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분노 (용산 337가지로 표현하기 : 촛불방송국 레아)
- 감독
- 김준호
- 제작년도
- 2009
5년도 지난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로 기억될 수 없는, 묻어둘 수 없는, 어디선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야기다. 2004년 한국과 미국이 주한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옮기기로 협정을 맺은 후, 대추리에서 몇 세대에 걸쳐 살아온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쫓겨날 처지가 되었다. 주민들은 저항했지만 2006년 5월,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해서 강제 철거를 시작한다. 이명박 정권하 용산 철거 이야기가 아니다. 2003년 꾸려진 대책위원회, 각지에서 모여든 활동가들, 그리고 마을을 버리지 못하는 주민들은 끝까지 싸웠지만, 2007년 초 봄, 그들은 결국 떠날 수밖에 없었다. 김준호 감독의 < 길 >은 2006년 5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대추리의 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과 달리, 그의 영화는 격렬하게 집회 현장의 대치 상황이나, 활동가들의 싸움을 쫓아다니는 대신, 고요하게 한평생 대추리를 지켜온 어느 노인의 일상을 따라가기로 한다. 영화의 시작 화면에 떠오른 자막은 이렇게 말한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논에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방효태. 70대 노인이지만, 단 하루도 빠짐없이 땅을 가꿔온 농부다. 감독은 한 평생 농부로 살아온 남자가 자식처럼 보살펴온 땅이 부서져가는 현장을 어떤 심정으로 쳐다보는지, 그 앞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지켜보고 싶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우리들 역시 땅을 빼앗긴 자의 드라마틱한 절규나 과거에 대한 향수를 예상하게 된다. 하지만 그 예상은 빗나간다. 농부는 울분을 삼키면서도 묵묵히 하루 두 세 번씩 그 땅을 찾아가고 철조망과 전경들로 둘러싸인 논에 들어가 잡초를 뽑고 약을 치며, 남아 있는 한 포기의 생명도 포기하지 않는다. “농민은 어차피 그렇게 싸워야 되는 거여.” 카메라로 싸우기 위해 대추리로 들어갔을 감독은 전혀 다른 방식의, 보다 근본적이고, 건강하며, 끈질긴 싸움의 길을 이 평범한 농부에게서 발견한다. 한 평생 땅을 믿고 흙과 함께 살아온 주름 진 얼굴의 농부들이 기계로 파헤쳐진 논밭을 가만히 응시할 때마다 그걸 조용히 쳐다보는 카메라에서도 이제 눈물이 맺힌다. 감독은 그렇게 카메라를 끄지 않고서도, 여전히 대추리의 풍경을 기록하고 그 현실에 분노하면서도, 대추리 주민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 안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다큐멘터리가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섣불리 대상과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는 다큐멘터리의 시선은 위선적일 때가 많다. 카메라를 든 자의 마음이 어느 새 대상의 삶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하는 순간도 의도한다고 일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때로는 거리를 둘 때가 필요하기도 하고, 타자를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릴 때도 필요하다. < 길 >이 보는 이들에게 위로를 주는 건, 관념이 아닌 몸으로 그런 것들을 체득하고, 여전히 좋은 인간, 좋은 다큐멘터리가 되기 위해 배워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줄 때다. 투쟁의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울분을 터뜨리지 않아도, 농부 방효태씨 만큼은 곧지 않아도, <길>은 자기 자리에서 튼튼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