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공주 대리운전
- 감독
- 이필립
- 제작년도
- 2015
- 출연
- 곽진영, 차영옥, 김동수, 윤설희, 조유진, 임지영, 마리아, 이현주, 한채진, 김학룡, 이덕군, 김문찬, 민신, 이석재, 임승규, 정성희, 김유나, 김영준, 최성남, 김종호, 김인기, 최병, 김한결, 박선준, 이유림, 황의현, 이철호, 유경미, 김오남, 박광선, 김일신, 이영란, 김송이, 이재형
이 영화의 제목만을 보고 든 생각은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기도를 하지 않나 싶은 것이었다. 종교가 원래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신이든 또는 다른 무엇이든 그 어떤 절대적 존재를 상정하고 기도를 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것이 종교의 형태를 취하든 아니든 그건 부차적인 것이고 본질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어떤 절대적 위기상황을 접하면 저절로 손이 모아지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으니……. 이 영화는 제목처럼 기도하는 남자에 대한 영화다. 기도를 업으로 사는 남자 태욱( 박혁권 분)은 개척교회 목사로 일하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개척을 해야 되는 교회니 당연히 형편이 넉넉하진 않을 것이고 이런 연유로 밤에는 대리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 정인( 류현경 분)으로부터 장모의 수술비가 급히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과연 기도가 수술비를 마련해 줄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이 두 사람의 선택에 대한 영화이자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는 영화다. 과연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고 악에서 구할 수 있는 그 무엇은 무엇일까? < 기도하는 남자 >( 강동헌 , 2018)는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가 장모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인가를 따라가는 영화지만 이 설정은 그다지 특수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을 수 있기에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이점에서 제목과 달리 전혀 종교영화도 아니고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고단한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인 우리 모두의 얘기라는 점에서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 영화다. 지금부터는 이들의 선택이 내용이나 영상적으로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졌는가가 이 영화가 처한 운명이 아닐까 싶다. 이들의 선택은 아쉽게도 큰 설득력을 가지기 어려워 보인다. 정도와 인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자신이 김당하지 못할 어려움을 한번쯤은 겪으며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지만 해법이나 거기에 이르는 과정의 개연성 등에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3억 5천만 원이라는 적은 제작비의 한계도 분명히 존재했겠지만 영화속에서 두 주인공과 장모가 선택한 길은 너무 극단적이기도 하고 행동에 대한 그 인물 자체의 내적동력이 약해 보인다. 마치 점프 컷을 보듯 인물들의 행동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에서 용감한 시도에 비해 아쉬운 전개와 결말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괜찮은 재료로 너무 자극적인 그러나 평범한 요리를 만든 셈이다. 인물들도 급하고 기획도 급해 영화가 정해진 결말로 달려가는 느낌 이상을 받진 못했으니 말이다. 아시다시피 두 주연배우 박혁권과 류현경은 매우 다양한 작품에서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인 실력파 배우들이고 이 영화에서도 그런 점에서 모자라지 않은 연기를 선보인다. 이 점은 이 영화가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이룩한 성취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캐릭터가 과해서 그런지 인물이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인상을 받은 것도 나로서는 숨길 수 없는 감정이다. 이 점 또한 성취이자 숙제로 남았다. 데뷔작을 연출한 강동헌 감독은 많은 고뇌의 시간을 보낸 흔적을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고뇌가 영화적으로 잘 표현되었는가라는 점에서는 조금 더 힘을 냈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잘 녹아냈다기보다는 이야기를 빨리 던지고 수습하는데 급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과한 전개에 비해 영화의 만듦새나 연기, 연출 등이 모자라진 않았다는 점에서는 이 영화가 가지는 가치나 매력은 적지 않다. 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제시라는 면에서는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좋은 기획과 설정이 과한 전개를 만나 풍파를 겪다 아이러니하게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기도하는 남자>는 저예산영화이자 독립영화다. 제작지원과 개봉지원을 모두 받은 나름 축복받은 독립영화인데 현재의 한국영화시장에서는 예견된 참사처럼 너무나 적은 개봉관을 배정받았고 당연한 귀결로 매우 저조한 스코어를 기록하였다. 개봉시기를 보면 팬데믹의 유탄을 제일 먼저 맞은 셈이니 이 또한 운이 나빴다. 제작진의 간절한 기도도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날카로운 칼날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거기에 코로나라는 망치까지 날아들었으니 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겠지만 엎친 데 덮친 격이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더 기다린다고 더 좋은 개봉여건이 될 거라는 기대를 가지기 어려운 현실 또한 엄연한 존재했을 것이다. 이것은 한국영화의 앞날을 생각하자면 <기도하는 남자>의 불행이 아니라 관객의 불행이자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불행이다. 어렵게 만들어도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누가 이런 시도를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불안이 엄습해온다. 영화는 만들어질 때 영화가 아니라 보여질 때 영화라는 말이 절실히 와 닫는 지금. 예견된 고난을 피하지 않고 독립영화의 정신으로 전진했던 <기도하는 남자>의 시도에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얼마 전 2018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영화 공개되었다. 선정위원이 고른 리스트 에 빠져 아쉬운 한 편은 무엇이였을까? 시네마테크KOFA 기획전 (2019.2.16~28)과 함께 오늘부터 일주일에 한편씩 그 영화 리뷰 연재 [KOFA 10 Best + 1]을 시작합니다. 이광국 감독의 <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은 호랑이의 ‘어흥’ 포효처럼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담은, 내게는 2018년의 한국영화 중 한 편이다. 제목은 창작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작품의 인상을 단순하고 짧게 전하는 게 보통이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인상보다는 내용과 형식에 관한 힌트를 개성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영화들의 ‘시장 친화적인’ 태도에 반(反)하는 의지가 충만하다. 진짜 호랑이거나 아니거나 처음 볼 때는 그래도 설마 호랑이가 직접 언급되거나 등장하지는 않겠지, 예상했다. 짐작이 무색하게, 여자 친구 현지( 류현경 ) 집에 군식구로 사는 경유( 이진욱 )가 아침 식사를 하던 중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묻는다. 현지 왈, “뉴스 보니까 호랑이 한 마리가 동물원에서 탈출했대.” 호랑이가 탈출했다고! 근처에서 울음소리까지 들렸다고!! 그런데 경유와 현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일상적인 톤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도대체 왜? 바깥에서 호랑이가 날뛴다고 한들 그보다 무서운 현실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거나, 아니면 경유를 비롯하여 주요 인물의 마음속에 가둬두었던 ‘호랑이’의 마음이 폭발(=탈출)하여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거나, 그러니까, 사실이거나 상징이거나, 아니면 둘 다이거나. 꿈과 현실을 뒤섞고, 극 중 극의 구조를 활용했던 이광국 감독의 전작 < 로맨스 조 >(2011)와 < 꿈보다 해몽 >(2014)을 고려할 때, 호랑이의 의미는 어느 하나에만 기울지는 않을 터다. 현지의 부모님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경유는 아직 결혼하기 힘든 형편(“나 어제 일 잘렸어”)이 부담스러워 집을 나온다. 친구 집에서 신세 좀 질까, 근데 문전박대당하고, 추운 밤 사발면에 의지해 대기하다가 겨우 한 건 잡은 대리운전 고객이, 글을 포기한 자신과 다르게 작가로 등단한 전 여자친구 유정( 고현정 )이고, 그로 인한 패배감을 풀어보려 찾아간 현지는 글쎄 경유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이사를 떠났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질 것 같은, 억세게 풀리는 거 하나 없는 경유에게 차가운 현실이야말로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과 다를 바 없다. “다른 대리 기사 불러줄게”(경유), “아니야 네가 해줘”(유정), “내가?”, “좀 불편한가?”, “아니”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억울한 심정을 어떻게든 참아보려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단답형의 대답으로 애써 마음을 채비하는 경유의 심리 상태는 유정의 차를 몰고 가는 라디오 뉴스 방송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탈출한 호랑이의 행방이 묘연해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동물원 관계자들은 호랑이와 마주치게 되면 움직이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데요.’ 손님이거나 아니거나 최선을 다해 죽은 듯 하려는 경유의 마음은 대리기사로 손님을 맞이할 때마다 최선의 의미가 무색하리만치 최악으로 향한다. 대리기사 주제에 왜 손님을 기다리게 하느냐는 둥, 처음 탈 때는 멀쩡했는데 잠에서 깨어나 확인하니 왜 차에 흠집이 있냐는 둥, 지갑에 돈이 없다며 잠시 기다리게 한 후 연락을 끊는 둥, 운전 노동을 마친 후 경유가 손에 집어 드는 건 요금 대신 손님들의 경멸 어린 시선과 이에 따른 치욕과 그래서 참을 수 없는 분노다. 어쩌다가 받게 된 돈도 유정의 경우처럼 바닥으로 떨어진 경유의 자존감을 더욱 비참하게 하는 굴욕감의 형태다. 호랑이로 사실과 상징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영화의 특징은 손님을 경유의 대척점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경유의 또 하나의 정체성으로 기능하도록 한다. 대리기사일 때 경유는 손님을 받는 입장이지만, 마땅한 거처가 없어 그에게 묵을 곳을 제공하는 이들에게는 손님의 위치다. 후자로서 경유는 그 자신이 경험한 손님들처럼 불편한 존재다. 그렇지 않았으면 현지는 왜 경유 몰래 이사를 한 것이겠으며 친구는 또 왜 문 앞에서 모질게 대하며 경유를 집에 들이려고 하지 않은 걸까. 진실은 저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사실을 달리하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갈수록 사는 게 힘들어” 경유에게 이 말은 소설가의 꿈을 포기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생존의 개념에 가깝다. 단편 소설을 완성해야 하는 유정에게는 마감일을 훌쩍 넘겼지만, 아직 첫 문장조차 쓰지 못해 머리를 쥐어뜯을 수밖에 없는 창작의 고통을 의미한다. 삶이 자기에게만 불공정하게 느껴진다면, 그래서 혼란하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질서의 양면성을 하나의 입장만 취해 바라본 까닭이다. 갈수록 사는 게 힘들다는 말은 대리운전 중 자살 시도하는 여성(김예은)을 구한 경유에게 경찰(정승길)이 전한 얘기 중 일부다. 경찰은 그러면서 “두 사람을 구했어요” 하자 경유는 그 여성이 만삭의 상태였다는 걸 알고 놀란다. 이의 설정에 관해 이광국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적으로 무능력한 경유가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요지의 답변을 했다. 나는 그에 더해 이 세상이 품고 있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질서에 관한 은유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이광국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서 취하고 있는 형식이 작동하는 원리다. 현실이거나 초현실이거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건 만삭의 여인처럼 이면 혹은 행간을 품고 있어서다. 호랑이의 동물원 탈출 소식을 전하면서도 이 사실을 가지고 경유의 차가운 현실을 은유하는 이 영화의 서술 방식은 바로 그런 세계의 질서를 내재한다. 창작이란 무엇인가, 어떤 면에서 <호랑이보다 차가운 겨울손님>은 창작의 동력을 잃은 경유가 다시금 어떻게 펜을 들어 소설을 쓰게 되는지를 따라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단편소설 작업이 지난한 유정도 이에 해당할 수 있겠다. 물론 경유와는 다른 형태다.) 경유가 글쓰기 작업을 한동안 포기하면서도 유일하게 버리지 못한 소설이 있다. 『노인과 바다』다. 『노인과 바다』는 노인 산티아고가 오랜 기다림 끝에 잡은 청새치를 끝내 뼈대만 남긴 채로 가져온다는 내용으로 유명하다. 소설의 노인처럼 경유도 현재 몸뚱이만 남은 정신적인 뼈대의 상태다. 여자 친구에게 버림받은 것은 차치하고, 유정이 실은 경유가 쓴 과거의 단편을 고쳐 쓸 목적으로 연락한 것을 알자 올라오는 화를 억누를 수가 없다. 짐도 챙기지 못하고 유정의 집에서 나와 추운 거리를 걷자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차원을 넘어 이제는 허무한 상태다. 누군가에게 삶의 허무는 인생의 끝을 의미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더는 떨어질 수 없는 상태가 반동이 되어 새로운 시작의 계기로 작용한다. 경유는 후자의 경우로, 결과는 허무일지라도 이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유의미한 삶의 재산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설을 다시 쓸 노트와 함께 구입한 담배에 불을 붙여 폐로 한 모금 빨아들인 연기는 차가운 현실처럼 쓰리다. 그래도 이를 숙성해 밖으로 내뿜을 때는 부연 연기일지라도 어떤 형태를 띤다는 점에서 창작을 향해 퍼지는 의지이기도 하다. 경유가 구한 여인은 경유 자신의 창작욕을 구원한 일종의 다른 판본이기도 하다. 창작을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살점 없는 세계의 질서에 구체적인 살을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경유에게 남은 건 실체와 마주할 용기다. 그리고 기어코 등장하는 탈출한 호랑이의 정체. 이것은 호랑이인가, 호랑이의 탈을 쓴 인간인가. 당신은 이 장면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나는 현실과 초현실을 하나로 만들어 보이지 않는 세상의 질서를 구체화한 이광국 감독의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그 이상의 무엇을 보았다. 뻔한 한국 대중영화의 울타리에서 탈출한 대담한 상상력을 말이다.
8년 동안 다니던 회사에서 ‘명퇴’당했다. 갈 곳이 없다. 결혼을 약속한 애인은 그 사실을 숨겼던 남자에게 결국 결별을 선언한다. 막막하다. 생계를 위해 낮에는 닭꼬치 만드는 공장에 다니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뛰지만, 밀려오는 자괴감에 점점 자신감을 잃어간다. 그때, 애인의 남동생이 위험한 제안을 해 온다. 자동차 절도를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는 것. 이 남자 민수는 그 이후 자신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윤계상 , 김규리 주연의 < 풍산개 >는 순제작비 2억여 원으로 완성했다. 그리고 여름 대작들의 틈바구니에서 71만 명을 동원했다. 아마도 김기덕 감독이 각본을 쓰고, 김기덕의 ‘제자’들이 연출한 영화 중 손에 꼽을 정도의 관객 수일 것이다. < 살인재능 >은 그 <풍산개>의 전재홍 감독이 4년 만에 만든 작품이다. 어쩌면 이천희 , 차수연 주연으로 그가 31살에 찍었다는 데뷔작 < 아름답다 >와 닮았을 거라 지레짐작할 수도 있겠다. 이번 역시 김범준 , 배정화 라는 신인 배우를 내세운 저예산 영화지만 단언컨대, 전혀 다르다. 전재홍 감독이 연출은 물론, 각본과 촬영, 음악까지 참여해서가 아니다. 그 사이 거대 예산 영화의 연출 제의를 받았다가 고배를 마셔야 했던 전재홍 감독은 “세 번째 영화를 만들고 나서야 ‘현실’이 보였다”고 말한 바 있다. 그 현실이란 한국사회의 어떤 풍경과 그 풍경을 목도한 전재홍 감독의 체험과 맞닿아 있다. 소위 ‘청년실업’과 비견되는 민수의 실직과 심리는 3년여 동안 영화 연출과 거리를 둬야 했던 감독의 경험들과 겹쳐져 있다고 한다. 청년실업뿐 아니다. 좁은 오피스텔에 거주하며 결혼, 취업, 성공을 고민하는 < 살인재능 >의 민수는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의 초상이다. 그러한 현실성을 기반으로 민수라는 인물의 비루한 일상과 심리를 쫓아가던 영화는 중반 이후 과감한 전환을 시도한다. 민수가 우연히 만난 옛 직장 상사를 충동적으로 죽이게 되면서, < 살인재능 >은 사이코 심리스릴러로 탈주하기 시작한다. 낯선 타인을 죽이는 것은 내 의지인가, 본능인가. 살인의 지속은 쾌락 때문인가, 생존(돈벌이)을 위함인가. 남동생의 “형,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라는 칭찬은 자동차 절도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민수는 그 말을 살인에 관한 재능으로 인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보인다’는 표현은 중요하다. 민수는 멈출 수 없을 뿐이다. 재능이라기보다 중독에 가깝다. 평범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애인과의 미래를 위해서도, 스스로의 자존감을 위해서도 살인은 계속돼야 한다. 여기서 멈추면 다시 닭 비린내에서, 새벽에 남의 차 운전대를 잡는 삶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무엇이 민수를 살인 ‘중독’으로 이끄는가. 흔한 심리스릴러를 거부하는 전재홍 감독은 민수를 살인으로 내모는 동인을 결국 사회적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결혼이라는 안정적인 조건의 상징인 애인과의 관계는 유형무형의 압박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을 죽이는 민수의 행위는 무한경쟁을 요구하는 이 사회의 가치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민수가 흔한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피해자가 남긴 아이의 사진을 발견하고 민수의 감정이 짐짓 흔들리는 장면에서, 우리는 전재홍 감독이 민수를 특별한 살인자가 아닌 보편의 억압 받는 젊은이로 은유하고 있음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결국 그의 범행을 알게 된 동생까지 죽이고, 애인이 이 모든 사실을 눈치채게 된 후, 민수는 수감된다. 민수는 애인에게 그간 모은 돈이 든 통장을 남긴다. 그 통장을 두 눈으로 확인한 애인의 뒷모습,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모를 뒷모습으로 끝나는 라스트 신은 꽤나 여운이 길다. 그 재능으로 남긴 유산이 보잘것없을 것이기에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