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의 밤
- 감독
- 루돌프 유게르트
- 제작년도
- 1952
- 출연
- 한스 알버스, 힐데가드 크네프, 루시에 만하임
“나는 본디 활동사진을 좋아하는 터에 단성사 신파 활동사진을 요새 가 보니까 참 조선에 처음 되는 것으로 어찌 마음에 상쾌하고 좋은지 모르겠어요.” -애활가(愛活家), 《매일신보》 1919년 10월 31일자 4면. 1919년 10월 《매일신보》의 독자 한 사람이 단성사에서 공개된 조선 최초의 연쇄극 <의리적 구토>(김도산, 1919)를 관람한 후, 연쇄극에 삽입된 활동사진에 대한 감격을 신문에 투고했다. 그는 자신을 “애활가(愛活家)”라고 소개했다. 애활가란 ‘활동사진 애호가’를 가리키는 말로, 종로와 본정(本町)을 중심으로 극장이 들어서고 그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구경꾼이 늘어난 1910년대 중후반부터 신문지상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 용어다. 《매일신보》에 투고한 이 애활가는 연극과 영화가 결합한 연쇄극 <의리적 구토>에서 전성기를 지나 저물어가는 신파극의 긴 그림자보다 조선 사람들도 활동사진을 제작할 수 있다는 여명(黎明)을 보았다. 같은 해 12월 어느 날, ‘예술잡지’ 『녹성(綠星)』(편집 겸 발행인 이일해)이 발간되었다. ‘경성 죽첨정 1정목 39’에 발매소를 둔 『녹성』은 원래 문예지로 기획되었지만, 사정상 첫 호는 영화 분야의 재료만 다루었다. 근대 초기의 불안정한 출판 환경 속에서 나온 잡지들이 그렇듯 『녹성』도 창간호가 곧 종간호가 되는 불운에 처했고, 그러다 보니 『녹성』 창간호는 본의 아니게 ‘애활가’에 의한, ‘애활가’를 위한, ‘애활가’의 잡지가 되었다. 환하게 이를 드러내고 웃는 여배우를 표지 모델로 내세우고, 제럴딘 파라(Geraldine Farrar), 그레이스 커나드(Grace Cunard), 몰리 말론(Molly Malone)과 에디 폴로(Eddie Polo) 등의 권두 화보를 넣어 만들었지만, 본문 중에는 화보가 거의 없어서, 구경하기 좋아하는 애활가들의 욕구를 만족스럽게 채워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 애활가들을 실컷 울렸던 블루버드 영화사(Blue Bird Photoplay Inc.)의 신파영화 해설부터 “아무리 큰 우수(憂愁)를 안고 있는 우려객(憂慮客), 아무리 사경에 빠진 병자라도 그의 동작에는 큰 소리로 웃지 아니치 못”하는 중절모의 ‘잡후린(雜侯麟, Charlie Chaplin)’ 선생까지 모두 이 한 권의 책 속에 모았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획기적인 일이었으리라. 대중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물적 기반으로서 극장의 출현이 중요했듯이 그 공간을 향유할 수 있는 관객 집단의 등장 역시 주목할 장면이다. ‘애활가’라고 밝힌 이가 자신의 감상평을 직접 신문에 투고하고 애활가 집단을 겨냥한 잡지가 출간되는 등 1910년대 말과 1920년대 초 서울의 분위기는 소박하나마 적극적인 관객층이 형성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애활가들은 문명국가에서 온 박래품의 신기함 때문에만 극장을 찾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활동사진 그 자체에 매료된 이들이었고, 그러한 스스로를 특별히 ‘애활가’라 칭함으로써 다른 관객과 자신을 구분 지으려는 사람들이었다. 일본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이라면 『활동사진계(活動寫眞界)』, 『활동화보(活動畵報)』, 『영화세계(映画世界)』와 같은 일본 영화잡지를 보고, 메리 픽포드(Mary Pickford)나 더글라스 페어뱅크스(Douglas Fairgbanks) 등 외국 배우들의 이름을 곧잘 입에 주어 담으면서 은근히 뽐낼 줄도 알았다. 영화를 보고 비평하며 그 자신의 고급한 취향을 과시하는 애활가. 이런 애활가가 된다는 것은 근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체화하는 일이기도 했다. 1920, 30년대의 잡지에는 애활가가 되려면 그에 앞서 극장에서 지켜야할 예법(禮法)을 몸에 익숙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마냥 「고급영화팬 되는 비결 십칙(十則)」 1 이나 ‘극장 예법’을 다루는 ‘모던 생활 강좌’ 2 같은 글이 잡지에 실리곤 했다. 조선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과잉의 형식을 설명하고 있는 예법 강의는 그런 매너가 몸에 배어야 ‘고급(high and noble)’한 모던 라이프를 진정 향유할 수 있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겼다. 극장을 찾는 자신을 특별히 과시하고 싶은 사람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글이지만, 애활가가 되고 싶은 이들의 귀는 이런 글에도 제법 솔깃했을 듯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애활가의 일은 먼저 신문광고에서 볼 만한 영화를 선택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애활가는 그 영화의 감독과 주연배우, 스틸 컷 등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숙지하고 극장을 찾아야 하며, 극장에서 받아보는 프로그램 순서지의 도움 없이도 영화의 플롯이나 주제를 이해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추어야 한다. 영사가 시작되었는데도 불빛을 훔쳐 프로그램을 읽으려 애쓰는 사람은 ‘영화팬’의 기본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평소에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영화비평을 정독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무릇 애활가라면, 이미 본 영화를 또 보더라도 옆 사람에게 영화의 줄거리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며 프로그램 진행 중에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간혹 박수를 칠 만한 장면에서도 너무 흥분하지 말 것이며, 다른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그치기 전에 박수를 끝내는 것이 좋다. 프로그램 중간 ‘10분 휴식’ 시간에는 극장의 전속 악단이 음악을 연주해 주는데, 이때는 휴식 시간이므로 연주가 끝났다고 해서 손뼉을 치거나 해서는 안 된다. ‘주악’에 너무 귀를 기울이거나 “헐하게 감격”하지 않는 것이 요점이다. 극장의 스크린 옆에는 유리등을 끼워놓고 호출할 사람의 이름을 적어 신호하는 통고등(通告燈)이 있는데, 여기에 이름이 비치면 전화가 왔거나 일행이 찾는 것이니 조용히 일어나 나가면 된다. 스스로가 활동사진 애호가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고 공공질서를 지켜가면서 조용히 영화를 즐기고 감상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사실 극장 예법을 잡지에서 배운 사람이 조선에서 그의 이상대로 조용하고 우아하게 영화라는 예술을 ‘고급하게’ 감상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의 신문과 잡지에 그려진 극장의 풍경은 무성영화가 상영되는 시대의 극장이 온전히 감상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음을 암시한다. 변사는 때로 영화와 무관하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하고, 자막을 잘못 해설하기도 한다. 그런 변사의 해설에 관객들은 울고 웃고, 때로는 야유를 보내기도 한다. 입에 손가락을 넣고 휘파람을 불어대거나 손뼉을 치거나 발을 동동 구르며 관객들이 한바탕 법석을 벌이는 것이다. 영화 상영 중에도 과자를 파는 사람이 객석을 돌아다니고, 전화 온 손님의 이름을 버럭 부르는 직원도 있다(극장의 전화 교환은 다른 관객들의 관람을 위해서 점차 통고등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갔다). 자주 정전이 발생하고, 영사가 돌연 중단되는 일도 많다. 어떤 관객은 옆 사람의 입에서 품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에 숨이 막히는 듯 했을 것이다. 냉난방 설비가 충분하지 않은 극장에서는 여름이면 겨우 몇 개의 부채, 겨울이면 화로 몇 점으로 더위와 추위를 견뎌야 했을 것이다. 결국 애활가의 극장 예법이란 극장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침착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노하우, 그런 매너를 갖춘 관객이 되는 법이었다. 1) 스크린 빨-쥐, 『별건곤』 제 29호(1930년 6월), 108~11쪽. 2) 청의아(靑衣兒) 생, 「현대 신사 숙녀로서 알아 둘 모던 생활 강좌」『조광』 1936년 1월호, 222쪽. 상단 그림. 극장 안 풍경 출처: 석영 생, 「서울행진(5) 480석, 5년간 중학생 학비」 《조선일보》 1928년 11월 7일자 3면. <자료> ※ 이하 자료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현대어 표기에 맞게 다시 썼다. 일부 표현은 문맥에 맞게 다듬었다. 1-1. 「극장만담」『별건곤』 제5호(1927년 3월), 94~5쪽. (부분 발췌) 근일에는 극장을 가보면 관객의 변천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장내가 소란치 않은 것이다. 그리고 유년 관객이 적어진 것이니 그것은 입장료가 고가이고 예전과 다른 정도 높은 영화를 해득하기에 어려운 까닭이라 할지 가정에서 감독이 심한 까닭인지는 모르나 비판력이 모자라는 그들에게는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특별히 변한 것은 희소하던 부인석에 남자석 이상으로 매일 만원인 것이다. 노부인, 여염집 부녀, 기생 그리고 여학생들인데 진기한 일은 그중에서 성에 갓 눈뜬 여학생이 반 수 이상을 참렬한 것이다. 그 뿐 아니다. 경악할 인은 ‘키쓰’하는 장면–그 순간에는 반드시 질식할 듯한 외마디 소리가 부인석에서 의례히 돌발한다. 그런데 부인석 중에도 머리 틀어 얹은 젊은 여인들 모여 앉은 곳에서. 이 말은 거짓말인가. 거짓말이 아닌 것은 극장 출입 잦은 이에게 물어보면 알 것이다. 어쨌든 세상은 변하였다. 극장 간판―이 간판도 수년 전에 비하면 여간 발전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늘 보면 그 간판의 그림은 그림으로 보아서는 덜 추하나 그 영화 중에 그 영화 전편을 통하여 제일 주요한 신을 빼놓고 영화 자체에 있어서도 제외하여 버려도 실패가 안될 장면만을 그리는 때가 많은 것이 그 간판, 더욱이 극장 간판의 임무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러한 극장 간판 중 좀 미안한 말이지만은 우미관 간판이 좀 천한 느낌이 있다. 그 간판은 입장료를 5전씩 받던 옛날 그 시절과 현재와 별반 차도가 없는 것이 그 관을 위하여 좀 불안하다는 말이다. 극장 내부―근일에는 단성사의 영화막(스크린) 상하좌우의 장치가 예전보담은 색채라든지 구성이 좀 아담한 듯하다. 그리고 조선극장은 옛날과 그리 현격한 변화가 없지만은 그저 추하지는 않다. 우미관도 그저 그러하다. 10분 휴식―10분 휴식에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관객의 피로한 뇌를 쉬게 하는 데는 퍽 유효할 것 같다. 그러나 그때에 변사가 나와서 잔소리하고 서있는 것이다. 한마디도 들어서 유리할 데 없는 자기의 회포를 천 명이나 오백 명의 청감을 가진 관객에게 늘어놓아서야 미안치 않은가? 다음번에 갈릴 영화 예고를 한다는 목적이라 하더라도 무대 위에 예고간판을 세워놓고 프로그램지에 적어놓고 또 무슨 필요가 있을까? 물어본다. 그리고 10분 휴식 간에 오케스트라도 있으려니와 무슨 다른 여흥이 있으면 좋겠다. 그것은 경영난인 현금의 극장에 주문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무도나 독창이나 독주나 있었으면 10분 휴식하는 의의가 있지 않을까 한다. 음악―어느 극장이나 오케스트라는 좀 변화가 지체되는 감이 있다. 영화 차환할 때마다 새 곡조로 갈았으면 어떨지. 너무 들어서 도리어 감정을 괴롭게 한다. 그리고 좀 정도를 높였으면 어떨지 물어본다. 변사―변사 제군에 하나 제안한다. 다른 게 아니라 그 ‘하얐다’, ‘하얐었다’가 글 쓰는 데는 모르겠지만 말로 하는 때에 듣는 사람으로서는 어떨지? 처음 극장가는 노인은 대분개할 것이다. 그 조(調)를 고치고 ‘하였습니다’, ‘하였었습니다’ 하면 어른에게나 어린이에게나 퍽 다정하게 들릴 것이다. 더구나 인정극에리오. 그리고 변사계에 한 가지 유행이 있으니 ‘마음자리’라는 말이다. ‘마음자리’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마음의 돗자리라는 말인지, 마음이 깔고 자는 자리인지 어쨌든 해석할 수 없는 말이다. 그리고 한참 긴장한 장면에 가서 농담(醜談)을 탁 터뜨리는 변사가 있다. 그 변사는 원래, 희극에는 더 우는 조로 하는 이인데 청승맞은 것은 좋으나 너무 그 음성이 청승맞아서 너무 천하게 들린다. 그리고 한 가지 우스운 일이 있으니, 어떤 변사는 한참 자기도취로 “자연의 의지와 우주의 이성이 아–슬프다!” 하니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그러한 고상한 문자를 안 써도 능히 할 수 있는데 얼토당토않은 문자를 쓰는 것이 도리어 자기 폭로에 지나지 않을 줄 안다. 그리고 장면이 벌써 지났는데 지난 장면을 가지고 떠들고 섰으니, 그것도 자기 취미지만 관자(觀者)는 그러한 변사를 원치 않을 것이다. 특히 이 점에 생각 좀 하여 주었으면 고맙겠다. 전화―극장에 온 손님에게 전화가 올 때,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이 소리를 버럭 질러서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당자는 (더구나 여자) 퍽 불쾌할 것이다. 여기에는 완전치는 못하나마 조선극장에서 하는 방식이 좋을 것이다. 스크린 옆 기둥을 뚫고서 유리등을 끼워놓고 그 유리에 부를 사람의 이름을 써놓고 전등으로 신호하는 방식이다. 1-2. 「극장만담」『별건곤』 제6호(1927년 4월), 108~9쪽. (부분 발췌) 모든 것이 구각(舊殼)을 벌어 젖히고 자체로부터 신생물의 싹을 좇는 이 봄에 근일에 각 극장에서는 2, 3년 전에 수입되었던 영화를 다시금 되풀이하고 있으니 여기에 극장경영자의 몰상식을 규시(窺視)할 수 있다. 설령 2, 3년이나 1, 2년 전에 일반 팬에게 호감을 산 영화이어서, 그것을 수십 차라도 되풀이하여도 매야(每夜) 만원의 성황을 이룰 수 있다치더라도―원래 수입되는 서양영화는 대개가 3, 4년 전 혹은 5, 6년 전 심지어 십 년 전 제작된 영화가 (기적적으로 1년 이내에 수입되는 것도 간혹 있지만) 상장되는 것인 그만큼, 먼 과거에 제작된 영화인 터에도 그것을 재삼 상장한대서야 시대 변천에 너무나 몰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영업 편으로 보아서는 유리한 방책이라 하더라도 일반팬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말이다. 여기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새로운 경지를 향하여 움직이는 팬보다도 더 앞서 나아가지 않으며 어느 시기에든지 큰 실패를 맞이하리라. 근일에 영화열이 팽창함에 따라서 팬의 수효도 배전(倍前)으로 증가되어 어느 날이든지 극장은 대만원의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말할 것은 그러한 때에 좌석이 참도 불고(不顧)하고, 그저 공간만 있으면 관객의 눈에 스크린의 끄트머리도 보이지 않더라도 불고하고, 그저 우릿간에 송아지 몰아넣듯이, 막 쓸어 넣는다 하면 너무도, 관객에게 불친절이 지나치지 않는가? 그뿐 아니라 젊은 색시들이 남자의 틈에서 비명을 질러도 그저 쓸어 넣어서 한푼이라도 더 모으려고 하여서야 될 수 있는가? 그러한 까닭에 종차(從次)로는 입장권에 좌석 순차표를 첨부하여서 누구든지 먼저 입장한 이를 제일 좋은 자리에 앉히고 그 다음 순차대로 좌석을 정돈시킨 후 좌석만 차면 문을 닫아버리면 어떨까 하는 것을 참고로 말한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관객의 피로를 덜어 주었으면 좋을 줄 안다. 그리고 입장권 매팔구(賣捌口) [필자 주: 판매소] 에는 써 붙이지 않고 내용으로 특등석을 설치하여 놓고 돈을 더 받으니, 이것은 경찰과 무슨 약속이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경찰의 허가도 없이 비밀히 하는 일인가? 우리로서는 그 진의를 알 수가 없다. 그이들의 것 무슨 구실이 있다 할지라도 이상에 말한 방법으로 한다면, 특등석도 없어질 것이요, 따라서 그 비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당하는 창피도 없어질 것이다.(상층 하층을 구별치 말라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변사와 대(對) 관객(특히 남녀 학생과 소년)과의 관계를 말하려 한다. 변사들이 영화대본(설명서)을 보지 않는지, 영화의 내용과는 아주 다른 추담을 베푸는 변사가 많은데, 항용 청소년 혹은 남녀 학생들의 염서(艶書)나 담화에까지 그 추담병이 전염된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서 희극변사 최병룡 군(단성사)의 추담 없이도 점잖게 웃기는 그 비결을 좀 배웠으면 어떨지? 그리고 변사의 말이 났으니 말이지 그 영화에 역할된 인물의 성명(영어나 기타 외국어에)을 어떤 나라말이든지 발음의 만능인 조선말을 하는 사람이 그대로 못하느냐, 모르면 누구에게든지 물어볼 수 없을까. 예(例)하면, ‘짹크’를 ‘짯구’라니 외국인의 웃음거리를 장만할 필요는 무엇 있는가. 일본 것이 아무리 좋대도 나쁜 것은 배우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2. 강사 스크린·빨-쥐, 「고급영화팬 되는 비결 십칙」『별건곤』 제29호(1930년 6월), 108~11쪽. 현대청년이란 그 언어에 있어 행동에 있어 처신에 있어, 아니 손가락 한 개를 놀리는 데 있어서도 모름지기 고급이어야 한다. 고급! 얼마나 입맛이 당기는 말이냐! high and noble. 존 바리모어(John Barrymore)의 프로필과 같은 noble. 미국이면 마천루 꼭대기와 같은 high. 그러한 것을 집어삼킨 듯한, 자신과 같은 풍도(風度)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점잖으면서도 완미(頑迷)한 구석이 없고 경쾌연미(輕快軟美)하면서도 부경(浮輕)한 맛이 없어야만 소위 고급에 속하는 영광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고급의 시대 철학적 해석은 다음 강의에 미루고 오늘은 제군들 앞에서 영화의 고급팬 되는 비결을 해설하는 영광을 내가 먼저 가지기로 한다. 1 대개 수요일이나 목요일 석간신문에는 각 영화관의 사진 교체 광고가 다투어 난다. 제군이 고급영화팬이 되려면 먼저 그러한 광고 가운데서 한번 감상할 가치가 있음직한 영화를 선택한 다음에 그 영화의 감독이며 주연배우 등의 이름을 외워두고 사진 내용에 들어가서도 될 수 있는 대로 다소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위연만한 영화이면 봉절하기 전에 신문이나 잡지에서 「시사실에서」란 제(題)로 간단한 비평 비슷한 것이 실리는 법이다. 제군은 무엇보담도 먼저(1면 기사보담도) 그 기사를 통독해 두어야한다. 그러고 보면 제군이 제군의 연인과 더불어 산보를 나왔다가 “차나 한잔 마시려오, 극장엘 가시려오?” 할 때도 그러한 예비식견이 여간 유효한 게 아니다. 더구나 여자들이란 사진이 좋지 못하면 그 사진을 같이 간 사나이가 만들기나 한 것처럼 짜증을 내고 책망을 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가령, 이를테면 “이까짓 걸 다 사진이라고 구경 오랬어요! 당신두 참 딱도 하시우!” 혹은 “인젠 두 번두 당신하고 같이 극장에 오진 않을 테야요. 내가 그래 겨우 이 따위 사진을 보러 왔단 말이요……?” 이런 매서운 선고 등이다. 무섭지 않느냐!? 또 설사 이러한 연애, 구애 관계 등의 이득을 도외시하고도 노상에서 우연히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질문에 응하여 시방 아무 영화관에서는 무슨 영화를 상영 중인데 그 영화는 운운, 이렇게 즉석에서 대답할 수 있는 이익이 따르는 까닭이다. 이와 같이 즉석에서 남의 질문에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은 무슨 일이고 간에 남의 찬탄을 받는 법이다. 또 그리고 만약 제군이 극이나 영화의 기맥에 다소간 통하는 바가 있다면 그 답을 할 때 살짝살짝 첨부 삽입 작용을 하고 보면 효험이 더욱 날 것이 틀림없다. 2 자, 그러면 제군이 광고의 안내로 (혹은 연인이나 친구들의 요청에 응해서든지 상관이 없지만) 이제 영화관의 한 좌석을 차지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때 제군이 가장 먼저 취할 방법 이 무엇일까? 제군은 무엇을 먼저 하여야 할 것인가! 그러나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은 없다. 그저 변소에 가라는 게다. 우스운 말 같으나 이 변소에 가라는 것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다음 방책을 세우는 데도 필요한 것이다. 사진관에 들어가 보아서 시작하기까지에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는 변소에 갔다 나와서 유유름름(悠悠凜凜)한 태도로 당하나 통로 같은 데를 거니는 것도 흥이 있다. 이때 태도는 아주 침착하고도 무게 있게 보여야 하나니 하여간 일견지하에 남들이 짐짓 아마 놈이 영화계 명사인가 보다 하고 남에게 경계와 찬미의 탄사가 흐르게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지루해 못 견디어 하는 얼굴로 하품을 하는 것도 남의 주의를 끌기는 하나 이 방법은 도로히 반대의 효과를 가져오기가 쉬우니 이 방법을 택할 때는 기미를 잘 보아서 하지 않으면 실패다. 그리고 만약 제군이 사진관으로 달려갔을 때 이미 영화가 시작되었을 때는 사진쯤 상관할 것 없이 자리를 잡아 모자나 외투를 놓아두고는 변소부터 먼저 가야 할 것이다. 이미 시작된 사진일 것 같으면 2, 3분 동안 더 보나 덜 보나 마찬가지다. 그것보다는 변소에 다녀오는 게 더 필요하다. 한 사진이 끝나고 다시 다른 사진이 시작되는 짧은 휴식 시간에 부리나케 변소에 갔다가 황급히 자리에 돌아오는 사람을 많이 보는데 그것은 극히 졸렬한 행동이요, 적어도 고급에 있어서는 물론 사회도덕의 관념에서 말하더라도 그리 칭찬할 바 행동이 못된다. 3 그리고 사진이 시작되기 전에 급해 빠져서 프로그램이나 『위클리』에 쓰인 플롯을 읽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도 아름답지 못한 일이라. 대관절 영화를 보기 전에 그런 류의 해설을 읽지 않고는 영화의 스토리나 연락을 모른대서야 영화팬으로서 적지 않은 문제라 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영화팬의 자격은 완전히 상실된다고 각오하고 있어도 좋다. 크게 주의할 일이다. 프로그램 같은 것은 집에 돌아가서 눈을 한번 거치면 그만이다. 더구나 기막히는 것은 사진이 시작되어 전등이 꺼진 뒤에도 그 캄캄한 불빛을 훔쳐서 프로그램을 읽으려 애쓰고 있는 친구들이다. 이렇게 되면 비참 우(又) 참담, 실로 언어도단이다. 영화란 원래 그 first scene과 아울러 최초에 나오는 자막이 가장 필요한 것이다. 이 제작역할을 일별하고는 미소를 띠어서 아래턱을 쓰다듬게쯤 되지 않고는 아직도 고급팬 되기는 멀었다. 그리고 모르는 친구들은 hero와 heroine이 서로 껴안기만 하면 벌써 다 된 줄 알고 일어나서 무엇이 그리 급한지 출구로 우르르 몰려나가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적지 않은 실책인 것이, 영화란 그 뒤에도 사건이 시작되는 수가 있으며, 첫째 last scene을 보지 않고 일어선다는 것은 영화팬으로 용서치 못할 일이다. 어떠한 일이고 첨이 있고 끝이 없는 법은 없다. first scene과 last scene은 영화를 논함에 있어서 반드시 팬들의 입에 오르는 것임을 알아두어야 한다. 4 그 다음 휴식 시간에 주악(奏樂)이 있을 때는 그것을 들어도 좋고 듣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단지 요점은 주악에 너무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더구나 끝난 뒤에 감격해서 손뼉을 치든지 하고 보면 남의 조소를 받을 우려가 많은 것이니 주의할 일이다. 하여튼 고급영화팬이란 그리 헐하게 감격해서는 견뎌나갈 수 없는 처세술(?)이다. 무엇이고 “정말 우스워 못 보겠네”라든지 “나 원, 기가 막혀 이걸 어떻게 듣고 있어”라든가 “이건 지독한데” 등등의 능청스런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늘 머릿속에 명념(銘念)해 두어야 한다. 5 그러면 제군! 영화 중에 돌연히 필름(film)이 끊어질 때는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 그때는 크리스트와 같은 얼굴을 하고 묵묵히 앉아 있어야 한다. “사진 망했다”, “불 켜라” 하고 노호한다든가 영사실을 힐끗힐끗 들여다보는 것은 천박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또 정전이 되었을 때에도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좋다. 그렇다고 너무 생각하는 척 하노라고 눈을 감고 그대로 잠이 들어버리면 야단이다. 6 다음 해설자가 쓸데없는 것을 늘어놓는다든지 자막 같은 것을 오역했을 때는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면, 그때는 아주 무서운 얼굴로 해설자가 서있는 편을 노려보는 것이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생각할는지 모르나 주관적 견지에서 본다면 정의의 열혈이 끓어오르는 지사와 같은 흥분을 느끼게 되어 다시 없이 마음이 쾌(快)한 것이다. 7 자! 제군은 인제 영화를 보았다. 그러면 어떻게 그것을 비평할까가 나머지 문제일 것이라. 스토리는? 시나리오는? 감독은? 배우는? 이렇게 판에 박은 듯한 비평을 한다면 벌써 제군은 고급영화팬이 못된다. 그런 것을 지껄이는 도배(徒輩)를 가리켜 제군은 식소사번(食少事煩) [필자 주: ‘먹을 것은 적고 할 일은 많다’는 뜻.] 의 주문돌이 [필자 주: 미두장 등에서 주문을 대행해주는 브로커.] 라고 비소(鼻笑)하고 있어도 좋다. 그보다는 경구(警句)를 토해야 한다. 한 말로 그 영화를 차 던져야 한다. 기다란 변설(辯舌)을 농(弄)하여 내용의 공허를 폭로시킨다든지 자기의 부족처를 남에게 보이든지 하는 것은 모던 고급팬들의 관여할 바 못된다. 무엇이고 Make believe의 세상이니 말이다. 8 그리고 보면 금세의 고급영화팬 된 자 반드시 이름 있는 영화를 전부 다 보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아니, 보지 않더라도 고급팬으로 통할 수 있다. 그 대신 신문잡지에 실리는 영화비평을 정독해 두었다가 다른 사람들이 왜 안보느냐고 물을 때는 그 비평의 공격 부분만을 외워두어서 “결국 허잘 것 업는 스토리에 좌우된 영화였지 뭐야! 흥, 그까짓 걸 누가 보러간단 말이야” 하고 한마디로 격퇴해 버리면 고만이다. 그러고는 외국 영화잡지 등을 일별해두었다가 “그러나 이번 미국 ○○회사에서 제작하고 있는 △△란 영화만은 나로서 적지 않은 기대를 가지고 있는 걸! 그것이 건너오기만 하고 보면 억만 사(事)를 제처 놓고도 보러 가겠네만은……”하고는 슬쩍 영화통인 점을 보여서 상대자의 간을 주물러 놓는 것도 속 시원한 노릇 아니냐. 9 복색은 너무 혼란해서는 못 쓴다. 너무 지나치게 화려하다든지 제법(製法)이 별나고 보면 부랑자나 모뽀로 잘못 보이기가 쉬워서 헛되이 명성을 떨어트리게 된다. 영위계구(寧爲鷄口)일지언정 불위우후(不爲牛後) [필자 주: 혹은 ‘영위계구 물위우후(寧爲鷄口勿爲牛後)’.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는 뜻으로 큰 집단의 말석보다 작은 집단의 우두머리가 낫다는 의미이다. 줄여서 ‘계구우후’라고도 한다.] 로 맑스·뽀이로 보일지언정 모뽀로 잘못 보여서 쓸까보냐다. 또 그러고 촬영감독이나 카메라맨으로 보여서도 안 된다. 고급영화팬은 촬영소 인종들과 혼동되는 것을 세심한 주의를 가지고 피해야 한다. 비평가 부류의 인종하고도 혼동이 되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촬영소 인종들을 자본가의 영리한 주구(走狗)로 보아 경멸하고 비평가를 기생충이나 어용 매문업자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고 영화잡지 같은 것은 외국 것이면 몰라도 절대로 가지고 다녀서는 안 된다. 요컨대 고급영화팬은 시네아스트의 긍지를 가지고 스넙 [필자 주: snob] 하면서 우울하여야 하고, 경멸할 줄을 알고 천학박식(淺學博識)이어야 하며, 또한 교묘한 궤변가여야 하며, 기타 여러 가지여야 한다. 10 끝으로 한 가지 부언해 둘 것은 요사이 유행 영화인 토키(talkie)에 대한 것인데, 우리 고급영화팬들은 그것이 사운드·픽처이면 상관이 없지만 불행히도 토킹·픽처일 때는 근신을 해야 한다. 하고(何故) 하면 제군이 뛰어난 어학자이거나 기막힌 즉흥시인이 아닌 이상 동반자(예컨대, 군들의 연인)의 질문에 응하지 못하여 천추에 회한을 남길 염려가 없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노니 고급영화팬은 광범 심원한 지식과 교양을 요하는 것은 이것저것 할 것 없이 덮어놓고 경이원지(敬而遠之)하고 그 대신 매멸(罵蔑)하는 것을 유일한 Motto요, 철학이요, 전술로 알고 굳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유령의 세계에는 역사가 없다. 비애극은 죽은 자들을 그 유령의 세계로 보낸다. -발터 벤야민, 『독일 비애극의 원천』 지난 역사 속 특정 시공을, 재현representation의 매체medium라 흔히 일컫는 영화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공동체에 트라우마를 안긴 사건의 경우는 더하다. 필자의 얕은 안목으로는, 지난 삼십 년간 광주항쟁을 다룬 어떤 영화도, 적벽가 한 대목을 꿇어앉은 배우들이 주야장천 부를 뿐인 연극 <이야기의 방식, 노래의 방식 - 데모 버전>(2014, 극단 그린피그 / 연출 윤한솔)만큼 마음을 끈 작품은 없었다. 최근 전두환 회고록이 출간되고,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 증언 등이 나오는 와중에 본 한국 영화 < 택시 운전사 >는 이러한 편견을 더욱 굳혔을 뿐이다. 한편, 작년과 올해 본 라브 디아즈와 존 토레스의 신작 덕에 3백 년이 넘는 스페인 식민 지배와 미국 강점에 이은 마르코스의 장기 독재를 ‘피플 파워’로 끝냈던 필리핀 역사와 이를 담은 영화들을 한국의 경우와 비교해 보게 된다. 1989년 하와이에서 죽은 마르코스의 시신이 2016년 11월 고향 마을에서 국립 ‘영웅묘지’로 이장되었고, 1983년 암살당한 베니그노와 코라손 아키노의 아들 베니그노 3세를 뒤이어 대통령이 된 두테르테의 통치 방식을 전해 들으며 소스라치곤 한다. 필리핀에서 장편극영화가 처음 제작된 해는 1912년으로 필리핀을 지배하던 미국인들이 만든 작품 두 편이 하루 차이로 공개되었다 한다. 둘 다 호세 리살의 전기 영화였는데, 앨버트 이어슬리(Albert Yearsley)의 <호세 리살 박사의 처형 El Fusilarmiento de Dr. Jose Rizal>과 해리 브라운(Herry Brown)의 <호세 리살의 생애 La Vida de Jose Rizal>였다. 작가이자 의사였던 호세 리살은 필리핀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반제국주의 혁명가이다. 리살은 소설 『나를 만지지 마라 Noli Me Tangere』(1887)를 써서, 7천 개가 넘는 섬에 흩어져 살며 여러 언어를 쓰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1521년 이래 이어진 스페인 식민지배에 맞설 저항정신과 ‘국민국가’를 향한 열망을 일깨우려 했다. (『엉클 톰스 캐빈』(스토우), 『사냥꾼의 수기』(투르게네프) 등과 더불어 “제국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이행시킨 19세기 소설 중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나를 만지지 마라』는 2015년에야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호세 리살의 문학 작품들은 필리핀 영화에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를테면, 라야 마틴은 『나를 만지지 마라』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 부에나스 노체스 에스파냐 >(2011)를 시작한다. 또, 라야 마틴의 첫 장편 < 필리핀 인디오에 관한 짧은 필름 >(2006)에서 면벽하고 신부에게 벌을 받을 준비를 하는 성당 종치기 소년은 바로 『나를 만지지 마라』의 주요 인물 바실리오다. 바실리오는 라브 디아즈의 <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에도 이사가니의 동료로 등장한다. 한편 라브 디아즈의 전작 중 < 엔칸토에서의 죽음 >(2007)의 시인에게도, 1892년부터 1896년 사이 민다나오 다피탄에 유배되어 있던 호세 리살의 체취가 배어 있다. 『나를 만지지 마라』의 주인공 크리소스토모 이베라는 호세 리살 자신을 투영한 인물로 보인다. 리살은 자신의 소설 속 인물 크리소스토모 이베라처럼 개혁을 꿈꿨지만 제안한 개혁안이 반란으로 간주되어, 필리핀 혁명을 모의했다는 죄목으로 1896년 처형당한다. 『나를 만지지 마라』 대단원에서 주인공 후안 크리소스토모 이베라 막살리는 스페인 식민당국 순찰정을 피해 도망치고, 마치 몬테 크리스토 백작처럼 『엘 필리부스테리스모』의 보석상 시모운이 되어 돌아온다. 『나를 만지지 마라』의 속편 격인 『엘 필리부스테리스모 El Filibusterismo(‘폭로자’라는 뜻)』(1892)에 호세 리살은 ‘필리핀 소설 novela filipina’이라는 부제를 붙인 바 있다. 현재 필리핀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라브 디아즈는 바로 『엘 필리부스테리스모』의 일부를 <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한다.(<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는 2016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예술의 새로운 차원을 연 작품에 수여한다”는 알프레드 바우어상도 받았다.) 호세 리살과 그의 소설을 연구해 『상상의 공동체』, 『비교의 유령: 민족주의, 동남아시아, 세계』 등을 쓴 베네딕트 앤더슨이 『엘 필리부스테리스모』와 제국주의에 맞선 쿠바 혁명, 아나키즘 투쟁의 삼각지대를 분석한 『세 깃발 아래에서: 아나키즘과 반식민주의적 상상력』(서지원 역, 2009, 도서출판 길)에 따르면, 『나를 만지지 마라』를 통해 리살은 “필리핀 ‘사회’의 전체상(이자 동시대상)을 상상 속에서 창조해냈다. 한편, 리살이 “『엘 필리부스테리스모』에서 한 일은 이 사회의 정치적 파멸 및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의 제거나 다름없는 것을 상상해 낸 것”이었다. 그리하여 앤더슨은 『엘 필리부스테리스모 』를 ‘세계 소설 novela mundial’이라 칭한다. 『엘 필리부스테리스모』의 결말 즈음에는 ‘미스터리(El misterio)’라는 짧은 장이 있는데, 베네딕트 앤더슨에 따르면 원본 원고 7쪽 중 3쪽을 호세 리살이 검게 지워버렸다. 라브 디아즈가 붙인 영화 제목의 기원을 유추하게 하는 일화다. 남아있는 소설의 ‘미스터리’ 장은, 영화 <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 초반처럼 오렌다 가 습격 직후의 혼란을 묘사한다. 사랑하는 파올리타의 목숨을 구하려 램프를 탈취해 강에 뛰어든 학생 이사가니는 보석상 시모운의 무장 피습 계획을 뜻하지 않게 좌초시키고, 『나를 만지지 마라』의 시모운처럼 사라진다. 한편, 영화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에서는, 소설에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도피한 시모운이 호세 리살의 유고시 「나의 마지막 이별」을 길에서 읊는 가난한 모녀에게 은전을 베푸는 시퀀스가 이어진다. 호세 리살이 창조한 인물이 리살을 추모하는 “보르헤스적“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역사와 픽션이 함께 머무르고 흐르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서사는 8시간이 넘는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가 가장 야심차게 시도하는 바일 터다. . (전략) 내 영원히 사랑하고 그리운 나라 필리핀이여 나의 마지막 작별의 말을 들어다오 그대들 모두 두고 나 이제 형장으로 가노라 내 부모, 사랑하던 이들이여 저기 노예도 수탈도 억압도 사형과 처형도 없는 곳 누구도 나의 믿음과 사랑을 사멸할 수 없는 곳 하늘나라로 나는 가노라 (후략) 소설 『엘 필리부스테리스모』의 마지막 페이지들은 죽어가는 시모운과 그를 돌보는 필리핀인 신부 플로렌티노의 긴 대화로 채워졌다. 라브 디아즈의 영화는 이 부분이 리살의 소설과 이 부분이 꽤 다르다. 필리핀의 스타 배우 존 로이드 크루스와 피올로 파스쿠알이 이사가니와 시모운으로 분한 <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에서, 부상을 입고 이사가니의 도움으로 플로렌티노의 거처에 도달해 임종을 맞는 시모운이 남기는 말은 많지 않다. 그가 죽자 플로렌티노와 이사가니는 시모운의 시신과 더불어 “터전을 태워” 없애고 혁명을 위한 배수의 진을 친다. 한편, 이미 『나를 만지지 마라』에서 사랑은 물론 터전도 모두 버린 소설 속 시모운은 죽음을 기다리며, 신부에게 “이반 카라마조프가 던졌을 법한” 질문을 건넨다. 신이 자신을 용서하겠냐는 시모운의 물음에, 플로렌티노는 신은 시모운의 모든 고통을 이해하며 용서할 테지만 그가 가치 있는 목적을 위해 사악한 방식들을 택한 것은 용인할 수 없다 한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엘 필리부스테리스모』를 『나를 만지지 마라』와 비교하여, 영웅이 없고, 플롯은 실패와 좌절,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 더 어둡고, 문체도 한층 냉소적인데다 당시 필리핀 식민 사회와 다른 점이 많아 필리핀에서도 인기가 덜하다고 썼다. 앤더슨에 따르면, 리살은 “필리핀 소설”인 『엘 필리부스테리스모』에서 주로 스페인에서 경험했던 사건과 감정들을 필리핀으로 옮겨, 필리핀에 “임박한 미래의 그림자”로 명멸하는 스페인 제국 내 혁명의 불꽃(스페인의 또다른 식민지 쿠바에는 이미 도래했던)을 현시presentation하려 했다. 임박한 미래에의 예감은 소설 출간 당시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웨일레르 총독 시대에 뿌리내린 현실 인식으로 더욱 단단해진 것이었다. 다시 앤더슨의 분석에 기대자면, 소설 속 시모운은 전작 『나를 만지지 마라』에 근원을 둔 인물이며, “스페인으로부터가 아니라 상상된 쿠바로부터, 그리고 지구를 도는 방랑으로부터 소설에 입장”한다. 리살에게 시모운은 한때 공상되던 “인터내셔널이라는 감추어진 마키아벨리적 네트워크”의 거울상이었으며, 장차 필리핀에 출몰하게 될 (혁명이라는) ‘세계적 유령’의 일종이었다. 마치 그의 민족처럼, 아직 현실에는 없지만, 이미 상상되었으므로, 곧 도래할. 한데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의 시모운은 무력함과 타락을 오가며 공포와 연민만을 불러일으키는 인물로, (『독일 비애극의 원천』(최성만/김유동 공역, 2009, 도서출판 길)에서 벤야민이 쓴 표현을 따르자면) “순교하는 폭군”처럼 군림하며 “도취된 상태에서 권력을 펼” 뿐이다. “현란한 빛을 받는 별도의 장면”에 등장하는 웨일레르 총독 등은,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아나키즘이 경합했던 19세기의 정복자이기 보다는 벤야민의 분석을 따르는 전형적인 바로크 드라마의 적대자들 같다. “그들을 움직이는 동기들은 대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바로크적 음모는 마치 열린 무대 위에서 무대장식이 바뀌듯 이루어진다. 음모 속에서 환상이 의도되지 않음에 따라 이러한 대립 플롯의 조직도 강하게 두드러진다.” “동작은 기민하나 표정은 무력한” 프로타고니스트 이사가니도, 비애극 속 전형적 인물들처럼 역사의 격랑 속에 “동요하는 육체적 충동”만으로 빛과 어둠을 오가는 신화적 형상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독일 비애극에 등장하는 ‘라이엔 Reyen(독일 바로크 비애극의 각 막 끝에 있는 코러스를 가리키는데, 대개 극 중 사건을 일반화하여 해석하고 가치평가를 내린다.)과 흡사한 필리핀 악령 틱발랑 셋이 등장하여, 실존인물 웨일레르 총독 일행과 어울려 황음무도하는 시모운을 지켜보는 한편, <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의 또다른 주요인물(이자 소설『엘 필리부스테리스모』에는 등장할 수 없었던 진정한 ‘미래의 이브’)그레고리아 데 헤수스(라브 디아즈 전작들의 스태프와 배우로 계속 작업해온 헤이즐 오렌시오가 분했다.)가 남편 안드레스 보니파시오의 시신을 찾아 헤매며 떠도는 길을 동반한다. 호세 리살에게 소설은 미래를 예지하는 것이었는데, 라브 디아즈가 그의 소설을 실제 역사적 과거를 픽션과 교차시키며 영화에는 다른 분기점이 발생한다. 각기 남성, 여성, 양성구유인 세 탁발랑은 닥쳐올 비극도 목도할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다. 『엘 필리부스테리스모』가 출간된 지 5년 뒤, 안드레스 보니파시오는 살해당했다. 호세 리살이 죽은 지 5개월 남짓 지난 뒤였다. 보니파시오는 독학으로 역사 등을 공부한 뒤 1892년 혁명운동 조직 ‘카티푸난’을 창시하여 반스페인 무장항쟁에 나섰다. 리살의 동의를 얻지 못했음에도, 카티푸난을 창설하며 보니파시오는 리살을 명예 의장으로 추대했다. 1895년 3월 카티푸난 하급자로 입회한 뒤 재빨리 자신의 파벌을 키웠으나 테헤로스 선거에서 보니파시오에게 진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안드레스 보니파시오를 그의 형 프로코피오와 함께 붙잡아 1897년 5월 10일 반혁명 혐의로 처형했다. 스페인을 이어 필리핀을 침략한 미국과의 전쟁 중 1901년 3월, 아기날도가 붙잡히자마자 “재빨리 워싱턴에 충성을 맹세하자 혁명은 끝났다”. 그리고 아기날도는 ‘공식적인’ 필리핀 초대 대통령이 된다. ‘혁명 영웅’ 보니파시오도 호세 리살처럼, 필리핀 영화의 단골 주인공이다. <영생 Ang Magpakailanman>(1983)의 감독 레이몬드 레드는 학살자의 내래이션으로 보니파시오 형제의 삶을 증언하는 <영웅들 Bayani>(1992)을 연출했다. 라야 마틴의 < 오토히스토리아 >(2008)와 <연인들>(2008)이, 증인도 없고 시신을 영영 찾지 못해 재현할 도리도 없고 잊힐 수도 없는 보니파시오 형제의 죽음과 카티푸난 진압이라는 기억을 현시하려는 시도임도 익히 알려진 바다. 미국인들이 필리핀에서 영화를 처음 만들기 전에, 필리핀에서 영화라는 매체를 먼저 소개한 것은 기실 1521년 필리핀을 점령한 뒤 300년 넘어 식민지로 삼았던 스페인인들이었다. 『아시아 영화의 이해』(주윤탁,김지석 편, 제3문학사, 1993)에 따르면, 1897년 1월 1일 포토그라피아 페르티에라Fotographia Pertierra 극장에서 45초 미만의 수입 단편영화 6편이 최초로 상영되었다. 뤼미에르 형제의 작품들이 여기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큰데, 라브 디아즈와 영화 속 틱발랑들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최초의 영화를 관람하던 스페인 식민관료들과 고위 인사들은 화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기차’가 아니라) 틱발랑을 보고 혼비백산한다. 이 날은 호세 리살이 처형된 1896년 12월 30일로부터 불과 이틀 뒤였다. <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의 이 장면은 리살의 죽음이 드리운 어둠의 자장 속에서 관객들이 보았을 초기 영화를 재구성한 것이었으리라. <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에는 학살(과 전후)을 재현한 신도 여럿 있다. 바로크 비극의 ‘엠블렘’과도 같은 전장의 시체들이 영화 속 곳곳에 즐비하다. (필리핀 역사의 큰 ‘트라우마’인) 안드레스 보니파시오가 노상에서 죽임당하는 장면조차 직접 보여진다. 스페인 군대가 실랑에서 필리핀인들을 죽이기 직전에는, 불을 피워놓고 망을 보던 농민군 중 한 사람이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는 반란군으로 분한 이는 필리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현업 뮤지션 엘리 부엔디아(Ely Buendia)이고, 그가 부르는 ‘민족의 아들 Anak ng Bayan’은 라브 디아즈가 존 지안비토의 <비행운(클라크) Vapor Trail(Clark)>(2010) 대단원에서 직접 불렀던 저항가다. 한데, 형언하기 힘든 비극을 앞둔 이 시점, 이 장면, 이 노래는 한없이 애처로우면서도 연극적으로 “과장된 한탄조”가 담겨있다. 또, 혁명군들이 주둔하고 있는 이 밤의 숲은 확연히 인위적인 세트처럼 보인다. 발터 벤야민은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서, “전쟁과 전쟁으로 인한 고난에 대해 쓴 모든 저술에는 거의 애처롭게 들리기까지 하는 과장된 한탄조가 고정적으로 담겨 있다. 말하자면 절망에 찬 표현방식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일이 보편적이었던 것이다. 비참함은 그것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그 정도의 변화가 있는 반면, 비참함을 기술하는 데에서 당대의 저술들은 뉘앙스의 차이를 거의 알지 못했다. ”는 에르만스되르퍼의 말을 인용하며, 바로크 시대 ‘비애극’을 연극무대가 역사무대에 동화된 것에 대한 극단적인 결과라 일컫는다. ‘독일 비애극’은 17세기 ‘30년 전쟁’ 전후에 “잔인한 사람들에 의해, 그리고 잔인한 사람들을 위해 씌어진 작품들”이다. 벤야민은, “전쟁과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의 분위기 속에서 살던 그 시대 사람들은 이러한 장면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있었고, 그들에게 제공된 그들 자신의 풍속도였”기에 비애극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필요했다고 분석한다. “그들은 그들에게 제공된 쾌락을 소박하고 노골적으로 맛보았다.” 한편으로 그들은 강변한다. “당신께선 저희들이 이 역사를 쓰라린 마음으로 기술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따라서 저희는 일련의 사건을 엮어냈다기 보다는 그것이 지닌 비참함을 비극이란 방식으로 엮어낸 것입니다.” 어쩌면, 예컨데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피살은 ‘미망인’ 그레고리아 데 헤수스 뿐 아니라 “민족 해방”을 꿈꾸었던 20세기의 ‘제3세계’인들이 모두 증인이 되고 싶었던 사건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 트라우마를 직시하여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터이다. 라브 디아즈도 480분에 걸쳐, 호세 리살과 보니파시오의 삶과 죽음이 여전히 피워올리고 있는 불꽃, 그리고 사건과 문학이 지닌 마법의 힘을 빌어 이 비극을 정면으로 바라보려 한다. 그 ‘미스터리’의 기술이 이토록 슬프고 쓰라림은 그러므로 잘 알겠다. 그러나, 벤야민은 “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격렬한 사건들 속에는 바로 연극적인 요소가 강하게 표현되고, 이론까지도 연극장면적 효과를 종종 강조한다”고 일갈했다. 안드레스를 찾아 그레고리아 데 헤수스 일행이 헤매는 산과 강 등은, 최근까지도 국가에 대항하는 본거지가 되었던 동남아시아 ‘조미아’ 산악지대가 표상하는, 지배자의 역사와 대립하며 저항한 실재하는 자연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풍경을 탐닉하며 “역사적인 것을 세속화하는 바로크의 세계 도피”를 낳는 세트 역할에 충실하다. 이 세트 속에서, 보니파시오 사후에 보니파시오의 측근이었던 훌리오 낙필과 재혼하고 투쟁을 지속했던 실제 그레고리아 데 헤수스의 삶과는 꽤 달리, 오시리스를 찾는 이시스와 같은 여신의 형상이 되어 “민족(국가)의 혼”을 찾는다고 독백하는 그레고리아 데 헤수스가 맺는 영화의 결말은 자못 퇴행적이다. “역사가 무대로 세속화”되니 이 시간들의 움직임은 필리핀의 밀림 속에 갇혀 버리고 만다. 라브 디아즈는 이미 < 멜랑콜리아 >(2008년에 나온 이 작품의 주인공 알베르타는 그레고리아 데 헤수스처럼 남편의 시신을 계속 찾아다닌다)라는 작품을 상재하기도 했는데, <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에서 본격적으로 바로크 시대 독일 비애극 작가가 되기를 자청한다.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에서 퇴행적으로까지 만개한 멜랑콜리는, 독일 비애극에 편재하는 주된 정동이기도 하다. 벤야민에 따르면, 비애의 이론은 멜랑콜리적인 인간의 시선 아래 드러나는 세계의 묘사 속에서만 펼쳐진다. 슬픔은 자신의 의도를 특별하게 상승시키고 지속적으로 침잠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침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것 앞에서 연대기적 세계사의 거대한 상황들은 일종의 유희로서, 즉 신뢰할 만하게 해독될 수 있는 의미를 위해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기는 하지만, 그 끊임없는 반복으로 멜랑콜리적 삶의 혐오가 절망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촉진하는 일종의 유희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독일 비애극의 멜랑콜리를 분석하며, 발터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집요하게 침잠하는 멜랑콜리는 죽은 사물을 구제하기 위해 그것을 자신의 명상 속으로 받아들인다. 나머지는 침묵이다.(햄릿이 남긴 말) 왜냐하면 살아본 적이 없는 모든 것은 구원받지 못한 채 지혜의 말이 오직 기만적으로 유령처럼 떠도는 공간 속에서 쇠퇴해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유령의 세계로의 쇠퇴는 영원한 잠을 낳을 뿐이고, 저항을 깨끗이 소거한 ‘자장가’만 들려줄 수 있을 따름이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 속 사건은 역사와 멀어지며, 시공은 비애극 속 공허한 신전이나 궁정을 닮아간다. (연극 세트와 닮은 건물을 그린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포스터는 뚜렷한 자기 고백으로 보였다.) 흑백 이미지를 선호하는 라브 디아즈가 근작에서 저화질 디지털 카메라 대신 HD 포맷을 채용하며, 비애극의 폐허와 흡사한 무대 효과를 자아내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콘트라스트는 더욱 두드러지는 듯하다. 전작 대부분과 달리,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가 구사하는 4:3 화면비가 인물들의 행위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고, 스크린을 하나의 무대처럼 만든다는 분석도 있다.(김소희, 「기울어진 세계: 라브 디아즈의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와 < 떠나간 여인 >」, 2017, 《오큘로》 4호) 두테르테 집권 후 국가폭력이 노골적으로 발현되고 있는 참이니, 민족과 국가의 ‘혼’을 찾고 싶어하는 바람이 이해되지 않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파국의 이념을 밝히는 대신, 예술이 "자연주의적 재현"을 택한다면 퇴행과 복고에 기여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트라우마를 안긴 역사를 비애극 속 무대로 삼는 재현보다는, 이를테면 1987년 ‘피플파워’라는 사건과 베트남전이라는 기억을 함께 거하게 하며 현전하는 영화 이미지와 사운드 자체를 역사의 질료로 여기고 발굴을 시도하는 존 토레즈의 신작 < 피플 파워 폭탄 선언: 베트남 장미의 일기 >(2016) 같은 시도가, 호세 리살이 지운 검은 페이지를 해독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 다른 기회가 있다면, <피플 파워 폭탄 선언: 베트남 장미의 일기>에 대해서 따로 쓰고 싶다.
오늘은 영화 한편을 보자. 가까운 대한극장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열 개의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옛날에 비하면 작고 초라해 보인다. 1968년 나는 이 극장이 자주 제작한 춘향을 만들었는데, 1,800명 중에서 뽑힌 홍세미의 간판이 무척 크고 화려했다. 프로를 살펴보니 외화보다 한국영화가 압도적으로 많아 흐뭇했으며 그 중에는 영광의 < 피에타 >도 붙어 있었다. 나는 개봉 첫날인 영화들 중 무작위로 < 간첩 >을 골랐다. 간첩이란 단어는 요즘 분명히 퇴색하고 잊혀진 죽은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살아있었다. 박력 있고 짧은 숏이 정신없이 이어져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간첩이란 고정관념을 넘어선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감독은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제일 좋아한다. 남파 22년차 김명민 은 가짜 비아그라 장사이자 선량한 가장으로 남매를 키우며 생활고에 찌들어 지금은 간첩이란 정체성조차 가물가물하다. 남편 없이 시각장애아를 키우는 부동산 억척 아줌마 염정아 는 맵시가 있다. 한우를 사육하며 FTA 반대 시위에 앞장서는 몸짱, 얼짱 정겨운 . 마누라가 죽고 혼자 사는 치근한 변희봉 . 이들 간첩은 완수해야 할 미션이 달갑지 않지만 ‘본분을 잊지 말라’는 북쪽 최고 암살자 유해진 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날로 달라지는 남쪽사회에서 살다보니 현실에 고통 받는 소시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15세 때 처음으로 간첩영화 <당신을 노리고 있다>를 봤는데 그 내용은 2차세계대전 때 적의 스파이를 경계하라는 계도성이 강했고, 간첩으로 나오는 배우가 험상궂었다. 그리고 먼 훗날 나도 감독이 되어 <고발>(이수근 이야기), <삐에로와 국화>(이병주 소설) 등 간첩영화를 만들게 되었는데 박노식, 신성일 같은 선남들을 출연시켰지만 반공이라는 계도성을 희석시킬 수는 없었다. 해킹 한 번에 미국 국방부 정보망까지 뚫리는 세상에 김명민은 정보수집의 사각지대에서 머물러야했고, 변희봉은 박통시절이 좋았다고 푸념한다. 날만 새면 친북세력 운운하며 싸움질하는 정치권이 잠시 야유 당한다. 유해진 은 변신을 잘하는 배우다. < 이끼 >에서 팔푼이로 열연했는데 이번에는 찬바람이 부는 냉혈한이 된다. 그가 서울에 나타났을 때, 간첩들은 비로소 사명감을 깨닫고 모여들지만 무장하라는 지시에 김명민 은 권총을 파묻어둔 자리에 고층아파트가 섰다고 했고, 염정아 는 총알이 없다고 한다. 정겨운 은 소가 권총을 밟아 고장, 변희봉 은 분실했다고 말해 혼쭐이 난다. 결국 이들의 작전은 북에서 6자회담에 참가했던 이승호를 암살하는 것으로 집약된다. 그는 탈북해서 서울의 어떤 기관의 보호를 받고 숨어있었다. 암살단은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단 1초도 착오가 없는 행동으로 그를 제거하려 들지만 경찰은 이미 그 정보를 쥐고 있다. 영화는 여기서 더욱 숨 가쁜 템포로 진행된다. 비 오는 밤 전선을 끊고 습격하지만 이승호는 이미 이동을 끝낸 후였다. 추격과 도주하는 차량이 무서운 속도로 묘사된다. 그리고 드디어 백주 노상에서 화려한 총격전이 벌어진다. 충무로 시대를 살던 감독들은 상상도 못할 만큼 압도적인 물량을 쏟아 붓고 있다. 수 십대의 자동차가 충돌해서 부서지고 불타고 그 사이를 누비며 저격수들의 불 뿜는 총성이 고막을 찢는다. 이때 드라마는 적과의 싸움보다 내무 분열로 반전된다. 김명민은 유해진을 공격한다. 두 사람은 초인간적인 격투를 벌이는데 고가도로에서 추락하면서도 치고받는다. 이 시간 운동장에서는 야구배트를 쥔 김명민의 아들이 납치의 표적이 된다. 나는 이 영화의 끝 장면을 굳이 밝히지 않지만 할리우드 액션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는 말은 하고 싶다. 지금 남한에는 5만 명의 고정간첩이 우리와 같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을 실벽하기란 쉽지 않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서 평범한 척 하고 있다. 생각하니 오싹해진다. 이것만으로도 우민호 감독의 메시지는 충분하다. < 간첩 >은 분명히 추석 오락영화이다. 처음부터 상을 타고 예술 운운하는 헛소리는 하지 않고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완성도 높은 오락영화, 그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영화의 주류이며 영화산업의 조건이다. 나는 크레딧 끝에 떠오른 제작자의 이름을 확인하면서 앞으로도 건전하고 재미있는 오락영화를 많이 만들어줄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