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들
- 감독
- 박지연
- 제작년도
- 2011
- 출연
- 정연주, 장형윤
“당신과 헤어진 것은 싫어져서가 아니야.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여행 같은 거야.” 남자는 우주를 떠다니는 버스 정류장에서 한없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 초현실주의 같은 장면은 박지연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 낙타들 >(2011)의 한 장면이다. 나는 이 작품의 남자 목소리 연기를 하였다. 원래는 진짜 배우가 연기하기 전 가이드 녹음이었지만 적당한 배우를 구하지 못한 감독의 결단으로 나의 목소리 연기가 작품에 남게 되었다. 사실 내가 목소리 연기 했다는 이유 말고도 이 작품은 무척 뛰어난 작품이다. 마치 관처럼 생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들어오는 여자. 이 집은 텍사스의 어느 모텔처럼 사막과 같이 덥고 황량하다. 그리고 다른 여자에게 가버린 전 애인은 냉장고에 앉아 있다. 남자는 “당신과 같이 있지 않을 때 당신이 더 그립다”고 말한다. 자세히 보면 말을 하고 있는 것은 그 남자가 아니라 그 남자 얼굴 안에 들어 있는 앵무새이다. 남자 안에 있는 앵무새는 늘 같은 말을 한다. 이 작품은 감독의 전작 <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 >(2008)과 마찬가지로 남자와의 연애와 이별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박지연 감독의 희소성은 그녀가 다루는 사랑의 일면이 성숙하다는 데에 있다. 성숙하다는 의미는 우리가 많이 보는 “남자는 이렇다.” “여자는 이렇다.” 에서 벗어나 있다는 의미이다. 국내의 단편 애니메이션에서도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작품은 많이 있는 편이다. 그러다 대부분의 작품이 사랑이나 이별을 TV 드라마와 다르지 않은 깊이에서 다루고 있다. 그것은 단편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내는 창작자들이 주로 대학생들이고 20대 초중반의 나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자 주인공은 이별을 하고 새로운 좋은 남자를 만나거나 아니면 오해를 풀고 재회를 하는 정도의 패턴으로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 낙타들 >에 나타난 여자 주인공은 다르다. 많은 상처 때문에 메말라 버린 주인공은 그렇다고 남자를 욕망에 사로잡힌 나쁜 존재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주인공은 다시 달콤한 사랑을 꿈꾸기보다는 관같이 생긴 냉장고를 타고 우주로 나아가는 길을 택한다. 박지연 감독 본인은 자신의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의 내면을 이렇게 건조하면서 시적으로 다루는 작품은 드물다. 또한 이 작품의 이미지와 상징 또한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앵무새가 들어 있는 얼굴을 가진 남자. 앵무새는 남자의 욕망을 상징하는데, 앵무새가 날갯짓을 시작하면 남자는 정신없이 방안을 날아다닌다. 여자는 “내가 구해 줄게” 하며 밧줄을 던진다. 그리고 밧줄에 잡힌 남자는 시계추처럼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그러다가 앵무새는 얼굴에서 나와 남자의 몸을 완전히 먹어 버린다. 욕망에 완전히 사로잡힌 남자의 모습을 이토록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독특한 스타일 때문인지 이 작품은 부산 국제영화제와 4대 애니메이션에 페스티벌로 불리는 안시, 자그레브, 오타와를 포함한 해외 많은 영화제에 상영되었다. 박지연 감독의 신작이 곧 나오는데 어떤 이야기와 이미지로 신작을 만들었을지 무척 기대가 된다.
여자가 집으로 돌아온다. 앵무새를 얼굴에 붙인 남자가 방에서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여자는 앵무새 남자에게 다른 여자에 대해 말한다. 그러니까 남자는 여자를 놔두고 다른 여자를 만난 후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낯선 존재가 되었다. < 낙타들 >은 남자 얼굴에 정말로 앵무새가 붙어 있는 이미지로 이것을 표현하는데, 이런 표현은 상투적이지만, 정말 ‘애니메이션에서만 가능한’ 이미지다. 그동안 방에는 불안한 듯이 바람이 계속 불고 커튼과 전등이 흔들린다. 남자는 여자에게 다른 여자를 만나면 주인공에게로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다는 변명을 한다. 여자는 담담히 일상을 반복하면서 자신도 다른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하고, 삶이 사막을 건너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이 대화는 대화라기보다는 마치 내레이션 같은데 평소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대화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영화는 두 주인공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 같은 대화로 이야기를 채운다. 남자는 방을 떠나려고 하지만 여자가 붙잡는다. 둘은 천장에 매달려 흔들거리면서 서로의 엇갈린 욕망에 대해 말한다. 이윽고 앵무새가 남자를 삼키면 남자는 앵무새 안에 갇힌다. 남자는 그동안에도 계속 냉장고에 들어 있었다. 집에서 가장 폐쇄적인 공간인 냉장고에서 자신을 찾는 여행을 떠난 셈인데, 자신의 안으로 들어가 버린 남자가 뭔가를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자는 우주같이 넓고 어두운 그곳에서 기차를 기다리지만, 허공을 떠도는 남자가 기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할 순 없다. 홀로 잠든 여자의 방에 중국에서 온 사막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미세먼지인지 황사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아무튼 영화 속 공간이 우리의 일상과 멀지 않은 공간임을 말하는 것 같다. 여자가 창밖을 내다보는 건물은 우리가 사는 도시의 풍경이며 이 공간에는 다른 여성들도 있다. 또는 곧 벌어질 다른 갈등을 암시하는 것도 같다. 여자의 집에 다른 여자가 찾아오는데, 마치 다방처럼 쟁반에서 보온병과 커피잔을 꺼내 내려놓는 모습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방 여성의 이미지다. 앵무새는 여자를 데리고 날아가 버리고 여자 홀로 집에 남는다. 선인장이 자라는 사막으로 변해버린 방에서 여자는 남자가 들어가 있던 냉장고 안을 들여다본다. 그녀의 괴로운 마음이 폭발하는 순간, 영화의 이야기도 비약을 이룬다. 그녀는 폭발한 냉장고를 타고 방을 탈출해 우주를 떠돈다. 앵무새 안에 갇힌 남자처럼, 그녀가 냉장고 밖으로 나오려면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사막에서 사는 다른 여성들처럼 홀로 존재하는 법을 깨우치거나, 자신이 뭘 원하는지 찾아야 할 것이다. 여자가 앵무새 안에 갇힌 남자에게 했던 말, ‘그 무언가를 꼭 찾길 바란다.’는 말이 이제는 스스로에게 했던 말처럼 들린다. ‘낙타들’이라는 제목은(실제 환경이 그렇든 혹은 감정적으로든) 사막처럼 황량한 도시에서 견딜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 그리고 주인공은 냉장고 안에서 잠든 채로 욕망만큼이나 넓은 우주를 떠돈다.
박기용 감독의 < 낙타(들) >은 개봉 당시 거의 조명받지 못했다. 2001년 서울 코아아트홀 단관으로 딱 2주 동안만 개봉한 데다 그나마 이창동 감독의 < 오아시스 >와 교차 상영(오아시스 사이의 사막을 건너는 쓸쓸한 낙타떼가 떠오르지 않는가!) 됐으니 물리적 한계도 있었지만 영화 자체가 대중의 관심을 붙잡기 어려운 탓도 컸다. 저예산의 흑백 디지털영화인데다 낯선 남녀 배우 두 명만이 등장하고 소재 또한 중년 남녀의 불륜이라면 한국영화가 활황인 지금이라 해도 흥행은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영화가 당시 보급되던 디지털카메라의 현장성과 기동성이라는 특성을 살려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었다는 점 또한 관객에게는 생경함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낙타(들)>이 대중 친화적이지 않은 영화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려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적극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매우 흥미로운 영화라고 말하려는 것이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유부남과 유부녀가 함께 바닷가로 가 밥을 먹고 섹스를 한 뒤 다음날 돌아온다.’ 쯤으로, 최대한 살을 덧붙인다 해도 ‘함께 섬에 가자고 했던 40대 유부남 만섭( 이대연 )과 30대 후반 유부녀 명희( 박명신 )가 시간 여유가 없어 바닷가인 소래 포구를 들렀다가 월곶에서 회와 술을 먹은 뒤 노래방에서 키스를 나누고 모텔로 들어가 정사를 나눈 뒤 다음날 아침밥을 먹고 돌아온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 < 낙타(들) >의 이야기는 그리 참신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들의 여정을 디테일하게 묘사했고 내면을 꼼꼼하게 담아냈으며 끝내 소통되지 않는 관계를 그려낸다는 점 또한 그닥 신선할 게 없다. 가까이는 홍상수 감독, 멀리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영화들과 인척 관계를 맺어줄 수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낙타(들)>을 보며 신선하다고, 흥미롭다고 느꼈던 점은 그 성긴 스토리 라인을 메우는 요소들이다. 그 첫 번째 요소란 과격한 디지털 방법론이다. 디지털영화의 본질을 ‘날 것’을 담아낼 수 있다는 점으로 파악한 박기용 감독은 영화적 공간과 일상적 공간을 넘나들며 촬영을 진행했다. 또 당시에는 기술적으로 미비해 필름에 비해 디지털카메라의 해상도가 크게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인 조명 대신 실제 공간의 조명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현실감을 담아내려 했다. 사운드 또한 실제 공간의 사운드를 있는 그대로 담아냄으로써 생생한 분위기는 더욱 증폭됐다. 이 같은 태도는 연기에 대한 전략으로도 이어졌다. 이 영화에는 큰 줄거리 외에는 대본 없었다. 그 사이를 메우는 것은 배우들의 몫이었다. 결국 배우들은 상당 기간 캐릭터로 살아가며 스스로 느끼고 생각한 바를 카메라 앞에서 표출했다. 즉 ‘연기 없는 연기’를 펼쳐내야 했다. 배우들의 대화가 극히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덕분에 < 낙타(들) >은 영화적 사건이 부재함에도 영화는 팽팽한 긴장감을 얻고 기묘한 생동감을 체득한다. 대구(對句)로 이뤄진 구조 또한 영화적 긴장과 흥분을 자아내는 요소다. 단순화하자면 영화의 전반부는 남녀의 만남에서부터 섹스까지가 벌어지는 첫날로, 이때 둘의 관계는 친밀해지며 따뜻해지고 현실적 관계를 벗어난 로맨스가 형성된다. 후반부에 해당하는 둘째 날 남녀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식어가고 로맨스에서 깨어나 현실로 추락한다. 첫날이 횟집에서 대화를 통해 가까워지고 노래방에서 입을 맞추며 뜨거워지며 모텔 방에서 섹스를 나누는 것으로 관계가 상승기류를 탄다면, 둘째 날은 어색하게 모텔 방에서 나와 약국에서 사무적인 분위기를 거친 뒤 매운탕 집에서 단절되는 하강 국면을 맞는다. 이 과정에는 쌍을 이루지만 대비 효과를 갖는 구체적인 장면들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1) 첫날 모텔 방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남자는 여자의 손을 꼭 붙잡지만 다음날 로비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멀리하려 애쓴다. 2) 첫날 횟집에서 약국과 관계된 대화(이들은 약사인 여자의 약국에 남자가 찾아오면서 처음 알게 된 모양이다)는 로맨스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는데 둘째 날 두 사람이 찾은 월곶의 약국은 자동차에서 흠집을 발견하면서 현실로 귀환하는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 3) 첫날 횟집에서 나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남자는 “그러고 보면 우린 참 비슷한 게 많아요.”라고 맥락 없는 이야기를 하며 로맨스를 애써 증폭시키지만 둘째 날 아침상에서 여자는 “차 수리비 절반은 제가 낼 게요”라며 현실 세계를 강화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느껴지는 두 장면 또한 대구를 이룬다. 이 영화의 흐름상 꼭짓점에 해당하는 건 섹스 뒤 허한 속을 달래기 위해 남녀가 비빔국수를 시켜먹는 장면이다. 비빔국수를 먹던 남녀는 둘 다 예전 신촌시장을 자주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때 남자는 “만약 그때 우리 만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여자는 대답하지 않고 국수만 삼키다가 이렇게 되묻는다. “학교 다닐 때 연애 많이 하셨어요?” 이 대화는 필연적으로 남녀 모두 기혼자임을 상기시키는 결말로 향한다. 두 사람이 침묵 속에서 기혼자라는 스스로의 현실을 곱씹는 이 순간, 모텔 방을 맴돌던 현실의 그림자가 희미해진 로맨스를 완전히 삼켜버린다. 이 장면의 대구를 이루는 다음날 장면은 더욱 비참하다. 아침밥을 다 먹은 남자가 여자에게 “나중에 다시 연락드려도 될까요?”하고 묻자 여자는 아무 말도 않고 고개를 숙인다. 아침밥을 먹고 나온 남녀는 그 뒤로 한마디의 말도 나누지 않고 한 번의 눈길도 마주하지 않은 채 자동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온다. < 낙타(들) >의 방점은 상승보다 하강에, 로맨스로 가는 길보다 현실로 돌아오는 길에 찍혀 있다. 극히 어둡지만 빛과의 대비가 강렬한 화면과 고요한 밤의 사운드 속에서 그나마 숨 쉬던 로맨스는 아침이 되면서 평면적이며 단층화된 화면과 신경질적인 사운드 속에서 증발된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카메라는 묵묵히 자동차에 탄 남녀의 뒷모습을 비춘다. 자동차의 깜빡이등 소리의 단속음이 머릿속을 하얗게 채우는 이 영화의 마지막 대목은 한국영화사상 가장 반(反)로맨틱한 장면일 것이다. 현대와 도시라는 사막을 아무 말 없이 건너는 이 낙타들의 모습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개봉하던 때 30대 초반이었던 나는 이제 40대 중반 아닌가. 한 장면 한 장면이 뼈를 찌르는 듯 아프다. 이 영화가 개봉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오아시스 없이 퍽퍽한 걸음을 하염없이 내딛어야 하는, 때문에 사랑이라는 이름의 신기루에 매달리기도 하는, 하지만 결국 모래만 벌컥벌컥 들이키게 되는 우리의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탓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