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감독
- 김정연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류혜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오랫동안 입봉이 목표인 삶을 살았다. 입봉하면 천국, 입봉 못하면 지옥. 입봉하면 행복, 입봉 못하면 불행. 내 삶이 지금 지옥이고, 내가 불행한 것은 입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입봉만이 희망이었던 시간을 지나, 작년에 ‘입봉’이라는 목표를 이루었다. 이제 드디어 천국에 다다른 것인가 했는데, 막상 겪어 본 입봉 후 삶은 천국도, 행복도 아니었다. 입봉만 하면 천국일 줄 알았는데! 입봉만 하면 행복일 줄 알았는데! (‘뭥미’라고 쓰고 싶지만 영자원 원고이니 참기로 한다.) < 미술관 옆 동물원 >(이정향, 1998)은 미술관을 좋아하는 여자 춘희와 동물원을 좋아하는 남자 철수가 뜻밖의 동거를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철수는 연인 다혜와 재결합하고자 하지만, 다혜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춘희는 보좌관 인공을 짝사랑하지만, 인공은 춘희에게 관심이 없다. 책상에 앉아 모니터 빈 문서의 깜빡거리는 커서를 바라보는 춘희를 보자마자 ‘춘희, 나랑 똑같네?’라고 생각했다(물론 얼굴이 ‘심은하’라는 것은 빼고 생각했다). 춘희처럼 나도 밥벌이를 하면서 틈틈이 시나리오 공부를 하고, 시나리오를 썼다. 춘희처럼 나도 내 시나리오 주인공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들과 같이 아파하고, 그들과 같이 기뻐했다. 같이 고민해주는 철수는 없었지만. ‘심은하 얼굴’과 ‘철수’만 빼면 그때의 나는 딱 춘희였다. 처음부터 ‘작가가 되겠다’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시나리오에 대한 호기심이 먼저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시나리오를 쓰면 쓸수록 시나리오가 좋아졌다. 작품을 쓰면서 마음속의 생채기들이 하나씩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시나리오는 영화의 설계도이다. 설계도는 건물이 완공되면서 비로소 완성된다. 시나리오는 영화가 상영되면서 비로소 완성된다. 아무리 많은 시나리오를 써도 컴퓨터 하드에 저장돼 있을 뿐인 시나리오는 온전히 완성될 수 없다. 그렇기에 꼭 입봉하고 싶었다. 내 시나리오가 스크린에서 살아 숨 쉬는 그 순간을 고대했다. ‘스물넷에 공부를 시작했으니, 서른 즈음 되면 길이 보이겠지.’ 착각이었다. ‘어려운 길이지만, 마흔 전엔 되겠지, 설마!’ 설마가 사람 잡았다. 이쯤 되니 그렇게 좋아하던 시나리오가 내 고통의 근원이 되고 말았다. 이제 정말 그만둬야 하는 것인가. 이 지옥을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매일매일 앞이 캄캄했다. 어떻게든 다혜를 다시 잡고 싶었던 철수는 이미 떠나간 다혜의 마음을 확인하고 좌절한다. 이제는 인공이 관심을 보여주리라 기대했던 춘희는 여전히 관심이 없는 그의 마음을 확인하고 실망한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좌절하고 기대한 것을 얻지 못해 실망하느라, 철수는 좋아하는 베개를 양보해주는 춘희를, 춘희는 욕을 먹어가면서 버스를 놓치지 않게 해주는 철수를 보지 못한다. 입봉을 하고 나서야, 입봉했지만 그곳도 천국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입봉을 하지 못해 좌절했던 그 시간들도 지옥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다만 원하는 것, 기대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뿐. 그래서 미처 보지 못했을 뿐. 그때에도 내 곁에는 ‘지옥이 아닌’ 많은 것들이 있었다. 정반합(正反合). 본래 있던 것에 새로운 것이 다가와 충돌한다.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깨달음이 생겨난다. 본래 있던 주인공의 삶에 새로운 자극이 다가와 주인공의 삶이나 생각을 바꾸는 것. 그 과정이 시나리오의 1, 2, 3 장이다. 3장에서 변화한 주인공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설계도를 그린 것이다. 시나리오를 쓰는 내내 3장의 깨달음을 작품에 구현하는 것이 너무도 어려웠다. 대부분 그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할 수 있을까. 내가 그런 플롯을 구현할 수 있을까. 매일 부딪혔던 의문은 천국과 지옥, 행복과 불행이라는 양극단의 늪에서 빠져나오면서 조금씩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영화 같은 삶, 이라고 하지만 영화는 어디까지나 삶의 일부이다. 삶을 넘어서는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삶의 한 부분을 떼어내 재미있게 보여주는 것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러한데 이분법의 세상에 갇힌 작가가 어찌 1장에서 2장으로, 2장에서 3장으로 변해가는 삶의 과정을 시나리오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원한 것은 선, 원하지 않은 것은 악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사람이 어찌 천국과 지옥,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깨달음의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처음 좋아한 이는 인공이었지만, 인공과 이루어지지 못해도 괜찮다. 인공과 다르지만, 그것이 또 좋은 철수가 있으니까. 그토록 그리워한 이는 다혜였지만, 다혜가 떠나갔다고 해도 괜찮다. 다혜와 다르지만, 그것이 또 좋은 춘희가 있으니까. 미술관에서 좋은 그림을 보고자 했지만, 막상 당도한 곳이 미술관이 아니라 해도 괜찮다. 동물원에서도 예상 못 한 즐거움을 만날 수 있으니까. 동물원에서 귀여운 동물들을 만나고자 했지만, 막상 당도한 곳이 동물원이 아니라 해도 괜찮다. 미술관에도 예상 못한 만남이 있을 수 있으니까. 앞으로도 뜻대로 되는 일보다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가고자 한 곳에 가게 되는 일보다는 뜻밖의 장소에 당도하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다짜고짜 지옥에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일단 고개를 들어 표지판을 보자. ‘천국 옆 지옥’, ‘행복 옆 불행’이 아니라 ‘미술관 옆 동물원’이다. 양극단이 아닌 그 사이 어딘가, 그곳에 영화의 진짜 엔딩이 있다. 김정연(시나리오 작가) l 쓰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 < 비공식작전 >(김성훈, 2022), < 밀수 >(류승완, 2023) 각본. < 더 문 >(김용화, 2023) 각색.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란희 감독의 첫 장편영화 < 휴가 >(2020)의 주인공은 집단정리해고 무효소송을 진행하며 5년째 천막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노조원 재복(이봉하)이다. 해고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한 많은 영화들이 갈등이 극적으로 폭발하는 투쟁 현장이나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의 지난한 시간에 집중해 온 것과 달리, <휴가>는 5년을 끌며 진행된 재판에서 결국 패소하고 난 이후의 시간을 담는다. 재복과 함께 노조를 만들고 농성장을 지켜왔던 영석(서광택) 그리고 만용(황정용)은 허망, 좌절, 분노, 원망, 야속, 피로, 무력을 겪는다. 이미 고공투쟁까지 하며 극한의 상황까지 가봤던 이들은 눈에 보이는 뚜렷한 성과도 얻지 못한 채 법적 절차가 끝난 상황에서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황망해 한다. 그래서 천막에 모여 앉아 밥을 먹던 그들은 서로를 탓하기 시작한다. 이란희 감독은 무력한 분란의 대화 속에서 오히려 복직투쟁의 노동을 일일이 드러낸다. 노조를 만들고, 전단지를 뿌리고, 연대투쟁을 하고, 여러 결정을 내리기 위해 무수한 회의를 하고, 문서작업을 하고, 고공투쟁을 하고, 재판을 준비하고, 천막을 지키고, 밥을 하는 등 투쟁에는 무수한 노동이 있다. 특히 재복은 앞에 나서는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알뜰살뜰한 성격에 맞게 매일 식사를 준비하고 동료들의 건강을 챙기는 등 농성장의 살림을 맡아왔다. 투쟁현장에서의 재복의 돌봄노동은 반복적으로 묘사되던 중년 남성 해고노동자의 전형성을 깨트리는 것이기도 하다. 서로 다툰 후에도 여전히 무얼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셋은 투쟁 5년 만에 처음으로 ‘휴가’를 갖기로 한다. 그들은 ‘휴가의 시간’을 만듦으로써 역설적으로 그들이 했던 투쟁이 고된 노동이었음을 그리고 그 안에서 각자가 맡아온 고유의 역할이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휴가의 시간은 이후의 시간도 이전의 시간도 아니다. 어쨌든 패소로 한 단락이 만들어진 ‘선인가구’ 투쟁의 역사에서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것처럼 “옛 것은 죽는데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는” 위기의 시간이고 그렇기에 마침내 사유가 가능한 시간이기도 하다. 투쟁을 계속 이어나갈지 아니면 접을지, 이어나간다면 무엇을 이루기 위해 투쟁을 하는지, 투쟁에서 그동안 해온 수많은 노고는 무엇을 변화시켰는지, 재복에게 함께 해온 동료들은 어떤 의미인지, 일과 노동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가족들의 생계와 일상은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그동안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멈춰놨던 질문들이 틈새의 시간에서 한꺼번에 쏟아진다. 이 휴가와 질문은 재복이 최종적으로 농성장을 아예 떠나는 파국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갈등 끝에 복직투쟁을 포기하는 건 ‘현실성’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영화들이 선택해왔던 결말이기도 하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가 중요한 요즘 시대에 특별한 동기나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재복이 돌아온다는 건, 언뜻 개연성 떨어지는 ‘이상적’이거나 ‘미련한’ 결말처럼 보일 수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휴가>는 투쟁을 그만둘 충분히 납득 가능한 동기인 가족을 등장시킨다. 농성장을 나와 집으로 향한 재복은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딸들을 챙기기 시작한다. 5년 동안 부모의 돌봄 없이 스스로 커온 딸들에게 재복의 갑작스러운 돌봄은 어색함을 넘어서 때늦은 간섭과 잔소리가 된다. 이미 두 딸은 가난과 부모 없는 삶에 지칠 대로 지쳐있다. 특히 자신도 미성년이면서 동생을 돌보는 역할까지 해야 했던 큰 딸 현희(김정연)는 재복에게 농성장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재차 다그친다. 재복은 대학에 수시 합격한 큰 딸의 예치금 30만원을 구하기 위해 친구에게 돈을 빌리려 하지만 거절당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재복이 애초부터 승산 없는 싸움을 시작했다며 그가 해온 투쟁의 가치를 무화하고 조롱한다. 재복은 결국 친구 우진이 매니저로 있는 수제가구 공방에서 휴가 기간 동안 일을 하게 된다. 재복은 다시 일을 시작하며 노동의 기쁨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매니저인 우진은 정확한 작업 지시도 없이 재복을 다른 직원인 준영에게 떠맡긴다. 그러나 준영은 매사 심드렁하고 자기 일만 할뿐 재복을 도와줄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초반에 실수를 하던 재복은 머지않아 일의 감각을 찾게 된다. 그가 꼼꼼하게 나무를 자르고 칠을 하고 사용한 장비들을 정성스럽게 닦아놓는 장면에서 일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재복은 무엇보다 돈을 벌어 가장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데서 큰 기쁨을 느낀다. 현희의 예치금을 마련하고 둘째 딸 현빈(이승주)에게는 원하던 패딩점퍼를 선물해준다.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함께 저녁밥도 먹는다. 그러나 재복은 또한 오랜만에 일상을 찾은 일터에서 오늘날의 불안정한 각개전투의 노동현장과 착취를 목격하게 된다. 재복이 공방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원래 일하던 이주 노동자가 비자 때문에 한국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재복의 사수인 20대 초반의 준영(김아석)은 완전히 고립된 삶을 살고 있다. 준영은 혼자서 일하고, 혼자서 밥 먹고, 아파도 혼자서 견딘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누구의 도움을 받아본 적 없는 준영은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거나 도움을 주고받는 방법 자체를 모르는 이처럼 보인다. 준영은, 타인으로 인해 손해를 보고 싶지 않듯이 자신도 타인에게 폐가 되지 않는,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생존 방법을 터득한 듯하다. 재복은 매번 준영에게 ‘도와줄까?’ ‘점심 먹으러 가냐?’고 묻지만 그는 괜찮다고 말하거나 그의 말을 아예 차단한다. 준영이 하루 종일 끼고 있는 무선 이어폰은 생존하기 위해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하고 ‘혼자’를 선택한 이의 장치다. ‘혼자’의 고립된 삶은 그가 선택한 것이라기보다는 함께 살아가고 살아남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받아들인 방법일 뿐이다. 재복은 먼저 살아본 어른으로서, 그리고 복직투쟁을 겪은 노동자 선배로서 함께 일하는 법을 알려준다. 도시락을 싸와서 밥을 같이 먹고 나무 널판지가 떨어져 준영이 부상을 입자 떨어트린 휴대폰을 집까지 가져다주고 저녁을 같이 먹고 냉장고를 채워주고 보일러를 고쳐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산재신청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정보를 알려준다. 재복이 준영의 산재신청을 도와주고 친구인 우진에게도 산재신청을 해주라고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노조를 만들고 복직투쟁을 하면서 노동자로서 성장해온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투쟁은 그가 제대로 된 어른이 될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기존의 권력관계를 바꿔보려 하거나 승패 이외의 가치를 경험해 본적이 없는 준영은 일을 하다 다치게 된 것을 모두 자기 탓으로 돌린다. 심지어는 매니저인 우진이 차로 병원을 데려다주고 다리가 다 낳으면 직장으로 돌아오라고 한 것만으로도 고맙고 미안한 일이라고 말한다. 재복은 “맨날 당하고만 살 거냐”고 재차 말하지만 준영은 “아저씨, 저 그런 거 안 해요”라고 말한다. 준영에게 ‘그런 거’는 애초부터 이길 수 없는 일을 하는, 손해 보는 짓이다. 재복은 ‘휴가’의 시간에 복직투쟁을 통해 그렇게 돌아가고 싶었던 일상, 즉 일터로 돌아오지만, 그는 거꾸로 일상에서 노동착취와 투쟁의 현장을 목격한다. 영화는 2층에 있는 공방 창문에서 건너편 1층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준영을 내려다보는 재복을 보여준다. ‘어디 가냐?’는 재복의 말에 대답도 없이 나가던 준영이 겨우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장면은 이후 다시 동일한 시점으로 반복된다. 준영이 다치고 현장실습을 나온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 민재(박재형) 역시 준영과 마찬가지로 점심시간에 혼자 슬쩍 나가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먹는다. 카메라는 재복의 시점으로 준영을 바라보던 것과 마찬가지 각도로 그런 민재를 2층 창문에서 바라본다. 무선 이어폰과 편의점 컵라면으로 압축되는 젊은 세대의 노동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재복의 큰 딸 현희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복직투쟁을 하는 노동자로서 당사자인 재복은 휴가를 통해 일상에서 오늘날의 노동현장을 목격한다. 재복은 휴가를 통해 일상과 투쟁현장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그는 또한 농성장에서 하던 돌봄 노동을 일상에서 반복한다. 자신의 집과 준영의 집 모두에서 냉장고를 청소하고, 음식물을 채우고, 반찬을 하고, 밥을 차려 같이 나눠 먹는다. 투쟁은 한편으로 주위를 살피는 목격이고 돌봄이다. 그의 일상은 투쟁의 노동으로 채워진다. 재복은 휴가 기간 동안 만용의 전화를 받지 않으며 농성장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암시를 주기도 하지만, 결국 우진의 취직 제안을 물리치고 농성장으로 돌아간다. 열흘의 휴가가 끝난 후 그는 갖가지 반찬을 해서 반은 딸들을 위한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반은 농성장에 들고 갈 가방에 싼다. 영화는 재복이 집의 문을 닫고 나가 농성장으로 돌아오는 길을 정성들여 보여준다. 준영은 재복의 설득에 회사에서 치료비를 받게 되었지만, 재복이 민재까지 돌볼 수는 없다. 재복은 대신 자신의 농성장으로 돌아간다. 자신의 투쟁은 다른 노동현장의 투쟁으로 이어져 있다. 재복은 자신만 잘 살기보다는 함께 잘 살기를 선택한다. 그 길은 어둡고 불안할 수 있지만 그는 돌봐야할 동료가 있다. 그의 농성장에도 그가 목격해야 할 이들이 있다. 재복은 농성장에 걸린 투쟁기간을 알리는 표지판 ‘1893일째’에서 3을 4로 바꿔 놓으며 투쟁의 일상을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고공투쟁에 들어간 영석에게 그가 좋아하는 소시지 볶음과 반찬을 올려 보낸다. 위를 올려다보는 재복의 시점은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던 아이들을 내려다보던 시점과 중첩된다. 영화는 묵묵하고 담담하게 재복의 목격과 성찰의 시간을 지켜보고, 그가 돌아오는 길, 즉 함께 살기를 선택하는 그 길이 오히려 현실이고 사실성에 근거한 것이라 말하며, 해고노동자의 존엄과 품위를 보여준다. 재복은 그렇게 농성장에 돌아와 ‘휴가’라는 시간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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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는 뭐 하는 한 해였는지 모르겠다. 코로나19 판데믹 때문에 영화업계는 불안과 침체가 주였던 것 같은데 그나마 이래저래 만난 한국 영화들이 2020년을 관통하는 한 줄기 빛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기억으로는 1월 말, 2월 초 참가했던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는 윤단비 감독의 < 남매의 여름밤 >이 밝은 미래 부문 상을 탄 것, 같은 곳에서 다른 한국 영화들의 활약과 함께 작년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탄 봉준호 감독의 < 기생충 >이 흑백 버전 월드 프리미어와 마스터클래스를 엄청난 열기 속에 마친 것으로 기분 좋게 시작한 한 해, 곧이어 2월 초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전례 없이 비영어권 영화로 <기생충>이 최고 작품상을 비롯한 4개 부문 상을 휩쓴 것으로 기분 좋게 시작한 한 해였다. 세계인이 감탄한 가운데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LA 현지 시각 2월 9일) 끝나고 이틀인가 사흘 후, 연상호 감독과 < 반도 > 단독 인터뷰를 할 때까지만 해도 서울에 있는 투자배급사의 밀폐된 유리 상자 같은 회의실 안에서는 마크스를 벗고 이야기한 것이 기억이 난다. 지금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거의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옮겨진 일상에 오늘도 Zoom 화상 인터뷰가 잡혀있다.) 어쨌든 한국 안팎으로 2016년작 < 부산행 >이 이례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에 이어 그 후속작인 <반도> 역시 칸 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후 여름 성수기 텐트폴 개봉의 수순을 밟을 것에 국제적인 기대가 이미 모아졌던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2020년은 정말 신나는 한 해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11월 말, 12월 초 시점에서는 이게 다 올해 얘기 맞나 팩트 체크를 해야 할 정도로 다른 세상의 먼 과거 얘기가 돼버린 것 같다.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 이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COVID-19)’라는 말이나 ‘판데믹이 영화업계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한 얘기가 빠지는 기사는 거의 쓴 적이 없는 것 같다. 세계적으로 극장 관객 수는 폭락했고 영화사들은 극장 개봉을 미루거나 OTT로 직행했고, 칸 영화제도 취소한다 만다 한참 끌다가 결국 6월에서야 선정작 발표만 하고 물리적 영화제 자체는 취소하는 형태가 됐고, 앞으로 영화 제작과 상영은 잘해나갈 수 있을까 계속 불안하고 우울한 2020년이 돼버렸다. (그래도 일찍부터 세계 여름 동시기 개봉을 준비했던 <반도>는 그나마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잘 취한 한국 외 아시아 몇 개국 중심으로 개봉을 과감히 실행하면서 얼어 있었던 극장가를 어느 정도 녹여주었다. 칸 영화제는 열리지 않았지만 공식 선정작 목록에 오른 <반도>는 그것과 별 상관 없이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이례적인 흥행기록을 또 세웠고, 국제 영화업계는 그 행보에 주목했다.) 그리고 수개월 간 개막을 할지 말지 고민하던 부산 국제영화제는 조심스럽게 사회적 거리두기 및 방역 조치를 강화한 상태의 축소된 행사를 10월에 개최하기로 했다. 이에 <스크린 인터내셔널>에서는 영화제에 선정된 떠오르는 한국 영화 신인들 몇에 대한 취재를 하게 됐고, 덕분에 신선한 장편 데뷔작들을 또다시 볼 수 있게 됐다. 그 중 뉴 커런츠 부문에 선정된 이란희 감독의 < 휴가 >가 기억에 가장 남는 영화 중의 한 편이다. 보통 취재를 위한 스크리너 링크를 받으면 당장 관람하지 못한다. 다른 일이 좀 없는 늦은 밤이나 주말에 볼 수 있게 되는데, 그때 가서 링크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할 경우, 보내준 이에게 연락하기 곤란한 타이밍이다. 그래서 이메일로 받으면 “잘 받았습니다” 답신을 하기 전에 먼저 스크리너를 잠깐씩 틀어본다. 앞부분 크레딧과 첫 장면 몇 초가 잘 나오나 보고, 무작위로 중간쯤 계속 문제없이 나오나 한두 군데 정도를 틀어본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2-5초씩만 틀어본다.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맨 끝은 피한다. 그런데 반갑게도 이번 부산 영화제 기대작으로 받은 스크리너들은 거의 다 불과 그 몇 초 안에 ‘아, 이 영화 좋을 것 같다’ 싶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다 보고 났더니 실제로 이 불안하고 침체된 시기에 영화에 대한 희망을 주는 작품들이 맞았다. 신기해서 주로 취재 기자로 일하는 나보다 훨씬 많은 영화를 전문적으로 보고 평가하는 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와 평론가 친구들에게 SNS상으로 물었다. 어떻게 몇 초 안에 영화가 좋다는 게 티가 나지? 무슨 연출력의 힘이나 미쟝센의 요소들이 결합하면 총 5초 내에 느낌이 오게 할 수 있을까? 쟁쟁한 영화제 프로그래머들도 제대로 답을 못 해준 건지 안 해준 건지 그저 좋은 영화를 봤다니 기뻐해 주고, 기껏 해 봤자 ‘많이 보다 보면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정도였다. 주인공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3초 동안 나오는데 ‘뭐 하나 동행해 보고 싶다’,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배경과 소리가 나오는 장면을 2초 동안 보는데 ‘저 안에서 호흡해 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영화들이 있다. 무슨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그런 느낌을 주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휴가>도 분명히 그런 영화 중 하나다. <휴가>는 중년의 해고 노동자 재복이 동료들과 함께 1,882일째 농성하는 날 해고 무효 소송에서 최종 패소하고, 일단 장기 농성을 하던 차가운 노상의 텐트를 떠나 며칠간 재충전의 시간, 남들처럼 ‘휴가’를 가자는 결론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엉망이 된 집에 들어간 재복은 밀린 청소와 정리를 시작하는데 딸들은 너무 오랫동안 가정을 비웠던 아빠가 반갑지 않다. 농성장에서 식사 담당인 재복은 집에서도 따뜻한 밥을 차리지만 애들은 외면하고 늘 먹었던 듯한 라면을 알아서 해 먹는다. 고3인 큰딸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합격한 대학에 낼 예치금이 필요하고, 작은딸은 롱 패딩 코트를 갖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재복은 얼마 없는 휴가 동안 돈을 벌기 위해 친구가 관리자로 있는 가구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이 작품은 이전에 단편 영화 < 파마 >, < 천막 > 등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외 다수 영화제에서 기대주로 떠올랐던 이란희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 감독은 2012년 실제로 어떤 기타 공장 해고 노동자 밴드 공연을 보고 그 멤버들에 관한 시나리오를 쓸 생각으로 취재하다가 결국 단편 영화를 몇 편 찍게 됐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보게 된 장기 농성자들 중에 12년간 투쟁한 사람이 농성장을 중간에 떠났다가 몇 번이나 돌아온 것을 보면서 궁금해하다가 어떤 일을 하다가 왜 돌아왔는지 이해하려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한다. 할 일이 있고 ‘일정이 있어서’ 그랬다고 한다. 이렇듯 재복도 가깝게는 함께 지낸 공장 동료들과 멀게는 더 큰 노조 조직들과의 연대 의식과 책임감으로 농성에 성실히 임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돌보아야 할 가족들이 있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재복은 무덤덤한 것 같으면서도 누군가 억울한 일, 어려운 일을 당한다 생각하면 없는 처지에도 발 벗고 나서서 도우려 한다. 말주변이 없는 듯하면서도 옳고 그름에 대한 소신을 갖고 말할 때는 사람들이 당황해하면서도 설득을 당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봉하 배우는 성실한 곰 같으면서도 섬세한 면을 드러내는 재복을 연기하는데 가슴을 천천히 미어지게 한다. 이 영화 전체가 그런 것 같다. 덤덤하게 다큐멘터리처럼 인물들을 따라다니는데 섬세한 순간순간과 사건들이 모여서 조용히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게 있다. 스포일러를 쓰지 않고 이란희 감독이 쓴 시나리오를 칭찬하기 힘들다. 그런데 어쨌든 시나리오를 받쳐준 노신웅 촬영감독과 한동훈 동시녹음 기사와 이연정 편집자의 역할도 꼽을 만할 것 같다. 분명 처음에 2~5초씩 스크리너를 돌렸을 때 매력을 느끼게 한 그 모습들이나 소리들도 감독의 연출 아래 그들의 공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작품 속에 큰딸 현희를 연기한 김정연 배우, 작은딸 현빈을 연기한 이승주 배우, 그리고 작업장의 젊은 동료 준영을 연기한 김아석 배우를 보면서 계속해서 한국 영화의 자라나는 연기자 풀이 메마르지 않음에 희망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영화는 10회차, 2월 18일부터 3월 1일 사이에 촬영했다고 한다. (‘코로나19는 저희가 촬영을 마치자마자 한국이 난리 났었다’는 감독의 기억이 있다.) 주로 인천에서 촬영했는데, 한 회차는 서울 강남역 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농성장에서 찍었다고 한다. 노조를 만들려다가 해고돼 복직을 위해 355일 동안 고공농성한 김용희씨가 아직 철탑 위에 있을 때의 농성장인데, 그 로케이션이 영화 속에 제대로 활용된다. 감독은 '노동 이슈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하기 힘들고 말하자면 가난한 사람, 힘이 없는 사람, 그럼에도 품위를 잃지 않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나도 평생 부자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눈이 가는 것 같다. 허투루 살지 않고, 최대한 성실하게 인간적인 측면에서’ 도리를 지키며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이들을 보살피려는 재복도 그런 인물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양극화로 ‘좋은 인성까지도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집안에서 세습되고 있는 생각이 들더라’ 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제도를 바꾸려는 노력도 하지만, 어쨌든 제도가 바뀌든 안 바뀌든 살아야 하니까 그럼 우리는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뭘 가지고 여유가 있어서 나오는 에티켓 같은 것이 아니라 힘든 와중에도 이 일은 하는 내가 사람이니까 잘하려고 하는 고민’에 대해서 말한다. 그런 맥락에서도 재복은 누가 보든 말든 착실하게 정성껏 할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동안 농성하느라 묵혔던 기술과 경력을 살려 가구 만드는 아르바이트에 임할 때 나름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 남들처럼 휴가 때 어디 좋은 데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아픈 등에 파스를 붙여가면서 노동하는 것인데도 나름 품위가 있어 보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대충 감이 왔겠지만 <휴가>는 블록버스터 상업 영화가 아니다. 저예산 독립 영화다. 인천영상위원회, 한국영상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전주영화제작소 등 여러 단체의 기획개발, 제작, 후반 작업 등 각 단계별 지원뿐만 아니라, 밥을 날라다 주고 장소를 빌려준 지역 주민들의 성원 등 여로모로 지원이 들어간 작품이다. 영화업계 역시 양극화되어가는 상황에서 <휴가>와 같은 독립영화들도 품위 있게 지속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부족한 글을 몇 자 적어봤다. 가장 인간적인 작은 단위의 관찰과 동조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문제와 함께 좀 더 넓은 폭의 사회 문제도 곱씹어 볼 수 있게 하는 영화는 지원해줄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그게 지역이나 국가의 단체로서든, 개인 극장 입장권을 예매하는 관람객으로서든, 밥을 날라다 주는 이웃으로서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