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야망
- 감독
- 최종수
- 제작년도
- 1987
- 출연
- 남성훈, 이덕화, 차화연, 김청, 이계인, 안명숙, 임예진, 노주현, 김도연, 윤여정, 남능미, 김영옥, 정혜선, 조형기
< 어미 >는 고 박철수 감독이 연출하고, 드라마 <청춘의 덫>과 <사랑이 뭐길래> <내 남자의 여자>의 김수현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다. 영화가 개봉한 1985년에는 원래 TV 드라마 연출자였던 박철수 감독보다 김수현 작가의 존재감이 더 컸을 것이다. 영화의 포스터와 비디오테이프에 새겨진 타이틀이 ‘김수현의 어미’였으니 말이다. 제목만 보면 그녀가 이전에 썼고, 그 이후로도 썼던 가족드라마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그런 오해를 지우고 싶었는지 <어미>의 포스터는 김수현의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문장을 새겨놓았다. “신들린 여류 金秀賢 그녀는 지금 살인을 모의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TV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이야기를 만든 김수현 작가의 필모그래피에서 ‘살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기록에 따르면, 이두용 감독의 1982년 작 < 욕망의 늪 >에서 남자에 의해 목숨을 위협받는 여성이 등장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기억에 따르면, 1990년에 방영된 드라마 <배반의 장미>에서 과거의 연인이었던 남자( 남성훈 )를 자동차로 들이받아 식물인간으로 만든 여자( 김자옥 )이 있었다. 하지만 < 어미 >는 그보다 더 독한 연쇄살인극이다. 영화의 영문제목이 70년대 할리우드의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를 연상시키는 ‘우먼 레퀴엠’(Woman Requiem)이라는 것만 봐도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두 모녀의 일상적인 아침이다. 라디오 진행자이자 저명한 작가인 홍 여사( 윤여정 )는 딸에게 먹일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딸과 엄마가 아침에 벌일법한 실랑이가 이어지고, 두 사람은 아침을 먹고 함께 집을 나선다. 그날은 홍 여사의 ‘스케쥴이 애매한 날’이었다. 딸 나미( 전혜성 )는 그런 날이면 엄마가 데이트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딸의 예상대로 홍 여사는 역시 홀아비인 최 교수( 신성일 )과 데이트를 한다. 두 사람은 결혼은 하지 않고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는 시간에 만족하는 듯 보인다. 결혼에 관한 대화 도중 홍 여사는 최 교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둘 다 약다고 해야 할까, 녹슬었다고 해야 할까.” 얼굴에 서운한 기색을 비친 홍 여사를 달래려는 듯 최 교수는 그녀를 다시 침대로 이끈다. 홍 여사는 이제 학교에서 나올 딸을 데리러 가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 “5분만 기다리게 해”라는 최 교수의 말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엄마가 잠시 늦는 사이. 교문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나미는 인신매매단에 납치된다. 1980년대는 각종 인신매매 사건과 그로 인한 괴담이 들끓었던 시기였다. 갑자기 봉고차가 나타나 길거리에 있는 여성들을 납치해서 윤락가에 팔아넘긴다는 이야기들이었는데, 당시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은 여성만이 아니었다. 남자들도 납치해 새우잡이 배에 팔아버린다는 소문이 넘쳐났다. 어쨌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인신매매’를 소재로 한 한국영화도 많이 제작됐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삽입한 장황한 자막에는 인신매매의 현실에 대한 분노와 사회정의 등을 이야기했지만, 사실상 에로영화의 소재로 인신매매를 끌어온 경우가 다반사였다. 또한, 인신매매범을 처단하는 주인공보다는 상처받은 여성의 슬픔이나, 여자를 찾아다닌 연인 혹은 남편과의 재회로 끝나는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김효천 감독이 연출한 < 인간시장 2- 불타는 욕망 >처럼 일본까지 가서 악을 처단하는 사례도 있었지만, < 어미 >와 같은 힘으로 복수를 감행하는 영화는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복수의 주인공이 엄마인 경우는 더더욱. 새끼를 잃은 어미는 새끼를 찾아 나선다. 그동안 나미는 사창가에 팔려가 차라리 도망치는 걸 포기하는 게 나아 보이는 생활을 이어간다. 경찰조차도 단서를 잡지 못하고 있던 그때, 한 남자가 홍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인신매매단과 연관된 인물이지만, 홍 여사로부터 돈을 얻기 위해 나미의 행방을 알려주려는 남자의 전화다. 홍 여사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사창가를 덮치지만, 때마침 도주를 시도한 나미는 다시 인신매매단에 붙잡혀 삭발을 당한다. 하지만 홍 여사는 포기하는 엄마가 아니다. 그녀는 사창가 포주를 돈으로 매수해 나미의 행방을 알아내고, 딸을 구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른다. 딸을 차에 태우고 가던 엄마는 말한다. "아무 힘도 안 빌리고 엄마가 너를 구해냈어. 엄마가 잘했지? 내가 잘했지?" 엄마는 아마도 자신이 직접 딸을 구했기 때문에, 딸이 겪는 상처를 세상에 속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뜻대로 되는 건 없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딸은 집에서 목을 매고 자살한다. 집 밖에 매달린 딸의 시체를 본 엄마는 이성을 던져버린다. 박철수 감독은 엄마의 복수를 과감한 속도로 밀어붙인다. 추적의 과정을 묘사하거나, 엄마의 슬픔을 강조하거나, 살인 대상 앞에서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는 식의 설명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엄마에게는 눈물을 흘릴 시간조차 없기 때문이다. 슬픔조차 사라진 엄마라는 캐릭터는 < 어미 >의 영화적인 개성 그 자체다. 만신창이가 된 딸을 구할 때도 그녀는 얼굴을 일그러뜨릴 뿐, 소리를 지르거나 울지 않는다. 자식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엄마는 바로 살인을 감행한다. 이어지는 복수에서 쇠사슬과 염산, 면도칼 등을 이용해 사람을 죽일 때도 홍 여사는 주저하는 법이 없다. 상대가 위협을 느낄 새도 없이, 쇠사슬을 목에 걸어 죽을힘을 다해 당기고, 서늘한 표정으로 염산을 뿌린다. 윤락녀로 위장해 마지막 복수를 시도하는 장면에서도 엄마는 남자에게 단 세 마디의 말을 한다. “남자는 참 쉽군요.” “딸이 있죠?” “많이 예뻐하죠?” 남자는 여자의 손길에 잔뜩 취한 얼굴로 딸을 매우 예뻐한다고 말한다. 바로 그때 엄마는 면도칼을 물속으로 집어넣고, 욕조에는 시뻘건 물이 차오르고 남자는 비명을 지른다. 관객의 예상하는 타이밍보다 한 발 더 빠른 엄마의 복수는 매우 차갑고 강렬하다. < 어미 >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마지막 엄마의 표정을 이야기한다. 복수를 끝낸 엄마가 담배를 피우는 얼굴 위로 ‘어미는 새끼를 지켜야 한다’는 최후 진술 문장이 나타나는 장면. 엄마의 복수를 따라온 영화가 마지막에 찍어놓은 뚜렷한 방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로 그 앞의 장면도 못지않게 강렬했다. 마지막 악당을 처단한 엄마가 목욕탕 밖으로 나온 순간, 영화는 몸에 수건을 두른 그녀의 몸을 보여준다. 바스트 샷 보다 더 멀고 넓은 앵글인데도 눈길이 가는 건, 배우 윤여정 의 거칠게 마른 팔이다. 힘줄이 드러나 있을 정도로 앙상한 팔이지만, 상당히 단단해 보이는 팔이었다. 그녀의 팔이 전하는 울림은 상당하다. 홍 여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녀의 팔은 복수를 모두 끝내고도 아직 분노를 이기지 못해 긴장을 당기고 있는 팔이다. 마지막 엄마의 표정이 <어미>라는 이야기의 마침표라면, 윤여정의 팔에 그어진 힘줄은 그녀의 슬픔과 고통이 육체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일 것이다. 새끼를 잃은 어미의 동물적인 기질이 그 순간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지난 회에 이어 여름특집은 계속된다. 여름 하면 역시 블록버스터다. 터지고 부서지고 그 사이에 맺어지는 화끈한 인연! 오늘 소개할 영화는 이미 유명한 영화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이야기가 됐던 영화다. 그래서 삐용삐용B무비에 어울릴지 고민했다. 그러나 이 코너에서 블록버스터 영화를 다룬다면, 다른 대안은 없다. 무조건 이 영화다. “우리도 < 터미네이터 > 같은 영화 하나 만들어 봅시다!” 역사 속에 존재하는 많은 사건, 사고들이 말 한마디로 시작되곤 한다. 이 영화의 시작은, 당시 < 외계에서 온 우뢰매 > < 슈퍼 홍길동 > 등으로 어린이들로 하여금 ‘Shut up! Take my money!’ 를 외치게 했던 김청기 감독의 야망에서 시작된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잔뼈가 굵었으나 한계를 느낀 김 감독은 이후 셀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를 섞는 작업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다. 그것을 바탕으로 완전한 실사영화를, 다시 말해 어른의 세계에 발을 들일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본격 성인대상의 액션-에로틱-SF로 기획된 이 영화는, 데뷔하자마자 청춘스타가 되었고 동시에 작품성도 알아보는 재능을 보여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올랐던 한 젊은 배우에게 김 감독이 건넨 한 마디로 의기투합해 제작이 성사되고 만다. < 바이오맨 >. 한국이 키운 가장 강한 男子! ‘8메가 디램이라니 그런 터무니 없는...! 일본과 미국같은 선진국가에도 4메가 디램이 없소’ 재벌기업 총수인 장만근( 윤일봉 )의 둘째 아들 장도일( 박중훈 )은 매일 나이트클럽을 들락거리며 술이나 먹고 여자와 노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집안의 골칫거리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기업에서 개발한 ‘초 고용량 메모리’인 8메가 D-RAM 칩의 설계도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도일은 자신에게 메모리의 정보를 묻던 친구가 생각나고, 그를 다그쳐 홍콩에 문제의 설계도가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홍콩으로 떠난, 갑자기 효자가 된 도일은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동남아 최대 조직의 보스인 ‘스리랑카의 별’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를 쫓는다. 형 영일( 남성훈 )이 붙여준 여자 요원 수지 한( 신미아 )과 함께 그들의 아지트에 쳐들어간 도일은 애석하게도 악당들의 총탄에 쓰러지고 만다. 수지 역시 그들에게 붙잡혀 옷이 벗겨진다. 소식을 들은 형 영일은 한달음에 홍콩으로 달려간다. 온몸의 기능이 망가졌으나, 정신력으로 뇌파만이 요동치는 도일을, 그는 현대 과학의 결정체인 기계 인간으로 살려놓기로 한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나 영일을 돕는 오석도( 신우철 )는 마약에 취한 채 윤락녀로 사는 수지를 찾아 병원에 입원시킨다. 상태가 호전 된 수지, 그리고 기계인간이 된 도일과 베트남 참전용사 오석도는 의기투합하여 ‘스리랑카의 별’을 찾아 라오스와 크메르(캄보디아를 크메르라고 말하고 있다.) 국경 어드메 쯤으로 출발한다. 그들은 무사히 ‘스리랑카의 별’을 해치우고 8메가 D-RAM 설계도를 찾아올 수 있을까? 바이오맨의 탄생 “시나리오는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100명이 나와야 할 장면에 10명 나오고, 총알이 비 오듯 쏟아져야 할 장면에 제작비 때문에 한 번 갈기면 30명씩 나가떨어지고... 아무리 각본이 좋아도 프로덕션이 못 받쳐주면 답이 없구나 하는 걸 느꼈죠.” < 바이오맨 >의 주연인 배우(이자 감독) 박중훈 이 언젠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그만큼 곡절이 많았던 영화였다. 성인용으로 기획된 만큼 영화에는 꽤 수위가 있는 표현들을 담고 있다. 여주인공 수지가 적에게 붙잡혀 강제로 탈의 되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그녀를 다시 찾았을 때는 마약에 찌든 윤락녀가 되어있다. 이뿐만 아니라 성적인, 그것도 권력에 의한 강제적인 뉘앙스가 담긴 묘사들이 꽤 있는 데다가 최후에는 아예 헐벗은 여성 전투원들이 대거 등장하기도 한다.( < 특명! 미녀군단 >도 그랬는데 왜 조명화 감독의 영화엔 항상 이런 분들이 등장하는가!) 그렇다고 이 영화를 ‘성인용’으로 부르기에도 조금 어렵다. 왜냐하면 성인이 봐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편집은 축약을 넘어서 거의 축지법 수준이고, 묘사는 적극을 넘어서 극단적이다. 악어와의 결투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화가 나는 장면이 있다면, 으아아아아!!! 하고 소리 지르는 장면을 익스트림 클로즈업한다.(끝도 없이 들어가는 줌 인!) 장도일은 강하다! 는 것을 보여주고 싶으면 갑자기 잘 가던 자동차가 진흙에 빠진다.(이건, 빠지는 과정도 보여주지 않는다. 첫 번째 컷이 잘 굴러가는 자동차, 두 번째 컷이 진흙탕에 바퀴가 빠져 헛도는 자동차. 이런 식이다.) 그리고 도일은 한 손으로 차를 번쩍 들고, 자기 발 위에 바퀴를 올려놓는다. “헉! 도일씨 발에 바퀴가!” 라며 수지가 놀래면, 도일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으응? 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런 부분에서의 클라이맥스는 역시 악어와의 일 대 일 맞장을 들 수 있다. 이 에피소드 역시 아무런 앞뒤가 없는데, 수지가 강가에서 세수를 하고 있으니 악어가 슬금슬금 나온다. 분명히 오석도는 기관총을 들고 있는데, 장도일은 칼을 들고 물로 뛰어든다. 그리고 악어와의 사투. 우리는 분명 악어의 아가리에 감겨있는 피아노 줄을 볼 수 있다. 넓은 아량으로 역시 위험하니까, 라고 생각하지만, 꼬리 쪽에 보이는 어색한 사람의 손을 보면 아... 하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건 마치 <에드우드>에서 보았던 벨라 루고시와 거대 문어 인형의 격투 장면을 보는 듯하다. 팀 버튼이 이 장면에 영화 만들기의 고단함과 퇴물 배우의 애잔함을 동시에 배어 나오게 했다면 < 바이오맨 >에서는 기관총을 든 오석도의 멍청함과 기계 인간 장도일의 뛰어난 방수성능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하여간 일일이 열거하기도 버겁다. 삐용삐용B무비를 시작한 이래, 첫 회를 장식했던 < 신사동제비 > 이후로 이렇게까지 막가는 영화는 처음이다. 그나마 이런 부류의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격투장면도 허탈할 뿐이다. 그나마 오석도 역을 맡은 중견 액션 배우 신우철 (전에 소개했던 < 김두한 형, 시라소니 형 >에서 시라소니 역의 그 배우다.)이 약간의 다찌마리를 소화하고 있지만 주연 박중훈 의 액션 연기가 너무 어색해서 시공간이 오그라들 정도다. 이 모든 과정이 지나고 라스트 장면이 다가오면, 관객은 심각한 멘붕에 빠지게 된다. 갑작스러운 수지의 배신으로 에너지 칩이 빠져버린 장도일은 결전에 앞서 오석도에게 비장한 부탁을 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생전 쓰지 않던 하오체를 써가면서 말이다. 도일 : 난 절대 포기하지 않소. 당신은 알고 있죠? 어서 에너지를 비상전달 장치로 연결해 주시오. 어서. 석도 : 그건 자폭하는 짓이야! 도일 : 나는 현대과학이 만들어낸 기계 인간일 뿐이오. 어서. 시간이 없소. 어서. 석도 : 미스터 장... 도일 : 딱딱(손가락을 튕긴다) 착잡한 표정의 오석도는 칼로 도일의 등을 따서 전기선을 뽑아 연결하기 시작한다. 이 비장한 장면에서 전기 공사 일을 하시는 우리 삼촌이 잠깐 떠올랐지만 어쨌든 슬픔이 밀려온다. 바이오맨의 이 숭고한 희생 앞에서, 토종 히어로의 탄생을 목도하는 기쁨에 복받치지 않을 자 그 누구란 말인가..! 결국 악당의 소굴을 초토화시킨 둘. 스리랑카의 별은 다급히 차에 올라타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를 뒤쫓기 시작하는 도일. 그리고 그는 자동차에 올라타고, 차와 함께 터져버린다. 에너지 비상전달 장치가 전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을, 나는 여러분께 보여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장도일! 끝내 인간이고 싶어 했던 마지막 절규와 함께 그는 몇 조각의 전자부품 조각만 남기고 사라져 갔다.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의 국경에서... 이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득하다. 김청기 감독과 조명화 감독은 성인을 타깃으로 영화를 기획, 제작했다. 하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고 방향을 급선회하여 전체관람가로 등급을 낮추고 어린이 회관, 무지개 극장 등을 통해 개봉했다고 한다. 당시 손에 손잡고 극장에 들어간 가족들이 영화가 끝나고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나오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렇게 이 영화를 ‘체험’한 관객이 KMDb 집계 2,445명. 정극배우를 대거 기용하고 박중훈 이라는 당대의 청춘스타까지 캐스팅해 < 터미네이터 >와 < 람보 >를 섞어 대한민국 슈퍼히어로를 만들려던 야심은 이렇게 안타깝게 실패했다. 김청기 감독은 이 영화의 실패로 막대한 금전적, 정신적 피해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몇 편의 <우뢰매> 시리즈와 애니메이션을 연출했지만 과거의 영광을 다시 누릴 수는 없었다. 특히 그의 마지막 작품인 < 의적 임꺽정 >은 관객 151명이라는 기록적인 숫자를 남기며 결정타를 날리고 말았다. (놀라지는 말자. 이 분야에서는 허리우드 극장 1일 개봉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남기남 감독의 < 천년환생 >이 있다. KMDb 집계 관객수 39명) 김청기 감독은 분명 어린이 영화계의 흥행사였다.(<우뢰매>의 오리지널리티나 작품들의 완성도는 둘째 치고) 내 또래 중 그가 만든 영화 한 편 안 보고 자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야심은 당연한 것이었을 테다. 한국에 토종 슈퍼 히어로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 아동용 감독이 아니라 누가 봐도 멋진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은 인정욕구, 그러나 인프라의 부족과 장르 이해의 부족으로 결국 좋지 않은 모양새로 나온 < 바이오맨 >은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 쓸쓸히 퇴장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좋다. 비록 완벽하진 않았지만 시도 속에서 분명히 무언가를 배웠을 것이고, 이를 토대로 우리가 지금 즐기는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이루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좀 더 솔직해지자면, 나는 그냥 이 상태로도 좋다. 모든 영화가 잘 만들어질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이 영화를 통해 힘들어했을 많은 사람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B무비는 나름의 방식으로만 전달할 수 있는 재미를 담고 있다. 어쩌면 이런 재미가, 영화가 담을 수 있는 가장 개성 있는 종류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른 어떤 예술이 ‘실패’와 ‘실수’에서 애정을 끌어낼 수 있는가. 그런 사랑스러움이 내가 그동안 삐용삐용B무비를 해나갈 수 있었던 힘 이었을 거다. 시작할 때는 꽤 오래 하겠구나 싶었지만, 지나고 보니 금방이었다. 내가 쓰는 삐용삐용B무비는 다음 회가 마지막이다. 마지막을 맞아 고민이 많았다. 그래도 이 쪽 분야에서 괜찮은 영화를 써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진짜 말도 안 되게 막 나가는 영화를 골라야 할 것도 같고. 그러나, 애초에 이런 생각 자체가 삐용삐용B무비 정신에 위반하는 것이다. 무게를 담으면 안 된다. 잘하려고 노력하면 안 된다. 되든 안 되든 일단 던지고, 그것이 낭비냐 밑거름이냐는 상관하지 않는다. 쿨내 진동하는 이런 영화들을 소개하려 했던 것이 본 코너였다. 잘 되었던 것일까? 일단 마지막 회에서 뵙겠다. 박중훈 신미아 신우철 감독: 조명화 , 김청기 각본: 조명화 개봉극장: 무지개, 바다, 다복(서울) 관람인원: 2,445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