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혈한
- 감독
- 리차드 브룩스
- 제작년도
- 1967
- 출연
- 로버트 블레이크, 스캇 윌슨, 존 포사이스
강철중은 나쁜 형사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마약상에게 마약을 빼앗느라 부어오른 강철중의 얼굴이 보이고, 부패 혐의로 내사를 받던 파트너는 권총으로 자살한다. < 마이 뉴 파트너 >를 인용한 < 투 캅스 >의 캐릭터와도 비슷하지만 이건 개과천선의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의 폭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지만 < 더티 해리 >의 캘러핸 형사도 아니다.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받아 경사로 특채된 권투 선수 출신의 강철중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직감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야수 같은 존재다. 그가 속한 경찰 조직은 단지 그에게 무기를 쥐여주는 수단일 뿐, 경찰의 ‘의무와 책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악당들에게 적당히 돈을 뜯고, 보통 사람들에게 적당히 뇌물도 받아가며 살아간다. 그런데 시대가 걸린다. 제목을 따온 할리우드 영화 < 공공의 적 Public Enemy >의 악당은 자본주의 구조의 이면에서 자신의 왕국을 세워 가는 갱스터였지만, 강우석 이 지목하는 21세기 벽두의 ‘공공의 적’은 다국적 금융자본의 첨병으로 한국사회, 경제를 이끌어가는 엘리트 펀드 매니저다. 강우석의 <공공의 적>이 개봉한 것은, 2002년 월드컵으로 한국이 들썩이기 직전인 1월이었다. 1997년 IMF 사태로 한국사회가 요동치고, 취업과 고용을 비롯한 모든 것이 불안정해졌다. 2001년에는 9.11. 테러로 세상의 모든 것이 뒤집어졌다. 21세기는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언제 어디서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극도의 위험사회였다. 그리고 그 불안과 두려움을 이용하여 열심히 돈을 벌어들이는 누군가가 있었다. 강우석 은 언제나 ‘먹물’들을 싫어했다. 잘난 척하는 지배계급, 고위관료와 지식인들을 혐오했다. 강우석은 1997년에 < 주유소 습격사건 >을 제작했다. 무정부주의적인 소란과 반항. 어디에도 돌파구는 보이지 않고,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장식하기는 힘들었지만 날것의 분노가 있었다. 들끓는 에너지를 감지하는 힘이 당시의 강우석에게는 있었다. < 공공의 적 >에서 강우석은, 이성재 가 연기한 조규환을 ‘공공의 적’으로 지목한다. 승승장구하던 펀드 매니저 조경환은 철저한 자본주의형 인간이다. 위기에 몰린 회사를 냉정하게 부도 처리하여 사장을 자살로 내몰고, 자신을 화나게 한 택시기사는 벽돌로 때려죽인다. 한 달만 기다리면 수백억 원으로 불어날 투자금을, 철거 위기에 몰린 고아원을 돕겠다며 빼 오라는 아버지를 조규환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용서할 수 없다. 그래서 조규환은 태연하게 부모를 죽인다.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잔인하게 내쳐버린다. 부모를 죽인 날 밤, 강철중을 만나기 전까지는. 조규환은 누가 봐도 악인이다. 그런 인간을 처단, 응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강우석 은 반대편에 강철중을 놓는다. 강철중은 착한 사람이 아니다. 도덕적 인간이 아니고,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의지도 없다. 강철중은 세상이 악의 구렁텅이이고, 자신도 그 틈에서 얼렁뚱땅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강우석은, 그런 정도는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조규환은 강철중의 악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악을 행하는 인간이다. 적당한 악인인 강철중은 비로소 ‘공공의 적’을 보게 된다. 아벨 페라라의 < 나쁜 경찰 >에서의 형사는 수녀를 강간하고 강도질을 하는 범인들을 추적하며, 그들이 단지 세상의 악에 물들어버린 평범한 소년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좌절에 빠지고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악인이 회개하고 선을 행하거나, 스스로 파멸해 버리는 것은 일반적인 공식이다. 하지만 강철중은 단순한 인간이다. 조규환의 악행을 알고, 강철중은 술집에서 후배 형사에게 말한다. 인간이,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돈 좀 뺏을 수도 있고, 몇 대 팰 수는 있지만, 조규환처럼 ‘그런 짓’을 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세상이 그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조규환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어떤 역할인지 그런 것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 말해도 모른다. 부모를 죽인 냉혈한과의 싸움이라는 소재는 코미디보다는 서늘한 누아르에 적합해 보이지만 강우석 은 < 마누라 죽이기 >처럼 스릴러에 어울릴법한 소재를, 코미디로 능청맞게 뽑아내는 솜씨가 있다. < 공공의 적 >은 권력과 시스템 자체에 진지하고 날 선 비판을 가하지는 않는다. 그냥 강철중처럼 치받아버린다. 강철중은 편의에 따라 증거를 조작하고, 시스템을 조롱한다. 그건 시스템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엿 먹어라’ 외치고는 도망쳐버리는 것이다. 강철중은 ‘공공의 적’,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자들을 응징한다. ‘사회 질서 수호’ 같은 데에는 추호의 관심도 없다.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자들만 골라내서 반 죽여 버린다. ‘공공의 적’을 발견한 강철중은 이 사회를 이끌어간다는 ‘엘리트’를 무참하게 박살 낸다. 결코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주먹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지만 그 통쾌함과 후련함으로 < 공공의 적 >은 관객을 흥분시킨다. 즐겁게 만든다. 그게 상업영화의 힘이다.
오늘은 영화 한편을 보자. 가까운 대한극장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열 개의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옛날에 비하면 작고 초라해 보인다. 1968년 나는 이 극장이 자주 제작한 춘향을 만들었는데, 1,800명 중에서 뽑힌 홍세미의 간판이 무척 크고 화려했다. 프로를 살펴보니 외화보다 한국영화가 압도적으로 많아 흐뭇했으며 그 중에는 영광의 < 피에타 >도 붙어 있었다. 나는 개봉 첫날인 영화들 중 무작위로 < 간첩 >을 골랐다. 간첩이란 단어는 요즘 분명히 퇴색하고 잊혀진 죽은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살아있었다. 박력 있고 짧은 숏이 정신없이 이어져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간첩이란 고정관념을 넘어선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감독은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제일 좋아한다. 남파 22년차 김명민 은 가짜 비아그라 장사이자 선량한 가장으로 남매를 키우며 생활고에 찌들어 지금은 간첩이란 정체성조차 가물가물하다. 남편 없이 시각장애아를 키우는 부동산 억척 아줌마 염정아 는 맵시가 있다. 한우를 사육하며 FTA 반대 시위에 앞장서는 몸짱, 얼짱 정겨운 . 마누라가 죽고 혼자 사는 치근한 변희봉 . 이들 간첩은 완수해야 할 미션이 달갑지 않지만 ‘본분을 잊지 말라’는 북쪽 최고 암살자 유해진 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날로 달라지는 남쪽사회에서 살다보니 현실에 고통 받는 소시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15세 때 처음으로 간첩영화 <당신을 노리고 있다>를 봤는데 그 내용은 2차세계대전 때 적의 스파이를 경계하라는 계도성이 강했고, 간첩으로 나오는 배우가 험상궂었다. 그리고 먼 훗날 나도 감독이 되어 <고발>(이수근 이야기), <삐에로와 국화>(이병주 소설) 등 간첩영화를 만들게 되었는데 박노식, 신성일 같은 선남들을 출연시켰지만 반공이라는 계도성을 희석시킬 수는 없었다. 해킹 한 번에 미국 국방부 정보망까지 뚫리는 세상에 김명민은 정보수집의 사각지대에서 머물러야했고, 변희봉은 박통시절이 좋았다고 푸념한다. 날만 새면 친북세력 운운하며 싸움질하는 정치권이 잠시 야유 당한다. 유해진 은 변신을 잘하는 배우다. < 이끼 >에서 팔푼이로 열연했는데 이번에는 찬바람이 부는 냉혈한이 된다. 그가 서울에 나타났을 때, 간첩들은 비로소 사명감을 깨닫고 모여들지만 무장하라는 지시에 김명민 은 권총을 파묻어둔 자리에 고층아파트가 섰다고 했고, 염정아 는 총알이 없다고 한다. 정겨운 은 소가 권총을 밟아 고장, 변희봉 은 분실했다고 말해 혼쭐이 난다. 결국 이들의 작전은 북에서 6자회담에 참가했던 이승호를 암살하는 것으로 집약된다. 그는 탈북해서 서울의 어떤 기관의 보호를 받고 숨어있었다. 암살단은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단 1초도 착오가 없는 행동으로 그를 제거하려 들지만 경찰은 이미 그 정보를 쥐고 있다. 영화는 여기서 더욱 숨 가쁜 템포로 진행된다. 비 오는 밤 전선을 끊고 습격하지만 이승호는 이미 이동을 끝낸 후였다. 추격과 도주하는 차량이 무서운 속도로 묘사된다. 그리고 드디어 백주 노상에서 화려한 총격전이 벌어진다. 충무로 시대를 살던 감독들은 상상도 못할 만큼 압도적인 물량을 쏟아 붓고 있다. 수 십대의 자동차가 충돌해서 부서지고 불타고 그 사이를 누비며 저격수들의 불 뿜는 총성이 고막을 찢는다. 이때 드라마는 적과의 싸움보다 내무 분열로 반전된다. 김명민은 유해진을 공격한다. 두 사람은 초인간적인 격투를 벌이는데 고가도로에서 추락하면서도 치고받는다. 이 시간 운동장에서는 야구배트를 쥔 김명민의 아들이 납치의 표적이 된다. 나는 이 영화의 끝 장면을 굳이 밝히지 않지만 할리우드 액션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는 말은 하고 싶다. 지금 남한에는 5만 명의 고정간첩이 우리와 같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을 실벽하기란 쉽지 않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서 평범한 척 하고 있다. 생각하니 오싹해진다. 이것만으로도 우민호 감독의 메시지는 충분하다. < 간첩 >은 분명히 추석 오락영화이다. 처음부터 상을 타고 예술 운운하는 헛소리는 하지 않고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완성도 높은 오락영화, 그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영화의 주류이며 영화산업의 조건이다. 나는 크레딧 끝에 떠오른 제작자의 이름을 확인하면서 앞으로도 건전하고 재미있는 오락영화를 많이 만들어줄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