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 3
- 감독
- 송능한
- 제작년도
- 1997
- 출연
- 한석규, 이미연, 최민식, 안석환, 박광정, 방은희, 박상면, 송강호, 이종상, 남효성, 민도기, 손민석, 김진영, 김호진, 전진태, 전홍렬, 강승용, 송영탁, 배중식, 박길수, 정성갑, 이성호, 이형수, 권오진, 신순식, 광복동, 이정욱, 서우식, 류현철, 홍석천, 문경희, 김동일, 정은주, 김석, 고진명, 권진원, 장대윤, 권재원, 한상욱, 박성웅
청주 – 대구 – 케임브리지로 그들 각자의 터전이 분리됨으로 말미암아 스카이프(Skype)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삼총사 정희(김주아), 민영(윤아정), 수산나(손다현)는 이 썰렁한 재회를 통해 그들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저들 사이의 간극은 청주 – 대구 – 케임브리지로 분리된 세 장소의 지리적 거리감만큼이나 벌어져 있다. 여고 시절을 동고동락한 세 친구가 스무 살이 되면서 변화해가는 역동성을 묘사하는 < 성적표의 김민영 >(2022)은 물리적 거리감을 실재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으로 은유하는 이야기이다.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우정이라는 감정을 고요하고 섬세하게 담아내는 이 영화는 ‘김민영’을 평가 대상으로 집중하여 관찰하는 제3자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환상과 추억으로 일상을 확장하는 내러티브의 궤적은 청소년기의 종말에 대한 가볍고 우울한 자화상을 따라간다. 도입부는 임박한 시험을 앞두고 삼행시 동아리를 작파하기로 결정한 세 친구의 마지막 회합을 보여준다. 이날 이후 세 친구의 길은 갈라진다. 몽상가 기질의 정희는 수능을 보던 날 시계를 지참하지 않아 불안해하는 소년 정일(임종민)에게 손목시계를 주고 창밖을 보며 시간을 흘려보냄으로써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과 작별한다.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도 태평해 보이는 정희는 우연히 정일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청주 나달 테니스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데 누구도 가치 있다고 말해주지 않는 이상한 상상을 소중히 여기면서 자신의 세계를 쌓아간다. 집과 테니스클럽 사이를 벗어나지 않은 좁은 활동반경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부지런한 모습을 보이며 심지어 테니스클럽 홍보를 위해 자신의 그림 재능을 활용하기도 한다. 한편 여고 시절부터 모임 결성을 즐겼던 민영은 대구의 대학에 진학하여 교내 청자켓 동호회 대표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수산나는 모두가 탐내는 자리를 확보하여 옛 친구들과 연결되기 어려워진다. 여름방학 동안 민영이 머무는 서울 집을 방문한 정희는 친구를 초대한 뒤 그 자신의 일에만 몰두해있는 민영에게 어색함을 느낀다. 민영의 마음은 서울의 더 나은 대학으로 편입하는데 보탬이 될 성적(학점)에만 집중되어 있다. 성적에 집착하는 대학생이 된 민영과의 재회는 정희에게 명령으로 가득 찬 사회에서의 성공에 대해 조용한 자각을 준다. 뚜렷한 근거 없이 학점 교정을 탄원하는 시시한 대학생이 되어 친구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민영에게 성적표를 남기고 정희는 돌아선다. <성적표의 김민영>은 스무 살을 지나갔거나 곧 지나갈 관객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우정이 서서히 해체되는 과정을 세심히 관찰한다. 느린 서사의 진행은 다소 우울한 분위기를 강조하지만, 곳곳에 뿌려진 건조한 유머는 안도감을 제공하면서 몽상가이자 예술가로서의 정희의 본성을 포착하는 것을 돕는다. 이재은, 임지선 공동감독은 각자의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려던 두 친구의 나란했던 자리가 조금씩 이지러지는 순간들을 제시하면서 한동안 마음에 남는 애틋한 순간들을 보여준다. 보드게임, 햇반, 배드민턴 라켓이 담긴 캐리어를 끌고 상경한 정희의 재회에 대한 상상은 슬프게도 현실에 부응하지 못한다. 앉은뱅이 책상과 노트북을 떠나지 않는 민영은 정희가 더 나은 교육의 기회를 져버렸다고 비난하지만 그 자신의 소홀했던 학업성취를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보상하려 한다. 점차 한국적으로 변해가는 민영의 위선에 비해 정희의 상상의 나래는 실제 우정 장면과 상상의 우정 장면을 하나의 그림으로 엮는다. 홀로 남겨진 정희는 민영의 일기와 개인 영상을 발견하고 민영의 우정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검토하게 된다. 이는 여고 시절의 친우(親友)가 멀어져가는 상황을 받아들이게 하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도록 이끈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자아의 희생을 의미하는가? 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서울집에서 두 사람의 차이가 표면화되는 상황의 장면 연출은 탁월하다. 민영이 단 하루로 시한을 한정하였으나 정희의 목적은 옛 시절처럼 민영과 ‘룸메이트’가 되는 것이다. 여고 시절 기숙사 방과 군에 간 민영의 오빠 자취방은 미묘하게 대조된다. 여고 시절 기숙사에서 나란했던 정희와 민영의 침대는 일치된 이상을 향하고 있던 존재의 조건을 묘사한다. 민영은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이라는 정평이 난 도시인 대구가 너무 한국적이어서 지루하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 편입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로 결정한 친구 정희에게는 냉담하다. 자취방에서 두 사람의 배치와 자세, 카메라 위치는 엇갈리는 두 친구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기술한다. 문과 거울, 방바닥을 어지럽히는 잡동사니들, 신체적 제스처 따위가 교착된 관계를 보여주면서 두 인물을 분리하는 촉매가 된다. 민영의 과업에 동참하여 교수에게 탄원 메일을 작성하는 것을 돕는 정희에겐 나의 친구가 좀 유치해진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이 공존한다. 한편, 민영은 정희의 선택을 무시하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더 현실적이 되어야함을 강조한다. 한국에서 청소년 성장 서사의 상투형은 경쟁적인 입시 제도로부터 비롯되어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어지는 학위, 직업, 가족을 형성해야 하는 현실 사이의 괴리이다. 사회적 기준이 제시하는 표준적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인생의 고충은 성장 서사의 단골 레퍼토리이다. 이는 <성적표의 김민영>의 주제이기도 하나 이 영화는 관습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에 저항하는 상상의 힘을 지지하며 성인이 되기까지의 험난한 길을 묘사하는 무미건조하고 유머러스한 스타일을 창안해냄으로써 통상의 성장담과 다른 길을 간다. 눈치조차 성공의 덕목으로 간주될 수 있는 한국에서 정희는 사회적 관습을 완전히 무시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삶을 사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바쁜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는 민영과의 멀리 떨어진 거리에도 불구하고 공감은 피어날 수 있을까? 두 공동감독은 점차적으로 서로 분리되어가면서 세상을 헤쳐나가는 젊은 여성들의 내면적 삶을 유머와 솔직함, 연민으로 다룬다.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풍으로 상상된 제주 여행 삽화는 진부한 공간을 현실의 기억과 상상의 장면들로 채우는 정희의 기질을 잘 보여준다. 소원과 애정 사이를 오가는 순간들은 섬세한 연출력 덕분에 잘 다루어지고 있으며 스토리를 따라가는 캐릭터의 성장과 변화를 신뢰하게 한다. 정희에게서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관찰할 수 있고, 환상과 오류의 차이를 평가할 수 있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브랜드화하기보다 현실화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을 만난다. 학력 중심의 소비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인 평판에 기대지 않고 주체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스무 살의 모습을 본다. 정희는 민영의 우월한 태도에 상처를 받지만 우정을 회복하여 즐거운 하루를 보내기 위해 민영이 그녀를 계속 무시하는 동안에도 온건한 태도를 유지한다. 정희를 혼자 남겨둔 채 떠나는 민영의 일기는 낮은 자존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암시하며, 친구에게 자신의 불안을 투사하는 소녀의 감정을 보여준다. 친절한 태도와 타인에 대한 관대함을 바탕으로 정희는 친구의 더 나은 자질을 칭찬하는 동시에 민영의 위선과 결점을 가감 없이 지적하는 성적표를 작성한다. 정희는 ‘한국인의 삶’에 F를 주면서, 좁은 땅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며, 남의 눈치를 보면서 안정된 삶을 쫓는 사람들보다 덜 한국적이 되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녀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사회적으로 억압적인 문화에 대한 온건한 비판을 제시하는 이 사려 깊은 드라마는 일탈적인 공상의 강렬함을 소유한 자유로운 영혼의 정희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성숙한 인간이라고 설득한다. 완전했던 세계의 파괴, 우정의 몰락을 형상화하기 위해 용의주도하게 이야기를 쌓아가는 공동 감독은 ‘삼(3)’이라는 숫자를 통해 이를 암시한다. 숫자 삼(3)의 논리는 무엇인가? 수비학(數秘學)에서 지혜와 이해, 창의의 수로 간주되었던 삼(3)은 과거, 현재, 미래로 구획된 시간의 세(3) 축, 탄생, 삶, 죽음으로 이어지는 생의 삼(3) 주기로 약호화된다. ‘조화’와 ‘일체감’, ‘통일성’을 상징하는 삼(3)은 세(3) 개의 꼭짓점을 연결한 삼(3)각형처럼 삼위일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인생에서 호재와 악재는 세(3) 단계를 거쳐 온다고 하며, 가장 이상적인 스토리의 구성은 삼(3)막의 행위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되곤 한다. 내쳐 <성적표의 김민영>은 삼(3)의 해체, 몰락에 관한 스토리라고 할 수도 있다. 삼(3)행시 짓기 동아리로 하나가 되었던 세(3) 친구의 분리는 삼(3)행시 모임을 중단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삼(3)행시는 단어를 이루는 세(3) 음절을 모체로 하나의 문리(文理)를 조형해내는 행위인 바, 그 결과는 단어의 본래적 의미를 벗어나 새로운 문맥을 창조하게 된다. 문학적 깊이마저 지니게 되는 저들의 삼행시는 그저 말을 지어내는 놀이를 넘어 진짜 ‘시’를 닮게 된다. 하나로 뭉쳐 삼(3)행시를 짓던 세(3) 친구는 세(3) 도시로 흩어지며 셋(3)으로 난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생은 따라야 할 목록, 결의안의 지침처럼 간단하다. 문제는 그렇게 살기로 결정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다. 정희가 관리하는 테니스 코트의 경기로 환원하자면 이재은, 임지선 감독은 완강한 완력으로 라인을 타고 공을 보내기 위해 공격적으로 라켓을 휘두르는 대신 담장 바깥에서 담장 안 가까운 곳으로 보내야 하는 테니스공들처럼 스핀이 많이 걸린 스트로크를 구사한다. 겸손하고 소박한 <성적표의 김민영>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다가 점진적으로 그 깊이를 체감하게 하는 감정을 드러내면서 조금씩 스며드는 환멸을 묘사한다. 감춰진 감정들이 많은 이 영화는 이별은 감상적일 수 없으며 매우 가혹하지만 필요하다는, 희소성 있는 주제를 다룬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런 곳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깊고 그윽한 숲속 어딘가, 정희가 그린 곳에서 살고 싶었던 마음처럼, 우리들의 친구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그곳에 혼자 있으리라는 사실만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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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배(황정민)는 옛 미군 건물이 재개발을 앞둔 안남 시(市)의 시장이다. 부패한 정치인 성배의 수족 노릇을 하는 강력계 형사 한도경(정우성)은 범죄와 결탁한 자신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는 검사 김차인(곽도원)과 어쩔 수 없이 내통하는 관계가 된다. 도경이 이 조야한 권력자들에 굽신거려야 하는 이유는 병원비를 변통해야 하는 말기 암 환자 아내 윤희(오연아) 때문이다.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라는 질문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이 남자는 시장의 오른팔 은충호(김종수)의 장례식에서 한 가지 묘수를 짜낸다. 도경의 기지로 두 권력자가 장례식장에서 화해할 수 없는 상태로 맞닥뜨리는 시퀀스는 영화의 하이라이트이다. 도경과 선모, 성배, 차인은 예정된 순서에 따라 차례로 순회하면서 서로를 대면하게 된다. 누구든 자신의 앞길을 막는 상대를 향한 으르렁거림과 생존을 위해 울부짖는 위협, 땀에 젖은 얼굴을 묘사하는 날카로운 카메라 워크로 주요 인물들 간의 간의 대결이 차례로 기술된다. 성배는 무늬만 시장이지 지하세계와 연줄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범죄 조직의 수괴에 가까운 갱스터로 뼛속까지 타락하였다. 성배와 같은 인물이 선거에 통해 선출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권력과 도시의 퇴행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법의 수호자인 차인은 성배를 체포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다가 그 자신이 범죄자처럼 행동하게 된다. 순진무구한 조무래기 형사였던 선모(주지훈)는 도경을 추종하여 피와 돈의 맛을 본 순간 비열한 갱스터로 빠르게 변질된다. < 아수라 >(2016)는 남성성을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작품으로, 네 명의 주인공은 모두 통제할 수 없는 도덕적 타락으로 붕괴한다. 충성심과 우정이 변질되면서 남자들이 차례로 자동차, 손도끼, 망치, 금속 스파이크 및 재래식 무기의 희생자가 될 때 세상은 피바다로 변한다. 김성수 감독은 ‘갱스터’라는 장르의 비유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작가이다. <아수라>에서 그의 연출은 영화에 풍자적인 분위기와 악독한 코미디의 느낌을 고조하면서 폭력의 악순환에 갇힌 캐릭터에 선의의 뉘앙스까지 부여한다. 세상이 나아질 가능성을 0%로 보는 비관적인 세계관이 새로울 건 없으나 촘촘하게 짜인 긴장을 고조해가는 스토리는 권위에 대한 불신을 보여주고 있으며, 정치를 경멸하며, 가망이 없는 공동체의 모습을 그려낸다. 어두운 골목길과 옥상, 불길해 보이는 회의실과 경찰서 등 <아수라>의 현대적인 누아르 스타일에선 위협과 위험의 분위기가 반영된 공간 세팅이 핵심을 이룬다. 영구적인 분노와 적대감, 고통에 매몰된 존재의 상태는 폐쇄적인 프레이밍(framing) 연출을 통해 시각화된다. 장엄한 엔딩을 보여주는 장례식장 시퀀스에 이르기 전까지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작은 옥상, 미로와 같은 빈민가의 건물들, 골목, 쇠창살의 교도소, 황폐한 건물의 내부 등은 살아남기 위해 모사와 굴욕,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을 위한 최적의 무대를 제공한다. 구타와 살인이 끊이지 않는 세계의 풍경을 묘사하기 위해 김성수는 도경이 마약에 찌든 부랑아 작대기(김원효)를 의도치 않게 살해하는 옥상 신, 조선족 갱단들과 도경이 벌이는 빗속의 자동차 추격 신, 검찰수사관 도창학(정만식)에게 도경이 피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는 사무실에서의 린치 신 등을 차근차근 쌓아나간다. 공간의 함의와 조형에 기초한 김성수의 장면 연출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폭력과 유혈이 도처에 널렸으며 그 소용돌이에 휩싸인 사람은 누구도 탈출할 수 없으리라는 강력한 신호를 전달한다. 공간의 프레이밍 전략은 헤어날 길 없이 갇힌 존재들의 비의(悲意)를 보여주는 폐쇄성에 기초하고 있다. 고문과 구타, 칼질을 포함하여 잔인한 유혈의 장면들 중 대학살로 점철된 클라이맥스 시퀀스는 공간의 시각화라는 관점에서 역사에 남을만하다. 거의 140분에 육박하는 영화에서 이 시퀀스는 서사의 흐름이 지루한 수준으로 끌려갈 즈음 다시 스릴이 넘치는 광경으로 되돌리는 기능을 한다. 장면 연출의 초점은 수직의 복도에서 벌어지는 자비가 없는 폭력이다. 모든 인물이 벌이는 권력 투쟁과 충성심, 힘의 우열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물들의 위치에서 절정에 이르며 장례식장의 좁고 수직으로 난 복도에서 극적인 방식으로 파열된다. 김성수의 연출은 도경과 그의 충직한 동생 선모의 쟁투가 벌어지는 복도와 박성배와 김차인의 수하들이 벌이는 장례식장 복도의 살육극을 나란히 배치한다. 두 개의 복도(도경-선모, 성배-차인)는 기하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형제애를 기반으로 했던 도경과 선모의 투쟁, 이권과 권력욕에 눈이 먼 성배와 차인의 대결은 남성적 유대가 파탄 난 세계의 지옥도를 그려 보인다. 각각 경로를 통과한 도경과 성배가 피의 복도에서 마주하게 되는데 누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없이 냉혹한 최후를 맞이한다. 아무려나 우정과 형제애가 사라졌을 때 온 세계는 파괴되고 말 것이다. 이 시퀀스의 촬영과 편집은 도경과 선모가 드잡이 싸움을 벌이는 복도, 성배가 고용한 조선족 갱스터와 차인을 호위하는 검찰 병력의 충돌이 빚어지는 장례식장 복도의 수직적 형상을 강조하는 기교들을 활용하여 구도와 앵글, 사이즈, 조명, 액팅의 세트피스를 보여준다. 시퀀스의 초입에 천장에서 떨어져 대롱대롱 매달린 형광등은 초기 설정의 용의주도함을 입증한다. 흔들리는 빛의 특성과 텍스쳐는 현실과 은유적인 차원 모두에서 죽음이 도열하는 이 수직의 공간을 편집증적인 불안으로 세팅하면서, 성배와 도경이 최후를 맞는 대단원에서 시각적으로 절정에 달하는 그 기능(앞뒤로 흔들리며 죽음의 풍경을 비추는 빛)을 예비하고 있다. 공간 연출의 성취는 벽들이 프레임의 1/3을 점유한 복도 공간에서 총 하나를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육박전을 벌이는 도경과 선모, 좌우대칭의 비좁은 벽 사이에서 조선족 갱단에 도륙당하는 창학, 길게 수직으로 난 장례식장 홀에 쌓이는 시체들의 조형 방식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시퀀스의 목표는 어느 누구도 품위가 있거나 호감이 가는 인물이 없는 이 세계에서 아둔한 남자들이 끊임없이 음모를 꾸미고, 서로의 목을 조르며, 경쟁 상대를 쓰러트리려 발버둥 치는 형상을 묘사한다. 안남 시라는 가상의 무대 구축은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 또는 이해할 수 있는 것 너머로 이동을 허용함으로써 언캐니한 공간감을 조성하고 도시의 음영에 대한 극단적인 표현은 불가능한 정도의 밀도와 깊이를 전달한다. 갱스터 장르에 대한 김성수의 폭넓은 이해와 공간 연출은 낮은 조도의 조명과 더치 앵글, 대담한 색상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활기를 통해 안남이 대한민국의 어느 도시라기보다는 ‘씬 시티’에 가까워 보이도록 만든다. 도시 정체성에 대한 묘사는 의미심장한데 안남은 도시 구조에 자율적인 존재감을 부여하는 수많은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분별되는 구역들의 경험은 독특하며, 각각의 구역은 고유한 물리적 특징은 물론 현실 세계의 구조를 압축하고 있다. 도시 갱스터 장르에 대한 감각과 비트를 내장한 하드코어 액션 장면들에서 뛰어난 공간 연출은 장례식 시퀀스 외에도 몇몇 장면들로 선행적으로 축적된 바 있다. 대표적으로 도경의 SUV 차량과 갱단이 탄 승합차가 격렬한 파열음을 내며 경합하는 체이스 시퀀스에서 도경의 차 안에서 번쩍이는 붉은 등과 푸른 화염, 가드레일을 충격하는 동안의 불꽃 등이 사이키델릭 조명을 대신한다. 먹이사슬 구조의 억압과 고통을 광적으로 분출하는 도경의 폭주는 비에 젖은 도로의 번들거림, 수직, 수평으로 교차하는 빗줄기의 미장센과 조응하여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기만 할 뿐 도무지 벗어날 길이 없는 암흑의 터널 안에 갇힌 인간의 조건을 시각적으로 기술한다. 이모개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차의 안과 바깥을 오가며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괴성을 지르는 한 남자가 구제의 가능성을 상실한 채 지옥에 억류되어 있는 모습을 묘사한다. 선함과 온기를 거둔 정우성의 악에 받친 연기는 흑적색으로 물든 멍자국들, 퉁퉁 부은 눈두덩, 독기를 품은 욕지기로 폭발한다. 허무주의적인 배음과 그림자의 극단적인 사용, 양식적인 구도는 압도적인 불길함을 조성하면서 대비의 인상을 강화한다. 무고한 피해자들과 달리 모든 인물들이 완전히 무참하고 버림받은 채 잔인하게 살해되는 영화의 결말은 도덕적 신념 체계를 완전히 거부하며 진실과 도덕, 선의에 대해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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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먼 망루의 표면으로 굵은 물줄기가 쏟아지고 크레인으로 운반한 컨테이너를 타고 경찰특공대가 건물 옥상으로 내려온다. 건물의 계단 아래에서는 갑옷을 두른 진압 경찰들이 위압적인 소리를 내면서 치고 올라온다. 물리적으로 대항하기 어려워진 시위대는 망루 안으로 후퇴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망루에 좁게 난 구멍을 뚫고 화염이 솟구치는 광경이 보인다. 처음에 구멍은 두세 개 정도였으나 불길이 번지면서 여기저기서 불기둥이 구멍을 뚫고 분출한다. 사위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면서 불길은 시위대 5명과 경찰관 1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2009년 1월 19일 용산 남일당 옥상 망루에서 발생한 참사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 두 개의 문 >(2012)의 카메라는 망루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용산은 미군 기지가 있던 서울 중심부 지역으로 술집과 성매매 업소 등이 밀집되어 있고 미군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후 개발업자들이 새로이 입주하여 지역을 재생하고자 한 특별한 내력을 가진 공간이었다. 일부 세입자들이 이주를 거부하면서 활동가들과 함께 시위를 벌였는데, 당국은 철거민 시위대가 기대했던 대로 그들의 요청을 경청하기는커녕 야음을 틈타 무력 진압, 해산에 나섰다. 그제까지 경찰의 진압 작전은 시위대를 화염병 투척으로 격화시키는 데만 기여했다. 이후 건물 내부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농성 중인 시위대를 제거하기 위해 건물을 경찰특공대 병력이 추가 투입되면서 시위대는 남일당 망루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이게 된다. 비극적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전조들이 있었으나 중단되지 않은 작전 명령으로 인해 철거민들 중 일부는 망루에 올라간 지 25시간 만에 주검이 되어 내려왔다. 이후 재판에서는 화염병을 제조하여 저항하는 불법적 폭력 시위가 참사의 근본 원인이었다는 검찰의 주장과 이명박 정부의 시위 대응, 공권력의 무리한 진압 작전, 오판이 비극을 낳았다는 대책위를 중심으로 하는 진단이 맞섰다. 상반된 주장이 경합하는 재판정에서 쟁론이 오가는 과정까지를 따라잡은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의 김일란, 홍지유 감독은 경찰의 증언 및 진술조서, 채증 영상 등 발견된 이미지, 말과 글, 소리의 조각들로 플롯을 구성한다. <두 개의 문>의 아젠다는 ‘현실’이 아니라 ‘현실의 공백’이다. 드러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주리라 기대했던 이 영화가 가리키는 곳은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가? 가 아니다. 정확히는 존재와 인지의 부조화, 실재하지만 우리들이 인식할 수 없는 곳에 있는 진실이며, 나아가 진실에 다가갈 수 없는 재현의 무력함을 화제 삼는 것이다. 참사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철거민들의 입장만을 넓게 수용하지 않은 이 영화가 제시하는 다양한 자료 화면들은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자동반사적으로 택하게 되는 진상의 규명, 책임에 대한 판정, 희생에 대한 위로라는 통과의례를 따르지 않는다. 높아졌다가 잦아지기를 반복하는 불구덩이 안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화재의 원인은 무엇이었고, 문밖으로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안녕한지에 대한 자막이나 기술도 뚜렷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날 밤의 타임라인을 따라 참사의 주변부에 있던 경찰 지휘관, 용산철거민사망진상조사단과 용산참사변호인단의 조사와 탐사, 인터넷 저널리스트의 인터뷰, 경찰 발(發) 채증 영상과 재판의 증인 심문 오디오 파일, 과학과 합리의 프레임으로 그날을 해석하는 전문가들의 의견, 질서유지를 명분으로 진압 작전에 가담한 사람들의 기록 등이 번갈아 편집된다. 사지로 내몰린 경찰특공대원들 또한 희생자라는 판단이 들게끔 하는 시청각 이미지의 논리는 어떤 수단을 동원하여도 밝혀질 수 없는 불 속의 일들을 바라보게만 하고, 나아가 여기에 모인 사건 당사자들 가운데 누락된 책임자는 누구인가를 떠올리도록 만든다. <두 개의 문>을 둘러싼 쟁점은 누군가에게 명백해 보이는 참사의 인과관계에 대한 논평을 이 영화가 쉽게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제작진들은 철거민들과 오랜 시간 함께 했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할 만도 하였으나 한 편에 서는 것을 자제한다. 김일란, 홍지유 감독은 발견 영상들을 편집의 재료로 삼아 영화를 역사의 법정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영화가 제기하는 딜레마는 판관(判官)의 위치에 우리를 앉혀두고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는 일이 곤란하다는 것이다. 하룻밤 사이 망루에서 이루어진 진압작전의 이모저모를 모은 증언과 기록이 동원되는데 끝으로 갈수록 영화는 다큐멘터리의 재현 방식, 그 효용성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판관의 자리에 관객을 두게 함으로써 또는 투명한 재현의 불가능성을 강변함으로써 어떤 효과가 발생하는가? 법원은 경찰의 작전이 법치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결론으로 재판을 끌고 가면서 살아남은 철거민 4명을 구속수감하는 결정을 하는데 이러한 주장만으로 참사는 납득되지 않는다. 제한된 자료를 가지고 어떻게 특별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탄생하는가? 충분히 해명되지 않는 현실의 공백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현장 기록과 보도, 인터뷰, 재연 영상을 배열한 플롯은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려는 노력과 함께 비극이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것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동의가 없는 부검 시도와 연쇄살인사건 보도에 묻히는 참사 등 최근 한국 정치사에 익숙한 관객들이라면 억압적인 우익 정권이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끔찍한 장면이 오버랩될 수도 있다. 영화는 경찰 집단이 잘못했다고 믿으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고 말하며 이를 입증하려는 듯 상부의 명령을 따르는 과정에서 그들의 곤경에 공감하게 되는 순간들을 제공한다. 그렇다고 해서 경찰의 행동이 올바르거나 선한 것으로 말해질 수 없지만 어쩌지 못하고 떠밀려 갔던 상황 속으로 우리도 함께 밀려 들어가는 듯한 언짢은 연루의 느낌을 주는 것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경찰특공대들이 극한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다양한 자료의 뒷받침을 통해 서술되고 있으며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황으로 저들을 밀어 넣은 상부의 작전 계획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절박하게 서로를 맞닥뜨리게 되었을 철거민과 진압 경찰들. 불 속에서 저들의 막다른 대면은 어떤 지옥을 연출하였을까? <두 개의 문>의 스타일 전략은 한국 다큐멘터리의 미학적 분기점이 되었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추구하는 진실의 탐구가 현상적인 사실에 머물지 않고 보이지 않거나 볼 수 없는 공백을 향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인식이 기초하고 있다. 생사여탈의 현장에서 발췌하여 영화에 삽입된 “모두 입구로 가서 밖의 공기를 마시고 있는데, ‘다 죽어’하는 목소리가...”라는 말은 둘 이상의 의미로 해석된다. 목소리의 주체가 누구인가, 맥락은 무엇인가에 따라 상반된 해석이 가능한 것처럼 세계의 진실은 모호하고 그것을 승인하는 영화의 수단은 보잘 것 없다는 믿음이 이 영화에는 내재해 있다. 영화를 연출한 공동감독들이 철거민과 진압 경찰의 입장 모두를 공평하게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 하나의 입장, 두 개의 입장, 다수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말은 영화의 윤리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진실이 우리가 알 수 없는 곳에 있으며 하나 또는 둘, 그 이상의 증거들을 가지고 승인될 수 없음을 자인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이 뼈아픈 자성은 새로운 차원으로 우리를 이동시킨다. 따라서 <두 개의 문>은 억압적인 정권의 모습과 그 정권을 유지하는 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를 말하려는 영화가 아니다. 진실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의 수단, 즉 기록과 인터뷰, 의견과 해석, 재연 등이 모두 말해줄 수 없는 곳에 웅크린 진실을 겨냥한다. 이 부조리하고 무기력한 세계에서 진실을 발견하고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카메라가 아니다. 사태를 관망하는 자리에 놓이게 되는 관객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한 명징한 해석보다 왜 문 안의 진실은 이야기될 수 없으며, 그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하나의 결론으로 판정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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