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준의 가야금연주]김수희 - 남행열차
- 제작년도
- 2010
이만희 감독의 사라진 영화 < 만추 >의 흔적이라도 느껴보겠다는 심정이었다. < 육체의 약속 >은 김기영 감독의 작품이라는 사실보다 <만추>의 리메이크작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 궁금했던 영화다. 그러나 <육체의 약속>의 첫 장면을 대면하자마자, 나는 직감했다. 이 영화는 다른 무엇과의 영향관계 안에서가 아니라, 이미 그 자체의 기이한 숨결로 펄떡이는 세계라는 것을. 무언가 압도적이고 무서운 기운이 돌진해왔다. 영화가 시작되면,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여인이 남자와 어린 여자아이의 배웅을 받으며 기차역에 들어선다. 홀로 기차에 오른 여인의 내레이션이 시작된다. 좀 길지만 인용해보려 한다. “지독히 특징 없는 남자가 어머니 없는 딸을 데리고 역까지 전송을 해준다. 그러나 이 남자를 이해하는 세상에 대한 능숙한 보는 눈을 가졌던가. 평범에 안처하는 인생관에 대통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금년도 나타나지 않는 그 사람을 만나러 남행열차를 타야 했다. 약속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세상은 자기가 바라는 남자는 멀어져가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 않는 남자는 눈앞에 귀찮게 서성거릴까. 여자란 자기 배우자를 찾는 거로 인생이 정해진다. 정해진 남자에게 육체를 제공하고 동화되어서 그 사람의 자손을 이어주는 일로 여자의 전부가 끝나니까 말이다. 그러나 젊은 여자에게 남자의 선택의 자유가 있었던가. 또는 그런 긴 안목이 구비되어 있단 말인가. 어느 시대건 여자는 장님처럼 눈을 못 보고 남자를 골라왔다.” 이 긴 내레이션은 이상하다. 자기비하와 체념에도 불구하고 끝내 욕망을 감추지 못하는 내용과 그걸 전달하는 냉소적이면서도 공격적이고 칼처럼 날카로운 목소리의 기운, 거기 화면을 찢을 듯 틈입하는 불길한 기차의 정적소리와 화면을 부유하는 여자의 무심한 표정. 어딘지 아귀가 맞지 않는 영화적 요소들이 정체를 감춘 채 서로를 자극하며 화면을 팽창시키고 있다. 그리고 마치 귀신에게 홀리듯이 기차의 시간은 여자의 과거로 진입하고 있다.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여수행 기차의 현재가 그녀의 얼룩진 과거를 보여주는 플래시백으로 건너뛸 때마다, 거기에는 그녀를 거쳐 간 폭력적인 남자들이 등장한다. 남자들은 자신의 정체를 속이고 ‘여자의 역할은 자손을 번식시키는 데 있다’는 노골적이고 상투적이어서 실소가 나올 지경인 말로 그녀를 유혹한다. 그런데 괴이한 건 이 남자들의 거짓됨이 아니라, 이에 대한 여자의 반응이다. 그녀는 매번 배신당하면서도 그녀의 몸을 탐하는 남자들의 접근에 넘어가고 그 때 그녀의 표정과 제스처는 설명하기 어려운 모호함으로 일렁인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상대 남자를 욕망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얼굴에서는 그녀 자신이 제어하지 못하는 미세한 욕망의 결들이 흘러나온다. 그 결들은 망설임과 수치심과 거부감과 두려움과 쾌감 사이에 있다. 신경질적이고 광기 어린 빠른 선율과 리듬의 음악이 섹스 신을 추동하며, 그 장면들의 성격을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섹스 신들은 관능적이거나 폭력적이기 전에, 음습하고 무섭다. 여인의 기구한 운명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라, 화면을 채우는 영화적 요소들의 불협화음 때문에 그렇다. < 육체의 약속 >에서만큼 보는 이의 심신을 소진시키는 무서운 섹스 신을 본 기억이 적어도 내게는 없다. 모든 플래시백이 지나간 뒤, 그녀는 마지막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사람’을 기다리며 벤치에 앉아 있다. “몇 해째 여기에 찾아옵니다. 당신 덕분에 피해망상도 사라져 새 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행복을 쥐고 늘어질 겁니다. 지금 어디 계세요. 자도 깨도 당신 걱정뿐입니다.” 지금 그녀에게는 새 출발을 함께할 “지독히 특징 없는” 남자와 그의 어린 딸이 있다. 무엇보다 그녀는 그가 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감옥으로 복귀하던 날, 그 남자가 사형대에서 사라질 운명(실상 남자는 누구도 죽이지 않았지만 체포되었고 이후 그는 영화에서 사라진다)이라는 사실을 간수에게 들었다. 말하자면 그녀는 안정된 가정을 뒤로하고 여수의 벤치에서, 즉 자신의 과거에서 알 수 없고 올 리 없는 무언가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정녕 알고 있을까. 기차를 타고 홀로 돌아가는 여인의 얼굴은 공허하다. 내게 < 육체의 약속 >은 영화적으로 흘러넘치는 플래시백의 육체성이 결국 여인의 텅 빈 얼굴로 돌아오고 마는 허무하고 비관적이며 섬뜩하고 마침내 절실하게 고독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