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세상
- 감독
- 윌리암 카메론 멘지스
- 제작년도
- 1936
- 출연
- 레이몬드 머시, 에드워드 채프만, 랄프 리차드슨, 마가레타 스코트, 세드릭 하드위크, 모리스 브라델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씨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요즘 종종 어른들로부터 박정희 씨가 대통령이 되었던 1963년 10월에 대해서 어제 일처럼 이야기를 듣는다. 물론 그로부터 2년 전 5월 16일 군사 쿠데타가 있던 날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지금 이 글을 2013년 겨울이 끝나고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에 쓰고 있다. 말하자면 50년 전의 일. 박정희라는 이름은 당신에게 얼마나 멀리 있는 이름인가, 혹은 가까이 있는 이름인가. 나는 유령을 호명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너무 가까이 있는 이름, 멀리 떠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응답하는 이름, 그래서 오늘밤 다시 나타난 이름에 대해서 먼저 생각한다. 임권택 의 < 망부석 >은 그 해에 만들어졌다. 부디 오해하지 말 것. 나는 여기서 역사의 감각이라는 문제를 꺼내들 생각이다. 그런 다음 당신을 1963년에 데려다 놓고 싶다. 그때 조선시대는 얼마나 가까이 있었을까, 혹은 멀리 있었을까. 감각의 원근법. 1392년 태조 이성계로 시작하여 1910년 순종까지 23명의 왕조를 거쳐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로 끝난 역사. 그때 사람들은 일제 강점하를 살면서 자신들을 조선 왕조의 신민이라고 생각했으며 대한민국의 국민이라고는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시대가 끝난 다음 한반도의 백성들은 단 한 번도 대한민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기 시작한 것은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주의의 무조건적인 항복 이후에서야 비로소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전체의 삶은 너무 짧았다. 시작하자마자 한반도는 절반으로 나뉘었고 그런 다음 한국전쟁이 이어졌다. 전쟁은 휴전으로 끝났고 우리는 남한의 국민으로 살기 시작했다. 자, 모두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내 이야기의 요점은 < 망부석 >이 휴전으로부터 고작 10년 후의 영화라는 것을 환기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때 한국사회는 조선으로부터 53년 후의 시간의 자리에 놓여있었다. 내가 지금 매우 위험한 논제를 건드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역사 속에서의 삶과 삶 속에서의 역사 사이의 상대성. 나는 다소 간단하게 역사에 관한 감각의 근접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다. 앞의 역사의 가장자리는 종종 뒤의 역사 안에 (여러 가지 형식으로) 흔적을 남겨놓았다. 언제나 역사는 차츰차츰 사라져간다. 약간 전통적인 방식으로 말해보자. 기억과 사고의 교차 안에서 양태들은 오랫동안 남겨질 것이며 속성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두 개의 세상에서 매듭은 하나의 고리를 만들겠지만 앞과 뒤 사이에서 그것을 묶어놓은 힘은 뒤의 자리에서 앞의 기억을 모방하고 종종 거울처럼 들여다보게 만들 것이다. 모든 세계는 두 세상의 연결이다. (혹은 다가올 세상을 셈에 포함해야 한다면 셋이 될 것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였으며, 더 많은 것을 오랫동안 남겨놓았다. 모든 관념들은 사물들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 둘은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때 기억은 이미 사라진 사물을 찾아서 흔적 주변을 기웃거리기 시작할 것이다. 1963년에 남겨진 조선시대. 서울시대의 궁궐들. 사대문을 둘러싼 왕가의 무덤들. 내게 약간 문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이 말을 우회하고 싶다. 당신이 오늘 오후 경복궁 안뜰에 서서 하늘을 지나가는 구름을 바라볼 때 당신은 얼마만큼 조선을 느껴볼 수 있을까. 똑같은 의미로 1963년 창경궁에 서서 우두커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임권택 은 얼마나 가까이 조선의 왕조를 느껴보았을까. 둘 사이의 차이. 혹은 둘 사이의 거리. <망부석>을 찍기 위해서 촬영 내내 드나들었을 장소. 야외촬영은 언제나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 사방에서 볼 수 있는 한복을 입은 여자들. 나는 지금 이 당시의 사진을 약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다. 홀린 듯이? 그렇게 시간에 홀린 듯이. 젊은이들은 신사복을 입고 있다. 그때 나이 많은 노인들은 갓을 쓰고 나들이를 하였다. 나는 지금 세계의 이중성 안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중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질서를 자기 안에 복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를 세계 안에 배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 개의 자리. 1762년에 시작해서 1776년에 끝나는 이야기.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을 때부터 정조가 왕위에 오를 때까지 이어지는 조선의 시간. 그리고 1963년 박정희 씨가 대통령이 된 대한민국의 시간. 두 개의 시간 사이의 임권택의 공명. 나는 여기서 어떤 정치적인 이음새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체제. 하나의 제도, 하나의 시대가 끝날 수 있지만 사물 속에 머물고 있는 기억은 마치 그림자처럼 둘 사이의 공감의 부피를 체현할 것이다. 나는 거기서 본래의 모습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세상을 뒤덮고 있는 그림자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이다. 그림자? 그렇다. 당신이 지금 박정희 씨를 느껴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 그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임권택은 조선을 바라본 다음 그걸 영화로 끌어당기고 있다. 이야기와 그림자 사이의 인접관계. 나는 지금 지식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림자 앞에 잠시 멈춰 선 다음 그 안에서 무언가를 느껴보려는 이야기의 제스처를 바라보려는 것이다.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보기 바란다. 임권택은 1762년 혹은 1776년, 이때의 조선시대를 보여주기 위해 1963년 창경궁에 카메라를 세우고 그 앞에 배우들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가 제시하는 상상의 동선들. 그 사이에 주어진 어떤 질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박정희 씨가 막 대통령이 되었던 그 해. 사도세자 화완옹주 정조 그 다음은 불연속성에 대해서 말할 차례이다. < 망부석 >은 두 개의 이야기로 나뉜 영화이다. 앞부분은 영조가 칠순이 되고 기력이 쇠하자 그의 세자에게 국정을 맡기지만 임금의 자리를 노리는 화완옹주의 계략에 빠져 사도세자가 영조의 미움을 사고 뒤주에 갇혀 굶어죽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영조 38년인 1762년 음력 5월 13일에 사도세자가 영조의 명에 따라 갇힌 뒤 아흐레 후에 굶어죽었다고 역사에 기록된 임오화변에 바탕을 두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단지 화완옹주의 계략에 따라 영조가 속아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는 벌을 내린 것은 아니다) 그때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영조의 손자이며 뒤를 이어 임금이 된 정조가 11살 이었다. 영화는 거기서 일단 중단된 다음 영조에 의해 그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와 이제 장성한 정조가 입궐하고 다시 시작한다. 피비린내 나는 왕위를 둘러싼 정쟁이 벌어지고 그런 다음 영화는 정조가 왕위에 오른 음력 1776년 3월 10일에 끝난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이야기가 둘로 나뉜 것이 아니다. 임권택 은 수 없이 둘 혹은 셋으로 이야기를 분할하였다. (< 왕십리 >, 혹은 < 길소뜸 >) 아니면 아예 조각조각내기도 하였다.(< 짝코 >) 그런데 <망부석>은 사도세자의 이야기와 다시 입궐한 정조의 이야기를 서로 분리하여 그 둘이 마치 서로 다른 시대에 속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른 관점을 취해야한다는 듯이 주어진 사료를 정반대의 방식으로 다룬다. 다소 도식적으로 설명하면 <망부석>은 앞의 이야기는 사료에 근거하여 그 안에서 진행되는 정사에 가까운 반면 뒤의 이야기는 오로지 영화를 위하여 지어낸 인물인 꽃봉이를 하나의 동선으로 하여 이야기를 진행한 다음 모든 인물들을 다시 역사의 사료에 수렴시키는 야사에 가까워진(다음 다시 역사로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두 개의 진행. 좀 더 간단하게 하나는 아버지의 이야기(histoire/ Histoire)이고, 다른 하나는 아들의 드라마(histoire/ drame)이다. 그 둘은 11년간 서로 겹친 다음 헤어진다. 영화 <망부석>은 두 개의 시간의 교집합을 이루는 씬이 있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힐 때 그의 아들이 할아버지인 영조에게 매달려 아버지 대신 불초 소자를 벌해 달라고 매달리는 장면. 그러나 앞의 이야기는 거기까지이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질서. 왜 하나는 다른 하나가 아닌가. 두 개의 이야기는 멀리 떨어진 시간이 아니다. 둘로 나누어진 조선이라는 시간의 형상. 왜 하나의 시간을 둘로 나눈 다음 같은 패턴으로 반복할 수 없었을까. 나는 여기에 어떤 지식(의 영향이나 모델)이 개입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왜 이 이야기는 두 개의 관점을 한 편의 영화 안에서 공유하는 것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느냐고 물어보고 싶어진다. 이때 두 이야기가 다른 한편으로는 영조의 시간 안에서 연속된 이야기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영조 안의 두 개의 항. 사도세자와 정조. 반대로 사도세자와 정조를 연결하는 하나의 집합, 영조. 이중의 요구 조건. 왜 하나는 역사의 사료가 그 자체만으로 드라마로 성립하지만 다른 하나는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이 등장해야만 역사의 사료 안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을까. 나는 여기서 역사의 사료를 놓고 영화의 구성에 대해서 설명하는 대신(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마치 두 개의 영화가 있는 것처럼 < 망부석 >을 다룬 다음 그 둘 사이의 상이한 방법을 통해서 조선시대가 왜 그렇게 해야만 서로 상호보충을 이루는 지에 관한 다소 의심스러운 질문을 할 생각이다. 의심? 물론이다. 나는 <망부석>이 조선시대의 역사 안에 실제로 사료에 기록되어있는 구체적인 한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종종 몽환적인 순간을 보여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아하게 여겨왔기 때문이다. 이 순간들은 차례로 임권택 의 영화에서 사라져갔다. 나는 단지 이 문제가 연출에서의 진화에 따른 해결이라는 식으로 손쉽게 대답될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겉으로 드러난 이 순간은 점점 더 임권택의 영화 안으로 침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좀 더 정교하게 설명해야 하지만 그냥 직관적으로 말할 수도 있다. 앞의 이야기가 전체로 주어진 역사의 광경 안의 이야기를 바라보고 있다면 뒤의 이야기는 그 광경의 이야기가 역사의 과정을 바라보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맞은편의 광경. 나는 역사 사료 안의 그림자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그때 공백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먼저 이야기의 외곽에 놓은 인물. 이 영화의 제목인 < 망부석 >은 사도세자의 아내이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녀는 남편이 뒤주에 갇혀 죽은 다음 아들을 돌보면서 영조의 눈 몰래 남편이 세상을 떠난 그 언덕에 올라 마치 멀리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어버렸다는 망부석(望夫石)인 양 저승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저승을 바라보는 일.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 차라리 자기도 죽고 싶다는 간절한 표현. 그래서 제발 자기도 데려다달라는 제스처. 하지만 여기 머물러야 한다. 왜냐하면 남편이 남기고 간 아들이 여기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들을 왕위에 올려 역사 속에서 남편을 복권시켜야 한다. 혜경궁 홍씨의 눈물에는 영조에서 정조에로 넘어가는 맹렬한 인정투쟁이 담겨있다. 영화는 계절이 바뀌어도 언덕에 올라 바라보는 혜경궁 홍씨를 보여준다. 하지만 혜경궁 홍씨에 대한 관심은 거기까지이다. 만일 제목을 생각하면서 <망부석>이 혜경궁 홍씨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크게 실망할 것이다. 혹은 영화의 선을 놓칠 것이다. 이야기는 정 반대로 사도세자를 따라갈 때에는 혜경궁 홍씨가 거의 등장하지 않고 그런 다음 다시 입궐하여 정조의 이야기가 되었을 때는 그의 어머니로서 모습을 보인 다음 마치 다른 건물에 머물기라도 한 것처럼 만날 수 없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 즈음에야 다시 볼 수 있다)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제목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어리둥절했다. 종종 선이 끊어지는 인물. 이때 무엇이 이 연속성을 다시 이어놓을 수 있을까. 당신은 이 이야기가 역사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역사가 연속성과 관련될 때 그 속에서 살아야 하는 인물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일까. 말하자면 여기에는 이야기를 설명하는 두 개의 방법이 결정된 다음 여러 개의 체계로 다시 분류가 시작되고 있다. 여기서 혜경궁 홍씨를 어디에 위치지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역사의 도표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불분명하고 혼란스러우며 조각난 역사의 사료들을 하나의 연속으로 다루어야 할 때 이 선을 연결시켜주어야 할 유일한 방법은 그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 밖에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려고 한다. 역사의 사료로부터 시간의 연속으로 넘어와야 할 때, 바로 그때, 임권택 의 영화에서는, 여기에 그 사이를 연결하는 기형적인 연극이 반드시 개입되고 있다. 기형적인 연극? 그렇다. 역사 앞에서 상연되어야 하는 소극적인 역할. 그 안에서 무시해서 소멸된 것이라도 된 것처럼, 하지만 그 안에서 선택해서 다시 존재하게 불러낸 것처럼, 그 무언가가 상연된다. 이때 내 질문은 왜 그 역할이 역사의 사료 속에 존재하는 혜경궁 홍씨가 아니라 가상의 인물인 꽃봉이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임권택이 역사를 찌그러트리면서 그 사이에 채워 넣은 질서. 꽃봉이 중전 이때 우리는 이 문제를 단순하게 역사 앞에서 (여성의) 희생이라는 방식으로 바라보는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이야기는 단순해진다. 여기에는 단지 꽃봉이라는 이십대 여자의 미숙한 사랑과 자기가 넘볼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계급적 좌절의 따분하리만큼 반복적인 도식을 읽을 수 있을 뿐이다. 그건 구태여 우리가 조선시대라는 배경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동일한 여자들의 희생을 수많은 판본으로 거듭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반대로 꽃봉이라는 인물이 < 망부석 >에서 개연성이 없다는 사실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는 앞부분에서 이미 어린 정조가 등장하고 있지만 그러나 꽃봉은 이 이야기와 아무 관계가 없다. 차라리 그녀는 완전하리만큼 역사 바깥에서 온다. 심지어 <망부석>을 본 다음 꽃봉이가 어느 장면에서 처음 등장했는지를 질문할 때 대부분은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그녀는 영화에서 거의 절반이 가까워질 즈음, 영화가 시작한 지 37분이 지난 다음, 그러니까 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나고 11년이 지난 다음, 삼청동에 혜경궁 홍씨와 정조가 살고 있는 가난하고 외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그러고 나서 영조의 노년의 외로움과 자기 아들을 벌로 사했다는 괴로움을 헤아려 (이 모든 장면들이 차례로 나온다) 중전이 주상궁을 불러 혜경궁 홍씨와 정조의 근황을 물어볼 때 그 곁에 선 시녀로 등장한다. 처음 이 영화를 볼 때는 아무도 그녀를 주목하지 않을 것이다. 이때 임권택 은 꽃봉이를 이상한 방식으로 인물들 사이의 네트워크 안으로 끌어당긴다. 중전이 주상궁과 혜경궁 홍씨와 정조에 대해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때 꽃봉이는 사실상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전과 주상궁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꽃봉이는 서 있기 때문에 그녀는 하반신만 찍혔다. 그런데 중전이 일어서서 이야기의 자리를 옮길 때 카메라는 기이하게도 상대 쇼트로 주상궁을 그냥 지나쳐서 꽃봉이를 보여준다. 이 카메라의 이동은 너무 이상해서 몇 번을 다시 보아도 기이하게 선을 긋는다는 인상을 안겨준다. 그런 다음 이 쇼트의 상대 쇼트는 중전을 보여주는데 이 시선이 명백히 꽃봉이의 시선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동일한 방법으로 다가간다. 두 개의 동일한 운동. 말하자면 의도적인 카메라의 동선을 보여준 다음 똑같은 방법으로 시선의 운동이 이어질 때 우리는 이 유사성이 가져다 준 관계의 기호를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이때 하나가 관계의 선이고 다른 하나가 시선의 선이라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두 개의 선. 그런 다음 이상한 시선의 교환이 등장한다. 중전은 주상궁에게 혜경궁 홍씨와 정조를 다시 입궐시킬 묘책을 이야기한다. 이때 이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라면 상식적으로 곁에 서 있는 꽃봉이를 이 방에서 내 보내면 된다. 그러나 그녀를 내 보내는 대신 그 두 사람은 갑자기 귓속말을 나눈다. 그런 다음 중전은 마치 이 비밀 이야기를 꽃봉이가 들었을까 염려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본다. 그때 이 표정의 상대 쇼트는 꽃봉이가 마치 들켰다는 듯이 마주보던 얼굴을 숙이면서 시선을 피한다. 왜 그 두 사람은 귓속말을 나누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걸 관객이 들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때 꽃봉이는 이 이야기의 관객과 비스듬히 겹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과도하게 단순화시켜서 관객과 꽃봉이가 동일시되어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꽃봉이는 역사의 바깥에서 와서 이야기의 안으로 들어왔지만 이상하게도 이야기의 중심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의 전부를 그녀에게 다 알려주면 안 된다는 듯한 어떤 거리가 그 사이에 개입하고 있다. 그녀는 이야기를 알고 있어야 해, 하지만 그녀가 너무 많이 알아서는 안 돼, 라는 이 거리감은 시종일관 이 이야기를 유지시킨다. 그건 마치 꽃봉이가 이 시대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심지어 나는 꽃봉이에 대해서 그녀가 존재한다기보다는 영화를 보는 우리와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는 인물들 사이의 간극을 채우기 위해서 거기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이 시선의 관계는 바로 이어지는 다음 씬, 그러니까 삼청동에 중전의 뜻을 전하러 간 주상궁의 곁에 서서 꽃봉이가 정조를 처음 만날 때의 시선에서 그대로 반복된다. 주상궁과 혜경궁 홍씨가 만나는 이 씬에서 (master shot) 구도로는 마치 꽃봉이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세워져 있다. 주상궁과 혜경궁 홍씨의 대화를 보여주면서(two shot) 이어지던 쇼트의 진행은 갑자기 인서트처럼 그 두 사람을 바라보는 꽃봉이를 보여준다. 그 시선의 자세는 정확하게 관객의 시선이다. 그러나 꽃봉이는 거기서 시선을 약간 돌린 다음 그 뒤편에 서 있는 정조를 바라본다. 이때 카메라는 마치 그 시선의 선을 따라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정조를 향해서 직진한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달리로 촬영된 이 장면은 마치 꽃봉이가 그를 향해서 발걸음을 옮기며 다가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나는 이것을 도식적인 설명의 따분함을 무릅쓰고 불가능한 욕망의 시선으로 다시 번역하고 싶은 다소 위험한 상상을 하게 된다. 두 개의 선의 유사성. 꽃봉이가 중전을 바라볼 때의 시선과, 마찬가지로 정조를 바라볼 때의 시선 둘 사이의 유사성에서 노골적인 겹침을 떠올리게 된다. 여기에는 꽃봉이가 정조의 아내의 자리, 미래의 중전의 자리에 대한 드러내놓고 거기에 다가가려는 시선의 발걸음을 느끼게 된다. 물론 그건 (조선시대에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금지된 욕망이다. 그때 나는 이 시선의 발걸음이 정조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 아니라 중전을 바라보는데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이것은 사랑의 시선이 아니라 자리의 시선이다. 그 자리가 불러일으킨 환상. 그러나 갈 수 없는 자리. 그러므로 이 시선은 죽음의 발걸음이 될 것이다. 이때 임권택 은 이 죽음을 두 번 반복하고 있다, 물론 하나는 사도세자의 역사 속에서의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꽃봉이의 드라마 안에서의 죽음이다. 두 개의 죽음. 공통점은 둘 다 화완옹주의 음모에 빠져서 죽음에 이르는 것이며, 차이는 사도세자가 모두의 시선 앞에서 죽음을 선택한다면 꽃봉이는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어떤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까닭은 기이하게도 사도세자와 꽃봉이는 동일한 장소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이다. 이 둘의 죽음은 좀 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사도세자는 모두들 앞에서 상연되듯이 죽음을 맞이한다. 그때 그는 의도적으로 큰 웃음을 터트리면서 이 모든 상황이 우스꽝스럽다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그가 보기에 왕권을 둘러싼 이 음모와 싸움은 희극적이다. 반대로 꽃봉이는 마치 자기 자신을 위해서 상연되듯이 그 자리에 없는 정조를 부르며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처지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독약을 마신다. 나는 < 망부석 >이 두 개의 세계관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은 결국 하나의 시대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우리가 놓쳐선 안 되는 것은 이 두 개의 이야기가 모두 영조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진행되는 음모의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망부석>은 두 명의 관객이 있다. 하나는 물론 영화를 보는 당신이지만, 다른 한 명은 영조이다. 이때 둘의 차이는 당신은 이 음모의 과정을 보지만 영조는 단지 음모만을 본다. 과정 없는 음모. 좀 더 정확하게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연기되는 음모의 상연. 혹은 영조를 관객으로 한 음모의 상연. 이때 사도세자는 영조 앞에서 자기의 운명에 대해서 영조를 관객으로 하여 희극적인 상연을 한다. 그는 정말 미친 것처럼 크게 웃는다. 그때 그 웃음은 어리석게도 음모에 속아 넘어간 채 자신에게 죽음에 이르는 벌을 내리는 영조를 향한 것인지 이 모든 것이 그의 운명이 되어버린 조선 시대의 왕정 정치를 둘러싼 음모를 향한 것인지 모호하다. 반대로 꽃봉이는 이 음모의 상연에서 이쪽과 저쪽 사이를 오가면서 영조의 눈을 속이기 위해 진행되는 거짓의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허구의 질서와 그 질서의 이면 사이 그 어디에도 역사의 자리가 없기 때문에 결국 역사에로 귀결될 때 이미 예정된 대로 그녀의 자리가 폐제될 것이라는 데 비극이 있다. 나는 여기서 두 개의 길을 본다. 하나는 사도세자를 다루면서 역사의 부채를 물어보는 방식이다. 이때 여기에 더해진 것은 다만 화완옹주의 음모뿐이다. 그런 다음 가려진 것은 영조가 사도세자를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한 다음 그를 뒤주에 가두어 죽음에 이르게 할 명분을 찾는 과정이다. 이때 다소 곡예를 부린다면 우리는 영조의 잘못을 화완옹주에게 떠넘겼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런 다음 다시 역사를 올바르게 되돌려 놓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단지 이야기의 권선징악이나 사필귀정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드라마가 아니다. 올바르게 되돌려 놓는다는 것은 역사 안의 부분적이고 왜곡된 형태로 개입한 화완옹주를 정조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드라마가 만들어낸 인물인 꽃봉이의 희생의 형식을 빌려 다시 역사 바깥으로 쫓아낸다는 의미이다. 이 셈을 드라마의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다가간다면 다소 공허하게 여겨진다. 왜냐하면 바깥에 있던 것을 삭제하기 위하여 다시 바깥을 끌어들인 다음 부채를 청산하는 방식을 취할 때 이것은 인물들 사이의 운명을 놓고 벌인 대차대조표에 관한 일종의 타협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의 관점을 취할 때 임권택 이 어딘가 모르게 역사의 대상에게 직접적인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종의 외부적 장애를 만들어 놓은 것 같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는 가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꽃봉이가 정조를 향해 품었던 정념이 어떤 방식으로 드라마의 구조 안에서 자기의 주체를 기형적으로 찌그러트리면서까지 대상으로 몰락해 가는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비극의 물화. 나는 역사 안에서 기형적인 연극의 상연을 위해서 임권택이 종종 인물을 찌그러트린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은 < 망부석 >뿐만 아니라 임권택이 ‘이후’에도 줄기차게 조선시대를 다루면서 가져온 하나의 방법이다. 역사의 자리에서 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이야기의 자리에서 보면 이 인물들은 방해물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자기의 존재를 증명해낸다. 이때 역사의 실존하는 인물들에게 그들은 단지 방해물이 아니다. 방해물이기는커녕 그들이 없다면 주인공들은 역사 속에서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할 것이다. 지젝이 (프레드릭 제임슨에게서 영감을 얻어) 쉘링을 끌어들인 방식으로 개념화한다면 이들은 사라지는 매개자들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이 문제를 과도하게 도식화시키고 싶지 않다. 다만 이 매개자가 필요해진 까닭은 총체성의 일관성을 유지시키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라는 지적을 끌어당기고 싶다. (지젝의 방점은 일관성이지만)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방점은 전략이다. 말하자면 반대로 역사 속의 주인공들이 역사 속에 접근해가기 위해서 이 매개자의 도움이 없다면 임권택의 영화는 무언가 역사를 건드려야 한다는 돌이킬 수 없는 폭력적인 방식의 왜곡을 더해야 할 것이다. 나는 바로 이 넘어가서는 안 되는 경계와도 같은 자발적인 망설임 앞에서 1960년대에 조선시대에 관한 사극영화를 만들면서도 (아마도 임권택과 동시대에 이 장르를 만들면서 또한 대가였던) 신상옥 을 중심으로 한 (역사에 대해서) 폭력적인 영화들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또 다른 결정적인 차이로서의 (존재론적인) 폭력을 느낀다. 두 개의 폭력. 나는 1960년대 한국 사극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들이 항상 폭력적인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건 21세기 한국영화가 조선시대를 종종 우스꽝스럽게 조롱하는 것과 달리 (이를테면 두 편 모두 천만 명의 관객이 넘은 < 왕의 남자 >와 < 광해, 왕이 된 남자 >가 동시에 ‘광대’와 왕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이 시기의 사극영화들은 조선시대와 이제 막 근대가 시작된 (일제 식민지 강점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리승만 대통령의 체제를 끝내고 다시 시작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이에서 (리승만과 박정희의 정치적인 평가와는 무관하게 근대로서의 한국이라는 자리에서) 항상 무언가 대결한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당신은 즉각적으로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지도 모른다. 박정희는 또 다른 일제 강점하의 산물이다.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시대 안에서 그 이름이 하나의 담론으로 사회 안에 언제 등장했느냐는 질문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물론 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훨씬 정교한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는 이 논쟁을 하기에 적절한 자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 대신 나는 여기서 다만 임권택의 사극영화에 대한 설명만으로 만족할 생각이다. 하지만 이건 분명하게 지적하고 싶다. 하나의 시대 안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사극의 태도를 하나로 묶어서는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다. 자, 원래의 논점으로 돌아가자. < 망부석 >에서 꽃봉이라는 매개자는 정확하게 무엇을 방해하는가. 얼핏 보는 것과 달리 꽃봉이는 역사가 아니라 드라마의 진행을 방해하는 중이다. 이때 이 영화의 드라마는 사실상 음모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가정이지만 만일 우리가 꽃봉이라는 인물을 치운다면 즉각적으로 정조는 사도세자의 운명을 반복하면서 자신이 왕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을 것이며 혜경궁 홍씨는 그녀의 남편과 동일한 운명에 처해졌을 것이다. 이때 정확하게 멈추는 것은 무엇인가. 만일 당신이 정조가 왕위에 등극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면 완전히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어떤 난관이 벌어져도 결국 역사는 집행될 것이다. 반대로 화완옹주의 음모를 어떻게 해서든 다른 방식으로 막아야 하는 영화의 역할이라는 역설 앞에서 멈추는 것은 역사의 개입을 중단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는 음모 그 자체이다. 다소 아이러니하지만 꽃봉이가 드라마 속에서는 음모의 진행을 폭로하고 그런 다음 음모 자체를 역사로부터 치우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반대로 역사의 관점에서는 꽃봉이가 음모 그 자체의 일부라는 사실을 지적해야 할 때 무언가 여기에는 다소 불편한 진실이 있다. 임권택 은 꽃봉이를 매우 쉽게 정조의 곁에 머물게 하면서도 끝내 그에게 손 끝 하나 댈 수 없게 만들면서 마치 역사에 쉽게 다가가면서도 끝내 조선시대라는 역사의 과정에 손 끝 하나 댈 수 없게 만든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임권택은 조선시대를 그저 감상할 뿐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를 계속 방해하다가 끝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려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나는 임권택의 영화를 보면서 이와 유사한 태도를 수없이 반복해서 경험하였다. 이를테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 족보 >. 나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해서 <족보>를 설명하면서 건드렸다. 혹은 < 씨받이 >와 <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 그런 다음 < 취화선 >. 거의 그의 영화 전부에서 내내 지속적으로 해당하는 이상한 반복. 물론 이때 이 반복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핵심은 반대로 이 반복이 동일성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균형이나 조화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임권택은 조선시대를 무언가 설명할 수 없지만 하여튼 여전히 유지될 수밖에 없는 대상으로 다루고 싶어 한다. 나는 < 망부석 >에서 꽃봉이가 자살하는 장면의 기괴함을 환기시키고 싶다. 꽃봉이는 화완옹주가 정조에게 건네주기 위한 독이 든 보약을 숨겨놓은 채 정조를 만나러 간다. 이 만남은 그녀의 마지막 작별인사와도 같은 것이다. 임권택 은 할 수 있는 한 그 만남을 미루려고 한다. 정조의 처소에 찾아갔을 때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은 정조의 스승인 홍국영이다. 물론 꽃봉이는 홍국영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다. 음모의 일부인 꽃봉이는 자신의 속내를 말하지 못하고 돌아가려할 때, 그때에야 비로소, 먼저 정조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 다음 정조는 꽃봉이에게 다가와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나 사실상 음모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 채, 기다려달라는 말을 반복한다. 물론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시간은 오지 않을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그 시간이 오지 않아야만 정조는 왕위에 오를 수 있다. 이 씬은 이상하게 진행된다. 꽃봉이가 홍국영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방에서 나와 정조가 그녀를 발견한다. 이때 그 둘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계속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정조의 시점 쇼트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적으로만 말하면 정조는 마치 꽃봉이를 보지 않는다는 듯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 다음 떠나려는 꽃봉이를 정조가 부른다. 나는 이 작별장면에서 정조가 꽃봉이를 보는 시점 쇼트는 있지만 꽃봉이가 정조를 보는 주관적인 시점 쇼트가 없는 것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여기에는 정념의 쇼트가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임권택은 꽃봉이가 정조를 마주볼 수 있는 영화적인 쇼트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꽃봉이가 정조를 보는 쇼트는 모두 어깨를 걸은(over-the-shoulder) 투 쇼트로 둘 사이의 장면을 나누고(shot-reverse shot) 있다. 이때 정조가 꽃봉이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동작은 “고개를 들라”라고 말한 다음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의 턱에 손을 댄 다음 얼굴을 들어 올리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 전체를 통해서 유일하게 정조가 꽃봉이의 몸에 손을 대는 순간이다. 꽃봉이가 내내 기다려 온 순간. 그러므로 이때의 시선은 사실상 그들 사이의 유일한 사랑의 몸짓이다. 그러나 이 순간 임권택은 꽃봉이에게 어떤 권리도 제공하지 않는다. 꽃봉은 아무런 고백도 하지 못하고 정조에게 인사를 한 다음 그 자리를 떠난다. 이때 갑자기 영화는 기이하게도 이제까지 분위기를 고조시키던 배경음악 대신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63년에나 어울릴 법한 반주음악과 창법으로 다듬어진)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 노래는 너무 이상해서 마치 우리들로 하여금 조선시대로부터 단번에 이 영화를 보고 있는 현대의 자리에로 되돌리려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물론 이런 식의 현대적 버전의 노래가 사극영화에 사용된 것은 임권택의 영화가 유일한 것은 아니다. 종종 이 시기의 사극영화들은 거리낌 없이 현대적 버전의 주제가를 사용하였으며, 그 노래들은 구태여 사극의 무드를 만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S# 1 S# 2 S# 3 S# 4 나는 < 망부석 >에서 꽃봉이가 자살하는 장면에서 모든 것이 거의 일제히 서로의 시간으로부터 벗어나고, 그런 다음 일부가 빠져나가고, 마치 작동을 멈춘 것처럼 중단하고, 그래서 결국 무언가를 버린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싶다. 거의 초현실주의적인 장면. 꽃봉이가 자살을 하기 위해 언덕에 왔을 때, 그 언덕은 사도 세자가 죽음을 당한 바로 그 장소이다. 그 장소에 꽃봉이는 서 있는 카메라 바로 앞으로 걸어온다. (S# 1) 바로 이때 저 언덕에 혜경궁 홍씨가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S# 2) 나는 처음에 이 장면이 꽃봉이의 환상이라고 생각했다. 이 장면은 환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임권택 은 그 판단을 보류한다. 그 대신 이번에는 카메라가 꽃봉이에게 다가간다. (S# 3) 그런 다음 여전히 혜경궁 홍씨가 거기 서 있는 모습을 꽃봉이가 바라볼 때 카메라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는다. (S# 4) 이 시선의 교환은 어딘가 매정한 데가 있다. 꽃봉이는 혜경궁 홍씨를 바라보며 눈물짓지만 혜경궁 홍씨는 멀리서 그저 떠나간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는 몸짓으로 화면 오른쪽 너머 먼 곳을 바라볼 뿐 꽃봉이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무정한 롱 쇼트. 마치 꿈결 같은 세트. 나는 이 장면에서 시선의 차단을 영화적으로 다시 읽고 싶어진다. 혜경궁 홍씨는 단 한 순간도 꽃봉이를 사도세자의 연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꽃봉이의 사랑은 그녀 혼자만의 절망적인 환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비참한 비대칭으로 끝난다. 이때 그녀의 편에 선 유일한 존재가 영화 바깥에서 들리는 현대적 버전의 주제가라는 목소리인 것은 얼마나 암시적인가. 그런 다음 꽃봉이는 이 시대로부터 더 이상 자기가 서 있을 곳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죽음을 선택한다. 이 장면은 그 자체로 임권택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시대 안에서 한계가 진행될 때 그 자체로 찌그러지는 어둡고 반복적인 상연의 폭력이라는 형식의 모델이라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 망부석 >이 임권택 의 첫 번째 사극영화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그는 여기서 처음으로 조선시대 속으로 들어왔다. 그런 다음 지속적으로 이 시대로 다시 돌아왔다. 임권택의 101편의 영화중에서 어떤 시대로 이만큼 끈질기게 반복적으로 그를 다시 불러내지 못했다. 아니 차라리, 마치 그는 이 시대 속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나는 언젠가 물어보았다. 감독님에게 조선시대란 무엇입니까. 임권택 감독님은 한참을 생각한 다음 대답했다. “그건 내가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내 부모님을 통해서,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통해서, 그 분들의 삶을 통해서 수 없이 들었고, 그분들의 삶의 태도를 통해서 쳐다보았고, 그래서 그걸 느껴보았고, 그런 다음 그분들을 떠올릴 때, 내가 그 시대를 그 분들과 함께 살아보았구나, 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시대인거요, 나는 그냥 그 시대를 영화로 다루고 있으면, 그게 편해요”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나는 여기서 편하다, 라는 말에서 멈추었다. 임권택은 불편하게 역사 속을 내내 살아왔다. 그가 태어났을 때 한반도는 일제 강점하였다. 그런 다음 좌우익의 대립이 시작되었고, 이어서 한국전쟁이 벌어졌다. 좌익의 집안이었던 임권택은 한반도가 분단으로 휴전을 한 다음 집을 떠났고, 그런 다음 내내 연좌제에 시달리며 이데올로기의 그늘 아래 숨어살아야만 했다. 그는 영화를 찍으면서 자기가 살아본 적이 없는 시간, 자기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가 살았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거기서 아무 것도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때 거기서 내가 보는 것은 한계가 아니다. 반대로 그 시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은 다음 자기의 기쐽오旻섯?방어하려고 임권택이 배치해놓은 다음 종종 기이한 방법으로 숨겨놓거나 때로는 평면적으로 보이는 구조 안에서 갑작스러운 변화를 일으키는 굴곡을 창조해내는 영화의 장치들, 차라리 오로지 자기만을 위한 코나투스라고 부르고 싶은 추억의 기호들을 발견하고 싶어진다. 종종 이 굴곡들은 이상할 때도 있고, 때로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만들어내면서 어떤 변덕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 기호들이 점점 우아해지고, 점점 더 더할 나위 없이 슬픈 정감을 떠올리면서 순수한 그 자신만의 힘을 만들어나간 것은 사실이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본 다음 그는 20세기에 영화를 만드는 19세기 사람, 이라고 불렀다. 나는 <망부석>을 본 다음 임권택이 1963년에 영화를 만들면서 조선시대에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자신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임권택은 영화를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한 타임머신으로 만들고 있다. 나는 그 기계에 동승할 방법을 익히는 중이다. (계속) 1963년 123분 흑백 2.35 감독 임권택 제작 극동흥업 각본 장천호 촬영 장석준 음악 이인권 미술 박석인 편집 김희수 이경희 혜빈 홍씨 신성일 세자 김운하 세손(정조) 최남현 영조 도금봉 화완옹주 강미애 꽃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