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서울대 법인화> 추위도, 눈발도 녹여버린 그들의 외로운 투쟁
- 제작년도
- 2010
임권택 감독 연출로 1984년 <비구니>는 태흥영화사의 창립 작품이 될 뻔했던 영화, 걸작이 될뻔 했던 영화, 불교계의 반대로 제작중단이 된 군부정권 시절 비운의 영화다. 그런데 당시 송길한 작가의 각본 170여 장면 중 약 1/5 분량 촬영이 끝난 상태로 유실됐던 필름은 2014년 태흥영화사 창고에서 발견됐고, 그 후 한국영상자료원과 전주국제영화제 (이하 JIFF)의 협업으로 39분 길이의 본편으로 복원, 편집됐다. JIFF는 송길한 작가 특별전의 일환으로 관계자 인터뷰 위주의 24분 길이 다큐멘터리도 제작했고, 지난해 본편과 함께 제18회 JIFF 관객과 만날 수 있게 했다. 발굴, 복원된 필름은 편집이 전혀 안 된 16mm 러시 필름이었고, 사운드는 아예 없었다. 박홍렬 촬영감독이 생필름 촬영본을 편집했고, <비구니> 촬영을 맡았던 정일성 촬영감독이 색보정을, <취화선> 등의 작품에서 정일성 촬영팀의 일원이었던 박정훈 촬영감독이 편집과 다큐멘터리 연출을 맡았고, 김영진 JIFF 수석프로그래머가 인터뷰들을 진행했다. 올해 봤던 <비구니>가 인상에 남은 것은 제작 중단으로 실현하지 못했던 가능성에 대한 아쉬움이나 표현의 자유 보장의 필요성에 대해 시사하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발굴돼서 복원, 편집된 작품 자체가 사운드 없이도 강렬하기 때문이다. 원숙한 김지미 배우의 연기는 무성영화 시절 표정, 자태, 몸짓만으로도 거의 모든 것을 전달하던 배우들처럼 공명한다. 대사는 안 들리지만 그녀의 눈빛만 봐도 극적인 갈등과 욕망, 염원이 충분 느껴진다. 또한 작가, 감독, 촬영감독이 함께 로케이션 헌팅부터 해서 영감을 얻은 후 시나리오 작업을 한 만큼, 장면 하나하나의 압축된 구성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비구니>는 임권택 감독과 송길한 작가가 1981년 작 <만다라>로 개인 수련을 중심으로 한 소승적 불교 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에 이어, 새로운 영화로 ‘중생과 더불어 밝음을 지향하는 대승적 수행’을 그려내고자 한데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주인공이 세속적인 집착과 번뇌에서 벗어나 마침내 큰 스님이 돼가고 ‘스스로 자기를 완성하는 과정’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다고 송길한 작가는 전한다. 마침 그 당시 연기의 전환점을 찾던 김지미 배우도 이 영화 공동기획으로 참여했고, 삭발, 노출, 그리고 영하 12도의 추위에도 물속으로 뛰어드는 등 전심전력을 다 했다. 애초에 제작 의사도 표시했지만, 임권택 감독은 대규모 예산에 안정적인 프로덕션을 꾸려줄 회사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극장 흥행사에서 영화제작으로 활동영역을 넓혀 나가려던 이태원 사장은 국제영화제에서 활약을 기대할 수 있는 <비구니>를 태흥영화사 창립 작품으로 하기로 했다. 이렇게 야심 차게 꾸려진 <비구니>는 1984년 3월 13일 문공부와 영화진흥공사에 제작신고를 했으나, 3개월 후 결국 제작 포기를 하게 됐다. 시나리오 작업할 당시 불교계에서는 자문과 고증을 도왔음에도 막상 대본을 전달받은 조계종에서는 불교를 모독할 우려가 있음을 표명하며 문공부에 제작중지 요청 공문을 보냈다. 태흥영화사와 임권택 감독, 송길한 작가는 조계종 사회부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대본을 수정하는 등 “수준 높은 불교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협조 요청”을 했으나 종단에서는 불교의 성역을 영화화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했다. 주인공이 비구니로 입산 후 속세에서의 사랑과 번민을 회상하는 장면이나 전쟁 통에 고아들을 피난시키기 위해 트럭 운전사에게 몸을 준 것 등을 문제 삼았다. 그리고 결국 제작중지 궐기대회에, 법원에 제작중단 가처분 신청까지 이어 나갔다. 그런데 이때 조계종 전국 비구니 대표자 회의가 내놓은 요구 사항은 한번 살펴볼 만하다. 다음과 같다. 1. 불교재산관리법을 철폐하라. 2. 10.27 불교법란을 정부는 공개 사과하라. 3. 불교 탄압을 중지하라. 4. 국영방송과 기독교인은 공개 사과하라. 5. 극영화 <비구니> 제작을 중지하라. 사실상 <비구니> 관련된 것은 다섯 가지 요청 사항 중의 하나밖에 안 되는데, 심지어 순위도 맨 마지막이다. 여기서 ‘불교법란’은 전두환 정권 초기 1980년 10월 27일 전국의 사찰 및 암자를 수색하고 스님들과 불교 관련자들을 대거 연행하고 고문한 사건을 일컫는다. 불교계는 이런 치욕과 탄압에 분노하다가 영화 <비구니>가 나타나면서 마침 기폭제를 만난 것으로 보인다. 이때쯤 당국에서도 제작자 이태원을 만나 제작을 포기하라며 설득과 회유를 시도했다고 한다. 법원에 가처분 신청 변론과 심문이 진행되는 가운데 데모하던 비구니들이 전경에 맞서다가 다치기까지 했다. 이에 제작자는 사회적 물의가 너무 크다고 판단하여 제작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전에 대본 수정과 함께 제목이 <수연 비구니>로 바뀌어 있었던 영화에 대한 제작신고를 ‘자진 취하’하는 문서를 6월 13일 문공부에 접수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제작비 2억여 원을 날린 태흥영화사도 그랬지만, 임권택 감독, 송길한 작가, 김지미 배우 등 모두가 열과 성을 다해 임하고 있었던 작품이 중단되자 충격을 못 이기고 일정 기간 창작 의지를 상실하게 됐다고 한다. 물론 그 이후에 다시 작품 활동들을 하게 됐지만, 당시 타격이 컸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관계자들은 ‘그때는 우리 영화인들이 힘이 없어 접었지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영화 안팎에서 표현하고 있다. 어쨌든 30년이 흐른 후, 창고에서 16mm 러시 필름이 나왔다. 시나리오의 1/5 분량밖에 촬영하지 못한 것이라 아무래도 원래 대본에서 빠진 것이 많고, 사운드가 없어서 가끔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이 서로 다른데 중첩될 때 나타날 수 있는 영화적인 효과를 놓치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또 배우들의 소리 없는 모습에서 전달되는 것도 많다. 시작 장면에 수경이 민간인 복장으로 산사로 걸어 들어갈 때 애인쯤 돼 보이는 남자가 얼굴과 발걸음만으로도 ‘정말 이래야만 하겠어?’ 하는 안타까움과 답답함 표현하며 동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수경은 절에 들어가 추운 날 나무도 해 가고 냇물에서 빨래도 하는 등 행자 생활을 하다가 이윽고 장엄한 삭발식을 치른다. 전쟁이 시작되면서 군용 앰뷸런스에 타고 가는데 아까 본 남자가 도와주다가 뭔가 엄청난 소식을 전달하면서 떠나고, 비구니는 눈물과 번민에 주저앉기도 한다. 스크린 위의 영상이 펼쳐지는 동안 정적을 깨는 듯한 것들이 가끔 있다. 분명 사운드는 없다. 그렇지만 김지미 배우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한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어머니 집을 찾아가 원삼을 받아 입고 돌아가신 줄도 몰랐던 어머니 무덤에 삼배한 후, 시집갈 때 입으라고 지어주신 그 옷과 함께 집착을 불태워버리려 할 때 불꽃 타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대규모 전쟁 장면에서 폭파의 진동이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도 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 전쟁 피난길 장면들인데, 최근에 나온 스펙타클한 CG 전쟁영화들과는 좀 달리, <비구니>는 폭격의 불길과 먼지와 연기 속을 고되게 뚫고 나가야만 하는 인간상들이 인상적이다. 임권택 감독은 1936년생으로 한국전쟁이 터졌을 당시 이미 십 대였고, 정일성 촬영감독은 1929년생으로 심지어 군 복무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화면에 묻어 나오는 인간성이 다른 듯하다. 피난민의 절박하거나 훈훈한 얘기들 외에도 난리 통에 기회주의적으로 실속을 챙기려고 하는 나쁜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는 암시 아닌 암시가 처음부터 떠오르기도 했다. 수경은 가족 잃은 꼬맹이 여섯 명을 챙기며 피난을 가다가 화물 트럭 운전사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한다. 책임감을 느끼고 끈질기게 호소하는 비구니를 순간, 운전사는 음흉한 눈빛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문제의 협상이 이뤄진다. 아이들을 구하려면 원하는 대로 해달라. 사운드는 없지만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 비구니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그리고 추위에 떠는 꼬맹이들을 보며 어떻게 결심을 하게 되는지 너무도 뚜렷하게 보인다. 그녀는 폐허에 이끌려가 일을 치르고 와서는 아이들을 트럭에 실어 떠나 보내고 횡 하니 서있는다. 이윽고 눈 덮인 냇가에 가서 아랫도리를 씻는데 얼굴 클로즈업이 되면서 마치 감정에 북받쳐 나온 것처럼 영화에서 기대치 않은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아주 미니멀한 우리 소리가 눈발을 맞으며 땅을 치면서 우는 수경의 모습 위로 흐른다. 정적 속에 마치 귀가 막혔다가 트이는 것 같은 느낌이 흡사 개도나 카타르시스를 얻는 것 같은 느낌 같기도 하다. 마침내 수경은 옷을 다 풀어헤치고 알몸으로 물속에 몸을 던진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지 않고 후두두 떨면서 기도한다. 목숨을 건 김지미 배우의 과감하고 단호한 선택이었다. 정일성 촬영감독의 말 대로 촬영 당시 영하 12도의 날씨면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그 기도 하는 모습이 연기만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목숨까지 건 영화 창작이 그렇게 암울한 시절 중단됐다는 것은 잊혀서 안 될 일이다. 영화제 관계자나 영화 학자,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아키비스트, 사회학자, 민속지학자, 박물관 관계자 등이 관심을 갖고 상영 및 포럼을 기획해도 좋을 것 같은 작품이다. 영화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면 무성영화 시절 사용했던 것 같은 인터타이틀 삽입도 고려해볼 만할 것 같다. JIFF는 특별전에 맞춰 『작가 송길한』이란 책에 인터뷰, 기사, 사진 자료 등을 비롯해 영화 <비구니>의 시나리오 전편도 수록했다. 이 글을 쓰는 데에도 참조가 많이 된 것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비구니> (JIFF 2017 편집 본)에 들을 수 없는 대사와 미처 다 찍지 못해 볼 수 없는 일제강점기부터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와 원래의 엔딩 등 더 많은 것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근래 전 세계 영화제에서 가장 크게 주목받은 러시아 애니메이션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콘스탄틴 브론지트 감독의 <우주 없이 못살아 We Can’t Live without Cosmos>이다. 2008년 <화장실 러브스토리>로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후보에 올랐던 감독이 그 후 6년 만에 발표한 작품이다. <우주 없이 못살아>는 2015년 5월에 열린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단편 우수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받으며 한국 관객의 마음을 얻었고, 같은 해 6월에 열린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와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도 단편 부문 대상을 받으며 세계 관객의 마음을 재차 확인했다. 수많은 영화제와 시상식을 사로잡은 <우주 없이 못살아>의 주인공은 우주인 훈련생들이다. 작품은 건장한 청년들이 마주 서 침대 위를 뛰는 장면으 로 시작한다. 바깥은 별이 가득한 밤. 성긴 눈발이 사선으로 날리는 매서운 계절이다. 1203, 1204 나란히 이어진 번호를 받고 같은 방을 쓰는 두 사람은 유모차 타던 시절부터 단짝이다. 그러니까 우주인 흉내를 내며 침대 위를 뛴 것도 하루 이틀은 아닐 것이다. 2015년 3월, 나는 모스크바에서 하룻밤 묵었다. 러시아 작가들이 휴양처럼 생각한다는 오픈애니메이션페스티벌 행 버스가 다음날 출발할 예정이었다. 페스티벌이 제공한 호텔 이름은 코스모스(호텔 클럽 이름은 솔라리스)였다. 3,600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규모지만 객실은 소박했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을 대비해 세운 건물인데 내부 장식도 그때 그대로가 아닌가 싶었다. 호텔 창밖으로 보이는 공원에는 은빛 탑이 예리하게 솟아 있었다. 거대한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공원을 산책했다. 하늘은 아침부터 무척이나 새파랬고 눈이 부실만큼 번쩍이는 탑 꼭대기에는 로켓이 놓여있었다. 거기서 유리 가가린의 조각상을 발견했다. 인류 최초로 우주 궤도 비행에 성공했다는 사람. 그곳은 모스크바 우주 박물관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가 훈련받은 가가린훈련센터도 모스크바에서 멀지 않다. 러시아 어린이라면 장래희망으로 우주인 정도는 한 번쯤 쓰겠구나 싶었다. 밤마다 함께 우주를 나는 꿈을 꾸던 두 친구는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일상적인 체력단련과 수영, 구토를 유발하는 원심력 훈련까지 해낸 끝에 우주인과 예비 우주인으로 선발된다. 1203을 태운 로켓이 흐린 하늘을 지나 별이 빛나는 우주에 다다르자 센터 사람들과 모니터로 지켜보던 1204는 박수치며 환호한다. 그러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그만 교신이 끊긴다. 1990년 일본 최초 우주인의 통역사로 소련을 찾은 요네하라 마리는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이카로스들의 묘”를 만난다. 1) 그녀의 기억에 언론은 1961년 우주 비행에 성공한 가가린을 소비에트의 이카로스라고 불렀다. 그녀는 넓은 기지 한구석의 비석을 보며 야심 찬 성공의 그늘에 가려 적막한 죽음을 맞은 이카로스가 한둘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친구가 떠난 까만 하늘, 가만히 가득한 별들이 흰 눈이 되어 쏟아진다. 지상에 슬픔이 두껍게 쌓여도 삶은 멈추지 않는다. 훈련센터 관리자는 곧장 1203의 기록에 줄을 긋는다. 1204는 이제 다음 차례 우주인이다. 하지만 혼자 남은 그에게 꿈은 더는 같은 의미가 아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기 전 이 영상 편지의 수신인이 뜬다. TO OUR FRIENDS <우주 없이 못살아>는 별이 가득한 우주와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두 친구 이야기다. 둘은 어릴 때부터 수없이 함께 우주를 이야기하며 자랐을 것이다. 우주 없이는 못산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은 꿈을 나눈 친구가 아닐까. ‘우정 없이 살 수 있을까.’ 소중한 친구들에게 보내는 감독의 메시지를 부디 확인하시길 바란다. 주1. 요네하라 마리, 「이카로스와 가가린」, 『교양 노트』, 마음산책, 2010
은희에겐 정말 최악의 하루다. “하느님이 제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에요. 안 그러면 이런 일이 일어나겠어요?” 가을 어느 날, 배우 지망생 은희( 한예리 )는 연기수업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연기력 없다고 타박 들으며 시원찮게 수업을 마치고 나오다가, 길을 헤매고 있는 일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어쩌다 료헤이에게 길 안내를 해준 후, 아침드라마에 출연 중인 남자친구 현오( 권율 )을 만나러 남산으로 향하는 은희.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까 봐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중무장한 현오와 비밀 데이트를 하면서 은희의 최악의 하루가 펼쳐진다. 엉겁결에 자기 이름 대신 다른 여자 이름을 외친 현오. 화가 난 은희는 도망치듯 자리를 뜨게 되지만, 곧이어 다른 복병이 등장한다. 한때 썸을 탔던 운철( 이희준 )이 은희가 올린 트윗을 보고 우연히 남산에 나타난 것이다. 처음 본 일본 소설가, 현재 만나는 남자, 그리고 과거에 만났던 세 남자가 동시에 주마등처럼 하루 만에 은희 앞에 나타나고, 은희는 복잡한 감정의 회오리에 휘말리게 된다. 허세 가득한 현재의 남자와 솔직하지 못한 과거의 남자가 은희를 둘러싸고 만들어놓는 엉망진창의 삼각관계는, 흡사 홍상수 월드의 남자 캐릭터들이 빚어놓는 풍경처럼 적잖이 남우세스럽다. 마침내 조우한 연적의 두 남자가 담판을 짓기 위해 연희를 내버려둔 채 소주를 마시러 가는 장면은 가히 영혼의 빤스줄을 내린 지질한 한국 남자 전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홀로 남은 은희가 홀로 벤치에 앉아 하느님이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라고 넋두리를 할 만큼 최악의 하루다. 6년 만에 내놓은 김종관 감독의 신작, 전작들에 비해 훨씬 더 담백해졌다. 절제된 이미지들은 유려하게 이야기들 속에 스며들어 있고, 빛의 조탁 또한 탁월하다. 카페 벽면과 찻잔 테이블 위에까지 나뭇가지 그림자와 햇빛을 드리워 영화 전반에 생기를 불어넣는 디테일한 솜씨가 출중하다 못해 부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어리숙한 세 청춘의 삼각관계를 묘사하는 데 그쳤다면 이 영화는 그저 이쁘장한 엽서들이 나열된 듯한 평이한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 최악의 하루 >의 매력은 두 개의 후반 신부터 발산되기 시작한다.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와 한국 기자와의 인터뷰, 그리고 홀로 남겨진 은희의 독백. “왜 인물들을 위기에 넣고 꺼내주지 않나요?”라는 한국 기자의 질문에 료헤이는 자신이 쓰는 글은 그저 글을 뿐이고, 자신들이 아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답변하다. 그러나 정작 “정말... 그 사람들을 알고 있나요?” 라는 질문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대신, 그다음에 이어지는 신에서 은희는 마치 대꾸하듯이 이렇게 대답한다. “진짜라는 게 뭘까요? 전 사실 다 솔직했는걸요.” 현실 속 인물과 영화 속 등장인물의 두 개의 속내가 포개지면서 돌연, 영화 속으로 감독의 자의식이 서서히 틈입한다. < 최악의 하루 >는 연애담이기도 하지만, 사실 영화 만들기에 대한 감독의 내밀한 고백이라는 걸 토로하는 순간이다. 은희와 료헤이가 남산의 밤길을 걷는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다. 마치 마법을 부려놓은 듯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영화 밖의 감독이 나란히 산책을 한다. 가을 밤빛이 나른히 부서지고, 료헤이의 이야기 속에서 뜨덤뜨덤 눈발이 내린다. 그 사이 손등을 스치듯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진다. 시적인 순간이다. 사랑을 하는 일이든, 영화를 만드는 일이든 사실 같은 여정인지도 모른다. 감독은 은희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전 커피 좋아해요. 진하게.... 진한 각성.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거든요. 당신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 < 최악의 하루 >는 최악의 남자들을 만나 최악의 하루를 보낸 영화 속 은희의 각성의 이야기자, 료헤이로 은유 된 감독의 은밀한 각성의 고백이기도 하다. 왠지 이 고백이 설렌다. 김종관 감독은 다음에 더욱 반짝거리고 단단한 영화로 다가올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