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 감독
- 김태완
- 제작년도
- 2017
- 출연
- 김근영, 강숙, 이하원, 권금산, 박용제, 김아영, 김준호, 김태완, 이재원, 김형균, 김선완
착한 인물들이 전시되고, 그들 각자의 인정투쟁으로 채워진 영화들이 있다. 이런 도착적 영화들은 대체로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착한 인물들이 이러저러하여, 다시 한 번 자신의 인생을 견디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TV 프로그램인 <인간극장>과 유사한 형식으로, 이들 착한 영화들은 착한 인생을 재생산한다. 인생의 협잡에 꿋꿋하고 순순한 용기로 버티는 그들의 모습에서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발적 노동에 순수와 착함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덧씌운다. 그들을 담아내는 수많은 프로그램들의 탐욕은 바로 ‘자발적 예속’에 닿아있다. 슬픔과 애틋함으로 위장한 자발적 예속의 재생산은 이상한 담론 효과로 시민들의 입과 마음에 오르내린다. 예를 들면, ‘우리는 저들보다 힘들지 않다.’ 라거나, 그들의 힘겨운 삶이 그저 역경으로 받아들여지거나 거부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으로 대체되고, 더 나아가 그것을 견디거나 극복하는 과정이 하나의 윤리로서 기능하게 된다. 인생의 균형이 깨지고 그 책임이 자신의 내부에 있으므로 자발적 내부의 변형으로 인생의 균형을 다시 가져오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그 깨진 균형이 외부의 책임으로 인정될 때 복수가 시작되고 다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쓰는 영화가 있다. 문제는 이 두 가지 해결 방법 모두 ‘균형의 복귀’에만 집착하고 있고, 자신이 속한 세계는 원래 문제가 없었으며, ‘내부의 변형’과 ‘외부에 대한 복수’ 모두가 새로운 세계로의 이행이 아니라 다시 예전의 그곳으로 돌아가려는 환원주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액션영화들의 서사가 거의 후자의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서사 원칙에 입각해 만들어진 많은 한국 독립영화의 흐름도, 이러한 태도(균형의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복수와 저항은 여전히 과거의 것이지 미래의 것이 되지 못한다. 애초에 우리 삶에는 ‘균형’이란 없었다. 나는 이러한 도착적 환상으로 이곳이 유지되고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영화가 보고 싶다. 그것이 피 튀기는 복수보다 가장 강력한 저항이 아닐까. ‘동네분식’의 김종우( 김태완 ) 또한 영화 내내 소심한 복수를 거듭한다. 김한울 감독의 < 김밥 >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머니를 돕기 위해 김밥 200줄을 들고 나섰다가, 단 한 푼도 벌지 못하고 급기야 빚만 만들고 만다. 급기야 떨어져 사는 아버지까지 외면한다. 종우의 소심한 복수와 응대는 결국 파국의 깊이만 가중시키고, 무력한 자신의 능력을 깨닫고 돌아온다. 김한울 감독의 <김밥>이 세상에 대한 복수, 즉 세상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어떤 피곤한 현실을 드러내고 그저 그러한 이야기의 메커니즘으로 덮어버리는 정도로 보인다. 마지막 신이 인상적이긴 하나, 그 안에는 무책임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어머니에 대한 애착만으로 구성된, 여전히 ‘균형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종우의 김밥 씹는 소리가 시공간의 경계를 넘어 확장되어 전해질 때, 그것은 여전히 ‘침묵의 목소리’의 또 다른 현상학적 버전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그 소리는 어떤 괴물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일까. 그럼에도, 작년 5월에 본 이 영화가 가끔씩 떠올랐다. 무던하면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종우의 모습이 자주 생각이 났다. 이것이 그저 연민의 감정이고 지금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한 무의식적 집착에 불과했다면,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왜 자주 떠오를까 고민하던 순간, 이 영화의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 김밥 >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진행 속도가 굉장히 느리다는 것이다. 두 줄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줄거리가 영화 속에서 상당히 긴 시간을 점유하고 있다. 거칠게 꼬여 있는 상황만 제시할 뿐, 그곳에 위트를 담을 생각이 없다. 순간적 재미를 통해 관객의 흥미를 자극하지 않는다. 영화 속 종우는 끝까지 진지하고 위태롭다. 요즘 영화들에서 난무하는 빠르고 재치있는 응답 대신, <김밥>의 형식은 그저 단순하고 거칠며 느리다. 하지만 이 형식을 무심코 따라가다 보면, 생각보다 더한 무력감으로 우리를 데려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곳이 우리 각자가 사는 곳이라면, 우리는 그곳을 이 영화를 통해 잠시나마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느리게. 우리는 느림의 저항이, 우리를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임을 안다. 그곳은 어쩌면 지난 시간 감춰둔 슬픈 지옥도인지도 모른다. 영화 <김밥>은 이 지점의 날 선 어딘가와 기존 영화들이 재생산하고 있는 ‘균형에 대한 집착’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좀 더 기운을 내라고 응원하고 싶다. 지금 가는 이 길이 새로운 영화와 삶의 지평으로 인도해주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