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통합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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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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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기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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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번개 (무자막/영어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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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음악 기록사(1919~1999) 3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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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바이올린 모음집(VOCLALISE:VIOLIN SHOW PIECES:CHEE-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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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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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53
그리운 최인호…영화로 만나는 첫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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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저주의 멜로디] 김곡 김선 감독, “새로운 소재 관습적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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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작자 21인에 묻다] 여고 복도서 달려들던 최강희 오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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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산배암
우리가 정지영 감독에 대해 가진 이미지는 < 남부군 >(1990) 이후에 고정되어 있다. 빨치산의 이야기 통해 당대의 금기를 넘었던 그는, < 하얀 전쟁 >(1992) <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1994) 등을 통해 한국 현대사에서 미국이라는 국가의 존재를 되새겼고, < 부러진 화살 >(2012) < 남영동 1985 >(2012) < 블랙 머니 >(2019) 그리고 아직 미개봉 상태인 최근작 < 소년들 >까지 공권력에 대해 문제 제기한다. 이른바 ‘사회파 리얼리즘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1980년대 호헌 철폐 운동부터 시작해 스크린쿼터와 영화법 개정과 스크린쿼터 수호 등 한국영화계 이슈의 중심에서 리더 역할을 했던 인물. 그가 바로 ‘감독 정지영’이다. 하지만 그의 1980년대 필모그래피는 사뭇 다르다. 첫 영화 <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1983)는 프랑스의 작가 피에르 브왈로와 토마 나르스자크가 쓴 소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1952)를 각색한 스릴러였다.(이 소설은 프랑스의 앙리 조르주 클루조가 1955년에 < 디아볼릭 >으로 영화화했고 할리우드에선 1996년에 이자벨 아자니, 샤론 스톤 주연의 < 디아볼릭 >이 나왔다.) 모델 출신 배우였던 오수미와 윤영실 자매가 등장하는 이 영화는 그 캐스팅 만으로도 압도적인 작품으로, 한 남자를 파멸로 몰아넣는 팜므파탈이 등장하는, 반전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작품이다. 이후 그에게 ‘여성’은 중요한 테마가 되는데,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제 2의 성』(1949)을 각색한 < 위기의 여자 >(1987)는 결혼한 여성의 현실을 보여주었고, 한수산 원작의 < 거리의 악사 >(1987)는 여성의 운명을 중심으로 한 아픈 사랑 이야기였다. 그리고 1988년, 정지영 감독은 악녀 캐릭터를 두 가지 방식으로 변주한다. < 여자가 숨는 숲 >이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입은 여성의 성적 일탈과 이중 생활을 다룬 심리적 성향의 에로틱 스릴러라면, 이어지는 < 산배암 >은 김기영의 < 하녀 >(1960)를 연상시키는, 계급과 섹슈얼리티를 결합한 가정 파탄 스릴러다. 우리에겐 < 외계에서 온 우뢰매 6 >(1989)의 ‘데일리’ 캐릭터로 기억되는 김종아의 데뷔작이자 첫 주연작인 이 영화는 정지영 감독 필모그래피의 이색지대로, 지금 접하는 그의 리얼리즘 영화를 생각하면 꽤나 낯설다. 1988년 당시 충무로의 젊은 피였던 정지영, 장길수, 신승수, 이황림, 박철수, 곽지균 감독은 오디션을 열었고 총 5명의 배우를 선발했다. 그 중 한명이었던 김종아는 <산배암>의 주인공이 되었고, 함께 선발되었던 김홍제는 이 영화에서 박 기사 역을 맡았다. ‘원초적 관능’의 세계를 줄곧 추구해온 김지연 작가의 장편소설 『산배암』(1979)을 각색한 이 영화는 전형적 설정으로 시작한다. 지리산에서 뱀을 잡으며 살아가는 시골 소녀 탄실(김종아). 그는 가난 때문에 도시로 와 우 사장(남궁원) 집 하녀가 된다. 임무는 우 사장의 아내(김영애)를 모시는 것. 하반신 불구로 휠체어에 앉아 생활하는 그는 탄실을 마치 딸처럼 여긴다. 하지만 그들에겐 빅 픽처가 있었으니…. 탄실을 씨받이로 사용하는 것. 불임인 그는 탄실을 우 사장에게 접근시키고 드디어 ‘일’은 벌어진다. < 씨받이 >(임권택, 1987)의 현대 버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임권택 감독의 영화가 유교 사회에서 대를 잇는다는 명목으로 희생당하는 여성을 보여준다면, <산배암>에서 탄실이는 ‘아이를 소유하고 싶다’는 부르주아 여성의 모성적 욕망을 위한 도구가 된다. 일단 우 사장 부부의 음모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탄실은 아이를 낳고, 우 사장 부부는 그 아이를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위장하며, 탄실은 집에서 쫓겨나 어느 아파트에 홀로 격리된다. <씨받이>에서 아이를 낳은 후 옥녀(강수연)가 처했던 상황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하지만 탄실은 옥녀처럼 자살하지 않는다. 아파트 생활을 끝내고 시골로 돌아갔던 탄실은 다시 서울로 돌아와 선언한다. “오늘부터 저는 이 집의 떳떳한 식구인 거라예.” 그러면서 아이를 직접 키우겠다며 젖을 물린다. 현대판 씨받이인 탄실. 같은 침실 안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관계. 여기서 끝났다면, <산배암>은 탄실의 소심한 복수극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3중 반전으로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를 마무리했던 정지영 감독은 <산배암>의 결말에서도 이야기를 뒤틀며 탄실을 산배암처럼 독기를 지닌 악녀로 만든다. 우 사장의 아내는 박 기사(김홍제)에게 탄실을 강간하도록 지시하지만 탄실은 또 다시 돌아와 말한다. “내가 박 기사에게 쉽게 당할 줄 알았능교?” 이후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아기는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난다. 다시 여기서 끝났다면, 다소 황당한 결말의 드라마 정도겠지만, <산배암>은 갑자기 1년 후로 이동해 다소 충격적인 광경을 보여준다. 사고로 불구가 된 우 사장과, 휠체어를 밀고 있는 탄실. 그는 “아기를 다시 낳으면 된다”고 하지만, 우 사장은 더 이상 섹스를 할 수 없다. 여기서 탄실은, 이젠 안주인이 되어 집안을 장악한 그는, 한때 자신을 범하려 했던 박 기사와 몸을 섞는다. 사극 식으로 말하면, 씨받이였던 여자가 씨내리를 통해 양반 집안의 혈통을 잇는 셈이다. 백일 잔치 장면은 부르주아 가족의 위선과 균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신이다. 요약하면, <산배암>은 순수했던 한 여성이 도시라는 공간으로 오면서 욕망에 휘둘리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린 여기서 질문해야 한다. 탄실은 순수한 상태가 더럽혀지며 타락한 걸까, 아니면 자신에게 잠재되었던 악녀적 본성을 발견한 걸까? 마치 성선설과 성악설의 대립과도 같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쩌면 영화의 마지막에 굵직한 자막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카인의 무리여, 네 형벌은 언제나 끝날 것인가.”
[초이스]리틀보이 12725
< 리틀보이 12725 >(2018, 김지곤 )는 김형률의 고귀한 삶에 논평을 더하거나 업적을 기리기보다는 그의 내밀한 마음과 생각이 무엇이었고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더듬어 보려는 시도에 더 가깝다. "삼촌 책상에 앉아서 창문을 봤어요, 무슨 생각을 하고 사셨을지 궁금하더라고요". 조카의 인터뷰는 영화의 태도와 일치한다. 그 쇼트 이전에 카메라는 어두운 방에서 오랫동안 창을 응시했고 이후엔 김형률이 실제로 봤을 풍경들-창밖에 눈이 오는 휴대폰 동영상, 창에서 내려다보이는 부둣가 사진-을 본다. 방대한 사료 가운데 그가 쓴 일기와 메모들, 시를 읽는 데에 많은 쇼트들을 할애하게 된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 일이다. 아파도 치료비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아프고 싶다는 바람, 추운 날씨에 집 안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있지만 봄이 되면 훨훨 살아날 것이라는 의지, 배움에 자격은 없다는 열의, 평범하게 직장에 다니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고백. 그와 뜻을 함께한 운동가들이나 관련된 책을 쓴 작가들은 인권운동에 투신한 그의 놀라운 집념을 자주 언급했는데, 이를 추동하는 힘은 그처럼 소박하고 단단한 마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김형률의 고통은 원폭 피해자 2세를 만든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오프닝씬은 티니언-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의 행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다음엔 합천에서 부산으로, 다시 말해 어머니에게서 자식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이 슬픔의 경로를 불러다가 역사와 그 영향 아래의 개인에 대해 생각한다. 리틀보이가 히로시마에 도착한 8월 6일은 이제 유등을 띄우고 평화를 기원하며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원폭기념일이 되었다. 나가사키에도 추모객은 밤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1945년의 폭탄 구조물은 아직 티니언에 있다. 리틀보이와 팻맨이 남아있다면 희생자들도 살아있겠죠.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그것을 가정하는 내레이션이 물안개 피어나는 합천의 강가에서 한번, 김형률의 방과 어머니의 히로시마 생가 전경에 걸쳐 한 번 반복된다. 이 때 내레이션은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어머니가 피폭되지도, 아들을 그렇게 잃지도 않았을 거라는 말처럼 들린다. 영화는 사람들의 외면이나 무지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역사도 침묵하지 않고, 현재의 시간 안에 과거가 존재한다는 걸 믿고 있다. 원폭을 견딘 건물의 잔해들과 녹음(綠陰), 그 뒤로 현대식 건물들이 보이는 히로시마의 강변 풍경에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영화는 유유히 흐르는 히로시마의 강물을 바라보며 욱일기 아래에서 만세를 부르는 사진,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전함과 잠수함 등을 교차해 바라보며 과거사에 대한 그들의 책임을 묻는다. 김형률이 등산을 좋아했다는 진술에 이어지는 산의 전경엔 삶에 대한 의지 대신 비극의 단초인 핵실험을 새겨 넣기도 한다.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와 함께 기장 앞바다, 고리원자력발전소에 이어지는 히로시마의 숲 쇼트들, 거기에 교차되는 원폭투하 당시의 무시무시한 먼지와 화염은 도시교향악처럼 보이던 일련의 쇼트들에 이상한 생명력과 섬뜩함을 남긴다. 하지만 영화는 인물들의 감정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매우 조심스럽다. 이를테면 아버지는 김형률이 이룬 성과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평가된다. 누군가와 만났을 때는 물론이요 토론회, 기념식, 행사와 시위 등등에 다니며 찍은 기념사진마다 아버지가 곁에 있다시피 하니 그의 노고를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도 영화는 그를 비중 있게 다룬 적이 없다. 아버지는 어머니와의 투 쇼트(two shot)에서도 거의 말이 없고, 집에 손님들이 왔어도 배경인 것처럼 뒤에 조용히 앉아있다. 2층 방을 만들어 주게 된 사연의 내레이션, 아들이 자기 나름대로는 살아보려고 등산을 많이 다녔다는 인터뷰, 추모제에서 인사말을 하는 정도가 아버지를 다룬 쇼트의 전부다. 또한 영화는 김형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주변인들에게는 묻지만 그에게는 묻지 않는다. 아들의 못다 이룬 뜻을 이어가는 아버지에겐 무용한 질문인 까닭이다. 어머니의 심정은 금강경에서 드러난다. 12년째 (독송을) 하고 있으니 좋은 데 갔겠지.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그의 독송에는 자꾸만 울음이 섞인다. 가슴에 묻는다는 자식을 어찌 잊을까. 카메라는 어머니의 얼굴을 도무지 볼 수가 없다. 나는 < 할매-서랍 >(2015, 김지곤)로 김지곤 감독을 기억한다. 옷가지며 이불들이 그대로 있는 김형률의 방을 느린 팬으로 살피거나 몇 쇼트에 걸쳐서 조용히 바라볼 때, 혹은 액자의 유리에 비친 사물의 상(相)을 관찰할 때, 티니언과 히로시마, 합천 등지에서 종종 물가나 돌담, 사소한 풍경 앞에 머물러 오래 그것을 살필 때. 그 자리에는 사물들과 장소를 응시하며 본질에 다가가려는 감독 특유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가 한 장소에서 오랜 시간이 흘렀음을 보여주던 디졸브는 이 영화에서 노을 지는 티니언의 바다에 히로시마의 강을 겹쳐내며 아예 동일한 장소처럼 보이는 데 쓰인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묶여있으니 가능한 일일 것이다. 티니언의 어두운 숲에서 시작한 영화는 김형률의 일기장 마지막 빈 페이지에서 끝난다. 그렇지만 거기에 담긴 고통과 슬픔과 문제 제기는 과거형이 되지 못했다. 어머니는 오늘도 당신의 아들을 위해 금강경을 욀 것이다. 김형률‘들’의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원폭 범죄에 가담해온 우리 사회 내부의 책임을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느냐는 15년 전의 질문은 여전히 묵직하게 가슴을 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