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어
- 감독
- 넬리 까쁠랑
- 제작년도
- 1987
- 출연
- 사미 프레이, 안 자까리아, 프랑소와 브리옹, 미셰린 프레슬, 헤인즈 베넨, 잉그리드 카벤, 라버트 프라이터그, 챈털 브라너, 마르탱 프로보스트, 롤랜드 브라이트, 프랜신 커스터, 니콜 두해멀, 클로드 머코프스키, 프랑소와 마예, 로즈-마리 니콜라스, 리즈 라무, 미쉘 비알라
강물은 유유히 흐른다. 햇살에 반짝이는 잔잔한 강물은 무심한 듯 아무 말이 없다. 아이들은 강가 옆 풀밭에서 천진하게 놀고 있고, 새들이 지저귀는 맑은소리와 조용히 흐르는 강물 사이로 한가로운 여름날의 모습이 보인다. 평화롭고 잔잔한 풍경 뒤로 어린 소녀의 주검이 강물에 흘러 떠내려온다. 그 주검 옆으로 영화의 제목인 < 시 >( 이창동 , 2010)의 필체가 그려진다. 너무나 강렬한 <시>의 첫 장면이다. 소녀의 시체와 <시> 상극인 두 세계의 매치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어서 나오는 병원 씬. 의사는 미자에게 “그거 기분 나쁘네요?”라며 반문한다. 일상의 단어들이 종종 생각이 안 나고, 잘 잊어버린다는 말에 감독은 의사의 입을 통해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 앞으로 미자의 세계에 기분 나쁜 일 이 펼쳐질 수 있음을 예고한다. 시는 아름답다. 글자에서 주는 어감과 은유적 단어들이 주는 창조적 상징들은 아름다우면서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생각하게 한다. 이창동 감독의 시는 이런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미자의 내면과 그녀가 처한 차가운 현실 세계를 교차해서 보여주며 과연 두 세계는 양립할 수 없는가? 이분법적으로만 구별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극중 김용탁 시인은 문화센터 수강생들에게’본다’ 에 중점을 두며 가르친다. 일상의 모든 것 들에게 마음을 주며 진심으로 대한적이 있냐고, 깊이 들여다 본적이 있냐고, 이제까지 본건 진짜로 본 게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지만 김용탁 시인이 말한 것처럼 자세히 보지 않는다. 그냥 습관처럼 지나칠 뿐이다. 시를 쓰려면 자세히 봐야 하고 그 봐야 하는 대상은 현실의 세계인 있는 일상의 공간뿐이다. 미자는 쓸쓸한 강물, 떨어지는 살구, 들판에 핀 아름다운 꽃을 보며 시상을 떠올리지만 매일 하는 설거지 통에서는 쉽게 발견하지 못한다. 시 낭송회에 갔다가 순수한 시를 읊는 자리에서 저질스런 농담하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처음부터 그녀는 시와 일상은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인식했다. 아름답고 순수한 것만 ‘시’라고 생각한 것이다. 손자가 성폭행의 가해자지만 아무일 없는 것처럼 무심하게 행동하고, 소녀의 영정사진 앞에서 그냥 밥을 먹고, 별일 없는 것처럼 친구와 몰려다니며 게임을 하고 똑같이 학교생활을 이어나가지만 미자는 괴로워한다. 소녀가 자살했을 거라고 추정되는 다리에 올라가 소녀의 마음을 헤아린다.. 바람결에 모자가 강물에 떠내려가는걸 보고 소녀의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굵은 소나기. 시 노트에 한 방울 두 방울 비가 쏟아지는 장면은 어쩌면 소녀의 눈물이 고스란히 미자에게 다가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렇게 현실에서 소녀의 죽음을 자세히 관찰하며, 마음을 쏟고, 깊숙이 들여다봤다. 다른 가해자의 부모나, 슈퍼의 동네 아줌마들이 거들떠 보지 않았던 소녀의 죽음을. 그녀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진짜로 보는 것, 진짜로 마음을 쏟고, 깊이 들여다 보는 것을 이미 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수강생들 중 유일하게 그녀만이 시를 완성한다. 모두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말했지만 그 말을 시로 표현해 내지 못했다. 시는 시로써, 일상은 일상으로써 그렇게 그들은 시와 현실은 엄연히 다른 경계에 서 있음을 확증하며 그 이면의 다른 것들은 깊숙이 들여다 보지 않았다. 누구나 다 시를 쓸 수 있지만 시를 쓰려는 그 마음을 먹기가 어려운 것처럼. 과연 ‘시’란 어떤 것일까? 단순히 어렵고 이해하지 못할 은유들로 가득한, 범접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존재일까? 미자가 그토록 쓰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시’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아름다운 것과 인간의 추악함이 가득한 일상의 곳곳에서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혜안의 열쇠일까? 평범한 우리들에게 시가 열리는 그 순간은 올 수 있을까? 미자 역을 맡은 윤정희는 60년대 3대 트로이카로 불릴 정도로 빼어난 외모에 다양한 연기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배우다. 이창동 감독의 권유로 15년만에 출연을 결심했다던 그녀는 영화에서는 여타 60대 중반의 할머니와는 다른 톤의 연기를 보여준다. 일단 말투와 어감, 옷 입는 차림새, 생각하는 것, 시를 쓰는 것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세대 또래와는 다른 모습이다. 감독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미자’라는 인물은 영화 속에서 독특하게 묘사되며 그 캐릭터에 잘 녹아든다. 이제까지 감독의 전작에 나왔던 배우들과는 다른 질감이다. 영화 속 에서의 모습과 실제 우리 주변에서도 그런 독특함이라면 충분히 공감할만한 연기를 2시간 내내 보여줬다. 그 특유의 말투에 이질감이나 이상한 부분은 느낄 수 없었다. 영화 속 캐릭터의 특이성이 잘 발현된 배우의 모습으로 다가왔고 그 부분이 미자와 잘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창동 감독은 전작 밀양에서 신애(전도연)을 통해 피해자의 입장에서 용서를 이야기 했다. 그녀는 그 힘듦을 종교적인 구원으로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 했지만 가식적인 교회 사람들과. 자신이 불행할거라 단정지으며 불쌍히 보는 사람들에게 실망하며 교회를 등진다. 그리고 ‘자살’이라는 행동으로 모든걸 끝내려 한다. <시>에서는 밀양과는 반대로 가해자 입장에서의 용서를 말한다. 그 용서와 속죄의 중심에는 아름다운 ‘시’가 있다. 두 영화 다 ‘용서’를 말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조금 다르다. 밀양은 마당에서 머리를 자르는 신애의 모습 옆으로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비추며 끝을 맺는다. 마지막에 은은하게 내리쬐는 그 햇볕의 의미는 뭘까? 그래도 세상은 한줄기 희망이 아주 미세하게나마 남아있다는 뜻일까? 아무런 설명 없이 빛으로 끝나는 이 장면은 깊은 여운을 준다. 그나마 이 빛이 조금이라도 세상 여러 곳곳에 비춰졌으면 하는 희망으로 보인다. <시>는 흐르는 강물위로 미자가 썼던 ‘시’만 나오고. 그녀는 자취를 감춘다. 긴 강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모습은 그녀의 자살을 의미하지만 영화 속에선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밀양의 희망과 달리 시는 속죄의 의미로 죽음을 택했다. 누군가는 희생되어야 하는지..감독의 선택에서 냉혹하리만치 아픈 현실을 보여준다. 시와 현실이 동일시 된다면 시의 완성으로 그녀는 존재해도 되지 않을까? 육체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져야 했을까? 영화의 마지막. 학교의 교실, 운동장, 과학실, 배드민턴을 쳤던 빌라 앞 마당, 마을버스의 정류장, 피해자 가족이 살고 있는 동네어귀, 소녀가 자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강물 위 다리, 그리고 희진의 미소 띈 얼굴이 보인다. 급격한 파도와 풍랑을 겪은 후 다시 일상의 모습들을 카메라는 천천히 훑는다.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동네에서 삼삼오오 모여 놀거나 담소를 나눈다, 강물은 첫 장면처럼 변함없이 유유히 흐른다. 모든 게 그대로인 일상. 이 평온한 일상에서 우리가 놓치고, 흘려 보낸 건 무엇일까? 이 영화는 미자가 손자를 스스로 경찰에 넘김으로써 영화적 소명을 다 했다. 만약 현실이라면 부모들은 사고를 친 아들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며 어떻게든 보호하려 위해 애쓸 것이다. 절대로 먼저 본인들 손으로 경찰에 넘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결코. 현실에서는 부모라면 할 수 없는 일이 영화 속에서 실현 되었다. 그리고 그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이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지만 할 수 없는 일들을 실현시키며 관객들을 일깨운다. 그렇다면 좋은 영화를 보고,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룬 영화들을 본다고 해서 윤리적인 면죄부를 부여 받을 수 있을까? 이런 영화들을 보며 과연 내 태도는 어때야 하는지, 내 마음가짐의 자세는 어때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일상의 잔잔함 속에서 시와 현실의 세계. 나아가서 영화와 현실의 세계에 대한 간극은 좁혀지고 더 많은 공감과 이해로 우리들을 이끌어 줄 지 모르겠다. 그건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대불 +> 작년에는 전반적으로 흉작 또는 주목할 만한 영화가 없었다는 평들이 많지만, 아시아(독립)영화들로 보자면 나름대로 의미 있고 흥미로운 한 해였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성장하는 영화산업 규모와 더불어 급격하게 변화와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등장하는 새로운 세대의 아시아 영화들 또는 주목할 만한 감독들, 혹은 어떤 경향을 보여주는 몇몇 작품을 통해 돌아보는 2017년 아시아독립영화에 대한 일종의 일람표이자 짧은 코멘트. 올해 중화권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영화는 <대불+>이다. 동명의 단편영화를 장편으로 확장하면서, 아이폰과 아이폰 플러스의 차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대불+>로 타이틀을 붙인 이 대담하고 어두운 블랙코미디 영화는 대만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주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오던 후앙신야오 감독의 첫 번째 장편극영화인 <대불+>의 탄생과정에는 <일로순풍>과 <실혼>의 감독 청몽홍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추앙신야오의 단편을 본 청몽홍 감독이 자신이 제작자로 참여할 테니 장편 버전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던 것. 각본가이자 감독인 청몽홍이 촬영감독으로 참여할 때는 ‘나카시마 나가오Nakashima Nagao’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데, <대불+>에는 제작자로 그리고 촬영을 맡으며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그리고 <일로순풍>에 출연했던 배우 대립인(다이리 런, 레온 다이-배우 계륜미의 연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홍콩 우산혁명에 대한 적극적 지지 이후 중국에서의 활동에 상당한 제한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 불상공장의 사장 케빈 역으로 출연해 중심을 잡아주었다. 영화는 거대한 청동 불상을 제조하는 공장이 배경이다. 공장 야간경비원 피클은 고물수집상이자 친구인 벨리 버튼과 함께 매일 밤 도색잡지나 뒤적이며 시간을 보낸다. 무료해진 둘은 공장 사장인 케빈의 고급차량에 달려있던 블랙박스 영상을 돌려보기 시작하는데, 사장의 은밀한 사생활과 불륜이 담긴 영상을 보던 중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우연히 스치듯 만난 적이 있는 사장의 내연녀와 한밤의 살인사건, 사라진 그녀, 최근 공정보다 훨씬 빨리 완성된 거대한 불상, 그리고 피클과 벨리 버튼에게 다가오는 위협의 그림자. 세련된 만듦새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대담한 형식적 실험을 시도하는 <대불+>은 대만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코엔 형제를 연상시키는 블랙코미디,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확장하는 사건의 고리 등으로 상당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두 가지 정도를 언급하자면 우선, 흑백과 컬러의 대비를 통한 계급 관계에 대한 노골적인 언급. 피클과 벨리 버튼이 등장하는 비루한 일상은 흑백으로, 사장 케빈이 등장하는 블랙박스 영상은 컬러로 처리하는데, 소외계층의 파토스를 담고 싶었다는 감독의 설명처럼, 영화는 둘의 비루함과 무력감은 단조로운 모노톤으로 담아내고, 사장 케빈의 일상이나 정치인, 종교인, 지역 유지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선명한 컬러로 담아내면서 분명한 의도를 드러낸다. 그리고 관음증의 세계. 자동차에서 벌어지는 내연녀와의 불륜 장면, 고속도로에서 싸우는 장면이나 러브호텔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는 장면 등은 실제 블랙박스 영상처럼 보이는데, TV에서나 접하던 가진 자들과 유한계급들의 은밀한 세계를 피클과 벨리 버튼과 함께 엿보면서 관객들도 두 세계를 함께 오가는 영화적 체험을 하게 된다. <살인자 말리나의 4막극>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2017년 단연 주목받았던 국가는 인도네시아다.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몰리 수리야 감독의 <살인자 말리나의 4막극>은 한 여성이 자신이 살해한 남성의 잘린 머리를 들고 경찰서로 가서 자수한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거장 가린 누그로호가 작업한 3페이지의 트리트먼트로 시작된 프로젝트이자 부산국제영화제 APM에서도 주목을 받았던 작품. 인도네시아 동부 숨바섬의 아름답지만 황량한 느낌의 사막을 공간으로, 복수와 구원이라는 서부극의 전통적인 모티브를 살짝 변형하고 여러 장르를 혼합한 독특한 형식과 색깔로 올해 최고의 아시아영화로 호평받았다. 잘린 남성의 머리를 들고 경찰서에 가기 위해 황토색 사막을 가로지르는, 서부극 카우보이 같은 말리나의 이미지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영화로 인도네시아 예술영화를 주도하는 최고의 제작진이 참여해 프로덕션 디자인, 촬영, 음악까지 최상의 결과물로 완성했다. 상반기에 <살인자 말리나의 4막극>이 있었다면 하반기는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초청된 <거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로 세계를 매혹했던 카밀라 안디니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단연 주목을 받았다. 병상에 누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쌍둥이 남동생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 어린 동생을 떠나보내야 하는 누나 탄트리의 내면과 불안한 심리가 춤과 노래, 그리고 놀이를 통해 환상적이고 마법적인 이미지들로 펼쳐진다. 3년전 론칭한 토론토국제영화제의 첫 경쟁부문인 플랫폼은 주로 서양권 영화들로 채워지는데(<문라이트>와 <재키>와 같은 영화들이 여기서 경쟁했다) 아시아영화로는 드물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초청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인도네시아 독립 예술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이자 든든한 후견인을 자임하는 가린 누그로호의 딸로도 잘 알려져 있는 카밀라 안디니는 족자카르타에서 감독, 제작자인 이파 이스판샤와 함께 족자카르타 영화학교에서 강의와 연출지도를 하고 있다. 족자카르타에서는 매해 12월이면 족자-넷팩아시아영화제가 열리는데, 가린 누그로호와 이파, 그리고 감독 이스마일 바스베스(<회전목마는 멈추지 않는다>)가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2016년에 4천 명 정도에 불과했던 관객 수가 올해의 경우, 3배 가까운 12,000명 정도로 증가했고, 무엇보다 관객들이 대부분 20대나 대학생들이어서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지난 2004년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마련한 특별전 <가린과 넥스트 제너레이션: 인도네시아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에서 가린 이후 그의 제자, 후배 감독과 제작자들이 새로운 산업적 토대와 미학구축을 통해 성과를 거뒀고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적이 있는데, 당시 하나의 주요한 경향이자 동력으로 언급했던 ‘여성파워’가 여전히 유효함을 확인할 수 있는 2017년이었다. <섹시 두르가> <뉴턴> 마지막으로 인도영화. 방대한 시장에 비해 독립. 예술영화는 여전히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인도영화는 2013년 <런치박스>의 국제적 성공(2008년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미친 영화도 아주 크다) 이후 새로운 변화를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발리우드 상업영화의 자장 아래서 예술. 독립영화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테스트가 활발한데, 2017년의 경우는 그 가능성의 희망을 본 해이기도, 절망을 확인한 해이기도 하다. 시작은 로테르담영화제에서 타이거상을 수상한 사날 쿠마르 사시다란 감독의 <섹시 두르가 Sexy Durga>다. 시나리오는 물론 스토리도 없이 배우와 소규모 팀을 꾸려 22일 동안 촬영한 이 저예산 말라야람어 영화는 인도 북부출신 여성과 케랄라 출신 남성이 야반도주를 시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둠이 짙게 내린 도로를 따라 역을 향해 걷는 커플에게 지나가는 승합차의 남성들이 합승을 제안하고, 차량에 올라탄 이들은 지옥을 경험한다. 다문화, 다인종으로 구성된 인도 사회에 내재된 공포를 그로테스크하게 담아내며 호평을 받은 영화지만, 오랫동안 인도 영화계를 짓눌러온 검열의 날을 비껴가진 못했는데, <S. Durga>로 제목을 바꾸고 일부 장면을 덜어냈지만 지금까지 자국 내 상영은 물론 개봉까지 험난한 과정을 겪고 있다. 2017년 인도독립영화인들에게 가장 큰 희망과 기대를 안겨준 작품은 아미트 마수카 감독의 <뉴턴>이다.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에서 첫 공개된 이 영화는 마오주의 반군과 정부군이 대립하고 있는 차티스가르주 분쟁지역을 배경으로, 갓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대기 중인 뉴턴이 이 지역주민들의 투표지원 업무에 자원하면서 생기는 과정을 따라간다. 강직하지만 융통성 없는 공무원 뉴턴과 지역을 관할하는 정부군 소속 군인들, 그리고 선거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변방 마을 주민들을 통해 인도 사회를 재치 있게 풍자하는 이 블랙코미디는 인도독립영화인들과 시네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으며 새로운 대안 영화로까지 평가를 받은 작품. 이후 개봉을 통해서 나름의 성과를 거뒀으며 특히 쟁쟁한 상업영화들을 제치고 2018년 아카데미영화상 외국어영화상 부문 인도 출품작으로 선정되어 화제를 모았다. 아쉽게도 <섹시 두르가>는 아직 한국에서 소개된 적이 없으며, <뉴턴>의 경우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된바 있다.
90년대 말. 영화적 테크놀로지가 극대화되자 할리우드엔 다시 재난영화의 바람이 불었다. 70년대 재난물이 화려한 올스타 캐스팅에서 오는 캐릭터들의 재미였다면 90년대 말에 불어 닥친 재난물의 주인공은 단연 비주얼이었다. 가공할만한 시각효과와 압도적인 입체음향으로 그 어떤 아날로그 효과로는 구현할 수 없던 영상과 소리를 얻게 되자 재난영화는 날개를 달았다. 1995년 역사에 기록된 우주적 재난을 다룬 < 아폴로 13 >을 필두로, 96년엔 토네이도의 위력을 실감 나게 묘사한 < 트위스터 >와 람보가 터널로 들어간 < 데이라잇 >이, 97년엔 두 편의 화산 영화 < 볼케이노 >와 < 단테스 피크 >, 그리고 흥행 기록을 다시 쓴 < 타이타닉 >이 개봉됐다. 98년엔 소행성이 두 번이나 지구를 찾아 < 딥 임팩트 >와 < 아마겟돈 >이 쌍끌이 흥행을 기록했으며, 폭우를 다룬 < 하드 레인 >과 산불을 다룬 < 파이어 스톰 >이 제작되며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유행에 불을 지피고 확실한 인장을 찍은 건 1996년 전미/세계 박스오피스 1위에 빛나는, 외계인 침공의 SF 재난영화 < 인디펜던스 데이 >였다. 90년대 각종 재난영화들 영화는 크게 외계인의 침공을 받는 7월 2일, 반격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마는 7월 3일, 해결책을 찾아내고 최종 결전에 나서는 7월 4일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어윈 앨런표 고전 재난물처럼 여러 인물들과 상황에 포커스를 맞춰 고난에 맞서 싸우고 극복하는 모습들을 담아낸다. 그러나 팍스아메리카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날짜와 제목에, 외계인을 맨손으로 때려잡는 조종사와 닭살 돋는 연설을 늘어놓고 직접 전투기를 몰고 출격하는 미국 대통령, 맥OS와 호환되는 외계인 컴퓨터에 바이러스를 침투시켜 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이나 너무나도 흔해빠진 음모론 로스웰사건까지 난입하며 황당무계하고 게으른 설정과 오글거리는 캐릭터들로 재난 영화에 필수 덕목으로 자리 잡은 희생정신과 감동스토리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채, 멍청하고 한심한 영화, 미 패권주의 영화로 낙인찍히고 놀림 받는다. 그러나 이전까진 볼 수 없었던 화끈하게 터져나가는 백악관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거기에 하늘을 뒤덮는 장관의 거대 우주선과 외계인과 지구인 간의 공중전, 도시의 아비규환 등을 담은 다양한 볼거리로 단순한 플롯과 바보 같은 설정을 마취시키며, 미국에서만 3억 불, 전 세계적으로 8억 불이 넘는 흥행을 기록해 롤랜드 에머리히의 지구파괴 미학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후 그는 < 투모로우 >와 < 2012 >에 이르며 더 강렬하고 큰 스케일로 지구를 초토화시키며 이 분야의 독보적인 대가로 자리 잡았다. 물론 애국심을 잔뜩 고취시키는 장엄한 음악으로 영화 보는 동안이나마 논리적인 사고를 마비시킨 데이비드 아놀드의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데이비드 아놀드 1993년 학창시절 친했던 대니 캐논 감독의 요청으로 < 영 아메리칸 >의 음악을 맡아 데뷔한 데이비드 아놀드는 그 사운드트랙에서 같이 작업한 브욕의 ‘Play Dead’로 UK차트 12위까지 오르며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런 그의 탁월한 멜로디 솜씨를 주목한 롤랜드 에머리히와 딘 데블린 콤비는 자신들의 첫 번째 협업작 < 스타게이트 >를 위해 데이비드 아놀드를 픽업했고, 마치 < 아라비아의 로렌스 >에 < 스타워즈 >를 섞은 듯한 이국적이고 장엄한 에픽 사운드로 찬사를 이끌어내며 새로운 스타탄생을 알렸다. 실패한 서부극이지만 역시나 웅장하고 서정적인 스코어로 숨은 걸작 사운드트랙이란 평을 받은 < 라스트 도그맨 >을 거쳐 다시 에머리히/데블린 콤비와 뭉친 <인디펜던스 데이>은 포스트 존 윌리엄스라는 극찬을 안기며 그를 성공적으로 메이저에 안착시켰다. 단 네 작품 만에, 3년이란 단기간에 그가 이룩한 업적이었다. 이어 18번째 007시리즈 < 네버 다이 > 음악에 전격적으로 기용, 존 배리가 빠져나간 빈자리를 전통적인 사운드에 신세대적인 감각을 덧입혀 훌륭하게 메꿨으며, 비록 흥행엔 실패하고 말았지만 음악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던 < 고질라 >를 담당해 ‘사이즈의 영화음악’의 진수를 펼쳐 보였다. 그러나 너무 일찍 터트린 샴페인이었던 걸까. 그는 그 이후 인상적인 결과물을 낳지 못했다. 5편의 007 시리즈와 존 싱글턴과 마이클 앱티드 감독과의 유대, 에드가 라이트 같은 젊은 피와의 작업을 통해 다양한 사운드 지평을 넓혔지만, 데뷔 초기 그가 보여줬던 놀라운 임팩트에 비하면 현재의 필모가 다소 주춤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다만 최근 BBC 드라마 < 셜록 >의 성공과 30회 런던올림픽의 개·폐막식 음악 감독을 맡으며 역량을 다시금 뽐내고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인디펜던스 데이>의 음악은 전통적인 할리우드 스코어의 규범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데이비드 아놀드는 최대한 신디와 일렉트릭 악기를 배제한 채 100인조에 이르는 풀 오케스트라와 46인조의 코러스를 대동해 압도적인 고전 심포닉 사운드의 위용을 펼쳐 보인다. 마치 존 윌리엄스로 대표되는 70년대 재난물과 80년대 블록버스터의 기운을 모두 한데 합쳐놓은 이 엄청난 스코어의 박력은 지구를 박살 내는데 혈안이 된 에머리히의 비주얼적 야심에 못지않다. 그는 특히나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3개의 인상적인 라이트모티프를 가지고 인간과 외계인들 간의 혈전에 집중하는데, 가장 귀에 쉽게 들리는 건 <인디펜던스 데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테마, 애국심을 팍팍 고취시키는 영웅적인 팡파르다. 승전보를 알리는 듯 희망적이고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이 곡조는 외계인들과의 전투에서 승리의 단초를 발견했을 때, 전쟁의 주도권을 거머쥐었을 때 얇고 높은 피콜로와 마칭 스네어를 곁들어 군악대스러운 편곡으로도 사용되는데, 브라스와 혼, 퍼커션이 한데 어우러지며 진격의 나팔을 힘차게 불던 과거 전쟁영화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예로부터 전쟁영화음악에 있어 말콤 아놀드나 존 에디슨, 론 굿윈과 벤자민 프랑켈 등 걸출한 작곡가가 많았던 영국이기에 그에 대한 간접적인 영향력도 무시할 순 없을 듯하다. 두 번째 모티브 세 번째 모티브 두 번째 모티브는 휴머니즘을 강조하고 등장인물들의 고뇌와 사연을 풀어내던 멜로드라마적인 테마로 스트링이 주가 되어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로 숨 가쁘게 달려온 영화에 여백과 여운을 불어넣는다. 종종 숭고하고 거룩한 합창대의 목소리를 빌어 더 강력하게 감정선을 자극하지만, 주로 단독으로 쓰이기보다 애국적이고 영웅적인 팡파르와 유기적으로 결합해 극적인 효과를 노리거나 다양하게 파생·변주돼 가족애 및 캐릭터들의 상호 연대감을 복돋아 주는데 주력한다. 마지막 모티브는 외계인 침공을 암시하는 어둡고 무거운 혼돈의 사운드로 울부짖는 혼과 질주하는 브라스를 전면에 배치해 압도적인 힘과 공포감을 느끼도록 설정했다. 마치 존 윌리엄스의 ‘임페리얼 마치’나 홀스트의 행성 중 ‘화성’을 듣는 듯 고전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위압감을 선사하는데, 다양한 퍼커션과 드럼을 활용해 침공에 대한 긴박감과 스케일을 극대화시켰다. 그들의 절대적인 힘 앞에서 무기력하게 당하고 마는 나약한 인간들의 참상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큐이기도 하다. 편곡자이자 지휘자인 니콜라스 도드의 솜씨가 두드러지는 부분으로 이 3개의 주된 선율은 서로 교차하고 충돌하며 얄팍하기 그지없는 영화에 입체적인 깊이와 실감 나는 무게감을 던져주었다. 데이비드 아놀드는 이 사운드트랙으로 그해 그래미상을 거머쥐었다. 사운드트랙은 96년 영화 개봉에 맞춰 BMG에서 발매되었지만 온전한 음원을 다 담은 건 아니었다. 팬들의 성화가 빗발치자 2010년 라라랜드 레코드에서 5,000매 한정으로 CD 2장, 총 130분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완전판을 발매했다. 데뷔 초기 번뜩이던 데이비드 아놀드의 위력적인 사운드와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롤랜드 에머리히는 최근 방한한 자리에서 차기작으로 <인디펜던스 데이> 후속편을 찍겠다고 공언했다. 2015년 7월 3일로 개봉일마저 공개한 상태다. 2000년 <패트리어트> 부터 공동 작업이 불발된 이후 에머리히는 같은 독일 태생의 영화음악가 해롤드 클로저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부디 제발 <인디펜던스 데이> 후속편에선 그들이 다시 재회하길 기대해본다. Victory Track List DISC ONE 1.1969: We Came In Peace 2.S.E.T.I.-Radio Signal 3.Mysto Bridge/Satellite Collision/ Destroyers Disengage/Russell Casse-Pilot 4.First Sighting/AWAC·Attack 5.The Darkest Day 6.Moving Day/Countdown 7.Cancelled Leave 8.Commence Lift-off/Parabolic Indenwhat? 9.Evacuation 10.Firestorm 11.Aftermath 12.Base Attack 13.Marilyn Found 14.Area 51/The Big Tamale/Formaldehyde Freak Show 15.El Toro Destroyed 16.Slimey Wakes Up 17.Target Remains/Rescue 18.The Death of Marilyn/Dad’s A?Genius 19.Alien Ship Powers Up 20.International Code 21.Wedding 22.The President’s Speech DISC TWO 1.Just In Case/Attacker Fires Up 2.The Launch Tunnel/Mutha Ship/Virus Uploaded 3.Hide!/Russell’s Packin’ (The Day We Fight Back) 4.He Did It 5.Jolly Roger 6.Victory 7.End Credits BONUS TRACKS 8.1969: We Came In Peace ?Alt. 9. Destroyers Disengage (No Choir) 10. Cancelled Leave -Alt. 11. Commence Lift-off -Alt. 12. Base Attack (Segment-Film Version) 13. Marilyn Found (No Choir) 14. Target Remains/Rescue -Alt. 15. Dad’s A?Genius -Alt. 16. Attacker Fires Up (Original Version-No Choir) 17. Virus Uploaded -Alt. 18. The Day We Fight Back (Original Version) 19.Jolly Roger -Alt. 20. End Credits (Segment, No Cho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