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보세요
- 감독
- 김태환, 정도빈
- 제작년도
- 1964
2000년 | 태원엔터테인먼트 감독: 김영준 | 원작: 김혜린 | 각본: 정용기 김영준 | 제작: 정태원 | 촬영: 변희성 김태환 | 미술: 오상만 | 음악: 김준선 CAST 신하: 신현준 | 설리: 김희선 | 준광: 정진영 | 라이: 장동직 | 타루가: 김학철 | 곽정: 기주봉 | 사준: 서태화 | 창룡: 이한갈 | 아신: 김수로 | 아리수: 류현경 < 쉬리 >( 강제규 , 1999) 이후 한국영화에서 가장 크게 변한 부분은 ‘자본’입니다. 충무로에 돈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 결과 예전엔 시도되지 못했던 프로젝트들이 등장합니다. < 비천무 >는 당시까지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제작비(약 40억 원)를 들인 영화였습니다. 김혜린의 동명 만화를 각색한 이 영화는, 원작 팬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성공했고, 특히 중국 로케이션을 개척한 작품이었습니다. <비천무>는 김혜린의 만화를 원작으로 김영준 감독이 연출한 작품입니다. 운명을 초월한 사랑과 그것을 둘러싼 인간 군상의 모습을 무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역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죠. 표면적으로는 고려 유민의 후예 진하, 몽고 장군과 한족 첩의 서녀인 설리, 한족 권문 세가의 자손 준광 사이에 흐르는 숙명적 사랑과 비극적 갈등을 그리고 있지만, 그와 함께 14세기 원나라 말엽을 살아간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욕망, 애증, 배신, 갈등 등을 비장미 있게 담아냅니다. 황포강의 서늘한 바람을 등지고 상하이에서 남쪽으로 600킬로미터에 있는 횡점에 청명상하도 세트장이 있습니다. 버스로 7시간 정도 되는 거리죠. 이곳은 120여 채의 건물, 6량의 다리, 9개의 부두, 6척의 배가 있는 당대 중국 최대 규모의 세트장이었는데요, 북송 시기의 생활상과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고 있었습니다. 촬영이 없을 때는 관광지로 이용됩니다. 원수의 손에 모든 것을 잃은 뒤 분노의 화신 자하랑으로 다시 태어난 진하 역의 신현준입니다. 자하랑은 ‘자줏빛 이리’라는 뜻이죠. 그는 이후 설리와 재회하지만, 그들 사이엔 이미 세월의 강이 가로 놓여 있습니다. ‘눈 설(雪) 배꽃 리(梨)’, 설리 역을 맡은 김희선의 모습입니다. 순수함을 대변하는 몽고의 여인 설리는 고려 유민의 아들 진하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합니다. 권문세가의 아들 준광 역의 정진영입니다. 사랑과 우정을 동시에 잃어야 하는 슬픔으로 분노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진하와 준광은 강호의 의리를 나눈 친구지만 설리와의 운명적인 사랑을 두고 갈등에 사로잡힙니다. 현장 공개 신에서 설리는 아들에게 무술을 가르칩니다. 일교차가 큰 날씨 탓에 독감에 걸린 김희선은 액션 신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여러 번 재촬영을 해야 했습니다. 신현준과 김영준 감독이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호흡을 맞춰보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두 사람은 종종 닮았다는 말을 듣곤 했다는 후문입니다. 스태프들은 넓은 세트장에서 추위와 싸워야 했습니다. 현장에서 언어 문제가 가장 중요했는데요, 한국 스태프들이 기초적인 중국어를 익히긴 했지만 때로는 한 장면을 정확히 설명하느라 몇 시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제작비 40억 원은 당시까지 한국영화 최대 규모였습니다. 그리고 상하이 필름 스튜디오가 중국 내 판권 구매를 담보로 42만 달러(약 5억 원) 상당의 현물 투자를 했습니다. <비천무>의 액션은 중국 무술의 ‘찌르기’의 현란한 기교와 일본 단칼 승부의 정적인 요소를 결합시켜 ‘베기’와 ‘회전’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액션 신의 비중이 큰 <비천무> 현장에선 크고 작은 부상이 이어졌습니다. 무술감독 마위청은 <동방불패> 시리즈의 무술팀 일원이었으며, <모험왕>(1995)의 무술감독이었습니다. 진하를 엄호하는 열명의 무사 ‘철기십조’가 지붕 위를 날아다니듯 누비는 장면은 이<비천무>의 압권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찍기 위해 크레인 2대에 열명의 배우가 나누어 매달리는 와이어 액션 기법이 동원되었습니다. 세트로 준비한 기와지만 수십 장이 깨질 때는 제작진이 무척 긴장해야 했습니다. 철기십조 장면을 찍을 때 배우들이 지붕에 떨어져서 크게 다쳤습니다. 사고 당시 김영준 감독은 촬영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합니다.
2018년 6월 13일 민심의 향방을 가늠하는 무대인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졌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정계 개편이 시작되었고, 결과를 분석하는 정치‧사회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선거의 힘과 영향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지방선거는 대선이나 총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편인데 이전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다. 1995년 제1회 지방선거 투표율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투표율인 60.2퍼센트를 기록한 이번 선거에 대한 국민의 뜨거운 관심은 20.14퍼센트라는 사전투표율과 선거 당일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지방선거에 쏟아진 열렬한 관심은 지난 촛불혁명을 통해 확인한 참여하는 시민의 힘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선거와 투표의 중요성은 다양한 홍보를 통해 강조된다. 근래에는 사회 각 분야 주요 인물들의 캠페인 광고가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 따라 SNS를 통한 개개인의 홍보도 큰 영향력을 끼친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떠한 방식으로 미디어 캠페인이 이루어졌을까? 대표적인 예로는 정부 산하의 국립영화제작소나 미공보원(USIS)이 제작한 선전영화를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애니메이션은 문해력이 떨어지는 대중에게 주제를 설파할 수 있는 최적의 매체였다. 1967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신동헌)이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를 위한 오락보다는 그 어떤 매체보다도 좀 더 용이하게 정보를 제공하고 관객을 설득하는 교육계몽 교재로 활용되었다. 1960년 공보국 영화과가 제작한 <살기 좋고 밝은 나라, 내가 가진 이 한 표로> 1) 와 1963년 미공보원이 제작한 <나에게 물어봐!(Ask Me!)>(김태환) 2) 는 애니메이션이 대중의 교육계몽에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살기 좋고 밝은 나라, 내가 가진 이 한 표로> <나에게 물어봐!(Ask Me!)> <살기 좋고 밝은 나라, 내가 가진 이 한 표로>는 1960년 7월 29일 치러진 제5대 총선인 민의원‧참의원 동시 선거에 맞춰 제작한 3분 8초 분량의 애니메이션이다. 7.29 총선은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의 붕괴를 가져온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후 출범한 제2공화국에서 처음으로 치러지는 선거니만큼 무엇보다도 공명정대한 선거가 될 것을 강조했다. 따라서 <살기 좋고 밝은 나라, 내가 가진 이 한 표로> 또한 지난 정권에서 벌어진 부정선거들과의 손쉬운 비교를 통해 공명선거를 홍보했다. “불의와 부정을 물리치고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난 우리들은 바야흐로 우리의 자유의사에 의해서 공명한 선거를 함으로써 보다 나은 삶의 터전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라든지 “여러분의 귀중한 한 표가 금력에 좌우 당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난날 여러분의 자유의사를 위협해오던 폭력배는 법의 심판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이젠 두려워할 것 없이 마음 놓고 투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와 같은 내레이션은 <코주부>로 유명한 만화가 김용환의 코믹한 그림에 더해져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고 설득하는 역할을 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영화과는 제1공화국 시절 이승만 대통령의 선전‧선동에 가장 폭넓게 이용된 기관이었다. 애니메이션의 홍보구호인 ‘공명선거’ 돈으로 매수하려는 후보의 모습 이승만 정권의 정치 건달들을 묘사한 모습 투표소의 모습 투표를 마친 후 만세를 부르는 모습 결과적으로 의원내각제로 변경한 제2공화국의 양원제 국회 구성을 위한 제5대 총선은 전 정권에 대한 심판, 달라진 선거 문화 등을 강조하며 많은 관심 속에 치러졌으며, 자유당은 민의원 2석, 참의원 4석을 얻는 데 그치며 몰락했다. 하지만 국민의 투표로 구성된 제5대 국회는 5.16 군사정변으로 불과 9개월 만에 해산되고 말았다. <나에게 물어봐!>는 1963년 10월 15일 치러진 제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주의와 선거를 교육하기 위해 제작한 6분 26초 분량의 애니메이션이다. 감독은 앞서 살펴본 <살기 좋고 밝은 나라, 내가 가진 이 한 표로>의 작화를 담당한 김용환의 동생 김태환이 맡았으며, 미공보원과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다양한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한 정도빈이 작화를 담당했다. 각본은 미국 영화평론가이자 교육가인 리처드 다이어 매칸(Richard Dyer MacCann)이 담당했는데, 애니메이션 제작 당시 그는 미국 국무성 지원으로 한국에 머물며 국립영화제작소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나에게 물어봐!>는 대통령 선거 한 달 전에 제작이 완료되어 불과 선거 보름 전 상영에 들어갔다. 4) 하지만 선거를 홍보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에서는 대통령 선거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찾아볼 수 없다. 이 애니메이션은 원시인과 현대인을 내세워 쉽고 단순한 그림 연출을 통해 이들의 차이가 참여하는 민주주의에서 발생하며, 투표를 통해 좋은 지도자를 선출함으로써 건강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는 주제를 전달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동물처럼 행동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든지 “아무리 지도자가 좋아도 우리는 한 번씩 선거를 해야 합니다. 현존하는 두 명의 진짜 상대가 있는 선거지요. 우리는 사람입니다. 심사숙고하고 발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투표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무기명 비밀 투표 같은 것 말이죠” 5) 와 같은 내레이션은 <나에게 물어봐!>의 제작 방향을 잘 보여준다. 원시인이 현대인으로 변한 모습 독재자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가는 사람들 투표를 하는 사람과 당선자의 행진 의회의 모습 제작 배경을 둘러싼 당시의 한국 상황을 굳이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나에게 물어봐!>는 공정한 선거, 균형 잡힌 정당 정치, 건강한 민주주의 등을 설파하는 교육계몽영화로 간주할 수 있다. 직접적으로 7.29 총선을 홍보하는 <살기 좋고 밝은 나라, 내가 가진 이 한 표로>와는 달리 <나에게 물어봐!>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와 투표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원론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택한다.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당시의 한국 상황은 그 어떤 때보다도 혼란하고 소란스러웠기 때문에 제작 주체인 미공보원이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한국의 자세한 상황을 묘사하는 것은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대신 독재를 방지하고 좋은 리더를 선출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오직 “나에게 물어보는 것”이라고 강조함으로써 국민이 주권자라는 사실을 전달한다. 1) <살기 좋고 밝은 나라, 내가 가진 이 한 표로>, 한국정책방송원 e영상역사관 소장자료. 2) <나에게 물어봐!(Ask Me!)>, 한국영상자료원 험프리 렌지(Humphrey W. Leynse) 콜렉션 소장자료. 3) 고려대학교 한국근현대영상아카이브. 4) 『동아일보』, 1963년 9월 20일자 6면. 5) 고려대학교 한국근현대영상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