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담배
- 감독
- 짐 자무쉬
- 제작년도
- 2003
- 출연
- 로베르토 베니니, 스티븐 라이트, 스티브 부세미, 톰 웨이츠, 케이트 블란쳇, 빌 머레이
짧은 여행의 기록(2) 3-1: 내 나이 42세, 이젠 오직… 위트앤시니컬이 있는 대학로는 내게 추억의 장소다. 90년대 후반, 나우누리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을 만나던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아니면 신촌이거나. 그래서 매일 밤 채팅을 통해 우정을 쌓아가던 라이터37(나희도)과 인절미(고유림)가 마로니에 공원에서 만나기로 약속하는 장면이 내게는 반갑고도 무척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때 그곳에서 그들을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마음 울적한 날에 거리를 걸어 보다가, 혹은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도 보다가… 모두 동년배니 꼭 그곳이 아니더라도 어디선가 한번쯤 마주쳤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이제 우리도 슬슬 관리해야 하는 나이인데 다들 건강은 괜찮은지…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다. 오늘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번개’나 ‘추억여행’ 같은 걸 위해서가 아니다. 상을 (대신) 받기 위해서다. 처음 대리 수상을 부탁받았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냥 3단계면 끝나는 일 아닌가? 그러니까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기 위해서는 냉장고 문을 열고, 코끼리를 넣고, 냉장고 문을 닫으면 되는 것처럼. 1. 시상식장에 간다. 2. 상을 받는다. 3. 집으로 돌아온다. 물론 3단계면 끝나는 일이 맞긴 하다. 그 사이사이에 놓인 민망하고 귀찮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제외한다면… 늦지 않게 도착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동양서림으로 들어가는데, 어쩌면 내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책을 구경하고 있는 김정환 선생(시인, 69세)의 옆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나는 2018년에 출간된 내 책 [아무튼, 택시]에서 김정환 선생과의 에피소드를 가볍게 언급한 적이 있다. 바로 이렇게. …파마를 하고 며칠 뒤 김준성문학상 뒤풀이에서 김정환 시인을 만났다. 김정환은 내게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개를 좋아하는 생계형 서평가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며 지금은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후장사실주의 동인인 동시에 계간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을 맡고 있는, 전에도 몇 번 선생님에게 인사드렸던 37세 금정연이라고 말했다. 젠장, 나는 자기소개가 정말 싫다. “뭐? 진짜?” 김정환이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처럼 안 생겼는데.” 누군가 물었다.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은 어떻게 생겼는데요?” “문학에 대한 고뇌로 얼굴이 아주 썩었지. 이인성처럼. 근데 여긴 달라. 얼굴에 문학에 대한 고뇌가 전혀 보이지 않아. 훤해. 잘생겼어. 나랑 똑 닮았어.” 김정환 시인은 1954년생이다. 그리고 윌리스를 닮았다…… 몇 주 후에 문학과지성사 시상식장에서 김정환 시인을 다시 만났다. 그는 내 옆자리에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날은 미안했소……” 나는 괜찮다고, 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나는 시상식장을 나서며 두 번 다시 파마 따위는 하지 않겠노라고 문학의 이름으로 맹세했다. 윌리스는 “내 나이 35세, 이젠 오직 돈 생각뿐이다”라는 밈으로 유명한 루이 말 감독의 <앙드레와의 저녁 식사>의 주인공이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안녕하세요” 작은 목소리로 인사한 다음, 그 상태로 시인을 지나칠 때까지 몇 걸음 걸어간 다음에야, 고개를 들고 위트앤시니컬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랐다. 며칠 전에 새로 파마한 머리가 이마를 부드럽게 간질이는 게 느껴졌다… 시상식장에서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좋은 소식. 스무 명 남짓한 규모로 치러지는 시상식이라 사람이 많지 않다. 다음은 나쁜 소식. 그중 절반이 나와는 조금 어색한 사이에 있는 ‘선생님’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시 부문 수상자인 신해욱 시인의 내가 모르는 지인들이다… 들어가자마자 오늘도 문학에 대한 고뇌로 가득해 보이는 이인성 선생(소설가, 70세)이 있어서 꾸벅 인사했다. 이인성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 근데… 누구시더라? 나는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이며 지금은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후장사실주의 동인인 동시에 한때 계간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으로 활동하며 선생님과 몇 번 서로 다른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던 42세 금정연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냥 금정연이라고. 그러자 이인성이 말했다. 아, 금정연씨! 어떻게 지내시나? 요즘도 맨날 글 쓰고 그러고 있나? 나는 하하 뭐 그렇죠, 대꾸하며 마음 속으로 정지돈에게 과연 상금의 몇 퍼센트를 요구하면 좋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위: 영화 <앙드레와의 저녁식사>에 출연한 김정환 시인, 아래: 영화 < 강변호텔 >에 출연한 김정환 시인) 3-2: 복사꽃 그날 일도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희미하게 일렁이는 시간의 베일 뒤로 수치스럽고 민망했던 그날의 기억들이 반딧불처럼 잔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구태여 그걸 끄집어낼 필요는 없을 거라고 믿는다. 물론 좋은 기억들도 있다. 그것들에 대해서라면 언젠가 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영화 < 동사서독 > 중에서) 4-1: 꿈에 악!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와 나, 그리고 또 나밖에는… 오스스 몸이 떨려와서 주섬주섬 이불을 찾아 몸을 덮었다. 기억은 서서히 돌아왔다. 어제는 시상식이 있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뒤풀이를 했다. 그리고 술을 마셨는데, 물론 그 술은 한 잔만 마셔도 지난 일을 모두 잊게 해준다는 취생몽사 같은 건 아니었다. 그냥 테라, 기네스(생), 편의점에서 파는 세계맥주 몇 개… 나는 텅 빈 방 안에 멍하니 앉아 두서없이 떠오르는 간밤의 기억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복사꽃, 복사꽃 아님, 복사꽃, 복사꽃 아님, 복사꽃 아님, 복사꽃 아님, 복사꽃 아님, 복사꽃 아님, 복사꽃 아님, 복사꽃 아님, 복사꽃 아님…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건 정말 어젯밤의 기억인가? 어쩌면 내가 ‘한영한사’ 마지막 연재를 준비한답시고 홍상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건 아닌가? <강변호텔>과 < 소설가의 영화 >를 보며 시인으로 나오는 기주봉이 김정환 시인이랑 너무 똑같이 닮아서 영화를 보는데 자꾸 다른 생각이 들었던 것처럼, 아니 정확히 반대로, 어제 만난 김정환 시인이 <강변호텔>과 <소설가의 영화>에 나오는 기주봉과 너무 똑같이 닮아서 현실과 픽션이 뒤섞여버린 게 아닐까? 아니면 그냥 꿈을 꾼 것인지도 모르고. 하지만 마지막 가설은 이내 기각되었다. 간밤에 실제로 꾸었던 꿈의 조각들이 의식 위로 불쑥불쑥 떠올랐던 것이다. 평론가 임재철과 대통령 윤석열과 영부인 김건희가 나오는 꿈이었다… 씻고 설거지 하고 어제 (대신) 받은 꽃다발 꽃병에 꽂고 나윤이랑 영상 통화했다. “아빠! 나 여기 안산 할아버지네 집에 있어!” 나윤이가 말했다. 나윤이 안산 할아버지네 집 가고 싶어했잖아, 가니까 좋아? 물으니 “응, 전에 할머니랑 아빠랑 같이 차 타고 왔잖아”라고 했다. 그래, 바로 어제… 그러다 갑자기 내일 서울 할머니네 집에 가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하니까 표정이 바뀌더니 울먹이며 말했다. “나한테 안 물어봤잖아…” 그래서 미안하다고, 다음부터 꼭 물어보겠다고 했는데 단단히 마음이 상한 모양인지 안 가겠다고 해서 내일 다시 생각해보자고 했다. 행신에서 출발해서 광주송정으로 향하는 12시 18분 KTX-산천 417호 열차를 타기 위해 집에서 나섰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근처 복권방에 들러 로또와 연금복권을 한 세트씩 샀다. 그리고 버스를 탔다. 마지막으로 행신역에 왔을 때는 공사중이었는데, 공사가 끝난 지금은 제법 넓고 환해 보였다. 연휴의 첫날이라 그런지 엄마 아빠를 따라온 아이들이 많았다. 저마다의 속도로 걷고 뛰고 말하는 아이들. 나는 나윤이를 생각했다. 아이의 눈과 코와 입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표정들을, 무언가를 설명하기 전에 몇 번이나 곱씹는 말의 처음과 거기에 동반되는 손과 발의 움직임 같은 것들을. 이것들을 모두 버리고 나는 무엇을 얻고 있는 것일까요? 하는 질문이 절로 들었다… 물과 초코바를 사서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내 상식과는 달리 에스컬레이터가 중간에 있는 게 아니라 1호차 쪽에 있어서 18호차를 타려면 반대편 끝까지 걸어야 했다. 아마 5키로미터 정도는 걸은 것 같다. 그러면서 나는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와 미국의 철도 전쟁, 그리고 영화의 탄생에 대해 숙고했다(리베카 솔닛의 [그림자의 강]을 참고할 것). 거짓말이다. 그저 [마틴 에덴] 오프닝 시퀀스에 짧게 지나가는 기차 장면에 대해 조금 생각했을 뿐이다. 미리 말해두자면, 로또와 연금 복권은 꽝이었다. 나는 대통령 꿈을 꾼 또 한 명의 복권 당첨자가 되는 대신 그냥 윤석열 대통령 꿈을 꾼 사람이 되었다. (위: 에드워드 머이브리지, ‘Railway Tracks. P.R.R. Quadruple Tracks Monmouth’ 아래: 영화 < 마틴 에덴 >의 한 장면) 4-2: 빵과 장미 김재욱이 너무 많다. < 커피프린스 1호점 >과 <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에 출연한 배우 김재욱, ‘안녕하세요 제니퍼에요’라는 유행어로 유명한 코미디언 김재욱, [쇼미더머니 11] 2차 예선에서 댐핑 좋은 붐뱁을 선보이며 심사위원 올 패스를 받은 래퍼 김재욱, 바로 오늘 내가 주문한 [데이비드 댐로쉬의 세계문학 읽기]를 한국어로 옮긴 번역자 김재욱… 하지만 내가 아는 김재욱은 한 명뿐이다. 90년대 중반에 나우누리에서 만나 신촌과 대학로와 홍대와 그밖의 많은 곳들을 함께 싸돌아다니던 김재욱(아이디 gokjw). 지금 우리는 광주에 있다. 김재욱과 나. 광주는 두 번째였다. 그렇지만 처음이나 다름없다. 십년 전, 지금은 만나지 않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절한 관광버스를 타고 도착해서 축의금을 내고, 사진을 찍고, 밥을 먹고, 다시 관광버스를 타고 돌아간 것이 전부였다. 광주에 도착해서 처음 느낀 건 빛이 다르다는 거였다. 과연 빛의 고을이었다. 우리는 광주송정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문화전당역에서 내렸다. 마침 광주프린지페스티벌이 한창이었다. 쏟아지는 사람들, 빛들, 노랫소리들. 금남로를 건너 김재욱이 검색해서 찾은 ‘맛집’을 향했다. 월계수식당. 김재욱은 특제 소스와 함께 비벼 먹는 삼선볶음밥을, 나는 우삼겹짬뽕을 주문했다. 없던 숙취까지 몽땅 가시는 맛이었다. 지금 내게 숙취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직 GV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다. 우리는 충장로를 걸어 광주극장을 향했다. 중앙로를 사이에 두고 분위기가 갑자기 변하는 게 조금 신기했다. 식당이 있던 위쪽은 조금 북적북적한, 전국 어디에나 있는 ‘로데오 거리’ 같은 느낌이었다면 광주극장이 있는 아래쪽은 의상실과 금은방 등이 있는 좀 더 고풍스러운 분위기였다. 광주극장과 잘 어울리는 거리라고 해야 할까. 극장 바로 옆에는 < 김군 > 포스터가 크게 붙여진 ‘소년의 서(書)’라는 이름의 서점과 ‘빵과 장미’라는 이름의 빵집이 있었다. 물론 ‘빵과 장미’라는 이름은 켄 로치가 감독한 동명의 영화에서 따온 것이다. <빵과 장미>는 우리나라에서 2002년 5월 24일 개봉했다. 누적관객은 444명. 그 444명 중에 나도 있었다. 2002년의 초여름, 당시 만나던 친구와 그 친구의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고 나와 맞은편의 웬디스(Wendy’s) 2층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며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난다. 양배추 조각과 여기저기 묻은 빨간 케찹과 애드리안 브로디의 콧등 위로 떨어지던 햇빛 같은 것들이.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다. 정말이지 시간은 늘 없다. 오늘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극장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에 빠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중 하나)에서 서이제 작가와 함께 [마틴 에덴] GV를 하기 위해서다. 오해하면 안 된다. 이제 와서 내가 갑자기 극장을 찬양한다면 그건 제법 우스운 일이 될 거라는 사실을 나도 안다. 나는 유운성 평론가가 말하는 ‘빛 마니아’가 아니고,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종류의 씨네필 테스트도 통과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나는 우리의 기억이 형성되는 방식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고 싶다. 어떤 책의 페이지를 (다시) 펼쳤을 때 문득, 그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더라도 종종 그것을 읽던 당시의 빛과 바람, 손에 들린 종이책의 감촉과 냄새 같은 것들이 떠오르는 것처럼, 어떤 영화에 대한 기억은 극장과 분리할 수 없이 달라 붙어 나라는 관객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기도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서울극장에서 본 바즈 루어만의 < 로미오와 줄리엣 >, 고등학교 시절 녹색극장에서 단체 관람했던 < 콘에어 >와 <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 이대 영화마당에서 교복을 입고 본 < 셰익스피어 인 러브 >(미성년자 관람불가), 동기들과 ‘국문학 입문’ 강의를 째고 강변 CGV에서 봤던 < 친구 >와 < 신라의 달밤 >, 군대에서 휴가 나온 기분으로 불광 CGV에서 친구와 함께 봤던 < 박쥐 >, 기타 등등… 그건 어디로도 닿지 않는 개인적인 기억일 뿐이지만, 어쨌거나 그건 나의 기억이다. 프란체스코 카세티의 말처럼, 손상되기 쉽지만 기억은 과거를 되찾으려는 욕망의 원천이다. 그리고 욕망은 우리를 살게 한다. 기억이 없이는 ‘나’라는 존재도 없다. 꼭 있어야 하는 건지는 둘째치고… 그러니까 내 말은, 광주극장이 오랫동안 우리 곁에 머물러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얼마 전에야 광주극장에 처음, 그것도 일 때문에 가본 사람이 하기에는 조금 머쓱한 말이긴 하지만. 이 부분을 쓰며 나는 혹시 모를 기억의 오작동을 방지하기 위해 구글에 ‘광화문 웬디스’라고 친다. 나무위키의 ‘웬디스’ 항목 다음으로 나오는 것은 2018년 2월 17일에 올라온 클리앙 게시물이다. 제목은 이렇다: “광화문에서 웬디스 먹어봤으면 아재 인정” 어 인정… (빵과 장미, 외부와 내부) 4-3: (Unexpected) Guest Visit 그렇게 싸늘한 반응의 행사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2015년 12월의 어느 날 정지돈과 함께 명동 CGV에서 했던 빔 벤더스 감독의 < 에브리씽 윌 비 파인 > GV에 버금갈 정도였다(당시 행사 직후 SNS에 ‘올해 최악의 지브이’라는 평이 올라왔다). 관객은 40명 남짓, GV가 시작할 때는 30명 정도였고, 끝날 때는 그보다 더 적었다. 몇 명이 되었건 모두들 많은 것을 잊고 복사꽃이 좋았던 것만 기억하시기를. 그러니까 서이제 작가의 멋진 말들만… (영화 < 마틴 에덴 > 중에서, 혹은 GV를 끝낸 어느 Guest의 마음) (참고로, 그날 내가 GV에서 (하려고) 했던 말들은 여기 에서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끝난 후 민망하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한 마음으로 광주극장을 나서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어떤 남자의 목소리로 몇 시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6시”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6시예요, 영화는 이미 끝났어요”라고 말했다. 그제야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키가 크고 마른 체격의 남자였다. 광주에는 이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곧 나는 잃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잃을 게 아무것도 없어!”라는 말을 큰 소리로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 같아서 그 문장을 큰 소리로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남자는 시계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시계를 잃어버린 후로는 이따금 사람들에게 말을 걸지 않을 수 없다오.” 그는 소리 내어 웃었다. “시계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당신에게 말을 걸지 않았을 거요.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을 거요.” 그는 내가 6시라고 말한 후에야 6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고 보니 오늘 아홉 시간 동안 한 가지 생각만 하면서 쉬지 않고 걸어 다녔다는 걸 알게 된 것 자체가 무척 흥미롭다고 말했다. “쉬지 않고 말이오. 왔다 갔다 한 게 아니라 곧장 앞으로만 걸어갔지. 그런데 이제 보니 원을 그리면서 걸어 다녔군. 미친 짓이지, 그렇지 않소?”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나는 자주 저 극장에 갔었다오” 하고는 내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이름을 곧 잊어버렸다. 나는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누구나 어느 날엔가 마지막으로 극장에 가듯이 나도 어느 날 마지막으로 극장에 갔지. 웃지 마시오”하고 그는 말했다. “무슨 일이든 언젠가는 마지막이 있기 마련이오. 웃지 마시오!” 4-4: 인터내셔널의 밤 (ㄱ) 트뤼포에 앉아서 트뤼포를 마셨다. 소설가 박솔뫼가 추천한 곳이었다. 나는 언젠가 ‘박솔뫼의 맛따라 멋따라’라는 제목으로 박솔뫼가 전국 각지의 맛집을 찾아다니며 음식을 먹는 유튜브를 기획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기획은 여전히 유효하며 투자자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영화에 대한 우리의 오디오비주얼 에세이가 그런 것처럼… 다만 트뤼포는 솔뫼가 직접 가본 곳은 아니었고, 이름을 듣고 언젠가 가보겠다고 기억해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갔다. 한쪽 벽면이 DVD로 가득한 작고 아담한 느낌의 바였다. 손님도 많았다. 시그니쳐 메뉴인 트뤼포는 조금 달달한 우롱하이 같은 맛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분명 고다르라면 질색을 할 맛이라는 부분이 특히 좋았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사실이 아닌 것은 한 글자도 쓸 수 없는 나의 다큐멘터리스트적인 본성이 발목을 잡았다. 고다르가 시가를 피우는 모습은 많이 봤다. 와인을 마시는 모습도 본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어디서? 나는 구글에 ‘did jean luc godard drink a lot?’이라고 검색했다.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2002년 9월에 작성된 더글로브앤메일의 기사였다. 제목은 ‘외로운 밤들과 장 뤽 고다르와 함께 한 술자리(Lonely nights and drinks with Jean-Luc Godard)’. 25년간 토론토 국제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 일하다 올해 은퇴를 선언한 스티브 그레이브스톡의 부인인 케리 허프먼이, 남편이 영화제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동안 자신은 ‘Festival Widow’나 다름없다고 자조하며 구술한 기사였다. 그렇지만 정말 멋진 순간들이 있긴 해요. 허프먼은 말한다. 어떤 영화를 보면 좋을지 내부 정보들을 얻을 수 있거든요. 그리고 스티브가 감독을 위해 준비한 칵테일 파티나 저녁 식사에 참석하기도 하죠. 그런 자리가 아니면 백만 년이 지나도 못 만날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요. 몇 년 전에는 장 뤽 고다르랑 같이 술을 마셨는데요. 정말이지 인상적인 사람이었어요. 모두들 그에게 푹 빠져서 자기들이 뭔가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전전긍긍했지 뭐예요! 두 번째는 2015년 6월에 작성된 더스튜디오EXEC의 ‘장 뤽 고다르의 우유를 마십시다 캠페인’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하며 눈을 크게 뜨고 봤는데 알고 보니 패러디 기사였다… 상반된 분위기의 기사가 이어진다. ‘와인과 와인문화에 초점을 맞추는 잡지’ [와인 스펙테이터], ‘그 어느 때보다 더 크고, 낫고, 빠르게 변해가는 위스키 업계에서 누구보다 빠른 소식을 전해주는 증류주 전문지’ [위스키 애드버킷]과 함께 M. Shanken Communications에서 발간하는 ‘좋은 삶과 시가의 세계를 즐기는 데 전념하는 잡지’ [시가광Cigar Aficionado] 1997년 9/10월 호에 실린 ‘프랑스 영화의 주저하는 천재’라는 제목의 인터뷰다. 인터뷰어는 LA타임스의 스콧 크래프트.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장 뤽 고다르는 극소수의 관객이 감상하는 이해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들고 있으며, 그는 변화할 생각이 없다.” 25년 전에 이미 66세였던 고다르는 말한다. 나는 모든 종류의 영화를 하고 싶다. 모든 영화 속에 있고 싶고,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고 싶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나는 사운드를 발견한 감독 중 하나가 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사운드를 발견한 사람들의 슬픔도 알고 싶다. 요즘은 쫓겨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오늘날 영화를 만드는 건 애플 컴퓨터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라. 스위스 시골에 은거하는 괴짜 예술 감독을 인터뷰 하라며 자기에게 돈을 쥐어준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노련한 저널리스트 크래프트는 곧이어 이렇게 쓴다. 몇 해 동안 고다르는 스위스에서 개당 20달러에 판매되는 코이바를 피워왔다. 하지만 그는 조금은 나른한 끽연가다. 인터뷰를 하며 그는 열두 번도 넘게 시가에 다시 불을 붙였고, 세 시간이 지나서야 한 대를 겨우 끝냈다. 값비싼 쿠바산 시가를 피우는 게 그의 유일한 부르주아적인 약점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는 그것에 대해 말하기를 거부했다. 나중에 전화를 통해 시가에 대한 그의 분명한 사랑에 대해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그는 이의를 제기했다. "그 질문에 대답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군요." 파리에 있는 그의 조수는 고다르가 자신의 영화 < 포에버 모차르트 > 때문에 우울한 상태라고 설명한다. 고다르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촬영 직전까지 기다리는데, 그것이 그의 습관이다… (ㄴ) 나 역시 원고를 쓰기 위해 습관처럼 마감 직전까지 기다리고, 때로는 마감이 나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럴 때 담배는 도움이 된다. 나는 몇 해 전에 [담배와 영화: 혹은 나는 어떻게 흡연을 멈추고 영화를 증오하게 되었나]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물론 가끔은 영화를 증오하기를 깜박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흡연을 멈추기를 잠깐 멈추기도 한다. 사실 내가 담배를 끊은 건 아이가 생겨서였다. 그렇다면 오늘처럼 아이와 떨어져 밤을 보낼 때는 한 대쯤 피울 수 있는 거 아닌가? 혹은 두 대, 어쩌면 세 대 정도는… 트뤼포를 두 잔씩 마시고 우리는 트뤼포를 나섰다. 포플레이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서였다. 광주극장의 김형수 이사가 추천해준 곳이었다. 바로 옆옆 건물이었는데, 그전에 담배를 사기 위해 편의점을 찾아 십 미터 정도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갑자기 골목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바로 직전까지는 늦은 시간의 종로 뒷골목 같은 느낌이었다면 갑자기 쿵쿵쿵! 비트가 쏟아지는 클럽, 클럽형 소주방, 혹은 대형 헌팅 포차…들이 연이어 있었다. 모두 사람들로 바글바글 했다. 그때야 김형수 이사의 말이 떠올랐다. 거기 가면 아주… 시끄럽죠, 혹자는 광주가 어떻게 이러냐고 하기도 하던데. 그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우리에게 물었다. 광주가 그러면 뭐, 도대체 어쩌라는 걸까요?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젊음이 드럼 비트처럼 뿜어나오는 골목에서 우리 두 명의 늙은이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금연 거리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우리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으니까) 에어컨 실외기 뒤에서 담배를 피웠다. 보헴 시가 1미리. 오랜만에(어제 시상식장 뒤풀이에서도 강보원의 담배를 빌려 피우긴 했지만) 담배를 피우니 머리 끝까지 나른해지는 기분이었다. 조금쯤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기분으로, 우리는 포플레이를 향해 올라갔다. 포플레이에는 아무도 없었다. JBL4344 스피커와 가게를 꽉 채운 70년대 소울풍의 음악, 그리고 살 빠진 월터 화이트를 닮은 사장님을 제외하면. 사장님이 우리를 보았고, 우리도 사장님을 보았다. 잠시 아무도 말이 없었다. 우리가 방해를 했나, 나가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쑥스러운 듯 말씀하셨다. “제가 이 베이스를 좋아해가지고, 조금 크게 듣고 있는데 손님이 왔네…” 우리는 자연스럽게 바에 앉았고, 사장님은 메뉴판을 주는 대신 음악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렇게 베이스를 치는 건 흑인밖에 없어요. 그런 농담도 있잖아요. 신은 흑인에게 운동능력과 음악을 주었다. 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 적절하진 않은 농담이지만요. 저는 아직도 미국이라는 나라를 모르겠어요. 버드 파월이 차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경찰이 차를 세웠어요. 그리고 문을 열라고 하더니 운전대를 잡고 있는 파월의 손을 경찰봉으로 내려친 거죠. 한 대, 두 대, 세 대… 사정없이요. 미국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을 망가뜨린 거예요. 단지 흑인이 차를 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요. 그런 나라에서 오바마가 대통령이 돼? 그건 좋은 일이지만 그런다고 얼마나 달라질까 싶은 거예요. 그래서 파월 노래를 들으면 슬퍼요. 아무리 신나는 노래라도, 자꾸 그런 게 생각나서 여기가 너무 아파요. 아주 미치겠어요… 근데 그거 제프 다이어 [그러나 아름다운]에 나오는 이야기 아닌가요? 김재욱이 물었다. 아시는군요! 사장님이 반색하며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좋아하세요? 우리는 몇 잔의 보드카 토닉을 마시고, 사장님이 내려주는 커피도 그만큼 마셨다. 크림 치즈와 누텔라를 바른 크래커를 먹었다. 소울과 재즈, R&B를 들었고 조르디 사발이 연주하는 비올의 소리를 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시간에 대해서, 잃어버린 꿈들과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가능성에 대해서, 변해버린 것들에 대해서,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제 아무 상관없는 것들, 그러나 여전히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서… 그때 다른 손님들이 들어와서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스콧 매켄지의 ‘샌프란시스코’와 스팅의 ‘셰입 오브 마이 하트’를 신청했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일어나자 사장님이 계단 위쪽에 재떨이가 있으니 그곳에서 피우라고 했다. 좁은 계단 아래로 살짝 보이는 길거리는 술집 조명으로 대낮처럼 환했다. 반대로 우리 위쪽은 어두운 심연처럼 보였다. 그 사이에서 담배를 끊은 우리 둘은 거듭해서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계단 아래 빛 / 계단 위 어둠) 슬슬 일어날 시간이었다. 우리는 마지막 잔을 부탁했다. 사장님이 김재욱에게 메모장을 주고는 이름과 생년월일을 써달라고 하더니 두꺼운 책을 뒤적이며 사주를 봐주었다. 똑닮은 자식이 있다고 나오네요. 김재욱이 자식은 없다고 하자 사장님이 말했다. 만약 자식을 낳으면 똑닮은 자식이 나올 거예요… 내년에 내게 딱 맞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인연을 만난다고 나오네요. 이미 결혼을 했으면 어쩔 수 없고요… 그러더니 갑자기 탄성을 질렀다. 와우! 내년이죠? 43살부터 63살까지 20년 동안 모든 일이 잘 풀리는 시기네요. 영어로 골든 이어즈. 앞으로 20년 동안 전성기라는 말이에요, 무슨 일을 해도 잘 돼요. 축하합니다. 이렇게 좋은 사주를 보니 저도 좋네요. 다음은 내 차례였다. 사장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내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메모장을 들여다보았다. 일종의 데자뷰가 느껴졌다. 결혼 전에 대출을 받으러 은행에 갔을 때 내 소득증명서를 받아본 은행 담당자의 표정이 딱 그랬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무슨 일인지 한동안 언성을 높이며 통화하던 사장님이 한층 더 심각해진 얼굴로 메모장을 들여다보다가 내게 물었다. 혹시 결혼하셨어요? 네, 결혼했어요. 아! 다행이네요. 이런 사주는 결혼 안 하면 큰일나는 사주거든요. 이유는 묻지 않았다. 어쩐지 겁이 나서 물을 수가 없었다… 사장님이 계속해서 말했다. 여태까지는 조금 일도 잘 안 풀리고 겨우겨우 살았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망하거나 잘못되지는 않아요. 저를 믿으세요. 이건 진짜에요. 그리고 자식 복이 있어요. 나중에 자식 덕을 좀 볼 거예요. 내가 너무 사랑하고 나를 무척 사랑해주는 자식이 있어요, 라는 말을 듣는데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아이와 함께 지낸 후로 눈물이 많아졌다. 그리 좋은 사주는 아닌 모양이라고, 그래도 다행이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 손님 술을 만들어준 사장님이 다시 책을 들춰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약간 노래방 보너스 타임 같은 느낌으로. “49살부터 69살까지 전성기네요! 정말 두 분 다 전성기가 아직 오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제가 이렇게 보는데 전성기가 지났으면 할 말도 없고 속상하거든요. 그런데 두 분은 이제 잘 될 일만 남았어요. 정말 축하합니다!” 나는 월트 화이트를 닮은 사장님에게 진심으로 몇 번이나 거듭해서 감사드렸다. 동시에 마음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건 지나치게 영화적인 경험이 아닌가? 만약 내가 통 속의 뇌라면? 어떤 미친 홍상수가 끊임없이 자신의 영화를 보여주고 있는 거라면…? 견우야,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 영화 관객인가봐… (흑백 장면: <강변호텔>, 컬러 장면: < 엽기적인 그녀 >) 0-0: 집으로 그날에 대해서라면 약간의 이야기가 더 남아 있다. 하지만 이쯤에서 다음 날로 우리의 시계를 돌리는 게 좋을 것 같다. 아침. 우리는 광주극장에서 잡아준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 아침밥을 먹고 헤어졌다. 나는 기차를 타러 광주송정역으로, 김재욱은 혼자 국군광주병원 옛터로. 광명역에서 내린 나는 택시를 타고 안산으로 갔다. 나의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밥을 남기면 미스터 온실가스가 나오잖아.” 핑크퐁 기후변화 동요에서 온실가스의 존재를 알게 된 나윤이가 평소와 달리 밥을 싹싹 비웠다. 그러더니 박수 치는 엄마 아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향해 밥그릇을 들어보였다. 의기양양하게, 마치 상패라도 보여주듯이… 이어 아내가 내가 없는 이틀 동안 있었던 일들을 들려줬다. 한번은 나윤이가 손을 뻗어 크게 움직이면서 “해가 이렇게 떠서 여기(가장 높은 곳) 오면 아침이고 이렇게 가면 저녁이야”라고 해서 아내가 이렇게 뜨면 바로 아침이고, 가장 높은 곳에 가면 점심이고, 이렇게 가면 저녁이라고 정정해주었다고 했다. 그러자 나윤이가 아니라고 짜증내서 한참 그걸로 이야기하다가 아내가 그래 알았어, 그럼 그렇게 생각해, 하고 넘어갔는데 한참 지나서 나윤이가 귓속말로 소곤소곤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해가 이렇게 뜨면 아침이야…”라고, 마치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하는 갈릴레오처럼… (미스터 온실가스) 한동안 [뽀롱뽀롱 뽀로로]에 푹 빠져 지내던 나윤이는 [아기상어]와 [핑크퐁], [꼬마버스 타요], [로보카 폴리], [바다나무], [꼬모], [따개비 루], [엉뚱발랄 콩순이] 등을 거쳐 요즘은 [캐치! 티니핑] 시리즈에 과몰입 중이다. 차에 탈 때마다 티니핑 노래를 틀어달라고 하고, 티니핑 인형을 안고 자고, 본인은 ‘사랑해 하츄핑’ 엄마는 ‘솔직해 끄레핑’ 아빠는 ‘다정해 꾸래핑’이라고 역할을 분배해 놀기도 하며, 티니핑 게임에서 나오는 카드를 모으고, 이빨을 닦거나 밥을 먹을 때면 아빠에게 티니핑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고,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가 티니핑 놀이동산을 선물해주지 않을까봐 엄마 아빠 말을 잘 들으려고 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건 정작 [캐치! 티니핑] 애니메이션은 단 한 편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몇 번인가 보여주려고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단호하게 거부했다. 이런 게 바로 본편은 보지 않고 설정과 2차만 판다는 건가. 한 번은 내가 물었다. 나윤아, 왜 티니핑 만화는 안 봐? 그러자 나윤이가 말했다. “나는 안 봐도 다 알아.” 실제로 나윤이는 [캐치! 티니핑]의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 노래나 스티커북이나 카드를 통해서 혹은 다른 친구들에게 들은 거 반, 스스로 지어낸 거 반. 어쩌면 지어낸 게 더 많을 수도 있고… 내가 프린세스 로미라고 하면 자꾸 “프린세스 로미가 아니라 롱이!”라고 고쳐주는 게 약간 짜증날 때도 있지만(‘로미’가 맞음), 안 봐도 다 안다는 나윤이의 말이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거다. 나는 한때 (상업 영화라면) 한국 영화와 미국 영화와 유럽 영화를 가리지 않고 보던 사람이다. 물론 미국 영화를 제일 많이 보고 한국 영화도 적지 않게, 유럽 영화는 가물에 콩나듯 보긴 했지만.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점점 더 영화를 보지 않게 되었고, 이 연재를 시작할 무렵에는 극장에는 전혀 가지 않고 1년 동안 보는 영화를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영화와 멀어진 삶을 살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아무리 멀리 도망친다고 해도 결코 도망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나. 그리고 영화. 영화는 어디에나 있다! 주말 밤, 아이를 재우고 아내와 함께 앉아 돌리는 채널 사이사이에. 어느새 씨네필로 가득해져버린 트위터 내 타임라인에. 책장에 꽂힌 책들 속에—특히 적지 않은 존재감을 자랑하는 영화책들에 가득. 내가 구독하지만 보지는 않는 스트리밍 서비스에.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끊임없이 영화를 보는 정지돈과의 대화와 또 다른 사람들과의 스몰 토크 속에. 정말이지 영화는 어디에나 있고, 나는 내 손가락에서도, 발가락으로도, 나를 둘러싸고 있고 끊임없이 자라나고 있는 영화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바람에 쓰여 있고,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다. 정말 그렇다. 다만 내가 그것들을 보지 않을 뿐이다. 질문. 내가 영화를 보지 않는다고 영화도 나를 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영화와 영화에 대한 담론, 플랫폼, 매체, 2차 컨텐츠, 기타 등등을 마구잡이로 섞어서 말하고 있다. 카세티가 말하는 ‘재배치’를 염두에 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영화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가—미세먼지나 방사능이 그런 것처럼—세상에 흘러 넘쳐서 좋든 싫든 우리는 영화의 영향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한국 영화에 대해 생각하는 게 아니라 한국 영화처럼 생각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어떻게? 0-1: 잠언 영화가 꿈이라는 오래된 비유가 여전히 유효하다면 더 이상 그것이 인간의 꿈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극장이 꾸는 꿈이다. 영화는 기계들이 꾸는 꿈이고, 사물들이 꾸는 꿈이다. 세계가 꾸는 꿈이고, 그것은 종종 세계와 구분되지 않는다. 0-2: 마지막 편지 친애하는 지돈씨에게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제 차례의 마지막 원고를 보냅니다. 2년 가까이 이어진 우리의 원고를 어떻게 끝내야 할지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스티븐 샤비로의 [탈인지], 이언 보고스트의 [에일리언 현상학], 프란체스코 카세티의 ‘영화의 재배치’ 같은 글들을 읽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인간의 꿈이 아니라 사물들이 꾸는 꿈이라는 아이디어는 그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물론 그건 어디로도 닿지 않은 채 공상에 더 가까운 짧은 질문의 형태로 남았을 뿐이지만요. 그때그때 떠올랐던 자잘한 아이디어를 하나의 원고로 만들기 위해 저는 쉼없이 자르고 붙이고 버리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미끄러운 바닥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춤을 춰야 하는 불운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왜 이런 압박을 느낀 걸까요? 그건 아마도 ‘한국 영화’가 제 안에 있는 것들, 너무도 강렬하게 발현하고 있기에 외면할 수 없던 많은 것들을 불러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글을 쓴다는 것이 기호 속에 포착해 넣은 그 무언가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매번 글을 쓰고 나면 저의 정신은 그 문장들을 들여다보고 뒤집어보고 마치 새로운 양식인 것처럼 씹고 또 곱씹어보았습니다. 글을 써 나갈수록 수많은 질문들, 끝없이 속아나는 수수께끼들을 반추하게 되었고, 깨어 있는 삶과 잠들어 있는 삶, 저의 모든 삶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며칠 전 이 원고에 대해 말씀드렸던 것도, 이제 원고를 보내드리는 것도 아마 이러한 중압감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일 겁니다. 정처 없이 떠난 여정과도 같은 이 글에는 밝혀내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그리고 특별하기보다는 사소한 것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 ‘한국 영화’ 그리고 그곳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 그러니까 우리 자신이라는 존재에 다가갈 수 있었기를, 그 존재가 자신의 말을 할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 글을, 이 책을 당신에게 맡깁니다. K정연 0-3: 끝 “헤이 클로버, 캐치 티니핑 노래 틀어줘” 나윤이가 말하면 클로버는 “바이브에서 캐치, 티니핑 율동 동요 앨범을 재생할게요”라고 말하며(요즘 나윤이는 그 말을 따라 하는 데 재미 붙였다) 노래를 재생한다. 빛나는 마법을 보여줘 (캐치캐치!) 예쁜 마음을 모아 티니핑 타임 가끔 그건 내게 마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말이다. (구글 번역기에서 언어 설정을 잘못해서 발생한 오류, 그런데 이건 정말 오류일까?) *이 글에는 늘 그런 것처럼 다른 작품들의 인용이 있고, 대부분은 본문에 출처가 명시되어 있다. 가독성이나 여타 다른 효과를 의도하고 일부러 명기하지 않은 부분은 아래와 같다. 4-3 두번째 문단의 "갑자기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에서 해당 장의 마지막 "웃지 마시오!"까지의 내용은 토머스 베른하르트의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김현성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모자])에서 아주 약간의 수정과 함께 인용했다. 0-0 중 “정말이지 영화는 어디에나 있다…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다” 부분은 Wet Wet Wet의 노래 ‘Love Is All Around’의 가사를 조금 수정해서 인용했다. 0-2 편지라는 형식과 몇 개의 문형, 그리고 문장들은 뤽 다르덴의 [인간의 일에 대하여](조은미 옮김, 미행 펴냄)의 서문에서 빌린 것이다. 특히 “왜 이런 압박을 느낀 걸까요?”에서 마지막 문장까지는 아주 약간의 수정과 함께 그대로 인용했다.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1. …지돈 씨, 이 시대는 이상한 시기이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팽창하나 경련적인 변화의 물결의 시대입니다. 이와 같은 변화가 모순적 효과를 동시적으로 확대합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변화의 시대가 권력관계의 잔인함을 지워내지는 않고, 오히려 다양한 방식들로 권력관계들을 강화하면서 내파의 지점으로 이끕니다… 1) 연재를 시작한지 반년 가까이 지났지만 우리가 만들 에세이 필름의 제작비는 한푼도 모이지 않았다. 투자자나 제작자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연재 조회 수는 매회 마다 정확히 반토막이 났고 이렇게 계속 쪼개진다면 쿼크 입자 수준까지 내려갈 지경이었다, 라는 말로 JD가 지난 회를 시작한지 벌써 한 달 가까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조회 수가 반토막을 넘어 1/3토막이 났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지난 반년 동안 우리의 연재를 읽고 뭐라도 반응을 보여준 사람은 셋뿐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영화평론가들이다. 임재철: 아니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었다는데 무슨 길을 잃었냐고. 내가 보기엔 한국 영화에 들어간 적도 없는데, 안 그래? (직접 들음) 유운성: 제가 문근영 배우를 좋아하긴 하죠, 하하. 집에 싸인도 있고… (전해 들음) 오진우: 연재된 글들을 보고 웃어본 적은 없지만 응원합니다 (인스타그램에서 봄) 세 분 평론가에게 마음 속 깊은 감사와 우정을 전한다. 영화라는 우정. 하지만 지금 JD와 내게 필요한 건 일반적인 우정이 아니다. 영화라는 우정을 가능하게 하는 우정이라고 할까? 그건 만들어진 영화를 통해서야 비로소 가능한 우정이고, 영화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물적조건(=돈)과 뗄 수 없는 우정이다. 물론 모든 우정이 영화가 될 필요는 없다. 모든 영화가 우정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그냥 이렇게 말해야겠다. 영화라는 우정은 우정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온라인 상영관을 통해 <초국지소지천황>을 봤다. 1971년, 감독 하라 마사토와 일군의 배우들은 [고지키]로 알려진 역사와 신화에 관한 오래된 책을 바탕으로 이 16mm 영화를 촬영했다. 하라는 당시 촬영을 끝내지 못했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혼자 슈퍼8 카메라로 촬영을 재개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돌아보고, 신화는 외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물리적인 의미로는 촬영될 수 없지만, 영화 그 자체 혹은 영화 만들기 과정에 깃드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2) 몇 번의 재편집을 거쳐 현재의 형태로 만들어진 <초국지소지천황>은 완성되지 못한 16mm 푸티지와 촬영지에서 촬영지로 움직이는 1인칭 시점의 8mm 촬영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이미지들이 흘러가는 동안 하라는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떠들고, 때로는 직접 노래를 하기도 한다. 일종의 로드무비이자 영화일기, 에세이 필름, 바르트가 말한 글쓰기-의지(scripturire)에 빗대자면 순전한 응시-의지로 이루어진 영화라고 할까. 뷰파인더를 바라보는 동시에 렌즈를 바라보는 하라는 말한다. “생각해 보면 나는 영화를 위해 희생한 과거도, 바칠 현재도 갖고 있지 않다.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모든 걸 갖고 있다.” 나도 20대 초반의 촉망 받는 영화 감독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텐데. 나는 마흔을 넘긴 서평가이지만 서평은 쓰지 않고, 영화를 만들겠다고 나섰지만 영화도 좋아하지 않는다(내가 쓴 [담배와 영화]라는 책의 부제는 ‘나는 어떻게 흡연을 멈추고 영화를 증오하게 되었나’다). 우정을 싫어하진 않지만 우정이라는 말을 남발하는 건 싫다(진정한 우정은 우정이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식의 고색창연한 로맨티시즘의 발로일 수 있다). 영화를 위해 희생한 과거도 바칠 현재도 갖고 있지 않으며 그건 우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라 마사토의 시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능의 카메라와 편집 프로그램에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고 느낀다(심지어 여기엔 ‘하지만’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2. “얼굴에서, 얼굴에서! 얼굴은 얼간이들을 위해 만들어졌군!” 3) 얼굴은 보편적이 아니라고 들뢰즈는 말했어요, 라고 JD는 말했다. 그건 백인 그 자체이고, 그리스도이며, 유럽인이고, 에즈라 파운드가 뭔가 관능적인 인간이라 부른 것, 요컨대 평범한 색정광(érotomanie)이며,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보편적인 것의 얼굴, 한 마디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라는 거죠. 4) JD는 계속해서 말한다. -얼굴은 우리를 비인간성으로 이끄는 일종의 정치와도 같은 것, 따라서 인간이 운명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은 얼굴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기표화와 주관화로 작동하는 기계이자, 인종차별주의 및 민족중심주의를 산출하고 강화시키며 얼굴의 선별에 이용되는 기계인 얼굴성이라는 추상적 기계로부터 도망치는 거라나 뭐라나… 5) 밤이었고, 우리는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KTX 066호 열차를 타고 있었다. 긴 하루였다. 정지돈과 박솔뫼, 그리고 나는 삼요소라는 이름의 서점에서 오후 1시부터 밤 9시까지 독자들과 함께 하는 세 개의 세션을 진행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박솔뫼가 예매한 기차는 15분 먼저 출발했고, 둘만 남아 작은 소리로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었다. 창작과 비평에 대해서, 문학과 사회에 대해서, 문학이라는 좁은 동네에 대해서, 자음과 모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고, 우리가 처한 상황과 그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해야 하지만 하지 못한 것들, 그리고 절대 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우리는 최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온라인 상영관을 통해 본 두 편의 영화, 하라 마사토의 <초국지소지천황>과 크리스 페티와 이안 싱클레어의 <런던 순환도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런던 순환도로>는 크리스 페티와 이안 싱클레어가 세계에서 가장 큰 바이패스인 M25 외곽순환도로에 관해 만든 작품으로 일종의 로드무비이자, 사회학적인 비평, 한 세기 전의 미래파 문학 속으로의 영화적인 여행이고,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두 인물 사이의 영화적 대화이다. 6) 두 영화는 여러모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 일단 듀얼 스크린이라고 하나? 독립된 두 개의 화면이 동시에 흐르며 내레이션을 통해 진행된다는 것, 일종의 로드무비이자 영화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는 부분 등이 그렇다. 물론 다른 점은 더 많다. 하나는 사회(학)적-비평적-대화-외부를 향하는 영화(<런던 순환도로>)고 다른 하나는 신화적-시적-독백-내부를 향하는 영화(<초국지소지천황>)라는 것. 그중에서도 내가 생각하는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하라는 카메라를 바라보지만 페티와 싱클레어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열이면 열 <초국지소지천황>을 더 예술적이라고 말할 거예요. -왜죠? -일종의 진정성일까요. <런던 순환도로>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학적인 일화들을 다양한 레퍼런스들을 통해 배열하고 보여주는데 그걸 하나로 묶어주는 건 런던 순환도로죠. 따라서 이건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 일종의 교양다큐 같은 걸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예요. 반면 <초국지소지천황>의 모든 이미지와 이야기를 묶어주는 건 결국 하라 마사토라는 개인이에요. 실제로 감독은 카메라를 바라보며 시네마와 내 얼굴을 마주하겠다, 대적하겠다, 내 얼굴을 보여주겠다, 뭐 이런 다짐을 몇 차례 반복하잖아요. 그런 감독의 행위가, 정확히 말하면 그런 감독의 얼굴이 영화에 진정성을 주입하는 거죠. -저는 사실 그 부분이 싫더라고요. -진정성을 주입하는 부분이요? -카메라로 자기 얼굴을 찍는 부분이요. 코로나19가 유행한 이후 나는 내가 얼굴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화에 나오는 얼굴만 그런 게 아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 상점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 거울에 비친 내 얼굴. 얼굴이 발산하는 정보가 너무 많아 종종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말 그대로 TMI. 언젠가부터 길을 걷고 마트에 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상적인 행위들이 훨씬 수월해졌는데, 그건 물론 마스크 때문이다. 얼굴, 얼마나 소름끼치는가. 들뢰즈는 말한다. 자연스럽게도 얼굴은 모공들, 평평한 부분들, 뿌연 부분들, 빛나는 부분들, 하얀 부분들, 구멍들을 가진 달의 풍경이다. 얼굴을 비인간화하기 위해 그것을 클로즈업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커다란 판(gros plan)이며, 자연스럽게 비인간적이며, 괴물적인 복면이다. 7) 영화의 일반적 얼굴은 바로 제국주의의 얼굴이며, 자본주의에 의해 집요하게 그리고 참을성 있게 구축된 세계적 질서의 얼굴이지 않은가? 8) -그래서 우리 연재가 자본주의가 구축한 세계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완벽하게 정교한 얼굴 가면을 계속해서 바꾸어 쓰는 요원들이 등장하는 < 미션 임파서블 >에서 시작했던 거군요. 소름… 그러므로 비약하면, JD가 말했다. 우리의 에세이 필름은 영원히 지금 여기서 씌어져야 합니다. 기록, 확인, 재현, 묘사의 조작이 아니라 언어학자들이 수행동사라고 부르는 것, 정확히 말해 발화하는 행위 외에 어떤 언표도 가지지 아니하는 그런 진귀한 언술적인 형태. 삶은 영화를 모방할 뿐이며, 그리고 이 영화 자체도 기호들의 짜임, 상실되고 무한히 지연된 모방일 뿐입니다. 이른바 포스트-얼굴Post-Ulgul!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천천히 눈이 감겼다. 강연 준비를 하느라 밤을 꼴딱 샌 탓이다. 우리 열차는 곧 광명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내리실 때는 잊으신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시고…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안내 방송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부디 우리의 영화에도 광명(光明)이 있기를, 가능하면 우리의 삶에도, 지저스 크라이스트… 3. …지돈 씨, 저는 오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근본적인 계획입니다. 돈을 벌겠습니다. 아주 많이. 예술, 세계, 미래 다 좋지만 일단 돈부터 벌겠습니다. 돈을 벌면 세트부터 짓겠습니다. 촬영 들어가는 날에는 저는 감독 의자에 앉아 있을게요. 햇살이 워낙 좋으니까요. 지돈 씨는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됩니다… 9) JD가 어느 글에서 쓴 것처럼 나는 불확신의 픽션을 가진 사람, 약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며, 뭔가를 이루겠다는 욕심이나 기분 같은 게 없어서 주도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다만 어쩌다보니 무언가를 하고 있는, 말하자면 세상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구원이든 종말이든 그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아니다. 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스스로의 운명을 조종하고 얼굴로부터 도망갈 수 있도록.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지만… 박솔뫼와 정지돈과 내가 대전의 삼요소에서 진행한 세션 중 하나는 독자들과 함께 즉석에서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3명의 작가와 9명의 오프라인 참가자 그리고 10명 남짓한 온라인 참가자가 함께 ‘대전만세!’라는 제목의 소설을 썼다. 대전에 관한 소설을 써달라는 대전관광공사의 의뢰를 받고 대전에 도착한 금정연이 원고료가 든 서류가방을 들고 영화를 보러 대전아트시네마에 갔다가 엉뚱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홍콩과 마카오, 런던과 대천 해수욕장을 오가며 벌어지는 환상적인 이야기인데,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극장 앞자리에 앉아 있던 양조위가 금정연에게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다. “도망가자.” 그러니까 가능하다면 그런 방식으로 도망가면 좋겠다는 말이다… 우리가 얻는 가장 단순한 아이디어 중 하나는 누군가 울고 있을 때 얻게 되는 아이디어다, 라고 존 케이지는 썼다. 뒤샹은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울고 있었다. 몇 년 후 같은 도시의 같은 지역에서, 거의 같은 이유로, 라우셴버그는 울고 있었다. 11) 그래서 얻게 된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존 케이지는 쓰지 않는다. 존 케이지가 늘 그렇듯이. 나도 울고 있었다. 집이었고 평범한 저녁이었다. 아이를 목욕시키고 옷을 입히려는데 커튼 뒤에 숨어서 나오질 않았다. 우리 아가가 없어졌네, 어디 갔지, 엉엉. 내가 우는 시늉을 하자 아이가 얼굴을 내밀고 물었다. 아빠 우는 거야? 응, 우는 거야.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아이가 말했다. 내가 여기에 숨을 테니까 아빠 울어. 알겠다고 하고 계속 우는 시늉을 하는데 어디선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커튼 튀에 숨어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지, 왜 우는 거지’… -우리 아이가 없어져서 울고 있었지. 약간 뻘쭘한 기분으로 내가 말했다. -나는 이빨이 튼튼한 아기 상어 포크레인인데. -이빨이 튼튼한 아기 상어 포크레인이구나. 이빨이 튼튼한 아기 상어 포크레인 어디 있어? -여기 숨어 있어. -거기 있었구나! 이빨이 튼튼한 아기 상어 포크레인, 이리 와서 옷 입자. 그러자 아이가 말했다. -나는 엄청 빠른 소방차 뽀로론데? -아, 엄청 빠른 소방차 뽀로로구나…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다 그런 것처럼 우리 아이 역시 변신의 귀재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쓰레기를 줍거나(청소차) 호스로 불을 끄는 시늉을 하거나(소방차) 폴짝 폴짝 뛰면서 개굴개굴 울거나(개구리) 인상을 쓴 채 거실을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며(돛새치 혹은 중장비차) 논다. 그렇담, 나는 생각했다. 나도 이것저것 따지고 재며 생각할 것 없이 그냥 감독이 되면 되는 거 아닌가? 로지 브라이도티는 [변신: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에서 이렇게 말한다. 요점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즉 고전적 양태로 존재하기Being보다 오히려 결국에 우리가 돌연변이, 변화, 변형을 어떻게 재현하고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또는 로리 앤더슨이 현명하게 말했듯, 요즘에는 분위기moods가 존재의 방식modes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그것은 변화를 창출하고 즐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이점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불안감의 원천입니다. 12) 4. …마지막으로 르네 도말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한 번 더 인용하겠습니다. 주려고 하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손에 무언가 넣으려고 한다. 손에 무언가 넣으려고 하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무언가가 되려고 욕망한다. 무언가가 되려고 욕망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살게 된다. 13) 지돈 씨,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홍상수의 영화들을 보기 시작했다. 홍상수가 내가 되고 싶은 감독의 이상형에 가까웠기 때문은 아니고, 때마침 개봉을 앞둔 홍상수의 신작 제목이 < 당신 얼굴 앞에서 >였기 때문이다. -우연은 중요하죠. 저희 어머니는 정의당의 이정미 대선 경선후보를 지지하는데, 저희 어머니 성함도 이정미거든요. -고마워요 지돈 씨, 언제나 적절한 예를 들어주시네요… 우연은 또 있다. 로지 브라이도티의 책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했던 것이다. 오늘날 세계에서 유일한 상수 는 변화지만, 그것은 단순한 과정도 아니고 단선적인 과정도 아니다… 14) -근데 정말 브라이도티 말이 맞더라고요. -뭐가요, 상수는 변한다고요? -네, 그리고 그건 단순한 과정도 아니고 단선적인 과정도 아니던데요. 내가 마지막으로 본 홍상수 영화는 < 자유의 언덕 >과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였는데, 그때 나는 홍상수 영화의 반복되는 어떤 정서, 느낌, 분위기에 조금은 질려 있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김민희와 정재영이 함께 술을 마시는 장면 같은 것. 그런데 지금은… -먼저 < 풀잎들 > 넷플릭스에 있어서 봤는데, 완전 트위터를 영화로 옮겨 놓은 것 같더라고요. 카페가 트위터고 각각의 테이블마다 멘션을 주고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구석에 앉은 김민희가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일방적으로 혼자 비계인용 달고, 그러다 갓생 사는 동생 커플 만나서 괜히 화내고, 다시 돌아와서 밤 늦게까지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랑 멘션을 섞고 결국 트친 되고… -그게 그런 내용이었어요? -그리고 < 도망친 여자 >도 봤는데 처음엔 경기도 외곽의 빌라에 사는 지인의 집을 방문하고 북촌에 있는 아는 언니 집을 방문하는데 두 집의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구해줘! 홈즈’ 극장판 같은 건가? 아니면 각각의 집을 방문한 한국 남자들에 대한 일종의 생태학? 그런데 마지막에 들른 극장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보는 장면을 보면서 깨달았죠. 아, 이건 씨네필들을 풍자하는 영화구나. 김민희=도망친 여자=씨네필이구나. -네??? -지돈 씨, 생각해보세요. 첫 번째로 방문한 경기도 빌라에서 김민희는 CCTV를 통해 이웃집 여자를 만나는 지인을 훔쳐봅니다. 두 번째로 방문한 북촌의 빌라에서는 도어락 모니터를 통해 스토킹하는 시인을 훔쳐보고요. 세 번째로 방문한 극장에서 일하는 대학 친구를 우연히 만나고, 한때 김민희의 연인이었으나 지금은 대학 친구의 남편이 된 작가를 마주치고 찝찝한 이야기를 나눈 후에 도망치듯 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보잖아요. 모르시겠어요? -(대체 무슨 소린지)??? -그렇지만 제일 좋았던 건 < 클레어의 카메라 >였는데요, 저는 그것이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영화에 어떤 힌트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 1) [변신: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로지 브라이도티, 김은주 옮김, 꿈꾼문고, 2020) 13쪽 2)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홈페이지의 영화 소개 참고 3) <누벨 바그>(장 뤽 고다르, 1990) 4) [천 개의 고원](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김재인 옮김, 새물결, 2001) 338쪽 참고 5) [영화 속의 얼굴](자크 오몽, 김호영 옮김, 마음산책, 2006) 307쪽 참고 6)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홈페이지의 영화 소개 참고 7)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앞의 책, 362쪽 8) 자크 오몽, 앞의 책, 308쪽 9) <기생충>(봉준호, 2019) 중에서 기우의 편지를 변형함 10)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정지돈, 문학동네, 2021) 43쪽 참고 11) [사일런스](존 케이지, 나현영 옮김, 오픈하우스, 2014) 131쪽 12) [변신: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로지 브라이도티, 김은주 옮김, 꿈꾼문고, 2020) 15쪽 13) [마운트 아날로그](르네 도말, 오종은, 이모션북스, 2014) 14) 변신 495쪽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1.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 연재를 시작한지 반년 가까이 지났지만 우리가 만들 에세이 필름의 제작비는 한푼도 모이지 않았다. 투자자나 제작자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시작할 때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다른 전개에 아연실색한 정연씨는 실망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지돈씨, 어쩌죠. 게다가 연재 조회 수는 매회 마다 정확히 반토막이 났고 이렇게 계속 쪼개진다면 쿼크 입자 수준까지 내려갈 지경이었다. 정연씨, 꼭 돈이 있어야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요. 내가 말했다. 로저 코먼이나 로버트 로드리게즈를 떠올려봐요. 나는 로저 코먼이 첫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상기시켰다. 로저 코먼은 본인이 제작한 첫 영화 <해저에서 온 괴물>(1954)을 찍기 위해 지인들에게 투자금 개념으로 돈을 받아냈다. 조건은 성공하면 러닝 개런티까지 더해서 돌려주겠다는 거였다. 심지어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에게도 임금을 주기는 커녕 돈을 받았다. 로저 코먼이 와이어트 바니에게 물었다. 바니. 자네 전에 시나리오 팔아서 얼마 받았나? 4천 달러요. 좋아! 그럼 2천 달러만 투자하게. 감독으로 데뷔시켜줄게. 그러니까 영화는 주식 투자와 다를 바 없다. “투기 시대의 피투자자 정치Investee Politics in a Speculative Age”인 거죠. 금정연이 손 따옴표를 그리며 말했다. 지돈씨가 제게 영감을 줬네요. 금정연에 의하면 벨기에의 철학자 미셸 페르Michel Feher는 이렇게 말했다. 금융화된 “에이전시”의 노동자 주체는 신자유주의의 주체와는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주체가 임금을 받고 이윤을 추구하는 게 목적이라면 동시대의 주체는 자산을 평가받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관리해야한다. 아마존이나 우버 같은 기업을 보라. 지금 당장은 이윤이 낮거나 손해를 봐도 주가는 치솟는다. 핵심은 상품 판매를 통한 이윤이 아니라 낙관적인 미래를 생산하는 프로젝트의 실행이다. 바로 이게 모든 예술-창작의 원리지요. 특히 영화. 그런 의미에서 미래의 자본주의가 유희 자본주의화 될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사실입니다. 아……? 이제 우리의 포트폴리오-연재를 관리해야 할 때가 왔네요. 2. 포트폴리오 혹시 잊은 사람들이 있을까봐 말하면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 사람들>은 에세이 필름을 제작하기 위한 시나리오 또는 트리트먼트다. 단지 “에세이”라거나 칼럼, 아니면 영화에 대한 수다 정도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우리는 21세기 한국 영화가 어쩌면 갈수도 있었을 상상의 경로를 민속지적 관점에서 기억하고 복원하는 오디오-비주얼-에세이 필름을 제작하려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있고 이 영화의 감독은 금정연이 될 예정이다. Lost Korean in Korean cinema 감독 금정연 시나리오 금정연 목소리 금정연 제작 금정연 편집 금정연 … .. Thanks to 정지돈… 이게 내가 (미쉘 페르의 용어로 말하면) 추측하고Speculative 투기하는Speculative 미래다. 문제는 금정연이 영화감독을 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이다. 처음 상업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게 됐을 때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금정연이 영화감독까지 탄탄대로를 밟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면 우리랑 연락 끊지 마요, 정연씨, VIP 시사회에서 강동원 옆에 앉혀줘요, 정연씨, 라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금정연은 고개를 저었다. 지돈씨, 저는 영화 감독이 될 생각이 없어요. 왜요, 왜요. 정연씨가 아니면 누가 감독해요? 누군가 하지 않을까요… 어느 글에서 쓴 적 있지만 금정연은 야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기다리는 유형의 사람이지 쟁취하거나 애쓰는 사람이 아니다. 어쩌다보니 서평가가 됐고 어쩌다보니 편집위원이 됐으며 어쩌다보니 시나리오 작가도… 그렇지만 영화감독은 어쩌다 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감독이 되기 위해선 질적 도약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도 감독의 인성에 대한 걱정 없이 영화를 봐야 하지 않을까요? 직업으로서의 영화감독은 도달하기 힘들 뿐 아니라 유지하기도 힘들다. 어떤 감독들은 이 과정에서 종종 맛이 가기도 하고(이에 관한 내용은 <위대한 영화감독들의 기상천외한 인생 이야기>(시그마북스, 2010)를 참고할 것) 맛이 간 상태로 영화를 만들어 세계에 거대한 똥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게 바로 내가 금정연이라는 장외 주식에 내기를 건 이유다. 미셸 페르는 말했다. 투기자본주의 시대에는 노동조합과 다른 종류의 저항이 필요하다. 그것은 투자를 미래를 저당잡히는 행위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피투자자들의 힘을 거대하게 조직해 그들에게 투자하지 않고서는 체제가 유지될 수 없게 만드는 거라고… 다시 말해 <나랏말싸미>가 잘 되기만 하면…… 그러나 영화 개봉과 거의 동시에 우리는 증권거래소의 통보를 받았다. 상장 폐지. 우리 중에 유일하게 주식을 하는 소설가 오한기는 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저었다. 잡주에 투자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잡주? 금정…? 참고로 한기씨는 공격적인 주식 투자로 한푼도 벌지 못했고, 요즘은 일론 머스크가 나오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설치류를 닮은 어느 공무원이 도지코인에 투자했다가 전재산을 잃고… 일론 머스크에게 돈을 받아내기 위해 그가 탄 스페이스X의 민간 우주선에 숨어들었다가 화성에서 온 외계인을 만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 3. Secret Lives of Great Filmmakers 금정연 King jung yeon 1981. 9. 2. ~ 국적 대한민국 별자리 처녀자리 대표작 <커피와 담배와 영화>, <아무튼 택시 드라이버> 그외 다수 말말말…. “Saram salryeo yeogi saram itseoyo.” 영화계의 전설에 따르면 금정연이 처음 감독으로 경력을 시작한 것은 영화평론가 겸 영화감독 정성일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성일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연재 중이던 금정연의 칼럼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 사람들’을 눈여겨봤다가 신인 감독의 등용문이라고 할 수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에 추천했다. “금정연에게 맡겨봐. 마감을 칼같이 지켜.” 4. 얼굴들 감독의 얼굴이 아니야. 금정연이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 사람들>을 찍을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말했다. 왜? 봐봐. 친구가 금정연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했다. 그리고 한국 영화감독들의 이름을 검색창에 차례로 입력했다. 박XX, 김XX, 이XX …. 차이를 모르겠어? 무슨 차이? 금정연과 한국 영화 감독들의 관상 차이. ……. 나는 금정연에게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전했다. 정연씨, 정연씨는 영화감독 관상이 아니래요.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정연씨는 그 말을 듣고 심각해졌다. 그러면 우리의 프로젝트는 어쩌죠? 제 남은 인생은 어떡하구요. 우리 나윤이의 앞날은…? 나 역시 심각해진 건 마찬가지였다. 영화에 대한 애정과 금정연의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관상 문제가 터진 것이다. 관상이라니, 21세기 메타버스 시대에 무슨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이란 말인가. 그러나 나와 정연씨는 우리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관상의 문제는 얼굴의 문제이며 얼굴은 언어와 함께 영화의 핵심이자 동시에 제거되어야 할 형상,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스펙타클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옵시스! 정연씨가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게 뭐예요? 미메시스!! 그건 또 왜…? 지돈씨, 아직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필립 라쿠 라바르트와 롤랑 바르트, 고든 크레이머의 위버 마리오네트와 로베르 브레송의 모델론을 거쳐 영화의 형상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요. 무슨 말인지?? 인간의 뇌에서 얼굴 인식 매커니즘은 가장 고등한 기능 중 하나예요. 영장류의 뇌 하측두엽에는 얼굴에만 반응하는 영역 여섯 곳이 있습니다. 이를 페이스 패치Face Patch라고 해요. 각 패치들은 부분 기반 관점과 전체론적인 게슈탈트 원리를 결합해서 얼굴을 검출하고 구성하고 식별합니다. 어떤 패치는 얼굴의 방향에 반응하고 어떤 패치는 모양에 반응해요. 더 흥미로운 건 내측두엽에는 사람의 이미지에만 반응하는 신경세포 집합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중 한 세포는 유명 인사의 얼굴에만 반응해요! 예를 들면… 일론 머스크! 중요한 건 영화가 일종의 얼굴 패치라는 사실입니다. 재현이 중심이 된 영화 속의 얼굴은 특정 문화권의 얼굴을 뇌에 업데이트한다는 거죠. 패치를 설치한 것처럼요. 연재 초기에 했던 이야기 기억나세요? 모든 씨네필은 자국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 이유가 자국어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언어는 영화에 이질적인 요소니까, 모든 감독들이 무성 영화를 그리워하는 것처럼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영화라는 예술의 핵심처럼 여겨진 얼굴 역시 사실은 영화에 이질적인 요소예요. 특히 스펙타클로서 재현된 얼굴은 더욱 그렇죠. 제가 라쿠 라바르트와 롤랑 바르트, 고든 크레이그와 브레송을 말한 이유를 이제 알겠죠? 필립 라쿠 라바르트의 개념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연극에서 무대 장치라고 할 수 있는 스펙타클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극은 오직 목소리, 낭독만으로 전달할 수 있다. 라쿠 라바르트에게 미메시스란 어떤 장면의 모사 또는 재현이 아니라 현시다. 복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만드는 것. 이러한 실천을 위해서 형상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 역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현이란 욕망의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들로 붐비는 거추장스러운 형상화이다. 즉 그것은 알리바이의 공간이다.” 형상화가 재현이 아닌 즐거움으로서의 욕망이 되기 위해서는 “모방적 구조가 아닌 도표적 구조”로 드러나야 한다. 영화는 그럴 때에 진정 형상적인 것이 된다. 20세기 영국의 배우이자 연극연출가 고든 크레이그는 연극이 사회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 사회를 창조하는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천 방안은 다음과 같다. 1) 배우의 움직임은 상징적인 동작만으로 제한되고 2) 얼굴에 가면을 씌우며 3) 종국에는 배우를 인형으로 대체할 것. 로베르 브레송 “모델들. 그들은 겉으로는 기계적이 되었지만, 내적으로는 변한 것 하나 없이 순진무구하다.” 그러므로 비약하면, 정연씨가 말했다. 우리의 에세이 필름은 영원히 지금 여기서 씌어져야 합니다. 기록, 확인, 재현, 묘사의 조작이 아니라 언어학자들이 수행동사라고 부르는 것, 정확히 말해 발화하는 행위 외에 어떤 언표도 가지지 아니하는 그런 진귀한 언술적인 형태. 삶은 영화를 모방할 뿐이며, 그리고 이 영화 자체도 기호들의 짜임, 상실되고 무한히 지연된 모방일 뿐입니다. 이른바 포스트-얼굴Post-Ulgul! 응? 지돈씨 대략 이런 내용으로 이번 연재는 마무리 해주세요. 음… 더 자세히 설명해야 되지 않을까요? 모르겠어요? 알듯말듯… 그럼 제가 다음 연재 때 보충할게요. 정말요? 어쩌면… (다음 회에 계속) * 참고자료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로저 코먼, 김경식 옮김, 2000, 열린책들) 『위대한 영화감독들의 기상천외한 인생 이야기』(로버트 쉬네이큰버그, 정미우 옮김, 시그마북스, 2010) 『텍스트의 즐거움』(롤랑 바르트, 김희영 옮김, 동문선, 1997) 『무대』(필립 라쿠-라바르트, 장 뤽 낭시, 조만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0) 『통찰의 시대』(에릭 캔델, 이한음 옮김, 알에치코리아, 2014) <고든 크레이그의 연극예술론>(정하니, 2018)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로베르 브레송, 오일환, 김경온 옮김, 동문선, 2003) “Movements of Counter-Speculation: A Conversation with Michel Feher” https://lareviewofbooks.org/article/movements-of-counter-speculation-a-conversation-with-michel-feher/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