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이야기
- 감독
- 김철수
- 제작년도
- 2016
- 출연
- 시후, 정윤, 백세리
이 영화에는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강렬한 두 장면이 있다. 남북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경계인으로 살아온지 33년. 남한 진보진영을 비롯한 각계의 노력으로 재독학자 송두율 은 어렵게 귀국을 결심하지만, 남한에 발을 딛자마자 그를 기다린 것은 남한 최대 간첩사건으로 비화되어 그를 옭아맨 ‘간첩 김철수’ 논쟁이었다. 2003년 남한사회 구성원 모두를 격랑 속으로 내몰아간 이 사건 앞에서 좌와 우, 보수와 진보를 불문하고 모든 이들의 눈은 송두율 교수의 입을 향한채 그가 뭔가 진실을 ‘고백’ 혹은 ‘자백’해줄 것을 기다리는데, 그것은 < 경계도시 >를 찍으면서 누구보다 가까운 위치에서 송두율 교수를 기록해온 감독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 영화를 찍던 중에 유일하게 송두율 교수의 방에서 독대를 하게된 순간, 이 기회를 놓치면 어쩌면 다시는 그에게 질문할 기회를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감독은 그에게 묻고싶은게 너무 많다. 그러나 감독의 열망과 달리 피곤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송교수는 간절히 침묵을 원하는데, 제3자인 관객의 입장에서도 강렬하게 느껴지는 송교수의 침묵에 대한 완고한 열망과 카메라 뒤에서 듣고자하는 감독의 의지는 엄청난 에너지로 충돌하며 방안 공기를 무겁게 짓누른다. 한마디 말 없이 눈을 지긋이 감고있는 송교수와 카메라 뒤에서 그의 침묵을 받아내는 감독 사이에서 관객은 이 방안에 팽팽하게 서려있는 긴장감의 실체가 뭔지 질문하게 된다. 그의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 그의 완고한 침묵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그리고 우리가 그로부터 그토록 듣고자하는 말은 도대체 무엇인가? 잊을 수 없는 두 번째 장면은 서강대에서 있었던 세계철학자대회 현장이다. 한국의 대표적 보수론자인 서강대 박홍 총장이 거나하게 취한 얼굴로 송두율 교수의 어깨를 끌어안고 “사랑해 당신을”을 부르면서, ‘사오로’가 ‘바오로’로 바뀌었듯이 송두율 역시 ‘전향 이상의 것’을 해야한다고 요구한다. 이때 술로 벌겋게 달아오른 박홍 총장의 거대한 품에 안긴 송교수의 초라한 모습은, 좌우를 불문하고 레드 콤플렉스의 집단적 망령에 사로잡힌 남한사회에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경계인’의 참으로 왜소한 초상처럼 보인다. 그것은 당사자인 송두율 뿐 아니라 이 영화를 보는 사람까지도 몹시 힘들게 하는 외설스런 이미지다. 감독의 표현대로 ‘ 송두율 ’은 한국이라는 리트머스 시험지에 떨어진 민감한 시약이었다. 이 시약을 통해 우리는 한국사회에서 ‘레드 콤플렉스’라는 망령은 좌와 우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보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던 좌파 역시 사실상 보수 이데올로기의 프레임 안에서 송두율을 재단하고 그 프레임 안에서 진보운동의 역동성을 믿으라며 그에게 사실상의 전향을 강요했다(그것도 확신에 차서!). 이로써 학자로서, 경계인으로서 살고자했던 나약한 개인 송두율은 그의 신념과 무관하게 사상에 대한 자기검열과 전향고백을 해야했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졸지에 거짓말쟁이, 비겁한이 되어버린 그를 어느 누구도 책임지거나 보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 도래한 대대적인 망각의 시간. 더 이상 경계인이 살지않는 이 망각의 땅에서 감독은 다시 한번 묻는다. “2003년 송두율은 스파이였고 2009년 송두율은 스파이가 아니다. 그때 송두율의 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라고. 어쩌면 이 영화는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영화일지 모른다. 송두율 교수 본인에게도, 진보진영에게도, 그리고 감독, 하물며 관객에게조차도. 이 영화는 한국사회의 보수 이데올로기, 집단주의의 폭력에 파괴된 ‘경계인 송두율’을 통해 우리 안의 레드 콤플렉스, 우리 안의 파시즘을 날카롭게 후벼판다. 남들을 향해 손가락질하기는 쉬우나 그 손가락이 자신을 겨눌 때 초연할 이는 많지 않다. 이 영화를 보는 당신, 당신은 영화가 던진 질문에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