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의 순이
- 감독
- 김호준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박해미, 신이, 이태성, 엄춘배, 심원철, 정경호, 김정국, 한철우, 이주환, 최영도, 안석천, 김대영, 홍현철, 박완규, 김유빈, 변경수, 정혜원, 이송아, 박범철, 권파강, 강숙, 원진희, 홍기석, 김재홍, 최지성, 김연지, 장수연, 강기준, 김혜연, 이영식, 김현정, 이은숙, 김연수, 신영식, 지대한, 고윤후, 이시영, 황민, 황성재
2004년 | 컬쳐캡미디어 감독: 김호준 | 각본: 유순일 | 각색: 조중훈 김요석 | 제작: 최순식 | 촬영: 서정민 | 미술: 윤도환 | 음악: 히드라 CAST 박상민: 김래원 | 서보은: 문근영 | 보은 조부: 김인문 | 상민 부: 한진희 | 상민 모: 김혜옥 | 보은 부: 송기윤 | 보은 모: 선우은숙 | 혜원: 신세경 | 동구: 류덕환 2004년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은 무엇이었을까요? < 실미도 >( 강우석 , 2003)에 이은 두 번째 ‘천만 영화’ < 태극기 휘날리며 >( 강제규 , 2004)였습니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1위였죠. 당시 충무로가 만들 수 있는, 아니 당시 충무로의 수준을 뛰어넘는 대단한 작품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2위는 어떤 영화였을까요? 놀랍게도 < 어린 신부 >였습니다. 비수기인 4월 초에 개봉한 이 영화는 전국 관객 315만 명을 동원했습니다. 권상우 를 스타덤에 올린 < 말죽거리 잔혹사 >( 유하 , 2004), 정우성 손예진 의 < 내 머리 속의 지우개 >( 이재한 , 2004), 최동훈 감독의 데뷔작 < 범죄의 재구성 >(2004), 류승완 감독의 액션 판타지 < 아라한 장풍 대작전 >(2004), 원빈 신하균 의 < 우리 형 >( 안권태 , 2004), 강동원 조한선 의 < 늑대의 유혹 >( 김태균 , 2004)... 이 모든 영화들을 <어린 신부>가 제쳤고, 당시 대한민국은 ‘국민 여동생’ 문근영 신드롬으로 들끓었습니다. <어린 신부>는 24살 대학생 상민과 16살 여고생 보은의 결혼 이야기입니다. 보은의 할아버지는 꾀병을 부려, 죽기 전에 보은이 상민과 결혼하는 걸 보고 싶다고 하죠. 그렇게 ‘어린 신부’는 탄생합니다. 촬영 공개는 바로 그 결혼식 신이었습니다. 촬영이 공개된 날은 2003년 12월 17일이었습니다. 청담동에 있는 어느 결혼식장이었는데요, 날씨가 엄청 추웠습니다. 배우들은 촬영이 없을 땐 추위를 막기 위해 두꺼운 옷을 입어야 했죠. \ 현장에서 짬이 날 때 전화 통화를 하는 문근영의 모습입니다. 당시 문근영은 실제로 극중 나이와 같은 16세였고, <어린 신부>의 리얼리티는 배우와 캐릭터의 연령대 일치에서 생겨난 셈입니다. 김래원도 캐릭터와 같은 연령대였고요. 문근영이 주로 부각되었지만, <어린 신부>가 성공할 수 있었던 토대엔 분명 김래원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있습니다. 당시 TV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로 승승장구 하던 김래원은 <어린 신부>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남자 주인공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굳히게 되죠. 신부 입장을 기다리는 문근영의 모습입니다. 영화 속에서 하객들이 “예쁘다, 정말 예쁘다”라며 감탄하던 그 장면이죠. 당시 문근영은 TV에서 영화로 옮겨 오면서 < 장화, 홍련 >( 김지운 , 2003)으로 영화배우로서 자리를 굳히던 시절이죠. 그리고 <어린 신부>가 이어집니다. 사실 <장화, 홍련>의 수연과 <어린 신부>의 보은은, 극과 극의 감정을 필요로 하는 캐릭터죠. 1년 사이에 그 극단을 오가는 건 10대 중반의 배우에겐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요, 문근영은…… 그 어려운 걸 해냅니다. 이 영화의 모든 사건은 바로 보은의 할아버지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인문 선생님의 모습입니다. 특유의 구수하면서도 정다운 연기가 이 영화에서도 관객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었죠. 이 영화에서 양가 부모 캐릭터는, 주로 TV에서 활동하시는 중견 연기자들이 맡았습니다. 상민의 아버지는 한진희 씨, 어머니는 김혜옥 씨가 맡았습니다. 곧 있으면 신혼 여행을 떠날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충고를 하지만, 아들은 듣는 둥 마는 둥이네요. 보은의 엄마 역은 선우은숙 씨가 맡았습니다. 아직 어린 딸이 안쓰럽기만 한 표정입니다. 대신 상민의 엄마는 며느리가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어린 신부>는 김호준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일본에서 영화를 전공한 김 감독은 1990년대 초부터 충무로 연출부 생활을 했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 축제 >(1996), 이정국 감독의 < 편지 >(1997) 등을 거쳐 10여 년의 도제 시스템 끝에 자신의 첫 영화를 만들게 되었죠. 한편 카메라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서정민 촬영감독이 잡았습니다. 지난 번 < 몽정기 >( 정초신 , 20002) 포스팅 에서 자세히 설명 드렸던, 바로 그 분입니다. 촬영 당시 70세셨고, 2015년에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영화 속에서 결혼식은 보은의 수학여행 날에 치러집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보은의 결혼 사실을 모르죠. 단, ‘베프’인 혜원은 예외였는데요, 당시 14세였던 신세경이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문근영보다 어린 유일한 배우? 당시 두 사람은 같은 소속사(나무 액터스)였는데요, 지금도 그곳에 함께 있네요. 상민의 선배인 지수 역은 김보경 이 맡았습니다. < 친구 >( 곽경택 , 2001)의 진숙 역으로 떠오른 그녀는 이 영화에 특별 출연을 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양가 부모가 딸과 아들을, 며느리와 사위를, 배웅합니다. 보은 아빠 역은 탤런트 송기윤 씨가 맡았습니다. 선우은숙 씨 옆에 보은의 동생 동구 역을 맡은 류덕환이 보이네요. 실제로는 문근영보다 한 살 많은 오빠지만 영화에선 동생으로 등장했습니다. 아담한 웨딩 카. 그리고 그 안의 신혼 부부입니다. 실제 촬영 때는 아니고 차 안에서 대기하는 모습입니다. 결혼식 신에 대해, 김래원은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은 무거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신”이라고 말합니다. 한편 문근영은 “어떤 마음으로 연기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의외로 편하게 촬영한 신”이라고 말합니다. 호기심 많은 성격인 보은이 ‘결혼 그 자체’만 생각하고 있다는 설정이었다고 하네요.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2002년 | 강제규 필름 감독: 정초신 | 시나리오: 박채운 | 제작: 최진화 | 촬영: 서정민 | 프로덕션 디자인: 서명혜 | 음악: 이영호 이소윤 CAST 병철: 이범수 | 유리: 김선아 | 동현: 노형욱 | 석구: 전재형 | 상민: 정재훈 | 영재: 안재홍 아마 이 영화가 전국 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할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한참 성적 호기심에 불타는 남자 중학생들과 여자 교생 선생님의 이야기였던 < 몽정기 >는,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의 대표적인 ‘슬리퍼 히트’, 즉 ‘예상치 못했던 흥행작’입니다. <몽정기>의 촬영이 있던 2002년 8월 부산의 한 여중 교실은 영화 현장이라기보다는 생기 넘치는 교실 같았습니다. 창 밖엔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만 아이들의 호기심을 사그러들 줄을 몰랐습니다. 교생 선생님과의 점심 식사 장면. 도시락 세대의 추억이기도 하죠. “선생님, 첫 키스는 언제 하셨어요?” “애는 어떻게 생겨요?” 녀석들은 ‘성’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을 묻지만 꿈 많은 소녀 표정의 선생님은 풋고추를 좋아한다느니 하며 아이들의 짓궂은 질문을 가볍게 넘어버립니다. 겉모습은 조금 궁상맞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선생님 역은 이범수. 교생이자 과거 제자였던 김선아는 그를 사랑하는데요, 이범수의 필모그래피에서 로맨스 라인은 이 영화가 처음 아니었나 싶습니다. 노총각 병철을 짝사랑하는 유리. 그녀에게 그는 ‘영원한 테리우스’지만, 병철은 그녀에게 엄격하기만 합니다. 아이들과 너무 허물 없이 지내는 모습에 “아무리 그래도 교생도 선생이야”라며 엄하게 충고합니다. 유리의 친구이자 동료 교생인 소정 역을 맡은 배우는 김기연 . < 노랑머리 >(김유민, 1999)의 상희 역으로 알려진 배우죠. 소정은 유리에게 말합니다. “세상에 저렇게 더러운 테리우스가 어딨니?” 짬을 내 네 명의 ‘중딩’들을 모아,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 보라고 했습니다. 왼쪽부터 조숙한 아이 상민(정대훈), 그나마 똑똑한 영재(안재홍), 어리숙한 석구(전재형) 그리고 교생을 사랑하는 평범한 소년 동현(노형욱)입니다. 영화에선 중학교 2학년 설정이지만, 영재 역의 안재홍(14살)을 제외하곤 나이를 꽤 먹었습니다. 정대훈과 노형욱은 18살, 전재형은 성인인 스무 살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들이 모두 30대가 되었네요. 모두 오디션을 통해 선발되었습니다. 석구 역의 전재형은 이 영화의 ‘신 스틸러’였죠. 첫 영화였는데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 몽정기 2 >(정초신, 2005)에도 출연합니다. 노형욱은 <몽정기> 개봉 즈음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가 시작되면서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졌죠. <몽정기> 전엔 < 깊은 슬픔 >( 곽지균 , 1997)에서 김승우 의 아역이었고요. 이후 < 효자동 이발사 >( 임찬상 , 2004)에선 송강호 의 아들로 출연하기도 합니다. 상민 역의 정대훈은 ‘여관집 아들 상민’ 역을 맡았습니다. 성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엔 천혜의 환경인 셈인데요, 그래서 <몽정기>의 인상적인 여관 에피소드가 가능했죠. 안재홍은 < 악어 >( 김기덕 , 1996)의 ‘앵벌이 꼬마’ 역으로 인상적이었던 배우죠. 묘한 표정의 김선아. 이때만 해도 그녀는 영화계에선 신인급이었죠. < 예스터데이 >( 정윤수 , 2002)의 여전사 메이가 첫 영화였는데요, ‘포텐’이 터진 건 <몽정기>였습니다. 취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한 이범수. 이 시기 그는 < 일단 뛰어 >( 조의석 , 2002) < 정글 쥬스 >( 조민호 , 2002) 등으로 서서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흥행작 <몽정기>를 통해 좀 더 확고한 자리를 잡습니다. 메이크업 중인 이범수와 김선아의 모습입니다. 이범수는 촌스럽게, 김선아는 귀엽고 청순하게 보이는 것이 컨셉트였습니다. 1988년이 배경인 만큼, 교실 뒤편에 가지런히 놓인 도시락들은 빼놓을 수 없는 정겨운 소품들이었죠. 그 옆에 당시 남자 아이들이 즐겼던 종이 축구 게임판이 있습니다. 프로듀서 출신으로 첫 연출작 < 자카르타 >(2000)에서 흥행을 맛 본 정초신 감독은 두 번째 영화로 <몽정기>를 선택했고, 흥행세를 이어갑니다. <몽정기>에 대해 “오프라인 세대의 청소년기를 위한 영화”라고 표현했습니다. 일종의 ‘노스텔지어 무비’라는 거죠. 이 영화의 카메라는 서정민 촬영감독이 잡았습니다. 1934년생이시니 촬영 당시 68세의 노익장이셨죠. <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 < 마의 계단 >(1964) < 만추 >(1966) 등 이만희 감독과 콤비를 이루며 스타일리시한 촬영을 보여주었던 그는 대규모 스펙터클부터 섬세한 감성까지 매우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촬영감독이었습니다. 1980년대엔 이장호 감독의 실험적인 작품들이 그의 카메라를 통해 탄생했습니다. 1990년대엔 < 개 같은 날의 오후 >( 이민용 , 1995) 같은 코미디부터 < 아래층 여자와 윗층 남자 >( 신승수 , 1992) 같은 로맨스, 그리고 < 손톱 >( 김성홍 , 1994) 같은 스릴러와 < 여고괴담 >( 박기형 , 1998) 같은 호러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셨고요. 놀라운 건 <몽정기> 이후 칠순의 연세에 < 어린 신부 >( 김호준 , 2004) 같은 ‘뽀사시’한 영상을 만드셨다는 점인데요, 서정민 촬영감독에게 불가능한 장르와 톤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15년, 위대한 카메라맨은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2001년 < 친구 > 이후 한국의 영화 현장에 ‘현장 편집’이라는 게 생겨 급속하게 보급됩니다. <몽정기> 현장에선 그 장비가 매우 간소해졌더군요. <몽정기>의 콘티 북입니다. 이 시기 한국영화의 콘티 북이, 어떨 땐 그래픽 노블을 연상시킬 정도로 매우 정교했는데요, <몽정기>의 콘티 북은 거의 ‘졸라맨’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슬픈(?) 사연이 있었으니… <몽정기>는 제작 초기 감독이 교체되는 우여곡절을 겪었고, 갑자기 투입된 정초신 감독은 시간이 없어 꼼꼼하게 콘티를 그릴 시간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대충 그린 콘티 북이 탄생했는데요, 그럼에도 영화는 ‘대박’을 기록했죠.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