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낮 사이
- 감독
- 나나리 존슨
- 제작년도
- 1960
- 출연
- 에바 가드너, 더크 보가드, 조셉 코튼
사진: “ 졸업 ”, tvN 올 한 해 TV와 OTT를 통해 공개된 시리즈들을 필자의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관심을 끌어모은 화제작부터, 스쳐 지나갔지만 돌이켜 볼 만한 문제작들까지 정리합니다. 이 글을 구상할 즈음 ‘비상계엄’이 도둑처럼 선포됐다. 용감하게 국회로 달려간 많은 시민들과 사명감을 가지고 사투를 벌인 공직자들 덕분에 비상계엄은 해제됐지만, 한국사회의 시간은 ‘12.3 내란 사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이 모든 상황이 차라리 ‘드라마’였으면 하고 생각하다가 지난 여름에 본 < 돌풍 >(김용완, 2024)이 떠올랐다. 한국 정치사를 압축한 것 같은 <돌풍>이 재현한 한국사회는 ‘대의 민주주의’ 대신 음모와 폭로가 난무하는 세계였다. 당시 나는 이 드라마의 위험한 상상을 비판했었다. 그러나 그 위험한 상상은 몇 달 뒤 현실이 됐다. 참으로 유해한 것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비상계엄이 아니더라도 이 세계는 이미 비상시국이다. 먼 곳에서 전쟁 소식이 끊이지 않았고, 기후위기가 코앞까지 도달했음을 절감했고, 경기침체로 인해 온갖 사회 지수는 지속적으로 나빠졌다. 사회적 갈등뿐 아니라 여성, 장애인, 이민자, 퀴어 등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도 지긋지긋하게 반복됐다. 마치 지구 종말 200일을 앞둔 < 종말의 바보 >(김진민, 2024) 풍경처럼. 이런 유해한 세상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자극적인 맛, 즉 도파민을 상승시킬 무언가를 찾고 또 찾았다. 드라마 세계도 마찬가지다. 사적 복수극, 고자극 장르물, 이번 생은 망했으니 과거로 돌아가서라도 욕망을 실현하는 ‘회·빙·환(회귀·빙의·환생)’ 서사가 줄을 이었다. 남편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이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역사를 바로 세우며 남편에게 복수하는 <내 남편과 결혼해줘>(박원국, 한진선, 2024)가 주목을 받았고, < 살인자ㅇ난감 >(이창희, 2024), < 더 에이트 쇼 >(한재림, 2023), <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모완일, 2024) 등 사적 복수물이나 고자극 장르물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이런 드라마들이 예전처럼 큰 화제를 모으지는 못했다.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생산되던 고자극 드라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니 피로감을 느끼게 된 탓이다. <돌풍>, <종말의 바보> (사진: 유튜브 넷플릭스 코리아) 뜻밖에도(!) 올해 가장 인기가 높았던 드라마는 <눈물의 여왕>(장영우, 김희원, 2024)이다. 이 드라마는 ‘너무 늦게 도착한 과거’와 같은 드라마이다. ‘퀸즈’로 대표되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재벌가(가부장제)를 선하고 무해한 집단으로 재현하며 무너진 퀸즈 일가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여기에 불치병과 기억상실증 등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가 빠지지 않았다. 위기를 통해 부부 관계와 가족애를 회복한다는 방향성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혈연·혼인 중심 가족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주목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생각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일상의 피로감이 높아질수록 단순한 맛을 찾기 마련이다. 맵거나 달거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자극 드라마에 피로감을 느낀 우리는 순하고 달달한 드라마를 도피처 삼아 그 세계에 몰입하여 울고 웃었다. <눈물의 여왕>은 그런 우리의 필요를 잘 반영했기에 진부한 설정에도 선택을 받은 것이다. 시청률은 낮았지만 마니아층이 생길 정도로 인기를 모았던 <선재 업고 튀어>(윤종호, 김태엽, 2024)나 시원하고 무해한 제주도의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웰컴 투 삼달리>(차영훈, 김형준, 2023~2024) 등도 비슷한 이유로 관심을 모았다. 사진: “ 눈물의 여왕 ”, “ 선재 업고 튀어 ”, tvN “생각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 곁에는 서로를 구원함으로써(쌍방구원) 위로를 전하며 치유적 기능을 한 드라마들도 있었다. 얼마 전까지 ‘먼치킨’ 주인공이 위험으로부터 인간-사회를 구하거나 악을 제대로 응징하여 ‘사이다맛‘ 정의를 구현하는 히어로물이 인기를 모았으나 그 히어로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히어로’가 사라진 자리에 ‘힐러(healer)’가 찾아왔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조현탁, 2024)은 우울증, 불면증, 비만이라는 ‘현대인의 질병’에 걸려 초능력을 상실한 가족 이야기다. 이들이 초능력을 상실한 이유는 화재 참사로 인한 상실감과 죄책감 때문이었다. 어디 드라마 속 인물들뿐일까?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는 한국사회 속 우리들 또한 같은 이유로 현대인의 질병에 걸린 게 아닐까? 드라마는 상처로 인해 무기력에 빠졌던 인물들이 “히어로는 아니지만” 서로의 행복을 바라며 구원하고자 애쓰는 것에서 희망은 시작된다는 걸 보여주었다. < Mr. 플랑크톤 >(홍종찬, 2024)은 뿌리를 모른 채 딛고 설 땅을 상실한 채 부유하는 “모든 물고기들의 밥”이자 “먹이사슬의 맨 밑바닥, 바닷속 가장 미천한 존재”인 플랑크톤과 같은 인물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구원했다. 세상은 유해한 것들로 가득하지만, 인간은 끝까지 ‘선함’의 본능을 잃지 않고 서로를 구원하고야 만다는 단단한 신뢰를 이런 드라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Mr. 플랑크톤> (사진: “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 JTBC / 유튜브 넷플릭스 코리아) 드라마가 단지 도피처, 위로와 치유적 경험만 제공한 것은 아니다. 장르를 망라하여 저마다의 방식으로 ‘오늘’을 구현함과 동시에 ‘내일’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올해 드라마가 담은 오늘과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우선 다양한 가족의 형태와 가능성을 보여준 드라마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눈물의 여왕>이 절절하게 보여주었듯 기성사회와 미디어는 여전히 가부장적이며 혈연·혼인 중심 가족을 대표적 가족 모델로 반복재생 하지만, 한국사회의 전통 가족 모델은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재구성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사회적 변화는 전통 가족의 모순성을 보여주거나 가족의 경계를 허물어 확장하는 지향성을 가진 드라마들을 통해 구현됐다. <정숙한 세일즈>(조웅, 김미진, 2024)나 <가족X멜로>(김다예, 2024) 등에서는 가부장 중심 가족의 해체를 보여주었고, <우리, 집>(이동현, 위득규, 2024)이나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송연화, 2024)를 통해서는 가족이라는 관계가 신뢰와 애정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의심과 오해로 조각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가족이라서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우리는 이 드라마들을 통해 씁쓸하고 서늘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낭만적 사랑과 결혼이 당연하지도 않고 심지어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드라마들도 있었다. < 트렁크 >(김규태, 2024)는 ‘계약결혼’이라는 파격적 설정을 통해 가족과 부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결혼이나 혈연을 넘어선 가족들도 등장했다. <조립식 가족>(김승호, 2024)과 <손해 보기 싫어서>(김정식, 2024)와 <Mr. 플랑크톤>은 ‘정상’ 세계에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인간들이 혈연·혼인이라는 관습과 제도를 넘어 서로의 ‘가족’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가족이 아니라면 무엇이 가족일 수 있을까? 가족의 재구성의 문제는 관계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생활고 때문에 관계마저 소원해진 젊은 부부가 돈을 벌기 위해 불륜 커플을 협박한다는 신박한 설정의 < LTNS >(전고운, 임대형, 2023)는 ‘불륜’이라는 키워드로 (부부) 관계의 복잡성을 상기시켰다. 부부, 가족, 인간관계가 복잡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이토록 친밀’한데 ‘배신자’ 일수도 있는 법이다. 드라마는 이런 인간의 복잡성을 흔들리거나, 해체되거나, 재해석되고, 재구성되는 가족을 통해 다채롭게 보여주었다. (상) <우리, 집>,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사진: “ 우리, 집 ”, “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 MBC) (하) <트렁크>, <LTNS> (사진: 유튜브 넷플릭스 코리아 / 유튜브 CJ ENM 글로벌)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하게 늘어난 여성서사가 올해도 다양한 얼굴로 우리와 만났다. 여성서사는 주인공 혹은 중심인물 다수가 ‘여성’인 경우를 의미하지만, 그 여성‘서사’에 무엇을 담았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올해도 드라마들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얼굴을 응시했고, 용감하고, 슬기롭고, 끈질기게 사회적 관습에 저항하는 여성들을 통해 새로운 인간-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이형민, 최선민, 2024)는 뜻밖의 사건으로 낮에는 ‘아줌마’로 호명되는 50대 여성으로, 밤에는 ‘취준생’ 20대 여성인 본래 몸으로 살게 된 이미진/임순을 통해 사회적 존재감을 잃어버린 여성들이 존재감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졸업>(안판석, 2024)에서는 대치동 학원가 1타 강사, 서혜진( 정려원 )이 퍽퍽하고 고단한 30대 여성 직장인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밤에 피는 꽃>(장태유, 최정인, 이창우, 2024)은 사별한 여성에게 자결하여 열녀가 될 것을 강요하는 사회적 관습을 거부하고 의적으로 활동한 조여화( 이하늬 )의 액션 활극을 시원하게 보여주었다. <정숙한 세일즈>는 1992년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생계를 위해 성인용품 방문 판매를 하게 된 여성들을 통해 여성들이 ‘정숙’하기를 강요하는 사회에 도발적 질문을 던졌다. 또한 무능하고 유해한 가부장들과 능동적이고 협력적인 여성들의 연대를 대비시켰다. 1992년이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낡은 서사로 여겨질 뻔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지향은 오늘날의 여성들과 공명하기에 충분했다. <굿파트너>(김가람, 2024)는 ‘이혼 전문 변호사’ 차은경( 장나라 )을 중심으로 가족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하며 여성들의 연대와 성장 서사를 보여주었다. 그런가 하면 <손해 보기 싫어서>는 ‘위탁모’로 봉사한 어머니를 둔 손해영( 신민아 )과 ‘위탁아동’으로 연결된 또 다른 ‘딸들’의 자매애를 보여주었다. <피라미드 게임>(박소연, 2024)은 한 달에 한 번씩 비밀 투표로 왕따를 정하는 ‘백연여고’ 2학년 5반을 통해 계급화된 사회의 문제를 환기하고 여성 청소년들이 연대하여 힘의 세계관에 저항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 정년이 >(정지인, 2024)는 19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 중후반까지 유행한 ‘여성국극’을 재현하여 남성중심 사회 속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여성들과 여성들의 관계를 보여주었다. ‘여성국극’은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의 사회’라는 대안적 상상을 해보게 하는 담대한 시도였다. 여성서사를 표방하지 않더라도 드라마 속 여성들은 꾸준하게 진화하고 있다. 드라마 속 여성서사는 장르도, 시대도, 인물들이 처한 상황도 다르지만 지금-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 그에 대항하는 페미니즘적 지향성과 상상력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중요한 흐름이다. 사진: “ 밤에 피는 꽃 ”, MBC / “ 굿파트너 ”, SBS 드라마에서 여성서사의 공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단지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아졌다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퀴어서사의 공간도 함께 늘어나게 됨을 의미한다. <피라미드 게임>, <웨딩 임파서블>(권영일, 2024), <엄마친구아들>(유제원, 2024)과 같이 퀴어 캐릭터가 주요하게 등장하는 ‘퀴어프렌들리’ 드라마들이 있었고, <정년이>, < 대도시의 사랑법 >(허진호, 홍지영, 손태겸, 김세인, 2024), <옥씨부인전>(진혁, 2024) 등 퀴어가 중심이 된 드라마도 제작됐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소설가 박상영의 소설을 영화와 드라마로 각색하여 호응을 얻었는데 게이 남성 고영( 남윤수 )을 통해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동성애’도 당연하고 보편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옥씨부인전>은 노비에서 양반으로 신분이 바뀐 여성, 구덕( 임지연 )을 중심으로 여성, 노비, 성소수자 등 ‘소수자’ 문제를 전면에 등장시켰다. <정년이>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퀴어서사에 관해 고민하게 했다. 동명의 웹툰 원작에서 정년이와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는 인물인 ‘부용’이 드라마에는 삭제됐다는 면에서 그렇다. 부용은 페미니즘과 퀴어서사를 담당한 중요한 캐릭터였기에 타협적이고도 퇴행적 각색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한편 <대도시의 사랑법>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보수 단체의 거센 항의에 예고편을 삭제하기도 했다. 이 두 드라마를 둘러싼 논란은 드라마가 처한 모순적 상황을 절감하게 했다. 이화여대 퇴임교수 김훈순의 진단처럼 드라마는 “우리의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과정에 적극 개입하는 문화적 생산물”임과 동시에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가치를 담아내는 문화적 공론장”이자 “시대 흐름 속에서 충돌하는 가치들을 담아내는 역동적인 텍스트”이다. 그렇기에 순응하거나 퇴행하는 면도 있지만, 관습의 저항을 피하기는 어려운 순간도 있다. <정년이>나 <대도시의 사랑법>은 충돌하는 가치들을 ‘뚫고’ 나아가는 서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다. 사진: “ 정년이 ”, tvN / “ 옥씨부인전 ”, JTBC 한 해 동안 우리가 주목했던 드라마들의 흐름을 톺아봤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유해한 현실의 도피처로서 무해한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다가 위로를 받았다. <옥씨부인전>에서 구덕의 말처럼 드라마가 “하루하루 수고한 사람들한테 행복을” 주고 “시름을 잊게” 한 것이다. 또한 드라마가 구현한 작은 세계를 통해 우리의 ‘오늘’을 돌아볼 수 있었다. 드라마라는 거울은 우리의 ‘오늘’뿐 아니라 ‘내일’로 나아갈 길을 발견케 했다. 드라마가 비춘 현실은 자주 절망적이었지만, 관습을 깨고, 더 나은 세계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꾸준하게 성장하는 여성서사와 꿋꿋하게 등장하는 퀴어서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다양하게 넓어지고 있다는 희망적 생각을 해보게 됐다. <정숙한 세일즈>에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무대처럼 어떤 시도는 “시대를 앞서간 느낌” 때문에 저항에 부딪히지만 곧 그 시차를 극복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가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은 질문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인간다움’과 ‘가족’으로 상상된 사회공동체다(그렇기에 가족의 범위가 확장되는 걸 보여준 드라마들이 반갑다). 올해 본 드라마 중 가장 좋아한 드라마가 무엇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졸업>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졸업>은 한국사회의 욕망이 집약된 ‘대치동 학원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정답’이 아닌 ‘지문 바깥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역량과 ‘인간다움’에 관해 이야기한다. 드라마는 자신의 삶과 연인을 지극히 사랑하는 성실하고 윤리적인 직업인 혜진을 통해 ‘인간답게 사는’ 길을 보여주었다. 혜진은 수업 시간에 에리히 프롬의 글을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다.” 이것은 나와 우리, 그리고 ‘유해한’ 세상을 향한 조언이기도 하지만, 드라마의 소명과도 같다. 사진: “ 졸업 ”, tvN 오수경(드라마평론가) l 인간과 사회에 관심이 많아 문학을 전공했고, 신앙인으로 살고 있으며, 드라마를 들여다본다. 여러 매체에 칼럼 기고. 『을들의 당나귀 귀 』(2019) 공동 집필, 『드라마의 말들 』(2022) 집필.
한국영화의 못다 한 이야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조금의 시차는 있지만, 카메라가 남긴 이미지와 함께 그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영화 속 공간적 배경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소리 없는 배역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곤 한다. 그 어떤 대사가 주어지지 않지만, 등장인물의 뒤에서 극의 전개를 뒷받침해주면서, 동시에 영화를 감상하는 이들에게 때로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바로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다. 따라서 영화를 감상할 때, 배경이 되는 공간(도시일 수도 있고, 농촌일 수도, 자연일 수도 있다)에 집중하여 관찰하는 행위 또한 신선한 경험이 될 수 있다. 특히 1960-70년대에 걸쳐 총천연색 컬러로 제작된 한국의 영화들은 공간적 배경을 감상하는 데에 있어서 최고의 자료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1980년 12월의 컬러 텔레비전 방송이 개시되기 이전까지, 대한뉴스를 비롯한 국가 주도의 기록 영화를 제외한다면 당대 한국의 ‘공간’을 총천연색으로 담아낸 매체는 오직 영화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당시에도 컬러 ‘사진’은 존재하였지만, 아무리 사진의 해상도가 뛰어나다 한들, 24프레임으로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활동사진’이 주는 생동감에 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영화 필름이라는 프레임 속에 담긴 공간은, 그 화각이 사람의 시선에 비해 제한적이라는 특성상 우리가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경관(landscape)과는 또 다른 ‘의도된 경관’이라 할 수 있다. 감독의 시선, 혹은 그 시선의 기저에 깔려있는 시대적, 사회적, 정치적 배경이 이러한 ‘경관’에 의도적으로 녹아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므로, 영화의 공간적 배경을 ‘의도된 경관’으로 재해석할 때, 과장을 조금 보탠다면 영화 해석의 새로운 시야가 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 < 야행 >(김수용, 1977)을 살펴보는 것은 충분한 의의를 갖는다. 1973년에 촬영이 이뤄졌으나 당국의 검열로 인해 1977년에 개봉된 <야행>은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당대 일간지에서의 영화평은 물론이요, 201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관련 비평이 이어져 오고 있는 ‘꼭 봐두어야 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야행>에 담긴 공간적 배경(당대의 ‘의도된 경관’)을 살펴보는 것 또한, 영화 제작으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속도로, 서울 도심 전경, 삼일고가도로, 광화문 지하보도를 넘나드는 도입부의 시퀀스 <야행>의 약 2분여에 걸친 도입부는 많은 비평에서 이미 언급되었듯이, 한적한 농촌을 가로지르는 경부고속도로와 서울 도심의 삼일고가도로, 삼일빌딩의 시퀀스로 구성되어 있다. 굳이 부연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영화를 감상하는 시점과 무관하게 상경의 과정을 나타내는 시퀀스임을 누구나 한번에 이해할 수 있는 멋진 구성이다. 흥미롭게도. 이 시퀀스에서 주로 비치는 공간은 고속도로, 고속도로를 횡단하는 고가교, 서울 도심의 삼일고가도로, 그리고 광화문 지하보도라는 ‘입체 공간’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감독이 어디까지 의도했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서울이라는 장소의 근대성, 도시성을 강조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2024년 현재의 갱생보호회관(현 안국빌딩)의 외관 (필자 촬영 및 제공) 주인공 현주( 윤정희 )가 근무하는 은행은, 안국동 로터리에 위치한 갱생보호회관(현 안국빌딩, 김중업 설계)으로, 서울 도심 중에서도 ‘한복판’인 곳이다. 지하 1층, 지상 15층의 갱생보호회관은 대폭 리뉴얼을 거친 지금에도 여전히 위용을 뽐내는 건물이니, 반세기 전 서울에서는 더더욱 그 존재감이 돋보였을 것이다. 현충원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반포주공아파트로 걸어들어가는 현주의 모습 현주가 거주하는 반포주공아파트는, 영화가 촬영되던 시점에 갓 입주가 이루어진 말 그대로 최첨단의 아파트 단지였다. <야행>에 대한 비평 이외에도, 반포주공아파트의 의의에 대한 논설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울에서 한강 이남에 지어진 최초의 중산층을 겨냥한 아파트 단지로서, 현재의 강남 아파트 신화의 방아쇠를 당긴 단지에서, 주인공은 겉으로 보기엔 유유자적하나 심리적으로는 항상 결핍된 ‘모던한 삶’을 살아간다. 소월길에서부터 덕수궁까지 배회하는 현주의 시퀀스 영화의 20분-23분경에서, 현주는 정처 없이 서울 도심을 배회한다. 남산 소월길을 걷다가 구매한 마스크를 두르고, 시청 앞 덕수궁에 들러서 동물을 감상하거나, 정관헌에서 차를 마시는 현주의 행동은 50년이 지난 지금, 퇴근 후 직장인들의 모습을 종종 관찰할 수 있는 덕수궁의 풍경과 금세 오버랩된다. 한 마디의 대사도 없이, 카메라는 그저 현주와 풍경을 비출 뿐이지만 누가 보더라도 무언가 심적으로 허전해 보이는 현주의 심리 상태를 체감할 수 있는 훌륭한 시퀀스이다. 꺽다리 빌딩 사이에서 조용히, 혹은 외로이 문화유산으로서의 위엄을 지키는 덕수궁, 그리고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익명의 도시인들의 모습이 현주라는 등장인물의 행동으로 대표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현주의 고향, 홍성군 홍주읍성의 조양문 영화의 40분 이후, 현주가 잠시 생각의 전환을 위해 귀성한 고향은 충청남도 홍성군이다. 카메라는 장항선의 옛 역사, 홍주읍성의 조양문, 읍내의 도로를 컬러로 비추며, 최첨단을 달리던 대도회지 서울과는 대조적인 경관을 훑는다. 강변1로와 5로(현재의 노들길 동작역 부근), 그리고 갓 준공된 반포주공아파트의 부감 시퀀스 51분경에 등장하는 현주의 주거지, 반포주공아파트를 부감하는 씬은 만약 이 씬만 떼어놓고 본다면 마치 대한주택공사의 홍보 영화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현대적이며, 도시적이다. 특히 씬의 도입부를 1971년에 갓 개통된 동작동 강변1로와 강변5로(현 노들길)의 경계점으로 잡았다는 점에서, 감독은 초고밀도의 서울 도심, 비포장도로 천지인 현주의 고향과는 대비되는 인공적이고 균질하며, 인간성이 결여된(실제로 영화 촬영 시점에서는 입주가 100% 완료되지 않았을 것이다) ‘신시가지 강남’을 이 씬에 담고자 했을 지도 모른다. 한국은행 앞 사거리의 육교 영화의 후반부, 60분과 68분경에는 지금은 사라진 한국은행 앞 육교가 동일한 구도에서 시간대만 낮과 밤으로 달리한 채 등장한다. 재밌게도, 이러한 구도는 <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한형모, 1966) 등의 타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단골’ 구도이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도회지 서울을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구도로서 너나 할 것 없이 이 육교를 꼽았던 것이다. 걸음을 서두르는 박대리와 그 뒤에 우뚝 솟은 갱생보호회관의 전경 영화의 막바지, 74분경에 예상외의 행동을 하는 현주에 당황한 박대리( 신성일 )는 안국동 사거리의 육교를 황급히 걸어 내려오며 은행으로 들어가는데, 이 씬에서 당당한 풍채의 갱생보호회관 외관이 잠시나마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78분 즈음,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는 현주가 거주하는 반포주공아파트가 다시 비친다. 비록 영화 전체에 걸쳐서 공간적 배경이 대사를 통해 드러나는 장면은 단 한 컷도 없으나, 현주와 박대리의 상반된 물리적 관계가 유지되는 두 곳의 장소 모두, 결국에는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데 성공했다. 어떻게 보면 반포주공아파트와 갱생보호회관은 ‘의도된 경관’으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담으로, 2024년 현재 아쉽게도 반포주공아파트와 갱생보호회관 모두 촬영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 않다. 전자는 바로 지난해 재건축을 위해 완전히 철거되었으며, 후자는 리모델링을 거치면서 영화 촬영 당시와는 외관이 상당히 바뀌었다. 예정된 파국을 맞이했던 현주와 박대리 두 사람의 관계처럼, 두 곳의 ‘의도된 경관’ 또한 현실 세계에서 불과 반세기 만에 사실상 자취를 감춘 것이다. 우리는 이제 영화 <야행>을 온전히 역사의 영역에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김영준(도시공학 연구자) ㅣ일본 도쿄대학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사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라는 필명으로 도시 경관을 기록해오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배경 속 도시 공간을 읽어내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영화와 서울: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2022),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2021) 집필(공저).
자르고 붙이기(cut and paste)는 예술 분야에서 전통적인 제작 방식 중 하나이면서 동시에 그것은 오늘날 사회, 문화, 경제 전 분야에서 나타나는 우리 삶의 주요 양식이기도 하다. 영화의 몽타주, 예술의 콜라주, 대중문화의 리믹스는 모두 자르고 붙이기의 전략을 따라 하나의 대상을 본래의 맥락으로부터 떨어뜨리고 그것을 새로운 자리에 위치시켜 의미의 전복을 꾀한다. 한편, 자르고 붙이기는 동시대의 삶의 양식이기도 하다. 가속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공간은 잘게 쪼개지고 있으며, 그 속에서 우리의 신체 또한 하나의 사물처럼 조각난다. 예를 들어, 노동 현장은 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하는 파트타임 노동자로 채워지고, 주거 공간은 대부분 성냥갑처럼 만들어진 구조물을 켜켜이 쌓아 올려 완성된다. 만약 우리 삶이 자르고 붙이기를 하나의 양식으로 채택하여 따르고 있다면, 그런 삶은 분명 누더기처럼 기운 흔적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그런 불완전한 것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김효준 감독의 < 자르고 붙이기 >는 경제적으로 파산의 상태에 이른 한 남자의 모습을 그린다. 이 작품의 소재는 1990년대 후반의 IMF 시기와 2000년대 후반의 금융위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빚의 굴레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할 때 자주 쓰이던 신용불량자, 카드빚, 고시원과 같은 것들이다. 정호는 수산 시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그는 고시원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정호와 그의 어머니는 카드빚을 두고 심한 갈등을 빚는다. 어머니는 아들 몰래 신용카드를 발급받고 그것으로 빚을 갚으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정호는 빛 한 줄기 새어 들어오지 않지만 모든 소리는 새어 나가는 고시원 방에서 어머니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낸다. 정호와 어머니의 갈등은 우발적인 사고에 의한 비극으로 이어진다. 정호는 어머니가 숨기고 있던 카드를 빼앗아 그것을 가위로 자르려고 하고, 어머니는 그런 정호를 말리다가 손가락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신용카드를 놓고 분열된 모자의 관계는 두 동강이 난 신용카드와 상처 입은 어머니의 손가락을 통해서 형상화된다. 대다수의 비극적 이야기의 주인공이 스스로 비극을 초래하는 것처럼, 주인공 정호의 우발적인 행동이 그의 비극을 낳고 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크게 ‘자르기’에 해당하는 부분과 ‘붙이기’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구분된다. 신용카드를 자르다가 어머니의 손가락을 다치게 한 정호의 이야기가 있다면 그런 정호의 행동을 뒤집어 놓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구성된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정호의 어머니가 손가락을 다쳐 응급실에서 간단한 봉합 수술을 받는 이야기와 어머니의 치료비를 내기 위해 자신이 가위로 잘랐던 신용카드를 접착용 셀로판테이프로 붙이는 이야기는 구조적으로 대구를 이룬다. 잘린 사물이 다시 붙고, 잘린 신체가 다시 붙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전반부의 위기는 일시적으로 해소된다. 흥미로운 것은 ‘붙이기’에 해당하는 이 영화 후반부의 내용이 갈등과 위기의 완벽한 해소가 아닌 비극의 심화를 의미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머니의 손가락은 수술을 끝낸 것이지 치료가 끝난 것이 아니며, 셀로판테이프로 붙인 신용카드는 정호가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용카드라는 소재를 중심에 놓고 보자면, 정호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자신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채무자의 신세로부터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가 부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감행했던 행동이 그를 다시 부채의 늪으로 빠뜨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르고 붙이기>는 빚이 또 다른 빚을 낳고, 비극이 또 다른 비극을 낳는 아이러니를 통해서 이야기를 완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 비극적 이야기의 주인공인 정호의 행동, 즉 그가 무언가를 자르고 붙이기를 행할 때 그의 손은 두려움에 떨고 있음에 주목하자. 그의 손은 가위를 들고 신용카드를 자를 때 또는 셀로판테이프로 잘린 카드를 다시 붙일 때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린다. 물론 각각의 상황과 의미는 사뭇 다르다. 신용카드를 자를 때 정호는 분노, 짜증, 흥분 속에서 반대로 신용카드를 붙일 때 정호는 불안, 초조, 긴장 속에서 주체할 수 없이 떨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런 정호의 신체적 떨림은 한편으로는 해체된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겪는 고통으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해체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고통으로 볼 여지가 있다. 정확한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정호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큰 빚을 남기고 떠난 것으로 보인다. 정호는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빚과 그의 부재로 인해 고통받는 인물인 동시에 어머니, 아내, 딸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으로 인해 고통받는 인물이다. 정호가 겪고 있는 이 이중의 고통은 고시원 고유의 독특한 건축적 공간 구성에 따라서 시각적으로 형상화된다. 이 영화의 주요 배경으로 쓰인 고시원을 하나의 소우주로 본다면, 그것은 전체를 작은 부분들로 자르고 이어붙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건축적 공간에서 정호는 아버지로부터 자신에게로 대물림되는 가족의 해체를 겪으면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통받는 것이다. 영화는 정호에게 가혹한 시련을 주거나 반대로 그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단순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끝맺지 않는다. 정호가 어머니의 손을 다치게 만든 그날은 하필 그의 딸의 생일이었다. 어머니를 걱정하면서 딸의 생일을 축하해야 하는 그 기묘한 상황은 앞으로 정호가 자기 자신은 물론 자기 자신의 가족을 위해 어떤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인지를 되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정호의 미래에 대해서 그 어떤 판단도 그리고 그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는다. 대신 정호의 삶이 누군가의 무차별한 가위질로 난도질당하여 찢김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면서 이제 정호에게 과거를 박차고 일어서야 할 시간이 도래했다는 하나의 신호를 준다. 열린 결말처럼 보이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정호는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면서 연신 헛구역질을 한다. 만약 정호의 헛구역질이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는 구토의 전조라고 한다면, 그것은 과거를 떨쳐 낼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의 제스처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경제적 파산이 초래한 찢김의 고통을 다룬 이 작품은 어딘가에서 비슷한 경험을 할지도 모를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극약처방이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관련글) 1. 우리는 달팽이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 <달팽이>(2020), 2022.04.21. 2. 나와 유령이 함께 하는 시간 - <탈날탈>(2018), 2022.05.31. 3. 타인의 그림자를 집어삼키는 법 - <햄스터 죽이기>(2021), 2022.06.29. 4. 얼굴 없는 영화, 등으로 말하는 영화 - <말투>(2020), 2022.07.27. 5. 사랑의 약속으로 하나가 되는 세계 - <우리의 낮과 밤>(2020), 2022.08.25. 6. 이 몸체의 주인을 찾습니다 - <매미>(2021), 2022.09.23. 7. 이것은 감자인가 아니면 고구마인가? - <감자>(2018), 2022.11.08. 8. 일상을 적시는 시간들 - <햇볕을 볼 시간>(2022), 2022.11.21. 9. 찢김의 고통을 극복할 날을 기다리며 - <자르고 붙이기>(2022), 2022.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