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육군
- 감독
- 김창순
- 제작년도
- 1977
만주. 滿洲. 오늘날 중국의 동북지방, 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 내몽고자치구의 동부지역을 포괄해서 가리키는 말. 백두산을 중심으로 압록강 두만강 천여 리에 이르는 이북지역이 여기에 해당한다. (네이버 지식대백과).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만주는 한국의 역사와 관련지어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가 걸쳐 있던 지역이었으며 또한 말갈족,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몽고족, 만주족이 공존했던 다양한 민족공동체의 지역이었다. 역사적인 복잡한 배경 속에서 중국은 이 지역을 청나라 태종이 황제로 오르면서 1636년 후금이었던 명칭을 만주로 개칭하였고, 그 후 다시 중화민국으로 바뀌면서 만주를 동삼성(東三省)으로 한 번 더 개칭하였다. 학자에 따라서는 여진족을 만주인이라 부르던 것을 이들이 살고 있는 지명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명도 있다. 1677년 이래 이 지역이 청조의 발상지라 하여 봉금(封禁)정책에 따라 이주를 금해서 그 후 거의 사람이 살지 않았으나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따라 이 지역으로 남진하고 수많은 중국인들이 기근과 여러 가지 이유로 몰래 이주하는 빈민들이 늘어났고 조선 북방지역의 한인들도 비슷한 이유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주가 사실상 통제 불가능해지자 1870년 봉금령을 풀고 이민실변정책(移民實邊政策)을 실시하였다. 오늘날 연변으로 불리는 북간도 지역에는 주로 함경 남북도 사람들이, 서간도 지역에는 평안 남북도 사람들이 이주해 갔다. 1840년 아편전쟁으로 청조가 서구 열강의 위협 아래 놓인 가운데 러시아와 일본이 만주를 놓고 다투었고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일본은 만주의 남부를 차지하고 북부는 러시아가 지배하였다. 1910년 조선이 일본에게 강점되자 이전까지의 이주와 달리 의병활동을 했거나 강점에 불만을 품고 있던 수많은 한인들이 ‘조국 독립’을 위해서 주로 정치적인 이유로 만주로 이주해 갔다. 만주의 조선독립 활동단체는 각자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에 따른 여러 이념 단체가 공존했는데 조선혁명당과 한국독립당, 동북항일연군, 조선의용군이 서로 다른 조직을 거느리고 활동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조가 붕괴되자 그 틈을 타 군벌세력이 나타나 만주국을 세웠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 정권 다툼이 벌어졌고 한편으로는 일본과 러시아가 만주를 놓고 계속 신경전을 벌였다. 1931년 9월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켰고 이듬해 3월 일본은 괴뢰 만주국을 수립하여 자신의 독점적인 식민지로 만들었다. 1930년대 이후 일본은 조선 인구의 분산정책에 따라 대량으로 일본인들과 함께 조선인을 강제 이주시키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만주를 향후 대륙침공을 위한 전초기지로 삼았다. 그러나 1945년 8월 15일 전쟁이 끝났고 그 다음은 다른 역사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그다음 만주웨스턴. 滿洲 西部劇. 만주웨스턴은 한국영화에만 일시적으로 나타난 변종(hybrid) 장르이다. 만주웨스턴이 처음 만들어졌던 1964년 혹은 그 주변부터 (첫 번째 만주웨스턴에 대해서는 서로 이견이 있다) 아마도 이 장르의 마지막 영화라고 할 < 쇠사슬을 끊어라 >가 만들어진 1972년에 이르기까지는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그저 무국적 서부극이라는 다소 조롱 섞인 표현을 썼다. 이 영화들을 하나의 장르로 개념화한 것은 2009년에 김소영의 논문 ‘지정학적 판타지와 상상의 공동체; 냉전 시기 대륙(만주) 활극영화’에서 이다. 제목에서도 있는 것처럼 만주웨스턴이란 표현 대신 대륙(만주) 활극영화라고 불렀고, 만주 웨스턴이라고 나중에 다시 (재)개념화시켰다. 웨스턴은 미국에서 발명한 이래 전 세계에서 서로 각자의 맥락 안에서 다시 변태하고 환골탈태하면서 각자의 지리적 영토 안에서 각자의 환경으로서의 웨스턴을 만들어냈고 다시 그것을 하위 장르로 한 번 더 (재)발명해나갔다. 미국영화라는 운동, 각자의 나라의 영화라는 리듬. 이를테면 웨스턴의 영향 아래서 만들어낸 사무라이 활극, 혹은 쨘바라(チャンバラ)영화들. 여기서 영향을 받은 홍콩 쇼브라더즈 무협영화, 혹은 무술영화. 만주웨스턴이란 표현은 물론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스파게티 웨스턴에서 재치 있게 용기를 내서 가져온 말이다. 하지만 만주웨스턴이 정말 서부극의 장르 컨벤션에 대한 다소 복잡하게 얽힌 친족 관계 안에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서부극은 영화라는 교환세계 안에서 성립될 수 있는 영웅 신화의 상징적인 교신이 될 수 있을까. 그건 레비-스트로스나 조르주 뒤메질, 혹은 쉬클로프스키가 대답할 차원의 질문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냥 잠시 동안 떠오르는 대로) 존 포드의 서부와 하워드 혹스의 서부, 세실 B 데밀의 서부, 프릿츠 랑의 서부, 킹 비더의 서부, 라울 월쉬의 서부, 윌리엄 와일러의 서부, 버드 보티커의 서부, 윌리엄 A 웰만의 서부, 안소니 만의 서부, 델마 데이비스의 서부, 로버트 알드리치의 서부, 샘 페킨파의 서부만으로도 얼마나 다른 서부가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물론 위대한 누군가를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바쟁이라면 좀 더 연대기적으로 설명했을 것이다. 고전적인 웨스턴. 수퍼 웨스턴, 바로크 웨스턴. 하지만 만주웨스턴이 자기 모델로 삼은 것은 완전히 그 바깥에 놓여있는 셀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서부이다. 이상하게도 만주웨스턴의 연구자들이 과감하다고 할 정도로 무시하고 있는 것은 이 영화들이 만들어지는 동안 미국 웨스턴에서 뉴시네마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갑자기 미국 웨스턴들은 스스로 신화를 부정하고 남북전쟁의 시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게다가 그 영화들의 대부분이 거의 동시대에 수입되었다) 물론 직접적인 설명은 거기 베트남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둘 사이에 놓인 비동시적 동시대성. 그런데 베트남전에 용병으로 참전한 한국에서 만주웨스턴을 만들면서 베트남의 그림자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단지 검열의 문제만으로 돌리는 것은 이 개념을 좀 더 히스테릭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닐까. < 황야의 독수리 > < 대추격 > 임권택 이 만주웨스턴에 한동안 열중한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는 고작해야 그때 세 편의 만주웨스턴을 찍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세 편의 만주웨스턴을 찍는 동안 28편의 영화를 찍었다) 종종 < 두만강아 잘 있거라 >를 여기에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약간 설명이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여기서 주인공 남녀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난 다음에도 결국 만주에 가지 못하고 두만강에서 일본군들과 결사적으로 싸우다가 국경선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아니, 차라리 죽음이라기보다는 전멸한다. 갈 수 없는 나라, 만주. 구태여 (만일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그래서 그렇게 해서라도) 신화의 삼각형 안에 넣고 싶다면 ‘미처 익히지 못한 것’으로서의 자리에서 이 영화를 아직 경계선을 넘지 못한 마이너스 쪽에 놓아야 할 것이다. 임권택이 이 시기에 ‘(존재하긴 했지만 동시에 실제로는 불가능한) 상상 속의 국가’ 만주를 무대로 찍은 만주웨스턴은 < 황야의 독수리 >와 < 애꾸눈 박 >, 그리고 < 대추격 >이 전부이다. (그런데 <대추격>은 현재 프린트가 유실되었다) 그런 다음 한참 뒤에, 거의 이십 년이 지난 다음 김두한은 종로통을 떠나 잠시 만주에 머문다. (< 장군의 아들 3 >) 만주를 여기서 그저 갈 수 없는 가상의 나라, 라는 은유적 설정으로 치환하면 상하이를 무대로 하거나 그곳으로 떠나는 이야기까지 포함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분류한다면 차라리 이 장르는 독립군웨스턴이라고 부르는 편이 훨씬 유용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문제는 좀 복잡해진다. (영화에 한정 지어서 말한다면) 독립군은 외국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조선 반도 내에서도 활동했기 때문에 여기에 지정학적 판타지는 거세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장르의 핵심은 그 영토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주인공들의 활동에 있는 것일까. 상황의 상태와 활동의 요구. 물론 이 영화들에는 법칙을 따르는 공동체가 있다. 다만 그 안에 선과 악이 각자의 목표를 따르면서 구획 지어져 있을 뿐이다. 물론 이 영화들이 만주라고 설정하고 촬영한 장소들은 지명을 알 수 없는 (남한 안의) 그 어딘가 이다. 정말 내몽고에까지 가서 세트를 세우고 촬영한 만주웨스턴은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뿐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과 제목을 제외하면 셀지오 레오네에게서 모델을 가져왔다기보다는 조지 밀러의 < 매드 맥스 > 이편과 삼 편에서 빌려온 것처럼 보인다) 만주웨스턴을 찍으면서 만주에 가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임권택을 포함해서 그들은 모두 한국전쟁 이후에 이십대가 되었다) 그건 보는 쪽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도 이 장르에서 사실성의 여부를 문제 삼지 않았다. 차라리 여기서는 의도적으로 사실성을 외면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가본 적이 없는 곳에 대한 향수. 어디든 상관없으니 나가보고 싶은 간절한 바람. 가져본 적이 없는 역사, 그런데 가볼 수도 없는 장소. < 애꾸눈 박 >은 만주 하얼빈을 무대로 시작하고 거기서 끝난다. 영화가 시작하면 큰 글자로 ‘1920년 만주’라고 화면을 채운다. 신해혁명으로 청조가 무너진 다음, 그러나 아직 만주사변이 일어나기 십 년 전. 역사에 관련된 그 어떤 사건이나 참조할만한 언급도 등장하지 않지만 하여튼 여기는 만주이다. 구체적인 도시 명을 지적하진 않았지만 대사에는 종종 이 하얼빈 거리에서, 라는 말을 등장인물들이 내뱉곤 하며 주인공 상하이 박과 겨룰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자 그의 친구이며 처형이 된 한인 건달패의 보스 별명은 하루빈 김이다. (하얼빈은 하루빈으로 발음되기도 한다) 이 도시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한 일본 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루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총으로 저격하여 사살한 사건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 독립군이 등장하고 그가 운반하려는 금괴 때문에 벌어지는 소동임에도 아무도 안중근이라는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역사 속에 세워진 가상의 지정학적 공동체 안으로 들어온 다음 <애꾸눈 박>은 필사적으로 어떤 역사적 흔적에 대해서도 말끔하게 청소해버렸다. 하루빈 김 상하이 박 마천평 김승 짧지만 다소 뒤섞인 줄거리. 하얼빈의 밤거리를 걸어오는 세 남자의 리드미컬한 발걸음. 그들은 상하이 박을 찾는데 어느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돈을 내지 않아 주정뱅이 걸인처럼 종업원들에게 매를 맞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가 소문으로 듣던 상하이 박과는 너무 다른데요, 라고 그들의 큰 형에게 묻자 그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놈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나 해? 놈은 싸움에 싫증을 느낀 것이다” 이리저리 끌려다니던 상하이 박이 그들을 피해 거리에 쓰러진다. (flash_back_in) 한때 이 거리의 가장 주먹이 센 자리를 놓고 하루빈 김과 겨루던 상하이 박은 그와 친구를 맺고 난 다음 그의 여동생 향숙을 보자마자 한눈에 사랑에 빠져 청혼을 한다. 하지만 동시에 향숙을 탐하던 악당인 동천의 마천평은 하루빈 김에게 거절을 당하자 앙심을 품고 “나는 원하는 것은 반드시 얻고 마는 놈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향숙은 상하이 박과 결혼을 하지만 오빠와 달리 건달 생활을 청산하고 멀리 떠나 작은 목장을 하면서 살지 않으면 절대로 잠자리를 함께할 수 없다고 칼을 들고 맹세한다. 새사람이 되겠다고 맹세한 상하이 박은 새 삶을 출발하려 하지만 목장을 살 큰돈이 없다. 그때 마침 독립군 자금을 위한 금괴를 운반해달라고 김승이란 인물이 하루빈 김을 찾아온다. 하루빈 김은 자기에게는 조국에 대한 애국심은 없지만 당신의 호기에 반했다, 라면서 그의 제안을 수락한다. 한편 상하이 박을 아편 장사 왕해림이란 자가 찾아와서 모일 모시에 일본군이 금괴를 운반하는데 그걸 훔치면 큰돈을 나눠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상하이 박은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만 일본군 복장을 하고 금괴를 운반하던 하루빈 박을 그의 뛰어난 표창 솜씨로 단번에 쓰러트리고 만다. 음모를 진행하던 마천평은 복면을 쓰고 무리들 사이에 숨어 있다가 하루빈 김이 쓰러지자마자 상하이 박의 한쪽 눈을 찔러 애꾸눈으로 만든다. 상하이 박은 자기가 쓰러트린 사람이 하루빈 김이라는 사실을 알고 친구이자 아내의 오빠를 죽인 죄책감에 술을 마시면서 폐인처럼 지낸다. (flash_back_out) 그런 그를 독립군 김승이 찾아와 마천평의 음모임을 알려준다. 게다가 그의 사랑하는 아내 향숙이 그 집에 잡혀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상하이 박은 혈혈단신으로 찾아가 마천평과 겨뤄 그를 쓰러트리고 김승은 금괴를 숨긴 지도를 찾아내어 함께 그 집을 떠난다. 플래시백: 하루빈 김과 상하이 박의 첫대면 당신이 눈치가 빠르다면 한눈에 간파해냈을 것이다. < 애꾸눈 박 >은 그날 밤, 그리고 다음 날 낮의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미처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이야기가 시작해서 모두 끝난다. 우리는 기억 속에서가 아니라면 미처 해가 지는 저녁을 보지 못할 것이다. 상영시간 1시간 48분인 영화가 시작하면 삼 년 동안이나 쫓아다녔다는 삼인조를 피해 길거리 허름한 골목 구석에 쓰러지자마자 정신을 잃은 상하이 박이 시간 저편으로 갔다가 되돌아오는데 45분을 보낸다. 오로지 설명적인 기억의 실타래. 여기서 그가 잠시 동안 잃어버렸던 의식은 아무것도 억압에서 그를 풀어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 과정은 그에게 이제 남겨진 의무가 무엇이었는지를 일깨우는 각성의 시간일 뿐이다. 기억에 의해 전개되는 장르의 기호들. 하지만 <애꾸눈 박>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영화는 셀지오 레오네가 아니라 장철의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일 것이다. 작품 목록에는 <애꾸눈 박>으로 소개되어 있지만 (그리고 영화에서 마주치는 제목 자막도 그렇게 올라온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신문광고에는 <의리의 사나이 애꾸눈 박>으로 되어있다. 잘린 오른 팔과 망막이 찢겨나간 오른쪽 눈. 외팔이와 애꾸눈. 제목 앞에 덧붙여진 부제. ‘의리의 사나이’. 두 영화 사이의 공통점은 단순하게 신체훼손에만 놓여있는 것이 아니다. <애꾸눈 박>의 대부분의 장면은 세트장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이 장면들은 어딘가 쇼브라더즈 영화에서 본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상해 무술영화들의 세트장 안으로 들어온 것처럼 보인다. 가장 잘 알려진 예. 장철의 < 복수 >. 한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당시 적성국가로 분류되었던 중화인민공화국의 동북성 만주에 로케를 갈 수 없었고, 마찬가지로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 영화는 상해에서 촬영을 할 수 없었다. 주인공들은 시종일관 폐쇄적인 세트 안을 떠돌았고 그들은 거기에 갇힌 것처럼 보였다. <애꾸눈 박>은 심지어 제한적인 세트를 감추기 위해서 길거리에서 촬영할 때 모두 밤거리여야만 했으며, (통행금지가 있었던 그 시절) 거리는 텅 비어서 몹시 스산해 보이기까지 한다. 세트는 대부분 단조롭고 거의 어떤 미술 미장센도 없어서 건물 내부는 황폐하기 짝이 없다. 몇 개의 가구와 허전한 벽으로만 이루어진 공간 안에서 그들은 망국의 시름을 달래고 있는 중이다. 마치 박스 안에 들어온 것만 같은 효과. 게다가 서울 거리에 하얼빈의 건축양식의 건물이 있을 리 없다. 오늘날에도 외곽 지역으로 빠져나가면 마주칠 수 있는 복잡한 골목과 조잡하기 짝이 없는 페인트로 칠해진 철제문들과 시멘트로 바른 벽들. 거기서 우리는 1960년대 말, 혹은 1970년대 초 한국영화 장르의 앙상한 판타지의 전시를 감상하게 된다. <애꾸눈 박>에는 < 황야의 독수리 >에서 볼 수 있었던 호쾌한 승마 장면도 없고 마치 기병대를 연상시키는 요새도 없다. 상하이박과 마천평 일당이 마지막에 총격전을 벌이긴 하지만 < 황야의 결투 >나 < 서부의 사나이 >, 혹은 < 리오 브라보 >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과는 거리가 멀다. 웨스턴에서 총은 이 장르의 목록 중의 하나의 모드이자 가장 중요한 모드이다. 그때 총은 단지 기능이 아니라 동시에 매너이다. 우리는 이 장르에서 총이 어떻게 운동하는지 만을 가지고도 이야기가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애꾸눈 박>에서 총은 어떤 매너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애꾸눈 박>에서 진정한 대결은 총이 아니라 육체적인 결투, 주먹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상하이 박이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자마자 떠오른 첫 번째 기억의 시퀀스일 것이다. 상하이 박이 하루빈 김을 처음 만난 시간. 하루빈 김은 상하이 박에게 말한다. “하루빈 거리에 왕이 둘이다. 왕이 둘일 수는 없으니 하나가 죽어야지” 아마도 상하이 박의 가장 행복한 시간. 모든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지나치게 마셔버린 술과 그를 뒤쫓는 청부살인업자들로부터 가까스로 도망쳐버렸다는 안도감이 그를 데려다준 시간. 몸이 거의 견디지 못할 때 그가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기억이 인도해 준 시간 속의 첫 번째 장소는 모래가 한없이 펼쳐진 강가 그 어딘가, 이다. 거기서 하루빈 김은 한 사람의 무덤을 판 다음 둘 중 하나가 여기에 묻힐 때까지 겨루자고 제안한다. 오직 주먹만으로, 죽을 때까지. 두 사람이 우정을 나누는 방식. 별다른 대사도 없는 이 장면을 임권택 을 할 수 있는 한 길게 찍는다. 여러 개의 쇼트, 하나의 이미지. 이상하리만큼 화창한 날씨. 내내 세트 안에서만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 마치 이 장면은 꿈속의 비현실적인 순간처럼 보인다. 그리고 나면 상하이 박은 이제 추락의 계단을 차례로 밟으면서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남은 질문은 상하이 박이 어떻게 다시 원래의 자리로 비상할 것이냐, 는 것이다. 말하자면 부활의 순간. 이때 독립군 김승은 사건 안에서 매우 이상한 역할을 한다. 하나의 가정. 만일 김승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물론 상하이 박은 함정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며, 하루빈 김은 이 위험한 임무를 떠안지 않았을 것이며, 그래서 상하이 박이 그를 오해로 죽이지 않았을 것이며, 게다가 ‘애꾸눈’이 되지 않았을 것이며,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폐인 생활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 아마도 이 모든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이상한 것은 오직 김승만이 여기가 지금 1920년 만주를 증명하는 유일한 지표라는 사실이다. 만일 그가 사라진다면 갑자기 < 애꾸눈 박 >은 만주웨스턴과 다찌마와리 액션활극 사이에서 거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 왜 이 영화가 만주웨스턴인 것이 그렇게 중요해진 것일까. 즉각적인 대답은 1970년을 무대로 하여 총을 사용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현행법과 치안 상황 때문에) 영화 안에서 설득하기 몹시 힘들어진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시대와 지정학적 위상. 상상의 무대. 그렇다면 김승은 이야기 안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일까. 그가 단지 순수한 겉치레, 그래서 거의 공허하게 텅 빈 기표의 상태로 머물면서 시대적 좌표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김승은 이야기 안에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발명하고 있다. 좀 더 유심히 들여다볼 것. 매번 김승이 등장할 때마다 이야기는 갑자기 인과관계를 벗어나서 다른 방향으로 벗어난다. 매번의 이탈. 그가 이야기에 접근할 때마다 이야기는 마치 그 너머의 이야기에로 이행하는 것만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때 우리는 이 문제를 반대로 질문해 볼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니까 매번 이야기가 잘못 진행되고 있을 때마다 김승이 나타나 이야기를 교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하자면 이렇게 설명해보자. 다찌마와리 액션활극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이야기를 다시 1920년 만주에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매번 독립군 김승의 개입이 요구되는 것이다. 만일 그가 없다면 그들은 1970년 명동의 건달들, 부산 남포동의 건달들, 목포 항구의 건달들과 별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 종종 자기 시대를 잊어버리는 것만 같은 인물들에게 매번 던져진 장소를 일깨우기 위해서 그들에게 임무를 부여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 역할을 하는 인물이 독립군이라는 것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적절한가. 물론 그때마다 그들은 대가라는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애꾸눈 박>의 거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상하이 박에게 부여하는 마지막 시련은 지나치게 가혹하고 그러면서도 이상한 유머가 있다. 등 뒤의 김승 약간의 디테일을 여기 더해야 할 것 같다. 상하이 박이 향숙을 구하기 위해 마천평의 집으로 쳐들어왔을 때 독립군 김승은 애매한 태도를 보인다. 그는 물론 상하이 박이 복수를 하는데 별 관심이 없다. 오로지 그의 목표는 독립군 자금을 위한 금괴를 되찾는 데 있다. 알겠다. 그런데 상하이 박이 거의 복수에 성공하는 순간 김승은 그의 등 뒤에 나타나 총을 빼앗으며 마천평의 편을 든다. (물론 그런 다음 금괴의 지도를 입수하자 다시 상하이 박의 편에 선다) 내 관심은 김승이 보이는 이중적인 태도에 있지 않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여기서 보여주는 일시적인 상실과 궁극적인 승리 사이에 놓인 잔인함은 단지 더 큰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사이를 매개하는 추락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불길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 애꾸눈 박 >은 이 장면의 순간을 단지 시련이라고 정식화시키기에는 과도할 정도로 무자비하게 오랫동안 멈춰 서서 지켜본다. 여기서 방점은 폭력이 아니라 고통에 있다. 이때 임권택 은 언제나 먼저 기회를 준다. 그게 너무 손쉽게 얻어져서 마치 보상을 받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그런 다음 예기치 않은 방법을 동원해서 다시 그 기회를 뺏어간다. 이때의 상실은 단지 주인공에게 깊은 실망감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그걸 보고 있는 쪽도 그 쾌감을 빼앗아가 버린 다음 냉담한 태도를 취하는 영화 앞에서 순간적인 자신의 기쁨을 부정당한 것에 대해 약간 어리둥절해진다. 임권택은 그의 영화 전체에서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동일한 방식의 미끼를 사용한다. “내 눈을 가려라. 내가 아무리 권총의 명수라지만 눈을 가리고는 별 수 없다는 걸 알테지.” “어떠냐 몸을 허락할테냐 놈이 죽는 걸 볼테냐.” “허락하겠어요.” 여기서, 바로 여기서 아마도 임권택 의 영화 중에서 가장 참혹한 시퀀스가 기다리고 있다. 약간의 부연설명. 영화에는 다른 예술에서 보기 힘들만큼 종종 고문에 심취해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래서 어떤 시퀀스는 그 전체를 고문 장치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영화에는 그런 순간이 있다.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 데도 고문을 오랜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한 오랜 시간 동안, 전시하면서 즐긴다. 그걸 보는 쪽도 동참한다고 간단하게 대답하긴 힘들다. 그렇다고 그걸 견뎌야만 한다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는 고통과 즐거움 사이에서 구경이라는 다소 복잡한 자리가 문제가 된다. 영화에서 고문은 이차 세계대전의 발명이다. 그 이전에는 고문을 영화는 외설적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지나치게 실재에 다가간다고 여겼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이 시작된 < 무방비도시 >에서 로셀리니가 그렇게 공들여 고문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셀지오 레오네는 자신의 웨스턴에서 예외 없이 고문 장면을 포함시키고 있다. 그런데 존 포드의 웨스턴에서는 이따금 고문의 결과를 전시하긴 하지만 그 과정을 본 기억이 없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고문은 대부분 로마를 무대로 한 사극에서 벌어진다. 미국이 포함되지 않은 역사의 산물. 약간 산만하게 이야기하자면 일본영화에서는 닛카츠 고문 장르영화가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거의 경이에 가까운 본디지 기술. 한국영화사에서 기이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이상할 정도로 만주 웨스턴에는 고문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고문은 웨스턴 장르의 컨벤션이 아니다. 단지 그것을 육체의 시련이라거나 영웅의 신화적 부활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꺼림칙하게도 이야기의 요구에 따라서라기보다는 그 묘사에 심취한 것처럼 보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혹은 21세기 영화에서 다큐멘터리들은 갑자기 고문에 끌리기 시작했다. 리티 판의 < S 21; 살인기계 >와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 액트 오브 킬링 >의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고문의 서로 다른 재연과 재현의 간극. 나는 서투르게 여기서 사드 혹은 마조흐를 끌어들이려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들이라면 훨씬 잘 (어쩌면 가장 잘) 해낼 것이다. 블랑쇼와 푸코는 사드에게 이끌렸고 들뢰즈와 바르뜨는 마조흐에 더 매혹되었다. 나는 다만 한 가지 설명만을 빌려오고 싶다. (몹시 위험한 표현이지만) 고문은 리비도의 경제학과 아주 가깝게 있다는 것이다. 먼저 고문 장치의 시퀀스에 관한 묘사. 잔인한 묘사. 마천평은 부하들에게 향숙을 끌고 오라고 명령한다. 그런 다음 네가 사랑하는 남자, 나를 거부하고 기다리고 있는 남자, 그래서 칼을 들고 “절개를 지키면서” 목숨을 기다리는 그 남자를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향숙이 끌려간 지하의 고문실에는 상하이 박에 붙잡혀 있다. 이때 상하이 박은 남은 눈마저 훼손당해서 오른 쪽 눈에서 흐르는 피로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으며 양쪽 팔을 밧줄로 묶어 마치 만세를 부르는 듯한 자세로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누구라도 이 전시 앞에서 얼어붙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학대와 고통으로 육체를 매다는 것. 거기 매달려있는 고기와 뼈와도 같은 상하이 박. 마천평은 향숙을 구석으로 몰아세워 놓은 다음 부하들의 호위 아래 호기롭게 의자에 앉는다. 상하이 박은 앞이 보이지 않긴 하지만 목소리만을 듣고도 지금 이 자리에 온 여자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마천평도 이 상황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황을 즐기고 싶어 한다. 마천평은 마치 상하이 박의 처지를 조롱하기라도 하듯이, 그를 흉내 내기라도 하듯이, 자신의 두 눈을 가리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한다. 그런 다음 스스로에게 천하의 명사수인 나도 두 눈을 가린다면 생명을 장담할 수 없지, 라고 말하고는 상하이 박을 향해서 총을 쏜다. 처음 한 발은 왼쪽 허벅지에 맞고, 두 번째는 옆구리에 맞고, 세 번째는 오른쪽 어깨를 관통한다. 흐르는 피. 가까스로 참는 신음소리. 여기에는 잔인한 박해와 어수선한 감정이 피와 리비도 사이에 뒤범벅이 되어간다. 향숙은 마천평의 눈먼 사격으로부터 사랑하는 남편 상하이 박을 구하기 위하여 스스로 옷을 벗을 테니 제발 멈춰달라고 간청한다. 자발적인 항복. 마천평이 얻고 싶어 하는 유일한 승리. 그제서야 마천평은 총질을 멈추고 자기 눈을 가린 수건을 풀게 한 다음 향숙에게 옷을 하나씩 벗으라고 명령한다. 이제 마천평이 향숙에게 얻고 싶어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다. 사랑을 포기할 때 거기서 사드적인 냉혹함이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이때 이상한 것은 그의 부하들이 주변에 늘어 있는데도 그들을 물리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천평은 향숙에게 모욕을 안겨주는 광경을 자기의 부하들 앞에서 상연하는 무대처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마천평은 앞을 보지 못하는 상하이 박을 위해서 향숙이 하나씩 옷을 벗는 모습을 마치 중계방송 하듯이 상세하게 설명한다. “향숙이가 옷을 벗는다. 나와의 향락을 위해서 옷을 벗고 있는 거야. 알몸이 드러나고 있구나. 상하이 박. 마지막 옷이 벗겨져 간다. 마지막 옷이 벗겨져 가고 있어. 저 아름다운 육체. 저 대리석같이 매끄러운 알몸이 드러나고 있구나. 저 육체” 이 대사를 하는 동안 향숙은 하나씩 옷을 벗는다. 물론 이 장면에서 우리 시대의 관객들은 1970년의 단조롭고 갑자기 수줍어진 검열(과 대중들의 도덕적 기준)을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 검열과 도덕적 기준이 연대기적으로 점점 완화되거나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 1960년대 한국영화를 보면 명백히 십 년 후의 영화들보다 더 관대하고 노골적이며 개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종종 훨씬 음란하다. 우리는 영화에서 고문 장치에 동시대의 검열과 도덕이 포함되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기술적인 약점 때문에 이 잔인한 가학성에 쉽게 몰입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남정임 은 이 장면에서 옷을 벗는 연기를 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으며 향숙이 옷을 벗는 장면은 그저 얼핏 보아도 대역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옷을 벗는 그녀를 카메라가 쳐다볼 때마다 화면이 흐릿해지는 것(out_of_focus)은 상하이 박의 눈이 훼손을 당한 (미학적인) 이유 때문인지(point_of_view_shot) 아니면 그녀가 남정임이라는 사실을 (실용적인 이유로) 하여튼 눈속임하기 위해서인지 설명하기 난처해진다. 하지만 이 장면의 장치가 만들어내는 효과마저 감추지는 못한다. 고문 장치의 시퀀스가 작동시키는 핵심은 그 장면이 얼마나 난잡하고 음란한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조잡한 포르노에서는 왜 그 장치가 거의 멈추거나 작동하지 않는가) 그 묘사를 성립시키는 지식의 기술에 놓여있는 것이다. 왜 욕망은 욕망 그 자체로 작동하지 않는가. 왜 쾌락은 쾌락 그 자체로 작동하지 않는가. 어디서 고통이 전이되기 시작하는가. 거기에 놓인 관계 사이의 권력은 이 모든 자리를 얼마나 일시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드는가. 그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효율성은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 그 안에서 육체의 주권은 어떻게 양도되는가. 그 양도가 어떤 기쁨을 분배하는가, 혹은 독점하는가. 약간의 배경. 장치(le dispositif)라는 말은 구조주의자들 사이에서 서로 겹치면서 또한 이질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다소 조심스럽다. (그리고 이 말은 메츠를 경유하여 장-루이 보드리와 장-루이 꼬몰리 사이에서 l’appareil와 다시 구분을 해서 약간의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논의는 우리의 설명과 다소 멀리 있다) 알튀세와 푸코, 들뢰즈, 리오타르, 보들리야르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말을 사용하였다. 조르조 아감벤은 푸코가 이 말에 진정하고 고유한 의미를 부여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정의에 근접한 적이 있다면서 약간의 인용을 한다. “(푸코의 인터뷰에 따르면, 아감벤의 인용) 저는 장치가 본성상 전략적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만, 이것에 의해 전개되는 것은 장치가 힘 관계에 대한 합리적이고 계획적인 개입이라는 것입니다. (중략) 지식의 여러 유형을 지탱하고, 또 그것에 의해 지탱하는 힘 관계들의 전략들, 그것이 장치입니다” 나는 아감벤처럼 장치라는 말을 따라서 기독교 담론과 라틴어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여력이 없다. 다만 이 말을 빌려오고 싶다. 장치는 언제나 결합을 통해서 작동하며 그러므로 여기에는 몇 가지 그림이 항상 서로 겹쳐져 놓여있기 때문에 하나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여러 가지의 서로 다른 관계들 사이의 조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만일 이 시퀀스가 고문 장치라면 우리는 그 효과에 단순하게 개념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조심스럽게 그것을 구성하는 방식들의 중층구조를 하나씩 잘라내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미 설명한 대로 이 시퀀스에는 몇 개의 장면이 겹쳐져 놓여있다. 여기서 무엇이 당신을 가장 먼저 불편하게 만드는지를 질문해보고 싶다. 첫째, 사랑하는 아내가 발가벗기고 있는데도 속수무책으로 사지가 묶여있는 상하이 박. 둘째, 게다가 그걸 볼 수도 없게 양쪽 눈 모두가 훼손된 상하이 박. 그 둘 위계질서를 세운다면 어느 쪽이 당신을 더 불편하게 만드는가. 셋째, 그런 상하이 박에게 옷을 벗는 향숙의 모습을 하나씩 알려주는 마천평. 넷째, 그런 마천평의 목소리를 피하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들어야 하는 상하이 박. 만일 상하이 박이 다른 방에 있었다면 동일한 상황이 더 불편했을까. 다섯째, 치욕스럽게도 사랑하는 남편을 앞에 두고 그녀의 오빠를 함정에 빠트리고 게다가 사랑하는 남편의 두 눈을 멀게 만든 마천평의 요구에 자발적으로 응할 수밖에 없는 향숙. 여섯째, 게다가 그걸 바라보고 있는 마천평의 부하들의 시선마저도 견뎌야 하는 향숙. 말하자면 세 개의 시선. 불구의 시선. 그 시선을 대리 보충하는 목소리의 시선. 그 곁에서 그걸 구경하는 시선. 나는 여기에 세 가지를 더하고 싶다. 아직도 남은 게 있나요. 물론이죠. 일곱째, 끝내 향숙의 사랑을 얻지 못해서 이런 고문의 방식으로 그녀의 육체를 구걸해야 하는 마천평. 여덟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향숙‘으로부터’ 우위에 서 있는 상하이 박에 대한 마천평. 여기서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는 세 번째와 완전히 반대의 자리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아홉째, 그리고 이런 장면을 참고 옆에 서서 지켜보고 서 있어야 하는 부하들. 당신은 마지막 지적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들은 이 장면이 연출되는 순간의 관객이자 덤으로 우연히 참관하게 된 구경꾼들이 아닌가요. 물론이죠. 하지만 그들이 반드시, 라고 할 만큼 정말 즐기고 있었던 것일까. 마지막 순간, 그러니까 향숙이 알몸을 가리고 있는 마지막 옷을 벗으려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김승이 보상금을 요구한다는 부하의 전갈이 도착한다. 제시간에 도착한 메시지. 그러자 마천평은 고문을 중단하고 그를 만나러 나간다. 이때 별다른 지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도 마천평이 나가자마자 그의 부하들은 발가벗은 향숙에게 마치 그런 당신을 보고 있는 게 불편합니다, 라고 말하듯이 옷을 건네준다. 지금 여기는 지하실이고, 이 영화 속의 가장 나쁜 악당의 소굴이며, 이들은 그 악당의 부하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 예의 바른 태도는 몹시 기묘하게 보인다. 좀 더 실용적으로 설명하면 만일 그 제스처를 (정확하게 뒤에 서 있는 여러 명의 출연자들 중 그 배우에게 연출의 쪽에서) 지시하지 않았다면 촬영이 끝난 것도 아닌데 그런 동작을 취할 리가 없다. 이건 동선의 문제이며 이 시퀀스의 고문 장치의 일부이다.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지 모른다. 여기에는 향숙의 시선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하나씩 옷을 벗는 그녀는 마천평(과 그의 부하들)의 시선과 목소리의 대상이 되고,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상하이 박의 거의 희미해서 보이지 않는 남은 한쪽 눈의 시선의 대상이자 마천평의 목소리를 경유하여 청각적인 대상이 되지만 향숙 자신은 마치 묘사의 대상으로 던져진 모델처럼 어떤 반응도 없이 차분하게 옷을 하나씩 벗어나간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추가할 생각이다. 마찬가지로 향숙이 발가벗기고 있는 동안 마천평의 부하들의 시선도 완전히 제거되어 있다. 물론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영화이론의 시선과 동일시에 관한 (따분할 뿐만 아니라 기계적인) 이론이 준비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없다. 고문 장치로서 이 시퀀스가 작동하기 시작할 때 수많은 시선이 교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영화의 문법 안에서 향숙이 옷을 벗는 과정을 보는 시선은 단 하나, 마천평의 시선뿐이다. 심지어 이 시선의 수사학에는 미처 생각지 못하게도 우리들의 시선마저 차단당했다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상황과 시선 사이의 불일치가 있다. 공개적인 일종의 스트립쇼. 하지만 불가능한 시선, 사라진 시선, 외면한 시선 사이에서 가능한 유일한 시선. 그런데 우리들마저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오직 마천평만이 시선을 독점하게 된다. 그런 다음 마천평은 자신이 본 지식을 청각 기호로서의 언어로 바꾼다. 사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미 지적한 것처럼 이때 마천평은 묶여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상하이 박을 괴롭히려는 것이 원래의 그의 목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그 과정 자체가 자기 자신에게도 고통스러운 자기 경멸의 과정이라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마천평은 향숙에게 청혼을 했었고, 그가 상하이 박에게 원한을 품게 된 것은 그녀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만일 마천평이 향숙에게 아무 감정이 없으며, 오직 상하이 박의 아내이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괴롭히는 것이라면, 그는 구태여 그럴 이유가 없다. 그는 즉각적으로 폭력을 동원했을 것이며 상하이 박의 다른 한쪽 눈을 멀게 만드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차라리 향숙에게 폭력적인 성행위를 시도하고 그걸 바라보게 만드는 편이 훨씬 손쉬울 것이다. 지금 마천평은 구태여 일종의 상연의 형식을 빌려 연출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때 질문은 이 연출의 가설을 뒤흔든다. 그런데 여기서 마천평의 진정한 목표는 상하이 박이 아니라 향숙을 향한 것이라고 말해야 옳은 것이 아닐까. 이 고문 장치 시퀀스의 괴상한 점은 가장 외곽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이는 향숙이 사실은 이 모든 장치의 고정점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마천평이 상하이 박을 괴롭히기 위해 향숙이 옷을 벗는 과정을 서술하는 것은 동시에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내면의 욕망을 고백하는 형식을 취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그에게 그걸 요구한 적이 없으며, 게다가 그는 지금 두 사람, 상하이 박과 향숙의 생명에 대한 권리마저 쥐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그가 하고 있는 행위는 그 세 명 중에서 가장 열등하게도 상하이 박과 향숙을 앞에 두고 자기 내면을 마치 자백하듯 설명하는 중이라는 사실이다. 왜 이런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여기 이 장면의 괴이한 점이 있다. 원래 고백은 고문의 결과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정작 고문의 가해자가 그 역할을 떠맡고 나선다. 가장 큰 오해는 자기를 고백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에서 자기 권력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고문 장치가 재현하는 외양에 속으면 안된다. 이 장면을 욕망에 관한 교환의 경제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좀 더 자명해진다. 여기서 마천평은 사실상 상하이 박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구태여 있다면 그가 얼마나 심정적으로 괴로운지를 표현해달라는 것이 그 전부이다. 그러므로 그가 상하이 박의 또 다른 눈마저 훼손시킨 것도 그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장면에 대한 이중의 결함을 안겨주기 위한 것이 고작 전부이다. 사지를 묶어놓는 것, 그리고 앞을 보지 못하는 것. 종종 영화에서 고문 장치들의 시퀀스는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사용된다. 거기 숨겨져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그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전술들. 혹은 함정들, 거짓말과 진실 사이의 교묘한 뒤섞임. 그 안에서 가해지는 고문. 그것을 견뎌내야 하는 육체. 하지만 육체 안의 신경조직들의 한계. 종종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는 고문의 강도. 그런데 그 고문은 그 진실을 위해서 효과적일까. 그때 이 모든 성가신 노력을 조금도 마다치 않고 기울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그 안에 진실을 끌어내는 과정의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비밀이 없다. 자, 당신이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여기서 논하는 것은 고문의 메커니즘이 아니라 고문 장치의 퍼포먼스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크리스 버든 다소 잔인하긴 하지만 이 고문 장면을 하나의 고문 장치 시퀀스로서 마치 인스톨레이션을 감상하듯이 바라본다고 가정해보자. 이미 우리는 수많은 고문 퍼포먼스를 알고 있다. 1963년 캐롤리 슈네만의 <아이 바디Eye Body>. 1965년 3월 21일 오노 요코는 뉴욕 카네기홀에서 관객들에게 자기 옷을 잘라내라고 요구했다. 1974년 크리스 버든은 급기야 폭스바겐 차 위에 누워서 예수처럼 자기 손에 못을 박고 달리게 한 ‘악명 높은’ 퍼포먼스 <못 박힌Trans-fixed>을 실행했다. 나는 < 애꾸눈 박 >이 이런 퍼포먼스들과 어떤 직접적인 유대관계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민하고 때로 유행에 민감한)주변의 영화들은 작업들에 영향을 받았고, 그걸 본 관객들은 간접적으로 이 퍼포먼스를 경험하기 시작했으며, 거기서 다시 영화는 그순간을 시스템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런 다음 반복해서 만들어지는 장면들 사이의 변주. 우리는 장치가 네트워크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임권택 은 그 누군가의 고문 장치를 보면서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고통과 이상한 쾌락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충분히 생략하거나 좀더 간소하게 만들거나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장면을 거의 장식 과잉이라는 인상을 불러일으킬 만큼 하나의 시퀀스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명백히 여기에는 금기에 관한 심미적인 관점이 있다. 이 장면에서 마천평은 우리와 정확하게 동일한 태도를 (매우 역겹긴 하지만) 취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시간을 들여가며, 공을 들여서, 자신의 감흥을 묘사하면서, 그렇게 감상하고 있는 중이다. 그때 향숙의 제스처는 마치 미술품처럼 자기의 행위를 퍼포먼스 하는 것처럼 보인다. 향숙 자신이 몹시 굴욕적인 이 상황을 감내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건 전적으로 우리들의 (도덕적) 상상이다. 베일에 가려버린 반응. 향숙의 쪽에서는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러나 임권택은 그런 다음 향숙의 어떤 반응도 찍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묵묵하게, 어떤 저항도 없이, 그저 명령이 내려지자마자, 그래서 자신이 그걸 하겠다고 한 다음, 어떤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옷을 벗어나간다. 물론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마천평에게 더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은 향숙이 옷을 하나 벗을 때마다 저항하는 것이며, 그럴 때마다 상하이 박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향숙은 더 큰마음의 죄의식을 갖고 속죄하듯이 명령에 굴복하고 옷을 벗는 굴욕을 감수하는 것이다. 고문 장치의 확대재생산. 하지만 임권택 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때 가장 바보 같은 반문은 이유를 묻는 것이다. 우리는 그 효과에로 질문을 돌려야 한다. 임권택은 고문 장치를 사용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처럼 그걸 확장하는 대신 여기서는 그걸 축소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세 가지 다른 판본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향숙이 이 과정에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상하이 박의 무능력에 실망하고 갑자기 마천평의 편에 서서 함께 상하이 박을 조롱하며 마치 그에게 전시하듯이 (마천평의 표현을 빌리면) “향락을 즐기는 것”이다. 그런 다음 마천평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상하이 박을 처치하고 마천평과 향숙 둘이서 목장을 사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물론 여기 외전이 있을 수 있다. 그러자 마천평이 흥미를 잃고 둘 모두를 처치한 다음 그 장소를 떠나는 것이다) 다른 또 하나의 판본은 자기에게 부여된 치욕을 참지 못하고 향숙이 (방법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스트립을 중단하고 자살해버리는 것이다. 마지막 판본은 반대로 상하이 박이 자살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임권택 은 이 세 가지 가능성을 갑자기 중단시키고 마천평을 김승에게로 보낸다. 만일 김승의 요구가 없었다면 우리는 고문 장치의 끝이 어떻게 종결되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마찬평 자신이 멈추지 않는 한 이 고문 장치는 중단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 판본은 단지 상하이 박에게 절망적이라기보다는 영화를 보는 우리들을 당황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장면에서 고문 장치가 작동한 것은 향숙의 불복종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하이 박과 마천평 사이를 오가면서 고통과 쾌락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향숙이 자기의 태도를 바꾸면 고문 장치에 남겨진 것은 상하이 박과 우리들뿐이며, 그런 다음 수순은 이제 더 이상 고문을 할 필요가 없어진 상하이 박을 괄호 치자 우리만 남게 된다. 우리만 남는다고요? 우리가 아니라면 누가 또 괴로워하겠는가. 그때 고문 장치는 영화 안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장치로 남아서 계속해서, 심지어 영화가 끝난 다음에조차, 멈추지 않고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두 번째 판본은 고문 장치를 멈추게는 하겠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마천평에게 상하이 박은 오로지 향숙 때문에 필요했기 때문에 그녀가 괄호를 치는 순간 첫 번째 판본과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그 둘은 효과가 다르다. 적어도 우리에게 향숙은 상하이 박에 대한 사랑을 지킨 것이며 동시에 그녀 자신의 (마천평의 표현을 빌리면) “절개를 지킨” 것이다. 그때 고문 장치는 마천평의 기대와 달리 향숙과 상하이 박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서 활용된 것이다. 물론 복수가 남은 김승에게 떠넘겨지는 것이 불만스럽긴 하지만 이 판본은 고전적인 신파극의 감정에 충실해지기는 할 것이다. 세 번째는 단순히 두 번째 판본의 순서를 바꾼 반복이 아니다. 상하이 박이 자살을 선택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결정이 향숙에게 넘겨진다. 그녀는 이제 상하이 박이 사라졌기 때문에 사실상 “절개를 지켜야 할” 알리바이가 사라진다. 만일 지켜야 한다면 그건 일종의 의무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향숙은 그 의무감으로 뒤따라 자살을 할 것인지, 아니면 현실적인 선택에 따라 잠시 동안 상하이 박을 애도한 다음 마음을 바꿔 이제 마천평과 “향락을 즐길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상하이 박은 자기의 죽음을 통해서 그 결정을 고스란히 향숙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를 주고 있다. 의무라는 자유와 의무 안의 자유 사이의 선택. 이때 이 둘 사이에 놓인 비대칭. 세 가지 선택이 놓여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고문 장치를 멈춰 세울 때 내가 보는 것은 임권택 이 이 장치를 다루는 기술이다. 요점은 명확하다. 거기서 한발만 더 나아가면 향숙의 마지막 옷이 벗겨진다. 임권택은 향숙이 도덕과 윤리 사이의 갈림길에 서는 순간에 갑자기 고문 장치를 멈춰 세운다. 말하자면 심미적 차원으로서의 고문 장치. 그러므로 고통(과 쾌락)은 그것을 즐기는 자리(의 끝)에서 멈춘다. 만일 그걸 더 밀고 나아가면 임권택은 단지 등장인물들의 곤궁이 아니라 고문 장치에 내재되어 있는 반격을 감당해야만 할 것이다. 여기서 이 문제를 고문 장치에서 작동하는 두 남자 사이의 문제로 축소했다고 설명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반대로 임권택은 향숙을 설명할 수 없는 존재로 데려다 놓은 다음 필사적으로 그녀가 이 장치 안에서 작동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중인 것이다. 말하자면 여기서 고문 장치는 한편으로는 오작동을 일으키고 (마천평의 고백) 다른 한편으로는 도중에 중단된다. 혹은 향숙의 마지막 옷을 벗기는 데 실패한다. 고문 장치는 물론 권력의 상황에서 육체를 다루는 기술에 관한 심미적 수사학의 시선이다. 그러나 고문 장치에 이르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개입을 시작할 때 그걸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멈추느냐라는 문제가 다시 중심으로 다가서게 될 것이다. 그때 임권택은 차라리 장치를 중단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도덕과 윤리 사이의 갈림길로 들어서는 것을 막고 있다. 그가 이 중단을 논리적이거나 혹은 분석을 바탕으로 해서 결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문제가 몹시 불편하다는 것만은 거의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있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 애꾸눈 박 >이 몹시 하찮게 보이는 만주웨스턴 영화의 한 편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이 장면에 이르렀을 때는 자신을 끌고 가고 있는 이 장치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문득 필사적이 된다, 는 것이 신기해 보일 정도이다. 그런 다음, 적어도 여기서 그런 다음, 임권택 은 자기가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그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 과정은 몹시 느리고 때로 우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임권택은 계속해서 선택에 관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글은 임권택의 선택에 관한 기술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계속) 1970년 100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신창흥업 각본 유동훈 촬영 서정민 조명 서병수 편집 김창순 음악 정윤주 박노식 상하이 박 남정임 김향숙 최봉 김승 독고성 마천평
여기서는 장황하게 시작할 수밖에 없다. 먼저 < 아내들의 행진 >의 포스터를 잠시 보아주기 바란다. 한 여성이 보기에도 힘겨운 돌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번쩍 들어 마치 자신의 아이를 안기라도 하듯 그런 자세로 서 있다. 그녀의 옷매무새가 벌어져 그 사이로 브래지어가 젖가슴을 가까스로 가리고 있고 치마를 걷어 올려 무릎 위 허벅지가 드러나 보이지만 바라보는 사람에게 이 그림의 디테일 어디에서도 성적인 자극을 주는 유혹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그녀는 필요 이상으로 당당하고 약간 거만하게까지 느껴진다. 건강함. 하지만 과장된 건강함. 약간 두텁게 칠해진 위에 다시 덧칠한 것이 분명한 터치도 그런 인상을 더 한다. 게다가 전체를 검붉은 색으로 물들인 색채가 약간 위압감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온통 불타오르는 듯한 힘, 그 사이를 뚫고 비치는 서광. 붉은 어둠, 혹은 암흑 사이로 내비치는 어떤 계시. 종종 종교적인 그림들에서 마주한 맹목적인 희망이 거기에 있다. 그것이 차라리 두렵다고 할까. 그녀가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 주변을 에워싼 인물들에 비해서 필요 이상으로 큰 비례로 그려진 모습이 위압감을 주면서 단지 주인공이 아니라 아마도 그녀 주변 인물들을 이끄는 지도자라는 표지를 전달한다. 마치 괴물처럼 큰 주인공.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물론이다. 다소 기괴한 느낌마저 불러일으키는 이 거대한 모습. 그녀는 주변의 얼굴조차 눈 말고는 윤곽이 거의 뭉개져 버린 듯한 한 무리의 사람들에 비하면 또렷한 얼굴의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다. 하지만 내 시선을 끄는 것은 구태여 선명하게 그린 팔꿈치와 무릎 사이로 마치 빠져나올 듯이 버티어선 뼈마디이다. 그녀는 지금 노동을 하는 중이라는 것을 하여튼 보여주고 싶어 한다. 나는 두 개의 지시어를 하나로 합쳐보고 싶다. 노동 지도자. 바로 오른쪽에는 영화를 설명한다기보다는 왠지 그녀를 설명하는 것만 같은 인상을 주는 카피가 그녀와 똑같은 자세로 위에서 아래로, 세로로 내려써서, ‘證言에 이어 내놓은 汎國民映畵!’ 라고 달려있다. 이때 포스터를 보는 우리가 불려가는 카피 안의 자리는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에워싼 얼굴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주변의 여자들이다. 汎國民 映畵, 라는 이상한 말. 여기에는 동원의 명령이 담겨있다. 국민이라는 당신, 그런 다음 국민으로 (재)통합하기. 汎, 이라는 강력한 명령. 마치 그 명령을 가시화하기라도 한 것 같은 견고딕의 서체. 그 아래 굵은 먹글씨 풍으로 쓴 제목 <아내들의 行進>. 행진이라는 말에 담겨있는 서사의 시각적 알레고리. 벤야민의 말을 빌리면 이 포스터 위에 놓여있는 제목의 서체에는 조각난 상형문자의 비의적 순간들이 이어지는 어떤 연속이 놓여있다. 어떤 영웅적 서사의 오작동. 이 표현을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싶다. 어떤 영웅. 나는 영화에서 이런 형식의 포스터를 사회주의 체제아래에서 만들어진 국영 제작소의 영화들을 위한 다른 수많은 예를 알고 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아내들의 행진>은 잘 알려진 것처럼 새마을운동을 홍보하기 위해 (문화공보부 산하기관 중의 하나인) 영화진흥공사에서 만든 국책영화이다. 자본주의 근대화를 위해서 시작한 새마을운동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민들을 계몽하고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이 시기의 수많은 프로파간다 대중선동 문화 중의 하나였던 영화중의 한 편. 그저 영화 한 편. 그런데 이 포스터는 이상할 정도로 이 체제가 불온시하고 콤플렉스에라도 걸린 것처럼 창백한 경련을 일으키면서 증오하고 적으로 삼아 내부에서 고발하고 외부에서 대치 중이었던 이데올로기의 문화적 양식을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 포스터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화 취향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기자도 아니며 제3공화국의 연구자도 아닐뿐더러 이 세대에 속하지도 않는) 내가 여기서 제한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내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영화에 관한 자신의 견해나 취향에 대한 인터뷰를 한 적이 없으며 영화에 관한 저서를 남기지도 않았다. 아마도 국가 지도자 중에서 영화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저서로 남긴 유일한 예는 김정일 북한 전 국방위원장일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북한영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참고문헌을 통해서 저서의 존재를 알고만 있을 뿐이지 그 내용을 알지는 못한다) 이건 사회주의에서도 드문 일이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톨스토이에 관한 문건을 남겼으며 고리키와는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인민을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영화에 대해서는 별다른 글을 남기지 않았다. 에이젠슈테인의 < 이반 대제 일편 >을 보고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스탈린은 1950년 언어학과 마르크시즘에 관한 짧은 테제를 썼지만 (이 글은 미셀 페쉐를 경유하여 알튀세 학파에 적지 않은 영감을 주었다) 영화에 대해서 문건을 남기지는 않았다. 그건 마오쩌둥도 마찬가지이다. 감옥에서 영화를 볼 여유가 없었던 그람시는 대중들의 동의를 끌어내야 하는 헤게모니의 진지전에서 거의 영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그람시가 영화를 언급한 건 1916년 8월 26일에 발표한 “연극과 영화”가 전부이다. (그리고 그 글에서 어떤 영화제목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람시는 영화보다는 대중들의 전선을 이해하기 위해서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소설, 단테의 「신곡」 중 ‘연옥’편, 루이지 피란델로의 희곡을 연구하는 편이 훨씬 유익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런 다음 그람시는 감옥에 갔다.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었던 요제프 괴벨스는 영화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아돌프 히틀러가 영화에 관한 글을 쓰진 않았(던 것 같)다. 지도자와 영화, 국민영화. 나는 단순하게 파시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차적 간극에 대한 약간의 설명. 내가 < 아내들의 행진 >을 처음 본 것은 새마을운동이 막 시작되었던 이 영화의 개봉 시기인 1974년 5월 16일 주변이 아니라 그로부터 한참을 더 지나 새마을운동이 민관유착에 의한 부패의 온상이 되고 난 다음 비판에 직면한 새마을 중앙본부가 새마을 중앙협의회로 변신을 꾀하던 1987년 무렵이었다. 나는 오로지 임권택 감독과의 인터뷰를 위해서 이 영화를 비디오로 보았다. 처음 개봉했을 때 국제극장 앞을 지나면서 간판을 본 기억도 난다. 하지만 이 영화에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새마을운동은 그때 음산한 희망의 (거짓된) 약속이라는 걸 모두들 알면서도 애써 침묵을 지켰다. 몇 가지 구호를 외우면 언제든지 시험에서 만점을 받을 수 있는 도덕 과목 같은 것이었고 그렇게 해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시험에서 문제를 풀어낸 것처럼 일상생활에서 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어긋남의 지루한 동요 속에서 모두들 새마을운동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새마을 국책영화 <아내들의 행진>을 그 자리에 위치 지은 다음 곧바로 잊어버렸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 족보 >를 통해서 임권택을 발견한 다음에도 그 이름과 <아내들의 행진>을 금방 연결시키지 못했다. 내가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순서대로 작품 연보를 정리할 때였다. 그런 다음 <아내들의 행진>을 (비디오로) 처음 보게 되었다. 먼저 줄거리를 소개할 필요를 느낀다. 지순은 성공적인 새마을운동을 이룬 마을에서 지도자인 오빠와 함께 자란 다음 아직 새마을운동을 시작하지 않은 가난한 마을 한밭골로 시집을 온다. 이 마을에서 우여곡절 끝에 지순은 마을 아낙들을 중심으로 가난의 원흉이었던 장마철 강물의 범람을 막기 위한 방죽을 세우면서 새마을운동을 시작하고 그녀들의 노력에 감복한 남편들도 함께 힘을 모아 버려진 농지를 개간하여 부자 마을이 된다. 자, 여기까지는 아무래도 좋다. 그런데 나를 당황시킨 것은 마지막 시퀀스 전체였다. 갑자기 기습이라도 하듯이 방향을 틀어서 이 마을에 한국전쟁 당시 납북된 만수댁의 남편이 무장공비가 되어 돌아온다. 영화는 새마을 영화에서 반공영화로 어리둥절하게 바뀐 다음 잔인무도한 공비들의 만행과 국군장병들의 용감한 대처 끝에 일망타진하는 장면을 보여주더니 갑자기 끝나버린다. 나는 처음에 비디오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에 다시 되돌아가서 문제의 장면부터 반복해서 보았다. 영세한 산업이었던 비디오업체들은 종종 필름 릴을 뒤죽박죽으로 섞거나(< 삼포 가는 길 >의 ‘악명 높은’ 비디오) 때로 90분 테이프의 길이에 맞추어서 제멋대로 영화를 자르거나, 그래서 갑자기 끝나거나, 때로 서로 다른 영화 릴이 엉키고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한편의 제목 아래 이어 붙였다. 하지만 <아내들의 행진>은 외형적으로 (화질이 너무 나쁘다는 문제를 제외하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너무 이상해서, 하지만 조심스럽게, <아내들의 행진>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결국 마지막 시퀀스에 대해서 임권택 감독님에게 질문을 하였다. 그때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을 돌려받았다. “그거는 윤주영 (문화공보부)장관이 넣으라고 해서 들어간 거요, 미치는 거예요, 거기를 박정희 대통령이 넣자고 그런다고, 절대로 넣어야 된다고 그러잖아. 나는 계속, 계속 이게 갑자기 무슨 짓이냐고 해도 소용이 없어”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책에는 질문의 반복이라 누락되어 있지만 그때 나는 대답을 듣자마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반문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 영화를 본 건가요?” “그러니까 다 찍은 영화에다가 그런 이야기를 덧붙이라고 말을 한 거겠죠. 원래 시나리오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니까” 잠시만 멈춰보자. 나는 단순하게 여기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월권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은 매우 폭력적이며 잘못된 처사이다. 하지만 그 일은 이미 벌어졌고 벌써 40년 전의 일이다. 그저 비난을 하고자 한다면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거기에 더 할 수 있겠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은 < 아내들의 행진 >을 보았고 (아마도) 몹시 마음이 들었다. 그를 감동시켰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무언가 여기에 결핍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몹시 위험한 가설을 세워보고 싶다. 참 훌륭합니다. 하지만 여기엔 무언가 빠진 게 있어요. 이 영화가 단지 새마을운동을 계몽하는 수준에서 멈추지 말고 더 밀고 나아가 반공 이데올로기까지 담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생각해서 지시를 내렸(을 것이)다. 왜 그 둘은 하나에 있을 때 비로소 하나가 된 둘이 아니라 둘 각자의 결핍을 채운 하나가 되는 것일까. 영화감독은 그 둘을 서로 다른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지도자는 그 둘이 하나를 둘로 나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의 이념에 대한 하나의 결정적 판본 역할. 하지만 아직 덧셈이 필요하다. 상황을 계산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0년 4월 22일 한해(寒害)대책을 세우는 자리에서 ‘새마을운동’이라는 정책을 꺼내 들었다. 그는 지금 이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김대중은 이제까지 만나보지 못한 힘겨운 상대였으며 그가 내세운 ‘청년기수론’은 해방 이후에 태어난 세대의 마음을 움직였다. 게다가 공화당은 눈에 보이게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었다. 그해 5월 6일 새마을 사업추진방안을 구체적으로 지시하였다. 국가 단위의 근대화 개혁을 시작하라, 는 이 정책적 명령은 정치적으로 근대적이라기보다는 봉건적인 성격에 가까웠다. 백성들을 계몽하라. 그들을 깨어나게 해서 더 큰 잠에 빠져들게 하라. (지젝이 아도르노를 빌려 설명했던) 억압적 승화. 이듬해 4월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가까스로 김대중을 이겼다. (이 선거에 대한 후일의 역사적 평가에 따르면 부정선거의 개입에 의해서, 라는 설명도 있다. 하지만 그걸 판단한다는 것은 내 능력 바깥의 일이다) 모든 일이 평화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선되자 내린 결단은 12월 6일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새마을운동과 국가계엄은 거의 평행해서 진행되었다. 이것은 권유가 아니라 명령이다. 새마을운동은 그것의 취지에 머물지 않고 그것의 과정을 함께 보아야만 한다. 만일 누군가 반대를 한다면 그는 새마을운동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그는 ‘빨갱이’가 될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고작 20년에 불과하며 여전히 분단 상태가 계속되고 있으며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지속적으로 간첩들이 일상생활에 침투하여 활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무장공비들이 휴전선을 넘어오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이 이스라엘의 집단농장인 키부츠에서 가져온 모델이라고 생각했고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이 운동이 소련의 강제이주 집단수용소에 가까운 콜호즈와 비슷한 것으로 보았다. 1972년 3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마을을 직접 시찰하기 시작했다. 모범적인 사례들. 그해 4월 21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직접 ‘새마을 노래’ 가사를 작사하고 작곡했다. 다소 지루하겠지만 당신에게 ‘새마을 노래’ 가사를 불러주겠다. (일절)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후렴)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이절)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후렴) (삼절)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소득증대 힘써서 부자 마을 만드세 (후렴) (사절) 우리 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 조국을 만드세 (후렴) 적어도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이 가사는 새마을운동에 관한 가장 짧은 형태의 아포리즘처럼 이루어진 강령이자 정감의 언어로 이루어진 이상적인 메시지일 것이다. 이 설명을 읽고 당신은 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도 웃을 수 없었다. 이 노래는 국민 누구나 외어야 하는 가사였으며 일상생활의 행동 지침이자 반복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복음이었다. 무조건적인 추종만을 요구하는 노래. < 아내들의 행진 >을 보고 나면 다소 놀라운 것은 이 영화가 단지 새마을 정책의 이념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 가사를 고스란히 서사 안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영화는 끊임없이 새 아침이 반복적으로 밝아오고 마을의 새 삶은 농한기에 집에서 게으른 아침을 보내던 마을 사람들이 미처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데서 전환을 맞는다. 옛 마을의 지표는 초가집이고 새 마을의 지표는 형형색색의 슬레이트 지붕이다. 한밭골은 길이 좁아서 리어카를 새로 장만해도 그걸 사람들이 둘러메고 동네에 들어서야 한다. 그런 마을을 새 마을로 만드는 시작은 먼저 이 마을 여인네들의 부녀회를 조직한 다음 그녀들에게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강령을 전파하는 것이다. 잘 살 수 있다. 부자가 될 수 있다. <아내들의 행진>에서 이 말은 일종의 마법의 언어이다. 이 말 앞에서 어떤 다른 반대도 힘을 잃고 만다. 여러분, 새 조국의 미래를 향한 행진 앞에서 다른 한가로운 주장을 할 시간이 없답니다. 민주주의라니요. 이 영화에서 모든 결정은 선동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단 한 번도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지도자의 명령처럼 내려진 가사를 전달하는 영화. 그러면서도 신기하게 이 영화에는 ‘새마을 노래’가 흘러나오지 않는다. (비디오 판본)무장공비와 함께 돌아온 남편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 아내들의 행진 >의 어떤 장면에 그렇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너무 다양한 차원에서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몹시 은밀하고 종종 사소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걸 짐작하는 것은 바보 같은 추론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오로지 결핍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생각이다. <아내들의 행진>의 마지막 시퀀스에는 먼저 판본의 문제가 있다. 내가 본 비디오 판본은 새마을운동이 성공하고 모든 마을 사람들이 잔치를 벌이던 날 한밭골 새마을운동 부녀회의 회장직을 맡았던 과부 만수댁 집에 한국전쟁에서 납북된 이후 생사를 알 수 없었던 남편이 한밤중에 돌아오면서 이 기괴한 시퀀스가 시작한다. 약간의 부언 설명이 필요하다. 새마을운동을 전파하려는 새댁 지순은 부녀회를 조직하면서 자신이 아직 어리고 한밭골 주민들도 잘 알지 못한다면서 만수댁을 추천한다. 이 과정은 자연스럽다기보다는 논리적으로 시나리오에서 만들어진 인물의 배치이다. 한밭골은 아내들이 여전히 구습에 매여 있고 그래서 가정에서 남편에게 절대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마을이다. 만일 누군가 나서서 부녀회 회장을 맡는다면 (이 영화의 장면에 따르면) “북어와 아내는 사흘 걸러 매질을 해야 한다”고 남편들끼리 모여 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 마을 어른들은 “자고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고 가르치는 마을에서 줄거리에 매우 번잡하게 그녀가 남편을 설득하는 과정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남편이 없는 아내가 필요해졌고 만수댁이라는 과부가 만들어졌다. 그런 다음 만수댁이 왜 과부가 되었는지 설명할 필요가 생기자 남편이 납북된 인물이라는 설정이 동원되었다. 이 영화는 전라북도 익산에서 촬영되었고 이야기에 구체적인 지명을 기입하지는 않았지만 등장인물들은 모두 호남 방언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호남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남한 최대 빨치산 조직인 남부군이 활동하였으며, 망실공비로 인한 결손가족은 호남 전역에서 드문 사례가 아니라는 계산이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만수댁은 납북된 날을 남편의 기일로 삼아 제사를 지내고 아직도 그의 실성한 노모가 살아서 아들이 언제 오느냐고 묻곤 한다. (하지만 이 제사 장면이 남편이 돌아오는 설정 이후에 보충 촬영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임권택 감독님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대답으로 처음부터 일관하고 있고, 현재 남은 시나리오는 심의대본이기 때문이다) 돌아온 남편은 다른 무장공비들과 함께 만수댁에게 밥을 차려달라고 한 다음 곧 한밭골을 떠날 생각이다. 하지만 이미 집은 국군에게 포위된 다음이며 만수댁은 그 위급한 상황에서 남편에게 자수를 권유한다. 지순의 남편은 위험을 무릎 쓰고 양손을 들고 집으로 다가오면서 “여기가 아제의 고향이요, 어디를 또 가시려고 그러시는 겁니까”라고 자수를 설득한다. 지순 남편이 다가오자 위기를 느낀 무장공비들이 지순 남편에게 총을 쏘고 그 틈을 타서 만수댁 남편은 그들을 일거에 쓰러트린 다음 재빨리 아내와 문 바깥으로 탈출하여 국군들이 포위한 논두렁까지 달려가다가 그만 총을 맞는다. 다음 장면은 만수댁 부부의 장례식 장면이다. 여기까지가 비디오 판본이다. (또다른 판본)혼자 돌아온 남편 그런데 이번에 영상자료원에서 제공받은 스크리너는 이 시퀀스 전체가 전혀 다른 판본이다. (다시 한 번 반복하자면) 새마을운동이 성공하고 모든 마을 사람들이 잔치를 벌이던 날 한밭골 새마을운동 부녀회의 회장직을 맡았던 과부 만수댁 집에 한국전쟁에서 납북된 이후 생사를 알 수 없었던 남편이 한밤중에 돌아오면서 이 기괴한 시퀀스가 시작한다. 이때 내가 본 비디오 판본과 달리 여기서는 남편이 혼자 집을 방문한다. 그는 사흘을 굶었다고 말한 다음 저녁상을 먹고 나서 바로 집을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안방에 누워있는 노모를 본 다음 마음을 바꾸고 자수를 결심한다. 그래서 한밤중에 만수댁 손에 이끌려 경찰서에 자수를 하기 위해 달려간다. 그런데 길목에서 기다리던 무장공비 무리들과 마주친다. 그들은 남편의 의도를 눈치채고 칼로 찔러 죽인 다음 만수댁마저 잔혹하게 죽인다. 그 둘은 어둠 속에서 죽어가면서 두 손을 꼭 쥔다. 무장공비 무리들의 행방을 더는 알 수 없고 장례식 장면으로 이어진다. 갑자기 장례를 하다말고 지순은 두 손을 움켜쥔 다음 우리들은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라고 외친 다음 아내들을 이끌고 새마을 사업을 완수하기 위해 행진한다. 두 번째 판본은 여기서 끝난다. (좀 더 난처한 것은 현재 소장본은 영화가 모두 끝난 다음 내가 이미 말한 비디오 판본이 다시 그 뒤에 붙어있다) 나는 새로운 판본 앞에서 좀 어리둥절해졌다. 그 둘은 내용은 다르지만 결국 하려는 이야기는 같은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둘을 두 가지 판본으로 찍어야 할 필요가 왜 생긴 것일까.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훨씬 훌륭한 것도 아니다. 둘 중 어느 쪽이 극장 개봉 당시에 사용된 프린트일까. 어떻게 두 가지 판본이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것일까. 둘 다 임권택 이 연출한 것일까, 아니면 둘 중 하나를 (어쩌면) 제작 프로듀서를 한 정진우 가 찍은 것일까. 우리는 정진우가 감독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는 이미 < 증언 >을 제작하면서 영진위의 요구에 따라 임권택이 다음 영화를 찍고 있는 동안 수정 제작본을 위해서 일부 장면을 별도로 연출하고 편집하였다. < 아내들의 행진 >은 <증언>에 이어서 영진위가 제작하고 정진우가 제작 프로듀서를 한두 번째 영화이다. 그런데 둘 중 어느 쪽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선택한 판본일까. < 아내들의 행진 >을 도식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성공적인 새마을운동을 해냈다고 안심하지 마세요. 당신이 힘들여 일구어낸 마을을 언제 ‘빨갱이’들이 침투하여 망쳐놓을지 알 수 없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 문제를 덧셈으로 생각하는 대신 뺄셈으로 놓고 원래의 판본으로 되돌아가 이 기괴한 마지막 시퀀스를 삭제하고 다시 보면 즉각적으로 이상한 질문과 부딪치게 된다. 임권택 은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것만으로는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영화감독과 지도자의 차이가 시작되는 것일까. 이 둘 사이의 차이는 단지 반공 드라마가 더해진 것이 아니다. 이 마지막 시퀀스가 당신을 망연자실하게 만드는 것은 명랑한 승리만으로 가득 찬 계몽극을 갑자기 비극으로 바꿔놓기 때문이다. 만일 <아내들의 행진>을 진정으로 심미적인 관점으로 다가간 사람은 임권택이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 영화를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은 물론 임권택이겠지만 이 이야기를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은 (어쩌면) 박정희 전 대통령일 지도 모른다. 만일 이 표현이 불편하다면, 이 이야기를 감정적으로 진심을 다해서 온전하게 껴안은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일 지도 모른다, 고 수정해도 괜찮다. 자신의 이념을 실현한 영화. 말하자면 그에게 <아내들의 행진>은 스탈린에게 < 이반 대제 일편 >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시퀀스를 삭제하면 이 영화는 새마을운동의 인정 미담과 승리에서 멈출 것이다. 그다음은 그래서, 라는 다음 단계에 대한 질문과 과정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밀고 나아가 무장공비들이 한밭골에 침투하여 만수댁을 죽음으로 이끌 때 갑자기 이 모든 과정은 다른 차원에로 도약하듯이 이끌린다. 이제까지 이 모든 역경을 딛고 지순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공적인 마을을 이룬 부녀회 회장 만수댁에게 요구되는 지도자의 마지막 단계는 예기치 않은 비극적 사건을 통해 죽어서 이 승리를 더 이상 반박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지도자(이지만 조연)인 만수댁이 이제 진정한 지도자(이자 주인공)의 자리를 어떤 권력다툼 없이 지순에게 운명적으로 양보하는지에 관한 슬프지만 아이러니한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만수댁이 차지했던 위치를 부언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지순이 한밭골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호의를 베푼 사람이며, 지순이 새마을운동을 시작하려 들자 모두가 적대감을 보일 때도 가장 먼저 그녀에게 협조를 시작한 인물이다. 만일 그녀가 없었다면 (결국 성공하긴 했겠지만) 훨씬 가혹한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만수댁은 지순과 한밭골 새마을운동 사이의 매개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 운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사실상 그녀가 차지할 자리는 공백이 되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이 애도의 장면에 감정만이 넘쳐날 뿐이지 어떤 성찰도 없는 것은 삭제의 항목에 관한 질서를 재조정하려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방죽 쌓기 이 질문을 완전히 다른 자리에서 질문해보고 싶다. 모든 새마을운동 이야기는 긍정되어야만 하며 새마을운동에 관한 모든 영화는 성공적인 결론을 맺어야만 한다. < 아내들의 행진 >은 계엄 하에 놓인 국가에서 만들어진 국책영화이며 모든 부정적인 언사는 금지된 영화이다. 그러므로 새마을운동의 지도자에 관한 이야기가 비극으로 귀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 바깥의 지도자가 아니라면 누가 감히 제안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을 체제 안에 있었기 때문에 영화감독이 영화 안에서 하지 못한 것을 지도자가 현명하게 해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읽고 있다면 당신은 내 말을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아내들의 행진>은 새마을운동의 페티시즘에 가까운 계몽영화이다. 모든 등장인물은 목적론의 결론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그 과정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면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제한된 공간. 시간적인 차단. 여기서 하나의 모델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하나의 명령. 이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이때 이 모델에는 텅 빈 시간이 음산하게 감돌기 시작한다. 임권택 은 지금 그의 영화 중에서 가장 공허한 자리에, 말 그대로, 어떤 비유도 없이, 마치 강제부역을 하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불려 온 것이다. 새마을이라는 낯선 마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고 난 다음, 그러니까 8년 후에 임권택이 찾아간 낯선 마을을 다룬 < 안개마을 >을 떠올려보면 둘 사이의 간극은 더 멀리 느껴질 것이다. 핵심은 <아내들의 행진>에서 영화감독이 가졌던 영화와 모델 사이의 거리를 지도자는 그 자신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느끼면서 가진 거리의 상실이다. 이때 지도자는 이야기 안에 비극의 필요성을 감지하고 있다. 내게 시련이 필요합니다. 혹은 비극 없이 이야기는 여전히 부족한 결핍상태에 놓여있다고 믿습니다. 아직 부족합니다. 당신들은 남한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 시련은 거기가 아니라 다른 데 있습니다. <아내들의 행진>은 장마만 시작하면 강물로 넘쳐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죽을 쌓아올렸을 때 이미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무슨 할 이야기가 더 남았나요. 지순이 시집오고 다음 1시간 39분의 지점, 그런데 갑자기 이야기가 방향을 틀었을 때 지순은 마치 친정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듯이 영화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만수댁 남편의 귀환은 무언가 이야기가 더해졌다기보다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여기에 덧붙여진 것처럼 보인다. 흔히 진부한 영화들에서 마주치는 것처럼 이미 한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두 편의 영화. 그러나 이것은 미학적 선택이 아니다. 이 괴상하기 짝이 없는 만수댁 남편의 시퀀스를 보고 있으면 몹시 불길한 인상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지순이 내내 시련을 겪기는 하지만 <아내들의 행진>은 단 한 순간도 그녀의 운명 때문에 보는 우리를 긴장시키지 않는다. 이 영화는 승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불해야 할 노력을 기울이면 어떤 오차도 없이 거기에 대한 응당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아니, 기대보다도 훨씬 큰 보상을 받을 것이다. 현실이라는 외양을 갖추기는 했지만 이 영화는 새마을운동의 법칙이 작동하는 어떤 변수도 없는 말끔한 세계이다. 이때 만수댁 남편이 갑자기 이 안전한 법칙의 세계를 일순간에 뒤흔드는 얼룩의 삽입이라고만 생각한다면 끝내 이 과잉하는 장면이 반대로 결핍하는 모델의 약점을 비로소 완성하여 입체적인 이념의 공간에로 도약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지도자의 뜻을 (비판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 시퀀스는 이야기 전체의 균형을 완전히 망쳐놓을 뿐만 아니라 가까스로 이루어놓은 승리의 감흥조차 깨트려버린다. 핵심은 거기에 있다. 지도자는 망쳐놓아야 할 뿐만 아니라 깨트려야 한다고 믿는다. 정확하게 그런 의미에서 이 시퀀스가 요점에서 빗나가기는커녕 거의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였던 이 모델의 세계에 언제든지 오류가 작동할 수 있는 현실감각을 부여하고 있다. 물론 당신은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것이다. 현실감각이라니요. 이건 그저 모델 옆에 다른 모델을 덧붙여놓은 것에 불과하답니다. 도식적인 설명. 새마을운동은 수없이 많은 승리를 재생산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 승리란 얼마나 약한 것이며 또한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가. 승리를 지켜내기 위해서 국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말하자면 국가에로 재통합한 다음 그 하위개념에로 재위치 시키는 확대재생산의 수순. 얼마든지 반론에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좀 더 나아가보고 싶다. 나는 영화감독과 지도자가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고 먼저 말하고 싶다. 그래요, 이 모델은 이미 충만해있어요. 그런데 왜 지도자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시나요. 지도자는 그렇지만, 이라는 단서를 달고 싶어 한다. 그건 말이죠, 너무나 성공적인 이 모델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도둑맞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로부터? 우리들의 성공을 질투하는 북한으로부터. <아내들의 행진>의 마지막 시퀀스는 승리에 대한 염려이다. 이것이 이 이상한 시퀀스의 불길함이다. 이제 막 시작한 새마을운동은 오직 모델 안에서의 승리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도둑질당할까 염려하는 것은 둘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환상 안에서만 맺어진 (거의 도착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착각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염려는 이루어내고, 도둑질 당하고, 되찾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서 바라보고 싶은 지도자가 새마을운동의 승리를 즐기는 방식이다. 그러니 이 염려는 미처 이루지도 못한 승리를 앞서는 결과에 대한 도둑질의 걱정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자크-알랭 밀레는 좀 더 멋지게 표현했다. 향유의 도둑질. 지순이 도착한 마을의 황폐한 풍경 (비디오 판본)새마을운동 후의 마을 물론 여기서 임권택 이 운동의 동력에 질질 끌려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 아내들의 행진 >을 보면서 임권택이 새마을운동에 반대하기는커녕, 혹은 조롱하기는커녕, 그저 마지못해 진행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종종 진심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과 수없이 마주쳤다. 분명한 것은 이 영화가 < 요화 장희빈 >을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장르적인 발견과는 상관없이) 그 자신에게는 거의 추락하듯이 다찌마와리 액션활극과 무국적 만주웨스턴, 쇼브라더즈 무협영화를 카피한 무국적 무술영화들로 이어지던 목록에서 갑자기 방향을 선회하면서 나타난 단절의 순간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 사이에 존재하지만 사라진 도서실의 빈칸인 < 잡초 >를 염두에 두고 있다. 아마도 <아내들의 행진>은 <잡초>로부터 그리 멀지 않는 자리에 놓여있을 것이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임권택은 <아내들의 행진>을 찍은 다음 (< 장군의 아들 >을 예외로 하면) 두 번 다시 다찌마와리 영화에로 돌아가지 않았다. 또한 만주웨스턴이나 무국적 무협영화를 찍지도 않았다. 이 장르영화들은 물론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우리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어떤 결단. <아내들의 행진>은 임권택에게 어떤 결사적인 방어선 같은 영화이다. 그는 여기 머물지 못한다면 영화 안에서 더 이상 자신이 견뎌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 같다. <아내들의 행진>에는 이따금 임권택의 모든 영화 중에서도 몹시 아름다운 장면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의 이데올로기에 매달린 비평들은 그 아름다움을 미처 보지 못했을 것이다. 혹은 보았다 할지라도 몹시 불편했을지 모른다. 거기 어른거리는 파시즘의 자동인형들의 그림자. 하지만 <아내들의 행진>은 임권택을 전혀 다른 의미의 맥락 안으로 이끈다. 나는 한국영화에서 등장인물 모두가 예외 없이 호남 방언을 사용하는 영화를 그 이전에는 본 적이 없다. 당신은 임권택이 호남영화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기 영화 세계 속에서 넓혀온 것을 생각해야 한다. 고향으로 가는 먼 길, < 짝코 >. 자기를 부르는 고향의 소리, < 서편제 >. 혹은 고향의 역사, < 태백산맥 >. 그리고 사모곡, < 축제 >. 아마도 호남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판본이라고 할 < 춘향뎐 >. 그런 다음에도 거기 남은 것을 다시 찾으려는 < 달빛 길어올리기 >. 하지만 아직은 이상할 정도로 표준어로만 이루어진 영화들. 한국영화에서 한 편의 대중영화가 방언으로만 이루어진 < 친구 >가 2001년에야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물론 등장인물 중의 누군가 호남이나 영남 방언을 사용하는 수많은 예가 있다. 그때마다 주인공은 표준어의 세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방언은 마치 봉건적인 세계, 혹은 미처 근대화되지 못한 지역(에서 온 사람)에 대한 청각 기호처럼 사용되었다. 때로는 북한에서 월남한 이들, 혹은 공산괴뢰군을 지역적으로 분리시키거나 단순하게 편을 가르기 위해서 (함경도와 평안도 사이를 별 구별 없이 평양 방언으로 통일하여) 대사로 차별화시켰다. <아내들의 행진>은 호남방언으로 이루어진 영화이다. 여기서 이상하게도 지순(과 그녀의 오빠)만이 표준어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그녀의 고향은 어디인 것일까. 문득 편지를 쓰면서 떠올리는 지순의 고향에 대한 기억(flash_back)에 따르면 그녀도 다른 농촌에서 자라서 이 마을로 시집을 온 것인데 그녀(와 그녀 오빠)의 말에는 어떤 방언도 묻어있지 않다. 마치 지순이 받은 교육이 그녀의 방언을 탈색한 것만 같은 말을 들려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순과 한밭골 사람들 사이를 개화(開化)와 몽매(蒙昧)로 분리하는 도식을 세우지만 그 둘 사이가 예민하게 긴장을 불러일으키거나 어떤 대립을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순의 표준어가 여기서는 그녀를 고립시키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무엇보다도 임권택은 지순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별로 우리를 설득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야기는 한밭골로 전통혼례의 가마를 타고 시집오는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가마 안의 지순은 조금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 다음 그녀를 따라온 오빠가 다음 날 안개 낀 새벽에 동생의 시댁과 인사도 없이 떠나면서 남기는 말은 미안하다, 는 표현이다. 시집간 여동생에게 왜 미안하다는 말을 한 것일까. 이 말은 마치 이제부터 시작될 여동생 지순의 고난과 시련에 대한 불길한 예고처럼 들린다. 그런데 왜 지순은 이 마을로 시집을 온 것일까. 오빠와 지순의 남편이 절친한 친구 사이도 아니며 그렇다고 시댁과 잘 아는 사이도 아니다. 여기엔 이상하게도 어떤 설명도 없다. 게다가 이 한밭골은 지순에게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고장이다. 영화 중간에 지순이 남편에게 고향 오빠를 만나보라는 말을 듣고 다녀오는데 꼬박 하루가 걸린다.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임권택은 이 마을로 시집온 지순과 남편 사이의 첫날밤을 찍지 않았다. 그런 다음 영화 전체에서 그 둘 사이의 내밀하게 사적인 다정한 순간을 단 한 장면도 찍지 않았다. 마치 지순은 한밭골에 새마을운동의 임무를 가지고 온 사람처럼, 정말 첫 장면만 삭제한다면 시집을 왔다기보다는 파견된 것처럼, 그래서 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개인적인 그 어떤 기쁨도 버린 사람처럼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에만 매달린다. 이야기가 지순의 활동을 따라가긴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아내들의 행진>의 동선은 산만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인물들이 아니라 풍경이다. 황폐한 풍경. 하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이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서진 산하. 그런데 왜 그렇게 된 것일까. 긴 일제강점 하의 무분별한 벌목과 한국전쟁을 통과하면서 빨치산을 소탕한다고 무자비하게 잘라낸 나무들. 오랜 시간을 타향에서 보낸 다음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이 기대하는 추억 속에 자리 잡은 풍경의 형상들이 부서지고 사라져버린 것을 확인할 때 품는 분노가 <아내들의 행진>의 전반부를 가득 채우고 있다. 텅 비어버린 추억. 임권택은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무능력한 자신에 대한 분노. 그걸 지키지 못한 고향의 남겨진 이웃에 대한 분노. 그 지경이 된 내가 살아온 땅의 역사. 하나의 세계가 사라져 버렸뇩?상실에 대한 탄식. 그때 거기 그것에 대한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한 채 그저 고향에 머물며 살아가는 현재의 이들에 대한 깊은 미움을 숨기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낯선 사람에게 흉악하고 이득을 눈앞에 두고 교활하며 종종 비겁하고 폭력적이며 대부분 완고하고 그들의 무지가 때로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는데도 임권택은 그들에게 어떤 연민을 품지 않는다. 하나의 예. 이웃의 어린아이가 급성 폐렴으로 죽어가는 것을 지순이 알려주지만 (그런데 의사도 아니며 진료도 하지 않고 그저 한 눈으로 쳐다본 다음 그녀는 병명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돈이 없어 병원에 가보지 못한 채 마을 어른 김 첨지의 민간요법에 의존해서 일시적인 경기로 판단하고 방치하는 바람에 가엾게도 생명을 잃는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말을 할 뿐 거의 무관심하게 다루고 있다. 아이가 아픈 장면과 그 아이가 시신이 된 장면은 서로 떨어져 있으며 그 둘 사이에 전혀 다른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마치 그 아이의 생명을 잊은 것처럼 보이다가 되돌아왔을 때는 이미 죽은 다음이다. 한밭골에서 부서진 것은 풍경이지만 망가진 것은 이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래서 종종 마을이 아름답긴 하지만 대부분 정감 없이 찍혔으며 마을 사람들은 단지 무지할 뿐만 아니라 계몽되기 전의 그들은 종종 폭력에 자주 의지하거나 너무 쉽게 노출된다. 만일 이 모든 것이 그저 이야기에 걸쳐 서 있는 것이라면 이 영화는 별로 우리들의 주의를 끌지 못했을 것이다.내가 단절이라고 부른 것은 이상한 방식으로 여기서 장소와 인물들을 연결시키는 대신 집합의 형식으로 모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시네마스코프는 반복해서 검토할만한 가치가 있다. 아직 카메라가 멈춰 서서 (< 만다라 >에서처럼) 바라보고 있지는 않지만(long_take) 이미 인물들의 배치는 그럴 준비를 하고 있다. 반원형을 만들면서 앉아있는 인물들. 그때 2.35 사이즈를 위해서 수평으로 늘어선 배치를 보고 있으면 (물론 아직 임권택 은 보지 못했지만 끈질기게 그를 아시아 영화의 전통 안으로 다시 위치 지으려는) 서방세계 비평가들이 그를 미조구치 겐지의 그림자 아래 있다고 설명할 때마다 우리들은 오히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거기 있다고 대답하고 싶어진다. 고작 5년의 차이를 두고 만들어진 동시대의 영화 < 오하루의 일생 >과 < 거미둥지의 성 >에서 동일한 일본 가옥 구조 안에 앉혀놓은 무사들의 배치의 차이를 떠올려보라. < 아내들의 행진 >은 단지 장르 안에서 쇼트의 체계를 완전히 반대의 방향으로 돌이키려는 시도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영화 시스템을 좌표상의 영도(degre_zero)에로 되돌려 놓으려고 스스로에게 부과한 어떤 제한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제한? 그렇다. 시네마스코프 화면에서 일단 이렇게 앉혀 놓으면 편집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게 된다. 그걸 나누기 시작하면 앞의 장면들 전체가 무효가 된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 이렇게 배치하면 누가 누구를 보는지 시선의 방향이 그 자체로 충만해지기 때문이다. 임권택이 누구보다 잘알고 있고 누구보다 능수능란하게 진행해온 세계. 그런데 그걸 중단하기 위한 구도를 여기서 자기 손으로 스스로 만들어낸다. <아내들의 행진>은 임권택의 영화에서 형식적으로 무언가를 잡아 뜯어내듯이 버리면서 새로운 관계를 짝짓기 시작하였다. 이때 이 영화 이전 임권택의 영화들과의 결정적인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 무대가 농촌에서 진행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이 핵심이다. 임권택은 스타일을 발명하는 대신 스타일이란 그 영화가 머무는 세계 안의 형식과 조응하는 매개라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오직 그렇게 할 때만이 스타일을 통해서 의미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임권택에게 <아내들의 행진>이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새마을운동이 아니라 이 이야기가 농촌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되기 때문이다. 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 잡초 >를 제외하면) 장르의 요구를 따르지 않고 지금이라는 시간 안에서 영화를 찍은 건 53번째 영화인 <아내들의 행진>이 처음이다. 그가 배우들과 스태프를 이끌고 농촌으로 간 것은 언제나 조선 가옥이 서 있고 주변에 별다른 근대건물이 없어야만 하는 사극이거나 수많은 엑스트라들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때로 건물들을 폭파시켜야 하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었다. 조건과 상황 안에서의 농촌. 그러므로 거기에는 거기 살고 있는 사람이 없다. 그냥 단순하게 말하고 싶다. 이제까지 임권택은 농촌을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진행시켜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마치 자신이 도시 사람인 것처럼 청춘영화를 찍었고, 갑작스러운 전후 서울의 근대화 과정 그늘에서 자라난 폭력과 희생을 다루었고, 이따금 도시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애환처럼 연출했다.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추억. 그렇다면 어떻게 되찾아야 할까. 그곳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한국전쟁이 놓여있다.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폭력적인 시간의 흔적들. 존재했던 것들의 소멸. 고향 사람들의 삶이 변해버렸고 풍경은 부서져 버렸다. 거기서 더 이상 나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때 임권택은 무엇을 찾아다녀야 하는 것일까. 정확하게 여기서 영화감독과 지도자는 서로 갈라진다. 되찾아야 할 시간과 도래해야 할 시간.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설명해야 할 것이다. < 아내들의 행진 >은 이제까지 임권택 이 만들어본 적이 없는 형식의 영화이다. 그건 이 영화가 교육의 영화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당신은 <아내들의 행진>이 새마을운동에 관한 국책영화라는 사실 때문에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를 떠올리면서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물론 반론을 위해서 푸코를 따라 칸트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대신 맞은편에 브레히트의 교훈극에 관한 배움에 따라 고다르가 만든 교육의 영화들을 가져다 놓을 생각이다. 세르주 다네의 그 유명한 명제. “스크린이라는 칠판” 임권택의 교육의 영화는 세 번째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임권택은 영화를 만들면서 자기 자신을 위한 배움을 청해가는 방식을 취했다. 단지 그것은 주제에서 배움을 가져오거나 소재를 알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임권택이 그것을 영화로 담기 시작할 때 그것의 모든 지식들이 영화 안의 기호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임권택은 거기서 다시 시작하였다. 나는 아는 것이 없으며 배운 것이 없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질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서술은 그의 전진이 되었다. 낯선 지식들. 이것은 저것과 함께 갈 수 있는 것일까. 이것과 저것은 왜 대립하는가. 질문이라는 형식. 그 형식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의 리듬. 그는 스님의 만행길을 따라가면서 소승불교를 배우고(< 만다라 >) 그리고 번갈아 대승불교를 배웠다. (< 아제아제 바라아제 >) 그런 다음 자신에게 내린 무병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찾아 나선 중년남자를 따라가며 무속신앙을 배웠다. (< 불의 딸 >) 임권택은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일백년 전 조선말 막 근대가 시작되었을 때 도망치고 또 도망치면서도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상을 전했던 천도교 2대 교주 최시형의 포교활동을 따라가면서 인본사상을 배웠다. (< 개벽 >) 임권택은 계속해서 질문했다. 그는 이제 남도 소리를 따라 다시 유랑을 떠났다. 당신을 부르는 소리. 고향의 소리. (< 서편제 >) 그리고 또 떠났다. (< 천년학 >) 그런 다음 조선화의 마지막 대가 오원 장승업을 따라가면서 배움을 청했다. (< 취화선 >) 그는 멈추지 않았다. 천년을 이어져 내려온 종이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알고 싶어 했다. (< 달빛 길어 올리기 >) 임권택의 영화는 오로지 자기 자신을 향한 교육의 영화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아내들의 행진>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마치 벤야민이 <아내들의 행진>을 만들 때의 임권택을 위해서 쓴 것만 같은 테제로 마지막 문장을 대신 하겠다. ‘역사철학 테제’ 18개 테제에 관한 부기 B. “시간으로부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했던 점술가들은 확실히 시간을 동질적 시간으로도 체험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어쩌면 과거의 시간이 어떻게 기억을 통하여 체험되어졌던가를 알 수 있을지 모른다 (중략)” (계속) 1974년 111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영화진흥공사 각색 신봉승 , 윤삼육 촬영 변인집 조명 최원근 편집 김창순 음악 한상기 김희라 윤미라 윤양하
먼저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아마 그래야 할 것이다.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은 이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국 지방장관회의에서 ‘새마을 가꾸기 운동’을 제안하였다. 1969년 9월 14일 다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3선 개헌안을 변칙 통과시킨 다음 7개월 만의 일이다. 그 해는 모든 것이 싸늘하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시인 김지하가 당시 재벌, 국회의원, 고위 공무원, 군 장성, 장차관을 (을사보호조약 당시의 매국노에 비유하며) 담시(譚詩) 형식을 빌려 풍자한 시 <五賊>을 발표하자 이 시가 실린 문학지 ‘사상계’ 시판을 중단시켰다. 하지만 야당 기관지인 ‘민주전선’ 6월 1일 자에 이 시를 다시 게재하자 미리 정보를 입수한 기관원들이 6월 2일 (통행금지가 있던 그 시절) 새벽 1시 50분에 중앙정보부 요원들과 종로경찰서 경찰이 인쇄소에 난입하여 인쇄한 10만 부 전량을 강제 회수하였으며, 6월 20일 시인 김지하와 사상계 대표, 편집장을 “계급의식을 조장하고 북한 선전 선동물 자료로 활용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기소 하였다. 7월에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되었지만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미싱 시다공’ 전태일은 “우리들은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친 다음 분신을 하였다. 그는 그날 저녁 숨을 거두었다. 이듬해 4월 27일 제7대 대통령으로 박정희가 3선 되었다. 선거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김대중과의 득표 경쟁에서 이 과정은 몹시 힘겨웠다. 독재를 위한 확고한 지지 세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농촌을 중심으로 산업간 소득격차를 줄여야 할 필요가 대두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감시의 외곽지역에 놓여있었던 지방을 조직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 속에서 새마을 운동은 유신 정권의 행정체계 안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규모 사업이 되었다. 아마도, 아마도 이 시기부터 이미 시작된 감시하의 문화예술과 학계에 대대적이고 적극적인 국책지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대중들과의 전선에서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한편으로 버림받고 다른 한편으로 유혹당했다. 1973년 영화 진흥조합에서 영화진흥공사로 기구 개편을 한 다음 공사는 정부 지시에 따라 “한국영화 진흥을 위한 개선책”이라는 명분 아래 국책영화를 지원하기 위한 우수영화 보상 제도를 부활시켰다. 여기서 우수영화는 반공영화와 새마을 영화, 문예영화로 다시 분류되었다. 한국영화는 (시나리오 사전검열과 제작 검열이라는) 이중검열과 텔레비전 방송국 개국으로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거의 상실하고 있었다. (매우 제한적인) 외화 수입으로 영화산업을 가까스로 이끌던 국면이었지만 그 와중에조차 정부는 외화수입이 외환을 보유해야 하는 국가 경제적 차원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화사들의 수입권을 제한하였다. 그런 다음 내세운 당근인 우수영화 제도는 ‘우수영화로 선정된 작품에 한해 제작사에 외화 수입쿼터 권리 1편’을 보상으로 내세웠다. 이 과정은 물론 한국영화의 산업적 몰락을 부추겼다. 영화사들은 ‘쿼터’에만(!) 관심이 있었으며 ‘우수영화’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화감독들은 (좀 더 정확하게는) ‘쿼터를 따기 위한 우수영화’에 동원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국책지원을 하는) 우수영화를 만들었다는 말은 이면의 외설적 진실을 놓친 절반의 사실이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로 착취당한 것이다. 그걸 도대체 누가 본다고? 여기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감독들은 ‘흥행 감독’들이었다. 왜냐하면 ‘우수영화’는 반드시 그 사실을 (문화부의 권고에 따라 ‘강제적으로’) 광고에 표기해야 했으며 관객들에게 ‘우수영화’는 재미없는 ‘국책영화’와 이음동의어였기 때문이다. 반복된 학습의 결과. 거리의 포스터와 신문 기사, 라디오에서 시간마다 울려 퍼지는 (베트남 파월장병들을 위한) 군가, 학교에서 암기해야 했던 국민교육헌장, 새마을 노래, 국민들은 국가정책에 관한 선전에 극도로 피로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걸 극장에 가서 다시 확인해야 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학생들과 공무원들에게 의무적으로 단체관람을 시켰다. 좀 더 우스꽝스럽게 말할 수 있다. ‘흥행 감독’들은 돈을 벌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했으며, ‘우수영화 감독’들은 (제작사를 대신해서) 우수 영화에 선정되어 외화 스크린 쿼터를 받아야만 했다. 그렇게 쓰긴 했지만 그러나 당신께서는 이걸 비웃으면 안 된다. 이건 먹고 사는 문제이다. 그리고 다른 선택이 없었던 상황의 이야기이다. 물론 영화를 그만 두면 된다. 하지만 그런 다음 영화산업 바깥에서 어떤 영화도 만들 수 없는 기술적 산업적 조건 아래에서 영화를 만드는 기술밖에 없던 사람에게 어떤 다른 선택이 남아있었을까. 여기는 물샐 틈 없는 감시망으로 이루어진 경찰국가였고, 피비린내 나는 독재정치가 시작되고 있었으며, 한국전쟁의 창백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세상의 중심에 있었다. 여기에는 어떤 미래도 없었다. 박정희는 영원히 살 것만 같았고, 민주주의는 숨을 죽였으며, 사람들은 정신없이 진행되는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경제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일상생활 속의 투쟁을 해야만 했다. 이제 막 독점재벌의 맹아가 싹트고 있었으며, 그 안에서 새로운 비전이 제시되었다. 잠시만, 잠시만 멈추어야 한다. 당신은 이 부정적인 연쇄 망 속에서 문득 긍정적인 수사가 출현했을 때 당황스러울 것이다. 나는 지금 거짓 긍정을 말하는 중이다. 자, 여기서부터 조심스럽게 읽어야 한다. 새마을 운동이 정권연장을 위한 경제적인 속임수였으며 사실상 실패한 국가주도의 경제계획이었다는 것을 지금 주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이미 파국의 계획에 대해서는 1980년대에 전두환이 이 국가사업을 물려받으면서 새마을 운동연합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1970년대에 벌어진 이 기괴한 부의 재분배를 둘러싼 국가사업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신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있었습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간단치 않아진다. 나는 지금 외면, 이라는 태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중이다. 자본주의 새로운 단계. 당신에게 부자라는 (허구적) 타자로부터 (거짓된) 주체에로의 전환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시간의 기회가 도래했다. 나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어요. 아니, 우리 모두 부자가 될 수 있어요. 금융자본과 결탁한 (거짓된) 부의 증식. 하늘에서 떨어질 것만 같은 잉여가치. 그걸 국가가 보장하겠다고 나섰을 때 온 사회가 들뜨고 있었다. 아마 정확하게 바란 것은 그 (정치경제학적인) 혼수상태였을 것이다. 박정희의 슬로건이 자본주의를 밑바닥부터 전복시키는 아이러니로 가득 찬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타자의 황당무계한 약속을 사람들은 믿었다. 그들은 믿는 척한 것이 아니다. 그때 국가는 실체였으며, 어떤 부(富)도 국가보다 작은,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 객관적 정세에 기반을 둔 한국 사회구성체 논쟁의 중심부로 들어서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논쟁은 이 글의 성격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반대로 그 안에 휘말려 들어간 국민들에게 새마을 운동의 유혹이 무엇이었을 지를 생각하는 것은 오늘날에(조차,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박정희의 정책과 결과. 그 효과로서의 박근혜의 (유예받은 환상의) 프레임. 반문하고 싶어진다. 새마을 운동을 단순하게 거짓 사기극이었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박정희 자신조차 이 근대화 프로젝트를 진심으로 믿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정치적인 동시에 역사적인 논점을 여기서 재빨리 멈추고 영화에로 돌아갈 생각이다. 하지만 여기서 건드린 논점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지금 혼수상태 안으로 멈추지 않고 들어가는 중이다. 여기서 영화라는 제도는 단순하게 국가 정책을 반영하거나 복제하는 기계가 아니다. 혹은 제도라는 기계는 그렇게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일단 제도가 역사 안으로 들어오면 어떤 식으로건 구체적인 정치사회적인 조건이 그 안에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때 그 조건은 단지 영화를 둘러싸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화 안에서도 스스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단순하게 영화 안에서 제도가 요구하는 검열의 방식으로 활동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의 역사와 역사 안의 영화 사이의 관계는 종종 경계로 옮겨간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 해서든 교집합을 만들어내는 둘 사이의 흔적은 서로 각자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둘은 서로에게 역사의 이름으로 기억의 내러티브가 된다. 그때 우리는 말하자면 기억을 다루는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방법을 먼저 익혀야 한다. 이를테면 볼셰비키 혁명과 쿨레쇼프 공장은 1943년 직후 로마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얼마나 서로 같으면서 다른가. 1919년 표현주의 영화와 1962년 오버하우젠 선언 ‘직후’의 영화는 또한 얼마나 멀리 있는가.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영화 안에서 자기의 역사, 자기의 조건, 자기의 상황, 자기의 존재를 증명해내는 힘이 능동적으로 세워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시대에 영화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사실상 각자의 조건과 상황에 대한 존재론적인 대답이다. 대답으로서의 질문. 이때 질문이 대답으로 이동하는 자리를 둘러싼 상황과 조건이 영화 안에서 형식이 될 정도의 특이한 사건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내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사건의 모습으로서의 형식이다. < 아내들의 행진 >(1974), < 아내 >(1976), < 옥례기 >(1977) 임권택 은 (이 시기의) 다른 한국영화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우수영화에 동원되었으며 세 편의 새마을 영화를 찍었다. 물론 반공영화를 포함하면 그 숫자가 훨씬 많아진다. (그리고 문예영화들이 또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범주의 난점이 있다. 이를테면 < 증언 >과 < 짝코 >가 모두 반공 우수영화라는 제도적인 분류와 그 사이에서 얻게 된 행운이자 위험으로서의 미결정성. 여기서 우리는 제도가 처리하는 방식과 비평이 가져야 할 해석 사이에서 서로 공유하기 힘든 그늘을 본다. 우리의 괄호로 돌아오자. < 아내들의 행진 >과 < 아내 >, 그리고 < 옥례기 >. 신기하게 여겨지는 것은 예외 없이 세 편 모두 새마을 운동에 자발적으로 헌신한 세 명의 여자에 관한 실화를 찍었으며, 좀 더 구체적으로 세 명 모두 아내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물론 이 인물의 선택이 임권택의 결정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내가 질문을 할 때마다 매번 잘 기억나지가 않아요, 라는 대답으로 돌아왔다) <아내들의 행진>은 영화진흥공사 제작이고 <아내>와 <옥례기>는 우진필름 제작이다. 여기서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두 가지이다. 아내의 실화. 우리는 임권택이 그 자신의 영화를 시작했다고 스스로 말한 < 잡초 >가 아내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좀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임권택은 아내에 관한 영화를 줄기차게 찍었다. 여자로부터 아내에로의 이행. 딸로부터 아내에로의 치환. 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영역과 그 안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전망. 좀 이상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임권택은 여자보다 아내에 훨씬 관심이 많다. 여기에는 그 자리에 대한 몹시 강력하고도 집요한 요구가 있다. 새로운 가족. 아무 혈연관계가 없는 가족 안으로의 편입. 그런 다음 그 자리의 책임이라는 문제, 한국 사회 안에서의 그 자리의 독특한 부름과 응답.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삶의 형국. 그런 다음 임권택 영화 전체 속에서 드문드문 그러나 계속해서 실화를 다룬 영화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계산에 포함해야 한다. 어쩌면 임권택은 점점 더 허구의 이야기, 그 안의 인물을 믿지 않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스스로 그렇게 자책하듯이 혐오해오던 장르영화(들)를 빠져나오는 방법을 어쩌면 실화에서 구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멀리 떠나온 다음 다시 “자신을 점검하기 위해서” 되돌아온 <장군의 아들>에서 조차 김두한이라는 실존 인물을 거의 마지막 방어선처럼 거기 그렇게 배치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홍순혜 김진호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 아내 >의 첫 장면에는 “이 영화는 도시 새마을 운동의 기수 홍순혜 여사의 성공사례를 소재로 한 것이다”는 자막이 뜬다. 홍순혜 씨의 이야기는 「억새풀은 시들지 않는다」라는 자서전으로 출판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KBS에서 <억새풀>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아내>가 만들어진 이듬해 홍순혜 씨는 도시 새마을운동 전진대회에서 대통령상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실화이지만 여기서는 영화로 쫓아간) 홍순혜 씨의 전기의 요약. <아내>가 영화의 무대로 삼은 시간은 그녀의 삶 거의 전부이다. 이야기가 홍순혜의 22살에서 시작하지만 금방 영화는 그녀의 목소리를 타고 과거로 넘어간 다음(flash_back) 태어난 집에서부터 시작한다. 극장 매표직원으로 일하는 홍순혜. 그녀는 지금 막 자신에게 구혼한 남자 김진호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설명하는 중이다. 무대화된 영화 안에서의 수행과 행위. 서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호적에도 오르지 못했고 배우지도 못해서 학교에서 창문 너머 배우던 시절.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겨우 손에 쥔 초등학교 졸업장, 끝. 그런 다음 단 한 차례도 물러나지 않고 앞으로(만) 진행되는 이야기. 마치 홍순혜의 삶의 태도에 대한 반영과도 같은 시간의 질서. 김진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다. 김진호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으로 장사를 하고 홍순혜는 쌍둥이 아들과 그 아래로 두 딸을 낳고 어머니와 남동생을 부양하면서 저택에서 마님 소리를 들으며 행복하게 산다. 하지만 김진호는 미군 부대 사업을 그만둔 다음 사기를 당하고 바닥으로 주저앉는다. 하루아침에 시골 달동네로 이사 가야 하는 온 가족. 여전히 큰소리치는 김진호는 집안 살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못한다. 홍순혜는 산꼭대기 달동네에서 지게를 지고 물동이를 나르며 동네방네 돌면서 물장사를 시작한다. 그런 다음 구들장을 고치고, 떡 장사를 하고, 공사장에 나가서 남자 인부들처럼 벽돌을 나르고, 그런 와중에 허세의 잘못을 깨우친 남편이 택시 운전기사를 시작하고, 홍순혜는 재봉 학원에서 새롭게 공부한다. 나는 의도적으로 한 문장으로 썼다. 영화는 그렇게 일사천리로 나아간다. 그런 다음 약간의 일시적 정지. 후일담처럼 덧붙여진 우수영화 제도를 위한 이야기 안의 이야기. 거기서 배운 기술과 타고난 근면으로 사업에 성공한 그녀는 옛 달동네에 찾아가 신세타령만 하면서 화투로 소일하는 부인들에게 새로운 일자리의 기회를 열어준다. 말하자면 착한 이야기. 약간의 (사회적) 설명을 덧붙이면 홍순혜의 새마을 사업은 하나의 모델이 되어 1980년대에 가정 파출부 직업으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그런 다음 이 직업은 연변 중국인들, 혹은 필리핀에서 온 외국인 여성노동자들로 다시 대체 되어갔다) 변수는 거의 개입하지 않으며 홍순혜는 앞으로만 나아갈 뿐 실패를 알지 못한다. (우)박동룡 임권택 은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가장 경제적인 방식을 택한다. 디테일은 대부분 홍순혜가 상황이나 내면의 감정을 설명하고 있으며(voice_over_narration) 시퀀스를 대부분 씬으로 압축한 다음 전개하는 대신 배치한다. 물론 이것은 긍정적인 시간의 분배 안에 부정적인 제한을 부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 순간 범주들이 도식적으로 제한받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멈추어선 운동. 치워진 흔적. 거기서 우리는 무엇을 보충해야 할까. 게다가 가끔 이 경제성은 < 아내 >에서 의심스러워 보일 때가 있다. 바닥까지 추락한 남편 김진호가 “한탕을 위해서 옛 친구들을 만나”자 친구들이 은밀하게 말을 건넨다. “흑인 존이랑 어디 한번 해보자” 하지만 그런 다음 이 제안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게 그냥 영화 안에서 사라진다. 이 영화 안에서의 수많은 불안정한 스타 기호의 출몰과 소멸의 한 예. 박동룡 은 (아마도) 오직 이 씬을 위해서 김진호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친구들 중의 한 사람으로 등장한 다음 내내 영화에서 보이지 않다가 여기서 다시 출연한 다음 마치 영화가 그를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런 사건도 없이 또다시 사라진다. 아마도 이 이름이 낯선 당신에게 약간의 소개. 박동룡은 < 돌아온 팔도 사나이 >로 처음 한국영화에 출연한 다음 단 한 번도 조연조차 하지 못하면서 거의 내내 ‘다찌마와리’ 영화와 공포영화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악한 배역을 떠맡다시피 했다. (박동룡 자신은 인터뷰에서 악역 배우라는 표현 대신 ‘성격파’ 배우라고 불렀다) 그가 남겨놓은 인상은 지나치게 결정적이어서 첫 삼 년 동안 35편의 영화에 악역으로만 출연할 정도였다. (아주 이따금 그가 착한 배역을 맡을 때는, 착하면 착할수록 더욱더,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끝까지 불길하게 남겨 놓았다) 그래서 한국영화에서 박동룡은 등장 자체가 장르적 약속에 따라 악한 기호처럼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하나의 표지. 임권택은 한국영화사 전체에서 달리 예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이야기의 경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출자이다. 하지만 일직선으로 진행하고 있는 홍순혜의 이야기 전체로부터 김진호가 탈선할지도 모르는 이 장면을 찍은 다음 만일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왜 (말 그대로) 삭제하지 않고 편집에서 남겨두었는지 알 수 없게 이 에피소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스스로 소멸해버린다. 무언가 하나의 행위가 어떤 반응을 기대하고 활동했음이 분명한데도 어디에서도 반응이 오지 않고 그저 거기서 마치 우발적인 실수인 것처럼 머물 때 자꾸만 영화 안의 대차대조표를 만들어보게 된다. 설명하기 힘든 잉여. 아무런 반향도 없는 진동. 이런 불균형이 <아내>에는 이상할 정도로 사방에 남아있다. < 서학일대녀 > 하지만 불균형이 < 아내 >에서 부정적인 표시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서 재표시의 순간과 마주할 때 임권택 안에서 다른 임권택이 시작되는 순간과 마주할 수 있다. 처음에는 그 순간이 너무 갑자기 나타나서 약간 멍한 상태가 된다. 홍순혜가 김진호를 만나서 결혼을 한 다음, 그러니까 홍순혜의 긴 고백이 끝난 다음 다시 한 번 김진호가 청혼을 하자, 그다음 장면은 결혼식 장면 없이, 이미 네 아이를 낳고 다복한 가정을 누리고 있는 씬이다. 임권택은 마치 홍순혜의 행복한 시절에 거의 관심이 없기라도 한 듯 스쳐 지나가 버린다. 그런 다음 김진호가 사기를 당하고 몰락할 때까지 거의 특징 없이 홍순혜의 실화를 장르처럼 다루면서 진행될 때 약간 우스꽝스러워 보이기조차 한다. 그런데 홍순혜가 후암동 저택을 팔고 성북구 송천동 달동네로 이사 온 날, 그날 아침 홍순혜는 물을 동네 저 아래서부터 길어오기 위해 양동이를 들고 주인댁이 있는 이웃집에 간다. 거의 이제까지 진행되었던 방법을 무효로 만들기라도 하듯이 갑자기 카메라는 약간 뒤로 물러난 다음 홍순혜가 부엌에서 나오는 것을 내려다본다. 처음에는 그저 홍순혜와 그의 가족이 살게 될 이 집의 가난한 풍경을 보여주기 위한 장면(master_shot)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부엌문을 열고 나와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녀를 따라 카메라가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옆집 아줌마에게 주인댁이 어디 계시냐고 물어본 다음 이웃집에서 다른 아줌마들과 함께 화투를 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생각하다가 대문을 열고 그 집을 나서서 골목 계단 길을 따라 올라간다. 두 개의 선. 홍순혜의 동선과 카메라의 시선. 홍순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동선을 따라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pan) 때로는 가상 수평선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면서 다가갔다가 다시 물러서면서(zoom_in_and_out) 두 개의 선은 하나가 된다. 그런 다음 그 집 안의 방문을 여는 장면(end_point)까지 따라간다. 느린 팬과 재빠른 줌, 약간의 달리, 조심스러운 틸트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낸 이 롱 테이크 장면은 단지 임권택 안의 임권택의 새로운 발견일 뿐만 아니라 임권택 영화 전체 속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쇼트 중의 하나이다. 그 위에 다시 덧쓰기로서의 방법. 그 순간 즉각적인 영화사적인 연상. 명백히 이 장면은 < 서학일대녀 >의 어떤 쇼트를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이때 임권택은 아직 미조구치 겐지의 어떤 영화도 보기 전의 일이다. 나는 어느 순간 임권택이 미조구치 겐지와 거의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결론의 교집합을 이루는 시간은 < 개벽 >에서 끝났다) 그가 언제 이러한 미학에로 이끌렸는지, 그리고 어떤 계기를 통해 이런 방법을 발견했는지는 단정 지어 말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그런 다음 다시 왜 이 방법을 중단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기 어렵다) 게다가 <아내>의 첫 시작부터 이 순간에 이를 때까지 이상하게도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왜 이 영화에 미학적 일관성을 부여하지 않았는지는 누구도 설명하기 어렵다. 혹은 이 동네에 들어서야만 그러한 방법이 가능한 것만 같은 태도를 취한다. S#_1 S#_2 S#_3 S#_4 나는 이 장면을 좀 더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싶다. 홍순혜의 가족이 머무는 이 단칸방 집을 다른 씬의 다른 쇼트에서 방문을 등으로 하여 맞은편을 보면(reverse_shot) 거기엔 마당 말고 다른 것이 없다. 임권택 과 (이 영화를 촬영한) 이석기 는 이 좁은 마당에 짧은 레일을 놓은 다음 줌을 단 카메라를 올려놓고 몇 차례이고 반복해서 홍순혜와 카메라 사이의 동선과 이동을 서로 맞추었을 것이다. 홍순혜는 약속된 선을 따라 움직였겠지만 종종 재빠르게 달리고 있었으며 줌의 범위를 빠져나가기 쉬운 난처한 장소의 블랙홀들이 사방 도처에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가로막은 나뭇가지들. 유감스럽게도 마당이 좁아서 카메라를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 쇼트는 부엌문에서 나온 홍순혜( S#_1), 둘러본 다음 이웃집 아줌마에게 물어보는 홍순혜( S#_2), 무언가 생각하는 홍순혜( S#_3), 대문을 나서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이웃집에 들어서는 홍순혜( S#_4)를 하나의 쇼트로 찍은 것이다. 물론 디테일을 더 세분해서 나눌 수 있으며 방향과 동선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서트가 필요해질 것이다. 혹은 좀 더 단순하게 찍는 방법이 있다. 이 영화는 1.66 비스타비전 사이즈이다. 그러므로 단지 좀 더 물러나면 된다. 그러면 더 넓은 화면을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 질문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왜 이 장면을 하나의 쇼트로 찍을 필요가 생긴 것일까. 여기서 임권택은 홍순혜를 유심히 바라보고 싶어 한다. 그때 홍순혜의 가장 중요한 순간은 영화적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그래서 마치 방향을 돌아서기 위한 일종의 전환처럼 보이는 잉여로서의 순간인, 그러니까 내가 S#_3이라고 지적한,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잠시 멈춰선 홍순혜의 생각의 시간이다. 얼핏 보면 이 장면은 그저 생략해도 괜찮은 순간(dead_time)처럼 보이지만, 혹은 기술적으로만 말하면 동선의 방향을 틀어보기 위한 하나의 전환점으로 보이지만, 만일 그렇게 생각했다면 단순하게 나눠 찍어도 괜찮을 이 장면을 그렇게 공들여서 하나의 쇼트(안의 쇼트)로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생각한다, 는 동사의 쇼트. 비가시적인 생각의 행동. 이 순간은 일시적인 정지이며 그런 의미에서 동선 안에서 찍어야 할 필요가 생긴 잉여의 시간(dead_time)이다. 말하자면 임권택은 (그의 영화 전체 안에서) 이 부근 어딘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 부근 어딘가에서부터 데드 타임을 찍을 필요를 느끼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때 그는 데드 타임의 쇼트를 인서트로 삽입하는 대신 쇼트의 진행 안에서 일종의 푼크툼 같은 효과를 만들어내면서 거기 그렇게 존재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노엘 버치의 충고. 모든 쇼트는 언제나 맞은편의 쇼트(reverse_shot)와 어떻게 이음매를 만들 것인가(raccord)라는 문제입니다. 그런 다음 그는 좀 더 단정적인 충고를 보충한다. 쇼트 사이의 접합을 논증하는 건 영화에서 진실의 문제입니다.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홍순혜가 이웃집에 도착해서 방문을 열었을 때 두 개의 공간이 만나게 될 것이다. 안과 바깥. 그 사이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아니, 차라리 어떻게 접속시킬 것인가. 하나로 귀속시키는 조형력, 서로 간의 사이에서 도식적이지는 않지만 하나의 통일된 힘.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피하려는 원칙. 여기서 임권택 은 공간을 펼쳐놓은 다음 홍순혜로 하여금 그 안의 굴곡 사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지나쳐서 목표에 가 닿도록 이끈 다음 방안에 들어서면 그녀가 바라보는 거기 앉아있는 사람들은 화면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약간의 원을 이루면서 수평으로 앉아있다. 이때 이들이 원형으로 보이는 것은 몸과 머리를 분리한 다음 앉아있는 자세와 시선을 두 개의 방향으로 서로 다르게 연결시켜 놓은 일종의 착시효과이다. 물론 여기서 그렇게 펼쳐놓은 인물의 미장센을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이 구도를 < 망부석 >에서도 보았다. 그리고 임권택은 이 방법을 (아마도 유일한 스승인) 정창화에게서 가져왔(을 것이)다. 방점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때 여기까지 홍순혜를 이끈 바로 그 힘, 우리들이 방금 바라보았던 갑작스러운 일시적인 정지라는 반응에 대해서, 롱 테이크를 통해서 이 모든 것을 성립시킬 수밖에 없었던 데드 타임 안의 동작에 대해서, 다음 씬에서는 대사에 의해서건, 제스처를 통해서건, 드라마를 이용해서건, 이웃집 방문을 열고 나면 반응해야 한다. 그런데 그때 홍순혜는 어떤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미소를(close_up) 짓는다. 임권택은 이 장면을 그저 지나쳐가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구태여 커다란 얼굴의 쇼트로 다시 보여준다. 별다른 동작도 없이 그저 얼굴 가득히 소리 없는 웃음을 짓는 표정만이 그 전부이다. 편집의 기술이라는 관점에서만 다가간다면 여기서 시간은 잠시 중단되고 일종의 과잉된 여백의 상태가 된다. 이 장면이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앞으로, 단 한 순간도 물러나지 않고, 잠시의 틈도 없이, 진행되던 리듬 바깥으로 빠져나오면서 더 인상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건 결코 이웃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아니며, 그렇다고 (부자 동네로부터 가난한 달동네로 추락한 다음 여전히 마님처럼 보이는 그녀를 향해서 이웃들이 보이던 적대감에 대해서) 그녀가 내보이는 (항복하는 것만 같은) 위장의 표시는 더더욱 아니며, 그녀 자신이 짓는 (일시적인) 만족의 표현도 아니다. 이 표정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통과할 수 없는 불투명성. 그리고 그것이 핵심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렵게 초등학교를 마치고 극장 매표원이 된 다음 지금의 남편을 만나 일시적으로 안정된 경제적 환경에서 살았지만 여기까지 홍순혜는 아직까지 (네 아이의 엄마이자 김진호의 아내) 홍순혜일 뿐이다. 그러나 달동네에 온 첫날 홍순혜는 마치 새마을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갑자기 새로운 태도를 획득한다. 나는 당신에게 이 장면이 홍순혜가 달동네로 온 첫날이라는 사실을 한 번 더 일깨우고 싶다. 첫날, 새 아침. 여기에 도착하자 문득 그녀는 새로운 주체가 된다. 여기에는 홍순혜에게 던져지는 어떤 질문도 없었다. 조건이 주어지자 그렇게 된다. 그런 다음 그냥 그 자리가 비어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간다는 듯이 홍순혜는 새마을 지도자로 가는 길의 첫걸음을 아무 망설임 없이 받아들인다. 거기에 없는 전체 안의 과정. 그러므로 그녀가 왜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원인을 우리는 알 수 없다. 마치 실존적 깨달음처럼 주어진 새마을 지도자로서의 새로운 삶. 이 결정적인 첫날의 첫 번째 깨달음을 보여주는 것만 같은 일시적인 정지의 생각하는 순간이라는 시간을 찍은 다음 그 공명현상처럼 자리한 쇼트의 자리에서 홍순혜의 커다란 표정으로 짓는 웃음을 찍을 때 임권택은 새마을 운동의 지도자라는 자리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만큼 뒤로 물러난다. 왜 당신은 그렇게 희생적인 자리에 가려고 하나요? 무엇이 당신을 불렀나요? 거기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인가요? 그런데 그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요? 그런 다음 이렇게 기괴한 웃음을 짓는 홍순혜의 표정을 몇 차례이고 반복해서 보여준다. 거의 마지못해 임권택은 웃음 짓는 홍순혜가 작은 부처님의 상을 모시는 장면을 찍기는 하지만, 그래서 그녀의 얼굴에서 부처님의 얼굴을 보는 것만 같은 알리바이를 전시하지만, 홍순혜의 이어지는 행위는 불가의 가르침에 따르는 그 어떤 연상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더 기괴해 보일 뿐이다. 이야기는 투명한 데 인물의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주체의 과정은 정반대로 그만큼 불투명하다. 좀 이상한 말이긴 하지만 임권택 과 홍순혜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어떤 간극의 심연이 존재하고 있다. 이때 < 아내 >는 드라마이긴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이 영화를 임권택이 찍고 있었을 때 새마을 지도자로서의 홍순혜의 활동은 현재진행형이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 영화가 개봉한 이듬해 홍순혜는 대통령상을 표창받았다) <아내>가 다루는 이야기는 홍순혜가 새마을 지도자가 된다, 라는 단 하나의 진술로 환원되지만 여기에는 임권택의 어떤 포기가 있다. 포기? 그렇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임권택의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밝은 톤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거기서 마주치는 간극 안에서 점점 더 음울한 희생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네 명의 아이들은 어려서 시작해서 십 대를 지나도록 어머니 홍순혜의 활동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그녀의 성공에 어떤 한순간에도 방해가 되기를 원치 않기라도 하듯이 행동한다. 심지어 이 아이들이 십 대에 들어선 이후에는 영화에서 거의 사라져버린 다음 이따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라는 인사를 아침마다 씩씩하게 하기 위해서 등장할 뿐이다. 남편 김진호는 홍순혜가 자기 몰래 공사장에서 벽돌 나르는 모습을 본 이후 개과천선을 한다. 드라마의 상투적인 반전. 그런데 그런 다음 김진호는 이야기에서 완전히 외곽으로 밀려나기 시작한다. 단지 이것을 가정에서 (경제적) 힘의 새로운 분배에 따른 재배치라고 설명하기에는 이상할 정도로 남편은 거의 사라진다. 홍순혜의 가정이 몹시 행복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 평면적인 외양은 내게 홍순혜의 알 수 없는 미소처럼 보인다. 아마 임권택 도 같은 생각을 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이따금 이 단조로운 평면을 뚫고 나오는 흔적들은 여기에 종종 왜상(anamorphosis)의 순간들과 마주치게 만든다.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남편은 힘든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다. 집은 아줌마들로 가득 차 넘치면서 재봉틀과 씨름을 하며 넘쳐나는 일감에 돈 버는 재미로 밤 깊은 줄 모른다. 이때 임권택의 관심은 오랜만에 남편에게로 향한다. 그때 김진호는 마치 남의 집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장모가 열어주는 대문 사이로 들어선 다음 거의 조심스러운 자세로 들어선다. 여기서 내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남편 김진호가 마루에 들어섰을 때 일하는 아줌마들 중에서 아무도 그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위계질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매일처럼 마주쳤을 그들 사이에서 왜 아무런 인사가 없을까. 그건 김진호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그녀들. 차라리 우글거린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넘쳐나는 아줌마들. 그녀들은 깔깔대고 웃으면서 신바람이 나 있지만 정확하게 그만큼 김진호는 그녀들 바깥에 놓여있다. 이 층에 올라서서 눈이 마주쳤을 때야 비로소 이 층의 그녀들은 그에게 인사를 하지만 곧 시선을 돌리고 일감에 매달린다. 김진호는 구태여 계단을 따라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홍순혜를 구석으로 부른 다음 이제 우리들의 가정생활을 가질 때도 되지 않았냐고 말한다. 하지만 홍순혜는 더 기다려달라고 대답한다. 둘 사이의 대화는 너무 상투적이어서 거의 귀 기울이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 장면은 완전히 대화 바깥으로 빠져나와서 상투성 자체를 동요하게 만든다. 동시적인 두 개의 장면. 먼저 홍순혜가 김진호의 요구에 대답하는 장면. 분명히 김진호가 질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홍순혜는 대답하는 순간 마주 보던 몸을 돌린 다음 자신의 대답이 끝날 때까지 마치 그의 요구에 대한 거절을 몸으로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약간 웅변하는 것처럼 말한다. 여기에는 어떤 이해도 없다. 또한 둘 사이에서 가능한 일말의 해결도 없다. 홍순혜의 선택은 그렇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여기서 홍순혜가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을 독백으로 바꿔칠 때 여기에는 임권택의 포기가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을 도착적으로 읽는 방법이 가능하다. 이상하게도 이 장면은 홍순혜와 김진호를 벽 옆에 세워 놓은 다음 카메라를 마름모꼴로 세웠다. 물론 이 위치는 홍순혜가 김진호에게 대답(하는 척하면서 독백을)하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얼굴을 보기 위한 자리이다. 하지만 동시에 여기서 홍순혜와 김진호의 그림자가 마치 정말 보여주고 싶은 진짜 모습이기라도 한 것처럼 벽에 비쳐 보인다. 이때 이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것은 위험한 해석이다. 과잉진술에는 언제나 어딘가 외설적인 느낌이 든다. 그러므로 나는 이 말을 몇 번이고 망설였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임권택이 바라는 두 사람 사이의 진실한 행위가 아닐까. 전체의 배치 속에서 괄호를 치는 것은 내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임권택 의 영화 중에서 새마을 영화들이 (볼 때마다 점점 더) 매우 이상한 위치에 속해 있다는 생각을 참을 수 없게 된다. 단지 제도에 한정 지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거장’ 임권택을 이야기하다 말고 이 자리에 오면 슬그머니 피해버린다. (아마 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 아내 >가 < 왕십리 >와 같은 해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비평을 불편하게 만든다. 지레짐작을 하고 ‘이 시기의’ 임권택은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들)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미리 방어선을치기도한다. < 족보 >와 < 짝코 >가 우수영화였다는 사실을 떠올려주기 바란다. 임권택 자신은 “우수영화로만 선정되면 되니까 그저 제작자 눈치 보지 않고 관객들 신경 쓸 필요도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해볼 수 있었던 좋은 시절”이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 아내 >에서는 “하고 싶은” 무엇을 “해 본” 것일까. 그 무엇이라는 모순의 미지수.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이 세 편의 영화, < 아내들의 행진 >과 < 옥례기 >, 그리고 <아내>를 보고 있으면 그 안에서 거의 와해 직전까지 간 다음 불화를 무릅쓰고 갑자기 거기서 무언가 환상의 쾌락을 누리려는 듯한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이게 볼 때마다 몹시 이상하게 보인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잠시만 <아내>의 소재를 옆으로 치운다면, 그래서 그저 하나의 드라마로써 다가가 본다면, 아아, 라고 탄식할 정도로 이 영화에는 임권택 영화로서 보기 드물게 행복한 순간들이 과도할 정도로 끊임없이 이어져 나온다. 그게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어서 그 자체를 임권택이 잠시라도 망치기를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물론 (이미 우리가 본 것처럼)임권택은 결코 홍순혜에게 단 한 순간도 동일화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면 거기서 무얼 얻고 싶어 하는 것일까. 나는 용기를 내서 말하고 싶다. 여기에는 행복에 대한 도착적 기쁨의 왕국이 기다리고 있다. 만일 그걸 내어줄 수 있다면 모든 고난을 감수해야 할 지도 모르는 희생을 치를 용의가 있다는 대답이 거기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쳐다보아도 괜찮은 것일까. 임권택은 이 순간 두 개의 시선 사이의 간극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아니 차라리 찢어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여기에는 이야기 안에서 오가는 시선과 이야기를 쳐다보는 시선이 완전히 다른 차원에 서로를 내맡기고 각자의 시선을 갖기 시작한다. 여기서 희생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주체로서의 자기의 자리를 잃고 불투명한 타자의 질서에로 밀려나는 반면 주인공의 행동을 쳐다보는 시선은 우리를 위해 봉사하는 대신 마치 그것이 자기의 기쁨이기라도 한 양 반대로 타자의 질서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척한다. 그때 기쁨과 희생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임권택의 새마을 영화(들)는 그렇게 매번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 무엇을 위해서? 어디를 향해서?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임권택은 여기서 비로소 임권택이 된다. 그렇지만 여기 머물고 있는 두 명의 임권택. 영화 안에서 무언가 서로 다른 목소리가 웅성거릴 때 우리는 어느 쪽도 포기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핵심을 찾으려면 안 된다. 반대로 우리를 무질서에 내맡겨야 한다. 어디선가 중얼거리는 속삭임들이 들려온다. 여러 명의 소리. 기꺼이 질문의 카오스 속에서 부서질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재난을 환대한다. (계속) 1976년 99분 컬러 1.66 감독 임권택 우진필림 각본 문상훈 , 박철민 촬영 이석기 조명 차정남 편집 김창순 음악 정인섭 태현실 ... 홍순혜 박근형 ... 김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