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
- 감독
- 옥민아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유은지, 전정우, 김민식
그곳에는 어른들이 있었다. *** 이 글에는 영화의 플롯이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미 결말이 알려진 실화에 기반한 이 영화에 이렇다 할 반전은 없다. 오히려 폐쇄공포증이 있거나 2014년과 2022년의 참사의 트라우마로 아파하는 이들은 이 글을 읽고 나서 영화를 볼지 말지 결정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올해 여름, 13 LIVES 를 나는 미국에서 보았다. 나는 이 영화를 비웃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백인 남자 감독이 만든 제3세계의 실화 사건, 심지어 영국 어른들이 태국의 소년들을 구하는 이야기란 말이지… 백인 남성의 자뻑이 가지가지 형태로 부활하고 인종혐오 범죄가 만연하며 낙태가 불법화 되어 세상이 거꾸로 가는 것 같은 미국의 현 시점에서 백인 구원자 서사를 사용한 재난영화라니. 심지어 감독은 론 하워드, 스콜세지도 제임스 그레이도 아닌 론 하워드란 말이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하고 10분도 되지 않아 나는 알았다. 나는 이 영화를 비웃을 수 없음을. 쏟아지는 폭우 속에 갇힌 아이들과, 칠흑같이 어두운 물 속을 헤엄치는 동굴 다이버들을 보는 순간 메이는 목에 몇 번이고 자리를 떴다가 화면 앞으로 돌아와야 함을. 나의 삐딱한 시선은 자연 앞에 작아지고 재난 앞에 무력한 모습으로,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 어른들의 초라하고 정직한 모습에 바뀌었음을. 2014년과 2022년을 기억하는 대한민국의 성인이, 이 영화를 객관적으로 보기는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함을. 2018년 태국의 탐루앙 동굴에서 때이른 장마로 13명의 축구팀 소년들과 코치가 동굴에 고립되었던 것은 뉴스의 ‘세계’ 면을 상습적으로 건너뛰는 사람들에게도 어렴풋이 기억날 큰 사건이었다. 축구 연습을 마치고 코치와 함께 동굴로 놀러간 아이들은 갑작스런 폭우에 침수된 동굴 안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고립되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 태국 정부, 전 세계에서 날아든 자원활동가와 다이버들의 협력으로 코치와 아이들, 이 열세명의 생명은 한 명도 빠짐없이 동굴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러나 어떻게? 아이들이 고립된 지점은 입구에서3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고 구조대원들이 투입되기 시작하였을 때 동굴 내부의 터널은 이미 침수되어 급류가 흐르고 있었다. 심지어 이 미로 같은 터널은 성인의 몸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좁은 데다가 날카로운 종유석이 다이버의 신체와 장비를 위협한다. 때로는 몸을 돌릴 수도 없이 앞으로만 전진할 수 있는 이 좁디 좁은 터널에는 빛도 공기도 없다. 마치 하루키의 소설 속에나 등장할 것 같은 이 터널을 헤엄쳐 아이들을 찾기 위해서는 동굴 다이빙이라는 극도로 특화된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영국에서 자원하여 날아온 동굴 다이버, 존 볼라텐 John Volanthen (콜린 파렐 분) 과 릭 스탠튼 Rick Stanton (비고 모텐슨 분)은 죽었을 거라고 예상했던 아이들을 극적으로 찾아내지만 그들의 얼굴은 아이들을 발견하고 나서 오히려 더 어두워진다. 아이들이 모여 있는 지점은 동굴 입구의 물을 뽑아내고 가까스로 설치된 구조 캠프에서도 6시간을 쉬지 않고 헤엄쳐야 닿을 수 있는 거리이다. 산소탱크가 지탱하기 힘든 이 거리를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터널을 통해 이동하는 것은 전문 다이버에게도 생명을 내걸어야 하는 극한의 위업이다. (구조 작전을 수행하던 태국 다이버 한명은 목숨을 잃었으며 또 다른 구조대원은 상처의 감염으로 사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을 살려서 밖으로 데리고 나온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목표는, 아이들을 살려서 + 데리고 나온다는 상호충돌적인 두가지 목표로 분리되어 버린다. 영화가 미국에서 출시되었을 때 소수의 평론가들은 실망을 표했다. 헐리우드식 재난 스펙타클을 기대한 평론가들은 이 영화가 드라마와 서스펜스가 부족하며 밋밋한 졸작이라고 평했다. 영화의 주인공은 콜린 파렐과 비고 모텐슨이 연기한 두 리드 다이버 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캐릭터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따랐다. 그러나 이 비판들은 아주 정확하게 영화의 미덕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영화는 주인공 "구원자" 캐릭터에 공감하며 울고 웃는 영화가 아니라, 구조라는 불가능한 미션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그 과정을 수행해 내는 다수의 수행자들을 묵묵히 지켜보아야 하는 영화이기에. 그래서일까, 백인남성의 영웅주의와 구원자 서사에 날 선 비판을 가하는 유색인 여성 (women of color) 비평가들과 외국인 평론가들이 영화에 더 후한 점수를 주었다. 영화의 미덕은 영웅주의의 증발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펙터클과 해피엔딩의 통쾌한 카타르시스도 그와 함께 증발했다. 영화를 보고 난 관객의 마음에는 기껏해야 안도감과 함께 무거운 질문들이 남는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었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매우, 고통스럽다. “The old men found the boys!” 두 영국인 동굴 다이버들이 태국의 해양경찰과 다이버들이 들어가지 못한 junction 9을 지나 소년들을 찾아내어 동굴 밖으로 나오자 관계자들이 소리친다. (숨 쉬기가 어려워 세번이나 쉬면서 영화를 보는 동안 유일하게 빵 터진 장면이다.) “Old men”을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 직역은 물론 “노인들”이 되겠으나 원어 태국어의 뉘앙스를 살린 한국어는 무엇일까? 늙은이들? 어르신들? 아재들? 아무튼 중년을 지나 초로라고 표현해도 무색할 이 두 백인 남성들은 그냥 이렇게 후줄근하게 축소되어 불린다. 작전 회의를 할 때면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커녕 노안 안경을 코끝에 걸쳐 써야 하는 두 중년 남자들은 아이들에게 그닥 애틋한 눈길을 보내지도 않는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순간으로 보여지면 동굴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감독과의 오랜 협력자이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으로 셀룰로이드 필름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영화적 노스탤지아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태국 촬영감독 사욤부 묵디프롬 (Sayombhu Mukdeeprom) 역시 그들을 영웅으로 비추지 않는다. 카메라의 묵묵하고 겸허한 시선은 이 두 ‘노인’을 연기한 쟁쟁한 배우들에게 그럴싸한 클로즈업 한 컷을 선물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어른이다. 소강상태에 머물던 폭우가 다시 시작되어 동굴에 차오르는 급류를 보고도 담담히 “서두르자”- 한마디 하고 물 속으로 다시 뛰어들 수 있는. 그리고 그 현장에는 이 다이버들 외에도 너무나 많은 어른들이 있었다. 영화에는 다 나오지 않지만 실제 현장에는 백 여개의 정부기관에서 투입된 수 많은 공무원들, 9백명의 경찰, 2천명의 군인은 물론 구조팀에게 매일 2만끼니의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모인 7천명의 자원 활동가가 있었다. 물론 이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할 수 있도록 지휘를 한 책임자들이 있었다. 첫날부터 밤을 새며 현장을 직접 지휘하는 시장은, 다이버 한명이 죽자 동굴에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고 선언하고,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다시 그 선언을 번복한다. 민간인 수자원 엔지니어는 빗물이 지하수로 변해 동굴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물길을 바꾸는 중책을 자진하여 지휘한다. 마을에도 어른들이 있다. 농부들은 자신들의 논을 침수시키며 물길을 열어 동굴 안에 물이 불어나지 않게 시간을 벌고, 물길을 내기 위한 파이프가 부족하자 대나무를 베어 수관을 만든다. 그러나 아이들을 살려서 + 동굴을 데리고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어른들은 전혀 다른 무게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릭과 존, 두 베테랑 다이버들은 아이들을 산채로 데리고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생각해 내고, 동굴 다이버이자 해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마취과 의사, 리차드 해리스Richard Harris (죠엘 에저튼 분) 를 호출한다. 해리의 의견도 두 사람과 같다. 6시간의 동굴 다이빙 동안 아이들은 반드시 익사할 것이다. 아이들을 살려서 동굴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해리는 두 다이버가 입 밖에 내기조차 힘든 방법을 자신에게 제안하려는 것을 눈치채고 소스라친다. 6시간의 다이빙을 견뎌낼 수 있도록 아이들을 마취시키고 팔다리를 묶어 한 명씩 데리고 나오는 방법이다. 6시간의 다이빙 동안 아이들이 중간에 깨어나 익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반복하여 마취제를 주사해 가며, 공기도 빛도 없는 수중 터널을 통과하는 구출 작전. 동의를 얻지 않는 마취는 엄연히 불법이며 아무도 시도한 적 없는 이 방법이 성공할 확률은 미지수이다. 하지만 때 이른 장마비는 시시각각 불어나는 중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이대로 고립되어 반드시 죽는다. 어른들은 촌각을 다투는 이 상황에서, 어쩌면 비윤리적이며,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 이 작전을 집행하기로 결정한다. 극비리에 진행하기 위해 언론 보도를 중지하고 심지어 아이들의 부모들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작전 중 아이들이 죽을 확률이 살 확률보다 크다는 것을 인지한 당국은 다이버들에게 사면을 보장하고, 다이버들은 자신들의 목숨 또한 위태로울 것을 알면서 불어난 물 속으로 뛰어든다. 그렇게 그곳에는 자신과 타인의 삶을 송두리채 바꿀 수 있는 무거운 결정을 내리고 책임지는 어른들이 있었다. 이 결정이 옳은 것인지 아닌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한 명도 빠짐없이 구조해 낸 해피엔딩으로 이 결단은 “옳은 결정”이 되었지만 만일 그렇지 않았어도 세상이 그들에게 같은 평가를 내려 줄까. 아마 그렇지 못할 것이다. 아니, 분명 그렇지 못할 것이다. 그 순간 그들이 내릴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었음이 분명하되, 이 선택이 윤리적으로 완벽한 결정이었을까. 법과 도덕과 의학의 어느 지점을 교차하는 이 무거운 질문에 나는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그러나 나는 안다.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뒤늦게 구조팀에 합류한 다이버 크리스 쥬월 Chris Jewell (톰 베이트먼 분) 이 동굴의 에어 포켓 안에 길을 잃고 바보처럼 떠 있는 모습이다. 실제 다이버들이 커피 속을 헤엄치는 것 같았다고 증언한, 시각이 아니라 물 속에 매어 놓은 줄의 촉각에 의해 통로를 헤엄쳐 나가던 크리스는 동굴에서 줄을 잃고 길을 잃는다. 어두운 물 안에서 패닉하고, 급기야 자신의 심리 상태를 판단해 더 이상 나아가지 않기로 한다. 에어포켓 안에서 아이를 물위로 떠올려 보듬어 안은 채로 동료가 나타날 때까지, 아니 나타나길 바라며 침착하게 기다린다. 침착하게? 아니, 화면 속에는 보이지 않는 그의 떨림이 관객인 내게도 느껴진다. 내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과 그 이상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부족함이 타인의 생명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두려운, 나약하고 정직한 인간의 모습. 어른은 무엇인가.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으로 인한 결과를 책임지는 것. 그게 어른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이미 망쳐버린 세상을 표류해야 하는 어린 생명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이 시대에 어른의 의미는 확장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책임의 무게가 자신을 평생 짓누르는 트라우마가 될지라도,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는 것. 완벽을 기대할 수 없겠지만, 피하지 않고, 오직 최선을 다해 애를 쓰는 것.
짧은 여행의 기록 1-1: 파주행 성공한 사람 곁에는 성공한 사람이나 성공하고 싶은 사람이 모인다. 실패한 사람 곁에는 실패한 사람이나 실패하고 싶은 사람이 모인다. 그리고 외톨이 곁에는 외톨이만 모인다. 구분하자면 나는 외톨이에 가깝다, 라는 말로 오한기는 [바게트 소년병]을 시작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굳이 따지자면 말이지만. 나는 지금 파주를 향하고 있다. 자유로를 타고, 피치포크 선정 90년대 최고의 노래 250곡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늘 그런 것처럼 내가 가야하는 장소가 파주가 아니라 블레인 카운티라는 가벼운 착각 속에서… (좌: T맵, 우: [GTA5] 맵) 하지만 그곳에는 샌디 해안이 없고, 칠리아드 산이 없다. 보기만 해도 팔이 아픈 것 같은 할리 데이비슨을 모는 폭주족들이 모여 사는 트레일러촌도, 깊은 산 속의 컬트 본부도, 마약을 제조하는 버려진 수퍼마켓나 최신형 기관 단총을 등에 매고 자전거를 타는 시골 힙스터들도, 모래 바람 부는 누런 황야도, 회전초도, 야생 늑대도 없다(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마지막 세 개 정도는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개쯤 더 있을 수도 있고…). 지금 나는 수상할 정도로 서로 닮은 남자들이 운영하는 집단 농장을 불태우러 가고 있지 않다. 오한기를 만나러 간다. 그러니까 외톨이가 외톨이에게, 그런데 이제 자동소총 대신 바게트빵을 곁들인… 1-2: 메타포 외톨이와 외톨이가 모이면 그들은 여전히 외톨이일까요 외톨이가 아닐까요, 만약 아니라면 그들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외톨이야+외톨이야=Daridaridara du? 내가 묻자 오한기가 말했다. 정연씨, 좋아보이시네요. 우리는 출판단지에 있는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인쇄에 쓰이는 기계들이 전시된 박물관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시간, 영원함, 이 세상과 그다음 세상, 책, 출판업자, 가능한 문제, 불가능한 문제를 두고 날이 어둑해지도록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는 했다. 소설이라는 것에 대해서. 영화라는 것에 대해서. 세상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러니까 사실이 아닌 문장은 단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나의 무능과 아직도 오한기의 소설을 영화화 하지 않은 세상의 무능에 대해서… 문득 그런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오한기가 말했다. 영화 < 파주 >에서 서우가 이선균한테 이렇게 묻잖아요. 이런 일 왜 하세요? 이 일이 형부한테 무슨 보람이 되죠? 그러자 이선균은 얼빠진 표정으로 담배를 한모금 피우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글쎄, 처음엔 멋져 보여서 한 거 같고, 그 다음엔 내가 갚을 게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거 같은데, 지금은 잘 모르겠네, 그냥 늘 할 일이 생기는 것 같아, 끝이 안 나, 라고요. 나는 물었다. 도대체 그런 대사는 어떻게 외우고 있는 거예요? 언제 봤는데요? 그런 나를 오한기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대꾸했다. 안 봤는데요. 정연씨, 그건 그냥 메타포에요. (상: 서우, 하: 이선균) 1-3: 총 맞은 것처럼 아직 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문학동네 편집자분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천변을 따라 천천히 걷다가 헤르만하우스 옆길로 들어섰다. 심학산 입구쪽으로 올라가는데, 식당이며 커피숍들이 보였다. 어쩐지 엠티라도 온 듯한 기분이었다. 식당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이게 오늘의 첫 끼니라는 사실이 떠오르며 미친 듯이 배가 고파졌다. 얼마나 배가 고픈지 당장 먹을 걸 준다면 춤이라도 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딴딴딴 따단 따단, 딴딴딴 따단 따단, 리듬에 맞춰서, 배고픈 사람의 춤을, 밤이 깊도록. 춤을 추지 않아도 음식은 나왔고 날은 저물었다. 파스타와 피자를 먹고 카페에 갔다. 멀리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였다. 창가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나도 저 노을처럼 사라지고 싶다, 그렇게 사라져서 푹 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는 원고를 쓰느라 꼬박 밤을 샜다. 이제 인스타 라이브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내일은 하루종일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모레는 광주에도 가야 하는데. 한 두 번 해본 것도 아니지만 촬영을 시작하면 늘 긴장하게 된다. 지금도 그렇다. 담당자의 시작 신호를 못 알아듣고 몇 분 동안 멀뚱하게 카메라와 아이패드 화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고만 있었다. (좌: 오한기와 금정연, 우: 장 뤽 고다르) 작가로서 본인의 10년을 되돌아본다면, 어떠세요? 출판사 분들이 쿠팡에서 주문했다는 고소한 빵 냄새가 나는 모형 바게트를 앞에 두고 내가 물었다. 저는 작가로서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이건 진짜 어려운 질문 같은데, 질문을 들으면서 딱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제가 회사에 다닐 땐데, [의인법]을 냈는데 어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제 [의인법]에 대한 이야기가 문예지에 실렸다, 문예지를 보내주겠다, 그래서 저는 어? 문예지를 보내줄 정도면 되게 좋은 이야기가 실렸겠구나. 그래서 기다렸죠. 마침내 와서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읽었는데 진짜 제 소설에 대한 완전한 악평. 두 분이 대담을 하셨는데 서로 주고 받으시면서 제 기억에는 되게 안 좋은 말들, 비판을 하셨어요. 그래서 그때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거의 총 맞은 기분? 그 기억이 자꾸 났어요. 이 질문을 들으면서. 그게 제 작가인생입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슬펐다. 라이브가 끝났다. 밤의 자유로를 달려 오한기를 합정에 내려준 다음 나는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바게트 소년병]을 펼쳐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마지막 작가의 말을 읽었다. 오한기는 이렇게 썼다. 희망을 버렸지만 나는 여전히 소설을 쓰고 있고, 비공식적으로는 전 세계 백 등 안에 든다고 확신한다. 착각일까. 언제나처럼, 아마도 그렇겠지? 데뷔할 때 ‘나의 마지막 장편소설’이라는 제목의 수상 소감을 썼던 게 기억난다. 수상 소감 속에서 나는 볼링장에서 일하는 포르노 작가였고, 시상식장에서 한 원로 작가에게 수상 소감이 허구여서는 안 된다고 꾸지람을 들었다. 왜 안 될까. 글쎄. 도무지 모르겠네. 2-1: 뉴욕에 간 사나이 오늘의 일정. 일산 집에서 은평 작업실에 간다, 다시 일산으로 돌아와 나윤이와 장모님을 태우고 안산에 간다, 안산에 차를 놓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대학로로 간다, 대학로에서 일산으로는…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대학로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나윤이 데리고 소아과 다녀와서 작업실로 운전해서 가는데 정지돈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이 그날이라 이것저것 이야기도 할겸 미안하고 고마워서 전화했다고 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됐고 뉴욕은 어떻냐고 물었다. 그러자 정지돈이 대답했다. 여러분이 없는 뉴욕은 아무 의미도 없다고,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여기 사람들은 진짜 말이 안 통한다고, 물론 그건 거의 전적으로 제 잘못이겠지만 너무 안 통해… 근데 지돈씨 지금 뒤로 들리는 이게 뉴욕의 소음인가요?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정지돈이 대답했다. 그렇죠, 들리나요? 뉴욕의 소리가. 근데 지금 길거리는 아니고 카페에 있는데 여기가 무슨 카페냐면 밥 딜런이 단골인 완전 유서 깊은 카페로 여기에 또 누가 단골인줄 알아요? (이하 생략)(이하 생략)(이하 생략)… 나는 지금까지 뉴욕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가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런저런 영화를 통해 보았고, 음악을 통해 들었으며, 책을 통해 읽었다. 그래서 종종(실은 자주) 뉴욕이 어릴 때 떠나온 옛 고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가끔 작업실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우탱 클랜의 [Enter the Wu-Tang(36 Chambers)] 앨범을 들으며 살인적인 주거비용 때문에 직주근접을 이루지 못하고 밤의 고속도로를 달려 뉴욕의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뉴저지 사람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but <I’m not there>) 2-2: In Between Dyas 안산에 도착하니 3시 15분이었다. 금요일이라서 그런가? 낮인데도 차가 제법 막혔다. 대학로까지는 딱 두 시간이 걸린다고 나왔다. 아슬아슬했다. 77번 버스 타고 초지역에 갔다. 4호선을 타고 지상구간을 지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도시들, 이미지들. 한참을 멍하게 앉아 음악도 듣지 않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문득 [나의 해방일기] 구씨 생각이 났다. 어디서 뭘하고 사는지, 건강은 좀 어떤지, 염미정이랑은 잘 만나고 있는지… 언젠가 정지돈은 여행이 좋지만 공항에 가고, 비행기를 타고, 환승을 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싫어서 여행까지 싫어질 때가 많다고 했다. 내 생각은 다르다. 아침부터 적지 않은 시간을 길 위에서 보냈지만 조금 피곤하기는 해도 나는 그게 전혀 싫지 않다. 정확히 그 반대다. 토마스 베른하르트가 말한 것처럼, 진실은 이렇다. 나는 그냥 자동차에 앉은 채로 한 장소를 떠나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데, 행복한 순간 은 오직 자동차에 앉아 있을 때뿐이다. 나는 차를 타고 이동할 때만 행복하고, 도착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이 된다. 어디에 도착하든지 상관없이, 도착하는 순간 나는 불행하다. 나는 세상의 그 어떤 장소에서도 견디지 못하고, 오직 떠나 온 장소와 도달할 장소 사이에 있을 때만이 행복한 인간에 속한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이라도 지하철을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고 [GTA4]나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정확히 말하면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그냥 택시 뒷좌석에 앉아 창밖으로 흘러가는 리버티시티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싶을 뿐이다.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리버티 시티에서 택시 타기) 2-3: 치질에 대해서 (ㄱ) <스위밍 풀>에서 샬럿 램플링이 했던 말 기억해요? 편집장이 20년 전에 자기를 세뇌시켰던 말이라면서 이렇게 말하잖아요. 상은 치질 같은 거라고, 모든 작가들이 언젠가는 받게 된다고요. 지돈씨, 네 번째 치질을 축하합니다. 혹시 우리가 처음 만난 날 기억해요? 서울국제도서전에서였잖아요. 지돈씨는 출판사 부스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저는 다른 친구와 같이 도서전을 구경하고 있었죠. 그 친구는 지돈씨랑 아는 사이였고요. 아, 네, 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안녕하세요 인사하던 지돈씨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이 새낀 또 뭐야? 같은 눈빛이었는데. 그날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꾸벅, 고개를 숙이고 다시 각자의 일로 돌아갔죠.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어요. 그러니까… 모든 것이요. 제가 지돈씨를 두 번째로 본 건 문지 신인상 시상식 자리였습니다. 예의 친구가 지돈씨에게 초대를 받았다며 저를 불렀는데, 시상식장에 조금 늦게 도착해서 인사는 하지 못했어요. 그때 저는 화정동에 있던 영화 창작공간 시나리오작가존에 입주해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날이 자리를 빼야 하는 날이었거든요. 그래서 가방 가득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지돈씨가 상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시상식이 끝나기 전에 친구와 둘이 그곳을 빠져나왔죠. 그날 지돈씨가 수상 소감을 말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멋진 재킷을 입고 단상에 올라 이렇게 말했죠. 준비해온 소감이 있어서 그걸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멋진 재킷의 안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종이를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물론 지돈씨는 본인의 목소리는 원래 떨린다고 말하겠지만요), 아주 긴 수상 소감을. 저는 지금 지돈씨가 제게 선물한 재킷을 입고 있습니다. 안주머니에는 지돈씨가 쓴 수상 소감도 들어 있고요. A4 6장이면 짧다고는 할 수 없겠네요. 오늘은 지돈씨의 대리 수상을 하는 자리인만큼,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정지돈의 시상식을 최대한 재현하는 것이 오늘 저의 목표입니다. 잘할 수 있을까요? 굳이 잘할 필요는 없겠지만요. 벌써 다음 역이 혜화네요. 이제 내릴 준비를 해야겠어요. 곧 다시 연락할게요. 안녕! (ㄴ)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에서 베른하르트가 했던 말 기억해요? 시상식이란, 상이 주는 돈만 아니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고역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죠. 이런 시청과 강당 안에서 남들이 내게 똥물을 뿌리도록 놓아두었다. 상이란 한 사람에게 똥물을 뿌리는 행위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상을 받는다는 것은 남들이 내 머리 위에 똥물을 뿌리도록 허용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면 상금이 지불되니까. 지돈씨, 오늘 저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위트 앤 시니컬 2층이었어요. 그 안에서 남들이 내게 똥물을 뿌리도록 놓아두었죠. 심지어 상금도 없이… 지돈씨, 어떻게 제게 이럴 수 있죠? 맹세컨대 시상식이 이런 건줄 알았다면 저는 아무리 지돈씨의 부탁이라도 결코 대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말이지 여태까지 살면서 이렇게…… [더 보기] (좌:정지돈, 우: 신해욱) (다음 회에 계속)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장소로서의 쓰촨/사천(四川) < 쓰촨의 신-신 극단 >의 원어제목은 초마당회 椒麻堂会, 영어제목은 A New Old Play.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영문타이틀과 원어제목 사이에는 꽤 큰 간극이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 해보면, 초마(椒麻)는 산파와 파 따위를 버무려 만든 양념으로, 특유의 매운 맛으로 명성이 자자한 쓰촨 지역요리에서 주로 쓰이는 양념이다. 즉, 원제는 초마파티 정도의 뜻인데, 쓰촨지역을 대표하는 맵고 강렬한 초마맛으로 가득한 축제라는 뜻일게다. 제목대로, 쓰촨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지역적 특색과 상징들이 곳곳에 담겨있다. 나날이 새로워짐을 의미하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명한 신-신 극단은 쓰촨 지역의 전통극인 천극을 공연하는 극단이다. 중국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극 형태들이 존재하는데, 첸 카이거의 <패왕별희>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북경을 중심으로 해서 발전해온 경극, 장쑤성의 곤극, 그리고 쓰촨을 대표하는 천극 등이 있다. 각기 다른 매력과 레퍼토리, 그리고 특징들이 있지만, 천극은 한 갈래인 가면극 변검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변검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영화로는 중국 5세대 감독의 대부로 불렸던 우티엔밍(오천명)감독이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연출한 <변검 The King of Masks>이 떠오르는데, 전통극에 등장하는 광대의 인생사를 통해 중국의 근현대사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관통하며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쓰촨의 신-신 극단> 역시 중국의 근현대사를 살아낸 한 광대의 삶과 죽음 이후의 과정을 따라가는데, 시기적으로는 1920년대 국공합작부터, 항일전쟁, 국공내전, 대약진 운동과 대기근, 그리고 문화대혁명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며, <패왕별희>와 거의 동일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국신화에는 인간의 몸에 소머리(牛頭)와 말얼굴(馬面)을 한 저승사자가 망자를 지하세계로 안내하는데, 이들은 중국 전통극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들이라고 한다. 우두와 마면은 지하세계에서 염라대왕이 보낸 관료로 등장해 이 영화의 시작을 여는 역할을 한다. 막 죽은 주인공 치우푸를 지하세계로 안내하는 역할과 함께, 영화 중간중간 사람들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마다 주변에 나타나기도 한다. 우두와 마면이 찾아온 망자는 40년 넘게 신-신 극단에서 광대로 활동해온 치우푸. 공연을 통해 익숙하게 봐온 우두와 마면을 이내 알아본 치우푸는 두 저승사자와 함께 망자들이 모이는 고스트 시티를 향해 길을 떠난다. 그곳에는 모든 기억과 과거를 사라지게 만들 '망각의 수프'가 치우푸를 기다리고 있다. 수도호손산(樹倒猢猻散)-큰 나무가 쓰러지면, 원숭이들은 흩어진다 1920년대, 중국 쓰촨성. 북방 군벌과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한 국공합작의 시기. 천극의 광팬이자 이발사였던 리우/포키는 전쟁에 참전했다가 우연히 장군의 목숨을 구하게 되고, 그 공으로 고위간부로 승진한다. 그리고 평생 꿈꾸던 극단을 설립하게 되는데, 이름을 신-신 극단이라 짓는다. 새롭게 문을 연 극단은 단원들을 모집하는 오디션을 열고, 거기엔 무리들 사이로 몰래 숨어든 일곱살 난 치우푸도 있다. 치우푸는 천극 아티스트이던 아빠가 죽고 엄마가 재혼을 하면서 버려져 갈 곳이 없고, 작은 덩치로 인해 성인들 사이에서 끼니도 챙기기 힘든 상황. 하지만 아버지가 취했을 때 늘 부르던 노래 소절들을 계기로 극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그렇게 일곱 살의 나이에 운명처럼 광대의 인생을 시작한다. 중일 전쟁을 거치며 승승장구하는 리우/포키와 함께 성장하던 치우푸와 신-신 극단은 국공 내전이라는 대혼란을 겪으며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에 두려움을 느낀다. 내전의 혼란에서 극단은 문을 닫게 되고, 치우푸는 아편에 빠져 들고, 극단의 스승들은 제 갈길을 찾아떠나고, 단원들은 모두 거리에서 노래로 구걸하는 신세가 된다. 큰 나무가 쓰러지면 나무 아래 원숭이들은 뿔뿔이 흩어지는 법. 이후 공산당의 승리와 함께 극단은 다시 문을 열게 되지만, 인민극장이란 간판을 달게 된 극장에서는 인민을 위한 예술과 공연을 강요받게 된다. 하지만 신-신 극단은 대약진 운동이 초래한 극한의 빈곤과 기아, 문화대혁명이 강요한 자아비판과 광기 속에서도 명맥을 이어나가고, 치우푸와 그의 가족도 극단과 함께 모진 인생을 살아낸다. 펠리니적인 세계, 조루즈 멜리에스, 그리고 무성영화의 아름다움 영화를 연출한 치우지옹지옹 QIU Jiongjiong은 화가, 비주얼 아티스트, 그리고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주목을 받아온 아티스트. <쓰촨의 신-신 극단>은 감독의 개인사에서 비롯된 프로젝트이기도 한데, 치우푸의 삶은 천극 아티스트로 활동했던 할아버지로부터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저예산과 독립적인 방식으로 제작되었고, 6개월에 걸쳐 쓰촨에 2개의 스튜디오를 만들고 모든 소품과 무대를 혼자서 제작하고 직접 무대 배경을 그렸다. 영화의 모든 장면은 4개월에 걸쳐 그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는데, 수공업적인 제작방식으로 구현해낸 독창적이고 몽환적인 무대배경과 어우러지는 배우들의 유려하고 우아한 움직임들은 무성영화의 아름다음을 떠올리게 하고, 멜리에스의 세계와 제작방식을 상기시킨다.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 환상과 기억, 그리고 이승과 저승이 거울처럼 마주보고 있는 세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현실인지 상상인지 확실하지 않은 이미지들의 향연. 만화가이자 마술사이기도 했던 멜리에스가 촬영스튜디오를 만들어 스크린으로 보여지는 모든 미장센을 통제하며 상상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창조했듯이, 감독은 여러 겹으로 배치된 공연/연극적인 장치들을 통해 평면적인 공간을 입체적이고 깊이감 있는 영화적 공간으로 창조해낸다. 이미지와 상상력으로 재창조해낸 초월적이고 환영적인 세계. <쓰촨의 신-신 극단>은 20세기 천극을 대표하는 한 광대의 삶을 통해 시공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현실과 저승이 서로 거울처럼 마주보고 있는 세계를 구현해내고 있으며, 한 극단의 연대기를 통해 중국 역사의 한 챕터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역사의 소용돌이와 부침을 따라 부유하는 민중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중국 근현대사를 함께 횡단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역사의 암흑기를 살아낸 한 광대의 이야기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함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인생은 희노애락으로 구성되기 때문일거고, 재미와 유머를 강조하는 천극의 매력에서 기인할 수도 있다. 그래서 광대의 삶을 살았던 할아버지에게 바치는 가장 영화적인 방식의 헌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