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자 게임
- 감독
- 이경순, 최하동하
- 제작년도
- 2001
자르고 붙이기(cut and paste)는 예술 분야에서 전통적인 제작 방식 중 하나이면서 동시에 그것은 오늘날 사회, 문화, 경제 전 분야에서 나타나는 우리 삶의 주요 양식이기도 하다. 영화의 몽타주, 예술의 콜라주, 대중문화의 리믹스는 모두 자르고 붙이기의 전략을 따라 하나의 대상을 본래의 맥락으로부터 떨어뜨리고 그것을 새로운 자리에 위치시켜 의미의 전복을 꾀한다. 한편, 자르고 붙이기는 동시대의 삶의 양식이기도 하다. 가속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공간은 잘게 쪼개지고 있으며, 그 속에서 우리의 신체 또한 하나의 사물처럼 조각난다. 예를 들어, 노동 현장은 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하는 파트타임 노동자로 채워지고, 주거 공간은 대부분 성냥갑처럼 만들어진 구조물을 켜켜이 쌓아 올려 완성된다. 만약 우리 삶이 자르고 붙이기를 하나의 양식으로 채택하여 따르고 있다면, 그런 삶은 분명 누더기처럼 기운 흔적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그런 불완전한 것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김효준 감독의 < 자르고 붙이기 >는 경제적으로 파산의 상태에 이른 한 남자의 모습을 그린다. 이 작품의 소재는 1990년대 후반의 IMF 시기와 2000년대 후반의 금융위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빚의 굴레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할 때 자주 쓰이던 신용불량자, 카드빚, 고시원과 같은 것들이다. 정호는 수산 시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그는 고시원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정호와 그의 어머니는 카드빚을 두고 심한 갈등을 빚는다. 어머니는 아들 몰래 신용카드를 발급받고 그것으로 빚을 갚으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정호는 빛 한 줄기 새어 들어오지 않지만 모든 소리는 새어 나가는 고시원 방에서 어머니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낸다. 정호와 어머니의 갈등은 우발적인 사고에 의한 비극으로 이어진다. 정호는 어머니가 숨기고 있던 카드를 빼앗아 그것을 가위로 자르려고 하고, 어머니는 그런 정호를 말리다가 손가락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신용카드를 놓고 분열된 모자의 관계는 두 동강이 난 신용카드와 상처 입은 어머니의 손가락을 통해서 형상화된다. 대다수의 비극적 이야기의 주인공이 스스로 비극을 초래하는 것처럼, 주인공 정호의 우발적인 행동이 그의 비극을 낳고 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크게 ‘자르기’에 해당하는 부분과 ‘붙이기’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구분된다. 신용카드를 자르다가 어머니의 손가락을 다치게 한 정호의 이야기가 있다면 그런 정호의 행동을 뒤집어 놓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구성된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정호의 어머니가 손가락을 다쳐 응급실에서 간단한 봉합 수술을 받는 이야기와 어머니의 치료비를 내기 위해 자신이 가위로 잘랐던 신용카드를 접착용 셀로판테이프로 붙이는 이야기는 구조적으로 대구를 이룬다. 잘린 사물이 다시 붙고, 잘린 신체가 다시 붙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전반부의 위기는 일시적으로 해소된다. 흥미로운 것은 ‘붙이기’에 해당하는 이 영화 후반부의 내용이 갈등과 위기의 완벽한 해소가 아닌 비극의 심화를 의미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머니의 손가락은 수술을 끝낸 것이지 치료가 끝난 것이 아니며, 셀로판테이프로 붙인 신용카드는 정호가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용카드라는 소재를 중심에 놓고 보자면, 정호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자신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채무자의 신세로부터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가 부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감행했던 행동이 그를 다시 부채의 늪으로 빠뜨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르고 붙이기>는 빚이 또 다른 빚을 낳고, 비극이 또 다른 비극을 낳는 아이러니를 통해서 이야기를 완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 비극적 이야기의 주인공인 정호의 행동, 즉 그가 무언가를 자르고 붙이기를 행할 때 그의 손은 두려움에 떨고 있음에 주목하자. 그의 손은 가위를 들고 신용카드를 자를 때 또는 셀로판테이프로 잘린 카드를 다시 붙일 때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린다. 물론 각각의 상황과 의미는 사뭇 다르다. 신용카드를 자를 때 정호는 분노, 짜증, 흥분 속에서 반대로 신용카드를 붙일 때 정호는 불안, 초조, 긴장 속에서 주체할 수 없이 떨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런 정호의 신체적 떨림은 한편으로는 해체된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겪는 고통으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해체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고통으로 볼 여지가 있다. 정확한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정호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큰 빚을 남기고 떠난 것으로 보인다. 정호는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빚과 그의 부재로 인해 고통받는 인물인 동시에 어머니, 아내, 딸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으로 인해 고통받는 인물이다. 정호가 겪고 있는 이 이중의 고통은 고시원 고유의 독특한 건축적 공간 구성에 따라서 시각적으로 형상화된다. 이 영화의 주요 배경으로 쓰인 고시원을 하나의 소우주로 본다면, 그것은 전체를 작은 부분들로 자르고 이어붙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건축적 공간에서 정호는 아버지로부터 자신에게로 대물림되는 가족의 해체를 겪으면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통받는 것이다. 영화는 정호에게 가혹한 시련을 주거나 반대로 그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단순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끝맺지 않는다. 정호가 어머니의 손을 다치게 만든 그날은 하필 그의 딸의 생일이었다. 어머니를 걱정하면서 딸의 생일을 축하해야 하는 그 기묘한 상황은 앞으로 정호가 자기 자신은 물론 자기 자신의 가족을 위해 어떤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인지를 되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정호의 미래에 대해서 그 어떤 판단도 그리고 그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는다. 대신 정호의 삶이 누군가의 무차별한 가위질로 난도질당하여 찢김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면서 이제 정호에게 과거를 박차고 일어서야 할 시간이 도래했다는 하나의 신호를 준다. 열린 결말처럼 보이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정호는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면서 연신 헛구역질을 한다. 만약 정호의 헛구역질이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는 구토의 전조라고 한다면, 그것은 과거를 떨쳐 낼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의 제스처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경제적 파산이 초래한 찢김의 고통을 다룬 이 작품은 어딘가에서 비슷한 경험을 할지도 모를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극약처방이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관련글) 1. 우리는 달팽이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 <달팽이>(2020), 2022.04.21. 2. 나와 유령이 함께 하는 시간 - <탈날탈>(2018), 2022.05.31. 3. 타인의 그림자를 집어삼키는 법 - <햄스터 죽이기>(2021), 2022.06.29. 4. 얼굴 없는 영화, 등으로 말하는 영화 - <말투>(2020), 2022.07.27. 5. 사랑의 약속으로 하나가 되는 세계 - <우리의 낮과 밤>(2020), 2022.08.25. 6. 이 몸체의 주인을 찾습니다 - <매미>(2021), 2022.09.23. 7. 이것은 감자인가 아니면 고구마인가? - <감자>(2018), 2022.11.08. 8. 일상을 적시는 시간들 - <햇볕을 볼 시간>(2022), 2022.11.21. 9. 찢김의 고통을 극복할 날을 기다리며 - <자르고 붙이기>(2022), 2022.12.06.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종종 예기치 못한 이야기들을 접할 때가 있다. 제주 4•3이 그러했다. “4•3이 뭐예요?” “아니 그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약 10년 전 해녀를 주제로 졸업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제주에 머물 동안 마을 주민들과 나누었던 대화였다. 중요한 사건을 몰랐다는 충격과 죄책감 때문인지 마음속 숙제로 남았고, ‘10년 안에는 만들어야지…’ 다짐은 했지만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아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던 사건. 세월이 흘러 차기작을 만들기 위해 다시 제주를 찾은 나는 우연히 4•3평화기념관 2층에서 전시되었던 생존자들이 그린 그림을 만났고, 2019년이 되어서야 미뤄온 숙제를 시작했다. 70년이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역사적으로 규명하지 못한 제주 4•3과 당시 기억에서 자라지 않은 듯한 생존자들의 그림은 어딘가 닮아있었다. 엄마의 치마폭에 둘러싸여 총을 맞던 순간을 그린 생존자의 그림에 압도되었고, 고민했던 이야기의 전달 방법을 찾은 듯 했다. 방법을 찾았다면 제작을 위한 자원 확보 또한 절실했다. 다큐 애니(Animated documentary) 형식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리서치 작업에 필요한 숙박과 교통 및 진행비, 애니메이션 본 제작에 필요한 제작비 확보가 관건이었다. 그래서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서 지원하는 [SBA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지원]을 받았고, 이후 덴마크에서 진행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한국, 일본, 덴마크 세 국가의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는 [NINOKO - Universe Accelerator]에서 다큐 애니 제작 전문 플랫폼인 [ANIDOX]의 자문을 받아 다큐 애니 단편을 개발해 나갔다. 처음엔 다년간 다큐 애니 작업을 해오며, 표현 방법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 애니메이션 연출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그래서 4•3평화기념관에서 본 전시회의 작가들에게 그림과 인터뷰 내용에 대한 사용 허락을 구했지만, 아쉽게도 불발되었고 인터뷰이부터 새로 찾아 나서야 했다. 그러다 그해 광주에서 열린 국가폭력 피해 당사자들 모임에서 만난 제주 4•3 유족회 처장님이 떠올랐고, 도움을 요청 드린 후 증언과 그림을 그릴 수 있을만한 13명의 생존자를 차례로 소개받을 수 있었다. 혼자서 처음부터 진행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많았고, 처장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구술채록 과정에선 기존에 생존자들과 그림 작업을 했던 작가들로부터 자문을 받아, 몇 회 정도 그림을 그리고 각각의 회차에서 어떤 방식으로 증언과 그림을 그려나가는지 알 수 있었다. 이후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트라우마 연구자로부터는 트라우마의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인터뷰를 진행할 때 인터뷰어가 주의해야 하는 사항에 대해 자문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약 3회에서 6회에 걸친 인터뷰와 구술 채록 과정을 진행하였다. 처음 기획했던 것과는 달리 작업의 성격이 변했기 때문에, 앞으로 무엇에 중점을 두고 연출해 나가느냐가 관건이었다. 다큐 애니 작업은 자료조사에서부터 인터뷰 종료 혹은 애니메이션 제작단계까지 이런 가변적인 상황이 항상 수반되는, 일반적인 극 애니메이션 연출과 다른 특징이 있다.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생존자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인터뷰와 그림 그리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2차 피해가 일어나지 않게끔, 나름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인터뷰 전엔 작업의 취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인터뷰가 끝난 후엔 악몽은 꾸지 않는지 등을 점검해나가며, 증언과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있다고 판단되는 생존자들 위주로 추가적인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다 보니 인터뷰를 중단한 경우도 있었다. 처음엔 보호자도 동의하고 생존자도 괜찮다고 얘기하셨지만, 어째서인지 본인이 목격한 사건의 핵심을 놔두고 빙빙 에둘러 얘기하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입은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만 물어봐 주세요.”라고 얘기하는 눈… "삼춘, 괜찮다고 하셨지만 더 얘기 안 하시는 게 나을 것 같다. 인사만 드리러 다시 오겠다.”라고 얘기 드린 후 인터뷰를 종료했다. 이런 과정을 겪다 보니, 처음엔 미술치료의 일환으로 접근했지만, 몇 번의 그림 그리는 과정을 통해 생존자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는 나의 섣부른 판단이고 오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 상처를 더 헤집지 않게끔 주의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몫이었다. 인터뷰를 끝냈다. 생존자가 겪은 4•3의 전후 상황을 모두 듣고 그림으로 남겼지만, 시나리오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선별해야 했다. 14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 맞게 당시의 피해 상황에만 집중하고, 특히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로 했다. 군경 토벌대와 무장대에 의한 피해 또한 실제와 비슷한 비율로 증언을 구성했다. 증언과 그림에 맞춰 각각 다른 재료와 기법을 쓰기로 했고, 애니메이션 연출을 할 땐 표현 가능한 폭력의 수위에 대해 특히 더 고민했다. 학생들의 교육 자료로써 활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작업이었기에, 너무 노골적으로 당시의 상황을 폭력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지양했다. 오히려 사건으로 인해 잃어버린 유년 시절의 추억이, 영상 안에서만큼은 펼쳐질 수 있게끔 연출하고자 했다. 얘기로만 전해 들었던 “트라우마의 전이과정” 또한 자연스레 일어났다. 일주일 내내 군인들만 그렸을 때 꿈을 꾼 적이 있다. 꿈속에서 난 당시 소녀였던 생존자가 되어 기관총과 군인을 피해 학교 운동장에서 이리저리 사람들과 휩쓸려 다니다,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한 채 삶을 체념하는 악몽이었다. 단적인 예이지만, 내가 왜 이런 작업을 하는지 보여주는 일화 같았다. 폭력과 트라우마는 여러 세대에 걸쳐 대물림된다. 스스로 왜 이런 주제에 천착하는지 몰라 자문하다 보니, 가깝게는 가족에서 시작해 그동안 마주쳤던 국가폭력으로 인해 삶이 달라진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트라우마의 전이는 기억의 전승 과정에서 끊어낼 수 있는가? 지금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단편 작업에 필요한 구술 채록을 할 때, 생존자들은 대개 3-6장의 그림을 그리면 많이 그리는 편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자발적으로 50장이 넘는 그림을 그린 생존자가 있었는데,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더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더 나아가, 나 또한 폭력의 트라우마를 다루는 작업이라 악몽도 꾸곤 했지만, 생존자와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오히려 위로와 힘을 얻는 과정이 있었다. 아직 내가 경험한 이것이 무엇이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 현재는 생존자와 함께 겪은 이 연대의 과정을 장편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있다. 제주 4•3 74주년 추념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며칠 후엔 현재 장편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생존자와 함께 온라인으로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아이들이 생존자에게 묻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생존자는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싶을까? 아직 발화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한국사회에는 유난히 중년 남자들의 기를 살리자는 식의, 이들을 달래는 분위기가 있다. 캠페인 같은 이 구호는 가장 사적인 집단, 집안에서 시작된다. 결혼 전, 친정엄마는 ‘너가 박 서방한테 잘해야 한다, 남자는 인정과 칭찬을 먹고 산다’고 조언했다. 심심치 않게는 ‘아들 하나 키우는 기분’으로 살아야 가정이 평화롭다며 훈수를 두는 이들도 있었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빠들을 보면서 할머니들-현실은 황혼육아로 가장 고생하고 있음에도–은 ‘요즘 남자들 참 딱 하다’고 혀를 끌끌 찼다. ‘시대를 잘못 타고 난 요즘 남자’라는 말은 다시 말해, 연장자 남성이 존중받는 시대는 지났다고 고백하면서도 마지못해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창근( 김인문 )은 625전쟁 당시 어머니와 누이를 북에 남겨두고 아버지와 단둘이 남쪽으로 피난 왔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김일성 장군가를 부르며 북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해 극도로 집착하지만, 함께 내려온 아버지와는 그의 부고도 몰랐을 만큼 관계가 온전치 않다. 피를 쏟아내며 괴로워할 때도 그의 곁을 지키는 사람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며느리 호정(문소리)뿐, 아내나 아들은 외면하며 노망난 늙은이 취급을 한다. 창근의 가족은 실패했다. 그리고 그 실패 모형은 대물림 되었다. 아들 영작( 황정민 )은 변호사라는 번듯한 직업과 화목해 보이는 가정이 있지만, 깊은 관계의 애인 연( 백정림 )이 있다. 그는 정부도 마다하는 민간인 학살 사건을 조사하며 돈보다 정의를 위해 핏대를 세우지만, 집에서는 호정과 한 침대에 누워있어도 공허한 몸으로 등을 돌릴 뿐이다. 영작이 “짐승 같은 시간은 관두고 제발 사람답게 자존심 좀 지켜 가면서 살자”고 유가족들에게 연설하지만 실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붕괴된 가족 안에 무너진 가장이 있다. 영화<바람난 가족>에 등장하는 남자들을 보면 가장의 역할은 물론, 어른으로서도 성숙하지 못하다. 창근을 요양원에서 모셔와 약주를 따르는 것도 호정이고, 창근이 피를 토하자 영작은 ‘호정아’를 외치며 자리를 피하기 바쁘다. 아이를 잃고 난 뒤에도 영작은 애인에게 쏟아내서 위로받으려 하지만, 호정은 산을 오르며 홀로 슬픔을 쏟아낸다. 우편집배원은 대책 없이 아이만 많은 무능력한 가장으로 그려지고, 소통이 안 되는 지운( 봉태규 )의 부자지간은 남보다도 못하다. 이들은 나름대로 가장의 역할을 해내려고 애를 썼겠지만, 현실은 권위 있는 존경받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니다. 연이는 대놓고 “남자들은 다 미성숙해. 그냥 다 애’라고 직격탄을 날린다. 상습적으로 절도를 일삼는 가정주부를 변호하던 영작에게 판사는 묻는다. “가정은 어떤가요?” 영작은 “남편은 회계사인데요. 가정적으로 아무 문제없는 중산층입니다.”라고 자신있게 답한다. 그러나 절도범 주부는 고개를 푹 숙인다. 이 대조 속에서 사회적 위치나 경제적인 능력을 갖춘 남자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가정은 완벽하게 ‘정상적’일 것이라는 우리들의 편견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가족을 만든 것을 엿볼 수 있다. 영화 내내 ‘니들이 광국이를 알아? 주니어 웰터급 5위 광국이가 내 처남이야’라는 우편집배원의 외침은 처절하고도 처량하게 들린다. 챔피언도 아닌, 5위지만. 그리고 내가 아닌 처남이지만. 인정받지 못한 가부장은 그렇게 처남이라도 붙들고 체면을 세워야 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아버지가 가족의 권력자가 된 역사는 복잡하지만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들어 부계 중심의 가족은 조금씩 사라지고 가족의 형태나 개념 역시 이전보다 확대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거 전통적 가족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한 뿌리, 핏줄에 집착하며 시대에 맞지 않는 속도를 낼 때가 있다. 그 속도에 밀려 가족 간의 애정은 바싹 메마르고 빈껍데기만 남아 단 한 번의 자극에도 바스락 부서진다. “엄마 난 입양된 거 몰랐을 때가 더 좋았던 거 같애. 왜 얘기해 줬어? 애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놀릴 때마다 난 자꾸 엄마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어.” 수인(장준영)이는 영작과 호정이가 입양한 아들로 혈연으로 맺어진 전형적인 의미의 가족과는 거리가 멀다. 수인은 자신이 입양된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자꾸 ‘엄마 생각’이 나는데 여기서 엄마는 호정을 말하는 건지, 수인을 낳은 엄마를 말하는 건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수인은 가슴으로 낳은 엄마를 따라 가족의 일원으로 다시 자리를 잡는데, 무엇이 진짜 가족인지 헤매고 있는 다른 남자들과 차이를 느끼게 한다. 겨우 욱여넣은 가장의 자리와 관계를 중심으로 맺어진 가족 사이에서 휘청거리던 영작과 호정은 결국 수인의 죽음으로 무너지고 만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엉망이 된 건가. 처음에는 모든 잘못을 다 네 아버지한테 뒤집어씌웠지. 나는 요즘에야 진짜 내가 어른이 된 기분이야. 내 인생 내가 책임지는. 인생은 솔직하게 살아야 되는 거더라. 그렇지 않으면 그게 사는 게 아니야. 하루를 살아도 사는 거같이 살아야지. 나는 이런 내가 좋아.” 영화 내내 가족들은 한 공간에 함께 있으면서도 시선은 서로 엇갈리고 눈을 마주치지 않는데, 창근의 장례식 이후 한 이불에 누워 얼굴을 마주한다. 이 한 컷으로 이들이 한때는 좋았던 가족이었음을 상기시킨다. 병한( 윤여정 )은 15년 만에 섹스를 하고 처음으로 오르가즘도 느끼며 산다고 고백하며 40년간 남보다도 못했던 가족을 벗어나 이제 진짜 삶을 살겠다 선언한다. 그리고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솔직하게 살자고 다독인다. 2003년 작 < 바람난 가족 >( 임상수 , 2003)은 시어머니, 아들, 며느리 모두 바람이 난다는 다소 자극적인 내용을 담으며, < 처녀들의 저녁식사 >(1998), < 눈물 >(2000)을 잇는 임상수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이다. 이미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여자들의 솔직한 성 담론으로 한 차례 센세이셔널을 일으켰던 만큼 <바람난 가족> 역시 또 한 번 여자들의 ‘발칙한’ 영화라 홍보되었다. 막상 영화가 개봉되자 가볍게 배우들의 몸 감상에 나섰던 관객들이 어쩐지 찝찝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섰고, 예상대로 호불호가 분명히 나뉘었다. 영화 속 가족들의 모습이 판타지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을 담고 있었고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을 가족 콤플렉스를 미화 없이 직설적으로 늘어 논 까닭일 것이다. 가장들이 기가 죽어서 <바람난 가족>처럼 불량 가족이 되는 건 아닐 터. 결국은 서로가 완벽한 타인임을 인정하고 병한의 말처럼 ‘내 인생 내가 책임지는’ 어른으로 살아야 가족이 된다. 그리고 의미가 없는 낭만일지라도 결국은 사랑이 기본이고 답이다. 뒷머리를 멋쩍게 긁으며 쭈뼛대던 영작을 아웃시켰던 호정은 아마도 지금쯤 15살 아이를 키우며 기가 센 가장이 되어 즐거운 나의 집을 만들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