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드라이버
- 감독
- 김광민
- 제작년도
- 2012
< 룩백 >(오시야마 키요타카, 2024)은 뒷모습에 관한 영화다. 올해의 영화 리스트에 넣긴 난망한, 60분도 채 되지 않는 애니메이션. 그래서 사사로운 리스트에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이 작품을 되새기며 2024년을 되돌아본다. 2024년 극장가의 침체는 원하든 그렇지 않든 크고 작은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생존을 위한 절박함은 때론 예상 밖의 가능성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2024년 극장가의 뒷모습을 보면 세 가지 두드러진 변화가 눈에 띈다. 우선 암울한 소식부터 꼽자면 공연 실황 영화가 늘었다. 예전에는 단발성 이벤트에 가까웠던 공연 실황이 이제는 정기적인 하나의 장르처럼 자리 잡았다. 이걸 ‘영화’라고 지칭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지만 극장이 중심이 되는 상영 콘텐츠라는 점에서 논의를 피해 갈 수 없는 변화임에는 분명하다. 두 번째는 재개봉 영화들의 정기적인 개봉이다. 신작 위주의 시스템에서 이제 과거 영화들이 개봉 리스트에 걸려 있는 것이 당연한 풍경이 됐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어느덧 극장은 과거의 비디오 숍이나 초창기 OTT 플랫폼을 닮아가는 것 같다. 신작 경쟁에 열을 올리는 건 오히려 OTT 쪽이고 극장은 이제 제작 시기와는 상관없는 공간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아카이빙에 일정 부분 자리를 할애한 극장에 대한 인식 자체가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까지 내몰린 건 신작의 축소와 경쟁력 약화 때문임이 분명하지만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이 풍경 자체기 그리 부정적으로 다가오지만은 않는다. 세 가지 풍경은 각각 우려와 가능성 그리고 희망을 품고 있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희망의 풍경은 작은 영화들의 개봉이다. 다양성의 포용이라 해도 좋겠다. 한 시간이 채 되지 않는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본 기억은 20년을 훌쩍 거슬러 올라간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 4월 이야기 >(이와이 슌지, 1998)를 보고 나왔을 때 주변 반응이 아직 기억에 선명하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 이전에 짧은 상영시간에 대한 당혹감이 넘쳐 났던 당시를 생각해보면 당시 극장이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에 얼마나 폐쇄적이었는지 넉넉히 짐작 가능하다.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의 애니메이션 <룩백>은 그동안 한국의 극장 환경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증명하는 좋은 척도라 할만하다. 60분 남짓의 소품 같은 애니메이션이 이렇게 빠르게 정식 개봉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이제는 <룩백>과 같은 형태의 개봉이 이상한 일이 아닌 상황이 됐다. 지금 극장에는 수요만 있다면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가 허용되는 중이고 <룩백>의 30만 관객 동원은 이렇게 마이너한 작품에 공감하고 호응할 준비가 된 관객층이 이 정도로 두텁다는 걸 증명했다. “등 뒤를 봐” 작품 외적인 부분을 길게 언급할 수밖에 없는 건 <룩백>이 한국에 당도한 시기와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룩백>은 작은 이야기다. 소품이라 불러도 좋겠다. 만화가를 꿈꾸는 두 사람이 만나 이인삼각으로 꿈을 향해 매진하는 이야기. 한 줄의 로그라인으로 정리한다면 전형적인 성장담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 같은 설정. 하지만 그 빤하디 빤한 서사가 스며들어 마침내 공감을 자아내는 건 이 작품이 이들의 꿈을 지켜보는 방식 때문이다. 최고의 라이벌이자 동료가 바라보는 꿈의 풍경은 다름 아닌 서로의 등이다. 고개를 처박고 만화를 그리는 자의 뒷모습. 4컷 만화처럼 짧고 간결한 구성의 이 애니메이션은 꿈꾸는 자의 주변 풍경을 되새기며 과정의 무게와 의미를 전달한다. 소품이라 했지만 그 무게와 밀도는 결코 가볍지 않은 당신의 뒷모습이 거울처럼 이 작품에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쿄모토(좌)와 후지노(우) 시작은 뭐든 적당하다. 학교신문에 실릴 4컷 만화를 그리는 후지노도 마찬가지다. 곧잘 그리는 그림이 주변의 칭찬을 받고 기대에 부응하듯 4컷 만화를 그린다. 꼭 만화여야 할 이유는 없다. 운동신경도 나쁘지 않은 후지노는 그쪽도 가능하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런 후지노의 적당한 욕구에 불을 부치는 건 또 다른 재능이다.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학생 쿄모토가 자신을 대신해 그린 그림이 자신보다 월등하다는 사실에 후지노는 충격을 받는다. 아마추어라고 무시했지만 오히려 자기가 아마추어로 느껴지는 쿄모토의 그림을 보며 ‘이 녀석을 이기고 싶다’라는 열망에 휩싸이는 것이다. 어쩌면 이거야말로 평범한 이들이 그리는 꿈의 정확한 형태일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꿈과 대의라고 하는 아름다운 이상만으로는 움직일 수 없다. 큰 방향은 ‘만화’라는 길을 향해 있을 수 있지만 현실로 만드는 한 걸음 한 걸음에는 그때마다 새로운 연료를 필요로 한다. 너를 이기고 싶다는 동기.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다는 동력. 욕망이 쌓인 시간은 곧 꿈이 된다. 그렇게 연습에 매진한 후지노의 실력은 향상되지만 라이벌로 여기는 쿄모토의 실력은 더 빠른 속도로 늘어간다. 재능의 벽을 느끼고 만화의 길을 포기하려던 찰나 후지노가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등을 밀어주는 새로운 동력이 제공된다. 졸업을 앞두고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쿄모토의 집을 방문한 후지노는 자신보다 훨씬 많은 쿄모코의 연습용 스케치북을 보며 놀란다. 우리는 타인의 과정을 대체로 알지 못한다. 우리가 목격하는 건 대체로 타인의 결과들이다. 마침내 코모토의 과정을 목격한 후지노는 그와 자신이 다르지 않음을 발견한다. 게다가 자신의 팬이라는 쿄모토의 고백을 듣고 다시금 만화를 그릴 동력을 얻는다. 그리하여 배경을 잘 그리는 쿄모토와 인물을 잘 그리는 후지노는 함께 만화를 향한 이인삼각의 달리기를 시작한다. <룩백>은 꿈의 과정을 공유하는 두 사람의 행보를 함께 지켜본다. 그리하여 이들이, 아니 관객이 목격하는 건 만화를 그리고 있는 이들의 등이다. 후지노는 자신의 등 뒤에서 같은 과정을 공유하는 쿄모토의 등을 보며 의지를 불태운다. 쿄모토 역시 후지노에게 등을 맡기고 기댄다. 상투적인 의미에서의 ‘과정’은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보낸 시간을 통해 구체화 된다. 과정의 아름다움. 나아가는 힘. 4컷 만화를 닮은 <룩백>은 코모토에게 일어나는 비극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전반과 후반이 접혀있다. 불행한 죽음을 애도하고 먼저 떠나간 이들의 빈자리를 생각하며 제작된 이 작품은 남겨진 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되묻는다. 미대에 입학한 쿄모토는 친구들과 함께 있다가 괴한에게 살해당한다. 후지노는 쿄모토의 죽음이 그를 만화로 이끈 자신의 탓이라 자책하며, 자신과 쿄모토가 만나지 않았을 만약의 세계를 상상한다. 서글픈 아이러니는 자책의 순간에도 후지노가 만화적 상상력으로 IF의 세계를 구현하는 인간이라는 점이다. 시작은 적당했을지 몰라도 꿈을 향해 걸어왔던 긴 시간은 이미 삶의 방식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꿈을 향해 매진한다는 건 그토록 잔혹하고 그래서 아름답다. 좌절하고 잠시 멈출 수는 있어도 방식을 바꿀 수 없을 때 그것은 곧 삶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삶은 언제나 통제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연속이다. 이야기 속 사건은 명확한 인과 관계로 연결되어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따지고 집착해봤자 길을 잃을 뿐이다. 후지노는 가상의 상상으로 과거를 수정하고 싶어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것도 이미 잘 안다. 후지노의 상상은 자책하여 과거를 바꾸고 싶은 것이 아니라 빈자리를 확인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이유에 매달리다 보면 어느새 신기루 같은 과거의 감옥에 갇힌다. 이미 정해진 일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후지노의 IF는 그것을 위한 예방주사이며 이야기의 효능이 본래 그러하다. 누구도 미래를 바꿀 수 없다. 오히려 바꿀 수 있는 건 이미 일어난 과거 쪽이다. 과거를 바꾸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다르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영화, 이야기, 상상을 통해 의미를 선택할 수 있다. 꿈의 의미. 남겨진 자들의 의미. 지금의 의미. 정정해야겠다. <룩백>은 뒷모습이 아니라 ‘뒤를 보는 모습’에 대한 영화다.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건 만화를 그리는 후지노의 등이다. 후지노는 내일을 향해 걸음을 떼기로 결정했다. 그 과정이 괴롭고 지난할지라도 다시 한발 한발 걷는다. 이 소박하고 짧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꿈을 향해 매진하는 자의 주변 풍경을, 잊고 있던 과정들을 새삼 다시 마주하며 감사함을 느낀다. 오늘을 이어가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생각에 잠긴다. 문득 극장을 나서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이 공간도 바뀌고 있다. 과거로 멈추지 않고 내일로 이어지기 위해 뭐든 하고 있다. 어떤 영화는 사라지고, 어떤 길은 끊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 길이 어디까지,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어 두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건 영화는 멈추지 않고, 극장은 계속 새로운 의미를 모색하며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길을 잇고 있는 보이지 않는 이들의 열정에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이 차오른다. 영화산업의 더 추운 겨울이 닥칠 거라는 2025년에는 꿈에 매진하는 과정을 잊지 않도록 영화의 등, 극장의 풍경도 종종 고개 들어 눈에 담아두어야겠다. 송경원(씨네21 편집장) l 영화 논문, 비평, 기자 글쓰기까지, 영화에 대한 서로 다른 리액션 사이에서 흔들리고 방황한지 15년. 이제야 영화 글쓰기가 나의 직업이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2023년 《씨네21》 편집장이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밤하늘의 별자리를 찾듯 영화를 보고, 읽고, 쓴다. 2009년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 2011년부터 부일영화상, 부천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심사위원 등 역임. 『프로듀서』(2019), 『만화 웹툰 작가 평론선―이충호』(2021), 『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물고』(2021, 공저),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2024) 등 집필.
“영화란 말야…..” < 찬실이는 복도 많지 >( 김초희 , 2019)의 첫 대사는 마치 앙드레 바쟁(Andre Bazin)이 던진 일생의 프로젝트, “영화란 무엇인가?”(What Is Cinema?)에 대한 거대한 답변으로 시작을 하려는 듯 하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다소 허망한(?) 에피소드들은 영화의 존재론적 사유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찬실이의 일상은 유쾌한 잡담에 가깝다. ‘잡담’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것이 우리 모두가 늘상 나누고 공유하는 보편적인 일상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흔살, 찬실이( 강말금 )는 영화 프로듀서다. 맞다, 아무리 자세히 설명을 해줘도 극중의 주인집 할머니( 윤여정 )가 그렇듯, “그래서 그게 뭐하는 일인데?”라며 무한반복 같은 질문이 되돌아오는, 그 정체성 제로의 직업말이다. 특히 감독이 갑자기 죽고 나선 더 그러하다. 더 이상 할 일도, 불러주는 사람도 없이 수입이 끊긴 찬실이를 친한 배우 동생, ‘소피’( 윤승아 )는 가사도우미로 고용한다. 아침마다 소피의 술병을 치우는 일에도 보람이 느껴질 무렵, 찬실이는 단편영화 감독이자 소피의 불어 선생, ‘영’( 배유람 )에게 빠져들게 된다. 영을 짝사랑 하면서부터 그녀의 삶은 새로운 활기가 넘친다. 데면데면하던 주인집 할머니와 우정도 나누고, 수호천사인 장국영( 김영민 )이 필요할 때 마다 나타나 고민도 들어준다. 이 가운데 찬실이는 정말 복도 많아 보인다. 그러나 영에게 거절을 당하면서 그녀는 좀 전의 지지리도 ‘없는 삶,’ 즉 갈데도, 만날 사람도, 할 일도 없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복 많은 찬실이는 서서히 이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것은 이 ‘없는 것들’ 사이를 뺴곡히 채우고 있는, 수 많은 ‘있는 것들’이다. 삶에 찌들어 미처 들여다 보지 못했던 일상엔 딸이 “꽃 처럼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이웃의 아픔이 있고, 발연기로 욕만 얻어먹는 후배의 웃픈 푸념도 있으며, 찬실이의 재기만을 기다리는 동료들의 응원이 있다. 마침내 이 풍성한 찬실이의 일상은 스크린 속 누군가의 그것으로 영화적 환생을 맞는다. 이쯤 되면 정말로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난제에 대해 바쟁조차도 만족스러워할 답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란 우리에게 없는 것들, 즉 결핍들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비추고 의미를 메기는 일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찬실이의 시나리오 노트가 그녀의 ‘없는 삶’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의 재발견은 영화적 발견임과 동시에 영화의 소임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영화는 꽤 영리한 방법으로 삶과 영화를 도치시킨다. 이를테면 삶을 영화의 언어로, 영화을 삶의 언어로 말이다. 쥐뿔도 없지만 잘난 척 좀 하고 싶을때는 ‘오즈 야스지로’가, 초라한 서가를 메울 만한 서적으로는 ‘키노’가, 푸념상대가 필요할 땐 난닝구 바람의 ‘장국영’ 만한 것이 세상에 어디있겠는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세상 밖이 바이러스와의 싸움으로 불안과 혼란의 최절정을 지나는 한가운데에 개봉했다. 그럼에도 3월 중순 기준 관객수 만 칠천명을 넘어서며 썰렁한 극장들로 관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예사롭지 않은 치유의 힘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주체할수 없을 만큼 웃어보고, 혼잣말을 해 봤으며,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오즈 야스지로도, 키노도, 장국영도 분명 그것을 가능케한, 반가운 아이콘이었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영화적인 아이콘은 역시 찬실이를 연기한 강말금 배우다. 그녀의 얼굴에는 우리 모두의 결핍과 바램 그리고 환희가 있다. ‘말금’이라는 이름처럼 그녀의 얼굴은 마치 일상에 담궜다 빼낸 리트머스 종이같이 분명하고, 즉각적이다. 동시에 간간히 드러나는 그녀의 ‘시네마틱한’ 표정은 이야기의 에너지를 환기하는 유일무이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모든 것, 즉 영화적이고 세속적인것을 발견하고 조합해낸 김초희 감독의 공이 크다. 2020년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은 봄 가운데, 그녀의 영화가, 그리고 찬실이가 이 난세를 구하고 있는 중이다.
[사진] 한국전쟁 중 미군 위문공연을 하러 온 마릴린 몬로와 함께 한 최은희 최은희는 좌우익의 분열이 본격화되기 전인 민족영화 건설기에 모처럼 얻은 수확이다. 1947년 청구영화사가 제작한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서>에 발탁되면서 그녀의 파란만장한 여배우의 삶이 시작된다. 일제의 강제 징용에 끌려 나갔다가 해방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온 어촌 청년들이 마을 처녀들과 힘을 모아 황폐한 어촌을 재건해 나간다는 이 영화에서 그녀는 잘사는 집 외동딸 역을 맡아 애인 역인 최운봉과 그의 어머니 김연실 등과 함께 공연했다. 은막으로 이끈 순진한 얼굴 <노도(怒濤)>를 개작한 최금동 각본의 <새로운 맹서>는 46년 기획 단계부터 여주인공은 신인을 쓰기로 방침이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마땅한 후보 깜이 나타나지 않았다. 영화에 투자할 전주(錢主)의 마음이 변할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을 때 회현동에 있는 영화사 사무실로 한 손님이 찾아왔다. 신경균 감독은 누군가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여기 주연 깜이 한 명 나타났으니 와서 보라고. 이 처녀가 바로 최은희(崔銀姬)였다. 감독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사람은 이 영화의 촬영을 맡은 카메라맨, 뒷날 그녀의 남편이 된 김학성이었다. 그의 눈에 비친 최은희는 ‘큰 키에 때 묻지 않은 촌스런 얼굴, 가꾸지 않은 엉성한 몸매에다 집안에만 있다가 배우가 되겠다고 뛰쳐나온 순진한 모습’이었다. (김학성, 「30년을 하루 같이(6) 원로 연예인의 수기」, 『일간스포츠』, 1978.3.20.) 그래서 처음에는 반대했으나 좋게 본 감독과 작가의 의사에 따르기로 했다. 그녀가 영화사 사무실을 찾게 된 데는 이 무렵 토월회 연극무대에 함께 섰던 최운봉이 제 상대인 배역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 같다며 지원을 적극 권유했기 때문이다. 촬영에 들어가자 감독으로부터 오버 액션이라는 질책을 받았다. 아버지가 딸에게 준 돈이 애인의 서울 유학비에 쓰인 사실을 알고 꾸짖자 딸이 용서를 비는 장면이었다. 관객들이 없이 스태프들만 바라보는 가운데 정해진 프레임 안에서 해야 하는 연기는 허공에 뜬 것처럼 와 닿지 않았다 .(최은희, 『고백』 영화에 데뷔하다, 2007, 랜덤하우스 코리아, 46쪽) 그래서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듯이 하다 보니 감정이 과장됐던 것이다. <새로운 맹서>는 제재(題材)와 내용이 과거 무성영화 <바다와 싸우는 사람>이나 <바다여 말하라>에 비하여 별다른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이금룡, 최운봉, 김연실 등과 함께 신인 최은희가 열연했다. (「신영화평, ‘새로운 맹서’」, 『대동신문』, 1947.6.30.) 는 평을 들었다. 이 영화에 이어 캐스팅된 것이 수도청 경우회가 제작한 <밤의 태양>(1948, 박기채)이었다. 대규모 밀수단을 추적한 끝에 일망타진하는 경찰관의 이야기로, 김동원의 상대역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되자 수도청 기자단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언론인 전체의 명예를 훼손한 장면이 있으니 삭제해 줄 것과 사과를 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진] 최은희는 <마음의 고향>에서 젊은 미망인 역을 맡았으나 연기가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세 번째 출연한 <마음의 고향>(윤용규, 1949)에서는 홍역을 앓다가 죽은 어린 아들의 49제를 지내려 절을 찾아온 젊은 미망인 역을 했다. 정적 연기가 요구되는 캐릭터 때문이었는지 주지 역(변기종)과 미망인 어머니 역할(석금성)에 비해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태우, 「조선영화의 발전, ‘마음의 고향’을 보고」, 『경향신문』, 1949.1.6.) 모두 6.25전쟁 이전의 출연작들이다. [사진] <젊은 그들>에서 남장 여인으로 분한 최은희 최은희의 연기 활동은 그로부터 5년 만인 1954년 신상옥 감독의 문화영화 <코리아>(1954)를 계기로 재개된다. 잇따라 신 감독의 <꿈>(1955)을 비롯한 <젊은 그들>(1955), <무영탑>(1957), <지옥화>(1958)에 주연으로 기용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다. 영화의 절반을 차지하는 승려 조신의 꿈을 통해 애욕의 덧없음을 깨우치게 되는 이광수 원작의 〈꿈〉, 실각한 대원군의 복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열혈 청년들의 사투기 김동인 원작의 <젊은 그들>(1955), 불국사의 석가탑 건립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엮은 현진건 원작 〈무영탑〉(1957)에서는 승려를 홀린 달례(꿈)와 정혼자가 있는 남장 여인(젊은 그들), 그리고 석공 아사달을 사랑한 구슬아기(무영탑) 등 다양한 역할을 해낸다. 그녀는 어느새 ‘신상옥의 전속배우’나 다름없는 부러운 존재가 되어 있었다. 고전미에 상응한 도발적 여성의 욕망 그러나 <지옥화>에서는 앞의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전후 아프레 걸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기지촌의 미군을 상대로 몸을 파는 양공주 쏘냐 역 최은희는 미군부대의 창고를 털어 내다 파는 일이 주업인 사내(김학)의 정부 노릇을 하면서도 그의 동생을 유혹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쏘냐는 동생과 도망가기 위해 정부 일당의 음모를 헌병대에 신고하지만 도망쳐 나온 정부의 칼에 찔려 죽고 사내도 총에 맞아 죽는다. <지옥화>에는 통속적인 겉모습과는 달리 6.25전쟁을 겪은 궁핍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비판하는 작가의식이 담겨 있다. 깊게 파인 검은 드레스와 짙은 화장으로 빗나간 여성의 욕망을 표출하고 그동안 한복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농염한 몸매를 드러내면서 기존의 정적 이미지를 탈색시키는데 성공한다. [사진] <지옥화>에서 최은희는 형제를 동시에 유혹하는 악녀 쏘냐 역을 맡아 변신에 성공한다 이 작품을 전후하여 농촌을 무대로 한 김소동 감독의 <돈>과 김성민 감독의 액션 영화 <형제>(이상 1958)에 출연했으나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고아인 법대생이 부정한 방법으로 신분을 세탁, 변호사의 꿈을 이루게 되는 신상옥 감독의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과 <동심초>(1959)의 전쟁미망인 역할에 이르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특히 <동심초>의 경우 양장점을 경영하다가 사기꾼에 걸려 파산상태에 이르렀을 때 도움을 준 남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물러서는 미망인의 연기는 ‘최은희가 발산하는 고절(高節)한 미망인다운 애절감이 좋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서울 국도극장에서 개봉돼 연일 대성황을 이룬 이 영화는 신상옥프로덕션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한다. [사진] <동심초>에서의 최은희와 김진규 김기영 감독의 <슬픈 목가>로 1960년대 신년 벽두를 연 최은희는 <동심초>의 변주라 할 수 있는 이 영화를 포함, <청춘의 윤리>(김화랑), <려인(麗人)>(이봉래), <돌아온 사나이>(김수용) 등 타사 영화 5편과 신상옥프로덕션 10주년 기념작 <이 생명 다 하도록>을 비롯한 〈로맨스 빠빠〉, 〈사랑의 역사〉, 〈백사부인〉(이상 신상옥 감독) 등 4편에 출연했다. 이 가운데 <이 생명 다 하도록>은 6,25 전쟁 때 참전했다가 척주마비로 하반신 불구가 된 남편(김진규)과 어린 딸을 돌봐야 하는 인고(忍苦)의 여인상을, <로맨스 빠빠>에서는 가부장적 질서와 해체의 경계를 넘나든 영악한 맏딸의 모습을 보여 관심을 끌었다. 이 시기에 그녀와 대적할 만한 여배우는 연배가 비슷한 황정순과 주증녀, 이민자 정도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별아 내 가슴에>(1958)의 히트 이후 기세가 오른 젊은 김지미였다고 할 수 있다. 최은희에게 신상옥이라는 배경이 있듯이, 김지미에게도 남편인 홍성기 감독이 있었다. 그래서 영화계에서는 그들의 판세를 ‘연기와 미모의 대결’로 받아들였다 .(「라이벌」, 『씨나리오문예』 4호, 40쪽, 1959, 12) 이 무렵 최은희는 연기 잘 하는 스타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40고개를 바라보아도 잔주름을 연기력으로 너끈히 카버하고 젊은 주역을 해내는 데보라 카처럼 연령적 육체적 조건을 극복하고 톱스타의 자리를 차지할 것’ (「‘배우동서(俳優東西)’ 데보라 카와 최은희」 , 『경향신문』, 1960.8.13.) 이란 전망을 갖게 했다. [사진] 흥행 신기록을 세운 <성춘향>의 한 장면. 오른쪽은 월매 역을 맡은 한은진 그런 점에서 1961년 시네마스코프 색채 대형화면 시대를 연 구정 대목 프로 <성춘향>(신상옥)은 이와 같은 세간의 평가와 전망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셈이었다. 더욱이 최은희는 역대 <춘향전> 영화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35세의 중년 춘향 역에 도전했다. 같은 시기에 경쟁한 21세인 <춘향전>(홍성기)의 김지미와는 무려 14년이라는 차이가 났다.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이명우, 1935)의 문예봉이 19세에, 1955년 한국영화 중흥기의 <춘향전>(이규환, 1955)의 조미령이 27세에, 그리고 뒷날 <성춘향>(박태원)의 장미희가 21세에 춘향 역할을 맡은 것과는 대비되는 무리한 캐스팅이었다. 감당하기엔 어려운 배역이었으나 당시의 매스컴은 <성춘향>에 대해 성의 있는 고증과 색조, 허장강의 방자 역에 호의를 표명 (「예술과 기업의 대결, 매니큐어 반짝이는 두 편의 춘향전」, 『조선일보』, 1961.1.30.) 하면서도 최은희의 과년한 춘향 역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손에 바른 ‘반짝이는 매니큐어’만 지적했을 뿐이다. 이는 분장과 연기력으로 나이의 약점을 극복했다는 말이 된다. 결국 <성춘향>(명보극장)은 김지미 주연의 <춘향전>(국제, 국도극장)에 참패를 안겨주며 서울에서만 74일간 38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렇게 기업적 기반을 마련한 신상옥은 신필름을 확장하고 스튜디오 시스템을 갖춘 영화사로 키워 나갈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 <성춘향>에 이어 최은희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연산군>(이상 신상옥), <서울의 지붕 밑>(이형표) 등 5편과 이만희와 유심평의 감독 데뷔작 <주마등>과 <군도(群盜)> 등 2편이 포함된 9편에 출연하였다. 여섯 살 소녀 옥희를 화자로 내세워 어머니와 사랑방에 세든 중년 남성과의 애틋한 사랑을 보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의 여주인공은 <마음의 고향>(1949), <동심초>(1960)에 이은 미망인 소재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다. 깨끗이 빗어 올린 쪽진 머리와 하얀 저고리, 절제된 미소, 조신한 동선(動線)으로 ‘동양적인 청결과 멜랑콜리한 분위기’ (「신영화, 담담하고 격조있는 가작,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한국일보』, 1961. 8.26.) 를 자아내며 인내와 수절이 미덕, 가부장 중심 사회의 단면을 애잔하게 보여 주었다. 그 반면에 <상록수>(원작 심훈)에서는 야학을 열어 문맹 퇴치에 나선 일본 식민지시대의 농촌 여성 채영신으로 변신해 역할의 확장을 꾀하였다. 이 시기야말로 최은희 연기 생애에 있어 절정기였다고 할 수 있다. [사진] 최은희 연기 인생의 절정기를 대표하는 영화 중 하나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한 장면 〈산색시〉(박상호), <29세의 어머니>(이강원), <무정>(이강천) 등 외부 작품을 포함 12편에 캐스팅되면서 최다 출연 기록을 세운 62년은 <열녀문>과 <로맨스그레이>(1963, 이상 신상옥)로 자칫 굳어질 뻔한 ‘청상과부’의 이미지를 탈색시키는 효과를 거두게 했다. 그런 잔제는 <29세의 어머니>와 같은 캐릭터에 남아 있긴 했으나 <열녀문>의 경우처럼 양반집 과부 며느리(최은희)가 머슴(신영균)과 정분에 빠져 임신을 하거나, <로맨스그레이>에 나타나듯이 단란한 가정의 가장인 대학교수(김승호)를 유혹해 돈을 뜯어내는 꽃뱀 수준의 호스티스(최은희)로 전환, 지금까지와는 상반된 여성상을 그려 보였다. 특히 <로맨스그레이>에서 여주인공 민자의 입술 오른쪽 볼에 그려놓은 검은 점은 화류계 여성다움을 나타낸 차밍 포인트로 작용하였다. 이와 같은 캐릭터는 <지옥화>의 양공주 쏘냐와 함께 최은희 연기세계의 동적인 한 축을 형성하는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사진] <로맨스 그레이>에서 김승호와 한 장면 [사진] <민며느리>에서 최은희는 연출에 도전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후 <벙어리 삼룡>(1964, 신상옥)과 직접 메가폰을 잡은 <민며느리>(1965), 신상옥 감독의 옴니버스 사극 〈이조여인잔혹사〉(1969) 등에 출연하여 일부종사(一夫從事)라는 봉건주의적 인습에 희생 되는 여성의 틀을 유지한 채 <날개부인>(1965, 김수용),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1965, 임원식, 나봉한) 등에 출연, 밀수품 장사에 뛰어든 공무원(김진규)의 아내, 쇄국정책을 펼치는 대원군(김승호)의 섭정에 맞서 개혁·개방 정책을 추구하다가 죽음을 맞는 민비 역 등을 통해 연기의 폭을 넓혀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