSE 》에 글을 쓰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한다. 팟캐스트 ‘영화카페, 카페 크리틱’에서 영화 이야기를 나눈다.
2003년 | 코리아엔터테인먼트 감독: 김경형 | 원작: 최수완 | 각본: 박연선 | 각색: 김경형 | 제작, 기획: 이서열 허대영 | 촬영: 지길웅 | 미술: 오상만 김현옥 | 음악: 이경섭 CAST 수완: 김하늘 | 지훈: 권상우 | 종수: 공유 | 호경: 김지우 | 지훈 부: 백일섭 | 지훈 모: 김혜옥 | 수완 모 : 김자옥 | 수완 부: 오승근 2000년대 초 한국영화의 트렌드 중 하나는 인터넷 소설과 청춘영화의 결합입니다. < 엽기적인 그녀 >( 곽재용 , 2001)부터 시작되어 < 늑대의 유혹 >( 김태균 , 2004)에서 정점을 맞이했는데, 그 중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바로 < 동갑내기 과외하기 >였습니다. 이 영화로 김하늘은 새로운 이미지를 더했고, 권상우는 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죠. 2002년 12월에 촬영 현장을 공개했습니다. 장소는 양수리 종합 촬영소의 세트장이었고요. 수완(김하늘)과 지훈(권상우)의 첫 과외 장면이었는데요, 지훈은 ‘호사다마’를 당구 용어로 여기고 ‘to 부정사’는 몰라도 ‘정사’는 안다며 깐족대는 동갑내기 제자입니다. 그런 제자 앞에서 수완은 철 없는 연애 사건을 들켜 버리네요. 낮에는 과외 전선에서 뛰고 밤에는 스쿠터를 타고 닭 배달을 하는 수완. 고등학교를 유급한 제자 지훈 앞에서 포커페이스가 되지 못해 결국은 화를 터트립니다. 이 영화 전까지 김하늘은 ‘멜로’ 이미지가 강했고 TV 중심으로 활동했는데요, ‘청춘 코미디’ 장르로 영역을 확장하고 영화배우로서도 확고히 자리를 굳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됩니다. 대학 진학? 지훈의 목표는 소박합니다. 고등학교 졸업! 하지만 아직 공부할 자세가 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권상우는 당시 20대 후반의 나이였지만 < 화산고 >(김태균, 2001) < 일단 뛰어 >( 조의석 , 2002)에 이어 계속 교복 입는 캐릭터를 맡았습니다. 2004년엔 < 말죽거리 잔혹사 >( 유하 )에 출연하기도 했죠. “유니폼 입는 캐릭터가 그래도 멋진 것 같아요. 나중에 신부 역할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예언이었을까요? 그의 꿈은 1년 후 < 신부 수업 >( 허인무 , 2004)으로 이뤄집니다. “사면초가가 무슨 뜻이야?” “다구리 붙을 때 사방에 적이라는 뜻이지!” 불량스러운 수업 태도를 보여주던 지훈은 아예 담배까지 꺼내 입에 뭅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는 권상우는 포즈 잡기가 어색한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세를 고쳤습니다. 티격태격 하는 설정이지만 현장에서 김하늘과 권상우는 척척 죽이 맞는 호흡을 보여주었습니다. “정말 에너지가 넘쳐요. 촬영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상대방을 참 기분 좋게 해주는 배우예요. 저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짜증을 낼 때가 있는데요, 권상우 씨는 만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게 우리 영화에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김하늘) “하늘 씨는 나보다 오래 연기한 선배지만, 상대방을 주눅 들게 하는 게 아니라 편안하게 만들어줘요. 나중에라도 기회가 닿으면 하늘 씨랑 꼭 다시 연기하고 싶어요.”(권상우) 그리고 두 사람은 3년 후에 < 청춘만화 >( 이한 , 2006)에서 재회하죠.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지금까지 나온 코미디랑 다른 점이 있다면 ‘깨끗한’ 코미디 영화라는 점이에요. 제목이 ‘과외하기’인데, 난잡할 수 있겠어요?(웃음)”(권상우) “코미디에 대해 안 좋은 선입견이 있다면 그건 배우들이 망가진 행동으로 웃기려 들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 영화에도 물론 그런 장면이 없지 않죠. 하지만 막무가내로 웃기려는 게 아니라 시나리오와 상황으로 웃긴다는 게 장점이에요.”(김하늘) 결국 참지 못한 수완은 지훈의 코에 담배를 쑤셔 넣습니다. 권상우가 아플까 싶어 김하늘이 몇 차례 NG를 거듭하자 김경형 감독이 한 마디 던집니다. “아프게 쑤셔 넣어도 괜찮으니까, 그냥 힘차게 해!” 감독의 디렉션에 용기를 얻은 김하늘은 과감한 연기로 단번에 오케이 사인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로 뒤늦은 데뷔를 하는 김경형 감독은 노랗게 염색한 머리로 현장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습니다. KBS에 입사해 드라마 현장을 먼저 접한 그는 이후 영화의 매력에 빠져 사표를 던지고 충무로에 뛰어들었고 <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 김성홍 , 1990)의 연출부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흔 세 살의 나이에 첫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만났습니다. 대부분 슬픈 역할을 맡았던 김하늘에게 <동갑내기 과외하기> 현장은 조금은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감독님이 나이에 비해 참 젊으세요. 장난꾸러기?(웃음) 감독님이 오히려 저희들한테 애교도 부리시고요. 그러니까 스태프들도 편하게 풀어지고 배우들도 풀어지고…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죠.” 김경형 감독이 권상우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는 와중, 김하늘은 휴지를 입에 대고 기침을 합니다. 촬영 당시 몸살 감기였는데요, 이날 촬영도 병원에 들러 주사를 맞고 오느라 조금 늦게 도착했죠. 그런데… 그 감기가 바로 권상우에게 옮은 것이었다는 사실. “감기 걸려서 입원까지 했다가 거의 나을 때쯤 됐는데, 상우 씨가 또 감기에 걸려서 온 거예요. 저한테 감기 옮긴다고 장난으로 막 침 튀기고 그랬는데, 정말 다시 감기 든 거 있죠.”(김하늘) “제가 진짜 죽일 놈입니다.(웃음)”(권상우) 김경형 감독이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며 장면의 톤을 배우들에게 전합니다. 한편 두 배우가 이 영화를 선택한 건 시나리오의 힘이 절대적이었다고 하네요. “시나리오를 차 안에서 단숨에 다 읽었어요.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냥 하겠다고 했죠.”(권상우) “저도 차 안에서 봤는데, 원래는 드라마 <로망스> 촬영중이라 그 대본을 봐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근데 잠깐 본다고 읽기 시작한 <동갑내기 과외하기> 시나리오를, 차에서 내려 식사하러 갈 때까지 들고가게 됐어요. 그리고 쉽게 결정 내렸어요.”(김하늘) 영화에선 ‘날나리’지만 학창 시절 권상우는 ‘범생이’였습니다. “저는 진짜 고등학교 때 커피숍 한 번 안 가봤어요. 친구들이랑 운동하고, 주말에 영화 보러 가고, 가끔 친구네 집에서 놀고. 담배도 안 피우고요. 재밌게 노는 학생이긴 했어도, 겁이 많아 얌전했어요.” 사정은 김하늘도 마찬가지. “학교 다닐 때 제일 말썽 부린 게 지각 정도였죠.” 지길웅 촬영감독은 우리에겐 이준익 감독의 < 황산벌 >(2003) < 왕의 남자 >(2004)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엔 신부 역으로 잠깐 출연하기도 하는데요, < 동갑내기 과외하기 레슨 2 >(2007)에선 김호정 감독과 공동으로 연출을 맡기도 했습니다. “지금 저한테 제일 중요한 것은, 일하는 게 행복하다는 걸 느꼈다는 거예요. 처음 일 시작할 때는 정말 행복하지도 않았고,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내가 왜 항상 밝은 척 웃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죠. 그게 다 일이 즐겁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하는 게 너무 행복해지고, 그러니까 좀 더 좋은 연기 보여줄 수 있게 되고… 저한테는 정말 중요한 변화예요.” 김하늘에게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일의 즐거움을 깨닫게 한 작품입니다. “저는 솔직히 드라마에 나온 제 모습을 보면 짜증나요. 주눅 들어서 연기하는 것 같아 보이거든요. 영화 촬영장에 오면 훨씬 편한 느낌이에요. 그래서 드라마보다 영화가 하고 싶어요. 이제 봄이 되면 데뷔한 지 딱 2년이에요. 그 동안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제가 출연했던 작품들을 보고 사람들이 ‘권상우 뭔가 했구나’라고 생각할 만한 건 아직 없었던 것 같아요.” 그에게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권상우가 뭔가 한’ 첫 작품인 셈입니다. 부잣집 도련님답게 패러글라이딩이 취미인 지훈.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실연 당한 동갑내기 과외 선생님을 위로하기 위해, 이후 함께 패러글라이딩을 타러 나간다. 필름 감는 소리만 조용히 들리는 가운데 연기에 몰입하는 권상우. 그런데 갑자기 동시녹음 기사가 버럭 호통을 칩니다. “누가 배에서 꼬르륵거려!” 그 주인공은 권상우였고, 멋쩍게 웃으며 자진납세 하는 바람에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 < 하녀 >(1960)나 < 이어도 >(1977)만큼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은 아니지만, 영화광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된 영화다. 특히 김기영 감독의 특별전, 회고전 등에서 김기영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이나 엉뚱함, 직설적이고 반복적인 문어체 대사들(특히 ‘의지’라는 단어)로 주목을 받았다. 필자 역시 1990년대 후반, 이 영화를 처음 필름으로 접한 후 묘한 신비감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다. 훗날 모 영화 매거진에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특이한 전대미문의 섹스 장면을 논하면서,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를 꼽은 적이 있다. 주인공 영걸( 김정철 )이 다시 살아난 신라 시대 여인( 이화시 )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에서 일종의 페티시처럼 ‘뻥튀기’가 UFO처럼 날아다니는 상황을 묘사했다. 2000년대 김기영 영화의 재발견이 한참 유행일 때, 일부 사람들이 컬트라는 단어를 써서 이 영화의 정신분열증과 난해함을 해석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김기영처럼 대중과의 접점이 있는 흥행 감독에게 컬트라는 단어를 쓰는 것에는 늘 반감이 있었다. 영화를 좀 본 사람만 아는 감독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지적 허영으로 보였던 탓이다. 오늘날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를 다시 봐도, 독특한 스토리인 것은 분명하다. 이 스릴러는 확실히 최근 대중 영화에선 찾아볼 수 없는 배짱이 있다. 타협을 모른다. 우연히 만난 여인이 음료수(환타)에 독을 타서 영걸과 동반 자살을 시도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영걸은 그녀의 나비 목걸이를 하고 다니면서 계속 기괴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한마디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셈이다. 의지만 있으면 죽지 않는다는 노인(책 외판원)과 다투다가 죽이거나 동굴에서 발견한 여성 해골이 다시 살아나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또 이 박사( 남궁원 )의 조수로 들어가 일하면서 끊임없이 성과 죽음에 관련된 유혹을 받는다. 이렇게 영걸에게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어떤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영화의 불균질성으로 보였다. 즉 로빈 우드가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에서 영화를 만든 사람이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사회, 문화의 영향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받은 결과 불균질한 텍스트가 된다고 언급했던 것처럼, 시대의 현상을 독특하게 반영한 불균질한 영화로 다가왔다. 더불어 김기영 감독이 스스로 리비도를 통제하지 않은 취향의 영화가 분명했다. 영걸에게 신라 시대 여인이 느닷없이 동성동본을 논하거나 암에 걸린 경미( 김자옥 )가 안락사를 희망하거나 경미가 영걸의 잘린 머리(시체)에 키스를 하는 장면 등은 영화 자체적인 논리나 필요성보다는 다분히 감독의 결연한 의지나 영화에 현실(현대성의 흔적)을 새기고 싶은 욕망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다시 생각난 것은, 다소 엉뚱하지만 < 내부자들 >(2015)에서 안상구( 이병헌 )가 고독하면서 강렬하게 뜨거운 라면을 먹는 장면 때문이었다. 이병헌은 라면을 후루룩 먹으면서 엄청난 입김으로 최고의 리얼리티를 생산해냈다. 그처럼 영걸 역시 라면 신세였다. "하루 6번 먹어도 배고프다. 성가셔서 얼른 죽고 싶다"고 꽤 투정을 부릴 정도였으니까. 그의 가난한 집에는 매일 라면 봉지만 쌓여갔다. 젊은 대학생 영걸은 허름한 집에서 홀로 살고 있다. 그에게는 가족의 흔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1970년대 근대화/산업화의 시기, 이른바 전근대적인 가부장제의 몰락을 반영하듯 그의 집은 부재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1960년대 신상옥 영화에 등장했던 화목하고 이상적인 가족은 더 이상 없다. 이 공간에 괴물 같은 외판원과 해골 같은 유령(비인간적 존재)이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흔히 김기영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중산층 가정과는 거리가 먼 하층민의 삶을 보여준다. 반면 이 박사의 집은 < 화녀 >(1971), < 육식동물 >(1984) 등처럼 다소 과장된 분위기로 중산층의 화려한 미장센이 즐비하다. 총천연색이 그의 집을 수놓고 있다. 이 집에서 생산되는 빛은 분명 영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영걸은 이 박사의 집에서 퇴행하듯 엄청난 식욕만 자랑하고 있다(라면 대신 서구식 식사에 집착한다). 이 박사의 부탁으로 경미를 성적으로 만족시켜야 할 과제를 부여받지만, 정작 아무것도 못한다. 중산층 가정 안에서 영걸은 사실상 거세된 남자에 가깝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는 으레 전복적인 여자 캐릭터들에 초점이 맞춰진다. 남성 중심 사회에 균열과 혼란을 일으키는 존재들이다. 그런 맥락에서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에 등장하는 여성들도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 영걸 캐릭터는 남성의 시선으로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든다.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들’에게 죽음(동반 자살)의 대상이 되는 그는 “번번이 왜 내가 목표가 되지?”라고 반문한다. 그의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다. 그는 참 억울한 남자다. 영걸은 지속적으로 현실과 판타지(상상)를 오간다. 이 영화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은 그의 망상의 산물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다. 그럼에도 그가 처한 현실적 고통은 오늘의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다. 1978년 영화지만 매번 볼 때마다, 더 리얼하게 다가온다. 처음에는 판타지나 스릴러 구조가 더 눈에 들어오지만, 몇 번 본 후에는 형식보다는 영화의 현실(시대상)이 가슴을 넌지시 파고든다. 그렇다고 김기영 감독이 미래를 예측했다거나 혹은 시대를 앞섰다고 주장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비주류(소외된) 남성을 억압하는 정치경제적 현실이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듯 퇴행하고 있는 탓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