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격
- 감독
- 임권택
- 제작년도
- 1973
- 출연
- 신성일, 진도희, 윤양하, 채영희, 독고성, 안길원, 장혁, 최성호, 박기택, 추석양, 이강조, 황백, 박동룡, 김영인, 조춘, 이기영, 최성규, 박종설, 도군, 배수천, 김경호
나의 애도의 방식. 먼저 작별인사를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여기 없는 이름. 서정민 촬영감독은 한국영화사에서 빛나는 이름 중의 한 분이다. 그건 누구라도 인정할 것이다. 촬영이라는 자리. 연출의 곁. 임권택 에게 정일성 이 따라오는 것처럼 서정민을 이야기할 때는 이만희가 따라왔다. 하지만 종종 현장에서 그보다 더 중심에 있는 자리. 일화에서 시작하겠다. 나는 고인을 현장에서 단 한 번 뵈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 여고괴담 > 현장을 견학하게 되었다. 먼저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1998년은 어떤 단절이 이어지던 시간이었다. 전혀 준비되지 않았지만 갑자기 새로운 영화들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어떤 미학적 연대도 하지 않았으며(이를테면 네오 리얼리즘), 그렇다고 같은 영화사에서 자본의 일시적인 변덕의 힘으로 나타난 것도 아니며(이를테면 쇼오치쿠 누벨바그), 어떤 정치적 입장도 공유하지 않았으며(이를테면 체코 누벨바그), 같은 시대의 공기를 공감하고 있지도 않았다. (이를테면 파리의 누벨바그) 그냥 난데없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오던 충무로에 갑자기 새로운 영화가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전통을 따랐고, 누군가는 희미하게 연결 지었고, 누군가는 완전히 외면했다. 1996년 5월에 홍상수 의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 개봉하여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고, 그해 11월에 김기덕 의 < 악어 >가 소리소문 없이 개봉한 다음 사라졌다. 1997년 이창동 이 < 초록물고기 >를 찍었다. 그리고 송능한 이 < 넘버 3 >를 찍었다. 정반대의 두 영화. 그 이듬 해 1998년, 허진호 의 < 8월의 크리스마스 >와 이광모 의 < 아름다운 시절 >이 각자의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같은 해 봄에 김지운 이 < 조용한 가족 >을, 가을에는 임상수 가 < 처녀들의 저녁식사 >를 찍었다. 이 시기를 소개하면서 서방세계에서는 포스트 뉴 ‘코리언’ 웨이브라고 부른다. (첫 번째 물결은 1989년 장선우 , 이명세 , 박광수 가 나타났을 때이다. 그런 다음 이 영화들을 앞선 영화들에서 분리해냈다) 박기형 은 충무로 도제제도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고 서울단편영화제에서 (거의 중편에 가까운) < 과대망상 >으로 주목을 모은 다음 곧장 첫 번째 장편영화 <여고괴담>을 만들었다. 지금은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그때는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그는 다른 ‘신인’ 감독들과 달리 장르영화로 곧장 달려갔다. 나는 새로운 작가는 새로운 영화를 발명하면서 발견되지만 영화산업 전체가 새로워질 때는 새로운 장르영화가 나타날 때라는 로빈 우드의 문장에 밑줄을 그은 세대이다. <여고괴담>은 박기형의 야심과 상관없이 앞으로 십 년의 한국영화 산업을 결판 지을 거라는 생각을 그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박기형은 이 새로운 물결에 합류하였다. 현장을 보러 간 날은 마지막 클라이맥스 장면을 위해 밤샘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 영화의 촬영이 서정민이었다. 그때 서정민은 이미 148편의 영화를 찍었고 현장에서 모두가 어려워하는 ‘촬영감독님’이었다. 149번째 영화라는 표현을 한번 상상해주기 바란다. 1961년에 첫 영화를 찍은 촬영감독과 어떤 도제제도의 수업 없이 1998년에 첫 영화를 찍고 있는 감독. 모두들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배우들은 이미연을 제외하고 그때 모두 신인이었고 박기형은 첫 번째 장편영화를 찍는 상황에서 곤혹스러워하는 게 눈에 보였다. 현장에 스태프들이 너무 많았고 콘티는 정확하지 않았고 (아마도 중간에 무언가 문제가 생겨서 변화가 생겼음이 틀림없고) 게다가 영화촬영을 하면 아침이 일찍 찾아오는 법이다. 온 사방이 교실 창문이었고 필름으로 촬영하던 그때는 지금처럼 색 보정 작업이 많은 부분을 감당할 수 없었다. 박기형은 완전히 지친 상태였고 새벽까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조감독을 불러 몇 장면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 그때 카메라 옆에 조용히 있던 서정민 촬영감독이 다가와서 화가 난 목소리로 박기형을 꾸짖었다. “박기형, 당신 으악새 감독이야? 이거 데뷔작이잖아. 첫 번째 영화 찍는 감독이 이러면 안 돼. 이 바닥에서 한번 호구 잡히면 그냥 끌려다니다가 인생 종 치는 거야. 창문에 암바(暗部處理) 쳐 줄 테니까 당신이 원래 하고 싶었던 거 그냥 해. 그래도 돼, 데뷔감독은 그래도 돼” 시간이 오래되어서 기억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나는 이 사람이 멋있는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서정민 촬영감독 물론 서정민 의 대표작들은 1960년대에 이만희 와의 작업이다. 그 중에는 < 만추 >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 다음 1980년대에는 ‘돌아온’ 이장호 와 < 바람 불어 좋은 날 >을 시작으로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영화들을 찍었다. 서정민의 마지막 파트너는 김기덕 이었다. < 야생동물보호구역 > < 파란 대문 >과 < 수취인불명 >을 작업했고, 김기덕은 가끔 내게 서정민 ‘촬영감독님’과의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사석임에도 최대한의 존경을 표하는 태도를 취한 다음 기꺼이 그와 함께 작업한 현장에서 “영화를 배웠다”는 표현을 썼다. 임권택 과는 많은 작업을 하지는 않았지만 50편의 습작을 찍고 난 다음 그 자신의 ‘첫 번째’ 연출이라고 부른 < 잡초 >를 서정민 이 찍었다. 아마도 임권택을 임권택답게 만든 그 순간. 거의 필사적인 도약의 결정. 차라리 절망으로 인한 결심이라고 불러야 그 자리. 그때 임권택은 이름을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수많은 촬영감독들과 영화를 찍었다. 그 많은 이름 중에서 임권택은 <잡초>를 위해서 서정민을 선택했다. 이 영화는 임권택이 제작한 처음이자 유일한 영화이다. 임권택과 서정민이 함께 작업한 영화는 모두 14편이다. 그러므로 160편에 달하는 촬영목록을 생각하면 아마도 그저 잠시 머문 것 같다. 처음 작업한 영화는 1970년 < 애꾸눈 박 >이었고, 순서대로 이야기하면 1971년에는 <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 < 둘째 어머니 > < 명동 삼국지 >, 그리고 1972년에는 < 돌아온 자와 떠나야 할 자 > < 명동잔혹사 >, 1973년에는 <잡초> < 대추격 > < 증언 >을 찍었다. 그런 다음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1975) < 맨발의 눈길 > < 낙동강은 흐르는가 >(1976)를 찍었다. 그 사이에 < 왕십리 >와 < 상록수 > < 족보 >를 이석기 와 찍었다. 그저 우연의 일치겠지만 이만희 는 서정민과 헤어진 다음 이석기와 작업을 했다. 연출과 촬영 사이의 각자의 모색. 끊임없는 실현. 이미지 사이에서의 미세한 차이들. 이 시기에 임권택은 정일성 을 만나 < 신궁 >(1979)을 찍었고, 1980년에 < 복부인 >을 서정민과 찍었다. 그런 다음 1984년에 <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를 찍은 게 마지막이다. 서정민은 다른 감독들과 그 이후에도 계속 작업했고 그 명단에는 김기영도 포함되어 있다. 임권택도 물론 이석기, 구중모 , 그리고 정일성과 다음 영화를 찍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거기서 끝났다. 영화가 무언가 더 이상 요구하지 않은 것일까. 나는 그것이 안타깝다. 왜냐하면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는 임권택의 모든 영화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영화 중의 한 편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의 새로운 예술적인 우정이 막 시작하려는 순간 멈춘 것만 같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우정을 나누려는 준비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법이다. <맨발의 눈길>의 혜선(左), <잡초>의 분례(右) 두 사람의 인연을 이야기하면서 < 맨발의 눈길 >을 선택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임권택 감독께서 단 한 번도 긍정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 잡초 >를 한 번 더 찍은 것이라고 거의 단정 내리고 싶어진다. 다만 이렇게는 약간 망설인 끝에 덧붙였다. “그 영화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잡초>를 쓴 나한봉 씨 밑에서 오랫동안 수업을 쌓은 박찬성 씨에요, 아마 그런 영향이 있겠지요” 그런데 그 원작을 찍은 사람이 그걸 몰라볼 수가 있을까. 예술에서 한 번 더 한다는 것. 임권택의 다시 한 번. <잡초>는 분례가 차례로 네 명의 남자를 만나면서 그 세월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맨발의 눈길>은 고아원에서 나온 혜선이 세 명의 남자를 만나면서 그 세월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두 영화의 이야기는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이미 어디선가 두 점의 <양산을 든 여인>을 예로 들면서 임권택이 모네의 방법을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임권택은 무언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그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실패를 응시하는 것. 하지만 그 실패가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이때 놓쳐서 안 되는 것은 임권택이 반복할 때 그 과정에서 무엇을 훔쳐내고 싶어 하는지를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잡초>를 볼 수 없다. 사라진 자리. 그리고 임권택은 그 자리에 다시 왔다. 도대체 다시 온 것은 무엇일까. 임권택은 거기서 무엇을 다시 한 번 ‘재연’하고 싶었던 것일까. 거기에 어떤 보물이 있었던 것일까. 이때 임권택은 <맨발의 눈길>을 찍으면서 <잡초>를 찍은 서정민 을 다시 불렀다. 그 해에 임권택은 서정민과 이석기 두 촬영감독과 번갈아 작업했다. 그저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서로의 일정이 맞았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서정민의 쪽에서 바라보면 좀 더 기괴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서정민은 이 해에 6편의 영화를 찍었고 두 편을 임권택과 작업했다. 이때 두 편은 <맨발의 눈길>과 < 낙동강은 흐르는가 >이다. 다시 설명하겠지만 <낙동강은 흐르는가>는 마치 < 증언 >에 흩어져있는 수많은 단편 중의 하나를 다시 한 번 확장시켜놓은 것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증언>은 (특수촬영을 장석준이 하고) 서정민이 찍었다. 1976년에 임권택은 이미 해본 것을 다시 한 번 해보는 것만 같은 반복 안에서 그 무언가를 확장시켜놓은 다음 마치 이미 해본 자신을 바라보는 것만 같은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서정민과 다시 한 번 그걸 해보고 있다. 그 안에서 무엇이 활동하는 것일까. 거기서 무엇을 수정하려고 하는 것일까. 아니, 차라리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껴보려는 것일까. 이 우연의 일치는 무언가 자꾸만 이 과정을 능동적인 선택이라고 해석하고 싶게 유혹한다. 두 번째 이유는 다소 내속적인 성질에 관한 설명이다. 반복은 여기서 기이하게도 재귀의 순환운동 안으로 들어서자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 맨발의 눈길 >을 처음 보면 무언가 영화의 기호들이 대부분 부서졌다는 인상을 준다. 단지 실패했다고 설명하면 쉽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어떤 순간들이 이 영화에 있다. 그렇다고 일부러 그것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어떤 자리에서 영화가 멈춰 서 있다. 그냥 단순하게 말하면 기괴하리만큼 불만족스러운 히스테리에 가득 차 보인다. 임권택 은 단 한 번도 단편영화를 찍은 적이 없다. 그건 그의 세대들이 모두 그러하다. 다만 옴니버스의 형태로 다른 감독들과 함께 만들기는 했다. 그래서 이미 <맨발의 눈길> 이전에 < 명동잔혹사 >를 변장호 , 최인현 과 함께 찍었다. 하지만 홍상수 의 < 첩첩산중 >(< 디지털 삼인삼색 >의 한 편), 박찬욱 의 < 심판 > <찬드라의 경우>(< 여섯 개의 시선 > 중의 한편), <컷 Cut!>(< 쓰리 몬스터 >의 한 편) < 파란만장 > < 청출어람 >, 봉준호 의 < 인플루엔자 >(< 디지털 삼인삼색 >의 한 편)처럼 적극적으로 작업하지 않았다. 하지만 <맨발의 눈길>은 혜선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세 명의 남자와의 우여곡절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세 개의 이야기, 세 편의 영화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이다. 임권택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렇게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 그는 한 편의 영화 안의 고유한 리듬, 그 안의 균형감각, 그 세계의 일관성,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감흥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적어도 그런 의미에서) 고전적인 연출자이다. 심지어 실패할 때조차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거기서 무너지면 그건 더 이상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마치 예외의 기준을 세워둔 것처럼 그냥 밀고 나아간다. 심지어 어떤 곤궁처럼 여겨지는 데도 상관없다는 것만 같은 어떤 태도가 있다. 틀림없이 이 영화의 어느 순간에는 재앙의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차라리 어떤 균형을 갖추고 그 위험을 빠져나가는 것이 더 참을 수 없다는 최악의 방식에 이끌리고 있다. 말하자면 여기서는 매번의 영화가 하나의 완성을 이루어야 한다는 임권택의 불평을 쫓아내는 임권택이 있는 것만 같다. 세 조각이 나버린 영화, 매번 다시 시작하는 것만 같은 이야기. 서로 완전히 다른 리듬. 혜선을 연기하는 주연 이인옥 만이 가까스로 하나로 연결되는 세 개의 단편. 여기서는 마치 이 영화를 자신의 영화 목록 안에서 예외의 자리에 두어야만 한다는 대립 같은 것이 있다. 임권택의 영화를 부주의하게 다루는 대부분의 비평의 공통점은 이 대립을 간과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상투적인 공식. 임권택은 상투적인 상업영화에서 시작했으며, 새마을 영화와 반공영화를 만든 어두운 시기를 거친 다음 < 만다라 >를 전환점으로 하여 자기완성을 향해서 나아가고, 운운, 이라는 식의 전형적인 도식화. 물론 이 설명이 거짓은 아니지만 동시에 너무 많은 과정을 간과하고 있다. 나는 반대로 임권택의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대립의 과정을 발견한다. 무언가 가까이 다가간 다음 혹시 그것이 오류가 아니었을까, 라는 질문만큼 뒤로 물러난다. 여기에는 예술에서 오래된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자유로운 선택 안에는 이미 강제된 선택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 이때 서정민 은 여기서 무엇을 보았을까. 다시 그 자리에 왔는데 이미 한 것을 스스로 부수고 있는 것을 바라볼 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초대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임권택은 이 사이에 < 왕십리 >와 < 족보 >를 만들었다. 두 영화의 조건이 특별하게 좋은 것도 아니었으며, 임권택이 하려고만 했다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겠다. 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었다. <맨발의 눈길>은 그것을 하지 않은 영화이다. 나는 임권택을 위하여 일부러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맨발의 눈길>이 걸작이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실패작이다. 하지만 이 실패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완전히 내부적인 폭발로 인한 것이라는 점이다. <맨발의 눈길>은 새마을영화도 아니고 반공영화도 아니다. 그렇다고 문예영화도 아니다. 이 영화는 우수영화의 요건과 아무 상관 없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해 우수영화에 선정되었다) ‘고무신 부대를 불러오는’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와도 거리가 멀고, ‘노골적인 노출’을 염두에 둔 장면도 없다. (< 별들의 고향 >에서 시작해서 < 바보들의 행진 >에서 정점에 오른) 대학생 관객들을 향한 ‘영상시대’ 영화들과 합류할 생각도 없다. 말하자면 임권택에게 <맨발의 눈길>은 무언가 필사적인 이행의 과정이라는 자리에 있는 매개자인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어쩌면 불가피한 교차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궁극적으로 실패를 목표로 한 영화라고 부르고 싶은 기획. 다소 위험을 무릎 쓰고 말하고 싶다. 세 번의 가정. 어쩌면 임권택은 더 밀고 나아가기 위해서 < 잡초 >를 부숴버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미 부숴버릴 수 없는 <잡초>를 부정하기 위하여 <맨발의 눈길>이 필요해진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이 출현의 재귀성이 가리키는 것은 임권택 자신이 스스로 그때의 약점을 고스란히 노출시켜 보인 다음 그걸 실패로 간주하는 방법을 채택한 것은 아닐까. 고아원을 나서는 혜선 나는 이 괴이한 영화를 한 번 본 다음 망설이지 않고 즉시 다시 보기 시작했다. 임권택 은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찍었고 나는 같은 영화를 (그 자리에서) 두 번 보았다. 첫 쇼트는 ‘日新院’이라는 팻말을 보여준다. 한 소녀가 고아원을 나서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그녀와 함께 여기서 자란 것 같은 아이들과 원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배웅을 하면서 손을 흔들고 있지만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너무나 기쁜 듯, 마치 이곳을 탈출하기라도 하듯, 어쩌면 감옥을 떠나는 사람처럼, 그렇게 밝은 미소로 가방 하나를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선다. 아마도 내내 거기서 자랐을 텐데 그렇게 한 치의 미련도 없을 수 있을까. 마치 뒤를 돌아보기라도 하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라도 할 것처럼 오직 앞만 보고 간다. 영화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잘 알기라도 하듯 뒤에서 손을 흔드는 아이들과 원장에서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그녀는 마침 기다렸다는 듯 도착한 버스를 타고 떠난다. 그런 다음에야 안심을 하듯이 맨 뒷자리에 잠시 뒤를 돌아보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다. 그렇게 떠나가는 그녀는 아마도 어제, 혹은 며칠 전, 아니면 방금 전 들었을 원장님의 목소리를(voice_over_narration) 듣는다. 이 장면이 아무렇지도 않게 슬그머니 지나가고 있지만 수상쩍은 것은 명백히 원장님의 목소리이며, 그 목소리는 떠나가는 혜선의 마음속에서 다시 불러낸 것인데, 그녀를 떠나보내는 사람들 틈에 서 있는 원장님에게 혜선도, 영화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이한 효과가 일어나는데 마치 원장님의 목소리는 고아원 그 자체의 목소리가 되어 그녀의 운명을 예언하는 신탁의 소리처럼 들린다. 좀 더 간단한 설명. 어디선가 들려오는 신의 목소리. .... “너의 실제 나이는 스물도 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마는 그야 어쨌든 우리 고아원에서 올린 호적상의 나이로는 만 십 팔세가 되었다. 규정에 따라 우리 고아원에서 제적되었고 혜선이 너는 이제 사회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란 여기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단순하지가 않아요. 어린 시절을 고아원에서 보낸 너희들은 막연히 정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매사에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치는 경향이 많아요. 그건 항상 실수의 원인이 되기도 하거니와 매우 위험한 일이야. 그 점 명심하고 열심히 살아라. 너의 앞길에 행운이 있길 빌겠다” 우리는 이 조언이 사실은 예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동시에 이 말은 반어적인 방식으로 실현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혜선은 앞으로 ‘정 때문에’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쳐 대부분의 일을 그르칠 것이며, 그 실수로 점점 위험해질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정에 충실해지면 질수록 점점 더 행운은 그녀 곁을 떠나가고 불행해질 것이다. < 맨발의 눈길 >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대사는 없다. 혜선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으며 다시 한 번을 반복할 때마다 원래의 자리보다 더 나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때 점점 더 사태를 나쁘게 만드는 정(情)을 준다, 는 행위에 대해서 임권택 은 마치 악을 대하는 것처럼 약간 몸서리치면서 바라본다는 사실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녀 앞에 누군가 나타나고 그러면 그녀는 그에게 반응한다. 이때 이 반응의 동사(動詞)를 정을 준다, 라고 정의내릴 때, 그렇게 나쁜 사태를 일원화시킬 때, 매번 다른 장면들을 그렇게 나쁜 하나로 해석할 때, 사회가 자신과 처음 접촉하는 텅 빈 형식의 출현을 파괴하는 하나의 원리로 귀납 시킬 때, 거기에는 임권택이 세상과 맺는 계약으로서의 정(情)에 대한 실망이 담겨있다. 나는 지금 이 사태를 단순하게 통속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명구, 이별 이때 우리가 놓쳐서 안 되는 것은 혜선이 그 남자들을 만났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남자들이 혜선을 기다렸다고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혜선에게는 정(情)의 순환 속에서 단지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순환에서 과잉하는 순간 발생하는 그 잉여의 처리에서 실패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나는 약간 반어적으로 사태를 뒤집어보고 싶다. 혜선은 왜 이 세 명의 남자를 반대의 순서로 만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안타깝지만 대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 추락의 과정은 혜선이 고아원 원장님의 마지막 한 마디인 행운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실수를 해야만 마지막에 행운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녀가 고아원에서 자라기는 했지만 세상 물정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만나는 남자들의 요구를 잘 알고 자신이 그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 위한 능동적인 전술을 전개했다면 혜선은 그저 첫 번째 남자에 머물게 되었을 것이다. 임권택 의 두 번 만들기에 호응하듯이 반복해서 두 번 보기. 맨 마지막 장면을 본 다음 다시 앞으로 돌아오면 첫 번째 남자인 명구와 행복(하지만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자리에서 멈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영화 ‘이후’를 물어보고 싶다. ‘아직 끝나지 않은’ 영화 안에서 명구는 자기 앞에 나타난 돈 많은 집의 딸이 청혼을 하자 (그 과정을 영화는 설명하지 않지만 하여튼...) 그는 혜선을 만나지 못한 한 달 사이에 마음을 바꾼다. 그러므로 우리는 얼마든지 다른 가능성을 추론해볼 수 있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면, 그러니까 혜선의 뜻대로 명구와 두 사람이 결혼을 했다 할지라도, 그 결혼은 명구 앞에 다른 기회가 나타나면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매우 연약하게 맺어진 일시적인 정지에 불과하다. 어쩌면 이 첫 번째 실패가 단지 서둘러 온 것이라고 설명해볼 수는 없을까. 그런 다음 (약간의 시간을 건너뛰어) 혜선은 길거리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자리로 간다.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다. 고아원에서 처음 나왔을 때 그녀는 양장점에 의탁해서 살면서 그녀를 맡겨야 했다. 이제 그녀는 사회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녀의 운명에 대한 스스로의 일보전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운명이 집행되는 과정에서의 방점의 이동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나는 운명의 신비주의를 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기서 집행되는 방식은 운명의 유물론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운명은 반복되지만 그 주인이 발 딛고 서 있는 토대에 의해 끊임없이 변주되는 것이다. 거기서 혜선은 운명에 맞선다고 생각하지만 정확하게 그 과정이 운명에 순종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임권택 이 그 어느 한 편을 중심으로 영화 전체가 바뀌는 대신 이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들 전체의 사이를 통해서 무언가 그의 세상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읽어내고 싶다. 물론 임권택은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운명의 인과율에 대해서 항상 체념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운명은 동시에 혜선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지는 과정이라는 변화가 포함되어 있다. 운명에게 아니요, 하고 말할 때 욕망에게는 좋아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물론 그 둘은 화해한 것이 아니다. 반대로 둘 다에게 동시에 충실해지는 방법을 택하는 기술을 익혀나가고 있는 중이다. 운명 안에서 자유롭게 살기. 그때 임권택은 그 자유가 대가를 치르는 대신 반대로 자유를 얻기 위해서 내주어야 할 대가를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는 단지 주체의 전복만이 아니라 좀 더 까다로운 변화가 담겨있다. 그때 표정을 찡그리게 되는 쪽은 세상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운명이 자신을 수행하기 위해서 세상을 작동시키고 있는 자신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비로소 임권택은 그것이 주체의 잘못이 아니라 세상의 실수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논점이 남았다. 나는 잘못과 실수를 바꿔 쓴 것이 아니다. 그 둘은 서로 자리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임권택이 여전히 자유 앞에서 망설이는 순간이다. 희석, 첫만남 약간 장황하게 설명하겠다. 혜선은 거기서 “하던 사업을 말아먹고 그냥 마음 편하게 트럭운전이나 하면서 살겠다”는 희석을 손님으로 만난다. 그는 어느 모질게 비바람 치는 날 자신이 머무는 여인숙 앞에서 창문 바깥으로 비바람에 날아갈세라 한밤중에 포장마차의 포장과 혼자서 씨름하는 혜선을 보고 달려나가 도움을 주고 그날 밤 두 사람은 ‘정을 맺는다’ 혜선은 자신이 모은 돈을 털어 희석을 위해 트럭을 사고, 두 사람은 행복해진다. 만일 여기서 멈추었다면 이 이야기는 한 번의 비극과 다른 한 번의 행복을 통해서 실패와 보상이라는 방식으로 짝을 이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다시 한 번 운명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희석은 예정보다 집에 늦게 돌아오는 날 혜선으로부터 왜 늦었는지를 추궁당한다. 그는 부끄럽긴 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오는 길에 한 여자를 태워줬다고 고백한다. 그러자 혜선은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잠든 희석을 깨우고 또 깨워가면서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다그쳐 묻는다. 여기서 이 시퀀스는 처음에는 우스꽝스러웠지만 어느 쇼트를 지나가면서부터 점점 기괴해지기 시작한다. 핵심은 혜선이 진실을 아는 것이 아니라 만족할만한 진실을 얻는 것이다. 물론 그 지식은 희석이 길에서 태워준 여자와 섹스를 했다는 고백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 지식을 고백받기 전까지 혜선의 추궁은 끝나지 않는다. 혹은 만족하지 않는다. 물론 그 고백을 알게 되는 순간 동시에 얻게 되는 것은 더 큰 의심이다. 어떤 의심? 이제 미래에도 그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의심. 선수 친 의심. 그 고백의 지식은 즉각적으로 미래 시제가 된다. 희석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의 반복된 재촉에 지쳐 남은 진실을 모두 말한 다음 잠을 청한다. 하지만 지식의 활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트럭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희석 옆자리에 (마치 감시라도 하듯) 혜선이 사이좋게 앉아있다. 금실 좋은 부부처럼 사이좋은 대화를 나누던 혜선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길거리에 태운 그 여자 이야기를 다시 들려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희석은 그 이야기를 왜 다시 꺼내 드느냐고 하지만 그녀는 심심하니까 그런다고 대수롭지 않게 덧붙이면서 다시 한 번을 재촉한다. 희석은 내키지 않으면서도 마치 그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는 것이 용서를 구하기 위한 행동이 되기라도 하듯이 한 번 더 한다. 즉각적으로 이 상황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명구로부터의 배신을 본 다음 두 번째 이야기를 보는 중이다. 혜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희석이 자신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첫 번째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이때 혜선의 행위는 사실상 희석에게 첫 번째 상황의 반복을 제발 한 번 더 해달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희석은 자신이 해 보지 않은 행위를 반복해야 하는 자리에 불려가는 중이다. 여기서 혜선이 견딜 수 없는 것은 운명이 그녀를 이용하고 약탈하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거짓에) 속지 않기 위해 (있지도 않은 환상에) 속는 중이다. 혜선이 희석의 이야기(의 지식이 불러일으키는 환상의 서사)를 견디지 못하자 마치 그에 대한 응답이라도 하듯이 한겨울 산속에서 트럭이 고장 난다. 두 사람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희석은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타고 부속품을 사러 읍내로 사고 혜선은 여기에 남겨진다. 희석, 트럭의 고장, 혼자 남겨진 혜선 우선 이 결정이 바보 같다는 지적을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한겨울 산속에서 히터도 틀 수 없는 고장 난 트럭과 함께 이미 저녁이 시작되고 있을 때 (영화에서처럼) 아내 혼자 여기에 남겨두고 부속품을 사러 가는 쪽과 차라리 (영화에서 선택하지 않은 것처럼) 트럭을 여기에 남겨두고 두 사람이 함께 읍내에 간 다음 혜선이 읍내에서 기다리며 희석이 트럭을 고쳐 읍내로 돌아오는 편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누구라도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트럭은 고장이 났고 부속품은 산속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렇다면 트럭을 여기에 놓아둔들 어둠이 다가오는 밤에 누가 가져갈 수 있겠는가. 혹은 트럭을 훔쳐갈 생각이라면 혜선 혼자서 그걸 무슨 힘으로 막을 수 있을까. 하지만 희석은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린 다음 혜선을 남겨놓고 혼자 부속품을 구하러 간다. 마치 거기서 보이지 않는 방해의 손길이 나타나기라도 한 듯 부속품 가게의 주인은 어디론가 가게를 비웠고 점점 어둠이 다가온다. 완전히 어둠이 내린 다음에야 비로소 부속품을 구한 희석은 택시를 부를 도리가 없자 그 먼 길을 뛰어서 가야 한다. 이때 임권택 은 희석과 혜선을 번갈아 보여준다. (cross_cutting) 혜선은 어둠 속에서 무서워하기보다는 지금 이 시간에 희석이 자기를 버려두고 읍내에서 술집 여자와 벌거벗고 따뜻한 이불에서 뒹구는 환상에 사로 잡혀 괴로워한다. 세상은 짓궂게도 혜선이 좀 더 그녀 자신의 환상을 발전시킬 시간을 벌게 하기 위하여 어두운 산길을 달려가는 희석 앞에 자전거를 탄 경찰을 등장시킨 다음 그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서로 끌고 간다. 그때는 종종 산을 타고 간첩들이 남파된다는 이야기가 떠돌던 시절이라는 사실을 계산에 포함시켜 주기 바란다. 나는 세상의 실수와 주체의 잘못을 대립시켰다. 당신은 내게 간단하게 반문을 제기하고 싶을 것이다.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은 채 지금 부속품을 구하기 위하여 추운 겨울날 온 동네를 돌아다닌 다음 어두운 산길을 달려오고 있는 희석을 의심하는 건 혜선의 잘못이 아닌가요? 물론이다. 하지만 당신은 요점을 놓쳤다. 핵심은 세상의 실수가 주체의 잘못에 항상 선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체의 잘못은 여기서 세상의 실수에 대한 효과처럼 나타난다. 자신의 환상에 완전히 사로잡힌 혜선은 먼동이 틀 무렵인 새벽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트럭에 도착한 희석에게 더럽다, 고 몇 번이고 외치면서 개, 돼지, 늑대, 짐승이라고 부른다. 희석은 혜선의 비난이 무얼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는 길거리에 희선을 버려두고 트럭을 끌고 혼자 떠난다. 이 행동은 정확하게 희석이 길거리에서 세워달라는 낯선 여자를 태워준 친절에 대한 정반대의 선택이다. 그는 이전에 길거리에서 낯선 여자를 태워주었고 이번에는 자신이 함께 살고 있는 여자를 길거리에 버리고 떠난다. 혜선의 불길한 예감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세상의 실수와 주체의 잘못은 자신의 효과를 타자가 누리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혹은 주체는 서사에서 자기의 위치를 포기하지 않는다. 혼자 남겨진 혜선은 희석이 떠나간 다음 약간의 시간을 길에서 보낸다. 그런 다음 임권택 은 다시 한 번 혜선과 희석을 번갈아 보여준다. (cross_cutting) 이때 이 둘 사이를 오가는 환상의 침입은 정반대로 진행된다. 이번에 환상에 시달리는 것은 희석이다. 혜선은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여보, 를 외치며 눈길을 달려오지만 트럭은 떠난 다음이다. 그런데 희석은 바로 그 시간에 운전을 하면서 그런 혜선을 떠올리며 산골 비탈 눈길을 달리다가 갑자기 오던 길로 되돌아 가기 위해 운전대를 반대로 돌린다. 사태는 당신의 예감을 벗어나지 않는다. 뒤늦게 출발한 혜선은 마침 도착한 버스를 타고 간다. 사실 그녀에게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자꾸만 창문 바깥을 두리번거린다. 그리피스 이후 오래된 관습. 서로 다른 두개웰염獒옐瑛黔옘哉엔엽냈颱玖庸?오가기 시작할 때 그 둘 사이의 간격은 점점 좁아지고 또한 점점 빨라질 것이다. 하나의 목표. 하지만 이 방법에는 단지 둘 사이의 교차가 아니라 반드시 그사이를 연결하는 상상적 제3항이 끼어든다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만일 그 둘 사이를 연결하는 그 무언가의 작용이 없다면 이 둘 사이의 연결은 사실상 무효화 되거나 혹은 (종종 코미디에서 허무하게 종결지어지는) 조롱이 될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이 제3항을 운명이라든가 혹은 영화 바깥의 관객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정의를 내리지 않는 것이다. 영화이론은 이 3항을 정의내리기 위해 긴 시간 논쟁을 했고 그 결과 어떤 식으로건 그 항을 개념화하는 순간 이데올로기적 시선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부르주아의 시선이고, 그건 가부장적 시선이고, 그건 서방세계의 시선이고, 그건 백인의 시선이고, 그건 등등... 으로 정의내리는 순간 즉각적으로 거기에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놓여있음을 깨닫(고 그런 다음 무언가를 놓치)는 과정을 반복했다. 물론 이 과정을 가장 세련된 방법으로 정식화시킨 것은 히치콕의 영화이다. 임권택이 따르는 것은 히치콕에서 에릭 로메르로 이어지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다르다. 여기서는 이 빠른 속도의 결합이 상징적인 의미 안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반대로 이 둘 사이의 결합 사이에는 오직 불가사의한 인과관계의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 혜선이 산골길 굽은 도로 사이로 접어들었을 때 저 멀리서 사람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저 아래 비탈에는 굴러떨어진 트럭이 불타고 있다. 버스에서 달려간 혜선 앞에 이미 죽은 희석이 차가운 땅바닥 위에 누워있다. 경찰이 목격자를 찾자 누군가 대답한다. “이 미끄러운 길을 좀 과하다 싶은 속도로 달려오더니 갑자기 방향을 꺾데요” “아니, 이 좁은 길목에서요?” “네, 다시 돌아갈 일이 생겼던 모양이에요. 아무튼 신통하게도 잘 돌아섰는가 싶었는데 뒷바퀴가 빙판에 쭈욱 밀리는 거예요, 그리고 처박혔죠. 아마도 다섯 번은 더 굴렀을 겁니다. 아무리 돌아갈 길이 급하기로 이렇게 성질 급한 운전수는 처음 보았습니다” 이때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한편으로 혜선을 꾸짖는 것만 같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는 끝내 알 수가 없다. (voice_off_frame) 왜냐하면 내내 화면은 희석의 시체 앞에서 무릎 꿇고 울고 있는 혜선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장면이 고아원에서 혜선이 떠날 때 어디선가에서 들려오는 원장님의 말씀의 연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매번 나타나는 목소리. 잘 알고 있는 목소리. 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목소리. 이때 혜선의 운명에 대한 지식은 신비로울 뿐만 아니라 기괴해 보이기까지 한다. 돌아갈 일. 다시 돌아갈 일. 우리는 그 일이 무슨 일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찡그림에 의해 희석은 혜선에게 도착하지 못한다. 그리고 정확하게 그가 도착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그 메시지를 도착 시킨다. 맞아요, 당신의 뜻은 이제 실현되었어요. 혜선은 실패라는 과정을 통해서 그녀의 정을 돌려받는다. 두 번째 남자 희석이 혜선에게 알려준 것은 실수의 원인이 정을 받은 타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을 주는 그 과정의 과잉에 있다는 것이다. 마치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말. “어린 시절을 고아원에서 보낸 너희들은 막연히 정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매사에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치는 경향이 많아요. 그건 항상 실수의 원인이 되기도 하거니와 매우 위험한 일이야” 세 번째 이야기는 두 번째 이야기와의 사이에 놓인 간주곡을 먼저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 죽은 희석이 묘 앞에 한복을 차려입은 혜선이 찾아와 임신한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자신은 이 아이를 잘 키우겠다고 거듭 다짐을 한다. 그런 다음 갑자기 마치 다른 분위기, 다른 리듬. 다른 톤, 다른 영화처럼 장면이 옮겨간다. 좁은 골목에 차들이 줄을 이어 들어서고 다시 장면을 옮기면 혜선은 근수와 결혼식을 올리는 중이다. 근수는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인물인 데다가, 신부의 복장을 한 혜선을 보는 우리는 어리둥절해진다. 좀 전에 그 임신한 아이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녀는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좀 더 정확하게 두 이야기 사이에 끼어든 아이는 이제부터 어떻게 작동할까. 세 번째 이야기는 앞선 두 이야기와 달리 단 하루 동안 일어난다. 그 사이에 세월이 흘렀고 혜선은 아이를 낳은 다음 술집에 나간다. 아이는 자라 소년이 되었다. 하지만 불치의 병에 걸렸고 혜선에게는 수술비용이 없다. 그녀의 계획은 자기의 신분을 속이고 위장결혼을 해서 남자와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돈을 훔친 다음 도망쳐서 그 돈을 들고 아들 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우선 그녀의 계획이 지닌 세 가지 불합리한 점. 첫째, 신혼여행을 떠난 다음 남자에게서 돈을 훔쳐 돌아온다고 하지만 그 남자가 큰돈을 갖고 신혼여행을 떠날 거라는 사실을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을까. 물론 그때는 카드가 없었고 사람들은 현금을 가지고 다녔지만 근수는 마치 그녀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지나치게 큰돈을 가방에 넣어 들고 신혼여행을 떠난다. 둘째, 결혼식을 올리는데 고아인 혜선은 어떻게 상대방의 가족 전체를 속일 수 있었을까. 잘 알다시피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긴 과정이 필요하다. 양가의 부모가 인사를 해야 하고 서로의 혼수를 주고받아야 한다. 신랑은 단 한 번도 신부의 집에 인사를 드리지 않고 부모를 만나지도 않은 채 결혼식에 이르는 것이 가능할까. 그보다 먼저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는 과정에서 아픈 소년은 돈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병실에서 내내 기다려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모두 해결한 것처럼 이 세 번째 이야기는 결혼식 하는 날에서 시작한다. 세 번째 이상한 점은 이야기 안에 내재되어 있다. 병원에서는 이제 더 이상 수술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아들을 퇴원시키라고 종용한다. 이미 실패한 수술. 사실상 혜선의 노력은 무의미한 시도이다. 근수, 결혼식 여기서 세 번째 이야기가 이제까지 이야기와 다른 것은 결혼하는 근수에게 혜선은 어떤 정도 줄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녀의 목표는 근수를 속여 돈을 훔친 다음 재빨리 현장에서 떠나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앞의 두 이야기가 혜선에게 준 교훈의 결과일 것이다. 나는 이미 두 개의 서로 다른 교훈에 대해서 셈을 했다. 하지만 여기서 혜선이 정을 주는 행위가 중단된 것은 아니다. 그녀는 병석에 누운 아이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다. 다만 혜선이 정을 주는 대상이 이야기의 외곽으로 옮겨졌으며 그 중심은 그녀에게 정을 주는 대상을 속이려는 행위에로 변주된다. 이때 혜선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은 그녀 자신이라기보다는 그녀가 만나는 상대방이 점점 나이가 많아지면서 자신의 위치를 재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요점은 좀 더 분명해진다. 첫 번째 이야기는 (다소 논쟁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처녀로서 정을 주는 행위에 대한 실패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아내로서 정을 주는 행위의 실패라면, 세 번째 이야기는 어머니로서 정을 주는 행위의 실패에 대한 내기이다. 이때 (세상 안에서의) 반복적인 실패 속에서 변치 않는 것은 혜선이 (주체의 자발적인 선택인 것처럼) 반복적으로 정을 주는 행위이다. 마치 그녀는 이것이 자신이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행위인 것처럼 지치지 않고 되풀이한다. 여기서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그 행위를 반복하는 데서 오는 바보 같은 선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조금도 협조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것이다. 임권택 은 여기서 기묘한 한 가지 원칙을 고수한다. 어떤 장면에서도 혜선의 심리적 상태를 설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 대신 오로지 그녀의 동선만을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사실상 여기서는 혜선의 심리적인 동요를 제외하면 고요한 표면만을 가진 상황이다. 그런데 임권택은 혜선을 통해서 그 표면을 휘저어 놓는다. 혜선의 동선은 이 세 번째 이야기 안에서 다른 인물들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 동선의 디테일은 다음과 같다. 혜선은 이날 하루 분주하게 두 세계 사이를 오가야 한다. 하나는 물론 근수와 올리는 결혼식과 이어지는 신혼여행이고, 다른 하나는 수시로 병원에 전화를 걸어서 죽어가는 아들의 병세를 물어보아야 한다. 그때마다 병원에서 아들을 돌보면서 전화를 받는 (혜선을 언니라 부르는) 여자는 자기가 내내 여기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느냐면서 지금이라도 병실을 떠나야 한다고 통보한다. 혜선은 한편으로 그녀를 설득해야 하고 또 한 편으로 이제는 아들을 데리고 퇴원하라는 의사에게 다시 한 번만 더 수술을 해달라고 간청한다. 더 힘겨운 것은 자신의 그런 처지를 숨겨야하는 상황에서 기회가 올 때마다 막 결혼한 근수 몰래 전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함께 신혼여행 온 근수는 당연히도 혜선 곁에서 사랑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며, 혜선은 언제라도 돈이 든 그 가방을 들고 여기를 빨리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그 눈길을 피하려고 애를 쓴다. 이때 그녀가 알지 못하는 것은 지금 자신이 그 어느 때 보다도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단 하나, 그녀가 돈이 든 가방을 훔쳐야 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 그녀는 이미 결혼했고, 게다가 결혼한 상대는 경제적으로 안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혜선이 그렇게 원하는 삶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한 빨리 도망쳐야만 한다. 임권택 이 하려는 고통스러운 게임은 무엇인가. 그건 혜선을 끝까지 몰고 가 보는 것이다. 이상할 정도로 임권택은 때로 던져진 상황에서 포기하는 법 없이 끝까지 가면 어떤 상황을 만나게 되는지를 보려고 할 때가 있다. 대부분 다른 영화에서는 어느 순간에 이르러 눈물을 흘리며 결국 거기서 어떤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낀 다음 마치 그것이 해결인 것처럼 물러난다. 임권택도 피하지 않고 물론 그 지점까지 간다. 이상해지는 것은 거의 반드시라고 할 만큼 그 지점까지 온 다음 멈추지 않고 거기를 지나쳐서 더 밀고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서 멈출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임권택이 문득 거기서 더 밀고 나아가기 시작할 때 눈물을 흘리다 말고 무슨 일이 생기는지를 고통스럽게 바라보거나 기괴하게 쳐다보게 된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혜선이 두 번째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는 운명에 굴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그 상황을 밀고 나아가기 시작하자 갑자기 그녀를 움켜쥐고 있는 (원장님의 예언에 가까운) 말씀의 네트워크를 찢고 스스로 능동적인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그녀의 선택은 바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어처구니없는 행위 안에서 단지 한계를 보는 대신 그 안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혜선의 능동적인 자율성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혜선이 두 번째 이야기에서 멈춘 다음 죽은 희석의 묘지 앞에서 다짐을 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단지 그녀를 덮어씌운 말씀의 실현만을 우리는 보았을 것이다. 물론 거기서 끝나면 말씀은 만족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 갑자기 영화의 톤과 리듬이 변했다는 것을 함께 주목해주기 바란다. 임권택은 여기서 앞선 두 개의 이야기에 마치 영화 자체가 저항하기라도 하듯이 진행하기 시작한다. 아들의 죽음 물론 이번에도 혜선의 노력은 좌절로 끝난다. 그녀는 근수의 돈 가방을 훔치는 데 성공한다. 그래서 그 돈을 들고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그녀를 맞이하는 것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을 용서해준다면) 마침 때맞춰 죽은 아들의 시신이 실려 있는 바퀴 달린 침대의 이동이다. 사라져 가는 아들. 그녀의 하루는 실패로 끝난다. 이제 그 돈이 아무 의미가 없어진 혜선은 그걸 돌려주기 위해 근수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그에게 모든 것을 자백하듯이 고백한다. 당신은 이번에도 결국 희석과 같은 결론을 맺은 것이 아니냐고 내게 반문할지 모른다. 얼핏 보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임권택 은 몹시 잔인한 방법으로 혜선에게 그녀가 진정 도착해야 할 욕망의 대상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있는 중이다. 안타깝게도 혜선은 그녀의 아들을 잃었다. 하지만 그렇게 박탈하면서 그녀에게 안겨주는 선물이 있다. 그것은 물론 근수이다. 이 이야기의 가느다란 끈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혜선이 고아원에서 나왔을 때 그녀가 정을 주고 빠져드는 사람은 세상에 나와 우연히 만난 남자가 아니라 고아원에서 함께 큰 명구이다. 명구의 무언가가 혜선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 같은 고아원에 있었다는 사실이 그녀의 정을 끌어낸다. 그러므로 혜선이 한 행동은 고아원에서 이미 한 행동이 왜 사회에서는 반복할 수 없느냐는 반문과 마주친 것이다. 혜선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을 것처럼 살아간다. 두 번째 이야기의 시작. 공사장에서 포장마차를 하면서 인부들이 와서 점심을 먹을 때 그 많은 사내들의 입맛을 잘 알고 척척 알아서 주문을 해준다. 한 사내가 “마누라 행세를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라고 농을 걸자 서슴없이 “하루에 두 끼씩 걷어 먹이면 그게 첫째 마누라지”라고 받아친다. 하지만 이때 희석은 그 자리에 없다. 그는 여기 공사장까지 흘러들어온 다음 혼자서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신다. 그때까지만 해도 희석은 혜선에게 관심이 없다. 그저 바라보다가 별안간 손을 잡아보고는 “얼핏 보면 아줌마 같기도 하고 처녀 같기도 하고” 가 전부이다. 그 말이 별말이 아닌 것이 그날 밤 술집에 가서 작부를 옆에 앉혀놓고 오늘 밤을 같이 보내자고 한 다음 초면에 이러면 안 되시죠, 라는 대꾸에 “자네하고 나하고는 전생에 인연이 있는 것 같아”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그날 밤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소리에 깬 희석은 포장마차가 바람에 날아갈세라 달려 나온 혜선을 본다. 그런 다음 그 둘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했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고 싶다. 희석이 혜선과 ‘정을 통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대사는 “내가 좋아하면 여자가 도망가고 내가 좋다고 안 도망가면 여자가 도망가고” 라고 한 다음 잠시 그녀를 바라본 다음 “당신과 같은 여자를 만났으면 좋은 가정을 가졌을지도 모르겠소”라는 제안이었다. 이때 포장마차 안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고 고작해야 성냥으로 켠 촛불 하나가 전부이다. 혜선은 희석에게 끌렸다기보다 차라리 그 한 마디에 이끌린 것처럼 보인다. 그 말은 혜선이 명구에게 듣고 싶은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이 목소리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 여기에는 같은 내용의 대안적 대상이라는 미끼가 있다. 그렇게 해서 혜선은 다시 원래 자리에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치 그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혜선이 희석과 ‘정을 통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비바람 치는 밤 포장마차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나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반주처럼 흘러나온다. 아마도 예민한 관객들은 알아차릴 것이다. 이 음악은 혜선이 명구와 데이트를 할 때 흘러나오던 선율이었다. 이제 세 번째 이야기가 되었을 때 두 번째 이야기에서 넘어온 것은 물론 희석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들이다. 그녀는 아들을 구하는 것이 자기가 해야 할 임무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반대로 지금 그녀에게는 남겨진 아들만이 그녀의 삶의 장애물처럼 작동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몹시 잔인한 표현이라는 것을 이미 사과했다. 게다가 임권택은 그 아들을 더 이상 살릴 방법이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혜선의 현재의 삶에서 그녀에게 남겨진 아들의 존재만이 마치 잉여처럼 그렇게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러므로 세 번째 이야기는 이미 시작할 때마다 결론이 나 있다. 아들은 죽을 것이고 그녀의 노력은 실패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녀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이 세 번째 이야기는 이상할 정도로 단순하고 공허하게 느껴진다. 목소리의 교환 이때 오직 이 세 번째 이야기에서만 혜선과 그 상대방은 서로의 목소리를 교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외부의 목소리에서 벗어나서 혜선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다. 혜선은 아들의 죽음을 본 다음 돌아와 근수에게 이 모든 과정에 대해서 자백을 하듯이 이야기한다. 이때 처음으로 혜선은 상대방으로부터 구체적인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것은 물론 근수의 목소리이다. 그는 혜선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서 마치 대칭을 이루기라도 하듯이 참회에 가까운 고백을 한다. 먼저 자신이 혜선의 이제까지의 위장된 행동을 모두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 다음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근수는 자신을 고아라고 속이고 부잣집 양아들로 입양되었지만 사실은 시골에 자신의 어머니가 살고 있으며 그분의 유일한 소망은 며느리를 데려오는 것인데 당신이 괜찮다면 거기에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혜선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제안이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청혼인지는 분명치 않다. 눈이 덮인 시골 길이 보이고 영화는 여기서 끝난다, 라기보다는 중단된다. 만일 여기서 해피엔딩을 보면 당신은 < 맨발의 눈길 >을 처음부터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임권택 이 하려는 노력은 초자아의 명령으로부터 자신의 윤리적 선택에로 혜선을 되돌려 놓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이 영화는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지는 않다. 때로 그 선택은 위태롭게 보이고 가냘파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은 자신에게 내려진 가장 중요한 명령을 거절하지 않으면 자신의 선택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자유로운 행위란 결국 무엇인가. 아마 임권택이 서정민 과 함께 만든 < 잡초 >에서 했었던 질문은 결국 이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다시 만들었을 때 그는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이라는 도약을 시도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될 임권택의 영화는 이 자유의 밤으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창씨개명에 반대하고 오로지 자신의 이름을 지키고자 자살을 선택하는 수원 설 씨 노인의 이야기(< 족보 >),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 평생에 걸쳐 산에서 자신이 놓친 공비를 찾아 허송세월하는 한 사내의 이야기(< 짝코 >), 오로지 깨우침을 얻기 위해서 용맹전진하는 승려의 만행 길(< 만다라 >). 임권택은 자기 자신에게 내려진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세상이 자신에게 내린 명령을 거절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 길을 임권택은 서정민과 함께 시작했지만 그와 함께 밀고 나아가지 않았다. 물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영화 현장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단지 그것을 예술적인 이유라고만 설명하는 것은 부질없는 잣이다. 하지만 <맨발의 눈길>에서 보여준 몇몇 순간들, 특히 그중에서도 희석이 굴러떨어진 낭떠러지 가까이 다가가는 버스 안에서 그 절벽을 바라보는 혜선의 시선 앞에 놓인 그 짧지만 신비로울 정도로 정교한 리듬으로 다가오는 풍경은 임권택의 모든 영화 중에서도 가장 스산한 이미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예술에서 가지 않은 길을 탄식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나는 지금 바보 같은 일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서정민 촬영감독님을 생각하면 그건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가정이다. 부디 편히 잠드시길. (계속)
만주. 滿洲. 오늘날 중국의 동북지방, 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 내몽고자치구의 동부지역을 포괄해서 가리키는 말. 백두산을 중심으로 압록강 두만강 천여 리에 이르는 이북지역이 여기에 해당한다. (네이버 지식대백과).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만주는 한국의 역사와 관련지어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가 걸쳐 있던 지역이었으며 또한 말갈족,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몽고족, 만주족이 공존했던 다양한 민족공동체의 지역이었다. 역사적인 복잡한 배경 속에서 중국은 이 지역을 청나라 태종이 황제로 오르면서 1636년 후금이었던 명칭을 만주로 개칭하였고, 그 후 다시 중화민국으로 바뀌면서 만주를 동삼성(東三省)으로 한 번 더 개칭하였다. 학자에 따라서는 여진족을 만주인이라 부르던 것을 이들이 살고 있는 지명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명도 있다. 1677년 이래 이 지역이 청조의 발상지라 하여 봉금(封禁)정책에 따라 이주를 금해서 그 후 거의 사람이 살지 않았으나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따라 이 지역으로 남진하고 수많은 중국인들이 기근과 여러 가지 이유로 몰래 이주하는 빈민들이 늘어났고 조선 북방지역의 한인들도 비슷한 이유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주가 사실상 통제 불가능해지자 1870년 봉금령을 풀고 이민실변정책(移民實邊政策)을 실시하였다. 오늘날 연변으로 불리는 북간도 지역에는 주로 함경 남북도 사람들이, 서간도 지역에는 평안 남북도 사람들이 이주해 갔다. 1840년 아편전쟁으로 청조가 서구 열강의 위협 아래 놓인 가운데 러시아와 일본이 만주를 놓고 다투었고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일본은 만주의 남부를 차지하고 북부는 러시아가 지배하였다. 1910년 조선이 일본에게 강점되자 이전까지의 이주와 달리 의병활동을 했거나 강점에 불만을 품고 있던 수많은 한인들이 ‘조국 독립’을 위해서 주로 정치적인 이유로 만주로 이주해 갔다. 만주의 조선독립 활동단체는 각자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에 따른 여러 이념 단체가 공존했는데 조선혁명당과 한국독립당, 동북항일연군, 조선의용군이 서로 다른 조직을 거느리고 활동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조가 붕괴되자 그 틈을 타 군벌세력이 나타나 만주국을 세웠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 정권 다툼이 벌어졌고 한편으로는 일본과 러시아가 만주를 놓고 계속 신경전을 벌였다. 1931년 9월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켰고 이듬해 3월 일본은 괴뢰 만주국을 수립하여 자신의 독점적인 식민지로 만들었다. 1930년대 이후 일본은 조선 인구의 분산정책에 따라 대량으로 일본인들과 함께 조선인을 강제 이주시키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만주를 향후 대륙침공을 위한 전초기지로 삼았다. 그러나 1945년 8월 15일 전쟁이 끝났고 그 다음은 다른 역사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그다음 만주웨스턴. 滿洲 西部劇. 만주웨스턴은 한국영화에만 일시적으로 나타난 변종(hybrid) 장르이다. 만주웨스턴이 처음 만들어졌던 1964년 혹은 그 주변부터 (첫 번째 만주웨스턴에 대해서는 서로 이견이 있다) 아마도 이 장르의 마지막 영화라고 할 < 쇠사슬을 끊어라 >가 만들어진 1972년에 이르기까지는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그저 무국적 서부극이라는 다소 조롱 섞인 표현을 썼다. 이 영화들을 하나의 장르로 개념화한 것은 2009년에 김소영의 논문 ‘지정학적 판타지와 상상의 공동체; 냉전 시기 대륙(만주) 활극영화’에서 이다. 제목에서도 있는 것처럼 만주웨스턴이란 표현 대신 대륙(만주) 활극영화라고 불렀고, 만주 웨스턴이라고 나중에 다시 (재)개념화시켰다. 웨스턴은 미국에서 발명한 이래 전 세계에서 서로 각자의 맥락 안에서 다시 변태하고 환골탈태하면서 각자의 지리적 영토 안에서 각자의 환경으로서의 웨스턴을 만들어냈고 다시 그것을 하위 장르로 한 번 더 (재)발명해나갔다. 미국영화라는 운동, 각자의 나라의 영화라는 리듬. 이를테면 웨스턴의 영향 아래서 만들어낸 사무라이 활극, 혹은 쨘바라(チャンバラ)영화들. 여기서 영향을 받은 홍콩 쇼브라더즈 무협영화, 혹은 무술영화. 만주웨스턴이란 표현은 물론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스파게티 웨스턴에서 재치 있게 용기를 내서 가져온 말이다. 하지만 만주웨스턴이 정말 서부극의 장르 컨벤션에 대한 다소 복잡하게 얽힌 친족 관계 안에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서부극은 영화라는 교환세계 안에서 성립될 수 있는 영웅 신화의 상징적인 교신이 될 수 있을까. 그건 레비-스트로스나 조르주 뒤메질, 혹은 쉬클로프스키가 대답할 차원의 질문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냥 잠시 동안 떠오르는 대로) 존 포드의 서부와 하워드 혹스의 서부, 세실 B 데밀의 서부, 프릿츠 랑의 서부, 킹 비더의 서부, 라울 월쉬의 서부, 윌리엄 와일러의 서부, 버드 보티커의 서부, 윌리엄 A 웰만의 서부, 안소니 만의 서부, 델마 데이비스의 서부, 로버트 알드리치의 서부, 샘 페킨파의 서부만으로도 얼마나 다른 서부가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물론 위대한 누군가를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바쟁이라면 좀 더 연대기적으로 설명했을 것이다. 고전적인 웨스턴. 수퍼 웨스턴, 바로크 웨스턴. 하지만 만주웨스턴이 자기 모델로 삼은 것은 완전히 그 바깥에 놓여있는 셀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서부이다. 이상하게도 만주웨스턴의 연구자들이 과감하다고 할 정도로 무시하고 있는 것은 이 영화들이 만들어지는 동안 미국 웨스턴에서 뉴시네마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갑자기 미국 웨스턴들은 스스로 신화를 부정하고 남북전쟁의 시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게다가 그 영화들의 대부분이 거의 동시대에 수입되었다) 물론 직접적인 설명은 거기 베트남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둘 사이에 놓인 비동시적 동시대성. 그런데 베트남전에 용병으로 참전한 한국에서 만주웨스턴을 만들면서 베트남의 그림자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단지 검열의 문제만으로 돌리는 것은 이 개념을 좀 더 히스테릭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닐까. < 황야의 독수리 > < 대추격 > 임권택 이 만주웨스턴에 한동안 열중한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는 고작해야 그때 세 편의 만주웨스턴을 찍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세 편의 만주웨스턴을 찍는 동안 28편의 영화를 찍었다) 종종 < 두만강아 잘 있거라 >를 여기에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약간 설명이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여기서 주인공 남녀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난 다음에도 결국 만주에 가지 못하고 두만강에서 일본군들과 결사적으로 싸우다가 국경선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아니, 차라리 죽음이라기보다는 전멸한다. 갈 수 없는 나라, 만주. 구태여 (만일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그래서 그렇게 해서라도) 신화의 삼각형 안에 넣고 싶다면 ‘미처 익히지 못한 것’으로서의 자리에서 이 영화를 아직 경계선을 넘지 못한 마이너스 쪽에 놓아야 할 것이다. 임권택이 이 시기에 ‘(존재하긴 했지만 동시에 실제로는 불가능한) 상상 속의 국가’ 만주를 무대로 찍은 만주웨스턴은 < 황야의 독수리 >와 < 애꾸눈 박 >, 그리고 < 대추격 >이 전부이다. (그런데 <대추격>은 현재 프린트가 유실되었다) 그런 다음 한참 뒤에, 거의 이십 년이 지난 다음 김두한은 종로통을 떠나 잠시 만주에 머문다. (< 장군의 아들 3 >) 만주를 여기서 그저 갈 수 없는 가상의 나라, 라는 은유적 설정으로 치환하면 상하이를 무대로 하거나 그곳으로 떠나는 이야기까지 포함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분류한다면 차라리 이 장르는 독립군웨스턴이라고 부르는 편이 훨씬 유용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문제는 좀 복잡해진다. (영화에 한정 지어서 말한다면) 독립군은 외국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조선 반도 내에서도 활동했기 때문에 여기에 지정학적 판타지는 거세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장르의 핵심은 그 영토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주인공들의 활동에 있는 것일까. 상황의 상태와 활동의 요구. 물론 이 영화들에는 법칙을 따르는 공동체가 있다. 다만 그 안에 선과 악이 각자의 목표를 따르면서 구획 지어져 있을 뿐이다. 물론 이 영화들이 만주라고 설정하고 촬영한 장소들은 지명을 알 수 없는 (남한 안의) 그 어딘가 이다. 정말 내몽고에까지 가서 세트를 세우고 촬영한 만주웨스턴은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뿐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과 제목을 제외하면 셀지오 레오네에게서 모델을 가져왔다기보다는 조지 밀러의 < 매드 맥스 > 이편과 삼 편에서 빌려온 것처럼 보인다) 만주웨스턴을 찍으면서 만주에 가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임권택을 포함해서 그들은 모두 한국전쟁 이후에 이십대가 되었다) 그건 보는 쪽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도 이 장르에서 사실성의 여부를 문제 삼지 않았다. 차라리 여기서는 의도적으로 사실성을 외면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가본 적이 없는 곳에 대한 향수. 어디든 상관없으니 나가보고 싶은 간절한 바람. 가져본 적이 없는 역사, 그런데 가볼 수도 없는 장소. < 애꾸눈 박 >은 만주 하얼빈을 무대로 시작하고 거기서 끝난다. 영화가 시작하면 큰 글자로 ‘1920년 만주’라고 화면을 채운다. 신해혁명으로 청조가 무너진 다음, 그러나 아직 만주사변이 일어나기 십 년 전. 역사에 관련된 그 어떤 사건이나 참조할만한 언급도 등장하지 않지만 하여튼 여기는 만주이다. 구체적인 도시 명을 지적하진 않았지만 대사에는 종종 이 하얼빈 거리에서, 라는 말을 등장인물들이 내뱉곤 하며 주인공 상하이 박과 겨룰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자 그의 친구이며 처형이 된 한인 건달패의 보스 별명은 하루빈 김이다. (하얼빈은 하루빈으로 발음되기도 한다) 이 도시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한 일본 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루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총으로 저격하여 사살한 사건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 독립군이 등장하고 그가 운반하려는 금괴 때문에 벌어지는 소동임에도 아무도 안중근이라는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역사 속에 세워진 가상의 지정학적 공동체 안으로 들어온 다음 <애꾸눈 박>은 필사적으로 어떤 역사적 흔적에 대해서도 말끔하게 청소해버렸다. 하루빈 김 상하이 박 마천평 김승 짧지만 다소 뒤섞인 줄거리. 하얼빈의 밤거리를 걸어오는 세 남자의 리드미컬한 발걸음. 그들은 상하이 박을 찾는데 어느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돈을 내지 않아 주정뱅이 걸인처럼 종업원들에게 매를 맞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가 소문으로 듣던 상하이 박과는 너무 다른데요, 라고 그들의 큰 형에게 묻자 그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놈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나 해? 놈은 싸움에 싫증을 느낀 것이다” 이리저리 끌려다니던 상하이 박이 그들을 피해 거리에 쓰러진다. (flash_back_in) 한때 이 거리의 가장 주먹이 센 자리를 놓고 하루빈 김과 겨루던 상하이 박은 그와 친구를 맺고 난 다음 그의 여동생 향숙을 보자마자 한눈에 사랑에 빠져 청혼을 한다. 하지만 동시에 향숙을 탐하던 악당인 동천의 마천평은 하루빈 김에게 거절을 당하자 앙심을 품고 “나는 원하는 것은 반드시 얻고 마는 놈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향숙은 상하이 박과 결혼을 하지만 오빠와 달리 건달 생활을 청산하고 멀리 떠나 작은 목장을 하면서 살지 않으면 절대로 잠자리를 함께할 수 없다고 칼을 들고 맹세한다. 새사람이 되겠다고 맹세한 상하이 박은 새 삶을 출발하려 하지만 목장을 살 큰돈이 없다. 그때 마침 독립군 자금을 위한 금괴를 운반해달라고 김승이란 인물이 하루빈 김을 찾아온다. 하루빈 김은 자기에게는 조국에 대한 애국심은 없지만 당신의 호기에 반했다, 라면서 그의 제안을 수락한다. 한편 상하이 박을 아편 장사 왕해림이란 자가 찾아와서 모일 모시에 일본군이 금괴를 운반하는데 그걸 훔치면 큰돈을 나눠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상하이 박은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만 일본군 복장을 하고 금괴를 운반하던 하루빈 박을 그의 뛰어난 표창 솜씨로 단번에 쓰러트리고 만다. 음모를 진행하던 마천평은 복면을 쓰고 무리들 사이에 숨어 있다가 하루빈 김이 쓰러지자마자 상하이 박의 한쪽 눈을 찔러 애꾸눈으로 만든다. 상하이 박은 자기가 쓰러트린 사람이 하루빈 김이라는 사실을 알고 친구이자 아내의 오빠를 죽인 죄책감에 술을 마시면서 폐인처럼 지낸다. (flash_back_out) 그런 그를 독립군 김승이 찾아와 마천평의 음모임을 알려준다. 게다가 그의 사랑하는 아내 향숙이 그 집에 잡혀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상하이 박은 혈혈단신으로 찾아가 마천평과 겨뤄 그를 쓰러트리고 김승은 금괴를 숨긴 지도를 찾아내어 함께 그 집을 떠난다. 플래시백: 하루빈 김과 상하이 박의 첫대면 당신이 눈치가 빠르다면 한눈에 간파해냈을 것이다. < 애꾸눈 박 >은 그날 밤, 그리고 다음 날 낮의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미처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이야기가 시작해서 모두 끝난다. 우리는 기억 속에서가 아니라면 미처 해가 지는 저녁을 보지 못할 것이다. 상영시간 1시간 48분인 영화가 시작하면 삼 년 동안이나 쫓아다녔다는 삼인조를 피해 길거리 허름한 골목 구석에 쓰러지자마자 정신을 잃은 상하이 박이 시간 저편으로 갔다가 되돌아오는데 45분을 보낸다. 오로지 설명적인 기억의 실타래. 여기서 그가 잠시 동안 잃어버렸던 의식은 아무것도 억압에서 그를 풀어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 과정은 그에게 이제 남겨진 의무가 무엇이었는지를 일깨우는 각성의 시간일 뿐이다. 기억에 의해 전개되는 장르의 기호들. 하지만 <애꾸눈 박>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영화는 셀지오 레오네가 아니라 장철의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일 것이다. 작품 목록에는 <애꾸눈 박>으로 소개되어 있지만 (그리고 영화에서 마주치는 제목 자막도 그렇게 올라온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신문광고에는 <의리의 사나이 애꾸눈 박>으로 되어있다. 잘린 오른 팔과 망막이 찢겨나간 오른쪽 눈. 외팔이와 애꾸눈. 제목 앞에 덧붙여진 부제. ‘의리의 사나이’. 두 영화 사이의 공통점은 단순하게 신체훼손에만 놓여있는 것이 아니다. <애꾸눈 박>의 대부분의 장면은 세트장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이 장면들은 어딘가 쇼브라더즈 영화에서 본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상해 무술영화들의 세트장 안으로 들어온 것처럼 보인다. 가장 잘 알려진 예. 장철의 < 복수 >. 한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당시 적성국가로 분류되었던 중화인민공화국의 동북성 만주에 로케를 갈 수 없었고, 마찬가지로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 영화는 상해에서 촬영을 할 수 없었다. 주인공들은 시종일관 폐쇄적인 세트 안을 떠돌았고 그들은 거기에 갇힌 것처럼 보였다. <애꾸눈 박>은 심지어 제한적인 세트를 감추기 위해서 길거리에서 촬영할 때 모두 밤거리여야만 했으며, (통행금지가 있었던 그 시절) 거리는 텅 비어서 몹시 스산해 보이기까지 한다. 세트는 대부분 단조롭고 거의 어떤 미술 미장센도 없어서 건물 내부는 황폐하기 짝이 없다. 몇 개의 가구와 허전한 벽으로만 이루어진 공간 안에서 그들은 망국의 시름을 달래고 있는 중이다. 마치 박스 안에 들어온 것만 같은 효과. 게다가 서울 거리에 하얼빈의 건축양식의 건물이 있을 리 없다. 오늘날에도 외곽 지역으로 빠져나가면 마주칠 수 있는 복잡한 골목과 조잡하기 짝이 없는 페인트로 칠해진 철제문들과 시멘트로 바른 벽들. 거기서 우리는 1960년대 말, 혹은 1970년대 초 한국영화 장르의 앙상한 판타지의 전시를 감상하게 된다. <애꾸눈 박>에는 < 황야의 독수리 >에서 볼 수 있었던 호쾌한 승마 장면도 없고 마치 기병대를 연상시키는 요새도 없다. 상하이박과 마천평 일당이 마지막에 총격전을 벌이긴 하지만 < 황야의 결투 >나 < 서부의 사나이 >, 혹은 < 리오 브라보 >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과는 거리가 멀다. 웨스턴에서 총은 이 장르의 목록 중의 하나의 모드이자 가장 중요한 모드이다. 그때 총은 단지 기능이 아니라 동시에 매너이다. 우리는 이 장르에서 총이 어떻게 운동하는지 만을 가지고도 이야기가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애꾸눈 박>에서 총은 어떤 매너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애꾸눈 박>에서 진정한 대결은 총이 아니라 육체적인 결투, 주먹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상하이 박이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자마자 떠오른 첫 번째 기억의 시퀀스일 것이다. 상하이 박이 하루빈 김을 처음 만난 시간. 하루빈 김은 상하이 박에게 말한다. “하루빈 거리에 왕이 둘이다. 왕이 둘일 수는 없으니 하나가 죽어야지” 아마도 상하이 박의 가장 행복한 시간. 모든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지나치게 마셔버린 술과 그를 뒤쫓는 청부살인업자들로부터 가까스로 도망쳐버렸다는 안도감이 그를 데려다준 시간. 몸이 거의 견디지 못할 때 그가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기억이 인도해 준 시간 속의 첫 번째 장소는 모래가 한없이 펼쳐진 강가 그 어딘가, 이다. 거기서 하루빈 김은 한 사람의 무덤을 판 다음 둘 중 하나가 여기에 묻힐 때까지 겨루자고 제안한다. 오직 주먹만으로, 죽을 때까지. 두 사람이 우정을 나누는 방식. 별다른 대사도 없는 이 장면을 임권택 을 할 수 있는 한 길게 찍는다. 여러 개의 쇼트, 하나의 이미지. 이상하리만큼 화창한 날씨. 내내 세트 안에서만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 마치 이 장면은 꿈속의 비현실적인 순간처럼 보인다. 그리고 나면 상하이 박은 이제 추락의 계단을 차례로 밟으면서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남은 질문은 상하이 박이 어떻게 다시 원래의 자리로 비상할 것이냐, 는 것이다. 말하자면 부활의 순간. 이때 독립군 김승은 사건 안에서 매우 이상한 역할을 한다. 하나의 가정. 만일 김승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물론 상하이 박은 함정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며, 하루빈 김은 이 위험한 임무를 떠안지 않았을 것이며, 그래서 상하이 박이 그를 오해로 죽이지 않았을 것이며, 게다가 ‘애꾸눈’이 되지 않았을 것이며,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폐인 생활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 아마도 이 모든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이상한 것은 오직 김승만이 여기가 지금 1920년 만주를 증명하는 유일한 지표라는 사실이다. 만일 그가 사라진다면 갑자기 < 애꾸눈 박 >은 만주웨스턴과 다찌마와리 액션활극 사이에서 거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 왜 이 영화가 만주웨스턴인 것이 그렇게 중요해진 것일까. 즉각적인 대답은 1970년을 무대로 하여 총을 사용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현행법과 치안 상황 때문에) 영화 안에서 설득하기 몹시 힘들어진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시대와 지정학적 위상. 상상의 무대. 그렇다면 김승은 이야기 안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일까. 그가 단지 순수한 겉치레, 그래서 거의 공허하게 텅 빈 기표의 상태로 머물면서 시대적 좌표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김승은 이야기 안에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발명하고 있다. 좀 더 유심히 들여다볼 것. 매번 김승이 등장할 때마다 이야기는 갑자기 인과관계를 벗어나서 다른 방향으로 벗어난다. 매번의 이탈. 그가 이야기에 접근할 때마다 이야기는 마치 그 너머의 이야기에로 이행하는 것만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때 우리는 이 문제를 반대로 질문해 볼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니까 매번 이야기가 잘못 진행되고 있을 때마다 김승이 나타나 이야기를 교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하자면 이렇게 설명해보자. 다찌마와리 액션활극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이야기를 다시 1920년 만주에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매번 독립군 김승의 개입이 요구되는 것이다. 만일 그가 없다면 그들은 1970년 명동의 건달들, 부산 남포동의 건달들, 목포 항구의 건달들과 별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 종종 자기 시대를 잊어버리는 것만 같은 인물들에게 매번 던져진 장소를 일깨우기 위해서 그들에게 임무를 부여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 역할을 하는 인물이 독립군이라는 것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적절한가. 물론 그때마다 그들은 대가라는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애꾸눈 박>의 거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상하이 박에게 부여하는 마지막 시련은 지나치게 가혹하고 그러면서도 이상한 유머가 있다. 등 뒤의 김승 약간의 디테일을 여기 더해야 할 것 같다. 상하이 박이 향숙을 구하기 위해 마천평의 집으로 쳐들어왔을 때 독립군 김승은 애매한 태도를 보인다. 그는 물론 상하이 박이 복수를 하는데 별 관심이 없다. 오로지 그의 목표는 독립군 자금을 위한 금괴를 되찾는 데 있다. 알겠다. 그런데 상하이 박이 거의 복수에 성공하는 순간 김승은 그의 등 뒤에 나타나 총을 빼앗으며 마천평의 편을 든다. (물론 그런 다음 금괴의 지도를 입수하자 다시 상하이 박의 편에 선다) 내 관심은 김승이 보이는 이중적인 태도에 있지 않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여기서 보여주는 일시적인 상실과 궁극적인 승리 사이에 놓인 잔인함은 단지 더 큰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사이를 매개하는 추락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불길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 애꾸눈 박 >은 이 장면의 순간을 단지 시련이라고 정식화시키기에는 과도할 정도로 무자비하게 오랫동안 멈춰 서서 지켜본다. 여기서 방점은 폭력이 아니라 고통에 있다. 이때 임권택 은 언제나 먼저 기회를 준다. 그게 너무 손쉽게 얻어져서 마치 보상을 받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그런 다음 예기치 않은 방법을 동원해서 다시 그 기회를 뺏어간다. 이때의 상실은 단지 주인공에게 깊은 실망감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그걸 보고 있는 쪽도 그 쾌감을 빼앗아가 버린 다음 냉담한 태도를 취하는 영화 앞에서 순간적인 자신의 기쁨을 부정당한 것에 대해 약간 어리둥절해진다. 임권택은 그의 영화 전체에서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동일한 방식의 미끼를 사용한다. “내 눈을 가려라. 내가 아무리 권총의 명수라지만 눈을 가리고는 별 수 없다는 걸 알테지.” “어떠냐 몸을 허락할테냐 놈이 죽는 걸 볼테냐.” “허락하겠어요.” 여기서, 바로 여기서 아마도 임권택 의 영화 중에서 가장 참혹한 시퀀스가 기다리고 있다. 약간의 부연설명. 영화에는 다른 예술에서 보기 힘들만큼 종종 고문에 심취해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래서 어떤 시퀀스는 그 전체를 고문 장치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영화에는 그런 순간이 있다.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 데도 고문을 오랜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한 오랜 시간 동안, 전시하면서 즐긴다. 그걸 보는 쪽도 동참한다고 간단하게 대답하긴 힘들다. 그렇다고 그걸 견뎌야만 한다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는 고통과 즐거움 사이에서 구경이라는 다소 복잡한 자리가 문제가 된다. 영화에서 고문은 이차 세계대전의 발명이다. 그 이전에는 고문을 영화는 외설적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지나치게 실재에 다가간다고 여겼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이 시작된 < 무방비도시 >에서 로셀리니가 그렇게 공들여 고문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셀지오 레오네는 자신의 웨스턴에서 예외 없이 고문 장면을 포함시키고 있다. 그런데 존 포드의 웨스턴에서는 이따금 고문의 결과를 전시하긴 하지만 그 과정을 본 기억이 없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고문은 대부분 로마를 무대로 한 사극에서 벌어진다. 미국이 포함되지 않은 역사의 산물. 약간 산만하게 이야기하자면 일본영화에서는 닛카츠 고문 장르영화가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거의 경이에 가까운 본디지 기술. 한국영화사에서 기이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이상할 정도로 만주 웨스턴에는 고문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고문은 웨스턴 장르의 컨벤션이 아니다. 단지 그것을 육체의 시련이라거나 영웅의 신화적 부활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꺼림칙하게도 이야기의 요구에 따라서라기보다는 그 묘사에 심취한 것처럼 보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혹은 21세기 영화에서 다큐멘터리들은 갑자기 고문에 끌리기 시작했다. 리티 판의 < S 21; 살인기계 >와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 액트 오브 킬링 >의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고문의 서로 다른 재연과 재현의 간극. 나는 서투르게 여기서 사드 혹은 마조흐를 끌어들이려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들이라면 훨씬 잘 (어쩌면 가장 잘) 해낼 것이다. 블랑쇼와 푸코는 사드에게 이끌렸고 들뢰즈와 바르뜨는 마조흐에 더 매혹되었다. 나는 다만 한 가지 설명만을 빌려오고 싶다. (몹시 위험한 표현이지만) 고문은 리비도의 경제학과 아주 가깝게 있다는 것이다. 먼저 고문 장치의 시퀀스에 관한 묘사. 잔인한 묘사. 마천평은 부하들에게 향숙을 끌고 오라고 명령한다. 그런 다음 네가 사랑하는 남자, 나를 거부하고 기다리고 있는 남자, 그래서 칼을 들고 “절개를 지키면서” 목숨을 기다리는 그 남자를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향숙이 끌려간 지하의 고문실에는 상하이 박에 붙잡혀 있다. 이때 상하이 박은 남은 눈마저 훼손당해서 오른 쪽 눈에서 흐르는 피로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으며 양쪽 팔을 밧줄로 묶어 마치 만세를 부르는 듯한 자세로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누구라도 이 전시 앞에서 얼어붙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학대와 고통으로 육체를 매다는 것. 거기 매달려있는 고기와 뼈와도 같은 상하이 박. 마천평은 향숙을 구석으로 몰아세워 놓은 다음 부하들의 호위 아래 호기롭게 의자에 앉는다. 상하이 박은 앞이 보이지 않긴 하지만 목소리만을 듣고도 지금 이 자리에 온 여자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마천평도 이 상황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황을 즐기고 싶어 한다. 마천평은 마치 상하이 박의 처지를 조롱하기라도 하듯이, 그를 흉내 내기라도 하듯이, 자신의 두 눈을 가리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한다. 그런 다음 스스로에게 천하의 명사수인 나도 두 눈을 가린다면 생명을 장담할 수 없지, 라고 말하고는 상하이 박을 향해서 총을 쏜다. 처음 한 발은 왼쪽 허벅지에 맞고, 두 번째는 옆구리에 맞고, 세 번째는 오른쪽 어깨를 관통한다. 흐르는 피. 가까스로 참는 신음소리. 여기에는 잔인한 박해와 어수선한 감정이 피와 리비도 사이에 뒤범벅이 되어간다. 향숙은 마천평의 눈먼 사격으로부터 사랑하는 남편 상하이 박을 구하기 위하여 스스로 옷을 벗을 테니 제발 멈춰달라고 간청한다. 자발적인 항복. 마천평이 얻고 싶어 하는 유일한 승리. 그제서야 마천평은 총질을 멈추고 자기 눈을 가린 수건을 풀게 한 다음 향숙에게 옷을 하나씩 벗으라고 명령한다. 이제 마천평이 향숙에게 얻고 싶어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다. 사랑을 포기할 때 거기서 사드적인 냉혹함이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이때 이상한 것은 그의 부하들이 주변에 늘어 있는데도 그들을 물리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천평은 향숙에게 모욕을 안겨주는 광경을 자기의 부하들 앞에서 상연하는 무대처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마천평은 앞을 보지 못하는 상하이 박을 위해서 향숙이 하나씩 옷을 벗는 모습을 마치 중계방송 하듯이 상세하게 설명한다. “향숙이가 옷을 벗는다. 나와의 향락을 위해서 옷을 벗고 있는 거야. 알몸이 드러나고 있구나. 상하이 박. 마지막 옷이 벗겨져 간다. 마지막 옷이 벗겨져 가고 있어. 저 아름다운 육체. 저 대리석같이 매끄러운 알몸이 드러나고 있구나. 저 육체” 이 대사를 하는 동안 향숙은 하나씩 옷을 벗는다. 물론 이 장면에서 우리 시대의 관객들은 1970년의 단조롭고 갑자기 수줍어진 검열(과 대중들의 도덕적 기준)을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 검열과 도덕적 기준이 연대기적으로 점점 완화되거나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 1960년대 한국영화를 보면 명백히 십 년 후의 영화들보다 더 관대하고 노골적이며 개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종종 훨씬 음란하다. 우리는 영화에서 고문 장치에 동시대의 검열과 도덕이 포함되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기술적인 약점 때문에 이 잔인한 가학성에 쉽게 몰입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남정임 은 이 장면에서 옷을 벗는 연기를 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으며 향숙이 옷을 벗는 장면은 그저 얼핏 보아도 대역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옷을 벗는 그녀를 카메라가 쳐다볼 때마다 화면이 흐릿해지는 것(out_of_focus)은 상하이 박의 눈이 훼손을 당한 (미학적인) 이유 때문인지(point_of_view_shot) 아니면 그녀가 남정임이라는 사실을 (실용적인 이유로) 하여튼 눈속임하기 위해서인지 설명하기 난처해진다. 하지만 이 장면의 장치가 만들어내는 효과마저 감추지는 못한다. 고문 장치의 시퀀스가 작동시키는 핵심은 그 장면이 얼마나 난잡하고 음란한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조잡한 포르노에서는 왜 그 장치가 거의 멈추거나 작동하지 않는가) 그 묘사를 성립시키는 지식의 기술에 놓여있는 것이다. 왜 욕망은 욕망 그 자체로 작동하지 않는가. 왜 쾌락은 쾌락 그 자체로 작동하지 않는가. 어디서 고통이 전이되기 시작하는가. 거기에 놓인 관계 사이의 권력은 이 모든 자리를 얼마나 일시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드는가. 그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효율성은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 그 안에서 육체의 주권은 어떻게 양도되는가. 그 양도가 어떤 기쁨을 분배하는가, 혹은 독점하는가. 약간의 배경. 장치(le dispositif)라는 말은 구조주의자들 사이에서 서로 겹치면서 또한 이질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다소 조심스럽다. (그리고 이 말은 메츠를 경유하여 장-루이 보드리와 장-루이 꼬몰리 사이에서 l’appareil와 다시 구분을 해서 약간의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논의는 우리의 설명과 다소 멀리 있다) 알튀세와 푸코, 들뢰즈, 리오타르, 보들리야르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말을 사용하였다. 조르조 아감벤은 푸코가 이 말에 진정하고 고유한 의미를 부여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정의에 근접한 적이 있다면서 약간의 인용을 한다. “(푸코의 인터뷰에 따르면, 아감벤의 인용) 저는 장치가 본성상 전략적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만, 이것에 의해 전개되는 것은 장치가 힘 관계에 대한 합리적이고 계획적인 개입이라는 것입니다. (중략) 지식의 여러 유형을 지탱하고, 또 그것에 의해 지탱하는 힘 관계들의 전략들, 그것이 장치입니다” 나는 아감벤처럼 장치라는 말을 따라서 기독교 담론과 라틴어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여력이 없다. 다만 이 말을 빌려오고 싶다. 장치는 언제나 결합을 통해서 작동하며 그러므로 여기에는 몇 가지 그림이 항상 서로 겹쳐져 놓여있기 때문에 하나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여러 가지의 서로 다른 관계들 사이의 조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만일 이 시퀀스가 고문 장치라면 우리는 그 효과에 단순하게 개념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조심스럽게 그것을 구성하는 방식들의 중층구조를 하나씩 잘라내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미 설명한 대로 이 시퀀스에는 몇 개의 장면이 겹쳐져 놓여있다. 여기서 무엇이 당신을 가장 먼저 불편하게 만드는지를 질문해보고 싶다. 첫째, 사랑하는 아내가 발가벗기고 있는데도 속수무책으로 사지가 묶여있는 상하이 박. 둘째, 게다가 그걸 볼 수도 없게 양쪽 눈 모두가 훼손된 상하이 박. 그 둘 위계질서를 세운다면 어느 쪽이 당신을 더 불편하게 만드는가. 셋째, 그런 상하이 박에게 옷을 벗는 향숙의 모습을 하나씩 알려주는 마천평. 넷째, 그런 마천평의 목소리를 피하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들어야 하는 상하이 박. 만일 상하이 박이 다른 방에 있었다면 동일한 상황이 더 불편했을까. 다섯째, 치욕스럽게도 사랑하는 남편을 앞에 두고 그녀의 오빠를 함정에 빠트리고 게다가 사랑하는 남편의 두 눈을 멀게 만든 마천평의 요구에 자발적으로 응할 수밖에 없는 향숙. 여섯째, 게다가 그걸 바라보고 있는 마천평의 부하들의 시선마저도 견뎌야 하는 향숙. 말하자면 세 개의 시선. 불구의 시선. 그 시선을 대리 보충하는 목소리의 시선. 그 곁에서 그걸 구경하는 시선. 나는 여기에 세 가지를 더하고 싶다. 아직도 남은 게 있나요. 물론이죠. 일곱째, 끝내 향숙의 사랑을 얻지 못해서 이런 고문의 방식으로 그녀의 육체를 구걸해야 하는 마천평. 여덟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향숙‘으로부터’ 우위에 서 있는 상하이 박에 대한 마천평. 여기서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는 세 번째와 완전히 반대의 자리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아홉째, 그리고 이런 장면을 참고 옆에 서서 지켜보고 서 있어야 하는 부하들. 당신은 마지막 지적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들은 이 장면이 연출되는 순간의 관객이자 덤으로 우연히 참관하게 된 구경꾼들이 아닌가요. 물론이죠. 하지만 그들이 반드시, 라고 할 만큼 정말 즐기고 있었던 것일까. 마지막 순간, 그러니까 향숙이 알몸을 가리고 있는 마지막 옷을 벗으려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김승이 보상금을 요구한다는 부하의 전갈이 도착한다. 제시간에 도착한 메시지. 그러자 마천평은 고문을 중단하고 그를 만나러 나간다. 이때 별다른 지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도 마천평이 나가자마자 그의 부하들은 발가벗은 향숙에게 마치 그런 당신을 보고 있는 게 불편합니다, 라고 말하듯이 옷을 건네준다. 지금 여기는 지하실이고, 이 영화 속의 가장 나쁜 악당의 소굴이며, 이들은 그 악당의 부하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 예의 바른 태도는 몹시 기묘하게 보인다. 좀 더 실용적으로 설명하면 만일 그 제스처를 (정확하게 뒤에 서 있는 여러 명의 출연자들 중 그 배우에게 연출의 쪽에서) 지시하지 않았다면 촬영이 끝난 것도 아닌데 그런 동작을 취할 리가 없다. 이건 동선의 문제이며 이 시퀀스의 고문 장치의 일부이다.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지 모른다. 여기에는 향숙의 시선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하나씩 옷을 벗는 그녀는 마천평(과 그의 부하들)의 시선과 목소리의 대상이 되고,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상하이 박의 거의 희미해서 보이지 않는 남은 한쪽 눈의 시선의 대상이자 마천평의 목소리를 경유하여 청각적인 대상이 되지만 향숙 자신은 마치 묘사의 대상으로 던져진 모델처럼 어떤 반응도 없이 차분하게 옷을 하나씩 벗어나간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추가할 생각이다. 마찬가지로 향숙이 발가벗기고 있는 동안 마천평의 부하들의 시선도 완전히 제거되어 있다. 물론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영화이론의 시선과 동일시에 관한 (따분할 뿐만 아니라 기계적인) 이론이 준비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없다. 고문 장치로서 이 시퀀스가 작동하기 시작할 때 수많은 시선이 교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영화의 문법 안에서 향숙이 옷을 벗는 과정을 보는 시선은 단 하나, 마천평의 시선뿐이다. 심지어 이 시선의 수사학에는 미처 생각지 못하게도 우리들의 시선마저 차단당했다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상황과 시선 사이의 불일치가 있다. 공개적인 일종의 스트립쇼. 하지만 불가능한 시선, 사라진 시선, 외면한 시선 사이에서 가능한 유일한 시선. 그런데 우리들마저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오직 마천평만이 시선을 독점하게 된다. 그런 다음 마천평은 자신이 본 지식을 청각 기호로서의 언어로 바꾼다. 사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미 지적한 것처럼 이때 마천평은 묶여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상하이 박을 괴롭히려는 것이 원래의 그의 목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그 과정 자체가 자기 자신에게도 고통스러운 자기 경멸의 과정이라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마천평은 향숙에게 청혼을 했었고, 그가 상하이 박에게 원한을 품게 된 것은 그녀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만일 마천평이 향숙에게 아무 감정이 없으며, 오직 상하이 박의 아내이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괴롭히는 것이라면, 그는 구태여 그럴 이유가 없다. 그는 즉각적으로 폭력을 동원했을 것이며 상하이 박의 다른 한쪽 눈을 멀게 만드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차라리 향숙에게 폭력적인 성행위를 시도하고 그걸 바라보게 만드는 편이 훨씬 손쉬울 것이다. 지금 마천평은 구태여 일종의 상연의 형식을 빌려 연출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때 질문은 이 연출의 가설을 뒤흔든다. 그런데 여기서 마천평의 진정한 목표는 상하이 박이 아니라 향숙을 향한 것이라고 말해야 옳은 것이 아닐까. 이 고문 장치 시퀀스의 괴상한 점은 가장 외곽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이는 향숙이 사실은 이 모든 장치의 고정점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마천평이 상하이 박을 괴롭히기 위해 향숙이 옷을 벗는 과정을 서술하는 것은 동시에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내면의 욕망을 고백하는 형식을 취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그에게 그걸 요구한 적이 없으며, 게다가 그는 지금 두 사람, 상하이 박과 향숙의 생명에 대한 권리마저 쥐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그가 하고 있는 행위는 그 세 명 중에서 가장 열등하게도 상하이 박과 향숙을 앞에 두고 자기 내면을 마치 자백하듯 설명하는 중이라는 사실이다. 왜 이런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여기 이 장면의 괴이한 점이 있다. 원래 고백은 고문의 결과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정작 고문의 가해자가 그 역할을 떠맡고 나선다. 가장 큰 오해는 자기를 고백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에서 자기 권력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고문 장치가 재현하는 외양에 속으면 안된다. 이 장면을 욕망에 관한 교환의 경제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좀 더 자명해진다. 여기서 마천평은 사실상 상하이 박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구태여 있다면 그가 얼마나 심정적으로 괴로운지를 표현해달라는 것이 그 전부이다. 그러므로 그가 상하이 박의 또 다른 눈마저 훼손시킨 것도 그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장면에 대한 이중의 결함을 안겨주기 위한 것이 고작 전부이다. 사지를 묶어놓는 것, 그리고 앞을 보지 못하는 것. 종종 영화에서 고문 장치들의 시퀀스는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사용된다. 거기 숨겨져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그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전술들. 혹은 함정들, 거짓말과 진실 사이의 교묘한 뒤섞임. 그 안에서 가해지는 고문. 그것을 견뎌내야 하는 육체. 하지만 육체 안의 신경조직들의 한계. 종종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는 고문의 강도. 그런데 그 고문은 그 진실을 위해서 효과적일까. 그때 이 모든 성가신 노력을 조금도 마다치 않고 기울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그 안에 진실을 끌어내는 과정의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비밀이 없다. 자, 당신이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여기서 논하는 것은 고문의 메커니즘이 아니라 고문 장치의 퍼포먼스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크리스 버든 다소 잔인하긴 하지만 이 고문 장면을 하나의 고문 장치 시퀀스로서 마치 인스톨레이션을 감상하듯이 바라본다고 가정해보자. 이미 우리는 수많은 고문 퍼포먼스를 알고 있다. 1963년 캐롤리 슈네만의 <아이 바디Eye Body>. 1965년 3월 21일 오노 요코는 뉴욕 카네기홀에서 관객들에게 자기 옷을 잘라내라고 요구했다. 1974년 크리스 버든은 급기야 폭스바겐 차 위에 누워서 예수처럼 자기 손에 못을 박고 달리게 한 ‘악명 높은’ 퍼포먼스 <못 박힌Trans-fixed>을 실행했다. 나는 < 애꾸눈 박 >이 이런 퍼포먼스들과 어떤 직접적인 유대관계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민하고 때로 유행에 민감한)주변의 영화들은 작업들에 영향을 받았고, 그걸 본 관객들은 간접적으로 이 퍼포먼스를 경험하기 시작했으며, 거기서 다시 영화는 그순간을 시스템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런 다음 반복해서 만들어지는 장면들 사이의 변주. 우리는 장치가 네트워크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임권택 은 그 누군가의 고문 장치를 보면서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고통과 이상한 쾌락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충분히 생략하거나 좀더 간소하게 만들거나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장면을 거의 장식 과잉이라는 인상을 불러일으킬 만큼 하나의 시퀀스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명백히 여기에는 금기에 관한 심미적인 관점이 있다. 이 장면에서 마천평은 우리와 정확하게 동일한 태도를 (매우 역겹긴 하지만) 취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시간을 들여가며, 공을 들여서, 자신의 감흥을 묘사하면서, 그렇게 감상하고 있는 중이다. 그때 향숙의 제스처는 마치 미술품처럼 자기의 행위를 퍼포먼스 하는 것처럼 보인다. 향숙 자신이 몹시 굴욕적인 이 상황을 감내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건 전적으로 우리들의 (도덕적) 상상이다. 베일에 가려버린 반응. 향숙의 쪽에서는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러나 임권택은 그런 다음 향숙의 어떤 반응도 찍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묵묵하게, 어떤 저항도 없이, 그저 명령이 내려지자마자, 그래서 자신이 그걸 하겠다고 한 다음, 어떤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옷을 벗어나간다. 물론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마천평에게 더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은 향숙이 옷을 하나 벗을 때마다 저항하는 것이며, 그럴 때마다 상하이 박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향숙은 더 큰마음의 죄의식을 갖고 속죄하듯이 명령에 굴복하고 옷을 벗는 굴욕을 감수하는 것이다. 고문 장치의 확대재생산. 하지만 임권택 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때 가장 바보 같은 반문은 이유를 묻는 것이다. 우리는 그 효과에로 질문을 돌려야 한다. 임권택은 고문 장치를 사용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처럼 그걸 확장하는 대신 여기서는 그걸 축소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세 가지 다른 판본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향숙이 이 과정에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상하이 박의 무능력에 실망하고 갑자기 마천평의 편에 서서 함께 상하이 박을 조롱하며 마치 그에게 전시하듯이 (마천평의 표현을 빌리면) “향락을 즐기는 것”이다. 그런 다음 마천평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상하이 박을 처치하고 마천평과 향숙 둘이서 목장을 사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물론 여기 외전이 있을 수 있다. 그러자 마천평이 흥미를 잃고 둘 모두를 처치한 다음 그 장소를 떠나는 것이다) 다른 또 하나의 판본은 자기에게 부여된 치욕을 참지 못하고 향숙이 (방법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스트립을 중단하고 자살해버리는 것이다. 마지막 판본은 반대로 상하이 박이 자살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임권택 은 이 세 가지 가능성을 갑자기 중단시키고 마천평을 김승에게로 보낸다. 만일 김승의 요구가 없었다면 우리는 고문 장치의 끝이 어떻게 종결되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마찬평 자신이 멈추지 않는 한 이 고문 장치는 중단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 판본은 단지 상하이 박에게 절망적이라기보다는 영화를 보는 우리들을 당황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장면에서 고문 장치가 작동한 것은 향숙의 불복종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하이 박과 마천평 사이를 오가면서 고통과 쾌락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향숙이 자기의 태도를 바꾸면 고문 장치에 남겨진 것은 상하이 박과 우리들뿐이며, 그런 다음 수순은 이제 더 이상 고문을 할 필요가 없어진 상하이 박을 괄호 치자 우리만 남게 된다. 우리만 남는다고요? 우리가 아니라면 누가 또 괴로워하겠는가. 그때 고문 장치는 영화 안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장치로 남아서 계속해서, 심지어 영화가 끝난 다음에조차, 멈추지 않고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두 번째 판본은 고문 장치를 멈추게는 하겠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마천평에게 상하이 박은 오로지 향숙 때문에 필요했기 때문에 그녀가 괄호를 치는 순간 첫 번째 판본과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그 둘은 효과가 다르다. 적어도 우리에게 향숙은 상하이 박에 대한 사랑을 지킨 것이며 동시에 그녀 자신의 (마천평의 표현을 빌리면) “절개를 지킨” 것이다. 그때 고문 장치는 마천평의 기대와 달리 향숙과 상하이 박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서 활용된 것이다. 물론 복수가 남은 김승에게 떠넘겨지는 것이 불만스럽긴 하지만 이 판본은 고전적인 신파극의 감정에 충실해지기는 할 것이다. 세 번째는 단순히 두 번째 판본의 순서를 바꾼 반복이 아니다. 상하이 박이 자살을 선택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결정이 향숙에게 넘겨진다. 그녀는 이제 상하이 박이 사라졌기 때문에 사실상 “절개를 지켜야 할” 알리바이가 사라진다. 만일 지켜야 한다면 그건 일종의 의무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향숙은 그 의무감으로 뒤따라 자살을 할 것인지, 아니면 현실적인 선택에 따라 잠시 동안 상하이 박을 애도한 다음 마음을 바꿔 이제 마천평과 “향락을 즐길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상하이 박은 자기의 죽음을 통해서 그 결정을 고스란히 향숙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를 주고 있다. 의무라는 자유와 의무 안의 자유 사이의 선택. 이때 이 둘 사이에 놓인 비대칭. 세 가지 선택이 놓여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고문 장치를 멈춰 세울 때 내가 보는 것은 임권택 이 이 장치를 다루는 기술이다. 요점은 명확하다. 거기서 한발만 더 나아가면 향숙의 마지막 옷이 벗겨진다. 임권택은 향숙이 도덕과 윤리 사이의 갈림길에 서는 순간에 갑자기 고문 장치를 멈춰 세운다. 말하자면 심미적 차원으로서의 고문 장치. 그러므로 고통(과 쾌락)은 그것을 즐기는 자리(의 끝)에서 멈춘다. 만일 그걸 더 밀고 나아가면 임권택은 단지 등장인물들의 곤궁이 아니라 고문 장치에 내재되어 있는 반격을 감당해야만 할 것이다. 여기서 이 문제를 고문 장치에서 작동하는 두 남자 사이의 문제로 축소했다고 설명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반대로 임권택은 향숙을 설명할 수 없는 존재로 데려다 놓은 다음 필사적으로 그녀가 이 장치 안에서 작동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중인 것이다. 말하자면 여기서 고문 장치는 한편으로는 오작동을 일으키고 (마천평의 고백) 다른 한편으로는 도중에 중단된다. 혹은 향숙의 마지막 옷을 벗기는 데 실패한다. 고문 장치는 물론 권력의 상황에서 육체를 다루는 기술에 관한 심미적 수사학의 시선이다. 그러나 고문 장치에 이르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개입을 시작할 때 그걸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멈추느냐라는 문제가 다시 중심으로 다가서게 될 것이다. 그때 임권택은 차라리 장치를 중단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도덕과 윤리 사이의 갈림길로 들어서는 것을 막고 있다. 그가 이 중단을 논리적이거나 혹은 분석을 바탕으로 해서 결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문제가 몹시 불편하다는 것만은 거의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있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 애꾸눈 박 >이 몹시 하찮게 보이는 만주웨스턴 영화의 한 편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이 장면에 이르렀을 때는 자신을 끌고 가고 있는 이 장치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문득 필사적이 된다, 는 것이 신기해 보일 정도이다. 그런 다음, 적어도 여기서 그런 다음, 임권택 은 자기가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그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 과정은 몹시 느리고 때로 우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임권택은 계속해서 선택에 관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글은 임권택의 선택에 관한 기술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계속) 1970년 100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신창흥업 각본 유동훈 촬영 서정민 조명 서병수 편집 김창순 음악 정윤주 박노식 상하이 박 남정임 김향숙 최봉 김승 독고성 마천평
“그때는 최고로 안 팔리는 감독이었어요, 그 무렵은 영화가 불황이었고, 하여튼 없었어요, 영화 하자는 사람도 별로 없고, 나도 그 시기에 크게 열을 내서 하고자 하는 의욕도 잃었고, 그래서 영화가 걸리면 그냥 적당히 하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러던 때였어요. 심리적으로도 힘들었고, 그 전에는 영화를 만들면서 다른 데서 안 해본 것도 해보고 했는데, 전혀 그럴 생각도 없고, 그 무렵에야 비로소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 삶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아마 내 삶을 자각하면서 그래서 만든 첫 번째 영화가 < 잡초 >(1973)일 거예요, 그래서 이 영화가 이전에 만든 영화들 사이에 처음으로 어떤 공백 같은 것이 생겼어요. 그건 내게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단지 영화를 준비한다기보다는 심리적인 시간이라고 할까” 없었다는 말. 그 말에 감도는 차가운 감정. 거의 희미해진 기억. 마치 의도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종종 외면하려는 듯한 제스처, 혹은 그로부터 취하려는 일정한 거리. 할 수만 있다면 더 멀리. 그렇게 그 이전 영화들에 대해서 시종일관 무뚝뚝하게 대답하다가 <잡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치 맑은 정신이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씩 마치 어제 일처럼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반문하듯이 질문했다. “그렇다면 50편의 습작을 만들었다고 표현해도 되겠습니까?”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단연코 습작이었어요” 1973년 그해 임권택 은 50번째 영화 < 잡초 >를 만들었다. 여기서 만들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 모두이다. 하나는 그 자신이 연출했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신이 제작했다는 뜻이다. 이 영화는 그 자신이 제작한 첫 번째 영화이다. (그때) 나는 질문을 하다 말고 여기서 잠시 멈추었다. 그런 다음 그 결정을 느껴보고 싶어졌다. 이미 49편을 만든 영화감독. 1962년에 첫 영화를 만든 다음 12년이 되던 해. 자신의 삶, 그 삶의 진동, 감독으로서의 자신이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를 성찰해보기 시작한 순간과의 대면. 말 그대로 창조의 새로운 도약. 모든 예술가들이 그 자신이 예술가임을 자각하는 필연적인 시간. 말하자면 절대적인 요구. 그런 다음 자기가 만들어낸 창조의 세계가 홀로 서게 만드는 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잡초>를 볼 수 없다. 임권택 감독님 그 자신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다. 이 영화의 스틸을 볼 때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어디선가, 이를테면 다른 영화를 보기 위해서 동시상영을 보던 중에, <잡초>를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 대신 나는 몇 차례이고 이 영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거의 절망적인 상황. 비참한 지경. 그때 임권택 은 놀랍게도 자기에게서 가장 멀리 있는 힘을 끌어당겼다. 영화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 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대결. 나는 그것이 단번에 성공적이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영화는 비로소 영화가 되는가, 라는 질문. 임권택은 (그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장 바닥에 내려앉았다고 판결문을 내린 다음 그 질문을 끌어안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그는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이 질문을 꺼내든 것이 아니다. 반대로 지금 자기의 자리를 부정하기 위해서 이 질문을 끌어당긴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공격하기로 결심하였다. 공격?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때 그가 공격하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제까지의 모든 습관. 습관? 우리는 영화를 만드는 일이 종종 집을 세우는 일에 비유된다는 자크 리베뜨의 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프레임이라는 사각형. 그것 앞에 세워진 네 개의 면. 그 안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동선. 그때 어디서 어디를 보느냐의 문제. 방향. 그 안에 세워진 수많은 문들. 어느 문이 열릴 것인가. 어느 문으로 들어올 것인가. 그러나 이때 집이 세워지면 그 집은 동시에 연출의 감옥이 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여기에 일단 갇히면 그때부터 이 집에서 맴돌기 시작한다. 예술에서 가장 두려운 말, 안주. 우리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종종 자기 집을 불태우고 낯선 땅에서 새로운 집을 끊임없이 세웠다는 이야기를 떠올려야 한다. 말하자면 모험. 그러나 대부분 그냥 집에 머물 것이다. 가까스로 세운 집. 자기가 세운 집. 하나의 집이 세워질 때 그 안에 들어서는 순간을 상상해보자. 이때 영화는 그 집에서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의 반복이다. 그리고 반복은 곧 습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예술에서 좋은 습관이란 무엇일까. 그런 건 없다. 오로지 나쁜 습관만이 있을 뿐이다. 나쁜 습관과 더 나쁜 습관. 그때 더 나쁜 습관이란 무엇일까. 그건 자기 집에 살면서 남처럼 살고자 흉내 내면서 자기 집을 남의 집의 모습으로 끊임없이 고치고 부수고 그런 다음 자기의 집 위에 다시 남의 집을 세우면서 그 안에서 남의 집에 사는 시늉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순간 작동하기 시작하는 예속성. 그 무시무시한 힘. 두뇌와 의지 사이의 선을 잘라낸 다음 의지를 복종시키기기 시작하는 구조들. 이미 결정된 방. 임권택은 자기 집에 살면서, 그 집에서 48번, 혹은 49번이나 살면서, 점점 더 지쳐가면서, 이 집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고 그 자신에게 말했다. 살 수 없다는 말. 그때 그 말은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다는 뜻이다. 다시 한 번 1973년 그 해. < 잡초 >를 만들기로 결심하기 직전. <잡초>앞에 놓여있는, 하지만 같은 해에 만들어진 두 편의 영화. < 대추격 >, 혹은 < 장안명기 오백화 >. 나는 둘 중 어느 쪽이 먼저 인지 알 수 없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나는 임권택이 48번, 혹은 49번째 살았던 그 집에 가보고 싶어졌다. 그가 정말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워진 영화, 단지 실패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 그 집이 자기를 잡아먹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어쩔 수 없이 만든 영화, 하지만 그런 다음 더 이상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영화. 어떤 기쁨도 없이, 심지어 고통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그렇게 그 어디서도 힘을 끌어낼 수 없을 때, 그런 다음 삶이 무언가에 복종되어버린 자리. 나는 <장안명기 오백화>를 선택했다. 왜냐하면 <대추격>은 지금 우리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라진 임권택의 24편의 영화중의 하나. 영화의 줄거리는 일제 강점하 경성의 유명한 요정 명월관에서 시작한다. 이 말은 1973년 한국영화들 사이에서 아무데서나 시작한다는 뜻이다. 아무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이름 명월관. 1909년 경성 종로구 세종로에 세워진 다음 1918년 5월 24일 화재로 소실된 이후 돈의동 139번지에 다시 세워진 요정. 1919년 기미독립선언 이후 종종 독립운동 지사들의 연락처로도 사용되었다고 알려진 장소. 하지만 사실상 영화 안에서 의미가 없는 지표. 다소 지루할 지라도 나는 약간의 첨언을 더해서 이 영화의 줄거리를 먼저 소개하고 싶다. 아니, 차라리 한국영화사의 저편에서 불러내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임권택 자신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 사라진 기억. 죽어버린 기호들. 몇 차례이고 질문했을 때마다 심지어 내가 그런 영화를 찍었나요, 라고 반문했던 영화. 오로지 그 시간에만 활동했던 이미지들. 기억으로부터 과거로의 추락. 현재와 공존하기를 포기한 영화. 그러나 역설적인 의미로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 잡초 >를 만들 수 있었을까. 나는 차라리 여기서 그 포기의 배후에 숨어있는 부정적인 힘을 알고 싶다. 그러므로 다시 이야기 안으로. 그저 이 영화가 요구하는 대로 볼 생각이다. 최칠용과 영국 최칠용과 현주 신운일과 정미 박노운과 기홍 명월관에는 그날 저녁 술시중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장안의 한량들에게 자랑거리가 된다는 명기 오백화가 주름잡고 있다. 일제 강점하. 요정, 장안의 다섯 명기. 고백화 기홍, 태백화 정미, 김백화 현주, 최백화, 유백화. 그녀들은 아무나 수청을 들지 않는데 심지어 조선총독부 총독의 부름도 거절했다고 한다. 그녀들은 그날, 그러니까 이 영화가 시작되는 첫 장면의 그날, 사이토 경무국장의 술자리 수청을 들기 위해 그 모습을 보인다. 그런 다음 위기의 시작. 첫 도미노. 김백화 현주의 오빠 영국은 상해에서 활동하는 독립군인데 경성에 잠입해 들어왔다가 그만 체포되어 한국인 고등계 형사 최칠용에게 고문을 받는다. 독립군과 조선인 형사. 신념을 따른 희생자들과 배신을 한 앞잡이. 역사로부터 장르에로의 이행. 그 사이에 개입하는 균열. 차라리 드라마의 복선. 그런데 최칠용은 원래 학생시절 경성제대 법대를 다니며 훗날 변호사가 되어 조선인을 위해 일하겠다고 맹세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자신의 말을 따르면) “일본인보다 더 악랄하게 조선인을 괴롭히는” 고등계 형사가 되었다. 그래서 김백화 현주는 최칠용의 후배이자 음으로 양으로 조선인의 편에서 오백화를 돕고 있는 청년 신운일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간다. 하지만 최칠용은 명월관의 술자리에서 그의 양심에 호소하는 신운일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번에는 신운일의 딜레마. 신운일은 친일파인 중추원 원로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친일행적에 분노하며 부끄럽게 여긴다. 아버지와 아들의 분열. 각자의 자리에서 마치 한 쌍처럼 이루어진 대립적인 인물들. 과도하리만큼 민족주의적 열정에 가득 차 있는 인물들. 결국 대의적 관점 아래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물론 아직은 아니다. 또한 그는 오백화 중의 한명인 태백화 정미와 연인 사이이며 그녀에게 결혼을 청하지만 정미는 자신이 기생의 신분이라 지금의 연인 관계에 만족한다면서 완곡하게 거절한다. 신분의 차이. 이제 막 조선시대가 끝났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근대. 물론 그것만으로는 이야기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이중의 곤란함이 여기에 개입하여 이 가련한 연인들의 결정을 재촉한다. 신운일은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집안이 친일의 충성을 맹세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본 여자와의 결혼을 강요당하고 있으며, 정미는 명월관에 드나드는 사이토 경무국장의 잠자리 수청을 종용받고 있다. 갑작스러운 새로운 인물. 이야기의 바깥으로부터, 그런 다음 바깥으로의 새로운 방향. 상해 임시정부로부터 조선총독부 총독의 생일에 맞춰 창경궁에 모이는 중요인사들과 친일파를 암살하라는 임무를 띠고 박노훈이 경성에 잠입했다가 총상을 입고 고백화 기홍의 집에 숨어든다. 모든 인물들이 곤궁에 빠져서 거의 빠져나갈 길 없을 것만 같은 일제 강점하의 경성에서 열린 새로운 도주의 선으로서의 상해. 그러자 갑자기 이야기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들 모두에게 상해로 떠날 구실을 만들어주기 시작한다. 장황하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우연들의 연속. 우여곡절 끝에 박노훈은 중국인으로부터 폭약을 구해서 신운일과 함께 창경궁에 잠입하고, 그 시간에 정미는 삼엄한 경계를 풀기 위해 책임자인 경무국장 사이토와 함께 온천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그를 총으로 사살하고 그녀 자신도 자살을 하고, 최칠용이 사실은 이제까지 그의 고등계 형사 노릇은 조선인의 편에서 돕기 위한 그 자신의 고육지책이었으며 게다가 이 모든 행동이 김백화 현주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지만 그만 (최칠용 자신이 구해준, 그러나) 그 사실을 알지 못한 현주 오빠 영국의 손에 죽고 만다. 거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한 사건의 사슬들. 암살에 성공한 박노훈과 신운일은 죽은 정미를 제외한 오백화와 함께 상해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아직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니다. 일본군의 추격 끝에 이들을 따돌리기 위해 신운일이 이들 모두를 위해서 대신해서 죽고 박노훈과 남은 네 명의 오백화가 배를 타고 상해로 떠난다. 한 남자와 네 여자. 멀어져가는 배, 혹은 새벽 강물에 실려 사라져가는 배. 말 그대로 난처한 입문. 이 줄거리를 몇 번을 다시 읽고 반복해서 영화를 보아도 결국 남은 인상은 기이하리만큼 그 안에서 서로의 인과관계가 거의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이 영화의 전술적인 규칙들은 무엇일까. 거기서 무엇이 멈춘 것일까. 아니, 아무 것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고 그런 다음 인물의 위상관계를 달리하여 저기서 여기로 옮겨올 때, 종종 느껴보는 하강과 상승, 추락과 도약 대신, 거의 모험담에 가까운 < 장안명기 오백화 >를 보는 내내 느끼는 거의 일관된 상태는 이 장면이 다음 장면들과의 관계 사이에서 자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재빨리 이 영화를 내려놓는 대신 1969년에 < 황야의 독수리 >를, 그리고 이듬해 < 속눈썹이 긴 여자 >, 그런 다음 1971년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와 < 둘째 어머니 >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즐거움을 생각한다. 이 영화들이 표준적 관점에서 좋은 영화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즐거운 영화들이다. (잠시만 기다리면, 나는 차례로 그 이유를 쓸 것이다) 말하자면 긍정의 힘. 바르뜨라면 누군가 말하기 전에 선수를 쳐서 어떤 변명도 하지 않으며, 지루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 종종 시선을 멈추게 만드는 장면들이 거기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나는 그 표현을 사랑한다. 이때 이 네 편의 영화는 서로 완전히 다른 장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만주) 웨스턴. 스릴러. 다찌마와리. 신파 멜로드라마. 네 개의 장르. 네 개의 꼭짓점. 그들 사이의 교차점. 그런데 그 자리에 서 있는 <장안명기 오백화>는 우리를 단조로운 위치에 데려다 놓는다. 여기에는 그 즐거움이 어느 순간 고갈되어 버렸다. 이때 가장 따분한 설명은 여기에 창작의 열정이 고갈되어버렸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위험을 무릅쓰고 반대로 말하고 싶다. 혹시 열정이 가져온 의심이 즐거움을 고갈시켜버린 것이 아닐까. 의심? 그렇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된다. 나는 여기서 심리적인 분석의 기법을 빌려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 장안명기 오백화 >에서 본 것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의심이다. 무엇에 대한 의심? 설명에 대한 의심.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영화적 효과들. 인물들의 대사. 그 대사를 둘러싼 표정. 표정을 만들어내기 위한 카메라와 연기 사이의 거리. 이때 내가 인물이라고 말하는 대신 연기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주기 바란다. 임권택 은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의 수많은 기호들을 연결하고 종종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개념들을 여러 가지의 경로를 빌려 결합시켜왔다. 말하자면 영화의 규칙 안에서의 활동. 이때 임권택은 문득 여기서 멈춘 다음 이 개념들이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처럼 영화를 다루기 시작했다. 갑자기 연결과 결합 사이의 영화적 효과들은 일시적으로 작동이 중단되었다. 나는 그것을 <장안명기 오백화> 안에서 기이한 감정을 안고 바라보았다. 도대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상한 상황. 그 안의 배치를 성립시키는 모든 요소들 사이의 조화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건드리면 어떤 효과가 생겨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아는 장인이 갑자기 자포자기 하듯이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는 사실을 느껴볼 때 나는 이 행위 자체가 보는 쪽에 고통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사유를 시작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물론 이것은 <장안명기 오백화>를 위해서 설명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이 상황을 한편으로는 앞으로 돌아보고, 이를테면 1969년의 영화들, 반대로 저 멀리 1978년 < 족보 >까지 끌어당겨보고 싶다. 하지만 여기서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기 시작했다. 관성적으로 오던 것은 여전히 빨리 가고 갑자기 어떤 것은 필요 이상으로 느리게 가기 시작했다. 임권택 은 서둘러 가는 것을 마치 남의 영화를 쳐다보듯이 내버려두고 있다. 반대로 그 안에서 무엇이 느리게 갈 수 있는 지를 건드려본다. 이제까지 접속되었던 방식을 바꾸려 하기 전에 무엇이 무엇과 더불어 기능하는지를 마치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순간들. 이때 멈춘 것은 다소 불투명하긴 하지만 대부분 장르의 신호들이다. 혹은 그 신호들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신호들은 계속해서 지시를 내리지만 기이하게도 장르의 기호들은 반응하지 않는다. 아니, 차라리 반응을 멈추었다고 말하고 싶다. 좀 더 구체적인 설명. 이 중단은 단순하게 멈춘 것이 아니다. 자동적 반응의 중단이라는 문제. 나는 영화를 보기 전 제목만 슬쩍 본 다음 장안명기 오백화를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섯 명의 기생. 다섯 명의 여자. 다섯 개의 운명. 그녀들 사이에 던져진 사건, 혹은 인물. 던져진 돌. (그렇게 된다면) 원형으로 번져나가는 이야기의 선. 나는 틀렸다. 오백화는 이 영화의 중심에 있지도 않으며, 또한 오백화 사이에서 어떤 분열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게다가 오백화가 이 영화를 움직이기 시작하는 어떤 힘을 끌어내지도 않는다. 이 영화의 선은 도대체 어디로 이어지는 것일까. 영화를 보고 나면 줄거리가 어떤 법칙을 따른 것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에는 기이하게도 그 선이 자꾸만 제자리에로 돌아온 다음 어떤 새로운 차원에로의 이동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잡아당기기만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 순간 끊어질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서 어떤 긴장이 생겨나지도 않는다. 줄거리의 경제학으로만 본다면 다섯 명의 장안 명기 오백화는 서로 그녀들의 우정을 나누기는 하지만 사실상 줄거리를 위해서라면 고백화와 태백화, 그리고 김백화 세 명으로 충분하다. 게다가 임권택 은 최백화와 유백화를 위해서 거의 어떤 시간도 들이지 않는다. 나는 영화가 끝난 다음 최백화와 유백화의 존재 자체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다섯 명의 스타의 얼굴의 순환. < 장안명기 오백화 >에서 이상한 것은 이 순환 자체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를 본 다음 고백화 기홍을 연기하는 고은아 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잊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임권택은 고은아를 영화 안에서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 첫 장면에서 중심에 있었던 고은아는 줄거리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나기 시작한 다음 영화가 끝날 때 그녀는 시작할 때와 반대로 단지 오백화 중의 한명이 된다. 사라져가는 무게. 줄어드는 빈도. 스타는 줄거리의 장르이다. 그러나 <장안명기 오백화>에서 고은아는 마치 이 영화에서 사라져가는 메시지처럼 점점 뒤로 물러난 다음 화면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자리를 옮겨간다. 그렇다고 해서 박노식과 신성일이 그 자리를 탈취하거나, 혹은 옮겨오지도 않는다. 그들은 제 역할을 한 다음 재빨리 물러난다. 여기에는 스타들 사이의 균형이 거의 무너져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인물들 사이의 민주주의적 배치에 따른 것도 아니다. 나는 다소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싶다. 이들은 마치 공장처럼 작동한다. 기능적으로 배치된 다음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자기의 역할을 하고 잠시 멈춘 다음 다시 자기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인물들은 상황에 연결되어 있는 것만으로 자기의 존재를 증명할 뿐 그 어떤 다른 변수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상황이 그 존재에 변수를 부과하기 시작한다. 인물들에 대한 억압. 어떤 억압? 줄거리의 억압. 이때 이 억압을 무효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임권택 은 마치 이 억압에 순응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고도 바람직한 일일까, 라고 반문하는 것만 같다. 나는 여기서 이제부터 시작될 임권택의 영화에 대한, 영화를 향한, 영화에 의한 그 자신의 인정투쟁의 시작을 본다. 그때 줄거리의 무한한 계속으로부터 바깥으로 나오면 거기서 무엇과 만날 수 있을까. 물론 그건 삶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온, 또 살아가야 하는 삶. 나는 < 장안명기 오백화 > 다음의 영화, 임권택 자신이 그 ‘이전’의 모든 영화를 ‘습작’이라고 부른 다음 비로소 만든 < 잡초 >가 한 여인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을 환기시키고 싶다. 신운일과 아키코 박노훈과 기홍 물론 < 장안명기 오백화 >를 좀 더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종종 인물들 사이의 자기 자리의 수행은 때때로 갈팡질팡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때 이 영화의 이상한 점은 그 뻔한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그 어딘가에서 부터 이야기의 결말을 소급해서 올라가서 재구성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 기괴한 역설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는 줄거리의 소급이 사실상 이미 예정된 전제 위에서 진행된 결말로부터 나온 자연스러운 연쇄망의 잠재적 가능성이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에서 느끼는 것은 시나리오와 영화 사이의 이상한 분리이다. 시나리오의 잠재적인 감정은 거의 진행되지 않고 그 줄거리의 행위들만이 차례로 나열된다. 시나리오는 세 명의 여자와 세 명의 남자, 그러니까 고백화와 박노훈, 태백화와 신운일, 김백화와 최칠용을 하나의 짝으로 묶은 다음 다시 이들 사이의 관계를 연결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임권택 은 거의 고의적으로 그들 사이의 끈을 느슨하게 만들어놓았다. 실제로 이 영화는 아무리 진행되어도 그것을 잡아당겨서 긴장을 만들어내려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풀려나가서 느슨해진다. 이 영화는 중심이 없는 영화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몇 가지 단락의 순간들. 신운일은 아버지의 요구에 따라 기무라 총독의 여식인 아키코와 결혼을 강요받는다. 그런 다음 이어지는 약혼식. 여기서 이상한 방식으로 구부러지는 분배의 방식. 신운일은 아키코에게 둘 만의 데이트를 청한 다음 갑자기 자기의 처지를 고백하면서 진정 사랑하는 태백화 정미와 결국 결혼할 것이며 당신과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동거는 하겠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떠나가겠다고 말한다. 잠재적인 대립의 수행. 그런데 이때 아키코가 예상치 않게도 신운일을 이해하면서 당신이 나와 같은 일본 여자와 결혼하는 조선인 남자였다면 오히려 경멸했을 것이라는 대답을 할 때 여기서 진행되어야 할 어떤 긴장도 사라진다. 말하자면 무효. 그런 다음 아키코는 영화에서 어떤 설명도 없이 사라진다. 도대체 아키코라는 등장인물은 이 줄거리에 무엇을 봉사하기 위해서 등장한 것일까. 혹은 신운일의 이야기와 평행하면서 (영화가 시작도 하기 전에) 상해에서 보낸 독립 운동가들이 체포되고 (영화가 시작된 다음에) 조선총독부 총독 생일에 맞춰 전원 몰살하려 한 폭약을 구입하려던 군자금을 고등계 형사 최칠용에게 빼앗기기까지의 과정을 길게 서술하고 있다. 이제 어떻게 그 돈을 다시 구할 것인가.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돈이라는 역할의 표면 등록. 역할의 수행에 관한 인물들에 대한 기대. 교활한 중국인은 돈을 먼저 내놓으라고 박노훈에게 말한다. 이때 박노훈의 방법은 이상할 정도로 단순하다. 고백화 기홍을 찾아가 민족에 대한 사랑에 관해 몇 마디 웅변을 한 다음 그 돈을 구해달라고 간청한다. 그 돈을 구하기 위한 고백화 기홍의 이야기. 생략된 장면. 그런 다음 (고백화가 아니라) 태백화가 경무국장에게 수청을 약속하면서 그 돈을 빌린다. 물론 돈의 순환과정의 아이러니. 총독을 지켜야 할 경무국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암살할 비자금을 구해준다. 궁금한 질문. 그런데 왜 고백화 기홍은 민족이라는 이름 앞에서 자신이 빚을 청산하듯이 어떤 요구나 대가없이, 하다못해 박노훈에 대한 사랑의 감정조차 없이, 그 돈을 구해주려는 것일까. 그런 다음 왜 그 임무를 태백화에게 떠넘긴 것일까. 마치 이 행위는 신운일이 자기의 뜻과 관계없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본 여자인 아키코와 약혼을 발표한 다음 그 축하연이 명월관에서, 그것도 태백화 눈앞에서 벌어진 다음 이어지기 때문에 마치 그녀를 완전히 자포자기시키는 요구처럼 보인다. 단지 부조화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인물들 사이의 네트워크. 이때 이들 사이의 관계는 오로지 이야기의 골격에 따라 장르를 유지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 사이의 교환은 어디선가 흩어진 다음 오로지 기능의 액션만을 남겨놓은 채 감정의 분배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사라진 씬들이 에매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이를테면 거의 설명과잉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의 1960년대 임권택 의 사극영화들을 생각해보라. 그때 단지 이것이 인물들 사이의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장르의 욕망의 경제학에서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심층적 구조가 사라진 컨벤션들. 그러므로 어떤 불연속. 무엇을 주장하기 전에 먼저 없어진 것은 무엇일까. < 장안명기 오백화 >에서 거의 완전히 붕괴된 것은 이 영화의 경제성이다. 그렇다면 임권택 은 교환과 분배 없이 무엇으로 이 규칙을 다시 작동시킬 수 있다고 믿은 것일까. 임권택은 자기 영화 안에서 목표를 찾아가는 대신 목적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장안명기 오백화>는 목표가 사라진 영화이다. 어떤 목표? 장르에 따라 줄거리가 거두어야 하는 최종 목적지. 이 영화는 그 목적지가 마치 도달할 수 없는 헛된 목표인 것처럼 거기에 갈 수 있는 영화적인 방법의 경제학을 거의 포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목표가 헛된 대상이 될 때 이 영화의 모든 쇼트들은 갑자기 장르의 규칙 안에서 자기의 사용가치를 상실할 것이다. 나는 이상할 정도로 마지막 장면에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저 어울리지 않게 작은 배에 저 많은 사람들, 박노훈과 네 명의 백화가 새벽에 몸을 싣고 정말 그 머나먼 서해 바다를 가로 질로 저 멀리 상해까지 갈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이 생겨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 영화의 어디서도 아니에요, 이건 영화에요, 그러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상상해주세요, 라는 요구를 하지 않고 있다. 그때 상해는 이 영화 전체의 헛된 최종 목적지에 대한 텅 빈 기표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시적으로 찍힌 유일한 장면. 그건 마치 어떤 작별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이건 지나치게 사후적으로 감상적인 기분에 사로 잡혀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선언했다. <장안명기 오백화>를 보면서 나는 이 영화를 알고 싶은 대신 < 잡초 >를 만들기 직전, 그러니까 이제까지의 영화가 모두 습작이라고 단언해야만 했던 그 상황의 심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때 여기서 내가 보는 것은 새로운 도약을 향한 어떤 약속의 증거가 아니라 정반대로 그 모든 것의 조화가 어지럽혀진 채 너무 많은 장면들이 스스로 의미를 포기해버린 얼룩들의 거의 망쳐버린 듯한 카오스였다. 나는 < 장안명기 오백화 >의 이상한 마지막 장면을 다시 떠올리는 중이다. 일본군의 추적이 마지막까지 뒤따르고 네 명의 오백화와 박노훈, 신운일을 태운 병원 앰뷸런스 구급차는 그들을 태울 배가 있는 강변 가까이 도착한다. 신운일은 그들을 내리라고 한 다음 자신이 이들을 따돌리겠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자살의 제스처에 다름 아니다. 그들은 무사히 탈출을 하지만 마치 예정된 것처럼 신운일은 일본군의 추적 끝에 총에 맞아 죽는다. 그가 죽어가면서 보는 것은 마치 대지가 기울듯이 흔들리는 시선이다. 물론 그것은 신운일이 쓰러지면서 보는 세상의 마지막 풍경이다. 그런 다음 일본군들은 마치 자기들의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돌아간다. 눈 덮인 언덕 아래에서 고백화는 물어본다. “아니, 어떻게 된 것일까요?” 박노훈은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이 대답한다. “녀석은 여자를 사랑하는 법을, 아니 인생을 사랑하는 법을 나에게 가르쳐주고 있군” 멀어져가는 일본군. 그때 앰뷸런스 차 안에서 총에 맞아 구멍 뚫리고 금이 간 창문을 통해서 그들을 바라본다. 이 난처한 두 개의 쇼트 사이의 반복적인 쇼트와 상대 쇼트. 말하자면 성립되지 않는 시선의 교차.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 과도하게 사후적인 설명이 동원되어야 할 지 모르지만 나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다. 마치 배를 타고 멈춰 서서 바라보는 박노훈처럼. 그때 눈물을 흘리는 박노훈의 얼굴. 눈물. 한 없이 이어지는 무심한 강물. 그들은 무사히 상해에 도착할 수 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이 길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 인생을 사랑하는 법. 그건 임권택 그 자신이 습작들과 작별하면서 내게 설명한 말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계속) 1973년 98분 칼라 2.35 감독 임권택 제작 우진필림 각본 신봉승 , 윤석훈 촬영 변인집 음악 전정근 미술 노인택 편집 현동춘 박노식 박노훈 신성일 신운일 고은아 고백화 기홍 태현실 태백화 정미 독고성 최칠용