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력훈련
- 감독
- 정다연
- 제작년도
- 2015
1960년 영국에서 제작된 <비트 걸, Beat Girl>은 10대들의 성(性)과 비행을 다룬다는 이유로 제작에서부터 많은 논란을 낳았다. 1959년 3월, 영화의 오리지널 대본인 <스트립티즈 걸, Striptease Girl>은 영국영화검열위원회(The British Board of Film Censors, BBFC) 1 에 제출된 뒤 “기계로 찍어낸 쓰레기(machine-made dirt)”, “몇 년 사이에 본 최악의 스크립트(the worst script I have read for some years)”라는 혹평을 받았다. 이후 영화의 제목을 <비트 걸, Beat Girl>로 변경하고 누드 장면들을 대폭 삭제했으나, 검열위원회는 스트립티즈에 대한 묘사와 소년범죄, 그리고 기차 레일에 누워 담력을 시험하는 십대들의 치킨 게임 장면이 지닌 문제점을 강하게 지적하였다. 결국 영화는 스트립 클럽에서의 노출 장면을 비롯한 문제적인 장면들을 삭제당한 뒤, 관객 제한 수위가 가장 높은 X등급을 받고 개봉하였는데 2 작품에 대한 악의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영국 박스오피스에서 성공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3 . <비트 걸>의 상영을 둘러싼 논란은 동시대적으로 영화를 개봉되었던 대부분의 국가에서 발생했다. 특히 성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전무하다시피 한 한국사회의 문화적 환경을 고려하면 <비트 걸>의 상영은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었다. 실질적으로 <비트 걸>의 국내 상영은 4.19 혁명 이후 급진적인 사회변혁의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제도적 변화를 빼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영화를 둘러싼 정책적 기조가 국가권력에 의한 일방적인 통제에서 민간기구에 의한 문화예술의 보호육성이라는 관점으로 이동하면서 영화 상영은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변경되었다.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 아래서 시장의 자율성은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될 수 있었고,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시장 주체들의 도발적인 기획은 영화심의를 둘러싼 논란을 야기했다. 1960년 10월 4일, 영화윤리위원회의 심사를 마친 후 아카데미 극장에서 상영 중이던 <연인들(Les Amants, 1958)>이 불륜을 소재로 삼기에 사회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문교부가 일방적으로 상영 중지한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비트 걸>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외국영화에 대한 수입 추천권을 지닌 문교부는 수입업체인 세기상사가 <젊은 육체들>이라는 제명으로 해당 영화를 배급하고자 했을 때 이를 승인하였고, 오히려 영화윤리위원회(이하 영륜)에서 해당 영화가 사회풍기를 문란케 한다는 이유로 상영보류판정을 내렸다. 이후 세기상사는 해당 조치에 불응하며 상영을 강행하는데, 세기상사와 문교부, 그리고 영륜 사이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전개되는 <비트 걸> 논란은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와 맞물려 비로소 일단락되게 된다. 물론, 세기상사는 수입한 영화를 상영해야만 하는 입장이었기에 군부 정권이 자신들의 지배 체제를 수립한 시점에 다시금 상영허가를 신청하게 된다. 현재 한국영상자료원(KOFA)에서 보관하고 있는 <비트 걸> 검열 서류는 영화의 수입과 상영, 그리고 보류통보와 재상영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을 재구성해볼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들을 포함하고 있다. 우선, 시간상으로 가장 앞선 서류를 살펴보자면, 1960년 11월 9일,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리버티 상사(Liberty Trading Company)가 도쿄 지부를 통해 세기상사로 계약관련 내용을 확인하는 전신(cable) 내용이다. [그림 1] 리버티 상사가 세기상사에 보낸 계약 내용 확인 서신 [그림 1]에서 알 수 있듯이 해당 전신은 1960년 10월 29일에 세기상사가 “BEAT GIRL”이라는 제목(안건)으로 리버티상사에 보낸 문의사항에 대한 회신이다. 리버티상사는 세기상사에 <비트 걸>에 대한 복사 권한을 허용하되 프린트 복사를 5본으로 제한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루어 알 수 있는 내용은 10월 29일 이전에 양자 간의 영화 수입 계약이 체결되었고 원본 네거티브에 대한 듀플리케이션은 세기상사에서 진행했다는 점이다. 현재 남아 있는 검열 서류에는 계약서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판권대금을 비롯한 라이센스 기한과 같은 구체적인 계약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영화상영신고서’에 판권 대금이 “35미리 필름 10권 US $4,000”로 명시되어 있어 계약 사항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영화상영신고서’에는 “35미리 필름 10권 3편”만이 신고 대상에 올라와있는데, 복사판 계약을 5본으로 진행했던 정황을 미루어볼 때, 해당 시점에 나머지 2편에 대한 국내 배급 계약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에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림 2] <비트걸> 영화상영신고서 ‘영화상영신고서’의 경우는 해당 서식이 없어 기존의 ‘허가신청서’를 ‘신고서’로 수정한 흔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변경이 그만큼 급격하게 이루어졌음을 엿볼 수 있는데, 여기서 주목해볼 점은 해당 서류에는 제명이 “젊은 육체들”로 변경되어 있다는 점과 1961년 1월 18일에 사단법인 외국영화배급협회를 경유하여 문교부에서 승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외국영화배급협회는 배급업자들의 이익 단체인 만큼, 영화에 대한 심의권한을 독점하려는 영륜과 긴장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들 협회는 영륜의 권한은 심의 결정이 아닌 권고 수준에 그쳐야 하며, 영화에 대한 최종적 검열 권한은 배급협회에서 자율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젊은 육체들>이라는 제명으로 상영신고서를 제출할 당시, 수입사이자 배급사인 세기상사는 자율적인 심의를 통해 상당한 분량을 삭제하였다. [그림 3] 세기상사에 의한 자진삭제분 一 대사삭제부분 1. 사랑이란 섹스를 고상하게 표현한 말이죠(204) 2. 늙은 바보야(365) 3. 우린 양친과 무관계. 나는 나…. 제니에요. 완전히 독립된 신인간(632-634) 4. 내주엔 펑하고 세계가 연기로 화해 제로에요(650) 5. 법률엔(902, 905,906, 909, 913) 6. 굶주려선 정도를 못 지켜요 (985) 二 화면삭제부분 1. 나이트클럽 장면(5권) 단축 2. 무대 뒤에서 스테이지가 보이는 장면 단축 (529) 3. 노래 장면 삭제… 입과 입, 엉덩이와 엉덩이, 그대 욕적으로 수평선(846~847) 4 4. 제니가 옷을 벗는 장면(8권) 5. 스트립쇼에 유방 나오는 장면(10권) 6. 장면 변경 (1001에서 1010으로) [그림 3]은 1961년 1월 27일자 영화상영신고 품의서로서, 세기상사가 자체 심의를 통해 삭제한 항목이 명시되어 있다. 대사 6개처, 화면 6개처에 해당하는 삭제된 부분은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선정적 장면과 지배질서에 반하는 반사회적 내용에 주로 해당된다. 문교부는 자체 검열 결과에 대해 별다른 의견을 덧붙이지 않고 기안이 올라온 일자에 영화상영신고필증을 발부한다. 그런데 영화상영신고에서부터 신고필증이 발부되기까지 영륜의 심의과정을 반영한 문서는 보이지 않는데, 1961년 1월 28일자 《한국일보》의 기사를 참조해볼 때, 영륜에서는 상영신고 일주일 전인 1월 21일에 <비트 걸>에 대한 실사 심의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해당 영화가 사회풍기를 문란하게 한다는 이유로 전문위원 11명 전원일치로 상영보류 판정을 내렸다. 그리고 세기상사는 영륜의 판정에 불복하여 재심을 청구하였는데, 재심은 1월 27일 오후 7시에 재심이 열린 것으로 확인된다 5 . 그런데 주목할 점은 1월 27일은 세기상사가 자체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는 장면을 삭제하여 상영신고필증을 받은 날이기도 하다. 신고필증이 정확히 언제 발급되었는지 구체적인 시각은 알 수 없지만, <비트 걸>의 러닝 타임이 90여 분인 점을 감안하면, 신고필증의 발부는 영륜의 심의의견이 제출되기 전에 문교부의 일방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영륜의 최종 심의의견은 다음날인 1961년 1월 28일에 언론을 통해서 공개되는데, 영륜은 전원 위원회에서도 9대 7로 상영보류를 희망한다는 의견을 제출한 상황이었다. 세기상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젊은 육체들>로 개봉할 영화는 문교부가 고시한 행정적 절차에 따라 상영신고필증을 받았기에, 상영보류 의견은 받아들일 수 없는 권고였다. 따라서 예정대로 신문사에 광고를 게재하며 “강렬한 장면의 연속! 숨막히는 애욕묘사!”와 같은 자극적인 문구로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하였다. 물론 세기상사의 행보는 영륜의 심의의견이 단지 권고일 뿐 근본적으로 어떠한 구속력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었기에, 영륜은 언론을 통해 사건을 쟁점화하고 문교부와 세기상사의 행태를 비판하는 여론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의미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영륜은 이 사건을 계기로 영화심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입지와 사회적 역할을 분명히 명시하게 되는데, 1월 28일 기사를 필두로 영륜의 존재의미를 부정하는 문교부의 처사를 비판하는 기사가 연이어 쏟아지고, 검찰도 풍기단속을 위해 절차상 직무 유기를 한 이들에게 형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게 됨으로써 <비트 걸> 논란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다. 결국 문교부장관은 영륜의 존재를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단순한 사무적인 실수일 뿐이라고 한발 물러섬으로써 사건을 일단락 지을 출구를 마련한다 6 . 이후, <젊은 육체들>에 대한 재심이 진행되었는데, 검열 서류에는 재심에 참여한 위원의 명단을 비롯하여 재심 과정의 내막을 엿볼 수 있는 단서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림 4] <비트 걸> 상영신고 필증 회수 관련 문서 [그림 4]는 1961년 2월 9일, 문교부가 세기상사에게 보내는 공문으로 <젊은 육체들>에 대한 재심의 결과 상영신고필증을 회수한다는 사실을 통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외국영화 <젊은 육체들>의 상영을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보류함 (2) 앞으로 상영 시에는 제명을 원명대로 할 것 (3) 현재 이후 모든 선전 및 광고에는 '젊은 육체'의 제명과는 일체 무관하게 할 것 신고필증 회수를 통보한 날로부터 나흘 뒤인 2월 13일에는 각 도지사에게 공문을 보내어 “이미 흥행허가가 시행되었다면 긴급히 흥행을 보류시켜 주기”를 요청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14일에는 세기상사에 다시 공문을 보내어 복사판 2편에 대해서도 상영신고필증을 반납할 것을 요구한다. 앞서 전신(cable) 내용을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세기상사는 복사판을 5본 제작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는데, 첫 번째 상영신고서를 제출할 당시에는 3편만을 접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2편의 복사판에 대한 상영신고는 별도로 신청이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실질적으로 <젊은 육체들>이라는 제명으로 영화를 개봉할 예정이었던 극장이 대한극장(서울)과 문화극장(부산) 그리고 천일극장(광주)이었던 점을 감안해보면 세기상사는 1차적으로 위의 세 극장과 상영계약을 체결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2편의 복사판에 대한 계약이 체결되고 그에 대한 상영신고필증을 발부받았을 것인데, 2월 14일의 문서는 해당 건에 대한 보류 통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문교부의 일방적인 신고필증 회수통보는 세기상사가 수입추천을 받을 시점인 1960년 11월 29일에 작성하였던 “각서”에 근거한 조치였다. 뿐만 아니라 문교부는 세기상사로 하여금 회수 통보를 받은 즉시 “서약서”를 쓸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할 시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포괄적인 내용의 ‘각서’와 ‘서약서’는 행정적 절차의 미비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을 민원인에게 지우고 그에 따른 행정적 처분을 받게끔 한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사후적인 검열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었다. 즉, 4.19 혁명 이후 검열제도의 폐기는 그 의의와 함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각서”의 억압적 효과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림 5] <비트 걸> 상영신고 필증 재교부 관련 문서 [그림 5]는 2월 15일 세기상사가 제명을 <비트 걸>로 변경 후 신규로 상영신고필증을 발급받기를 희망하고 이를 허가해줄 것을 요청하는 품의서이다. 상영을 보류하지 않는 조건으로 문교부에서는 “<비트 걸>에 대한 선전 및 광고에서 ‘젊은 육체들’과 전혀 무관하게 할 것”과 “문제의 영화 운운하는 문구를 삽입치 못하게 할 것” 그리고 “영화 상영 시에 있어 관람객을 비롯한 일반여론을 충분히 파악하시어 물의가 있을 시에는 즉시 보고할 것”을 명시한다. 이와 같은 조치는 영화배급사인 세기상사가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를 이용하려는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 판단된다. 그러나 세기상사는 다음날인 2월 16일, 영화의 선전과 광고가 아니라 “사과문”의 형식으로 신문광고란에 “사회 저명인사 중에는 극력 <젊은 육체들>을 찬양한 바도 있었으나 당국의 요청에 의해 <젊은 육체들>을 <비트 걸>로 개제하여 상영 7 ” 하게 되었음을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세기상사의 행태는 결국 문교부로 하여금 상영을 중지케 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결과가 된다. [그림 6] <비트 걸> 상영 중지를 요청하는 문교부의 공문 1961년 2월 19일 문교부는 서울특별시 교육감과 각 도지사에게 <비트 걸> 상영 중지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한다. 해당 문서에는 상영중지 처분의 이유를 “상영 후의 제반 사항을 고려하여 동 영화상영을 당시에 배급회사인 세기상사주식회사 우기동으로부터 수리한 별첨 각서와 상영계획서에 의거하여” 상영계획에 있던 극장에서 “재상영 및 동일 극장의 장기 상영을 일체 중지”할 것을 명령한다. 당시의 개봉이 계획된 극장은 대한극장, 문화극장을 비롯하여 대구의 제일극장, 광주의 동방(東方)극장, 그리고 인천의 동방(東邦)극장 5곳이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후의 신문기사와 관련 검열 서류를 참조해보면, 서울지역에서는 2, 3류 극장은 제외한 개봉관 상연은 제한적으로 허가된다. 2, 3류 극장의 경우 청소년들의 입장을 단속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영화 상영을 개봉관에 한정한다는 논리인 것 같으나, 어째서 서울 지역만 예외로 두었는지는 현재의 서류만으로는 알 수 없다. 다만, 영화수입추천에서부터 상영신고필증의 발부까지 문교부의 고시에 따라 절차를 밟아왔던 사안이었던 만큼, 세기상사에게 일방적인 손해를 입힐 수 없어 마련된 일종의 중재안 정도일 것이라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비트 걸>을 둘러싼 논란은 영륜의 권고안을 받아들여 서울의 개봉관에 한정하여 상영을 하게 됨으로써 일단락된다. [그림 7] <비트 걸> 재상영 허가 관련 서류 [그림 7]은 5.16 이후 정부조직이 개편된 뒤 세기상사가 공보부에 상영보류 해제를 신청했던 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 서류이다. 해당 문서는 1961년 12월 6일에 작성된 품의서인데, 그보다 앞서 1961년 11월 14일, 세기상사는 공보부 장관에게 상영보류해제와 관련하여 서신을 보낸 것으로 확인된다. “개봉 후 영화의 교육적 가치”가 인정되었고, “혁명 후(5.16 쿠데타를 의미) 이와 유사한 수편의 영화가 국내에서 상영된 사실”을 참작하여 상영을 승인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후, 1961년 12월 6일, 공보부로부터 해당 영화가 “2월 18일로 상영보류된 작품이나” “서류고사 및 실사고사를 통하여 내용을 검토한 바 관객으로 하여금 저속한 감정을 도발할 우려가 있는 스트립쇼- 장면을 삭제하고 상영함이 무방하다”고 판정을 받고 재상영을 위한 허가증을 받게 된다. 검열 서류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해당 영화에 대한 검열이 8월에 이미 실시되었다는 점이다. 군과 법무부, 민간 인사(추정)로 구성된 검열 위원회는 해당 영화에 대해 양가적인 결과를 내어놓는데, 역설적이게도 군에서 파견된 오세용 소령만이 “반항이 그 생리가 된 젊은 세대가 범하기 쉬운 악풍조의 감염을 부모들의 사랑과 조언으로 미연에 방지해야 된다는 것을 암시한 영화”로서 이를 검토한 결과 “스트립쇼를 하는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야비하고 저속한 감정을 도발할 우려가 있으니” 해당 “장면만 삭제하면 상영하여도 가하다고 사료”된다는 입장을 내어놓는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상영허가가 되었고, 그 권리는 2년간 보장이 되었다. 검열 서류를 통해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1971년 6월에 세기상사가 다시 한 번 <비트 걸> 상영허가를 신청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검열 당국은 해당 영화에 대한 권리가 세기상사에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상영허가를 반려한다. 이후, 세기상사는 자신들이 가진 권리를 입증함으로써 권리 상에 문제가 없음을 보이고 문제가 되는 장면을 삭제하여 재심을 요청하는 의견을 전달한다. 그러나 검열당국은 “전체적인 영화의 내용이 문제되므로 화면 일부를 제거하여도 상영이 불가하다고 사료되어, 현재로서는 허가할 수 없으니” 이를 반송한다는 의견을 통보함으로써 상영금지처분을 내린다. <비트 걸> 검열과 관련된 일련의 서류들은 동일한 영화가 정책 당국의 입장에 따라 어떤 처분을 받게 되며, 그 과정에서 시장 주체는 어떠한 방식으로 대응하는지, 그리고 그들 사이의 역학 관계는 어떠한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어 한국영화사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사료가 되리라 생각된다. 1. 1912년에 설립된 영국영화검열기구(BBFC)는 비정구기구로서 현재는 영국영화등급분류위원회(The British Board of Film Classification, BBFC)로 그 명칭과 기능이 변경되었다. 2. 1960년대의 영국의 영화 등급분류 기준은 U등급(Universal, 전체관람가)과 A등급(Adult, 성인동반 관람가능), 그리고 X(16세 이상 관람가능)등급으로 나뉘었다. 따라서 <비트 걸>의 X등급은 한국의 현행 영상물등급분류 기준으로 따지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정도라 할 수 있다. 3. 「Beat Girl」, Wikipedia. (URL: https://en.wikipedia.org/wiki/Beat_Girl) 4. 의미를 알 수 없음. 5. 「<젊은 육체들> 말썽, 사회적 악영향을 우려하여」, 《한국일보》, 1961.1.27. 6. 「패륜영화의 상영과 극장가의 환경정리」, 《경향신문》, 1961.2.9. 7. 「영화 <젊은 육체들>에 대한 사과문」, 《경향신문》, 1961.2.16.
이번 글이 마지막 수다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내가 왜 어떤 책에 대해 좀 더 특별하게 할 말이 많다거나, 어떻게 해서 그 책이 내 마음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관해 주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지만, (아직은) 그 이유가 내 창작의 비밀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눈치껏 알아서 입을 다물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분량은 채워야 하고 비밀은 숨겨야 하니까, 다소 수박 겉핥는 식의 이야기가 되더라도 그에 관한 수다를 산만하게 떨어볼까 한다. 그러니 앞으로 이어지는 글은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계획적이고 (조금은 의뭉스러운) 중간정리 정도에 가깝다고 보면 될 것이다. 얄밉겠지만 어쩔 수 없고, 그 대신, 소개되는 책들은 다 읽어버린 것이 인생의 황량한 구멍을 남겨놓은 느낌을 줄 정도로 재밌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니 아직 읽어보지 않은 독자들이라면 장바구니에 넣어둘 것을 조심스레 추천하는 바이다. 그레이엄 그린, 「Travels with My Aunt 이모와의 여행」 첫 번째는, 죽은 엄마의 화장터에서 처음 만나 자신을 ‘이모’ 라고 소개하며 내 손에 (당신이 직접 꺾어온) 들꽃 무더기를 쥐여준 그분과의 몇몇 일화를, 그레이엄 그린의 「Travels with My Aunt 이모와의 여행」 처럼 각색해보는 프로젝트이다. 첫 번째 칼럼, 「펀 홈」 에 대한 글 에서 소개했던 엄마의 활력 넘치는 여자 친구들. 그들 중 한 사람이었던 그분의 얼굴은 그 옛날, 아마도 스물 몇 살이었던 것 같은 엄마의 여행 사진 속에서 처음 보았다. 두 사람이 서로의 독사진을 똑같은 앵글로 하나씩 찍어준 그 장소는 인적이 드물어 보이는 해변처럼 보였고, 한껏 포즈를 잡은 그들은 고전 흑백영화 속의 주인공들, 그러니까 마치 캐서린 헵번과 나탈리 우드처럼 당당하고 우아했다. 그중에서도 캐서린 헵번처럼 후리후리한 아름다움을 조용히 뿜어내던 그 여성이 바로 내게 들꽃 무더기를 쥐여준 바로 그분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에 쓰인, 그레이엄 그린의 「Travels with My Aunt 이모와의 여행」에서도 은퇴한 은행 매니저인 주인공 남자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화장된 유골함을 기다리며, ‘난생처음 보는 이모’의 접근을 받아 인사한다. 메리 여왕처럼 차려입고 등장해, 죽은 엄마가 사실은 그의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알려준 그 이모란 여자는 조카와 함께 파리와 이스탄불을 함께 여행한다. 물론, 이런 에피소드까지 내 경험과 닮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웃기고 재밌는 책이고 언젠가 (초현실적이다 싶은) 기회가 오면 꼭 영화로 만들고 싶다. 그런 기회 속에는 (내가 이모로 캐스팅하고 싶은) 틸다 스윈튼이나 케이트 블란쳇이 캐릭터의 나이와 얼추 맞는 시기가 되었다는 조건까지 포함되어 있다. 존 어빙의 「가프가 본 세상 The World according to Garp」 은 내가 준비도 못 하고 갑작스레 세상을 뜨지 않는 한, 죽기 직전에 몇 장이라도 다시 들춰보며 감상에 빠지고 싶은 그런 책일 것이다. 아마도 그때 나는 이 책을 4부작 시리즈로 만들 기획안을 평생 가지고 살았고, 죽기 일보 직전인 지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흐뭇하고 슬플 것이다. 오랫동안 내가 상상한, 러닝타임 240분의 4부작 텔레비전 시리즈에선 필립 시모어 호프먼이 ‘가프’였지만, 몇 년 전 그가 느닷없이 세상을 떠난 이후부턴 세스 로건으로 슬그머니 얼굴이 바뀌었다. 아무리 내 머릿속의 극장이라지만, 죽은 사람을 캐스팅해 계획을 굴려보는 것까진 잘 안 되더라. 그리고 그 책의 실질적인 심장(heart)이자 또 다른 주인공인 (가프의 어머니) ‘제니’가 있다. 존 어빙, 「가프가 본 세상 The World according to Garp」 ‘가프’의 어머니, ‘제니 필즈’는?세계대전 중에 부상병을 치료하던 간호사였고, 평생 간호사복을 입고 지낸, 열혈?여권 운동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였으며,?죽기 전까지 소설가 아들 ‘가프’를?열성적으로?지원하고 격려했던 멘토이자, 그의 인생을 쥐고 흔들었던 강한 어머니였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저 커버 사진을 볼 때마다 매번,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옷걸이에 걸려있는 간호사복은 결국 ‘제니 필즈’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때부터 ‘가프’의 인생도 종말을 고한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난 ‘가프’가 벽 앞에 우두커니 서서 엄마를 생각하고 있는 듯한 이 커버를 볼 때 마다 마음이 짠해지고, 러닝타임 240분의 4부작 텔레비전 시리즈에 대한 (소명에 가까운) 계획을 다듬는다. 그 (초현실적인) 기회 속에서 나는, 이를테면, 넷플릭스 임원 회의에 참석해 4부작 정도의 시리즈의 기획안은 얼마든지 피칭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기회 속의 나는 제2의 봉준호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초현실적인’ 기회 속에서 말이다. 찰스 포티스, 「트루 그릿-진정한 용기 True Grit」 세 번째 프로젝트는, 이미 존 웨인이나 제프 브리지스 주연의 영화 <더 브레이브 True Grit>로 유명해진 찰스 포티스의 「트루 그릿-진정한 용기 True Grit」. 나는 이 책의 1인칭 주인공 화자인 ‘매티 로스’의 목소리를 정말로 좋아하는데, 책을 펼칠 때마다 매번 그의 대사를 소리 내 따라 읽어볼 정도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도망친 자를 처치하고 복수를 완성하고자 먼 길을 떠나는 14살짜리 소녀라는 인물 설정 자체도 끝내주게 흥미진진하지만, 무엇보다도 미치도록 깐깐하고 자기 앞가림에 능숙하며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그 당당한 애티튜드의 목소리가 너무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함께 복수를 완성시켜줄 사람을 찾아다니던 ‘매티’가 악명 높은 연방보안관 ‘루스터 코그번’을 고용하기 위해 찾아온 장면 속, 두 사람의 대화는 볼 때마다 두근두근하다. “저를 영 하찮게 생각하시는 군요, 코그번 씨.” “아니, 난 네가 입만 다물고 있으면 네 생각 따윈 아예 하질 않아.” “정부로부터 2달러, 이동 거리에 따라 1.5km당 10센트씩, 거기에 사례금으로 50달러를 드릴게요.” “제법 열심히 조사했군.” “그럼요, 애들 장난이 아니니까요.” 비교적 근작이라고 할 수 있는 코엔 형제의 영화 버전이 내게 특히 좋았던 것은, 이런 ‘매티’를 거의 완벽한 캐스팅으로 만들어 냈다는 점이었다. 스크린에 ‘헤일리 스테인펠드’의 고집불통스러운 얼굴이 나오는 그 순간의 쾌감이란. 그래서 나는 몇 년 전부터 이 책의 스토리라인을 느슨하게 각색한 이야기를 조금씩 굴려보았는데, 내가 상상하는 이 책의 각색 버전은, (좀 어이없을 수도 있겠지만) 무신란(1170년)이 일어나고 몇 해 지나지 않은 시기의 고려를 배경으로 한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벽란포구 뒷골목의 좁은 길을 어린 여자아이 하나가 비틀대며 걸어가면서 이 영화는 시작한다. 매섭게 불어대는 을씨년스런 바닷바람에도 거친 모시 적삼과 홑겹의 천 바지, 볏짚을 대충 엮은 도롱이를 걸친 채 필사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열 몇 살짜리 아이. 품에 꼭 끌어안은 작은 봇짐을 귀한 보물이라 생각해 달려든 거지 사내아이들과의 몸싸움에서도 좀처럼 밀리는 기색이 없는 걸 보면 이 작은 몸집의 소녀에겐 보이는 것과는 다른 단단하고 비범한 면모가 숨어있다. 그가 여자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란 소년들 중에 대장 격인 아이의 어깨춤을 붙잡은 이 여자아이는 비상식량인 도토리 수십 알을 던져주며 소원을 이루어주는 불상이 있다는 다원(茶園)으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 여자아이가 천릿길을 걸어 벽란포구를 찾은 것은 이곳에 있는 한 다원에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불상이 있어 거기에 진실로 빌면 이루어진다는 소문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상이 있는 다원에는 이 아이는 물론이고 포구에 사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원에 사는 세 명의 여자들에 관한 것으로, 사실 이들은 무신란에서 공을 세워 신분이 해방된 여인 무사들이다. 그들은 불상이 있는 방의 뒷벽에 숨어 억울한 사람들의 하소연을 몰래 듣고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해결을 해주는 해결사 노릇을 틈틈이 하고 있었던 것. 어느 골목에 숨어있듯 자리한 다원을 찾아낸 여자아이는 불상 앞에 엎드려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그러면서 점차, 당상역관 외동딸의 몸종이었던 이 아이가 어떤 연유로 자신이 모시던 아씨와 그의 집안을 멸문지화 시킨 좌우승 장군의 목을 베고 싶어 하는지가 조금씩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 여자아이는, 이 영화의 ‘매티’이고, 세 명의 여성 무사들 중 캡틴이 ‘루스터 코그번’, 두 번째 무사가 (현상금을 노리고 합류한 특수경비대원) ‘라뷔프’ 인 셈이다. 책의 내용을 생각하면 좀 억지스러운 연결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상관없지. 나는 그야말로, ‘grit / 용기, 근성, 끈기, 담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니까. 즉, 이 영화가 ‘매티’처럼 당당하고 용감한 여자들이 메인이 되는 여성주의 무협 드라마가 되는 것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좀 더 그럴듯하게 완결된 형태의 트리트먼트와 초고 수준의 시나리오도 있지만, 이런 기획에 대해 슬그머니 수다를 떨어본 친구들의 반응이 내 기대에 조금 못 미쳐서 더 이상 개발시키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이런 글의 분량을 채우며 머릿속으로 한 번 더 정리해 보는 것으로 만족. 일단락. 마지막으로 수다를 떨어보고 싶은 프로젝트의 원작은, ‘희곡 (drama)’ 으로, 2010년 퓰리처상 ‘drama’ 부문의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브라이언 요키, <넥스트 투 노멀 Next to Normal> 퓰리처상 drama 부문 수상작은 대부분 ‘play (연극)’ 대본일 확률이 높지만, 가끔씩 <렌트>나 <해밀턴> 같은 뮤지컬 대본이 탈 경우도 있다. 2010년에도 심사위원들이 추천한 최종 후보작들은 모두 연극 대본이었으나, 브라이언 요키의 <넥스트 투 노멀 Next to Normal> 이 깜짝 수상작이 되면서 여러 말들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거나, 조울증에 시달리며 약 없이는 견딜 수 없이 우울한 중년의 가정주부가 주인공인 이 희곡은 그가 전기충격요법을 받는 부분을 클라이맥스로 두고, 결국 혼자 집을 떠나는 결말로 마무리되는, 이례적으로 어둡고 심각한 스토리라인의 ‘가족 뮤지컬’이다. 이 이야기에서 독특하게 흥미로운 설정은 주인공 다이애나가, 갓난아이 때 죽은 아들(게이브)을 십몇 년 동안 자신의 환상 속에서 무럭무럭 키워왔으며 두 사람끼리 대화를 나눈다는 것으로, 이는 극 중반에 와서야 비로소 밝혀진다. 그에겐 “난 살아있어! I’m alive!”라고 끊임없이 외쳐대고 노래를 부르는 ‘환상 속의 아들 (imaginary son)’는 물론이고, (학교에선 굉장한 수재로 주목받아도) 집안에서는 투명인간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 딸(나탈리)도 있는데, ‘수퍼보이와 투명소녀 Superboy and the Invisible Girl’이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나탈리의 시그니처 테마이다. 결국, 나탈리는 엄마의 처방약을 몰래 훔쳐 복용하기 시작하고 환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 와중에 유일하게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듯한 캐릭터가 아버지이자 남편인 ‘댄’이지만,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한숨 나오긴 마찬가지다. 결국 그에게도 환상 속의 아들이 찾아와 노래를 주고받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것이 언젠가 찾아올 희망을 소원하고 기대하는 엔딩치고도 참 가차 없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 ‘긴 밤이 지나면 빛이 찾아올 거야.’라고 합창하는 등장인물들의 마지막 노래로 끝나는 이 작품의 엔딩은 다음과 같다. ALL: (sung) Day after day We’ll find the will to find our way knowing that the darkest skies will someday see the sun DAN: When our long night is done DAN and NATALIE: There will be light DIANA: There will be light ALL: There will be light When we open up our lives Sons and daughters, husbands, wives Can fight that fight There will be light There will be light There will be light There will be light (Lights fade.) End of Act 2. Curtain. 마치,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21세기 록-뮤지컬의 형태로 다시 쓴 듯한 이 이야기는 지금의 한국을 배경으로 각색하기에도 별 무리가 없을 만큼 보편적인 구석이 있다. 물론, 메이저 투자사 피칭 자리엔 전혀 어울리지 않으면서, ‘무슨 생각으로 이런 소재의 이야기를 가지고 왔냐’는 무언의 비아냥과 놀림 같은 걸 받을 수 있겠지만, 독립영화의 시스템 안에서라면 격렬하고 흥미진진한 작가 정신을 발휘하기에 매우 좋은 아이템이 될 것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뮤지컬이 될 것이니까. <레미제라블>같이 현장에서 모든 노래를 레코딩한다는 계획에 많은 예산이 들어가겠지만, 그것이 이 작품만의 영화적 전략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 자, 이번 글이 마지막 수다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내가 왜 어떤 책에 대해 좀 더 특별하게 할 말이 많다거나, 어떻게 해서 그 책이 내 마음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관해 주로 이야기했어야 했지만, (아직은) 그 이유가 내 창작의 비밀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눈치껏 알아서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래도 분량은 채워야 하고 비밀은 숨겨야 해서, 다소 수박 겉핥는 식으로 그에 관한 수다를 산만하게 떨어보았다. 지난 몇 회간 이 코너를 통해 주절대본 영미문학 각색 프로젝트는 사실상 나에게만 의미 있고 재미있지, 대부분의 독자들에겐 그냥 대부분 시답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도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코너에서 소개한 몇 권의 책들은 분명히 장바구니에 넣어둘 만한 재밌고 좋은 작품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왜 그런 거 있잖나, “그 책을 다 읽어버린 것은 내 인생에 황량한 구멍을 남겼다. David Copperfield, the last novel I read, and the completion of which has left a devastating hole in my life”, 고 감상을 얘기할 만한 경우들. 사실, 저 말은 「데이빗 커퍼필드」를 읽은 후 ‘닉 혼비’의 표현인데... 마음에 들고 오래 기억하고 싶다. 이 몇 개의 각색 프로젝트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초현실적인) 기회가 찾아와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저런 표현이 가능한 영화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end. #1 펀 홈 #2 안녕, 내일 또 만나 #3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4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5 이모와의 여행, 그 외 몇몇
이번 글이 마지막 수다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내가 왜 어떤 책에 대해 좀 더 특별하게 할 말이 많다거나, 어떻게 해서 그 책이 내 마음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관해 주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지만, (아직은) 그 이유가 내 창작의 비밀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눈치껏 알아서 입을 다물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분량은 채워야 하고 비밀은 숨겨야 하니까, 다소 수박 겉핥는 식의 이야기가 되더라도 그에 관한 수다를 산만하게 떨어볼까 한다. 그러니 앞으로 이어지는 글은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계획적이고 (조금은 의뭉스러운) 중간정리 정도에 가깝다고 보면 될 것이다. 얄밉겠지만 어쩔 수 없고, 그 대신, 소개되는 책들은 다 읽어버린 것이 인생의 황량한 구멍을 남겨놓은 느낌을 줄 정도로 재밌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니 아직 읽어보지 않은 독자들이라면 장바구니에 넣어둘 것을 조심스레 추천하는 바이다. 그레이엄 그린, 「Travels with My Aunt 이모와의 여행」 첫 번째는, 죽은 엄마의 화장터에서 처음 만나 자신을 ‘이모’ 라고 소개하며 내 손에 (당신이 직접 꺾어온) 들꽃 무더기를 쥐여준 그분과의 몇몇 일화를, 그레이엄 그린의 「Travels with My Aunt 이모와의 여행」 처럼 각색해보는 프로젝트이다. 첫 번째 칼럼, 「펀 홈」 에 대한 글에서 소개했던 엄마의 활력 넘치는 여자 친구들. 그들 중 한 사람이었던 그분의 얼굴은 그 옛날, 아마도 스물 몇 살이었던 것 같은 엄마의 여행 사진 속에서 처음 보았다. 두 사람이 서로의 독사진을 똑같은 앵글로 하나씩 찍어준 그 장소는 인적이 드물어 보이는 해변처럼 보였고, 한껏 포즈를 잡은 그들은 고전 흑백영화 속의 주인공들, 그러니까 마치 캐서린 헵번과 나탈리 우드처럼 당당하고 우아했다. 그중에서도 캐서린 헵번처럼 후리후리한 아름다움을 조용히 뿜어내던 그 여성이 바로 내게 들꽃 무더기를 쥐여준 바로 그분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에 쓰인, 그레이엄 그린의 「Travels with My Aunt 이모와의 여행」에서도 은퇴한 은행 매니저인 주인공 남자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화장된 유골함을 기다리며, ‘난생처음 보는 이모’의 접근을 받아 인사한다. 메리 여왕처럼 차려입고 등장해, 죽은 엄마가 사실은 그의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알려준 그 이모란 여자는 조카와 함께 파리와 이스탄불을 함께 여행한다. 물론, 이런 에피소드까지 내 경험과 닮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웃기고 재밌는 책이고 언젠가 (초현실적이다 싶은) 기회가 오면 꼭 영화로 만들고 싶다. 그런 기회 속에는 (내가 이모로 캐스팅하고 싶은) 틸다 스윈튼이나 케이트 블란쳇이 캐릭터의 나이와 얼추 맞는 시기가 되었다는 조건까지 포함되어 있다. 존 어빙의 「가프가 본 세상 The World according to Garp」 은 내가 준비도 못 하고 갑작스레 세상을 뜨지 않는 한, 죽기 직전에 몇 장이라도 다시 들춰보며 감상에 빠지고 싶은 그런 책일 것이다. 아마도 그때 나는 이 책을 4부작 시리즈로 만들 기획안을 평생 가지고 살았고, 죽기 일보 직전인 지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흐뭇하고 슬플 것이다. 오랫동안 내가 상상한, 러닝타임 240분의 4부작 텔레비전 시리즈에선 필립 시모어 호프먼이 ‘가프’였지만, 몇 년 전 그가 느닷없이 세상을 떠난 이후부턴 세스 로건으로 슬그머니 얼굴이 바뀌었다. 아무리 내 머릿속의 극장이라지만, 죽은 사람을 캐스팅해 계획을 굴려보는 것까진 잘 안 되더라. 그리고 그 책의 실질적인 심장(heart)이자 또 다른 주인공인 (가프의 어머니) ‘제니’가 있다. 존 어빙, 「가프가 본 세상 The World according to Garp」 ‘가프’의 어머니, ‘제니 필즈’는?세계대전 중에 부상병을 치료하던 간호사였고, 평생 간호사복을 입고 지낸, 열혈?여권 운동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였으며,?죽기 전까지 소설가 아들 ‘가프’를?열성적으로?지원하고 격려했던 멘토이자, 그의 인생을 쥐고 흔들었던 강한 어머니였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저 커버 사진을 볼 때마다 매번,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옷걸이에 걸려있는 간호사복은 결국 ‘제니 필즈’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때부터 ‘가프’의 인생도 종말을 고한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난 ‘가프’가 벽 앞에 우두커니 서서 엄마를 생각하고 있는 듯한 이 커버를 볼 때 마다 마음이 짠해지고, 러닝타임 240분의 4부작 텔레비전 시리즈에 대한 (소명에 가까운) 계획을 다듬는다. 그 (초현실적인) 기회 속에서 나는, 이를테면, 넷플릭스 임원 회의에 참석해 4부작 정도의 시리즈의 기획안은 얼마든지 피칭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기회 속의 나는 제2의 봉준호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초현실적인’ 기회 속에서 말이다. 찰스 포티스, 「트루 그릿-진정한 용기 True Grit」 세 번째 프로젝트는, 이미 존 웨인이나 제프 브리지스 주연의 영화 <더 브레이브 True Grit>로 유명해진 찰스 포티스의 「트루 그릿-진정한 용기 True Grit」 . 나는 이 책의 1인칭 주인공 화자인 ‘매티 로스’의 목소리를 정말로 좋아하는데, 책을 펼칠 때마다 매번 그의 대사를 소리 내 따라 읽어볼 정도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도망친 자를 처치하고 복수를 완성하고자 먼 길을 떠나는 14살짜리 소녀라는 인물 설정 자체도 끝내주게 흥미진진하지만, 무엇보다도 미치도록 깐깐하고 자기 앞가림에 능숙하며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그 당당한 애티튜드의 목소리가 너무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함께 복수를 완성시켜줄 사람을 찾아다니던 ‘매티’가 악명 높은 연방보안관 ‘루스터 코그번’을 고용하기 위해 찾아온 장면 속, 두 사람의 대화는 볼 때마다 두근두근하다. “저를 영 하찮게 생각하시는 군요, 코그번 씨.” “아니, 난 네가 입만 다물고 있으면 네 생각 따윈 아예 하질 않아.” “정부로부터 2달러, 이동 거리에 따라 1.5km당 10센트씩, 거기에 사례금으로 50달러를 드릴게요.” “제법 열심히 조사했군.” “그럼요, 애들 장난이 아니니까요.” 비교적 근작이라고 할 수 있는 코엔 형제의 영화 버전이 내게 특히 좋았던 것은, 이런 ‘매티’를 거의 완벽한 캐스팅으로 만들어 냈다는 점이었다. 스크린에 ‘헤일리 스테인펠드’의 고집불통스러운 얼굴이 나오는 그 순간의 쾌감이란. 그래서 나는 몇 년 전부터 이 책의 스토리라인을 느슨하게 각색한 이야기를 조금씩 굴려보았는데, 내가 상상하는 이 책의 각색 버전은, (좀 어이없을 수도 있겠지만) 무신란(1170년)이 일어나고 몇 해 지나지 않은 시기의 고려를 배경으로 한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벽란포구 뒷골목의 좁은 길을 어린 여자아이 하나가 비틀대며 걸어가면서 이 영화는 시작한다. 매섭게 불어대는 을씨년스런 바닷바람에도 거친 모시 적삼과 홑겹의 천 바지, 볏짚을 대충 엮은 도롱이를 걸친 채 필사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열 몇 살짜리 아이. 품에 꼭 끌어안은 작은 봇짐을 귀한 보물이라 생각해 달려든 거지 사내아이들과의 몸싸움에서도 좀처럼 밀리는 기색이 없는 걸 보면 이 작은 몸집의 소녀에겐 보이는 것과는 다른 단단하고 비범한 면모가 숨어있다. 그가 여자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란 소년들 중에 대장 격인 아이의 어깨춤을 붙잡은 이 여자아이는 비상식량인 도토리 수십 알을 던져주며 소원을 이루어주는 불상이 있다는 다원(茶園)으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 여자아이가 천릿길을 걸어 벽란포구를 찾은 것은 이곳에 있는 한 다원에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불상이 있어 거기에 진실로 빌면 이루어진다는 소문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상이 있는 다원에는 이 아이는 물론이고 포구에 사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원에 사는 세 명의 여자들에 관한 것으로, 사실 이들은 무신란에서 공을 세워 신분이 해방된 여인 무사들이다. 그들은 불상이 있는 방의 뒷벽에 숨어 억울한 사람들의 하소연을 몰래 듣고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해결을 해주는 해결사 노릇을 틈틈이 하고 있었던 것. 어느 골목에 숨어있듯 자리한 다원을 찾아낸 여자아이는 불상 앞에 엎드려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그러면서 점차, 당상역관 외동딸의 몸종이었던 이 아이가 어떤 연유로 자신이 모시던 아씨와 그의 집안을 멸문지화 시킨 좌우승 장군의 목을 베고 싶어 하는지가 조금씩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 여자아이는, 이 영화의 ‘매티’이고, 세 명의 여성 무사들 중 캡틴이 ‘루스터 코그번’, 두 번째 무사가 (현상금을 노리고 합류한 특수경비대원) ‘라뷔프’ 인 셈이다. 책의 내용을 생각하면 좀 억지스러운 연결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상관없지. 나는 그야말로, ‘grit / 용기, 근성, 끈기, 담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니까. 즉, 이 영화가 ‘매티’처럼 당당하고 용감한 여자들이 메인이 되는 여성주의 무협 드라마가 되는 것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좀 더 그럴듯하게 완결된 형태의 트리트먼트와 초고 수준의 시나리오도 있지만, 이런 기획에 대해 슬그머니 수다를 떨어본 친구들의 반응이 내 기대에 조금 못 미쳐서 더 이상 개발시키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이런 글의 분량을 채우며 머릿속으로 한 번 더 정리해 보는 것으로 만족. 일단락. 마지막으로 수다를 떨어보고 싶은 프로젝트의 원작은, ‘희곡 (drama)’ 으로, 2010년 퓰리처상 ‘drama’ 부문의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브라이언 요키, <넥스트 투 노멀 Next to Normal> 퓰리처상 drama 부문 수상작은 대부분 ‘play (연극)’ 대본일 확률이 높지만, 가끔씩 <렌트>나 <해밀턴> 같은 뮤지컬 대본이 탈 경우도 있다. 2010년에도 심사위원들이 추천한 최종 후보작들은 모두 연극 대본이었으나, 브라이언 요키의 <넥스트 투 노멀 Next to Normal> 이 깜짝 수상작이 되면서 여러 말들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거나, 조울증에 시달리며 약 없이는 견딜 수 없이 우울한 중년의 가정주부가 주인공인 이 희곡은 그가 전기충격요법을 받는 부분을 클라이맥스로 두고, 결국 혼자 집을 떠나는 결말로 마무리되는, 이례적으로 어둡고 심각한 스토리라인의 ‘가족 뮤지컬’이다. 이 이야기에서 독특하게 흥미로운 설정은 주인공 다이애나가, 갓난아이 때 죽은 아들(게이브)을 십몇 년 동안 자신의 환상 속에서 무럭무럭 키워왔으며 두 사람끼리 대화를 나눈다는 것으로, 이는 극 중반에 와서야 비로소 밝혀진다. 그에겐 “난 살아있어! I’m alive!”라고 끊임없이 외쳐대고 노래를 부르는 ‘환상 속의 아들 (imaginary son)’는 물론이고, (학교에선 굉장한 수재로 주목받아도) 집안에서는 투명인간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 딸(나탈리)도 있는데, ‘수퍼보이와 투명소녀 Superboy and the Invisible Girl’이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나탈리의 시그니처 테마이다. 결국, 나탈리는 엄마의 처방약을 몰래 훔쳐 복용하기 시작하고 환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 와중에 유일하게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듯한 캐릭터가 아버지이자 남편인 ‘댄’이지만,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한숨 나오긴 마찬가지다. 결국 그에게도 환상 속의 아들이 찾아와 노래를 주고받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것이 언젠가 찾아올 희망을 소원하고 기대하는 엔딩치고도 참 가차 없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 ‘긴 밤이 지나면 빛이 찾아올 거야.’라고 합창하는 등장인물들의 마지막 노래로 끝나는 이 작품의 엔딩은 다음과 같다. ALL: (sung) Day after day We’ll find the will to find our way knowing that the darkest skies will someday see the sun DAN: When our long night is done DAN and NATALIE: There will be light DIANA: There will be light ALL: There will be light When we open up our lives Sons and daughters, husbands, wives Can fight that fight There will be light There will be light There will be light There will be light (Lights fade.) End of Act 2. Curtain. 마치,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21세기 록-뮤지컬의 형태로 다시 쓴 듯한 이 이야기는 지금의 한국을 배경으로 각색하기에도 별 무리가 없을 만큼 보편적인 구석이 있다. 물론, 메이저 투자사 피칭 자리엔 전혀 어울리지 않으면서, ‘무슨 생각으로 이런 소재의 이야기를 가지고 왔냐’는 무언의 비아냥과 놀림 같은 걸 받을 수 있겠지만, 독립영화의 시스템 안에서라면 격렬하고 흥미진진한 작가 정신을 발휘하기에 매우 좋은 아이템이 될 것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뮤지컬이 될 것이니까. <레미제라블>같이 현장에서 모든 노래를 레코딩한다는 계획에 많은 예산이 들어가겠지만, 그것이 이 작품만의 영화적 전략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 자, 이번 글이 마지막 수다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내가 왜 어떤 책에 대해 좀 더 특별하게 할 말이 많다거나, 어떻게 해서 그 책이 내 마음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관해 주로 이야기했어야 했지만, (아직은) 그 이유가 내 창작의 비밀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눈치껏 알아서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래도 분량은 채워야 하고 비밀은 숨겨야 해서, 다소 수박 겉핥는 식으로 그에 관한 수다를 산만하게 떨어보았다. 지난 몇 회간 이 코너를 통해 주절대본 영미문학 각색 프로젝트는 사실상 나에게만 의미 있고 재미있지, 대부분의 독자들에겐 그냥 대부분 시답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도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코너에서 소개한 몇 권의 책들은 분명히 장바구니에 넣어둘 만한 재밌고 좋은 작품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왜 그런 거 있잖나, “그 책을 다 읽어버린 것은 내 인생에 황량한 구멍을 남겼다. David Copperfield, the last novel I read, and the completion of which has left a devastating hole in my life”, 고 감상을 얘기할 만한 경우들. 사실, 저 말은 「데이빗 커퍼필드」를 읽은 후 ‘닉 혼비’의 표현인데... 마음에 들고 오래 기억하고 싶다. 이 몇 개의 각색 프로젝트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초현실적인) 기회가 찾아와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저런 표현이 가능한 영화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