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 감독
- 남태우
- 제작년도
- 2001
- 출연
- 이창우, 정치성, 남태우
이 영화의 제목만을 보고 든 생각은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기도를 하지 않나 싶은 것이었다. 종교가 원래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신이든 또는 다른 무엇이든 그 어떤 절대적 존재를 상정하고 기도를 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것이 종교의 형태를 취하든 아니든 그건 부차적인 것이고 본질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어떤 절대적 위기상황을 접하면 저절로 손이 모아지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으니……. 이 영화는 제목처럼 기도하는 남자에 대한 영화다. 기도를 업으로 사는 남자 태욱( 박혁권 분)은 개척교회 목사로 일하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개척을 해야 되는 교회니 당연히 형편이 넉넉하진 않을 것이고 이런 연유로 밤에는 대리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 정인( 류현경 분)으로부터 장모의 수술비가 급히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과연 기도가 수술비를 마련해 줄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이 두 사람의 선택에 대한 영화이자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는 영화다. 과연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고 악에서 구할 수 있는 그 무엇은 무엇일까? < 기도하는 남자 >( 강동헌 , 2018)는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가 장모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인가를 따라가는 영화지만 이 설정은 그다지 특수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을 수 있기에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이점에서 제목과 달리 전혀 종교영화도 아니고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고단한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인 우리 모두의 얘기라는 점에서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 영화다. 지금부터는 이들의 선택이 내용이나 영상적으로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졌는가가 이 영화가 처한 운명이 아닐까 싶다. 이들의 선택은 아쉽게도 큰 설득력을 가지기 어려워 보인다. 정도와 인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자신이 김당하지 못할 어려움을 한번쯤은 겪으며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지만 해법이나 거기에 이르는 과정의 개연성 등에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3억 5천만 원이라는 적은 제작비의 한계도 분명히 존재했겠지만 영화속에서 두 주인공과 장모가 선택한 길은 너무 극단적이기도 하고 행동에 대한 그 인물 자체의 내적동력이 약해 보인다. 마치 점프 컷을 보듯 인물들의 행동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에서 용감한 시도에 비해 아쉬운 전개와 결말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괜찮은 재료로 너무 자극적인 그러나 평범한 요리를 만든 셈이다. 인물들도 급하고 기획도 급해 영화가 정해진 결말로 달려가는 느낌 이상을 받진 못했으니 말이다. 아시다시피 두 주연배우 박혁권과 류현경은 매우 다양한 작품에서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인 실력파 배우들이고 이 영화에서도 그런 점에서 모자라지 않은 연기를 선보인다. 이 점은 이 영화가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이룩한 성취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캐릭터가 과해서 그런지 인물이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인상을 받은 것도 나로서는 숨길 수 없는 감정이다. 이 점 또한 성취이자 숙제로 남았다. 데뷔작을 연출한 강동헌 감독은 많은 고뇌의 시간을 보낸 흔적을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고뇌가 영화적으로 잘 표현되었는가라는 점에서는 조금 더 힘을 냈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잘 녹아냈다기보다는 이야기를 빨리 던지고 수습하는데 급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과한 전개에 비해 영화의 만듦새나 연기, 연출 등이 모자라진 않았다는 점에서는 이 영화가 가지는 가치나 매력은 적지 않다. 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제시라는 면에서는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좋은 기획과 설정이 과한 전개를 만나 풍파를 겪다 아이러니하게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기도하는 남자>는 저예산영화이자 독립영화다. 제작지원과 개봉지원을 모두 받은 나름 축복받은 독립영화인데 현재의 한국영화시장에서는 예견된 참사처럼 너무나 적은 개봉관을 배정받았고 당연한 귀결로 매우 저조한 스코어를 기록하였다. 개봉시기를 보면 팬데믹의 유탄을 제일 먼저 맞은 셈이니 이 또한 운이 나빴다. 제작진의 간절한 기도도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날카로운 칼날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거기에 코로나라는 망치까지 날아들었으니 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겠지만 엎친 데 덮친 격이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더 기다린다고 더 좋은 개봉여건이 될 거라는 기대를 가지기 어려운 현실 또한 엄연한 존재했을 것이다. 이것은 한국영화의 앞날을 생각하자면 <기도하는 남자>의 불행이 아니라 관객의 불행이자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불행이다. 어렵게 만들어도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누가 이런 시도를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불안이 엄습해온다. 영화는 만들어질 때 영화가 아니라 보여질 때 영화라는 말이 절실히 와 닫는 지금. 예견된 고난을 피하지 않고 독립영화의 정신으로 전진했던 <기도하는 남자>의 시도에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처음 이 영화를 접하게 되었을 때 영화의 내용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왜 이영화가 나오게 되었는가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영화가 최근만 해도 < 택시운전사 >( 장훈 , 2017)가 나왔고 이전에도 이미 여러 형태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등 많은 작품이 나온 데다 역사적으로도 민주화운동으로 명명된 지가 수십 년이 지났는데 과연 어떤 새로운 시선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극영화도 아닌 다큐멘터리라면 극적 장치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도 많지 않고 광주민주화운동을 전혀 경험하거나 가까이 접할 수 있었던 세대도 아닌 젊은 감독의 작품이라니…….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이 의문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게 된 첫 번째 계기이자 믿음은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작이라는 사실이었다. 영화제의 권위에 기대겠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이 영화제가 지금까지 보여준 영화선택의 숨결과 강고한 시선을 믿었고 심사위원뿐 아니라 수많은 영화제 관계자와 또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지지라는 것에서 나름의 객관성을 부여 받은 것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극우논객으로 잘 알려진 지만원씨가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 특수군이 적극 개입해 활동했다는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1988년 광주청문회부터 이미 진실이 상당부분 밝혀졌고 5.18특별법도 제정되었고 쿠데타의 장본인인 전두환이 20여 년 전 사형선고까지 받은 마당에 새삼스레 저런 억지 주장을 하는 근거가 뭔지 참으로 황당한 궁금증이 생겨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법원이 지만원씨에게 2억 원이 넘는 명예훼손 손해배상금을 피해자들에 지급하라고 판결이 나 이 부분은 완전히 허위사실임이 입증되었지만 여전히 유튜브 등에 이런 가짜뉴스가 넘치고 있고 이를 믿는 이들이 또 다시 전파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이러한 허위사실로 유포자가 손해배상금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에서 악의적 역사팔이가 얼마나 해로운가는 역으로 증명되었지만 유수의 대기업을 비롯해 국가정보원까지 이런 매체에 광고가 실리고 있으니 과연 이 영화 < 김군 >( 강상우 , 2018)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 지가 더 궁금해 졌다. 또한 지만원씨가 주장한 바로 그 김군이 북한 특수군이 아니라는 사실은 취재 초기 이미 강상우 감독도 알았다고 하니 그는 그 이후 김군이라는 제명으로 이 영화를 어떻게 전개했을 지에 대한 의문도 깊어졌다. 영화의 내용은 극히 간단하다. 포스터에 보이는 바로 그 신원미상의 인물인 김군이 누구인지 그는 왜 거기에 있었는지 등을 알아보겠다는 젊은 감독의 패기가 무려 4년이나 이어지면서 이 영화가 완성되었다. 그 과정에서 지만원씨의 광주민주화운동 북한 특수군 개입설이라는 대립항이 나오면서 영화가 좀 더 긴장감을 가지게 된 것도 웃픈 현실이지만 영화는 이를 증명하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는 면에서 이 영화가 가진 장점이 십분 발휘되었다. 아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많은 이들이 왜 시민군이 되어야 했던가를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이렇게 절실하게 담아낸다는 것은 어떤 영화적 재능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자 범인들이 만들어가는 역사라는 그 평범한 진리를 체득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인터뷰이이자 주인공이자 또 다른 김군이었던 이들은 계엄철폐나 독재타도와 같은 거대 담론을 주장한 것도 아니고 군부의 정치가 한국사회에 끼쳐온 폐해에 대해 사회과학적 인식으로 무장한 지식인들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했던 이들이 자신의 이웃과 시민들이 군부에 무참히 학살당하는 모습을 보고 인간 본연의 의로움과 정의로움으로 떨쳐 일어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을 <김군>은 보여주고 있다. 감독 역시 김군이 누구인가를 꼭 밝혀내겠다기보다는 영화를 만들어가면서 그 시대를 살아간 김군이라는 보편적 시민에 대해 다가간 듯하다. 이것이 영화적 성취로 이어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과 빵과 김밥을 나누어주고 먹던 풍경이나 그 살벌한 상황에서도 그저 같이 다니고 서로를 위하던 모습이 너무 좋았다는 어느 시민군의 말처럼 인간이라면 응당 느껴야할 자연스런 감정과 선한 정서가 그 시대 김군으로 상징되는 광주정신이었을 것이라는 확신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난 역사적 사실이지만 지금 우리의 젊은이들에게도 <김군>이 와 닿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적어도 오늘 대한민국에서 완전히 상반된 주장과 철학을 가진 사람들도 평화롭게 시위를 벌일 수 있을 정도의 성숙한 민주주의의 토양이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광주민주화운동에 깊은 고마움을 표시해야한다. 다시 평범함을 빌어 말하자면 앞서 언급한 시민군이 당시 공포보다는 행복감을 느꼈고 시위에 참여한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지만 그 이후 자신이 원하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고 취직도 되지 않았다는 바로 그 점에서 <김군>은 우리에게 뭉클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아울러 거창한 장치나 높은 제작비가 아니라 단순하고 집요하고 깊이있는 작가정신이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을 준다는 극히 당연한 그러나 지금의 영화제작환경에서는 그렇지 않아 보이는 진실을 영화 <김군>은 말하고 있다.
영화 <비 오는 날의 산책>은 산책이라고 하기엔 다소 무안한 상황을 그리고 있고 채 산책이라고 느끼기엔 너무 짧은 소품 같은 애니메이션 영화다. 영화는 어릴 적 누구나 느껴봤을 법한 상황에서 시작한다. 비는 내리고 우산은 살이 부러지기 일보 직전이고 막상 나가자니 친구들이 놀릴 것 같고…….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주인공 보영이는 하교를 하게 된다. 그러나 삐져나온 얄미운 우산살은 결국 부러지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떠올랐는데 같은 상황에서 어릴 적 나의 모습은 어떠했던가를 생각해보면 추억이라는 그림이 그려진다. 늘 만만디였던 나는 비가 오면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비는 그칠 것이고 그다음에 가면 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늘 그렇게 하곤 했는데 사실은 우산을 들고 오는 다른 친구들의 어머니와는 달리 우리 어머니는 비 오는 날에 학교에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시길 살다 보면 여러 어려움에 닥치기 마련인데 그때마다 엄마가 해결해 줄 수 없으니 비가 오면 비를 피해서 집으로 오거나 비가 그치면 오라고 하셨다. 섭섭할 만도 한데 필자는 묘하게도 비를 맞고 온 적이 거의 없다. 도저히 그치지 않을 비라면 맞고도 오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비가 그치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친구들의 우산을 같이 쓰고 올 정도의 베짱이 없기도 했지만, 이 상황은 결국 내가 해결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동일한 상황에서 주인공 보영이는 어머니도 아니고 자기 스스로도 아닌 제삼자에 의해 이 상황을 정말 판타지 하게 벗어나게 된다. 바로 정체불명의 개구리가 그 제삼자였는데 이 개구리와 함께 춤을 추다 보니 하늘을 솟아오르게 되고 마치 하늘을 헤엄치듯 날면서 하교하게 된다. 우산살이 부러진 채 우왕좌왕하던 자신을 놀리던 남학생을 신나게 윽박지르며 말이다. 수묵화기법으로 그려진 <비 오는 날의 산책>은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익숙한 여름날의 교정을 여중생 보영이를 통해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여중생 특유의 발랄한 감수성과 개구리와의 교우라는 판타지한 상황을 여성적 터치로 그려낸 이 작품이 삼십 대 남성 감독의 연출작이라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그만큼 보편적 정서에 호소하고 있는 작품이라 중년남성인 필자도 공감이 가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과 자연, 동물 모두가 저마다의 모양새를 뽐내며 서로 영향을 주고 공존하는 모습을 그린다는 면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세계를 한국적 서정으로 옮긴 느낌도 든다. 동양적 정서는 물론이거니와 한국적 정서와 미학이 더 깊이 묻어 있기에 꽤 오래전 작품임에도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여름날의 수업, 빗방울, 친구, 어머니 그 모든 것을 한 번에 되살려 주는 이 작품은 여전히 비 온 뒤 청량한 하늘처럼 짧고 신선하게 내 마음의 위무가 되는 작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제작될 수 있는 여건이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상황이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충분치 않다는 것에서 아쉬움이 크다. 누구에게는 추억이 되고 누구에게는 꿈이 될 수 있는 이런 애니메이션을 보다 자주 접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여전히 힘든 여건에서 고군분투하는 한국 독립애니메이션계에 작으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 다행히도 온라인에서 이 작품을 볼 수가 있어 아래 링크를 첨부하니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감상해 보시기 바란다. http://youefo.com/film/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