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를채우지않는여자
- 감독
- 황태래
- 제작년도
- 1994
- 출연
- 서금강, 이려진
베킷과 베케트, 서로 다르게 번역되었지만 두 이름의 철자는 Beckett로 동일하다. 베킷은 누군가의 이름, 베케트는 누군가의 성이다. 성의 자리에 놓이든 이름의 자리에 놓이든 사람들은 그를 베킷 혹은 베케트라 부른다. 영화 <베킷>의 주인공은 베킷이다. 문득 베킷(존 데이비드 워싱턴)의 풀 네임이 궁금해졌다. 베킷이라는 이름과 어울릴만한 성은 아무래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연인 에이프릴(알리시아 비칸데르)도, 낯선 미국 대사관 직원도 그를 베킷이라 부른다. 그의 이름은 퍼스트 네임과 라스트 네임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닉네임처럼 베킷이라는 두 음절로만 이뤄진 것 같다. Beckett은 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뮈엘 베케트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줄여 부를 때는 베케트라고 지칭한다. 베케트가 영미권 학계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는 넷플릭스 드라마 <더 체어>(2021)를 보면 미루어 알 수 있다. <X 파일>의 배우 데이비드 듀코브니가 자신을 연기하며 특별 출연한 에피소드에서 베케트의 이름은 예기치 않게 등장한다. 유명 배우인 듀코브니는 교수직를 얻기 위해 오래전에 쓰다만 박사논문을 유물처럼 발굴하는데 그것이 바로 베케트에 관한 논문이다. 이는 예일대 영문학과 박사학위를 밟던 듀코브니의 실제 경험을 반영한 것이다. 업데이트되지 않은 교수들에게 관대한 제스처를 보이던 학과장 김지윤(산드라 오)은 듀코브니와 그의 화석과도 같은 관심사에 대해서만은 유독 매몰차다. 초서를 향한 조앤(홀랜드 테일러)의 오랜 애정이 ‘힙한’ 것으로 재발견되었던 것과는 달리 베케트는 듀코브니와 함께 유행이 지난 이름이 되어 조용히 퇴장한다. <베킷>은 마치 고대 유적지 근처를 탐사하는 듯한 영화다. 두 연인이 누운 침대 곁에 놓인 메모에는 ‘신탁은 무엇이었는가’라는 도무지 그 맥락을 짐작할 수 없는 글이 적혀 있다. 도망자 베킷이 몸을 숨기거나 달아나는 장면에서 그를 든든히 지켜주던 바위산은 현지 로케이션이 비현실적인 무대 혹은 하나의 캐릭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양봉하는 부부와 사냥꾼 등 베킷이 만난 마을 사람들은 어딘가 고전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것이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라고 상상하게 한다. 영화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배경으로 장소를 캐스팅한 것이 아니라 장소를 먼저 캐스팅한 뒤에 그 공간을 잘 보여주기 위한 방편으로 누군가가 끊임없이 걸어서 이동하는 이야기를 만든 것 같다. 베킷은 추격전 도중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공격당하는데, 이때 주로 공격당하는 부위는 손과 팔이다. 끊임없이 도망가야 하는 그의 운명을 알려주듯 어떤 상황에서도 다리만은 별다른 상처 없이 멀쩡하게 남겨진다. 주로 손 부위에 상처가 집중된 상황은 그에게서 운전대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손의 한계로 인해 그는 탈 것으로 이동하는 대신 두 발로 걷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누군가가 운전하는 차 트렁크에 숨은 채 이동해야 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딱 한 번 오토바이를 빼앗으려 하지만, 매몰차게 밀린다. (영화에서 누군가의 탈 것을 빼앗는 것쯤은 절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카체이싱 혹은 공중전 같은 속도에 바탕을 둔 추격전이 대세인 상황에서 두 다리로, 그것도 때론 손이 포박된 채 어설프게 뛰는 도망자를 보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베킷>이 넷플릭스에 공개된 후 그리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 못한 데는 추격전이라는 장르적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탓이 크다. 여행 중 불미스러운 사고로 연인을 잃은 뒤 이유도 모른 채 쫓기는 신세가 된 상황은 추격전의 전형적인 세팅이다. 그러나 이후에 벌어지는 이야기는 관객이 기대하는 바로부터 멀리 도망친다. 어쩌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는 것이 잘못 끼워진 첫 단추가 아니었을까 싶다. 안락한 오락 영화를 바랐을 관객에게 영화는 어딘가 애매한 결과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넷플릭스 영화라는 모종의 바운더리 안에서 그렇고 그런 영화가 되는 대신 이상한 실패작으로 남을 수 있었다. <베킷>은 추격전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장르 영화는 아닌 조금 이상한 영화다. 이상함은 첫 장면부터 감지된다. 영화 초반 드러나는 베킷과 그의 연인 에이프릴의 여행은 어딘가 스산하다. 이 드넓은 여행지에 마치 두 사람만 존재하는 것 같다. 물론 주변에는 다른 여행객이 있다. 그러나 타인과의 접촉은 일어나지 않는다. 연인은 여행객들을 몰래 관찰하면서 그들의 이름과 관계를 추측하는 둘만의 게임을 벌인다. 나는 필시 여행객과 접촉해 추측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뒤따를 것이라 예상했다. 아니었다. 두 사람은 사진을 찍은 뒤 그곳을 빠져나온다. (후에 혼자 남은 베킷이 사람들과 접촉하는 모습은 초반의 에이프릴과 함께 한 게임 장면을 연상시킨다. 베킷은 이제 어떤 사람이 믿을만한지를 혼자서 끊임없이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식당에서도 손님은 둘 뿐이다. 가게 주인이 스치듯 카메라에 포착되긴 하지만 그와 대화하거나 접촉하는 장면은 배제된다. 식당 TV에는 훗날 베킷이 연루될 유력 정치인의 조카 실종 사건과 관련한 뉴스가 보도된다. 이것은 관객을 위한 복선처럼 보이지만, 실은 베킷이 사건에 연루되는 과정에 운명과도 같은 힘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베킷은 기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자신을 좇던 그리스 경찰에게 발각된다. 이때 양손을 앞으로 모은 채 끈으로 묶인 상태가 된 베킷은 경찰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뒤에도 얼마간은 그 상태로 다닌다. 그의 손은 기도하는 손 모양을 연상시킨다. 그의 여정이 자신의 과오로 죽은 에이프릴을 향한 일종의 길고 긴 고행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작이다. 동시에 기도하는 손은 아테네에서 대규모 집회가 일어나는 장소를 가리킨다. 이처럼 개인의 슬픔과 애도는 정치적인 상황으로 곧장 연결된다. 베킷이 사람들에게 떠밀려 데모하는 군중과 합류하는 장면은 <모던 타임즈>(1936)에서 찰리 채플린이 얼떨결에 시위대의 선봉에 서는 장면과 겹친다. 찰리의 우연한 시위는 그가 파업과 무관하지 않은 인물이기에 절묘하다. 베킷의 여정 역시 블랙 코미디로 만들어졌다면 지금보다 납득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베킷은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피해 살아남았고 결국에는 정해진 운명처럼 유력 정치인의 납치된 조카를 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운명은 우연의 다른 말이다. <베킷>은 지나치게 우연적이며, 다른 말로는 지나치게 운명적이다. 다시 베킷이라는 이름을 생각해본다. 퍼스트 네임도, 라스트 네임도, 그렇다고 애칭도 아닌 하나의 이름으로 온전한 것은 신의 이름이다. 제우스, 헤라, 아테네, 헤르메스... 이 목록에 베킷을 넣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왜 베킷인가.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는 그 자체로 오지 않는 신을 지칭한다. 고도를 기다리던 두 주인공은 고고와 디디라는 다른 이름이 있는데, 두 이름을 합치면 곧 신(god)이 된다. 베킷 혹은 베케트가 신의 이름이 된다면 그 이름의 의미는 아마도 ‘어떻게든 버티는 자’일 것이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 미드소마 >(2019)의 굿즈는 뱃지 2종이다. <미드소마>의 주인공 대니가 비명을 지르는 얼굴과 감독의 전작인 < 유전 >(2017)의 주인공 애니가 비명을 지르는 얼굴을 일러스트해 만든 디자인이다. 굿즈가 기발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미드소마>를 보는 중에는 문제의 비명 장면에서 충격을 받았다. 플로렌스 퓨가 연기하는 대니는 여동생과 부모님이 함께 세상을 떠난 이후로 수시로 울음이, 슬픔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끅끅거리며 참아내곤 한다.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은 그녀를 위로하는 제스처는 취하지만 슬픔을 이해하거나 나눠갖는데는 실패하는 듯 보인다. 대니는 자신이 호소하는 가족 문제에 질린 남자친구가 이별을 고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데, 어느날 그들은 크리스티안의 친구들과 스웨덴 호르가 마을의 ‘미드소마’라는 하지축제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대니는 비로소 오열할 수 있게 되는데, 그 직접적인 계기는 남자친구가 다른 여성과 섹스하는 광경이었다. 대니는 그제야 자기가 남자친구를 지겹게 만들지 않을까 근심하는 대신 이전의 울음까지 울어버린다. 큰 소리로. 호르가 마을의 여자들이 대니와 함께 울어준다. 같이 큰 소리로, 같이 얼굴을 맞대고, 한 호흡으로. 죽은 가족과도, 불충실한 남자와도 이별이다. 그런데 그 광경이, ‘얼굴을 (아름다운 방식으로 슬프게) 만들지 않고’ 입을 한껏 벌리고 엉망으로 찌푸린 얼굴을 하고 큰 소리로 울어버리는 모습이 기괴하게까지 느껴졌다. 여자들이 그렇게 우는 모습을 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유사한 ‘집단 곡성’이라면 한국에서 상중에 소리 내는 울음인 ‘곡’인 듯하다. 여성의 비명은 영화가 사랑하는 사운드 중 하나다. ‘호러퀸’이라는 말은 한국에서 여름시즌에 개봉하는 공포영화의 여자 주인공을 일컫는 표현인데, 호러퀸의 첫째 요건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살인귀에게 쫓기며 높은 하이톤의 “꺄~!” 하는 비명을 지른다. 도망가기도 쉽지 않아보이는 몸에 붙는 찢어진 스커트나 단추가 두어개 날아간 티셔츠 차림에 높은 굽의 신발을 신게 한다는 점도 빼놓을 순 없겠다. <미드소마>의 대니가 들려준 뱃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듯한 낮고 큰 소리의 오열은 쉽게 들을 수 없다. 벌쳐닷컴(vulture.com)의 레이첼 핸들러는 ‘메릴 스트립과 플로렌스 가 들려준 카타르시스를 주는 비명에 바치는 송가’(An Ode to Meryl Streep and Florence Pugh’s Catharsis Screams)라는 7월10일자 기사에서 여성 배우들의 비명 연기에 대해 논했다. 호텔의 혼령에 사로잡힌 남편을 피해 도망쳐야 했던 < 샤이닝 >(1980)의 셸리 듀발이나 < 사이코 >(1960)에서 알몸으로 칼에 찔린 재닛 리, 거대 고릴라의 손가락으로 가슴을 쿡쿡 찔린 < 킹콩 >(1933)의 페이 레이의 연기는 훌륭했지만 여자들이 죽으면서도 섹시했다며, 최근 두 작품에 등장한 ‘섹시하지도 백설공주같지도 않은’ 시네마틱한 비명이 있다는 것이다. <미드소마>의 플로렌스 퓨와 <빅 리틀 라이즈>의 메릴 스트립이 보여준. ‘백설공주같은’이라는 말은 소리 죽여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섹시한’이라는 표현은 교성과 오인이 가능한 높은 하이톤의 비명 혹은 신음성을 뜻한다. 낮은 음성으로 짜증과 화, 놀람을 섞어 욕설과 함께 지르는 비명은 영화나 드라마 속 여성들에게는 좀처럼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미드소마>와 <빅 리틀 라이즈>의 오열이 주목받은 이유는 ‘사운드’만의 문제는 아니고, 다른 사람들 시선은 아랑곳않고 온전히 자신의 슬픔에 집중하는 사람이 보여주는 잔뜩 찌푸려진 얼굴이라는 ‘얼굴의 스펙터클’에도 있다. < 박하사탕 >(1999)의 그 유명한 ‘나 지금 돌아갈래’ 장면에서 설경구 배우가 보여주는 고통받는 인간의 얼굴 그 자체를 클로즈업하는, 그 순간을 아무와도 나눠갖지 않고 관객과 직접 대면하는 순간이 주는 힘을 떠올려보라. 그리고 그런 클로즈업이 여성들에게도 허용되었던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박하사탕>의 이창동 감독이 만든 또 다른 영화 < 밀양 >(2007)에서 전도연 배우가 죽은 아이에 대한 슬픔을 교회에서 소리내 우는 것으로 표현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참지 않은 소리’로서의 곡성은 분명히 전달되지만 그때 카메라는 클로즈업 대신 뒤쪽에 앉아 그런 그녀를 보고 있는 송강호 배우를 흐릿하게 함께 잡아낸다. 극중 다른 인물의 시선으로부터도 영화를 보는 우리로부터도 자유로운, 홀로 화면 한가운데를 장악하는 슬픔의 스펙타클. 여성의 오열. <미드소마>가 보여준 플로렌스 퓨의 특별함은 거기 있었다. 너희들은 압도당하라, 이것은 나의 것이다.
지난 5월, < 기생충 >(2019)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한 봉준호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한국영화 100주년에 주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이었다. 그 의도가 한국영화(사)를 알리기 위함이든 아니든, 봉 감독 덕분에 대중은 한국영화가 100주년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 하녀 >( 김기영 , 1960)를 보면서 계단의 이미지와 기운을 얻었다”고 밝힘으로써 한국 고전영화에 많은 애정과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사실 이 칼럼을 쓰게 된 것 역시 모두 봉 감독의 발언 덕분이다. 순전히 그의 주장에 힘을 얻었다. 많은 이들이 <기생충>이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놓고 있으니, 필자 역시 숟가락을 딱 한 번만 올리겠다. (감독님, 리스펙트!) <하녀> <기생충>의 수상과 함께 한국영화 성장이나 국내 관객 ‘2억명 시대’ 등이 언론에서 많이 다뤄졌지만, 정작 우리가 ‘한국영화 100주년’을 어떻게 맞이할 지는 이야기하고 있지 못하다.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이미 4월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을 구체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100주년 옴니버스 영화, 다큐멘터리 제작, 단행본 출판(한국영화 100년 100경(가제)) 및 한국영화의 디지털 복원화 등이 주요 골자다. 단성사에서 1919년 10월 27일 상영된 < 의리적 구토 >( 김도산 )를 한국영화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으니, 10월이 다가오면 본격적으로 100주년 관련한 축제의 장이 열릴 것이다. 하지만 과연 100주년 행사가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까? 혹은 이 축제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새롭게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기우(!)에 사로잡힌다. <아리랑> 최초의 한국영화나 전설의 영화 < 아리랑 >( 나운규 , 1926)을 볼 수 없고, 그 영화들을 상영한 단성사 역시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개인적으로 장훈 감독의 < 택시운전사 >(2017)를 봤을 때 초반부부터 마음이 아팠다. 지난 세기를 같이 한 을지로의 국도극장이 현실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라진 극장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더욱이 한때 영화의 메카로 불리던 충무로는 이미 노쇠해진 지 오래다. 휴대전화로 간편하게 예매를 할 수 없던 시절, 임권택 감독의 < 서편제 >(1993)를 보기 위해 아침부터 단성사에 줄을 서는 놀라운 광경은 이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어떤 영화를 특정 상영관에서 봤다는 식의 기억이나 그 극장에서만의 느낌이나 정서(심지어 <기생충>이 일깨운 냄새까지) 등이 사라졌다. 모든 것이 획일화된 멀티플렉스의 시대에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다소 사적인 체험인 것이다. 그래서 일까? 100년이라는 굳건한 영화의 역사를 현실의 대기 속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불안감을 숨길 수 없다. <서편제> 봉 감독이 이른바 ‘계단 시네마’라고 얘기한 대로, 가족이 중심이 된 한국영화 안에는 계단이 등장하는 영화가 많았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이만희 감독의 < 마의 계단 >(1964)부터 손재곤 감독의 < 이층의 악당 >(2010)과 <기생충>까지. 개인적으로 <이층의 악당>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 영화가 신상옥 감독의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61)의 유머러스한 패러디이자 중요 공간인 계단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층의 악당>이나 <기생충>을 본다는 것은 한국영화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다. 오래 전에 1960년대 한국영화를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굳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고 살아간 것이다. 물론 아주 쉽게 말하면, 그 영화들에 대한 기억, 추억, 향수가 우리에게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지극히 당연한 주장이지만,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이하는 첫 단추는 한국영화사를 이해하고, 한국 고전영화를 보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만약 내 안에 한국영화의 옛 숨결이 살아 있다면 다시 일깨워야 한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굳이 한국영화를 방화(邦畵)라고 부르며 상대적으로 폄하하던 시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시네필이라고 자처하는 젊은 영화광조차 한국영화의 역사(1950, 60년대 전성기)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하다. 한국영화의 클래식이나 정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그런 영화가 없어서가 아니라 안타깝게도 대중이 옛 한국영화에 대해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6월에는 서울극장에서 ‘한국영화100주년 특별전, 합동영화사와 함께’,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세계 속의 한국영화, 한국 안의 세계영화’ 프로그램 등이 진행되었다. 성과를 떠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전영화 프로그램들이 일반 대중과의 접점을 찾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날 한국 고전영화를 보기 위해선 누구나 한 번쯤 한국영상자료원(여기서 다양한 세대가 고전영화를 함께 경험하는 것은 지극히 소중하다)과 사랑에 빠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한국영화에 대한 기억, 경험 등을 너무 빨리 잊은(혹은 잃어버린) 지도 모른다. 100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영화산업과 영화인들의 의미를 되살리는 것은 중요하지만, 한국영화가 항상 대중과 함께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대중이 함께 그 시대의 기억을 공유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하루아침에 문화 이식이나 학습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단성사도, 국도극장도 없지만, 영화(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 고전영화의 디지털 복원이 무척 시급한 상황이고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역시 관객이 고전영화를 즐기고 더 많은 영화를 요구하는 지지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100년을 맞이한 한국영화의 미래를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고전영화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지금의 세대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그것이 100세를 맞이한 한국영화를 위한 화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